선비를 뵈러-
누가 하늘에 빗질을 했는지 구름도 가지런한 5월 어느 날, 옛날 세파에 지친 선비들을 넉넉히 품어 준 천상의 작음 쉼터, 정자를 찾아 함양 화림동 계곡을 찾았다. 대쪽같은 선비들이 이상향으로 여겼던 정자들이 줄지어 있는 곳에 가 수백년 풍광 속으로 시간여행을 즐겨보기 위해서였다. 산과 계곡도 풍요로운 5월, 나를 태운 버스도 내 생각을 알았는지 경쾌하게 달렸다. 함양하면 정자가 떠 오르는 곳이다. 군자정, 거연정, 논월정이 줄지어 있는 함양에 이처럼 정자가 많은 까닭은 선비들이 권력의 참담함을 달래고 한탄과 고통을 이기고 은거하기 좋은 곳이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이번의 나들이는 정자 마루에 앉아 그분들과 시선도 한번 맞춰보고 그들의 이상이 담긴 신세계를 느껴보려 위함이니 선비를 뵈러가는 길인 셈이다. 선비는 조선왕조를 상징하는 아이콘으로 대의(大意)를 위해 칼 앞도 두려워하지 않았던 그 기개, 때가 아니면 물러나 자연속에 묻히려 온 선비들을 넉넉한 품으로 안아 준 함양. 선비들은 떠나고 없지만 그들이 숨결지었던 정자는 그대로 남아 나그네를 맞이했다. 거연정(居然亭)에서 오래 머물렀다. 주변의 아름다운 경관이 보이는 곳에 있지 않고 경관 안에 들어 가 자연의 일부가 된 정자라서 그런지 이름도 자연에 머문다는 정자, 거연정. 정자 옆 야트막한 언덕에 안겨 용트림하듯 키를 재고 있는 소나무들이 내품는 솔 향기가 예사롭지 않았다. 정자는 지난 시간을 말해주 듯 노송(老松)들이 단장을 집고 땅에 가까이 서 있었고 정자 기둥을 받치고 있는 주춧돌 바닥은 울퉁불퉁한 자연 모습 그대로였다. 높고 낮은 바위들을 깍지 않고 원래 모습대로 사용한 것은 선비들의 자연순응의 지혜와 정신의 흔적이었다. 정자 앞으로 조심스레 다가서자 주위의 고목들의 잎새가 조금씩 흔들리다 곧 고운 바람결이 되어 정자로 건너 온다. 마루에 구르는 햇살도 정겹게 내려 앉아 있었다. 잠시 마루에 앉아 옛 선비들의 숨결을 느끼고 그런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이 순간이 얼마나 가슴 뛰는 일인가? 지금이 달이 뜬 저녁이라면 선비들에게 막걸리 한잔 건네고 싶었다. 대들보와 서가래의 적당히 빛바랜 색감은 편안하고 넉넉해 보였고 휘어져서 늘어진 대들보는 지붕의 무게를 겨우 감당하는듯 힘들어 보였지만 그 유려함이 오히려 듬직해 보였다. 천정에는 아무 것도 남김이 없는 깨끗함 그대로였고 기둥 사이로 보이는 계곡은 넓고 시원해 나그네의 먼지낀 가슴을 씻어주었다. 정자 마루에 무심히 서서 멀고 가까운 곳을 바라보며 그 옛날 이 자리에 서럽도록 외롭게 서 있었을 중년의 사내들을 생각해 본다. 그들은 무슨 생각을 하면서 이 정자에 왔다갔다했을까? 아마도 울화를 삭이는 일이 가장 먼저였을 것이다. 당파싸움 끝에 물러나 권력을 잃은 뒤의 금단 현상, 임금의 사랑을 잃은 후의 참담함, 사람에 대한 실망은 오죽했을까. 그런 고통이 선비들이 읋픈 시조의 뿌리가 되었을 것인 즉, 그러고 보면 시련은 나쁜 것만은 아닌 것 같다. 정자 밑으로 유유히 흐르는 저 계곡물도 선비들이 이 정자에 머물렀을 때에는 잠시 흐름을 멈추고 낮에는 하늘의 구름과 밤에는 달과 선비들이 함께 서로 시를 주고받는 시객(詩客)이 되었으리라... 온갖 모습의 암반 바위, 여유롭게 흐르는 물줄기. 평온한 기운을 안고있는 작은 계곡, 물 건너 한가로운 숲의 풍경과 잘 어우러진 이 거연정의 아름다움이라니..... 이렇듯 거연정은 자연을 즐기되 자연을 끌어들이지 않고 자연 속에 들어가 있는 정자이기에 멀리 떨어져 보니 그 풍광의 진가가 더욱 빛났다. 그러기에 정자는 자연을 더 아름답고 풍요하게, 자연은 정자를 더 멋있게 보이게 하는가 보다. 자연과 인공이 조화를 이룬 거연정의 풍광. 선인의 말처럼 산천은 의구한데 인걸은 간데 없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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