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가 있는 맛집] 막국수(2)
허기 채운 '슬픈 음식'… 대중화 늦어
막국수 계절 따로 없어… 구황 식품
주로 강원도에서 널리 먹어… 상품화 동기 없고 산골 음식으로
냉면에 비해 덜 알려져
'남북면옥' '전씨네 막국수' 등 유명
입력시간 : 2015/05/08 07:02:27수정시간 : 2015.05.25 18:45:18
전씨네 막국수
남북면옥
영광정 메밀국수
범부 메밀국수
금대리 막국수
막국수에 대한 몇 가지 오해를 이야기한다.
첫째, 막국수 계절은 겨울이 아니다. 냉장시설이 부족했던 시절에는 막국수를 먹기 힘들었다. 메밀은 보관하면 되지만 여름철의 동치미국물은 어렵다. 여름철의 무는 맛이 없다. 게다가 더운 날씨 때문에 동치미를 제대로 익히기도 힘들다. 동치미 대신 강원도 산골에서도 비교적 구하기 쉬운 닭고기 국물 등을 선택한다. 닭도 흔한 것은 아니다. 막국수가 강원도 산골에서 도심으로 진입하는 1960년대에도 여전히 닭은 달걀을 낳는 주요한 '자산'이었다. 사위에게 잡아주는 씨암탉은 귀한 것이었다.
막국수 계절이 여름인 것처럼 오해하는 것은 '냉면 계절이 겨울'이라는 이야기 때문이다. 물론 냉면도 여름이 한철이다. 식객들 중 몇 사람이 "냉면은 역시 냉면 수확 직후인 겨울이 한철이다" 혹은 "평양 등 북쪽에서는 겨울철 백김치 국물에 냉면 말아먹는 것을 즐겼다"고 해서 생긴 오해다.
중국산 메밀이 많이 수입된다. 여름철이라고 해서 중국산 메밀 맛이 특별히 달라질 일은 없다. 냉장, 냉동시설이 좋아지면서 메밀을 도정, 제분하지 않고 보관하다가 자주 도정, 제분하면 맛은 비교적 제대로 보전된다. 예나 지금이나 여름철 동치미, 백김치는 어려운 음식이다. 냉장, 냉동시설이 부족했던 불과 50년 전만 하더라도 여름철에는 불가능한 음식이었다.
막국수는 먹고 싶어서 먹었던 음식이 아니었다. 계절을 따지면서 먹었던 음식도 아니었다. 메밀 수확은 1년에 3번 정도 가능하다. 겨울철이 아니라도 메밀은 구할 수 있었다. 기아에 시달리고 보릿고개에 시달리던 사람들이 '맛있어서' 먹는 것은 아니다. 끼니가 힘들면 먹을 수 있는 곡물은 먹어야 한다. 계절을 따질 계제가 아니다. 불과 50년 전에는 오뉴월이면 한반도 전체가 식량부족으로 시달렸다. 깊은 산골에서는 메밀을 먹어야 살 수 있었다. 그래서 메밀은 '슬픈 음식'이라고 이야기한다. 슬픈 음식은 배가 고파 슬픈 계절에 먹는 것이다.
둘째, 왜 메밀 막국수는 냉면보다 가격이 낮아야 하는가? 냉면은 '가치상품'이 되었다. 조선시대에는 국왕도 먹었고 반가에서도 먹었다고 한다. 평양냉면 운운하면서 제법 가치를 인정받았다. 그러나 막국수는 아직 정확한 정체성이 없다.
일제강점기, 냉면은 거리 식당의 음식으로 자리 잡았다. 막국수는 강원도, 태백산맥 일대에서는 널리 먹었으나 아직 '시장'으로 나오지 않았다. 신문기사에는 냉면 관련 내용들이 자주 등장한다. 평안도, 평양일대의 '냉면산업'에 관한 내용들이다. 건면(乾麵)으로 만들어 팔았다는 뜻이다. 예나 지금이나 100% 메밀건면은 힘드니 상당 부분을 밀가루 등으로 채운 것이었을 것이다. 다음으로 자주 등장하는 기사는 '청결상태' '냉장, 냉동설비를 갖추라는 행정지시' 그리고 '냉면으로 인한 식중독 기사'다.
일제강점기에도 막국수가 '시장' 즉 식당의 메뉴로 등장하지 않는 것은 아직 정확한 모습을 갖추지도 못했고 한편으로 상품화할 동기가 없었기 때문이다. 역시 험하게, 막 갈아서 바로 국수를 만들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게다가 평양이나 서울 같은 곳에서 시작된 것이 아니라 서민들의 지역인 '강원도 산골음식'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일제강점기의 기사 중에는 냉면으로 인한 사고 기사가 자주 실린다. 동아일보 1927년 7월18일의 기사 제목은 "평양학생 3명이 냉면중독사상, 냉면 먹던 세 학생이 중독되어 한명은 죽고 두 명은 겨우 살아"이다. 1931년 7월14일에는 더 끔찍한 이야기도 나타난다. 제목이 "냉면 먹고 80명 중독 3일간에 3명 절명, 청엽정(靑葉町)에서 발생한 참사, 7명도 방금 생명 위독"이다. 신의주에서는 "탄산소다 대신에 양잿물을 섞은 까닭, 중독자의 실수(실제 숫자)는 15명가량 신의주 냉면중독사건"이 발생한다. 1933년 6월30일의 기사다. 이 사건으로 1명이 즉사했다. 원인은 역시 탄산소다 대신에 사용한 양잿물. 연이어 식중독 사망, 탄산소다, 양잿물 소동, 썩은 고기 사용 등 각종 사건이 나타나는 걸 보면 일제강점기에 이미 냉면은 지금보다 더 호황을 누린 메뉴였다. 막국수는 여전히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다. 막국수는 아직 강원도에서 잠자고 있었다. 구황식품으로 묵묵히, 강원도 서민들의 밥상에 올랐을 뿐이다.
강원도의 몇몇 의미 있는 막국수 집들을 소개한다. 인제 원통은 지금도 외진 곳이다. 외진 곳에서 변하지 않고, 묵묵히 반세기 이상 막국수를 만들고 있는 집이 있다. 인제읍내 '남북면옥'이다. 막국수도 좋고 국산 돼지고기를 사용하는 수육도 일품이다.
인근의 '전씨네막국수'도 수준급이다. 두부가 아주 좋다. 오전에는 미처 막국수를 준비하지 않고 두부전골을 내놓는다. 막국수와 더불어 구운두부를 택해도 좋다.
양양군의 '영광정메밀국수'도 노포다. 얼마쯤 맛이 짠 예전 방식의 동치미도 반드시 맛봐야 한다. 김치도 일품이다. 특히 겨울철 김장김치를 만나면 아주 좋다.
'금대리막국수'는 비교적 업력이 짧다. 100% 메밀막국수를 내놓고 동치미도 수준급이다. 조미료 사용을 절제하고 밑반찬에 효소와 고로쇠 물을 사용한다. 음식에 들이는 정성이 놀랍다.
'범부메밀국수'는 마치 산골에서 떠꺼머리총각을 만난 느낌을 준다. 메밀껍질이 촘촘히 막힌 국수다. 모양새는 투박하지만 따뜻하다. 음식 맛도 투박하지만 먹고 나면 가슴이 훈훈해진다.
황광해 음식칼럼니스트
출처 : 인터넷한국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