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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은 기록을 못 당한다. 고단한 몸을 책상에 앉히고 이 글을 쓰는 이유이다. 전국에서 300여 명의 교사들이 2015년 7월 11일(토) 세종시 온빛초등학교에 모였다. 이 모임의 준비 과정부터 끝나고 난 후의 소회까지 기록해 본다. 어젯밤에 평가회를 겸한 뒷풀이를 하느라 어울려 마신 술에 몸이 고단하다. 그래도 내 안에 생생한 느낌이 살아있을 때 그 기록을 남긴다. 이 기록을 통해 돌아보고 내다보려 한다.
1. ‘학교라는 괴물’과 ‘고물’들의 만남
이 모임은 지난 4월 25일(토) 서울에서 있었던 권재원 선생님의 「학교라는 괴물」북콘서트가 동기가 되었다. 그 무렵 나는 책을 읽고 페이스북에 서평을 올리며 권재원 선생님을 만나고 싶다고 요청했다. 거기에 함께 만나고 싶다는 벗들의 요청이 이어지며 드디어 날짜가 잡혔다. 그렇게 얼렁뚱땅 전국에서 20여 명의 벗들이 서울에서 모였다. 그날 모임을 준비하며 우리는 서로를 ‘괴물과 고물’이라 불렀다. 그리고 그날의 이야기 마당을 ‘괴물과 고물의 학교 이야기’라 이름 지었다. 책 이름에 빗대어 권재원 선생님을 ‘괴물’이라 부르고, 학교에서 응어리진 마음을 풀어내지 못하는 우리를 ‘고물’이라 부르며 언어유희를 즐겼다.
그날의 모임이 끝나고 밤기차를 타고 익산으로 내려오는 길에 나는 페이스북에 그룹을 하나 만들었다. 그리고 모임에 참석한 분들을 모두 초대했다. 모임의 후기도 나누고 앞으로 서로의 학교 이야기를 풀어가자면 온라인 소통 공간이 필요할 거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2. 세종에서의 모임을 준비하며
페이스북 그룹을 통해 모임 이후에 왕성하게 이야기를 나누던 분들도 각자의 생활에 바빠지면서 점차 소식이 뜸해지기 시작했다. 그래도 가끔씩 올라오는 고물들의 하소연과 넋두리는 우리들의 응어리를 풀어주기에 충분했다. 공감만으로도 큰 위로가 되었으니 말이다. 그러다 세종시로 올 초에 전입한 정유진 선생님이 세종에서 다시 모임을 가졌으면 좋겠다는 제안을 했다. 심드렁한 학교에서 지칠 대로 지쳐가던 ‘학교의 고물들’은 다시 우루루 달라붙었다.
2015년 7월 11일로 모임 날짜가 잡혔다. 시간이 가고 있었지만 구체적으로 어떻게 준비해야 할지 막막해질 무렵, 자정이 훌쩍 넘은 시각에 정유진 선생님과 나는 오랜 시간 페이스북으로 채팅을 했다. 정유진 선생님이 큰 그림을 그려주었다. 책이든 음악이든 그림이든 현장에서 실천한 과정을 통해 교육을 이야기하는 교사들을 강사로 내세우고 참여할 분들을 공개모집하자는 것이었다. 이미 발표자들의 섭외도 대충 마무리한 상태였다.
좋은 제안이었다. 그러나 우리의 준비는 너무 엉성했다. 그럴 만도 했다. 무슨 단체가 있는 것도 아니고 전국에 뿔뿔이 흩어져서 사는데 온라인 소통은 한계가 분명 있었다. 아무래도 현장을 직접 봐야 할 것 같았다. 서로 얼굴을 보고 이야기를 나누어야만 구체적인 계획을 세울 수 있을 것 같았다. 6월 19일(금) 오후 3시, 세종교육연구원에서 드디어 첫 만남을 가졌다. 김병주 대표님을 포함한 에듀니티 직원들, 세종교육연구원 우상균 연구사님, 정유진 선생님, 나 이렇게 얼굴을 맞댔다. 현장을 꼼꼼히 살피고 서로 의견을 나누며 전체적인 기획을 함께 했다. 그날 모아진 의견을 정리하면 대충 다음과 같다.
- 오전과 우후로 나누어 진행함
- 오전은 저자들의 실천 활동을 TED 방식으로 강연함
- 오후는 참여자들의 토의 방식으로 진행함
- 정유진 선생님과 나는 발표자에서 빠지고 오전과 오후 진행을 맡기로 함
- 발표자는 강사료를 따로 지급하지 않음(열정페이, 좋아하지 않는 말인데 흔쾌히 발표자들이 동의해 주었다. 지금도 고맙게 여긴다.)
- 참가비는 식비 등에 필요한 최소한의 경비로 만원으로 하고 현장접수하기로 함
- 장소는 세종교육연구원의 모든 시설을 활용함
- 참가자 페이스북으로 안내하고 에듀니티 행복한 연수원 사이트를 통해 모집함
- 모임의 실황은 에듀니티 촬영팀이 동행하여 영상으로 기록함
- 행사 팜플렛은 김차명 선생님께 부탁함
- 사전 준비, 당일 진행, 모임 이후 소통의 공간이 필요하므로 밴드를 개설하여 참가 희망자들을 초대하기로 함
그럭저럭 준비가 되었고 행사 안내장을 각자의 타임라인에 게시하고 참가자를 모집했다. 놀라운 일이 벌여졌다. 3일 만에 250여 명이 신청을 했다. 세종교육연구원의 수용 인원은 200명 정도인데 장소를 옮겨야 할 상황이었다. 급기야 페이스북 그룹에서 참가 신청 마감 여부를 놓고 의견을 나누었다. 대부분이 신청을 마감하자는 의견을 내놓는 바람에 신청 사이트를 마감했다.
그러나 며칠 만에 이 결정은 수정되었다. 세종교육연구원에서 진행하기가 어려운 상황이니 제3의 장소로 물색했던 온빛초등학교로 장소를 옮기고 마감 이후에도 참가 신청을 희망했던 분들이 많은데 그 분들을 포함하여 최대 300명까지 다시 모집을 하기로 했다. 장소가 옮겨진 만큼 다시 현장 답사를 해야 했다. 6월 29일(토), 온빛초등학교를 찾았다. 이날은 차승민 선생님, 박대현 선생님, 정유진 선생님, 우상균 연구사님이 자리를 함께 했다.
현장을 꼼꼼하게 살피며 이야기를 이어갔다. 행사의 목적부터 전체적인 흐름까지 각자의 이야기를 들어보며 우리부터 공감하는 과정을 거치기로 했다. ‘교사들이 교육의 주체로 서서 목소리를 내는 자리로 만들자’는 취지에는 모두 공감했다. 그리고 발표자를 누구로 할 것인지, 순서는 어떻게 할 것인지에 대한 논의도 마쳤다. 오후 모둠토의 방식을 두고도 함께 이야기를 나누었다. 참가자를 미리 알아야 식사 준비 등을 할 수 있으므로 미리 참가비를 받기로 했다. 현장을 총 감독하며 지휘할 사람이 필요한데 차승민 선생님이 선뜻 그 어려운 일을 맡아주기로 했다. 이렇게 논의를 마치고 마감했던 신청 사이트를 다시 열었다.
이렇게 이야기를 나누었음에도 발표자 조정 등으로 다시 논의를 이어가야 했다. 예정된 분이 사정이 생겨 못하게 되기도 했고 다른 분을 섭외하는 과정에 서로 소통이 부족하여 착오가 생기기도 했다. 이 과정 또한 여과 없이 페이스북 그룹에서 함께 속 이야기를 풀어갔다. 그런 과정이 있었기에 서운한 마음이 덜어낼 수 있었다.
날짜는 다가오고 이제 실행할 일만 남았다. 우리는 바쁘게 움직였다. 차승민 선생님이 참가비를 받고 장을 보고 점심식사를 마련했다. 정유진 선생님도 현장을 꼼꼼히 살피고 숙소를 예약하는 등 종종거리며 뛰었다. 김차명 선생님이 행사 현수막과 명찰의 도안을 그려주었다. 권재원 선생님이 행사용 음악을 선곡해 주었다. 이외에도 사진 촬영, 주차 안내, 강당 의자 설치, 뒷정리 등에 자원봉사자가 필요하다는 내용의 글을 밴드에 올렸더니 너도 나도 함께 하겠다며 나서주는 분들이 많았다. 참으로 고마운 분들이다.
3. 전국에서 교사들은 왜 모였을까?
신청 마감을 하니 279명이었다. 현장 접수를 감안하면 300명 정도는 될 것 같았다. 사는 곳도 다 달랐다. 17개 시․도교육청 가운데 울산을 제외하고 모든 지역에서 신청자가 있었다. 나는 무엇보다 이들이 왜 한 곳에 모이려고 하는지 그 이유가 궁금했다. 참가 신청을 받으며 참가 동기를 간단하게 적어보게 했는데 거기에 적힌 글들을 꼼꼼하게 읽었다. 이유는 다양했다. 이를 되새겨보는 것도 의미 있는 일이리라. 참가 동기 몇 가지를 발췌하여 적어 본다.
- 다양한 주제와 함께 평상시에 만나보고 싶었던 선생님들을 만날 수 있어서.
- 열정과 실력을 겸비한 샘들과의 만남을 기대하며
- 학교에서 교사로 살아가는 여러 선생님 애기를 듣고 나누기 위해
- 10년간의 교사생활을 되돌아보고 앞으로 교사로서의 질적 도약을 위해서
- 3년차입니다. 어떻게 살아야할지 고민이 많습니다.
- 4월에 모였던 ‘괴물과 고물 이야기’를 더 듣고 싶고 질식 직전의 공교육에서 새 희망을 찾고 다른 이에게도 보여주고 같이 새로운 교육을 만드는데 동참하고 싶다.
- 계속 교사를 하고 싶어서
- 교사 전문가 집단의 역동을 배우고 다양한 시각의 이야기를 나누고 싶기에 참가합니다.
- 교사 초년생으로서 더 많은 걸 하고 싶은 욕심과 그에 따라주지 않는 능력에, 그리고 아이들을 위한 게 무엇인지 고민하는데 도움을 얻고 싶어 참가하게 되었습니다.
- 교사와 학생 모두가 행복한 교실을 만들고 싶네요. 연수를 계기로 교사로서의 나를 다시 세우렵니다.
- 교사가 교육의 주체로서 삶을 살아간다는 즐거운 공유
- 교사로서 행복하게 산다는 것이 어떤 것일까, 늘 고민하는 문제이기에 행복한 선생님들을 만나보고 싶습니다.
- ‘교사로서 행복하지 않은 이유가 뭘까?’를 생각해보는 자리가 될 것이라는 기대로 참가합니다.
- 교사로서의 삶의 의미를 찾고 싶습니다.
- 교사로서의 현재 미래의 삶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는 커뮤니티에 참석하고자
- 그동안 멀리서 패이스북을 통해 알던 선생님들을 직접 뵙고 싶습니다.
- 멋진 교사로 퇴직하고 싶어요.
- 발령 3개월 차 신구교사입니다. 스스로 배워가며 학생들을 가르치는 게 꽤 벅찬 일이라는 사실을 새삼 깨닫는 요즘입니다. 아직은 낯선 교직생활의 방향을 잡고 싶어 참가합니다.
- 새로운 교육을 꿈꾸는 교사이나 현장은 그대로이니 이젠 에너지가 다 소진되어 갈수록 힘들어지는 교직 생활의 어려움의 돌파구가 될까 싶어서
- 우리 교육의 현재를 비판적으로 고찰하고 미래 교육을 함께 고민해 보고자 합니다.
- 저경력 교사로서 긴 시간동안 학교에 있었던 것은 아니지만, 그동안 교사로서의 삶을 돌아보고 다른 선생님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마음을 새롭게 다잡는 시간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으로 신청하게 되었습니다.
- 전설들 뵙고 기를 받아가고 싶어요! 저희학교가 예비혁신학교가 되어 제가 실무를 맡게 되었는데 강사님 물색도 좀 하고 싶구요ㅎ
- 책을 읽으면서 참 도움이 많이 되었습니다. 저자와 함께 만나서 이야기도 나눌 수 있고 요즘 고민하고 있는 것들에 대해서 다른 사람들과 의견을 나눠보고 싶어서 참가하게 되었습니다.
- 학교가 갑갑해서
- 희망을 만드는 사람들을 만나려고
4. 발표자들의 목소리는 울림이 있었다.
참가 동기를 되새기며 이른 아침 세종시로 향했다. 오전 8시 정도 도착했는데 벌써 몇 분이 와서 의자를 설치하고 있었다. 날은 무더웠고 300개의 의자를 설치하고 나니 온몸에 땀이 났다. 몇 분은 주차 안내를 하러 나가고, 간단한 다과를 차리고, 등록을 받으며 서로 할 일을 찾아서 했다. 10시가 되자 준비한 의자는 모두 꽉 차 있었다.
학교현장의 목소리를 노래로 만들어 생생하게 전해주고 있는 ‘수요일밴드’가 화끈하게 분위기를 띄워주었다. 이어서 정유진 선생님의 재치 있는 사회로 1부의 막이 올랐다. 15분 씩 배정된 짧은 시간이었지만 발표자들은 혼신의 힘을 다해 강연을 이어갔다. 다 담지는 못하고 내 귀에 꽂혔던 울림 있는 목소리를 중심으로 간략하게 담아 본다. 생생한 영상은 에듀니티 촬영팀이 담았으니 편집 작업을 통해 만날 수 있을 거라 기대한다.
1) 권재원 선생님
“왜? 그래서?가 없는 기능적 교육 혁신을 하고 있다.”
“실천교육학이 필요하다.”
“함께 모여 이야기하자.”
“교사들이여, 괴물이 되자.”
2) 이윤미 선생님
“교육과정 실행관점에서 우리의 위치를 알고 나아가자.”
“교육과정 재구성이 아니라 교육과정 개발로 나아가자.”
“교사들이여, 교과서 너머 교육과정을 마주하자.”
3) 구민정 선생님
“연극은 삶과 이야기다.”
“연극은 상처를 감싸주고 함께 모이게 하고 사람을 움직이게 한다.”
‘엄마 마중’을 소재로 참가자들의 즉흥극을 선보였다.
4) 차승민 선생님
“내가 나를 가장 감시한다.”
“수업준비가 끝났다는 건 놀 준비가 끝났다는 것이다.”
“누구나 찌질하다. 용기란 찌질하게 한 발 떼는 것이다.”
“쫄지 말고 용기를 내자.”
5) 김성효 선생님
“교실의 벽, 교사들 간의 벽이 높다.”
“옆 선생님의 손을 잡자.”
6) 김차명 선생님
“동감이 우리를 하나로 만든다.”
“가지고 있는 것이 없어야 새로운 것을 만든다.”
“나의 그림 그리는 1주일로 30만 명의 10분을 가치 있게 한다.”
발표가 끝나고 10인 1조로 조를 나누었다. 식사 전에 조를 나눈 이유는 조별로 함께 식사도 하면서 서로 친해져야 2부 조별토의가 활발하게 진행될 수 있겠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조 편성 프로그램은 김차명 선생님이 도움을 주었다. 조별로 식사를 마치고 발표자 6명과 수요일밴드, 정유진 선생님, 나를 포함한 9개의 교실을 마련하여 30분 간 즉문즉답 시간을 가졌다.
5. 교사들이 외쳤다. 우리 교육에서 이것만큼은 사라져라.
2부가 시작하기 전에 최교진 세종시교육감님이 방문하여 전국에서 모인 교사들을 격려하는 말씀을 해주셨다. 뒤를 이어 수요일밴드의 잠깨기 공연이 화끈하게 2부의 막을 열었다. 나도 잠깐 출연한 적이 있는 ‘나쁜 선생님’ 뮤직비디오를 보며 크게 소리도 질러보았다.
“오전 발표자들은 선생님들을 모으기 위한 미끼였습니다. 이제 껄짝들은 치우고 진짜 알짜배개인 우리들이 이 무대를 채워가야 합니다.”
마이크를 건네받은 나는 첫마디를 이렇게 열었다. 농담인 줄 알고 모두 웃었지만 농담이 아니라고 진지하게 다시 말했다. 이는 사실이다. 애초에 우리들의 기획 의도가 그랬다. 먼저 10인 1조로 둥그렇게 조별로 자리를 마련하도록 안내했다. 진행요원 등을 제외하고 조를 만들었더니 총 27개의 원이 만들어졌다.
2부의 큰 판은 덜어내고 채우기다. 30분 간 시간을 주고 ‘우리 교육에서 사라져야 할 것’을 토의해 보고 조별로 두 가지씩 의견을 모아보기로 했다. 덜어내야 새로운 것을 담을 수 있다. 덜어내지 않고 자꾸 들어오기만 하니 교사들의 삶이 버겁다. 교사의 삶의 질은 교육의 질과 바로 연결된다. 이때 권재원 선생님이 준비한 배경음악이 토의 분위기를 달구었다.
토의를 마친 조는 진행을 맡은 내게로 그 결과를 전해주었고 나는 그 결과를 받아 중복되는 것을 추린 후에 밴드에 투표 게시글로 올렸다. 그런 후에 현장에서 즉석으로 투표를 하도록 안내했다. 투표 결과는 다음과 같이 나왔다. 투표 종료 후에 항목을 내가 하나씩 큰 소리로 부르면 선생님들이 “사라져라”고 크게 외쳐보았다. 교사들의 절규가 들리는가?
<교사가 말하는 우리 교육에서 사라져야 할 것>
서열화 등급화 하는 각종 평가들(학교평가, 교사평가 등) : 122
비민주적인 학교문화 : 53
성과급 : 52
교원의 행정업무 : 46
승진제도 : 44
불필요한 잡무(국회요구자료 등) : 41
방과후학교, 돌봄교실 : 28
실적위주의 형식적인 학교문화 : 26
100대 교육과정 : 15
학교폭력유공교원가산점 : 9
교장, 교감 : 8
나이스(교육행정정보시스템) : 6
교육부 : 6
경쟁을 부추기는 대회 : 5
일제고사 : 5
전시성 행사 : 5
야간자율학습 : 4
공모사업 : 3
임용고시 : 3
행정실의 지나친 간섭 : 3
청소년단체업무 : 3
비자발적인 교원연수 : 3
교과서 : 2
특색사업(교육부, 교육청, 학교) : 1
시종 : 1
6. 상상 너머 다시 새로운 교육을 말한다.
이런 것들이 사라진 자리에 우리 교육이 나아가야 할 길을 상상해보자 제안했다. 그 상상을 모아 조별로 한 개의 프로젝트를 만드는 것이 두 번째 토의 과제였다. 전지 두 장씩을 조별로 나누어 주었다. 1시간 정도 지나자 토의를 마친 조는 강당 벽에 대자보를 붙이기 시작했다. 모든 기획안이 만들어지자 조별로 3분 정도 시간을 주고 기획안을 소개하는 시간을 가졌다.
아래는 그렇게 해서 나온 기획안들이다. 자주 들었던 이야기들도 있고 생경한 이야기도 있다. 그래도 나는 믿는다. 이 모임에 참석했던 이들은 더 이상 혼자가 아니라는 것을 느꼈고 많은 기운을 받았으리라는 것을. 솔직히 말하면 이 시간이 이 모임의 진짜 이유였다. 적어도 나에게는 그랬다. 나는 상상이 고갈된 학교에서 교사들이 꿈꾸는 모습을 보고 싶었다. 처음 만나는 교사들이 한 조를 이루어 강당 바닥에 쭈그리고 앉아 서로 이야기를 나누던 이 시간이 우리 교육을 한 발 더 나아가게 하리라는 기대도 있다. 그런 기대감을 갖고 기획안을 살피며 그 내용을 간략하게 정리해 본다. 여럿이 함께 꾸는 꿈은 현실이 된다고 했다. 이제 이런 꿈들은 머지않아 우리 앞에 다가오리라.
1) 교장, 교감 학교 내 선출제
해당 학교 1년 이상 근무자 중에서 선출하고 임기는 1년으로 하되 중임할 수 있다. 공동 관리자라는 책임성을 키우고 학교 내 중요 사안은 원탁회의를 통해 결정한다. 학교회계 운영은 동학년 중심으로 책임지고 운영한다.
2) 살림의 교육
불필요한 양적평가로 인한 교사들의 부담감, 지필평가로 인한 학생들의 부담감을 줄여주기 위하여 ‘학급발표회’를 하자.
3) 교사의 소통과 자발성을 바탕으로 꿈꾸는 미래학교
학교는 사각이 아니라 원형으로 짓는다. 교실 문을 열면 바로 운동장으로 나간다. 또한 도서실을 각 교실에서 바로 만날 수 있다.
4) 학교 공동체 만들기
마을교육공동체와 교장순환근무제, 임용고시 대신에 최저임금이 보장되는 교사인턴제, 복수담임제의 연계를 통해 자발적인 학교 공동체를 만들자.
5) 교육과 업무의 이원화
교사는 교육업무만 하고 모든 지원업무는 행정실에서 한다. 방과후업무, 돌봄업무, 물품품의, 교육업무 외 기타 등등
6) 온빛이의 하루
선생님과 친구와 함께 티타임으로 아침 열기, 1~2교시 시원한 나무 그늘 아래에서 창의적 글쓰기, 쉬는 시간은 30분(노래, 놀이, 운동 등 아무거나), 3~4교시 토론, 내가 키운 텃밭에서 키운 채소로 새싹비빔밥으로 점심을 먹고, 5~6교시 수업잠에 배를 띄워라 동아리활동을, 방과후 바우처를 이용한 스포츠클럽을, 이를 위해서 학년중임과 학년군중임 그리고 중임에 따른 교육과정 전문성 향상을 위한 학년군별 연수의 체계화
7) 민주적인 행복한 학교 공동체
◦ 학생 : 자유롭게 표현하는 학생, 자율적으로 생각하고 책임감 있는 학생, 성공보다 행복을 갈망하는 학생
◦ 교사 : 자부심이 넘치는 교사, 함께 가는 교사 공동체, 눈치 보지 않는 강한 교사, 자존심․벽을 허무는 교사, 민주적인 교사문화
◦ 관리자 : 교사를 지원하는 관리자, 교사를 신뢰하고 보호해주는 관리자, 화내지 않는 관리자, 사람을 볼 줄 아는 능력이 있는 관리자, 의사소통능력․결정능력․자기조절능력이 있는 관리자
이를 실현하기 위하여 교사와 학생 간에는 관심과 사랑이, 교사와 관리자 간에는 신뢰와 존중이, 학생과 관리자 간에는 안전과 책임이
8) 회의를, 학교를 바꾸자
직원회의방법을 써클로 해서 수평적리더십이 구현하자. 익명성 보장된 소통공간(온오프)을 만든다. 동학년 수업 이야기를 중심으로 한 회의 시간을 마련한다.
9) 학교의 틀을 깨자
원탁에 앉자. 돌아가며 누구든 교장, 교감이 된다. 리더십 연수자라면. 교장의 역할은? 조정자, 상담자, 행정가, 지원가, 업무중심 부서조직을 학년교육과정중심부서로 조직한다. 학교교육활동 결과의 책임은 모두 함께 진다.
10) 덜어내기-->비우기, 마음의 여유를 주세요!
11) 교사의 전문성 기르기
교사공동체, 스스로를 직면할 수 있는 용기, 소통, 쉼, 자기계발, 자기표현, 관계적 평등, 교육과정 전문가, 민주적인 학교는 사랑과 신뢰를 바탕으로 나와 너 그리고 우리에 대한 자신감에서 나온다.
12) 교사의 소통과 자발성을 바탕으로 한 공동체 교사문화
교실 나들이, 스스로 준비하는 다모임, 학습공동체 안의 수업나눔, 함께하는 피드백
13) 교실 깨우기
◦ 취지 : 자율권, 운영권도 없이 책임만 따르는 학교문화가 제자리로 권한을 돌려주는 문화로 바뀌어야 교육이 깨어날 것
◦ 교장선출보직제 - 교장은 봉사직으로 기간을 두고 봉사하고 다시 교사로
◦ 예산권을 교사에게 - 학습준비물, 동아리운영비 등을 학급 아이들과 계획하여 알맞은 곳에 쓰도록 운영권한 돌려주기
◦ 12월 인사이동 정기화 - 1, 2월은 준비 시기로 충분히!
◦ 학교 내 교사 전문성 신장을 위한 모임 활성화
◦ 초등학교도 학년별 교무실 필요
◦ 상생하고 협력하는 학교문화 - 닫힌 교실 문을 열고 수업친구, 교실방문에 마음 여는 학교
◦ 서로의 발목을 잡지 않고 비교하지 않는 학교문화 갖기
◦ 공통된 사업을 다같이 하지 말고 선택권을 갖고 운영하도록 한다.
13) 가르침이 즐거운 교사
학생중심 교육과정 운영, 학급지원 상담사와 보조원 지원, 배움중심수업
14) 열정 가득한 실천
교사의 머리에는 아이에 대한 이해, 배움의 공동체, 피드백이 깃들어 있어야 한다. 이를 바탕으로 집단지성을 구축하고 수업과 교육과정 개발에 행동지성으로 옮기는 실천으로 나아가야 한다.
15) 학교문화 만들기
◦ 인사시기 앞당기기 - 새학년 준비의 기간 확보, 겨울방학과 봄방학을 온전히 준비기간으로
◦ 새학기를 위한 교사 간 마음열기 - 서로의 공통 관심사 나누기를 통해 친밀감 향상, 민주적인 교육공동체 분위기 조성
◦ 열려있는 학교문화 형성 - 교사, 학생, 관리자 모두의 의견이 소중하고 존중받는 학교문화
16) 우리가 꿈꾸는 학교
교사의 가르침보다 학생이 배워가는 공동체, 여러 연령이 함께 어울려 역할에 걸맞는 활동을 한다. 심심한 학교, 여백이 있는 학교라서 뭐하고 놀지를 고민하는 학교여야 한다. 아이들마다 가진 장점과 특기를 찾아 키워주는 학교여야 한다. 교사, 학부모, 지역단체가 함께 참여하는 회복적 공동체를 구축해야 한다.
17) 행복한 학교
수업만 하는 교사(행정업무는 싫어요), 공동체와 민주의식을 바탕으로 안전한 학교, 평등한 교사문화, 미리 정하는 학년 업무, 협력을 바탕으로 경쟁이 사라진 학교
18) 협력과 나눔의 학교 문화
교사 - 수업을 중심으로, 교사다모임 활성화, 정책 결정권 갖기, 생활지도
조별로 발표가 끝날 때마다 박수가 이어졌다. 5시 30분 끝날 예정이었지만 마지막 발표가 끝나고 나니 10분이 지났다. 그래도 이렇게 끝낼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예정대로 추첨을 통해 참가자들에게 경품을 드렸다. 경품은 발표자와 진행자들의 책을 5권씩 미리 준비해 두었다.
그런 다음 무대 위 현수막을 내리고 참가자들을 모두 무대로 불렀다. 다함께 어울려 오늘의 이 자리를 마감하는 기념사진 한 컷 정도는 남기고 싶었다. 서로 하고 싶은 말이 많았으리라. 정유진 선생님이 “후기를 꼭 쓰자”는 말로 마무리하자는 제안을 했다. 마이크를 잡고 있던 내가 크게 “후기를” 하고 외치자 다같이 주먹을 치켜들며 “꼭 쓰자”는 말로 화답하며 이야기 마당은 끝이 났다.
공식적인 마당이 끝이 났어도 뒷정리가 남아있었다. 누가 뭐라 할 것 없이 다 같이 했다. 그 많은 사람들이 서로 일을 나누니 우리가 처음 왔던 그대로 학교 주변을 되돌려놓는데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7. 다시 화두를 던지며
뒷정리를 마치고도 쉽게 자리를 뜨지 못했다. 삼삼오오 모여 사진도 찍었다. 그렇게 아쉬운 인사를 나누고 우리는 오후 6시 30분이 되어서야 온빛초등학교를 나섰다. 평가회 겸 뒷풀이를 하기 위해 정유진 선생님이 숙소를 예약해둔 인근 펜션으로 자리를 옮겼다. 숙소에 도착하니 수요일밴드 박대현 선생님이 미리 장을 보고 저녁 식사 준비를 하고 있었다. 이 자리는 모임을 준비했던 분들과 발표자들은 평가회를 위해 반드시 참여하도록 하고 일반 참가자들도 함께하고 싶다는 요구가 있으면 자유롭게 참여하도록 밴드를 통해 미리 안내를 했었다. 그렇게 모인 사람은 25명이었다.
정유진 선생님의 사회로 자기소개를 하며 간단하게 소감을 나누었다. 이름도 기억할 겸 말끝에는 “사랑과 정열을 ○○에게”라고 외치며 그렇게 잔을 맞대며 이야기를 나누었다. 서로 처음 만나는 사람들도 있었는데 같은 경험을 한 뒤라서인지 금세 흉허물도 나누는 대화가 오갔다.
분위기가 무르익자 다음 모임에 대한 이야기가 자연스럽게 나왔다. 이번 모임도 겨우 치렀는데 다음 모임이라니? 마치 운동회 끝나자 학예회 하자는 상황이었다. 그래도 달아오른 분위기는 이야기를 치닫게 했다. 나는 조심스럽게 울산을 다음 장소로 이야기했다. 이번 모임에서 참가자가 유일하게 한 명도 없던 지역이니 거기에 힘을 실어보는 것이 어떻겠냐는 제안이었다. 그러나 누구를 주축으로 어떻게 계획할지 어렵지 않겠느냐는 의견이 있었다. 하긴 그렇다.
전북이 어떠냐는 제안이 바로 잇따랐다. 이번 모임을 교육부가 있는 세종에서 했으니 다음 모임은 교육부의 부당한 교육정책에 맞서 소신을 굽히지 않고 교육행정을 펴나간 전북이 좋겠다는 의견이었다. 여기저기서 가을에 전북에서 다시 모이자고 맞장구를 쳤다. 아마 술김이었으리라. 대책 없이 그러자고 대답을 했다. 전북교육감님도 참석을 하는 게 좋을 것 같다는 의견이 있어서 수행비서와 바로 통화를 했다. 그렇게 얼렁뚱땅 다시 다음 모임 날짜가 잡혔다. 삶은 늘 예측불허다.
어제와 오늘 내 페이스북과 밴드에는 모임에 참가했던 이들의 후기가 계속 올라온다. 평가회에서 미처 나누지 못한 이야기들도 온라인을 통해 다시 이어갔다. 생생한 후기를 읽으며 미흡했던 점들도 돌아보게 된다. 단체 사진을 페이스북에 올리며 다음 모임 소식을 전하니 다른 지역에서도 했으면 좋겠다는 댓글이 달린다.
생각나는 대로 주절주절 풀어왔는데 어떻게 이 글을 마무리할지 갑자기 생각이 엉키며 머리가 복잡해진다. 도대체 이 모임의 정체가 무엇일까? 한두 번 이 모임에 참석한 교사들은 왜 이런 흥분을 느끼는 걸까? 정체불명의 이 모임이 계속 이어지기를 바라는 이유는 무엇일까? 다음 모임은 어떻게 해야 할까? 교사들의 교육 이야기는 이제부터 본격적으로 시작이다.
첫댓글 기록 정리까지 하시느라 애쓰셨네요.
현장에 있었던것처럼 공감하며 읽었습니다
쭈욱 가야겠죠. ㅎ
무지 반갑고 좋네요. 10월 17일 모임에는 꼭 참석하도록 할게요.
되돌아보니 매순간 긴장됐던거 같아요...
샘의 내공 대단해요~저도 분발하게 되요. 내년에 저고 서로 나누고 토론하는 지역 연구회를 만들려고 해요. 내가 성장하고 함께 성장하는 연구회가 되도록. 그러려면 더 샘들에게 배워야 하는데.....올해 교육부지원연구회를 했는데 교사의 자발성이 떨어져 끌고가느라 어려웠어요.저ㅔ게 힘좀 실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