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세상>, 2011. 11-12월호.
영원한 등불
맹문재
지난 9월 7일 마석모란공원에서 이소선 어머니의 장례를 치른 지 벌써 한 달이 지났습니다. 세월이 빠르다는 말은 너무나 당연하지만, 지금 이 순간 새삼스럽게 절감합니다. 자리에 함께했던 안재성 선배님께 저는 한 시대가 저무는 것 같다고 말했습니다. 발인 전날 빈소에서 만난 민종덕 선배님과 이한주 시인에게도 말했습니다. 지금까지 어머니가 살아온 시대와 제가 살아가고 있는 시대 사이에는 큰 차이가 있다고, 제가 살아가고 있는 시대에 비해 어머니가 살아오신 시대는 너무나 험난했다고 생각한 것이지요. 물론 이와 같은 저의 인식은 조심할 필요가 있지요. 이 시간에도 구조 조정, 해고, 징계, 탄압 등으로 고통과 불안을 느끼는 노동자들이 얼마나 많은가요. 그러니 지금도 분명 어려운 시대이지요. 그렇지만 어머니가 살아오신 시대는 참으로 험난했던 것이 사실이지요. 이와 같은 생각을 하고 있자니 제가 한 일이 아무것도 없다는 생각이 듭니다. 정말 부끄럽습니다. 어떻게 하면 역량을 키우고 용기를 갖고 그리고 실천할 수 있을지, 어머니 앞에서 그저 고개를 숙입니다.
저는 이소선 어머니를 『어머니의 길』을 통해 먼저 뵈었습니다. 민종덕 선배님이 구술해서 정리한 이 책은 저에게 많은 가르침을 주었습니다. 저는 지금도 이 책에 들어 있는 어머니의 일화들을 기회가 있을 때마다 사람들에게 소개하고 있습니다. 자식을 잃고 절망하는 한 어머니의 모습뿐만 아니라 한 알의 밀알이 되고자 헌신한 전태일 열사의 정신을 살리고자 분투하는 어머니의 모습이 선명하게 들어 있습니다. 어머니의 그 지혜롭고도 담대한 말씀과 행동들이 어디에서 나왔는지, 아직도 궁금하고 믿을 수 없어 놀라고 있습니다.
아마도 이소선 어머님의 말씀과 행동들은 자식을 살리려고 하는 사랑에서 나왔을 것이겠지만, 저는 솔직히 깨닫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만큼 저는 투철하지 못하고 나약한 것입니다. 그렇지만 저는 어머니가 아들의 죽음을 둘러싼 온갖 회유 앞에서 “앞으로 내가 뭘 해야 할 것인가”라고 고민하는 모습을 가슴속에 담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돼먹지 못한 놈의 새끼! 지금 어디다 대고 무슨 말을 하는 거야!”라고 호통 치는 모습도 담고 있습니다. 어머니의 그 모습들을 품고 있는 한 저는 제 길을 속이거나 포기할 수 없을 것입니다. 어머니, 올바르고도 당당하게 걸어갈 수 있도록 저를 이끌어주세요.
저는 이소선 어머니를 18년 전인 1993년 전태일문학상을 받는 시상식에서 처음 뵈었습니다. 어머니가 대단한 분일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막상 뵈니 이웃집 어머니와 별반 다르지 않았습니다. 수수한 인상과 말투에 열사의 어머니란 인상은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었고 고마워하시면서 챙겨주려고 하셨습니다. 어머니의 그와 같은 모습은 돌아가시기까지 늘 한결같았습니다. 만나는 사람들 누구든지 걱정해주시고 다독여주시는 어머니셨습니다. 자주는 아니었지만 뵐 때마다 “맹 선생”이라고 예를 갖춰 부르시던 어머니의 다정한 목소리를 잊을 수 없습니다. 그리하여 저는 어머니가 성자와 같은 인품을 지닌 분이라고 생각합니다. 장기표 선생님은 『전태일평전』의 발문을 비롯해 여러 글에서 전태일 열사를 성자로서의 인품과 조건을 갖추었다고 평하셨는데, 저는 이소선 어머니 역시 그와 같다고 생각합니다. 진정 어머니가 계셨기에 전태일 열사의 정신이 묻히지 않고 오늘날까지 사람들의 가슴속에 살아 있으며, 한국의 노동운동과 민주화운동이 지하 감옥에서 벗어나 빛을 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엄혹한 군사정권 시절부터 지금까지 힘없고 억울한 노동자들을 위해 장소와 때와 상대를 가리지 않고 온몸으로 투쟁하신 어머니, 그러면서도 한없이 다정하신 어머니, 당신과 같은 분이 바로 성자가 아니겠습니까. 아마도 어머니와 같은 분을 제 인생에서 만나기는 어려울 것입니다. 어머니께서 보여주신 높은 도덕성, 통찰력, 기억력, 담대함, 지혜로움, 그리고 다정함 등은 모두 저의 등불입니다.
이소선 어머니께서 쓰러지셨다는 소식을 듣고 찾아뵙지 못해 매우 안타깝고도 죄송스럽습니다. 중환자실에 입원해 있어 면회가 어렵다고 해서 찾아뵙기도 어려웠지만, 살아가는 일이 바쁘다는 핑계로 미루었습니다. 그리고 막연하게 어머니께서 일어나실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만큼 저는 어머니를 강하신 분으로 여기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렇지만 저의 안일함을 책망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소선 어머니를 뵙게 된 후 인연을 맺게 된 많은 분들이 저에게는 소중하기 그지없습니다. 앞으로 그 분들과 함께 어머니의 사랑을 조금이나마 실천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어머니께서는 제가 나아가는 길의 영원한 등불입니다. 결코 꺼지지 않고 흔들리지 않고 지치지 않습니다. 어머니,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