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가 끝났다. 출구조사에서 한나라당, 친박연대, 선진자유당, 무소속 연대 등 보수연맹체의 콜드게임 승으로 4.9총선은 끝났다. 지난 6년간, 6번의 선거. 대통령 선거 2회, 지방자치단체장 선거 2회, 2004년 총선과 2008년 총선 두번 이렇게 모두 여섯번의 선거가 있었다. 막상 투표도 하지 못하면서 마음은 좌로 걸었고, 전문지식이나 정치적 식견이 부족함에도 불구하고, 글을 쓰게 되었다. 처음에는 노무현 폭풍 속에서 간들간들했던 진보 촛불을 꺼뜨리지 않기 위해서, 그렇게 소박하게 시작했다. M의 권유였다. 그러나 내 자신이 어느새인가 진보의 늪에 빠지고 있었다. 기술적인 문제만 놓고 본다면, 포스트 포디즘 시대의 특징인 시간과 공간의 압축과 축소로 인해서, 16시간의 비행시간은 겨우 버퍼링 2~4초 차이만을 낳고, 나의 고향나라와 동시대 동시간을 살 수 있다.
서설이 너무 길어져버렸다. 난 현장에서 선거운동을 한 사람이 아니므로 4-9총선을 평가할 자격을 갖추지는 못했다. 내가 한 일에 대해서 그 와중에서 내가 느낀 바를 이야기하는 것에 국한시켜야겠다. 굳이 사회학 이론을 들먹이지 않더라도, 관찰자 시점과 참여자 시점 중에서, 지난 30년간 운동권은 '객관 분석'에 익숙해져 있어서, 주로 '관찰자 시점' 글쓰기에 익숙해져있다. 정세분석 다음에 행위지침을 내오기 때문이다. 그러나 자기 이야기는 많이 빠져있다. 참여자 관점에서 글쓰기나 말하기는 상대적으로 그 양이 적다. 아니 종종 있다. 주로 전향을 하거나 과거를 고백하거나 변명할 때는 내 독백의 관점을 취한다. (뉴라이트들, 한나라당 민주당 내부 386들) 그러나 정치활동을 하고있는 중간에는 자신의 희로애락 애오욕을 이야기하지 않거나 의도적으로 감춘다.
[생각난 김에 중간 제안] 사실 총선 평가, 모든 후보들, 비례대표들, 그리고 노회찬 심상정 후보, 이덕우 김석준 박영희 대표들부터 '총선 평가' 란에 글을 쓰는 게 일의 순서이다.
다시 내 이야기로 돌아온다. 잊어먹기 전에 간단히 내가 4-9 총선에 참여하면서 느낀 바를 적어보겠다. 다른 당원들이나 지지자들에게까지 이렇게 한번 보자는 정도는 아니지만, 총선 평가 너무 어렵게 생각하거나 형식적으로 정세분석식으로 하지 말고, 그냥 편하게 친구에게 편지 쓰듯이 해보자는 취지이다. 그래서, 예전 학창 데모시절부터 해오던, '희로애락 애 오 욕' 발표하기 글쓰기를 나부터 다시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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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희 (기쁨) 작은 기쁨이라고 해야겠다. 실은 나는 고립되어 있다. 한국의 진보정치를 같이 이야기할 사람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가끔 한국에 전화도 걸어서 물어보기도 하지만, 시간때가 맞지 않아서 그것도 영 힘들고, 바쁜 사람들 붙잡고 물어보는 것도 미안하다. 그런 와중에도, 과거 깨끗한 손, 진보누리, 민주노동당 게시판, 이제는 진보신당 게시판에서, 짧게나마 쪽글로 이야기할 수 있는 게 하나의 숨통이다.
조금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2004년 총선 때에는 민주노동당이 [비례대표 정당 명부제]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해서, 그 문제로 약간 격정적으로 비판적 논조로 글을 많이 썼다. 2008년 총선은 민주노동당과 분리 신당 창당문제로, 2004년에 제기했던 비례대표 후보작성을 제대로 실천할 기회도 가지지 못하고 말았다. 아쉽다. 그러나, 작은 기쁨이라고 한다면, 민주노동당 게시판에 글을 써도 반향이 많이 없었는데, 진보신당에서는 과거 깨끗한 손 시절처럼 (평) 당원들과 그리고 지도부에 있는 당원들과 나란히 대화를 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게 작은 기쁨이었다.
2. 로 (화나고 분통터지는 일, 짜증 등) 이미 게시판에도 몇번 썼다. 심상정 - 손범규, 노회찬 - 홍정욱, 그 한나라당 젊은 보수후보들은 실은 심상정 노회찬과 비교할 바가 못된다. 한나라당이 가지고 기득권 그 핵심 지지층 34~39% 프리미엄, 과거 공화당 민정당 민자당 신한국당 한나라당으로 이어지는 지역구내 통장 반장 아줌마 아저씨들의 파워, 권사님들의 힘은 한국정치 보수의 저수지들이다. 마르지 않는. 감정적 대응은 할 필요없고, 젊은 보수들이 어떻게 자기 밥그릇을 챙기는가를 똑똑이 다시 볼 수 있었다. 이상주의자는 가끔 현실에 뒤떨어질 수 있으니까.
TV 토론에 못나간 거. 인터넷 방송을 제안하고 당에서도 나름대로 노력을 했지만, 역부족이었을 때. 예전 2002년 시절, 방송국에서 불러주지 않아, 항의 방문하러 다닐 때가 생각나다. 시계가 다시 거꾸로 가버렸을 때, 6년간 쌓아놓은 모래성, 파도 한번 몰아쳐 다 쓸려가버렸을 때, 분통 터지는 일이다.
3. 애 (슬픈 일, 눈물나오려고 한 일, 아쉬운 거)
아쉬운 것부터 말하자면, 2000년 이후, 2002년 이후, 늦어도 2004년 이후, 진보진영이 비례대표 후보들에 대한 물색 발굴 작업을 너무 안일하게 해 왔다는 것이다. 2004년 이후 민주노동당이 급속도로 쉽게 늙어버린 이유 (임춘애 현상)는 정치는 큰 밥솥을 만드는 일인데, 지도자들이 자기 밥그릇만 챙기려다가, 큰 밥솥을 만드는 사람들을 당 안으로 끌여들이지 못했기 때문이다. 새로운 진보정당은 빅리그여야 한다. 동네축구는 자기 가족들이랑 하면 된다.
정당지지율 3% 아슬아슬하게 못 넘긴 거 진한 아쉬움이었다. 그 잔인한 개표과정 마지막 2~3시간. 끝내 3%를 넘지 못하고 게임이 끝나버렸을 때, 마지막까지 기대를 놓치 않았는데, 한국과 시간이 달라서 자다 깨다 몇번을 반복하다가, 마지막 침대에 누워 혼자 맥 놓고 자버리다.
심상정 후보는 1 주일만 더 시간이 있었으면 역전도 가능했는데, 노회찬 후보도 몇가지만 더 면밀하게 준비했더라면 당선이 가능했을 터인데 너무나 아쉬운 막판이었다. 첫 지지율 분석 때, 심상정 후보가 10%로 벌어져서, 노회찬 쪽보다 심상정 후보를 위해서 글을 많이 썼다. 손범규에게 밀리는 게 이해가 안되고 받아들이기도 힘들었기 때문이다.
(아쉽다) http://www.newjinbo.org/board/view.php?id=discussion&page=127&no=2075
마음이 짠 했던 것은, 비례대표 2번 이남신 후보가 막판에 기도하는 모습이었다. 내 마음이 조금 안좋았던 것은, 선거 막판에 비례대표 지지율이 3% 전후를 맴돌자, 김석준 대표가 괴롭게 술마신 사건이다. 부산에서 김석준은 아는데 진보신당은 모른다는 것이다. 18개 선거구에 2개 나온 부산의 갈매기들이 다 울 일이 아닌가? 친박연대 양정례, 창조한국당, 민주당, 한나라당 비례대표들에 비해서, 김석준, 이선근을 비롯한 진보신당 후보들이 훨씬 낫지 않은가? 인류 역사가 늘 그랬다. "사람은 괜찮은데 신분과 가문이 비천하다고. 사람은 괜찮은데, 당이 소수당이라고"
힘이 없어서 세상살이를 하다 슬퍼지는 것이다. 우리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개표방송을 보고 있는 당원들의 표정이 참 짠했다. 언론에 주목도 받지 못하면서도 밑바닥을 치고 다닌 지역구 후보들 마음은 참 어떠했을까?
4. 락 ( 즐거운 일, 지속가능한 기쁨) 나에게 인터넷을 통한 정치참여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자유와 어떤 이름모를 해방에 대한 욕구는 늘 있었다. 지극히 개인적인 것부터 시작해서. 자기 인생은 늘 되풀이되는 것 같다. 주류를 거슬러가는 인생 길, 그게 습관화되어 이제는 거슬러간다는 느낌이 많이 탈색되었다.
배움이다. 그게 락이다. 새로운 사실들을 대해서. 동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이 느끼는 희로애락 애오욕에 대해서. 선거도 그 참여도 나에게는 배움의 장이다. 난 20대가 보수화되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88만원 세대는 정치적으로 성공할 수 없는 프로젝트이다. 소크라테스시절 돌 비석이 발견되었다. "요새 젊은 넘시키들이 싸가지가 없어. 공부는 안하고 쾌락을 추구하고..." 지금 20대, 10대는 자기 눈으로 세상을 보고, 시비지심, 수오지심을 가지고 살아갔으면 좋겠다. 그게 출발점이어야 한다. 정말 좋은 정치적 선배가 있어서 배울 게 있으면 같이 따라서 배우고, 흉내는 금물이다. 독재정권 하에서 생긴 시각과, 자유민주주의 시절에 청소년기를 보낸 사람들은 다르다. 같은 종족이 아니다. 그들의 시각이 보는 행복요소들에 대해서 더 진지하게 연구해야 하고 공감해야 한다. 정치가 먼저 나가면 오히려 성공하지 못할 확률이 높다.
맹자가 좋은 말 한 게 있다. 군자 (새로운 지도자)가 내세우지 말 사항 4가지. 돈이 많다고, 아는 게 많다고, 친구들 (네트워크)이 많다고 = 권력이 높다고, 마지막이 나이가 많다고 던가?
내가 제안도 많이 하고, 어쩌면 현실적으로 많은 도움도 되지 않으면서 말이다. 돌이켜보면 한국현실에 대한 배움이 더 많은 것 같다. 거리에서 데모하고 민중봉기식 운동이 더 쉬운 일인지 모른다. 새로운 배움이란 정당과 의회 안에서 싸워야 하는 현실 때문에 발생한다. 지난 여섯 번의 선거에서 느낀 것은 세상은 참으로 넓고 할 일은 많고 공부는 끝이 없다는 것이다. 경계도 없고. 나의 무지를 누가 볼까 두렵다. 이런 윤리적인 태도가 아니라, 현실적으로 객관적으로 배워야할 게 많다. 다만 과거 수입업자 이론가를 벗어나 이제는 주체적인 창조 생산자가 될 수도 있을 그런 단계에 우리들이 오고 있는 것은 아닌가 생각해본다. 비록 인터넷이지만, 내가 배우고 있다는 거, 새로운 문제의식들을 포착하고 있다는 것은 내가 살아있다는 증거일 것이다.
5. 애 ( 좋아. 사랑은 너무 큰 말. 야 그거 좋다 정도로) 내 혼자 지은 말이 있다 "행복한 자살택" 이번 총선 참여는 그렇다. 어떤 인연의 질김으로 인해서 여기까지 온 것 같다. 진보신당 사람들이 표정이 밝아서 좋았다. 총선 결과도 중요했지만, 그 과정에서, 어려운 조건 속에서도 신이 나서 자발적으로 흥겨워 하는 모습이 '야 그거 좋아' 그 덕분에 나도 노래도 틀고, 아마추어 동영상도 만들게 되었다. 사람들의 잠재능력은 실은 무한하다. 정치라는 것도 그러한 잠재력들과 가능성을 흔들어 깨워주는 거 아닐까?
평등이란, 경제적인 것만 있는 게 아니다. 너무나 쉽게 타인에 대해서 평가해버리는 거, 그 단순한 잣대들은 우리가 평등하게 살아가는 것을, 다시말해서 평등하고 공평하게 나의 잠재력을 계발하는 것을 방해한다. 내가 참을 수 없는 게 바로 이거다. 미시적 공간에서 의병장이 될 수 밖에 없다. 숫돌을 허리춤에 차고 칼을 슥슥 갈지 않을 수 없다. 만약 자본주의 체제가 이러한 잠재력과 가능성들을 잠에서 깨워 준다면 난 자본주의를 기꺼이 품에 안겠다. 그게 가능할까? 아주 쉽게 사람나고 돈나지 돈나고 사람나는 게 아니다. 맑스의 비판정신을 한 문장으로 말하면 이렇게 된다. 물신주의 (Fetischismus)의 출발점이 바로 인간과 인간이 만들어낸 자기 창조물 사이가 뒤바뀌어 버리는 것이다. 내가 만들어놓은 물건, 제도, 법, 사회질서가 나를 지배하는 것이다.
표정들이 다양하다는 말은, 자기 잠재력들의 다양한 측면들이 표출된다는 것이다. 봇물 터지듯이. 봄날에 이덕우 춤 추듯이.
6. 오 (아 이거 싫다) 가족들에게 진보신당 13번 왜 찍어야 하는가 설명해야 할 때, 특히 아버지는 강연 30분 들어줘야 한다. 너희들은 너무 이상적으로 살고 있다부터 시작해서, 교육문제에 이르기까지. (특목고 외고 없애야 하는 이유 등등) 집나간 자식이 부탁하니 안 들어줄 수도 없고. 그런데 다음에는 이런 고역이 줄어들었으면 한다.
7. 욕 (새로운 욕구, 희망) 이제 정치는 어쩌면 지루한 서비스 직종일 수 있다. 비판 저항 혁명적 낭만주의 + 생산적, 대안적, 창조적인 실천이 결합되어야 한다. 전자는 80년대 가치였다. 후자는 사실 어렵다. 열린우리당 386들이 깨끗이 K.O패 당한 이유가, 정치는 어쩌면 지루한 공적 서비스 제공이라는 사실을 몰랐기 때문이다. 알아도 그 능력을 구비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들의 패배는 예고된 패배노선이었다. 자기들이 매화 나무가 아니고, 실은 동백꽃인데, 2월말 이상 고온으로 확 피어올랐다가 꽃샘 추위로 우수수 떨어져지듯이.
사회봉사도 제대로 한번 안해본 사람이, 진보정치, 진보행정 할 수 있을까? 참 난 부족하구나. 사실 무능에 가깝다. 글이야 읽고, 사람들이 뭐가 필요한지 이해는 하지만, 해결능력은 없다. 물론 내 역할이 그런 일선 정치가가 아니기 때문에 변명거리는 있지만, 그래도 무능한 것은 무능한 것이다. 심상정 경기 고양 덕양 갑, 아 내가 그렇게 유시민이 싸놓고 간 똥밭에 대해서 비판했지만, 거기에서 실제 살아야 하는, 초등학교가 없어서, 고등학교가 물짜다다고 불평하는, 서울 출퇴근이 고역이 일상생활인 그 주민들을 어떻게 만나고,그 문제들을 다 해결할 수 있을까? 한 지역에 뿌리를 내리는 데 걸리는 시간, 그 노고, 지치지 않은 열정과 무던한 봉사 정신이 요청된다. 진보 정치, 남을 도와주는 게 즐거운 사람, 억지춘향이 아니라, 그게 살아가는 재미로 아는 사람들이 해야 하는 것 아닐까? 그래야 10년, 15년, 20년 앞으로 놓여진 그 무던한 세월 속에서, 2월 말 눈꽃에서 피는 매화 향이 될 것이다. 그렇게 매실은 열린다. 내가 고향집에서 그 매화향에 도취된 이유이기도 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