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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키공화국 건국자·초대대통령(1923∼38). 살로니카(지금의 그리스 테살로니케) 출생. 케말 아타튀르크(Atatu
rk)라고도 한다. 1905년 육군대학을 졸업하고 참모대위로 다마스쿠스의 제 5 군에 배속되어 조국과 자유위원회를 결성하였다. 1907년 살로니카의 제 3 군으로 전속되어 통일과 진보위원회(청년터키당)에 가입하였다. 그 뒤 조국과 자유위원회는 소멸되었고, 1908년 오스만제국의 제 2 차입헌체제가 성립되었으나 이듬해 이스탄불에서 3·31봉기가 일어나자 곧 행동군을 편성하고 참모장으로 이스탄불 진압에 출동, 이스탄불 시민에게 보내는 포고문을 작성하여 반란의 확대를 막았다. 그러나 군인의 정치불개입원칙을 주장하여 통일과 진보위원회의 중앙위원회와 대립, 참모장에서 해임당하였다. 11년 이탈리아의 트리폴리침입에 대항하여 저항전에 참가하였다. 제 1 차발칸전쟁이 시작됨에 따라 참모본부에 배속되었고, 발칸전쟁이 끝난 뒤에는 소피아주재 무관이 되었으며, 제 1 차세계대전 발발 이후에도 얼마동안은 그 임무를 맡았다. 15년 미편성 사단장으로 임명되어 단기간 내에 편성을 완료하였고, 차나칼레에서는 영국·프랑스연합군의 침입을 저지함으로써 국민적 영웅이 되었다. 카프카스전선에서는 러시아군을 격파하고 아나톨리아 동부의 비틀리스를 탈환한 뒤 파샤(장군)지위로 승진하였다. 16년 시리아 방면 군사령관으로 알레포 북방에서 전선을 구축하였으나 패전으로 끝났다. 연합군함대의 이스탄불 입항을 보고 19년 5월 삼순으로 탈출, 터키 분할을 승인하는 다마트 페리트파샤내각 결정에 반대하고 조국해방전쟁을 시작하였다. 에루주룸과 시바스회의를 거쳐 20년 앙카라에서 대국민의회를 소집, 술탄정부가 연합국과 체결한 세브르조약을 인정하지 않았다. 그리스군의 아나톨리아 침입을 사카리아전투에서 격파하고 무단야에서 연합군과 휴전하였다. 22년 술탄제를 폐지하였고, 23년 연합국과 로잔조약을 체결하고 터키공화국의 성립을 선언함으로써 초대대통령이 되었다. 칼리프제의 폐지, 민법 개정, 태양력·미터법 채용, 문자 개혁 등 각종 제도 개혁을 단행하였다. 또한 농업·공업 등 산업 진흥에도 힘써 근대적 터키공화국의 기초를 완성하였다. 34년 성씨법의 제정으로 대국민의회로부터 아타튀르크(國父)라는 성이 수여되었다. |
첫댓글 출처는 화폐수집 길라잡이 방과 야후 백과사전입니다...^^...오랜만에 올리네요...요즘에 학교에서 내준 과제물도 많고 그림도 그려야 하고 그래서 자주 못 올리네요....이해해주세요...*^^*...남일님 언제 한 번 인물도안 정보 올려주세요...^^&...저번에 올리실 때는 물가도 올려주셔서 많은 도움이 됐습니다.
네.. 항상 보면서 미안한 마음입니다. 이 게시판은 제가 만들었는데, 업을 못하고 있어서 볼때마다 죄송.. 시간나는대로 하나씩 올리겠습니다. ^^ 즐수~~~~~
좋은 게시물이네요. 스크랩 해갈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