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전주비빔밥
전주 비빔밥은 조선시대 감영 냉의 관찰사, 전주판관 등이 주로 즐겼고 전주성 내외의 양가에서 큰
잔치나 귀한 손님을 모실 때 주로 먹으면서 발전하게 되었다. 그래서인지 전주 비빔밥은 유난히 화려하다.
노란 유기그릇에 담아 나오는 전주 비빔밥에는 녹두묵을 노란 치자물로 물을 들인 황포묵을 비롯하여 갖은
야채와 나물 등 30여가지의 재료가 쓰인다. 여기에 싱싱한 육회가 들어가면 제대로 된 전주 비빔밥이 완성된다. 나오는 반찬만도 적게는 10개에서 20개가 넘는다. 전주하면 먼저 떠오르는 것이 비빔밥이 아니던가.
전주에 왔다면 꼭 한번은 먹어보고 가야 직성이 풀리는 음식이 바로 이 비빔밥인 것이다.
2.견훤왕궁지
주소 전북 전주시 완산구 교동 산 9-1
900년에 견훤에 의해 이곳 전주에 도읍을 정한 후백제 왕궁 터로 현재까지 그 흔적이 남아있는 곳이다.
(견훤의 건국설화)
옛날 광주 북촌에 한 부자가 살았는데 그에게 아름다운 딸이 하나 있었다. 딸이 아버지에게 아뢰기를 밤마다 자색옷을 입은 남자가 침실에 와서 자고 간다고 하자 아버지가 그 남자의 옷에 실을 꿴 바늘을 꽂아 두라고 일러서 그 딸이 말대로 했는데, 이튿날 따라가 보니 북쪽 담 밑에서 실끄트머리가 발견되었는데, 바늘은 큰 지렁이의 허리에 꽂혀 있었다. 얼마 후부터 그딸에게 태기가 있고 후에 아들을 낳았다. 15세가 되자 스스로 견훤이라 이름하고 900년에 후백제를 건국하여 완산군(현 전주)에 도읍을 정했다.
3.남고사
주소 전북 전주시 완산구 동서학동 724
남고산성 내에 있는 사찰로 신라 문무왕 8년에 명덕화상이 창건하였고 임진왜란 이후
선종계의 사찰이 되었다.
고덕산 산자락에 위치하고 있어 고덕산남고사로 불리고 있는 이 사찰은 남고연국사가 있었던 자리이다.
남고연국사는 신라문무왕 8년(668)에 명덕화상이 창건하였다고 한다.
연국이라는 명칭은 나를 편안하게 한다는 의미로 산성사찰에 많이 사용되었던 명칭이라고 한다.
남고사를 호위하듯 둘러싸고 있는 남고산성은 능선을 따라 억경대와 만경대, 천경대 등 세봉우리가 있다.
4.동학혁명기념관
주소 전북 전주시 완산구 풍남동3가 76-2
동학혁명 100주년 기념사업으로 숭고한 혁명정신을 기리기 위해 세워진 기념관으로
상설전시장과 기념관으로 구성되어 있다.
4. 서고사
주소 전북 전주시 덕진구 만성동 산84
전주시 팔복동 2공단에서 이서행 도로로 2km 지나 전주시 서쪽 황방산 방향으로 500m 산중턱에
위치하고 있으며 후백제 견훤이 완주에 도읍을 정하고 왕 즉위시(908년)에 명덕화상에 의해 창건되었다.
5.호남제일문
주소 전북 전주시 덕진구 여의동
전주 인터체인지를 지나 전주 초입에 들어서면 호남제일문이란 현판이 걸린 일주문이
손님을 반갑게 맞이한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일주문인 호남제일문의 현판은 강암 송성용선생의
글씨로 전주의 과거에 대한 자존심과 미래에 대한 포부를 잘 나타내 주고 있다.
6.한옥마을
주소 전북 전주시 완산구 교동
예향 전주의 풍류와 멋을 한눈에 느낄 수 있는 한옥마을은 풍남동과 교동 일대에 걸쳐 있다.
특히 오목대에 서서 보면 전통과 현대의 조화를 한 눈에 볼 수 있다.
이곳에 위치한 학인당은 전통 기와집의 화려함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으며 전통문화센터, 한옥생활체험관,
전통술박물관, 공예품전시관, 명품관 등의 시설이 있으며 인근에는 국가문화재로 지정된 전동성당과
초록바위 등 천주교 성지가 많다.
7.풍남문
주소 전북 전주시 완산구 전동 83-4
지정번호 보물 제 308호
지정일자 1959. 12. 18 지정
전주를 상징하고 있는 풍남문은 원래 전주부성의 4대문 가운데 남문으로 고려 공양왕 원년인
서기 1389년에 전라관찰사 최유경이 전주부성과 함께 창건했다고 한다.
이 전주의 남문은 조선 5백년의 역사 명맥을 잇는 수도 한성부의 상징적인 숭례문인 남대문과 같은
형태의 특징을 보이고 있다.
건축양태는 조선 후기의 문루 형식으로 비교적 잘 보존되어 있는 형태로 지목되고 있다. 원래 도성이나
읍성, 산성 등은 으레 성문이 있기 마련이고 그 위에 문루를 세우는 것이 중요한 형식이자 관례로 되어 있다.
그러나 조선조 선조 30년(1597)에 당시 성내를 휩쓴 정해년 대화로 불타버려 그해 전라관찰사 홍낙인이
증건했지만 종전처럼 3층루가 아닌 현 모습으로 수축하여 이때부터 풍남문이라 불렀다.
1905년 조선통감부의 폐성령에 의해 전주부성 4대문중 풍남문만 제외한 3대문이 동시에 철거되는 수난을 겪었다. 1978년 문루 보수과정에서 옹성의 기단이 풍남문 홍예문으로부터 12m 지점에서 발굴됨에 따라 이 기단대로 연장 97.5m의 여담쌓기와 치석 6,856개로서 옹성 1,933㎡를 축조하여 복원하였다.
풍남문의 누대를 겸한 석문은 성벽을 따라 안쪽으로 내밀게 구형을 쌓고, 이 석축 중앙에 통로를 뚫고
통로 내외면에 무지개끝 석물을 쌓아 윗면에 문루를 설치한 것이다.
이 누대는 너비는 동서 23.6m, 남북 10.6m이며 높이는 17.2m에 이른다. 문루의 서편에는 종각이 있고
좌편에는 포루가 있었다. 문루는 2층의 팔각지붕인데 정면, 측면이 모두 3칸이고 윗층의 정면은 3칸이나
측면은 1칸이다. 1980년 종각과 포루, 풍남문 바깥쪽 출성인 옹성을 복원하여 현재의 모습을 찾았다.
8.경기전
주소 전북 전주시 완산구 풍남동3가 102번지
지정번호 사적 제339호
조선을 건국한 태조 이성계의 대표적인 유적이다. 풍남문에서 동쪽으로 150m 쯤 가면 울창한 숲속에
고색이 창연한 경기전이 나온다. 사적 제339호로 지정된 경내에는 보물 제931호로 지정된 이성계 어진(왕의 초상화)과 유형 문화재 제16호로 지정된 조경묘가 있다. 조선왕조를 창업한 조선 태조의 영정을 봉안하기
위하여 태종 10(1410년)에 창건하였다.
이곳에 봉안한 영정은 임진왜란과 정유재란 그리고 병자호란 등 전화를 피해 아산과 묘향산,
적상산 등으로 옮겨 다니다가 1614년 경기전이 중건되어 다시 돌아왔으며 동학혁명 때는
위봉산성으로 피난시켜 병화를 면할 수 있었다.
경기전에 인접한 북쪽에 전주 이씨의 시조인 이한공과 시조비의 위판을 봉안한 조경묘가 있다.
조경묘는 영조 47년에 창건하여 영조가 친히 위판을 썼으며 동학혁명군이 전주부성에 입성할 때
태조의 영정과 함께 위봉사의 행궁에 옮겼다가 7월에 다시 전주로 옮겨 놓았다.
주변에 풍남문, 전주객사, 한벽당, 전주향교, 오목대, 이목대, 남고산성 등이 있다.
9.덕진공원
주소 전북 전주시 덕진구 덕진동2가 1314-4
전주는 마한시대 이래 호남지방에서 규모가 큰 고을로 그 이름은 마한의 원산성에서 유래했다.
40여년 간 후백제의 수도였으며, 조선시대에는 이성계의 선조가 살았던 고향이라는 이유로
완산유수부로 개칭되기도 했다.
전주에서 볼거리로 강한 인상을 받게 되는 것 중의 하나가 덕진공원에 피는 연꽃이다.
그 만큼 덕진공원 연못은 전주의 명물이다. 전주 IC에서 시내로 들어가는 팔달로변에 위치한 덕진공원은
고려시대에 형성된 자연호수가 1978년 4월 시민공원 결정고시에 의거, 도시공원으로 조성되었고
취향정과 더불어 유서깊은 곳이다.
4만 5천평의 경내에는 남쪽으로 3분의 2를 차지하고 있는 연못과 북쪽의 보트장을 동서로 가로지른
현수교가 그 사이를 양분하고 있다. 그윽히 풍기는 연못중앙으로 아치형 현수교를 거닐면서 한없는
시정에 젖어볼 수 있다. 특히, 대대적으로 정비공사를 하여 1998년부터 재개장한 공원의 특색은 마운딩
시공으로 향촌의 작은 숲(언덕)을 연상케 하고, 전통 정자와 창포늪을 조성하여 역사성을 극대화하였고
또한 인공폭포와 목교를 설치하여 자연친화시설로 시민의 정서에 맞도록 조성하였으며 단오절에는
연못물로 부녀자들이 아침 일찍 머리를 감고 한해 건강을 기원하는 단오 창포물 잔치로도 유명하다.
또한 이 덕진공원 안에는 "어린이 헌장", "신석정 시비", "김해강 시비", "전봉준 장군상" 등 9개의 석조 기념물이 조성되어 연꽃 향기와 더불어 이곳을 찾는 이들에게 전주의 정취를 안겨주는 문화공간이 되고 있다.
10.전주향교
주소 전북 전주시 완산구 교동 1가 26번지
지정번호 사적 제379호
고려시대에 창건되었다고 전해지고 있으나, 명확한 기록은 없고 구전에 의하면 당초 경기전 북편에 있었으며, 경기전을 세우자 학동들의 글 읽는 소리가 시끄럽다 하여 1410년(태종 1년)에 중화산동으로 이전하였다고
전한다.
그 뒤 순찰사 장만과 유림들이 합심하여 선조 36년(1603)에 현 위치로 이전, 현재에 이르고 있으며,
이 곳 배향 위패는 서울의 성균관과 동일하다. 현재 경내에는 대성전, 명륜당, 계성사, 동무, 서무, 장판각,
만화루, 동재, 서재 등이 있으며 대성전은 공자를 주벽으로 50인의 유학 성인 위패를 모시고 있다.
첫댓글 간과 했던것을 알게 되네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