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건축 아파트 단지 이름을 주민 스스로 만들어보자는 아파트단지 ‘작명 바람’이
불고 있다. 이 움직임은 새로 신축될 아파트 단지 이름을 공모해 조합원들 스스로 이름을 붙여 보자는 것. 쉽게 말하자면 ‘향후 내가 살 동네
이름을 내 손으로 지어보자’는 것이다. 이 바람은 현재까지는 강남과 송파 등 몇몇 재건축단지를 중심으로 불고 있지만, 주변 사업장에서도 이 같은
방법을 벤치마킹하면서 단지 이름 자체 공모 방법에 대해 긍정적 반응을 보이고 있어 이러한 추세는 점차 주변으로 확대될 전망이다.
현재 독자적인 단지 이름을 내놓은 사업장은 도곡1차와 잠실4단지가 대표적이다. 이 가운데 도곡1차가 이 같은 독자적인 단지 작명
방안을 최초로 도입했다. 단지 이름의 경우 시공사 브랜드를 당연히 넣는 것으로 돼 있던 기존의 관행과 비교해 보면 파격적인 방법이 아닐 수
없다. 현재까지 독자적 단지 이름을 만드는 것을 보이고 있는 사업장은 하나의 공통점을 보이고 있다. ▲시공사가 두 개 이상인 대단지 사업장이라는
것. 그리고 ▲서울 주요 도심지에 있는 사업장이라는 것이다.
시공사가 두 개 라는 것은 브랜드 또한 두 개라는 것. 그렇다면 향후
재건축아파트 준공 후 시공사 브랜드 부착을 어떻게 해야 할 지에 대해서도 고민해야 할 부분이다. 한 사업장에 삼성과 LG 두 건설사가 시공을
담당하고 있다 가정하자. 두 개 시공사가 각각 50%의 지분으로 시공했을 경우 각자 자기가 시공한 건물에 대해 자사 브랜드를 부착시킬 것인가,
아니면 전체 건물에 대해 삼성과 LG 브랜드를 모두 병기해 넣어야만 할까. 만일 삼성과 LG를 구분해서 브랜드를 부착했을 경우, 향후 건물별로
아파트 브랜드에 따른 가치 차이 발생을 예상할 수도 있을 것이란 우려도 있다.
단지 작명 바람은 서울 주요 도심지 재건축단지에서
진행되고 있다. 독자적인 단지 명칭 도입을 통해 기대하는 것은 인근 단지와의 차별성에 따른 아파트 가치 상승이다. 사실 인근에 있는 아파트들이
거의 우리나라에서 내로라 하는 건설사에서 시공한 것이기는 하지만, 여기 저기에 동일한 브랜드의 아파트들이 있을 경우 빛이 바래기 마련이다.
따라서 시공은 이 ‘내로라 하는’ 시공사에서 담당하지만 단지 명칭은 독자성을 가져 그 차별성을 확대시킨다는 것이다.
단순·획일적인 단지 명칭
서울 같은 대도시의 경우 주변 어디를 보더라도 빼곡이 들어서 있는
아파트단지들을 볼 수 있다. 가히 밀림에 비교되는 아파트단지 속에서 자기가 원하는 아파트단지를 찾는 것은 쉽지가 않은 일이다. 가끔씩 드라마나
영화에 등장하는 소재지만 시골에서 상경한 노부부가 대규모 아파트단지 안에서 아들네 집을 찾기 위해 한바탕 소동을 겪는 내용을 흔하게 볼 수
있다. 물론 드라마나 영화의 특성상 이야기 전개를 위해 다소 과장이 있을 수는 있겠으나 이 같은 상황 설정 배경 자체에 대해서는 그 누구도
이의를 달기 어려울 것이다. 그만큼 아파트라는 주거형태의 특징이 동일 구조의 중첩 및 반복 속에서 만들어져 있다는 근본적 한계점을 갖고
있는데다가 외관에 있어서도 각 단지별로 차이점이 없기 때문이다. 게다가 동일 건설사가 시공했을 경우 동일한 아파트 브랜드를 사용하기 때문에 단지
이름 또한 엇비슷해지는 것이 현실이다.
네모 반듯한 외양만큼이나 몰개성적인 아파트단지 이름은 주요 재건축사업장들이 몰려 있는 서울
일부 지역에서 두드러진다. 조합원들의 표결에 의해 시공사가 선정되다 보니 1군 업체 중에서도 메이저급에 속하는 몇몇 건설사가 시공권을 거의
독식한 상태이다. 따라서 향후 재건축이 이뤄지면 이들 지역은 몇 개 시공사 브랜드만 남아있을 것이다. 아파트 단지 작명바람은 이런 현실 속에서
자신들의 아파트를 차별화하기 위해 도입되기 시작한 것이다.
그동안 아파트 단지 명칭은 개별 건설사 및 시행사 등 업체로부터
정해졌다. 주택부족 현상이 심했던 과거 70∼80년대에는 이들이 대규모로 택지를 개발해 일괄적으로 분양했기 때문에 이런 상황이 발생했다.
소비자는 이미 아파트 단지 명칭이 정해진 곳을 분양을 통해 일방적으로 배분받는 형식이 주류를 이뤘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주택공사에서 지은 주공아파트. ‘주공아파트’라는 단지 명칭은 서울 및 수도권뿐만 아니라 전국 어디에서나 흔히 볼 수 있는 아파트단지 명칭이 돼
버렸다. 주공아파트는 그 특성상 대규모 단지를 구성하는 것이 일반적인데, 대규모 전체 단지는 몇 개의 단지로 나뉘어져 ‘주공아파트 1단지’
‘주공아파트 2단지’ 등의 형식으로 명칭이 붙여졌다. 주공아파트 앞에는 잠실 및 둔촌, 반포 등등 행정 동 이름이나 인근 산, 하천 등 지형적
특성을 고려해 붙여지는 것이 일반적이었으며 현재까지도 주택공사에서는 ‘주공아파트’라는 단지 명칭을 계속 사용하고 있다.
반면,
주택공사를 제외한 나머지 일반 건설사는 주로 자사 명칭을 사용하다가 2000년대로 접어들며 브랜드 아파트 추세가 진행 중이다. 현대건설,
대우건설, 대림산업 등 전통적인 우리나라 대표 건설사들은 각각 자사 이름을 붙여 현대아파트, 대우아파트, 대림아파트 등의 단지 이름으로 아파트를
공급하기 시작했다. 이들 건설사 마크가 들어간 아파트들은 주변의 다른 아파트보다 높은 시세를 형성했고, 이런 현상은 지금까지도 계속되고 있다.
이 같은 상황은 자연스레 해당 건설사들이 내놓은 브랜드로 자연스레 연결돼 현재까지도 아파트시장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물론 별도의 이름을 사용한 경우도 발견된다. 대표적인 곳이 강남의 은마아파트, 개나리아파트, 진달래아파트와 잠실의 장미아파트
등이다. 은마아파트의 경우 한보건설이, 개나리아파트의 경우 삼호기업, 잠실 장미아파트의 경우 라이프주택에서 건설했으나 이들 건설사는 자사 이름을
사용하는 것을 대신해 별도 이름을 사용했다.
우리 단지 자체 브랜드를 만들자
이런 가운데 최근
재건축 단지들을 중심으로 자체 단지 이름을 짓자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
그동안 재건축아파트 시공사는 조합원들의 표결로 인해 대중적
인지도가 높은 몇 개 건설사에서 독식하다시피 했다. 따라서 향후 재건축이 완료되어 입주에 들어가게 될 시점에서는 여기도 저기도 몇 개 아파트
브랜드로 ‘도배’될 것은 불을 보듯 뻔하다. 이로 인해 단지 특성과 상관없이 나중에는 이른바 모 건설사의 ‘타운’이 될 것이라는 우려 섞인
목소리도 심심찮게 들린다.
자체 이름짓기 움직임은 이런 우려를 극복하기 위한 각 조합들의 자구책인 것으로 풀이된다. 별도 단지
브랜드를 통한 특화작업을 통해 인근에 있는 다른 단지와의 차별성을 부각시키자는 의도다. 현재 이런 움직임을 주도하고 있는 조합은 도곡1차아파트
재건축현장. 도곡1차는 일찌감치 ‘도곡 렉슬’이라는 이름으로 별도의 아파트 명칭을 부여하겠다고 밝혔었다. 최근 도곡 렉슬의 로고까지 만들어 놓고
명실상부한 조합 자체 브랜드 아파트가 되기 위한 움직임을 진행시키고 있다.
도곡1차의 바통을 이어받은 곳이 잠실4단지다. 삼성
래미안과 LG 자이가 있지만 ‘레이크팰리스(Lake Palace)’라는 별도의 단지 브랜드를 도입해 최근 특허청에 상표등록까지 해 놓았다.
잠실4단지 김상우 조합장은 “인접해 있는 석촌호수의 이미지를 빌려와 ‘레이크(호수)’라는 이름과 인근에 이미 들어선 갤러리아팰리스 및 타워팰리스
등의 이름을 따서 ‘팰리스’라는 이름으로 조합한 것”이라며 “별도 브랜드로 인해 향후 인근 지역에서 랜드마크 역할뿐만 아니라 그에 따른 주택
가치 상승도 기대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또한 인천 구월 주공의 경우도 ‘퍼스트 시티’라는 별도의 명칭으로 사업이 진행되고
있으며, 화곡1주구도 ‘우장산 현대타운’이란 단지 명칭을 예약해 놓았다. 하지만 화곡1주구의 경우 단지 명칭이 최근 유행하는 이름 사조에
뒤떨어진다는 조합원들의 요구가 거세지며 최근 변경을 신중히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최근 단지 이름에 대한 조합원들의 높은 관심을 대변하고
있는 사례로 꼽힌다.
단지 작명 바람은 이웃 단지에도 급속히 퍼져 나가고 있다. 잠실4단지의 영향을 받아 잠실지구 내 인근
단지에도 별도의 브랜드 요구가 높아지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잠실3단지 조합 관계자는 “우리도 별도 브랜드로 가자는 조합원들의 요구가
높다”면서 “최근 착공을 시작해 아직 약간의 시간이 남아 있으므로 좀 더 검토해 봐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잠실2단지 또한 별도 브랜드 요구가
서서히 고개를 들고 있다. 조합 홈페이지에서 한 조합원은 “인근에 올림픽 주경기장이 있으니 ‘올림픽빌리지’가 어떻냐”면서 다른 조합원들의 반응을
살폈고, “잠실1단지도 있고 하니 좀더 특징적인 부분이 좋겠다”거나 “좀 더 생각해 보자”는 등 다양한 의견을 내놓고 있다.
화곡2주구 조합 관계자는 “아직 구체적으로 논의된 것은 없다”면서도 “향후 회의를 개최해 조합원들이 맘에 들어하는 단지 명칭 도입
논의의 필요성은 느끼고 있다”고 밝혔다. 인천 간석 주공 또한 이 같은 별도 브랜드 도입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조오상 조합장은 “이미 별도
브랜드 도입을 검토하고 있다”면서 “별도 브랜드 및 출입구 조형물 등도 도입해 단지 차별화에 주력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서울의
주요 지역이 별도 브랜드를 마련하는 추세인 것에 비해 수도권 지역 사업장에서는 시공사 브랜드 기입이 오히려 필요하다고 말한다. 별도 브랜드 도입
움직임을 보이고 있는 간석 주공 조오상 조합장도 “우리 단지의 경우 인천 최초로 삼성과 LG가 들어오는 곳이기 때문에 별도 브랜드로 가되,
건설사 브랜드를 명기하는 것이 오히려 주택 가치 상승에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동부 센트레빌로 공사가 진행 중인
서경아파트 유재숙 총무이사는 “수도권에서는 아직까지 대형 건설사 브랜드가 미치는 영향을 무시하지 못한다”면서 “위치 및 지가가 비싼 서울 주요
단지에서는 가능한 이야기일지 몰라도 다른 지역에서도 별도 브랜드로만 가기에는 다소 무리가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물론 사정상
별도 브랜드 대신 건설사 브랜드를 사용하겠다는 곳들도 다소 문제점이 발생할 가능성에 대해 우려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규모가 큰 단지의 경우
대개 몇 개 회사가 컨소시엄을 구성해 시공을 맡게 되는데, 이 경우 재건축이 완료되면 각 동마다 각기 다른 건설사 로고가 들어가게 된다. 이때
A라는 회사에 비해 B라는 회사의 브랜드가 떨어지거나 혹은 훗날 부도나 자금난 등으로 건설사의 이미지가 낮아졌을 경우 같은 단지임에도 가격
차이가 발생하지나 않을까 우려하고 있는 것. 구월 주공 최성준 조합장은 “기존 건설사 브랜드의 가치에 있어 차이가 날 경우 이를 동별로 구분해
어느 동은 H건설, 어느 동은 L건설이라는 식으로 기입할 경우 동 별로 가격 차이가 발생하기 때문에 조합원들이 바라지 않을 것”이라며 “따라서
우리 단지의 경우 건물벽에 퍼스트시티와 현대건설, 롯데건설을 한꺼번에 기입한다”고 밝혔다.
공동사업단에서 자체 브랜드
움직임
현재까지 자체 브랜드 도입을 시행했거나 준비하고 있는 단지들을 살펴보면 한 가지 공통점을 발견할 수 있다. 건설사가
공동사업단으로 구성돼 사업이 진행되고 있다는 점이다. 단지 명칭은 건설사에서도 신경쓰지 않을 수 없는 부분이다. 2000년 이후 각 건설사에서
내놓은 브랜드가 있지만 각 조합에서 자체 브랜드로 갈 경우 자체 광고탑 역할을 하는데 있어 다소 그 효과가 반감될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결국 조합원 입장에서는 ‘특별한 단지’에서 살고 있다는 자부심이 생길지 몰라도 건설사 입장에서는 그동안 공들여 키워왔던 자사의 브랜드가 효용성을
잃게되는 상황을 초래하기 때문에 반갑지만은 않은 노릇인 셈이다.
한편, 조합별로 브랜드명이 아닌 건설사 이름만 병기할 것이라는
움직임도 있어 그동안 브랜드 알리기에 주력해 온 기존 건설사들은 재건축시장에서는 그 효과가 상당부분 반감될 수밖에 없을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대단지의 경우 공동사업단을 구성해 들어가는 상황이 저밀도지구에서 특히 두드러졌는데, 대개 2000세대 안팎의 대규모 단지였기
때문이다. 이 경우 새로 신축될 아파트에 어떤 건설사 브랜드를 넣어야 할지 막상 현실에 부딪혀서 어려움을 겪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한 건설사
관계자는 “공동사업단을 구성해 사업에 참여할 경우 어떤 브랜드를 넣어야 할지 상당히 난감해 진다”면서 “각 건설사 간 다툼도 비일비재한 경우가
많다”고 털어놓으며 공동사업단으로 진행되는 재건축사업에서의 브랜드 배분에 대한 어려움이 있음을 밝혔다. 공동사업단으로 시공하는 각 건설사들은
일정 시공 지분이 있게 되는데 참여 건설사가 자신들이 시공한 아파트에 대해 각 사 브랜드를 기입할 경우 각 동별 간 아파트 가치 차이가 우려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만일, 한 재건축사업장에 S사, H사, D사 세 개 건설사가 공동사업단을 구성돼 시공을 할 경우 각 건설사
별로 자신들이 신축한 아파트에 대해 자사 브랜드를 넣게 될 경우 상대적으로 브랜드 가치를 떨어지는 아파트의 경우 향후 가치 하락이 예상된다는
것이 주변 관계자들의 전망이기 때문. 어쨌든 아파트 단지 작명 바람은 현재까지는 공동사업단이 사업에 참여하고 있는 사업장을 중심으로 불고
있지만, 향후 한 개 건설사가 참여하고 있는 사업장에도 이 영향이 파급될 가능성이 점점 높아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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