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성면으로 근무지를 옮기고 나서 시간이 허용되는 대로 면내에 산재해 있는 문화유적을 한번 탐방해 보아야 되겠다는 생각을 갖고 지난 2월 어느 날 사리 달촌마을 산기슭에 있는 사리석조광배를 찾았다.
처음에는 외견상 자그마한 암자처럼 보이는 데다가 현판도 미륵암으로 되어 있어서 옆에 설치되어 있는 문화재 안내간판을 보지 않고는 이 안에 무엇이 들어 있는지 알지 못할 것 같았다.
마침 내가 찾아간 그날은 문이 잠겨 있지 않아서 빗장을 열고 바깥에서 사진을 촬영하며 관찰할 수 있었다.
지금까지 내가 알고 있었던 식견으로 광배는 불상의 뒷부분을 받쳐주는 형식이라는 생각을 했었는데 광배를 자세히 보면서 느낀점은 광배 그 자체에 부처상이 새겨진 것을 알았다.
그것도 한군데만 음각된 것이 아니라 무려 일곱군데나 새겨져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이렇게 일곱군데 라는 것도 촬영한 사진을 사무실에서 확대하여 자세히 관찰해 본 결과 알 수가 있었던 것이다.
이 광배는 신라시대의 사찰로 전하는 대흥사(大興寺)가 있던 곳에서 출토된 것이라고 한다. 높이 1m, 너비 1.1m의 크기로 중간 부분이 잘록한 물방울 모양이며 머리광배와 몸광배가 표현되었다. 끝 부분의 일부는 파손되었으나 나머지는 비교적 완전하며 새겨진 문양도 뚜렷하다.
광배의 중간에는 불상과 연결되어 있는 구멍이 남아 있다.동그란 머리광배 중심부에는 연꽃무늬와 구슬목걸이를 조각하였고, 타원형의 몸광배에는 덩쿨무늬와 꽃무늬를 새겼다. 머리광배와 몸광배의 바깥부분에는 불꽃무늬를 꽉차게 배열하였고, 경계선에는 구름에 앉아 있는 작은 부처를 대칭으로 조각하였다.
이런 작은 부처는 정상에 1구, 좌우에 각 3구씩 모두 7구를 조각하였다.이 광배는 안쪽, 가운데쪽, 바깥쪽으로 나누어 섬세하고 화려한 무늬를 빈틈없이 표현한 통일신라시대의 특징을 잘 보여주고 있다는 것도 각종 자료를 통해 알게 되었다.
이 광배는 창녕군 계성면 사리 218-1번지에 위치해 있으며 그 가치를 인정 받아 1974년 12월 28일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116호로 지정되어 보존해 오고 있다.
그날 미륵암 내부를 관찰했을 때 느낌은 제사도구가 진설되어 있고 양초를 사용한 흔적이 있는 것으로 보아 아마도 이 사리석조광배를 신봉하는 특정인이 관리하면서 이 곳을 수시로 들락날락 하는 것이 아닌가 라는 의구심이 들었다.
당시에 느낀 사항이지만 앞으로는 문화재 보호를 위해 자물쇠로 잠근 후 군 문화체육과와 계성면에서 각각 열쇠를 보관하고 있다가 관람을 위해 찾아 오면 볼 수 있도록 하는 등 장치를 마련해야 되는 것이 아닐까?
광배는 시멘트 콘크리트 위에 세워져 있었는데 한가지 아쉬웠던 것은 그 주변을 둘러 보다가 바깥에 10여m 떨어진 곳에 기단석처럼 생긴 둥근 연화무늬 둘레석이 있는 것을 보았다.
물론 고증을 거치지 않아 석조광배의 기단석인지는 모르겠지만 만약 맞다면 이렇게 방치해둘 것이 아니라 원래대로 복원해야 하는 것이 아닌가 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그리고 그 주변의 돌담에도 탑신이나 건물의 주춧돌처럼 생긴 오래전 가공된 석재가 논밭의 축대 담장석으로 사용되어 있기도 하여 안타까움을 자아 내게 하기도 했다.
여건이 주어진다면 진입로도 보도블럭을 설치하는 등 정비를 해야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날 촬영한 사리석조광배를 사진으로 한번 보시기 바랍니다.
첫댓글 돌쇠 송흥태님 또 다시 계성면에 석조광배의 문화유적지가 있다는것 알게 되었습니다 지금부터 보존관리가 이루워져야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항상 좋은자료 감사 합니다
이 사리석조광배가 있었던 곳은 지금은 없어졌지만 신라시대때 대흥사라는 큰 절이
있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대흥사의 남아 있는 유물로 그 존재가치가 있습니다만 현재는 관리상태가 다소 미흡하다는
생각이 들어서 앞으로 관리방안을 찾아 보아야 겠다는 의미에서 사진을 촬영해 왔습니다.
가까이 있으도 찾아보지 못한 소중한 유물이라는 사실에
무관심의 부끄러움을 느낍니다.
그래도 광계선생 덕분에 계성면내의 문화유적을 하나 하나 답사하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저 혼자라면 아무래도 찾아 보는 것이 쉽지 않을텐데 가는곳 마다 동행해 주어서 정말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