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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센스뮤직 원문보기 글쓴이: sensemusic
영화 나쁜 피 제작기-(12) 괴물배우 설지윤. 나쁜피 제작일지
2012/08/18 19:47 http://blog.naver.com/skykang777/60169247614 |
설지윤 배우님을 처음 뵌 것은 전체리딩에서였다.
인선의 엄마역을 누구에게 맡겨야 하나 고민하던 차에,
아는 기획사 이사님이 적극 추천을 해주신 분이었다.
여러 드라마와 영화에 얼굴을 많이 비치셔서,
아마 익숙한 분들도 많이 있으리라 생각한다.
사실 첫 리딩때까지만해도,
그분에 대한 큰 임팩트는 느끼지 못했다.
'와... 잘 하시네.'
정도?
엄마역을 맡아주신다니, 나야 너무나 감사할 따름이었다.
<이때만 해도... 잘 몰랐었다, 이분의 진가를>
촬영 3일째, 드디어 그분의 촬영날이 다가왔다.
2시간의 길고 충분한 숙면을 취한 나는,
햇빛에 잠을 깨고자,
펜션 앞으로 나왔고,
거기에 설지윤 배우님이 계셨다.
설배우님은 대본을 들이밀며,
몇몇 감정이 이해가 안된다며 설명을 요구하셨고,
나는 시나리오 쓰면서 느꼈던 감정을 솔직하게 말씀드렸다.
그분은 피곤에 지친 내 얼굴을 안쓰럽게 바라보시더니, 더이상 묻지 않으셨다.
"음.... 알겠어요."
그 특유의 상쾌한 미소를 지으며 설배우님은 일어나셨고,
난 아침밥을 먹기 위해 일어섰다.
오늘도 소세지부침이 있기를 간절히 기도하면서.
그리고, 열 몇 시간이 흘러...
노인요양병원에서의 첫촬영.
이곳은 우리 영화의 제작실장이었던
오수엽 군이 몸을 던져,
심지어 담당 수녀님께 편지를 쓰면서까지 (수녀님께서 감명을 받으셨다는 후문이...)
가까스로 섭외에 성공한 병원이었다.
수엽다, 고맙다^^
원래는 경찰서 씬이 먼저였지만 섭외가 되지 않아 병원씬을 먼저 찍게 된 것이었다.
단아한 표정과 얼굴이 카메라를 들이대자마자,
알콜중독자의 그것으로 바뀌는 순간,
소름이 끼쳤다.
<배우 설지윤. 이렇게 단아한 분이시다>
<영화에선 이렇게.. 변하셨다 ;;;; 놀랍지 않은가!>
어.... 저건 미리 나에게 얘기한 설정이 아닌데?
하지만 놀라기엔 아직 일렀다.
설배우님의 진가는 공원 벤치씬에서 드러났다.
우선, 15분에 육박하는 무자비한 대사량에서도
단 한번의 NG도 일어나지 않았다.
언제 어느 부분을 치고 들어가도,
치밀하게 계산된, 놀랍도록 자연스런 연기가 기계처럼 재연됐다.
공원에서의 설선배님의 연기가
우리 영화에서 백미로 꼽히는 장면 중 하나라 확신한다.
솔직히, 찍기 전엔 가장 두려워한 씬이었다.
인선이에게 자신의 예정된 죽음과 출생의 비밀을 말해주는 씬.
어찌 보면, 영화에서 잔재주를 부릴 수 없는 가장 정직하고 잔혹한 씬.
이 영화에서 일어나는 모든 사건의 발단이 되는 씬이었다.
그 가운데 일어나는 모녀의 날카로운 감정적 줄다리기.
감정적 무게중심이 세 단계로 나뉘어지는 중요한 씬이었다.
비참한 죽음을 앞두고 딸을 도발하려다,
되려 자신의 끔찍한 운명에 울음을 삼키는 이중적인 캐릭터.
인선의 운명을 지옥으로 몰아넣는,
한국사회에서는 흔히 볼 수 없는 아주 비인간적이고, 잔인한 엄마.
그 끔찍한 캐릭터에.
펄떡이는 생명을 불어넣은 배우가 바로 배우 설지윤이다.
칼날처럼 날카롭고 정확한 발성과
예측치 못한 다양한 표정변화,
간헐적으로 내뱉는 옅은 호흡까지 놓치지 않는 디테일한 연기로,
인선의 엄마를 단순히 팔자타령하는 미친 여자로 머물게 하지 않았다.
연민과 분노와 증오와 환멸의 감정을 동시에 일으키게 하는 인물로 완성했다.
그 점에 너무 감사드린다.
원래는 씬 분량이 상당히 길어, 중간에 인선의 마트 씬을 인서트로 끼어넣으려 했던 씬이었다.
하지만 편집할 때 문인대 편집기사님께서 이대로 자르지 말고
쭈욱... 끝까지 가보면 어떻냐는 제안을 하셨다.
씬의 몰입도가 워낙 커서, 잦은 인서트 컷은 방해가 될 거라는 말씀이셨다.
특히 설선배님의 연기가 좋아서, 정직하게 가는 게 더 큰 임팩트를 줄 거라는 말씀도 곁들이시면서.
결국, 문기사님의 말씀이 옳았다고 생각한다.
배우 설지윤.
신인배우 윤주에게 연기의 정석을 가르쳐주신 분.
빠른 시일 내에, 대한민국 최고의 중견배우로 발돋음하실 분이라 조금도 의심치 않는다.
그리고, NG한번 없이 시간을 절약해주셔서,
가까스로 섭외된 경찰서까지 찍게 해주신 고마운 분.
술에 취한 설선배님의 경찰서 씬도 역시 백미였다.
새벽이 밝아온 경찰서에서 한번의 리허설도 없이 모든 촬영을 깔끔히 끝내시고,
쿨하게 아침 해를 맞으며 서울로 떠나셨다.
아마 이 영화에서
그분의 매력은 5분의 1도 발휘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머지 5분의 4을 충분히 기대케하는 놀라운 매력을 선보였다 확신한다.
부디, 많은 관객분들이 영화에서 그분의 매력을 느끼셨으면 하는 바람이다.
[출처] 영화 나쁜 피 제작기-(12) 괴물배우 설지윤.|작성자 강감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