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7월24일 10:00 출발
모두들 들떠 있는 것 같다. 여기 저기서 들리는 웃음소리와 안타까운 한숨 소리....무언가 남겨 놓고 온 아쉬운 표정...하지만 우린 할 수 있을 것이다. 아침에 일어나 어제 쌓아 놓은 짐을 메고 집을 나선다. 비가 주룩주룩 내려 내 게으른 발걸음을 막아선다. 어제 만반의 준비를 다했다고 생각했지만 잊고 온 물건들이 하나, 둘씩 생각난다. 행군 중에 정말 잊고 온 물건들이 나에게 필요할까? 라고 되물어본다
2. 낯선 땅으로의 출발
9시쯤 학교본부에 모여 발대식을 거행했다. 사진 기자와 카메라 그리고 낯선 어르신들...
시간의 흐름과 함께 비도 그치고 맑은 하늘색과 뭉게구름이 하늘과 땅에 있었다. 행사 도중에 쓰러진 우리8조 대원 건태가 다시 내 눈 앞 에서 쓰러지는 것을 보면서 겁이 난다. 그의 신발과 양말을 벗기며 나도 이렇게... 아니 이러면 어쩌지? 하고 두려움과 걱정이 앞섰다. 건태와 희선일 차 타기 전에 보았다. 긴장되고 상기된 얼굴빛이다. 희선이는 원예학과 후배고 각별히 친한 사이라 더 걱정이 된다. 행사하는 동안 아프리카 팀들이 차에다 스티커와 사진을 붙이고 나와 우리대원들을 응원해 주었다. 그들은 나의 분신과도 호현형, 항태형, 병록이다. 호현이형 차에 잔뜩 붙인 글자들 “국토를 포기해라”,“조기 귀가 시켜라” 그리고 실험실 책상 위에서 구해온 여자친구 사진을 크게 붙여서 발대식 내내 시끄럽게 따라 다녔다. 난 창피하기도 했지만 아니 감동했다는 말이 더 맞을지도 모른다. 학교를 한 바퀴 도는 동안 에스코트를 해주었다. 차에 오르기 전 진한 포옹과 악수와 격려를 아끼지 않았다. 사실 울 뻔했다. 우린 사랑하는 것 같다.
그들도 내일 모레면 아프리카 케냐행 비행기에 오르게 된다. 부디 좋은 구경들하고 켐코더에 예쁘게 그들의 도전과 자취를 담아 왔으면 한다. 무사히 돌아와야 할 텐데... 그리고 개인적으로 여자친구가 국토대장정 포기를 바랬다. 하지만 난 그걸 선택하지 않았다. 그녀가 헤어지자는 말을 남겼지만 난 그녀를 믿는다. 속상해 하지만 날 사랑하는 그녀의 맘을 알기에....
3. 7월 24일 오후 초조함
여기는 2차 휴게소인 범양사다. 배가 고프다. 희선이가 걱정이 되어 옆 차에 올라탔다. 다들 자고 있다. 시작도 하지 않았는데 피곤한지... 이 모두 국토대장정이란 배에 올라탄 대원들이다. 제각기 다른 목적과 사연을 가지고 여기에 앉아있다. 날씨가 무지 덥다 계속 이런 날씨가 되면 안 되는데... 전라남도까지 3시 30분만에 온 것 같다. 이 길을 우린 얼마나 걸어야 하는 것일까?
4. 7월24일 아이스 밥
잠깐 잠이 들었다. 성산 휴게소(영암근처)에서 내려 점심을 먹었다. 말로만 들었던 아이스 밥 헉!!
캐더링 회사에서 더운 날씨에 음식이 상할까 걱정이 됐는지 얼린 밥과 반찬을 주었다. 누가 그러더군요 "이런걸 어찌 먹어요?" 지도부에서 "식사도 극기 훈련이야" 누군가 다시 입을 열었다. "입도 극기훈련을 시키나요?" 하하~~ 호호~~*^^* 모두들 한바탕 웃었다. 월출산을 지나며 우리를 반기듯 하늘에서 소나기가 내렸다. 뜨거웠던 아스팔트와 무겁던 우리의 마음을 시원하게 식혀주었다
5. 7월24일 10:40 전야제
저녁은 김치에 물 말아먹었다. 캠프 화이어를 하며 전야제를 시작했다. 이제 정말로 시작을 하는구나 정말 여기가 땅끝 마을인가? 우리는 오늘 여기서 잠을 자야한다. 박까스 팀들이 얼마 전에 이곳에서 출발했다고 한다. 동네 어르신이 우리도 박까스냐고 물으셨다. 고정관념인 듯하다. 바다 냄새와 비린내가 코를 찌른다. 내일 새벽 5시에 기상을 해서 대장정고사를 지낸다 한다. 나도 다짐을 한다. 내가 땅끝 마을부터 임진각까지 가야하는 이유는 임진각이 내개 오지 않기 때문이다. 용범, 진선이와 한 텐트에서 자기로 했다. 밤에 비가 오면 안 되는데 땅이 좋지 않아 배수로를 파지 못했다. 샤워를 못해 꿉꿉하다.
오늘 전야제때 우리 조는 간단히 각오를 했다. 그래서 너무 섭섭했다. 내 이름을 걸고 내 존재를 알리며 가고 싶었는데 조장이 원망스럽다. 토말탑에서 사진을 찍었다. 친구들이랑 가족들이 오늘 TV에서 나를 봤을까?
6. 7월25 새벽 05:00 사자봉 고사
새벽에 억지 잠을 깨어 사자봉까지 걸어가서 고사를 지내고 기념사진을 찍었다. 새벽 남쪽 바다를 보며 8조 파이팅!!이라 소릴 질러 우릴 지켜달라고 빌었다. 대원들은 과연 어떤 각오를 했을까?
아침 식사가 오지 않아 빈속으로 출발을 했다. 오르막이 기다리고 있었다. 얼마쯤 시간이 흐른 후 송호리 해수욕장에서 아침식사를 한다. 고사를 다 지내고 난 후 누군가 수박을 바다에 버렸다. 원래 그렇게 하는 건지? 아님 뭐지? 자연 훼손인가?
7. 7월 25일 9:00 포카리 웩~~
억지로 아침을 먹었다. 물이 없어서 포카리를 물 삼아 마셨다. 송호리 해수욕장의 beach는 good이다.
첨으로 포도당을 한 알 먹었다. 맛이 없다기에 두 눈을 감고 한번에 알약을 삼켰다. 눈앞으로 뻗어있는 바다. 사람들은 없지만 고요하고 조용하다.
8. 7월25일 저녁 9:00 땀띠와 습진
어찌 여기까지 왔는지 모르겠다. 첫날 34km걸었다. 폐교에서 오침을 한 후 다시 걷기 시작할 때 지친 몸과 습진으로 엉거주춤 바지에 똥을 싼 것 같은 걸음 거리로 뜨거운 아스팔트를 걷는 내 모습을 보았다. 한참을 가다가 만난 충북대를 졸업하신 선배가 차에서 내려 음료수를 사주시고 가셨다. 인근의 슈퍼 냉장고에 들었던 모든 음료수를 몽땅 사서 우리에게 건네주고 수고하란 말을 남기시고 떠나셨다. 감개무량한 장면이었다. 얼굴도 모르는 선배인데 동문이라는 이유만으로 이런 선물을 주시다니...
모자를 벗어 내 모자 위에 꽂혀있는 선물 받은 태극기를 보았다. 이것은 아프리카 팀들이 나를 끝까지 지켜보겠다며 손수 만들어 주신 영광의 기념품이다. 이 태극기를 임진각 마지막 땅위에 꽂으리라 내 맘속에 다시 굳은 다짐을 했다.
비가 내려 교실 안으로 숙소를 옮겼다. 한 교실에 3개조가 모여 옹기종기 잠을 청한다. 불청객의 인사가 시작되었다 내 눈앞에 보이는 것만 보아도 100 여 마리의 전투모기떼 한 손에 에프 킬라 다른 한 손엔 대충 잘라 만든 부채..전쟁이 따로 없다. 결국 다른 조들은 운동장으로 나가 텐트를 치고 우리 조만 남게 되었다. 지체할 시간이 없었다 우린 교실 안에다 그냥 텐트를 치고 잠을 청했다. 원칙주의자인 조장은 그냥 교실바닥에 머리를 대었다. 인내심을 시험하고 싶은 건지..? 얼마의 시간의 흘렀을까? 잠을 자다 누가 부르는 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이게 누군가 조장이 아닌가? 작은 베갤 가슴에 안은 채 “ 진태야 !나...나... 들어가면 안돼? 조금만 비켜줘~~ ” 그때 난 웃음이 나서 죽을 뻔했다. 온몸에 작은 묘가 몇 개인가? 자꾸 웃음이 난다.
샤워를 오늘 첨으로 했다. 한 개의 수도꼭지에 60여명의 남자가 나체로 유린당할 줄은 몰랐다
나체로 운동장을 배회할 줄도 난 상상도 못했다. 사실 조금은 집이 그립다 내일도 5:00 기상이다. 오늘 남자들은 엉덩이와 허벅지 그리고 사타구니가 쏠리는 고통을 참아야했다. 사실 죽을 뻔했다. 나도 그랬지만 앞사람들의 뒤뚱뒤뚱 걷는 걸음을 보고가면서 웃음도 났다. 특히 7조 조장 진식이 볼만했다. 오늘 말을 거의 하지 않았다. 여자들은 모른다. 뒤에서 수근수근 대기만 하고 정말 당신네들은 모른다. 남자들의 아픈 상처를 그리고 그 아픔을..... 돌아와서 안 사실인데 몇몇은 노팬티로 걸었다고 한다. 그게 조금 나았다고 한다. 낼도 그러면 나도 그럴 생각이다. 그 고통에 비하면 체면은 아무것도 아니다.
9. 7월 26일 10:40 청수의 아웃
우리조의 맏형인 청수가 내일 합심증(?)이란 병명을 가지고 집에 간다. 청수는 태극기를 드는 기수인데 과다 수분섭취로 인해 콩팥과 심장이 좋지 않게 되었다. 내일 집에 돌아가서 정밀검사를 받은 후 검사결과에 따라 복귀여부를 알 수 있다고 한다. 그렇지만 8조가 아닌 운영팀 소속(물팀장)으로 온다고 한다. 의사선생님이 그에게 행군 포기란 엄명을 내리셨다. 우린 못내 아쉬운 발걸음을 돌리는 그를 보며 안타까운 시선만을 줄 수밖에 없었다. 그는 울었다. 그 역시 자포가 아닌 어쩔 수 없는 포기였기에 큰 덩치에 맞지 않는 눈물을 흘렸다. 참고로 그의 별명은 샤킬오닐, 공룡 등 이런 것들뿐인데...
우린 그의 송별회를 준비했다. 조촐히 차린 수박 한 통과 9조에서 얻은 초코파이3개 그리고 암바사, 용범이가 가지고 온 초를 하나 준비했다. 노래를 불렀다. “우리 처음 만났던 어색했던 그 시간 속에 서로 말놓기가 어려워 망설였지만....” 하여간 맘이 너무 아프다. 이렇게 청수를 보내니까. 분위기는 엄숙해야했지만 먹을 것을 앞에 두고 그럴 수는 없었다. 한마디씩 안타까운 맘을 전한 후에 마지막으로 그의 안타까워하는 마음을 듣고 다시 노래를 불렀다. 난 보았다 고개를 숙이며 잠깐 빛나는 눈을 그건 눈물인 듯 하다. 아직도 잊혀지지 않는다 나이와 덩치에 걸맞지 않던 해맑은 웃음과 표정. 사실 그는 음식을 하나도 먹을 수 없었다. 그를 위한 송별회를 준비하면서 우리가 짜놓은 식순에 “우리를 위해 눈물을 흘린다“도 멘트에 있었다. 그는 모르지만 우린 그 마음을 알기에...그가 다시 돌아오지 않을지도 모른다. 만약 다시오면 맛있는 거 많이 사오라고 말과 함께 송별회를 끝냈다. 그런 말을 했다고 우린 결코 식충이는 아니다. 한번 웃자고 한 이야기 일 뿐이다. 잠을 청하러 텐트 안으로 들어섰다. 근데 자꾸 그가 누워있는 텐트를 쳐다보게 된다. 어떤 느낌일까? 무엇 때문인가? 난 그에게 무엇을 더 해줄 수 있을까?
오늘 노래와 함께 떼어놓았던 가벼운 걸음 거리와 상쾌한 기분 그리고 쏠림이 없었던 컨디션.. 이 모두 이렇게 청수를 아프게 하려고 했던 건지 아니 집에 보낼 려고 그랬던 건지 ...(갑자기 운수 좋은날이 생각난다). 9조에선 예진 대원의 생일 파티가 있었다. 잘 모르는 대원이지만 우린 축하해 주었고 수박 한 쪽을 선물해 주었다. 오늘은 기분이 좋았다가 망가진 날이다
점심 식사후의 낮잠은 더 이상 부러울 게 없다. 오늘밤은 슬픈 영암에서.....
10. 7월 27일 7:00 오바이트 웩~~ 토 질질~~ 느끼 사방
아침에 출발하면서 소금을 한 숟가락씩 퍼먹었다. 분위기가 다 먹는 거였다. 난 너무 순진했나보다 그냥 그걸 다 먹었으니 속이 울렁울렁 느끼 사방...토 질질... 역시10분도 못 가서 다 오바이트를 했다. 지금도 울렁울렁 내가 첨으로 길가에 토했다. 그래도 기분은 좋다. 나중에 영실이도 토했다.(3조 부실이라고 한다). 물론 내 앞뒤에 있는 우리8조원들과 7,9조 대원들도 울렁울렁 거린 다며 궁시렁댔다. 왠지 난 장난끼가 돌았다. 난 오늘 행군 내내 하루종일 “우웩~`욱~~야!! 저기 차에 치어죽은 고양이, 강아지 내장이다, 눈알이다!! 욱!! 토 질질~~ ” 하면서 걸었다. 우리 대원들은 하지 말라고 했는데 난 재미가 나서 계속 하루가 저물어 가도록 했다. 휴게실에 들릴 때마다. 대원들은 화장실로 달려가 줄을 섰다. 자꾸 웃음이 난다. 뭐가 그리 재미있었는지 사실 길거리에 작은 개구리부터 시작해서 크게는 개까지 차에 치어 죽은 것들이 많다. 그들의 시체는 아무도 거두지 않는다. 오면서 청설모가족이 죽은 게 젤로 기억에 남는다. 아빠, 엄마, 아가 셋이 한자리에서 운명을 같이 했다. 심장보(행정학과, 97)가 침을 뱉고 갔다. 나도 따라서 침을 뱉긴 했지만 아직 기억에 남아 있다. 하여간 그들도 하루종일 토 질질~~이다. 그래도 재미난 하루였다
11. 7월27일 11:12 응굽환자
염암을 지나 나주로 가며 쉴 장소를 찾고 있었다. 초등학교 정문을 들어서면서 김희선(원예학과, 00)가 쓰러졌다. 5초 후 우리조원인 오선아(전기전자컴퓨터공학부, 00)도 쓸어졌다. 너무 가슴 아프다. 엄정애(원예학과, 00)한테 정신을 잃기 전에 희선이한테 말을 걸어 보라고 했다.
정애가 울며 내게로 왔다. “오빠! 희선이 자기 이름도 못 말해” 하면서... 나도 눈물이 났다. 죽으면 안 되는데 어쩌지... 어쩌지... 역시 내가 희선이에게 해줄 수 있는 건 걱정해주는 것뿐이다.그 외엔 아무것도 없었다. 조금 있다가 엠브란스에 도착했다. 걱정하지말고 갔다오란 말을 남겼다. 희선이 눈가에 맺힌 눈물... 여기서 그만 둘 것인가? 난 함께 임진각에서 부둥켜않고 같은 감동을 느끼고 싶은데..선아도 울면서 숨을 잘 쉬지 못했다 .숨이 넘어가도록 너무 서럽게 울었다.
희선이랑 재환(원예학과, 96)이네 조원이랑 희선이가 엠브란스에 실려나갔다. 4시에 출발한다고 한다. 선아는 지금 자고 있다. 언제 그랬냐는 듯이...다행이다
12. 7월28 아침 나주 배
노랫소리와 파이팅 소리도 이젠 들리지 않는다. 어제 그 여파가 대원들에게 미치었나보다 나주에 오면서 길거리에 보이는 건 배나무와 나주 배타령이다. 여기 까지 와서 나주 배를 못 먹고 간다면 말이 되겠는가? 그래서 두리번두리번 했지만 결국 우리가 찾은 건 편의점에 있는 사각사각 음료수이다. 꿩 대신 닭이라고 이걸로 해결했다. 우린 “분명 나주 배로 만든 사각사각 일거야!” 하며 믿어 의심치 않는다. 지금도 믿어 의심치 않는다. 우리가 먹은 건 확실히 나주 배표 사각사각 일거다*^^*
나중에 여기 다시 온다면 꼭 먹어보고 갈 거다. 오늘 저녁엔 광주에 도착한다. 우리대원들이 많이 아프다. 화장실이 한 개라서 오늘 아침에 산에 가서 일을 보고 왔다. 수박과 복숭아를 많이 먹어서 그런지...
13. 7월 28일 저녁 5.18광주시민 공원
군에 있을 때 쫄다구이면서 내 아들인 철이가 친구들이랑 왔다. 두 손엔 포도, 사과, 복숭아, 맥주, 콜드, 콜라를 사 가지고 와서 조원들과 먹었다. 제대한 후 26개월만에 만나는 기쁨 좋았다. 무슨 말을 해야할지 너무 긴 시간이 흘러서인지..서먹서먹.... 많은 이야기는 하지 못했지만 마음으로 통하는 무엇인가를 느꼈다. 끝까지 지켜보겠다는 말을 남기고 집으로 돌아가는 아들을 먼 발치에서 바라보았다. 고마운 놈이다.
14. 7월29일 수빈이네 가족 짱
광주 어느 다리 밑에서 쉴 때 800km 통일전망대까지 걷는 가족을 만났다. 그들과 여러 번 마주치며 그들을 알게되었다. 13살 난 여자아이 수빈, 수빈 오빠와 아빠 셋이 걷는다. 헌신적이고 모험적인 아버지 상이다. 너무 존경하고픈 분이다. 수빈이 귀가 빨갛게 익어 있는걸 보면서 원경이가 가슴 아파했다 자기가 쓰고 있던 국토대장정 모자를 벗어주려고 했으니까? 그렇지만 그 모자를 준다는 것은 그녀에게도 엄청난 희생이 필요한 것이다. 여분의 모자가 있었으면 하는 안타까움이 들었다. 어린 수빈이의 행군을 보면서 아프다고 했던 대원들은 창피한단 생각이 들었을 것이다. 역시 사람은 아주 작은 것에서도 배움을 얻을 수 있었다. 비록 그 대상이 아주 작은 아이일지라도...
15. 7월29일 광주통과
광주는 그지 좋은 인상은 아니다. 동강대에서 교문을 통과하지 못하게 한다. 그래서 길거리에서 밥을 먹어 기분이 안 좋다. 지금 25km를 왔다. 죽는 줄 알았다. 이제 10km 남았다. 광주에서 마주친 비싼 차 아저씨 길거리서 주먹다짐을 할 것처럼 욕을 퍼 대신 분... 안타까운 모습이다. 그 한사람이 광주시민을 대표할 순 없겠지만 광주의 나쁜 이미지는 심어주신 것 같다.
16. 7월30일 상처들
오늘은 정말 힘든 날이다. 한 명이 더 탈락했다. 서로 힘드니까 짜증나는 일이 많다. 서로 상처주기 쉬운 육체의 한계 상황이다. 광주와 담양을 지나 정읍으로 간다
반대편 차선에서 손을 흔들어 응원해주시는 담양 시민들이 고맙다.
밖이 시끄럽다. 생일 빵을 하고 있다 운영팀들 중에 누군가의 생일인가보다 정말 보기 좋다. 우리조장 성화 생일이 8월3일이다. 계속 밝은 모습을 간직하길 바란다. 이런 곳에서 맞는 생일 색다른 느낌일거 갔다. 미역국 대신 무엇을 먹을까? 물론 케익도 없을 텐데...하지만 적어도100명이 축하해준다는 것이 다르지 않을까 모두들 각자 자기텐트서 생일노래를 같이 따라 부르지 않을까? 축복받은 생일이다!
당신의 생일을 축하합니다!
17. 7월31일 1:00 인대가 늘어남
발목이 많이 아프다. 인대가 늘어나서 그렇단다. 다리 밑에서 쉴 때 휴가오신 분들이 주신 음식에 감사한다. 그렇지만 2, 3조에서 우리한테 넘겨주지 않은 음료수는 아직도 열 받는다. 비를 5분 정도 맞았다. 그리고 저녁 식사 후 노래자랑 정말 보기 좋았다. 어르신들이 찬물을 끼언긴 했지만 내일은 비가오지 말아야 할텐데 태풍이 온다는 소문이 있으니 큰일났다. 빨래가 마르지 않아 걱정된다. 배낭 뒤에 매달아놓은 묵은 빨래들 언제 마르려고 하는지 이러다간 내일은 노팬티로 갈 것 갔다. 거지가 따로 없다.
18. 8월 1일 휴식
어제저녁에 군악대의 퍼레이드를 받으며 금산초교에 입성했다. 학교 선배님들 중 군단장님이 계셔서 응원해주셨다. 입성할 때 희열을 감출 수가 없었다. 앞뒤에서 울려 퍼지는 힘찬 군가 연주소리가 아직도 내 귓가에 맴돈다. 아침을 먹은 후 우리 조와 9조는 조인해서 개울가에서 놀았다. 지나가는 봉고차를 세워 얻어 타고 가서 좋았다. 인심이 좋은 동네인가보다. 차가운 물에 몸을 담그며 놀다와서 좋았다. 올 때도 트럭을 세워 얻어 타고 왔다. 지난 일주일의 피로를 다 풀어주는 날이어서 좋았다. 하루를 그냥 쉰다는 여유 기나긴 가뭄 끝에 찾아온 소낙비라고 여기면 될 것 같다. 군에서 의무병들이 와서 치료를 해주시고 가셨다. 개인적으로 오늘은 여자친구와 만난 지 1주년 기념일이다. 가지 말라고 한 이유도 오늘 때문일지도 모른다. 여러 번 전화했지만 받지 않는다. 너무 섭섭해하지 않았으면 한다. 오늘은 조원들간에 많은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시간이 될 수 있을 거라 생각이 든다. 우리 조원들도 치료를 받고 있다. 조장하고 모여서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시간이 부족하다. 어리어리
19. 8월 2일 밤10:00 모악산 접수
어제 쉬어서 그런지 너무 피곤하다. 다리는 아프지 않았다. 오전에 28km를 걸었다. 오후엔 5km를 걸었다. 아침에 총장님과 같이 모악산을 넘었다. “힘들지?” 라고 물었을 때 난 대답했다. 우리를 힘들게 하는 건 높은 산도 아니고 뜨거운 태양 볕도 아니다. 단지 나약한 의지뿐이다. 그러니까 처장님이 웃으셨고 조원들은 준비된 멘트라고 놀려댔다. 전주를 통과하면서 명중이에게 전화를 했다. 시내로 가는 줄 알고 나오라고 했는데 다른 곳으로 지나가서 보지 못했다. 섭섭하지만 후배한테 고맙단 말을 하고싶다. 행군하면서 모두들 조용하다. 이제 군산도 지나고 지겹던 전라도도 벗어났다. 고사를 잘 지내서인지 비가 우릴 괴롭히진 않는다. 조원 중 장진선(화학과, 01)이 어머니가 병원에 입원하셨단다. 수술을 하신다고 한다. 그가 눈물을 보여 너무 가슴아프다. 어떤 말로 위로를 대신할까....위로의 말 대신 담배를 권했다. 멀리서 진선이의 모습을 바라보았다. 요즘 말이 많이 없어졌다..갑자기 나도 엄마가 보고 싶어졌다.여기까지~~~~~~~~~~~~~~~~~~~~~~~~~~~~~~~~~~~~~
헉!!!청수가 돌아왔다..박카스를 사가지고 왔다. 다행히 많이 아프지 않아 낼부터 운영팀을 한다고 한다.
우리에게 차가운 물을 급수하는 역할을 한단다 다행히 우리조는 낼부터 물걱정 끝이다. 며칠 전부터 서운한게 있다 같이 힘든길을 걷는데 환자라고 하면서 차를 타고 오는 여학우들이 많다. 개인적으로 그들을 좋아하지만 대원들 사기면에선 좋지 않다. 만약 차에다 몸을 실었으면 치료가끝난후엔 다시 몸을 실은 부분부터 걸어와야 하는 게 아닌가? 그래야 더좋은 추억이될건데 다른이들도 꽤병을 부리지 않을테고..다른 섭섭한건 총장님이 같이 걸으실 땐 많은 사람들이 같이 걸었는데 1시간 후 가신 후에 아무도 같이 걷지 않는다 .선생님들 중 어떤분께서 처음엔 우리와 같이 걷는다고 했는데 차를타고 가는 모습을 보니 믿음이 무너진다.
여학우들의 씻는 시간과 세탁하는 시간 때문에 문제가 되었다. 넘 오랫동안 지체한다는 것이다. 서로 조금씩 양보하고 줄인다면 어떨까 ? 아님 15분마다 물을 끊는 방법은?
오늘 행군중에 조원들, 글구, 연지씨, 재성이의 첫사랑이야기를 들었다. 우리 모두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라 시간가는 줄을 모르게 걸었다. 오늘은 선봉으로 갔다. 낼이면 또 다시 후미다. 열심히 해야지 ...
아차 미영이한테 메시지가 왔다 너무 미안하다. 어제 1주년인데 챙겨주지 못해서 못내 아쉬웠다. 그래도 사랑한다는 말을 들어서 너무 행복하다 나도 사랑해!!!
20. 8월3일 아침식사
군산 아침바다 냄새가 난다 .휴게소에서 아침을 먹고 커피를 마셨다 청수가 아침식사를 따로 해서 서운하다. 글구 성화생일 축하를 했다. 비록 캔 커피 였지만 아이싱을 첨으로 콜라에 타서 먹었다. 오늘은 28KM를 걷는단다
21. 8월4일 성화생일
한산세모시 까지 왔다. 어제 성화 생일이어서 명희를 초대해서 뽀뽀도 시키고 매미도 시켰다. 정말 쎅시한 매미다. 오리고기에 맥주를 마셨다. 수자원공사에 다니시는 선배이구 전 충북대학교 학생회장이였던 분이 사주신거다. 원래 2마리먹는건데 조장이 어리해서 한 개밖에 못 먹었다. 우린 왜이리 먹는거에 연연해하는지 다시한번 성화의 25번째 생일을 축하한다
22. 8월4일 숙영지도착
통계학과 교수님이 통닭을 사 가지고 오셨다. 의문 격려차 오신거 갔다 오늘 무릎이 아파서 제일늦게 도착했다 오면서 임원들이랑 이야기를 했다 출발점은 갔지만 속도는 다르다. 자기의 노력여하에 따라 자기의 인생도 변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집에 가고 싶다 한글이랑 상기랑 백일이란다 국토대장정에서 서로의 사랑을 더 확인할수 있었던 거라 생각든다 지친 우리들 앞에서 그들은 키스를 했다 그래서 우리들의 야유와 부러움을 샀다 잘 지냈으면 한다. 부럽다
23. 8월5일 비
행군 13일만에 비를 맞으며 걸었다 오다가 길을 잘못 들어 헤매긴 했지만 비와 함께도 걸을만했다. 정애가 퍼져서 속상했다. 허리까지 오는 쥐가 난거다. 그냥 내버려두면 가슴까지 흘러 심장마비까지 올수 있는 응급한 상황이였다. 쉬는 시간에 우린 모두 정애한테 매달려 뭉친 근육을 풀어주었다 너 고통스러워하는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오늘 정애가 탈락하면 어쩌지 라고 걱정이 들었다 차에타라는 나의 권유를 받아들이지 않고 입술을 꼭깨물며 다시 긴다리를 건너기 시작했다. 마음속으로 대견함을 감출수 없었다 자랑스럽기도 했다 .과선배로써 더 이상 바랠것이 없는 멋진 놈이다. 다시 공주로간다.
24. 8월5일 숙영지
오늘 결산을 했다. 조원들에게 서운한 소리를 했지만 좋게 받아들이길 바란다. 오랜만에 조원들이 한자리에 다 모였다. 콜라랑 사이다, 과자, 복숭아를 먹으며 이야기 나누었다. 서로에게 지금까지 서운한 일들이 있을거라 생각든다 나두 모르게 저질러진 일들 자기를 괴롭히는 또다른 고통이다.
내일이면 칠갑산을 넘어 공주로 간다. 22일중 9일 남았다. 드디어 한자리수가 남은 것이다. 300km정도 남았다고한다. 비가와서 그런지 걷기 좋았다. 신발이 좋아서인지 물이 많이 들어오진 않았다. 선아와 혜연이가 준 패드가 많은 도움을 준거 갔다. 이상하게 그건 다시는 만지고 싶지 않다.
오랜만에 앉아보는 좌변기이다. 3조와 임원조에서 마사지 받는걸 보니 나도 받고 싶어졌다. 원경이한테 해달라고 해야겠다. 성화랑 명희랑 잘됐으면 한다.우리가 넘 오버 하는건 아닌지 모르겠다. 여기서 첫커플이 생겼다. 관태랑 귀남이다. 01학번 아그들이지만 넘 보기 좋다. 이제 새로운 인생을 다시 경험하게 되는 순간이라 생각하고 변함없는 사랑을 나누었으면 한다
25. 8월6일 칠갑산
칠갑산 문턱으로 조금씩 가고 있다. 계속 오르막길이다. 아침에 담배불을 넘 건방지게 빌렸다. 계속 ㅣ안한 생각이들어 머리속에서 떠나질 않는다. 대장이 헐덕고개라고 자구 뻥을쳐서 아그들이 처부터 긴장을 하고 떠나서인지 별로 어렵지 않은 코스다 우린 조용히 앞 뒤 조에 뭍혀 걸어간다. 조금만 히을 더내라 8조 파이팅! 쉬는시간마다 일기를 쓰는것도 힘들다.
26. 8월6일1:00
청주방송인 CJB에서 촬영을 왔다. 글구 여자 의사선생님도 오셨다. 경미가 괴롭혀서 죽겠다. 경미도 무릎이 많이 아파서 고생했는데 지금은 괜찮은가 보다 이제 경미 흉내는 내지 말아야지! 따라가다가 내다리가 부터 기절하겠다. 이젠 목도 마르지 않는다.땀도 잘흐르지 않는다 적응이 다되서 그런건지...
우진이가 인터뷰를 했다. 무엇이 좋은지 입이 귀에 걸려있다. 우리는 인터뷰 안하나? 오늘 밤에 치료받는 남자들이 많을거 갔다 나도 가바야지!! 점심먹고 오침을 했다 교실 바닥에서 잠을 자다가 청수를 깨우지 않고 왔다 늦게 헐래벌떡 따라오는 그를보며 울조원들은 미안해 했다 .원경이가 꽃을 꺽어다 청수에게 주었다 작은거지만 넘 좋아하는거 갔았다. 역시 남자는 작은것에도 행복해한다
27. 8월6일 22:00
씻고 자야겠다 결산이 끝났다 요즘 팀분위기는 좋지않다. 충돌이 자주 생긴다 조장하고도 마찰이 있었다. 무엇 때문에 화가 난 건지 원경이한테 피티병을 집어던져서 오후내내 조용한 모습만 보게 되었다. 지금이라도 화해를 해서 다행이다. 계속 마음의 짐을 가지고 가면 서로 피곤 할테니까! 낼 비가 온단다
28. 8월7일 18:00
온양초등학교다 오늘 모자를 잃어버려서 성화가 고생했다. 계속되는 행군에 나도 오늘 첨으로 화를 냈다 정애를 수건의 탄력을 이용한 끌기에서 3번째 도약 중 아스팔트에 깔아 손과 무릎을 다쳤다. 근데 뒤에서 걸어오던 용범이가 빨리 가라고 소릴 질러서 나도 같이 소릴 질렀다. 숙영지에 도착해서야 미안하다는 말로 화해를 청했다. 하루종일 찝찝했다. 조그만 참았으면 괜찮았을텐데... 오늘 피자랑 복숭아를 먹었다. 많은 사람들이 응원을 해주시고 가셨다. 낙승이형과 93년도 총학생회장 선배님이 오셨다. 피자앞에 모인 우리 조원들 16조각을 가지고 고민을 했다. 결국 막내들에게 빼았겼다. 귀여운 것들
비가 주룩주룩 내린다. 낼까지 내리면 안 되는데 아침 안개가 오늘은 기억에 남는다. 정애랑 오늘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학교에서 후배로 만나는 느낌과는 다르다. 더 어른이 된 것 같다. 재환이가 콜라룰 건내 주었다. 멀리서라도 신경쓰고 있는게 분명하다. 자기 조원들 챙기기도 바쁠텐데..원예학과 화이팅!!
29. 8월 8일 숙영지 구성초등학교
약대동문 선배님들과 과 조교 몇 분들이 위문을 오신 것 갔다. 결산 시간에 용범이가 막걸리 한 병을 사 가지고 와서 나누어 마셨다. 오랜만에 마시는 한잔이지만 술이 들어가니까 좋다
집에 전화해보니 벼리생일이라고 해서 식구들이 다 모인 것 같다. 나도 그곳에 있었으면 좋았을 텐데 하지만 지금 내 이야기와 날 자랑스럽게 여길 거라 생각든다. 괜시리 기분이 좋아진다. 아침에 비가 많이 와서 하천이 범람한 것 같다. 얼마나 비가 많이 왔는지 알 것 같다. 숙영지에서 성적표를 내주었다 누구생각인지 성적이 잘 안 나온 사람들은 긴장하겠다.
어제 밤새 비가 내려 아침까지 왔다..그래서 가방을 벗고 한 구간을 그냥 우비만 입고 걸었다. 가방을 안 매고 걸으니까 폼이 안 나서 창피하다! 데모하는 것도 아니고 계속적인 행군이다. 7일이 남았고 450km이상을 걸었다. 내일 평택에 간다. 충청도도 이젠 벗어난다. 드디어 경기도로 진입한다 .완전히 다른 공기다 목이 메어오고 코가 간질간질 하다 스쳐가는 차도 많아지고 사람도 많다. 청주 공기가 좋다는 생각이 든다.
30. 8월 9일 족구대회
생각보다 일찍 숙영지에 도착해서 족구예선을 했다. 학교 장학과 선생님들이 장만해주신 삼계탕을 먹고 승부가 날 때까지 족구를 했다. 결국 우승은 1,9조 연합팀이 했고 우리 조는 예선 탈락의 고배를 마셔야 했다. 어리어리가 족구를 잘하는 줄 알았다. 속상해죽겠다. 그리고 학교 홍보를 하러 여러 곳으로 가게 되었다. 내가 첨으로 가본 학교는 천안 북일고이다. 넓고 확 틔인 14만평의 학교부지 난 처음으로 이렇게 큰 학교를 보게 되었다. 그럼 학생들은 어떨까? 하며 교무실로 들어가게 되었다. 그러나 교무실에서 선생인과의 인터뷰만 허락되었다. 그리 우릴 반기진 않는 눈빛이다. 첫 방문 결과에 허탈해하며 천안고,복자여고에 들어서게 되었다. 두 번째 학교인 복자여고에 들어서게 되었다. 현관을 들어설 때 우릴 반기는 것은 복자여고 교복 전시 케이스였다 현관 한쪽 면을 역사와 같이 하는 복자여고 교복과 학교 역사를 한눈에 볼수 있는 게시판이였다. 작은 여자인형에 입혀놓은 교복 우리 한국의 교복역사를 볼수 있는 자리였다. 교무실에 들어가니 선생님들을 보게 되었다. 사실 학생시절을 보낸 우리들은 아직도 교무실은 싫다 (지나간 쓰라린 기억들이 지나간다). 다행히 충북대학교 사범대학을 나오신 선생님들이 3분이나 계셨다 . 냉장고에서 음료수를 꺼내 건내시며 말을 건내주신 선배님 너무 반갑고 좋을 수 가 없었다. 선배님들 덕분에 여학생들과 같이 이야기 할 수 있는 시간이 주어졌다. 떨리는 가슴을 조이며 목련반 문을 열었다. 50여명의 시선 집중..사실 여학교 교실 문을 열어본 건 지금의 처음이다. 시간의 흘러 긴장이 풀릴 쯤 하니까 정해진 시간이 다 지나갔다. 어떤 이야기를 했는지 몽롱한 기분이다. 학교홍보와 국토대장정 그리고 개교50주년 직지, 오송바이오 엑스포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남기고 아쉬운 자릴 떠야했다. 자신감이 생기게 되었다 다음 학교는 더 잘해야지 맘속으로 다짐을 하며 이동을 했다.
어렵게 천안고에서 학생들과 인사를 나눌 수 있었던 시간이 되었다. 남자학교라 그런지 여학우 들이 긴장된 모습을 느낄 수 있었다. 홍보팀장님 소개를 제가 해주었을 때 무엇이 부끄러운지 빨개진 얼굴을 두 손으로 가리며 교실문밖으로 뛰어나갔다. 고등학생들에게 연민을 느끼는지...교실밖으로 나오면서 앞으로 88일 이란 글자가 눈앞에 스쳐 지나간다. “우리의 자취가 뭍어 있는 학생들 충북대학교에서 여러분과 선후배로 다시 만나길 바랍니다”. 부디 좋은 성적을 얻어 다시 만나 캠퍼스를 같이 거닐고 싶습니다 개인적으로 보람된 하루였다. 과연 그들은 우릴 어떻게 생각할까?
31. 8월10일 학과장님과 담임교수님 방문
교수님들이 오셨다. 농대 교수님들과 농촌지도소 분들이 오셔서 떡이랑 옷을 나누어주셨다. 물론 과 교수님께서도 자리를 같이 해주셨다. 행군을 하다가 지나가는 충북대 버스를 보게 되었다. 한눈에 우리 과 교수님을 찾을 수 있었다. 창 밖으로 손을 흔드시는 교수님들 자기 과 학생들을 두리번 거리시며 찾고 계신 모습 이 모두 우리가 하나라는 걸 느낄 수 있는 모습이었다.
결산 후에 9조랑 조인트를 했다 처음 듣는 목소리와 서로 다르게 보는 국토 뒷 이야기 팀원들간의 오해 견해차이 역시 다른 9조의 분위기...하여간 좋은 시간이였고 나를 되돌아볼 수 있었던 시간이 된 것 갔다. 국토대장정의 부정적인 면도 볼 수 있었다. 밤에 승호, 광희, 용범 과 함께 막걸리를 할 기회가 왔다 이런저런 이야기가 있지만 역시 조원들 이야기가 주가 되었다. 우린 역시 서로에게 관심을 더 주어야한다는 결론을 내릴 수 있었다. 서로 다른 환경 다른 과 다른 목적 우린 다 다르다 그치만 같이해야한다 대화가 부족하면 이해도 늦어진다. 남은 며칠 동안만이라도 관심을 더 가져야 겠다
수원입성이 코앞이다. 물론 서울입성은 내일이다. 홍보팀장으로부터 추천을 받아 고교방문 학교 홍보를 할 예정이다
32.8월11일 서울 입성
설사가 나서 죽을뻔했다 몰래 막걸리를 마셔서 그런가 ?나만 먹은 것도 아닌데 오늘 일진이 안 좋을라고 하나보다 차 소리가 장난이 아니다. 공기도 탁하다.
오후가 되면서 그렇게 기다리던 이정표가 나왔다. “어서오세요! 여기서 부터는 서울특별시입니다”
얼마나 이 푯말을 보고 싶었던가? 우리 모두 대장의 오만방자 호루라기 소리에 맞추어 춤을 추었다! 그 밀려오는 감동 이제 다 왔구나! 다들 웃는 모습이다. 울 조원들도 입이 귀에 매달려 있다 .
행군이 끝난 후 여자친구가 순대, 족발, 떡볶기를 사와서 먹었다. 조원들에게 소개시켜주니까 부러워했다. 조금 이뻐서 그런가 보다 사실 먹을때는 암두 말을 하지 않는다 울 조원들은 먹보다. 1조 조장님이랑 사무국장님 썬글라스맨 승호 그리고 우리조원들 모두 한자리에 모여 조용히 먹기만 했다.
짜식들 잘 먹내! 하여간 기분은 좋다. 사온걸 다 먹은 후 통닭을 나누어주었다. 물론 많이 남았다 다른 조는 뼈까지 먹는다는데...짧은 시간이였지만 고마웠다. 내일 또 온다고 하니까 집에 바래다주고 와야겠다 눈치 없는 막내들 때문에 데이트하기도 어렵다
34. 8월12일 숙영지
홍은 초등학교에서 19일차 숙영지를 잡았다.
여기까지 오기 위해서 한강대교를 건너 서울역 앞을 지나 서울을 우리가 뒤집어 놓고 왔다. 모든 길거리의 시민들과 보행자들 경찰 차에 타신분들 우릴 모두 응원해주셨다 교통체증의 짜증을 참아주신 서울 시민들게 감사드립니다. 한강대교의 찬 바람 태어나 첨으로 지나가 보는 이 다리 다리 난간에 누가 써놓은 글자들.... “미영사랑해! 죽고싶다! 욕들!” 그렇지만 왠지 친근한 모습이 아닌가? 내 옆을 스쳐가는 바람을 아직도 잊지 못하겠다 .
여자 친구와 지난 못다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체육대회서 농구를 했고 원경이가 여자 팔씨름대회에서 혜연(아기공룡둘리)이를 이기지 못해서 아쉽게 2등을 했다. 피씨방에서 메일을 보내고 홈페이지에 글을 올렸다. 우리과 학우들도 우리를 응원해주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우린 크겐 학교를 위해서 작겐 과를 위해서 이곳에 왔다고 생각이 들었다. 과 부학생회장님 고마워요!
35. 8월 13일 지하철 화장실
구파발역 앞에서 아침에 부대찌게를 먹었다. 근데 속이 안 좋아서 화장실을 찾았는데 줄이 너무 길어서 지하철역으로 향했다. 이게 왠일인가? 화장실이 표를 끊고 들어가야 일을 볼 수 있는게 아닌가? 한참눈치를 보다 어쩔 수 없이 밑으로 들어가서 일을 보았다. 얼마 후 다시 밑으로 나오다 아저씨한테 걸렸지만 너그럽게 용서해주셨다. 이런 저런 상황을 말씀드렸더니 격려까지 해주셔서 너무 고맙다.
아람단 아그들도 국토순례단 이란 이름으로 지금 우리 앞을 지나고 있다. 우리나 아그들이나 똑같이 기뻐하구 축하해주었다. 서로 서로 통하는 무엇이 있기에....
상은이가 열심히 걷는다. 상은이 화이팅!
36. 8월13일 숙영지 도착후
이번 행군 중 제일 비가 많이 내렸다.. 오늘은 행군의 후미라 뛰다시피 걸어 21km를 12시에 끈었다
이틀만 더 고생하면 임진각이다
내가 과연 무엇을 얻고 갈 것인가? 아쉬움을 간직한 체 내일 문산으로 떠난다. 이젠 고통조차 없다 허무하다는 말이 맞을지도 모른다 이제 발과 몸이 적응이 되서 걸을만한데 더 이상 가지 못한다니. 백두산까지라도 갈 수 있을 체력과 정신력인데......
1조에서 상은이를 업고 비가 내리는 오름막 길을 걸어 올라왔다 너무 뭉클한 장면이다.
원경이가 길가에 있는 꽃 한송이를 꺽어왔다 “오빠! 이거 상은이한테 전달하면 어떨까? 우리가 뒤에서 응원하고 있다는 걸 보여주자 ” 사실 이 녀석이 좋아졌다. 정말 따뜻한 맘을 가지고 있는 녀석이다. 그래서 원경이 손끝부터 시작한 ‘사랑의 꽃 릴레이’ 상은이까지 릴레이로 보냈다. 근데 앞조 C형이 화를 냈다. 장난하지 말라고 이유를 모르겠다. 마음에서 울어나 상은이를 격려하고 응원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고 그 위함이였는데...... 원경이가 상철 입지 않을까 걱정이다.
그치만 그 앞으로 달려가 꽃을 받아서 영주한테 건내주면서 “상은이한테요” 라는 말을 건내고 상기된 얼굴로 돌아왔다! “오빠! 나 잘했지” 하며 웃음을 보였다. 기특해라
37. 8월13 저녁 식사 후 벽제 화장터
우리 조는 조용하다. 비가와서 그런건지...내일이면 코앞까지 걸어간다. 오늘은 나만 7조랑 단합대회를 했다. 술마시며 이야기도 하고 요즘 롤링 페이퍼가 줄기차게 시작되고 있다. 비가 내일도 올 것 같다. 7조에서 토끼를 잡았다. 재영이가 넘 웃겼다 침낭과 배낭커버를 뒤집어쓰고 람보를 했고 민제는 칙칙이 복서를 보여주었다. 뽀그리 먹는 걸 보고 나도 먹고 싶었다. 그치만 염치가 있지 술도 얻어먹었는데 라면까지는...40km정도 남았단다. 지도를 보니 엄청많이 걸어온 걸 알았다.
배식을 하다가 규율팀장님이 화를 냈다. 밥 먹으러 대원들이 빨리 오지 않아서 그래서 자율배식했다 순서대로 불러도 사람들이 꿈물거려서...이해할 수 있는 상황이다. 하여간 자율 배식 때문에 파전을 3개나 먹었다. 민주가 많이 아프다 걱정되네...태진이가 술 사달라고 했는데 돈이 없어서 못 사주었다.
38. 8월14일 문산초등학교
아!! 아~~~이제 하루 남았다. 롤링cloth도 시작되었다. 낼 부모님이 오신다구 했다. 과연 내가 무얼 가지고 갈 것인가? 육체의 시험에선 통과한 것 같다. 사실 낼 8km를 단 한번에 갈 수 있을 것 같다. 근데 상은이를 위해....내 욕심은 저버려야겠다. 문산 시내를 한바퀴 돌고 왔다. 군부대 근처란 걸 느낄 수 있었다. . 민간인보다 많은 군인들이 보인다. 정말 이젠 얼마 안 남았구나 임진각까지 아니 북한까지...
39.8월15일 눈물과 비의차이
우린 무엇을 기다리는 것인가?
눈물인가? 떨린다! 4km 남았다. 노래를 불러 맘을 다스린다. 걸어가며 지금 글을 적고 있다 여태까지와는 다른 발걸음과 느낌이 다르다. 무언가를 남겨야한다는 생각이 들었다.다들 나와 같은 생각을 하고 있는것인가? 멀리 무엇이 보이는가? 갑자기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조용하다 노랫소리도 없다. 가서 울어야하나? 조용한 아침 비!! 우리의 맘을 가라 앉히는 이 비 우리의 마음대신 울어주는 비인가?
처음 출발부터 지금까지 하늘에 계신 분들이 우릴 지켜봐 주시고 있었던 것 같다. 적당한 시기에 우릴 시험하려고 강한 햇볕과 높은 산을 주시고 우릴 긴장하게 하시려고 강한 비와 동료의 아픔을 주시고 이 자리에 서게 해주신 것 같다.
드디어 임진각이 보인다. 어쩌지 울어야 하나 아직은 아닌데 탑이 보이기 시작하며 우리를 응원해 주시러오신 분들의 보이기 시작했다.
임진각 도착 “환영 충북대학교 국토대장정” 탑 앞에 줄을 서기 위해 들어서면서 철마는 달리고 싶다. 라는 푯말과 기차를 보았다 . 정말로 이 길로 기차가 다시 다닐 수 있을까? 오면서 경의선 복원하는 곳을 몇 군데 보았다. 이젠 현실로 이루어지길 바란다.
먼저 도착해서 뒷 조가 돌아오는 것을 응원해 주었다. 상은이가 울면서 절룩절룩 들어왔다. 전부 다 모인 자리에서 우린 서로를 격려하기 시작하며 눈물을 적시기 사작하였다. 우리조원들도 서로 부둥켜안으며 서로를 격려했다 다독거리며 눈물을 흘렸다. 앞 뒤 옆 대원들에게도 수고했다는 말을 아끼지 않았다.
40. 작은 광복절 기념행사
조국분단의 아픔을 담은 임진각에서 내가 학교에서부터 모자에 달고간 태극기를 모자에서 빼어 조국통일의 염원을 담아 임진각 다리 마지막 경계벽에다 달고 왔다. “작은 광복절 기념행사“ 위해 언론팀장을 모셔 와서 테이프에 담았고 같이 뜻을 했던 우리 동지인 용범,승호,광희,진선이와 함께 기념행사를 치루었다.
옆에 계시던 다른 분들도 우리를 지켜보시며 흐뭇해 하시는 걸 느낄 수 있었다. 청주에 돌아와서 티비에 그 장면이 나왔다. 내가 정성스레 태극기를 철망에 다는 장면이..난 자랑스러웠다. 구경오신 할머니께서 찍으신 장면 갔다. 기자분이셨나 보다. 첨으로 임진각에 와서 이런 뜻깊은 일을 한 내 자신이 자랑스럽다. 이제 청주에 가면 부모님이 기다리신다. 가문의 영광이라 여기시는 우리 부모님 너무 보고 싶다. 다들 단체 사진은 찍었는데 8조 사진은 못 찍은게 아쉽다! 성화가 더 적극적이면 좋을텐데....
41.임진각을 등지고
임진각을 등지고 버스에 올랐다.
9조 대원 중 우리의 귀염둥이인 귀남이 부모님께서 부녀회분들과 같이 오셔서 파티를 베풀어주셨다.
우리의 어머니와 같은 느낌이 들어 너무 좋았다. 웃는 이야기로 관태(귀남이 남자친구 국토대장정중) 사위 보러 오셨다고 우리끼리 놀렸다.
학교버스를 타고 오면서 섭섭한 기분이 들었다. 이렇게 허무하게 청주에 돌아가는 것인가?
비가 오기 시작한다. 차안에서 느끼는 비는 좋았다. 만약 밖에 있었다면 반갑진 않았을 것 같다.
조용히 다들 잠을 잔다. 이렇게 금방 이곳을 빠져나가다니 우리가 어찌 이곳에 온 건데!! 몇일밤을 지나 이곳에 도착한 건데 고작 3시간만에 여길 뜨다니 허무하다
안성휴게소에서 점심을 먹었다 처음이랑 똑같은 식사였다. 그 아이스 밥이다. 처음 식사를 할 때가 어렴풋이 떠오른다. 웃음이 난다.
42.청주 입성
오후 2시가 되어 성모병원 앞에 하차하였다. 웅성웅성 마중 나온 대원들의 부모님과 친구들 정말 보기 좋은 장면이다. 청주시내를 걷는 것도 색다른 느낌이다. 여유롭다는 말이 어울릴 것 같다. 지리를 다 알기 때문인가? 혹시 아는 사람이라도 있을까 하는 기대감 때문인가?
방송국차량과 경찰차 그리고 건물들 모두 눈에 익은 것들 이였다. 대장은 꽃 목걸이를 목에 걸고 행진한단다. 그리 좋은지 헤헤~~
우암 초등학교를 지날 무렵 날 차는 엄마의 눈길을 찾을 수 있었다. 날 사랑하시는 부모님~~ 아들을 보시러 일부로 오시다니...들뜬 마음 추스릴 수가 없다. 집 근처를 지나며 울조원들한테 여기가 뭐고 저기가 뭐고 하면서 울동네 자랑을 했다. 난 바본가 보다 평소엔 별로 중요하지 않은 것들이라 생각했었는데....
시청에서 쉬었다. 성화가 가위바위보에서 이겨서 포카리를 타왔다 정말 오랜만에 잘한 짓이다.
상당공원부터 충주여상 고적대를 앞세우고 시내를 걸었다 금의환향하듯이 .....버스와 시내의 사람들이 부러움을 받아 가면서 학교정문까지 당당히 걸어갔다. 대원들중에서 얼굴을 알아보고 인사나누는 사람들이 계속 목격되었다. 나도 혹시 아는사람이 있을까해서 자꾸 주위를 둘러보았다. 정문에 들어서자 황지혜가 기다리고 있었다. 울과 1학년 과대인데 우릴 기다렸다고 한다. 넘 기특하다. 좋고 고마웠다. 해단식을 하고 대원들과 조금만 연회를 했고 사진도 찍었다 날 응원해주시려고 오신 부모님과 지혜한테 고맙다는 인사를 다시 나누었다. 행사가 끝나 하나둘씩 집으로 돌아가는시간이 되었다. 부모님도 집에 가시자고 하셔서 수고하신 대원들한테 인사를 하러 갔다. 그런데 기주형님이 날 보자 마자 연못으로 집어 넣으셨다. 날 기다리고 있었던 거 갔다 ...인사를 다 나눈 뒤 아쉬움을 뒤로한 채 집으로 향했다.
43. 국토대장정을 마치고
난 무엇을 가지고 온 것일까? 두 번이나 터져 버린 물집과 새까맣게 타버린 살갛 박세리 다리가 안 부러운 종아리 아직도 매일 대장의 기상소리에 짜증내며 일어났던 기억들....... 사실 잘은 모르겠다. 시간을 가지고 쉬면서 생각해 봐야겠다.
하나 확실한 건 대원들과 같이 했던 22일간의 추억은 내 죽어 무덤까지 같이 할 추억이라는 걸 난 안다.
땅끝 마을부터 신경 써 주신 학생과 선생님들과 경찰 아저씨들 그리고 학교 동문 선, 후배님들 교수님들 그리구 91명의 국토대장정 대원님들, 나를 응원해주신 원예학과 학우들 마지막으로 부모님께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