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먼저 우루무치 지역에 대한 설명부터 시작해야겠군요. 우루무치는 위그르족 자치구인 신강의 중심부이며 인구는 약 116만으로 우리나라의 대전인구와 비슷합니다. 신강전체 인구는 약 2000만이며, 중국에서 2번째로 자치구가 된 지역입니다.(1955.10.1) 위구르족은 주로 산(목장)에서 목축업에 종사하고 있고, 우루무치 시내에는 한족이 아직까지는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한편으로는 치안문제가 많이 발생한다고 하니 이 지역에서는 주의하셔야 합니다. 유목민이라 칼과 같은 무기를 많이 소지할 수 있죠.
이 지역에서는 석탄, 석유가 나는 지역입니다. 농작물은 밀(2모작), 옥수수를 재배하고 있으며 근처에는 타클라마칸 사막이 자리잡고 있습니다.이 지역은 주로 석탄으로 난방을 때고 있습니다. 여기서는 전차라는 차가 많이 애용되는데 차와 양젖을 혼합하여 우유차를 만들어 먹습니다. 이 지역에서는 호암나무라는 나무가 있는데 살아서 천년, 죽고 쓰러지기까지 천년, 쓰러지고 썩기까지 천년으로 끈질긴 생명력을 가지고 있는 나무가 있다고 합니다.
실크로드에 대해서 설명하면 장안(서안)을 출발하여 난주, 주천, 안서를 거쳐 돈황에서 투루판, 우루무치를 거쳐 사마프칸트로 넘어가는 천산북로, 돈황에서 쿠치, 카슈가르를 거쳐 카불로 가는 천산남로로 나뉘어 집니다. 북로와 남로사이에는 천산산맥이라는 큰 산맥이 놓여있죠. 천산남로는 타클라마칸 사막 북부 위를 지나갑니다. 그리고 사막 남쪽으로는 체르젠 호탄, 카슈가르로 이어지는 서역남로가 존재합니다. 사막지역을 되도록이면 피해간 것이죠. 주로 소그드인 상인들이 많이 이용한 길입니다. 실크로드에 대해서는 수잔의 <실크로드 이야기>라는 책이 있으니 많이 이용하시길.. 이 지역 실크로드에 대한 개관 이었습니다. 우리가 다니는 쪽은 천산북로라고 할 수 있죠. 실크로드라는 이름은 20세기 초 독일의 지질학자에 의하여 붙여졌다고 합니다. 실트로드는 서아시아에서 로마에 이르는 초원길과 해상교통로인 바닷길과 항상 견주어 설명됩니다.
이제 오늘의 일정으로 넘어가 볼까요? 역시 어젯밤도 참새가 방앗간을 못지타치듯이 술을 마시고 모닝콜 소리와 함께 하루가 힘겹게 시작돱니다. 좀 더 빨리 나오라는 질책을 받은 뒤 버스는 오늘의 첫 목적지인 촌지를 향합니다. 약 1시간 30분정도가 소요됩니다.
우루무치 거리는 서안보다 한 층 한가한 느낌이 듭니다. 공기도 깨끗하게 느껴지고요. 우루무치라는 이름은 '아름다운 목장'이라고도하고 '광대한 목초지'라는 뜻이 있기도 합니다. 신강(新疆)이라는 이름은 청나라때 여기를 점령하고 새로운 땅이라고 부른데서 연유한다고 합니다. 한족의 입장에서 말이죠. 시내에 간판에는 한문과 위구르어가 같이 써져 있습니다. 시내버스안을 보니 특이하게 나무의자를 하고 있군요.
시내를 빠져나오고 고속공로를 내달리는 동안 창밖의 풍경은 목초지에서 사막의 모습으로 돌변합니다. 길의 모습은 구부러짐없이 쭉 뻗어있기만 합니다. 밖에는 유목중인 낙타나 양의 모습이 보이고요. 듬성 듬성 풀이 가축의 먹이 노릇을 하고 있습니다. 이런 풍경에 질려갈 때 쯤이면 이내 우리는 산이 있는 곳으로 들어섭니다. 여기서는 석탄을 땐 흔적이 많군요. 곳곳에 양, 말, 나귀 등의 가축이 목동에 이끌려 몰려다니고 도로를 점거하는 일도 빈번합니다. 그러나 여기에서는 누구하나 빵빵거리는 운전자가 없죠. 위그르족 전통집으로 쓰이는지 천막집이 군데 군데 쳐져 있습니다. 나중에 알고 보니 관광용으로 많이 쓰인다고 하더군요.
아까의 쭉 뻗고 넓은 길은 온데 간데 없이 사라지고 2차선 도로에 꼬불꼬불한 길이 우리를 천지로 안내합니다. 길가에는 물이 시원하게 흐르고 있는데 만년설이 녹아 물로 내려오는 것이라고 합니다. 산속을 파고들어 천지입구에 도착합니다. 여기서 보니 반가운 물건 하나, 현대산 버스가 여기서도 관광버스로 이용되고 있군요.
천지까지는 여기서 케이블카를 타고 올라가게 됩니다. 마침 비가 조금씩 오는군요. 케이블카는 리프트에 천장과 바닥을 추가한 듯한 평태입니다. 둥근 모양을 띄고 있고 2명씩 타고 가게 되어있습니다. 밑을 보니 우선 우측으로 소천지가 보입니다. 물이 푸른색을 띄고 있어 영화에서나 보던 그런 호수를 연상시킵니다. 또 급류를 타며 바쁘게 내려가는 시냇물이 아찔하게 느껴집니다. 그리고 차로 올라가는 고갯길이 있는데 창자처럼 꼬불꼬불한 길이 이어져 있습니다. 차들도 힘겨운지 천천히 올라가고 있는 모습입니다. 우측에 산의 모습은 그야말로 장관을 이룹니다. 옛길인지 지금도 난귀나 말이 짐을 실으며 마부와 함께 오르내리고 있습니다.그 옛날 실크로드를 연상시키기도 합니다. 20여 분을 올랐을까 보이지 않던 내리는 곳이 보이고 경사진 지면과 가까워지며 목적지에 도착합니다.
이젠 약 10분간 걸어가야지요. 길에는 관광객의 모습, 물건을 파는 상인들의 모습, 마부와 양떼의 모습이 어우러져 있습니다. 오르막이라 약간을 힘겹게 느껴질 때 꼭대기에 눈쌓인 산을 배경으로 삼고 있는 천지에 도착합니다. 여기엔 관광객이 꽤 많군요. 하지만 백두산 천지만큼은 아닌것 같군요. 여기서는 천지를 유람선을 타고 관람하게 되어있죠. 유람선이라고 해서 한강의 유람선을 연상시켰지만 관광지의 조그만 수준입니다. 2대의 유람선에 나누어 탑니다. 여기 천지의 수심은 평균 600m정도 된다고 합니다. 산에 여기저기 휴양지로 보이는 듯한 집이 붙어 있습니다. 산기슭에는 바람이 불어오는 쪽 반대로만 나무가 자라고 있군요.
유람선 운행을 마친 후 얼마동안의 자유시간이 주어집니다. 여기서 사진도 찍고 쇼핑도 하고.. 여기서 대여해 주는 코트 모양의 옷이 있는데 어느정도의 값을 지불해야 합니다. 사소한 것 하나도 여기 중국에서는 값을 치러야 합니다. 가게에서 이 지역 특산품으로 만든 가방을 샀는데 결국은 바가지를 쓰게 되는군요. 내가 25원 주고 산 것이 나중에는 12원까지 깎였다는.. ㅜ.ㅜ
비가 와서 그런지 제법 추운 날씨입니다. 그냥 이슬비 정도라 다행으로 느껴집니다. 케이블카가 있는 곳까지는 다시 도보로 돌아갑니다. 약 10분정도 거리로군요. 케이블카를 타려고 기다리는 동안 앞을 보니 저 멀리 사막이 계곡 사이로 펼쳐집니다. 여기서 단체사진을 찍고 케이블카를 타고 주차장으로 이동합니다. 내려오면서 들리는 계속물 소리는 듣기만 해도 서늘한 느낌이 드는군요.
버스를 타고 얼마 안 내려와 사진을 찍는 다는 명목으로 잠시 내립니다. 지금도 여기저기에서 양떼들이 도로 한쪽을 차지하고 목동의 손에 이끌려 어딘가로 이동합니다. 도로 옆 한쪽에는 현지 유목민들이 양고기를 팔고 있습니다. 쇠꼬챙이에 여러 겹 꼬치를 한 형태죠. 매캐한 냄새가 나지만 맛있습니다. 사막지대 도시를 이동하는 동안에는 계속 구경하고 맛보고 합니다.
다시 우루무치로 돌아와서 식사를 마칩니다. 다음으로는 신강 자치구 박물관으로 갑니다. 박물관은 새고 짓고 있는지 상당히 어수선한 모습입니다. 입구에 들어서면 먼저 공사중인 모습이고요. 관람을 하려면 공사중인 건물 뒤로 돌아가서 1층짜리 건물로 들어갑니다. . 여기서는 그 유명한 미이라가 있습니다. 단 이집트처럼 인공적으로 만들어진 미이라가 아니라 자연발생적으로 만들어진 미이라 입니다. 이 지역이 사막지대라 강수량이 적고 증발량이 낮아 시체가 썩기 어렵니다고 합니다. 그 덕에 박물관에 모셔져 여러사람의 구경거리가 되고 있으니 이들의 팔자도 기구하다고나 해야 할까요?
여기에서는 장군의 시신, 부부합장, 갓난아기, 20세 소녀 등 상당수의 시신이 박물관의 진열관에 누워 있습니다. 만약 내가 죽었는데 수천년 후에 박물관에 누워서 수 많은 사람들의 구경거리가 되면 기분이 어떨지?부부의 시신을 보녀 남편은 폐병을 앓다가 일찍 죽고 여성은 80살까지 살다가 합장되었다고 합니다. 4000년전 시신이라고 하는군요. 처음의 장군은 2500년 되었구요. 3200년전의 시신은 20살 여성입니다. 새우처럼 웅크러져 있습니다. 얼굴을 보면 무섭기도 하지만 뭔가 아쉬운 듯한 표정입니다다. 몸무게는 6.65kg이며 신장은 156.2cm입니다. 생전에는 160정도로 추정되고 있습니다. 8개월 갓난아기도 있는데 눈, 코를 가리고 있습니다. 한 남성은 특별히 가면을 쓰고 있는데 키가 유난히 크고 20세라고 합니다. 가이드분이 가면을 벗기면 상당히 무섭다고....--;;
여기는 미이라만이 아니라 당시의 무덤에서 나온 유물들도 전시하고 있습니다. 석인상이 있는데요. 물론 무덤을 지키는 역할을 하고 있지요. 석인상에 차있는 칼을 보고 추정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무덤을 지키는 것은 고사하고 같이 끌려와서 사람들의 구경거리가 되고 있죠. 당나라 시대 돌궐의 문화예술적인 작품으로 주목받고 있다고 합니다.
여기 안내는 위그루어, 중국어, 영어로 되어있고요. 식량, 무기, 생활용품이 전시되어 있습니다. 실제로 수천년전 먹다남은 곡식이 신기하게 남아있습니다. 여기서 사진촬영은 금지되어 있습니다. 제가 카메라를 들고 다니자 관리인듯한 분이 제지를 하시더군요. 다른 곳에서는 그자리에서 압수당하는 경우도 있다고 합니다. 아마 찍지는 않았기 때문에 그정도로 넘어갔는지도 모르죠.
관람을 마치고 버스로 이동하다가 또 어느 쇼핑센터로 들어갑니다. 여기서는 카펫을 많이 볼 수 있는데 여러가지 모양과 크기의 카펫이 가지런히 정리되어 주인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카펫의 제작기간은 2년으로 상당히 인내심이 요구되는 노동입니다. 카펫의 크기는 실의 굵기에 따라 틀려진다고 합니다.
그 밖에도 수정, 보석, 특산품,도자기, 악기, 옷, 불상, 탈, 인형 등이 각자 자리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어느 점원분께 한국말을 가르쳐 주기고 하고요. 어느 점원분이 "이거 만원"이라고 물건을 가르키자 "만원입니다"라고 가르켜 주기도 하고요. 이 지역의 탈의 모양이 상당히 인상적이었습니다. 여기서 값을 1/10이나 깍는 진기록이 달성됩니다.
시내를 지나는 동안 우호거리라는 곳이 있습니다. 소련이 중국을 도와준 것을 감사하는 의미에서 인데 한때 소련과의 국경분쟁이 일어나자 이 이름이 없어졌다가 나중에 다시 부활됐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왜 우리나라에서는 인천에 매카시와 맥아더의 동상이 사라지지 않는 것일까요? 이 시대 최고의 넌센스입니다. 로타리 지하로는 우리나라에서 흔히 볼 수 있듯이 지하상가가 밀집해 있다고 합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수원역전 로터리를 꼽으면 되겠네요.
시내를 거쳐 이제는 홍산공원으로 들어갑니다. 시내 중심부에 위치하고 있어서 가족단위 사람들이 모여 여기서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산머리가 호랑이 같고 암벽이 붉은 색이라 홍산외에 호두산(虎斗山)이라고도 불린다고 합니다. 여기도 여러차례 녹화사업이 이루어졌다고 하죠. 정상으로 가면 진홍탑이 자리잡고 있습니다. 벽돌로 지어져있으며 둥근모양을 하고 있는 라마교 양식입니다. 맞은편 산 꼭대기에는 아파리그 탑이 마주보고 서 있습니다. 두 봉우리 사이에는 그 옛날 우루무치강이 흐르고 있었건만 지금은 시가지에 도로가 가로지르고 있습니다.
탑에서 조금 내려가면 임측서의 동상이 외로운 모습으로 서 있습니다. 임측서가 영국에게 대패하고 화이파에게 밀려나면서 서안으로 유배되었다가 여기로 다시 유배 되었다고 합니다. 여기서 생애를 마치게 되죠. 임측서는 아편의 수입을 막으려다가 결국은 아편전쟁을 불러들이게 되는 장본인이죠. 중국에서는 청렴결백하며 애국자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는 '서양을 알고 서양을 물리치자'는 생각을 가지 사나이 였다고 합니다.
청나라 말에 영국이 중국과의 무역에서 계속 적자를 보자 고심끝에 중국에 수출한 것이 아편이라고 합니다. 더군다나 무역결재 수단이던 은이 떨어지자 아편으로 대체되죠. 당시 중국에서는 진통제로 쓰이고 있었지만 중독성이 있어 수년내에 독약으로 돌변합니다. 당시 아편은 널리 유행하여 관료, 군인, 일반인 할 것 없이 중독되어 엄청난 사회문제가 되어 있습니다. 전 국민이 마약중독자가 되어가는 상황이었죠. 그래서 청나라 정부는 고심끝에 아편엄금을 주장하던 임측서를 광주에 파견하여 압수한 아편을 전량 바다속에 던져버립니다. 서양인 주거지역을 봉쇄하는 초강수도 두고요. 이에 영국은 군대를 파견하여 그 유명한 아편전쟁을 일으키게 됩니다. 여기서 청은 대패를 하고 조정은 화이파가 득세하게 됩니다. 이 과정에서 임측서는 유배의 길을 가게 된 것입니다.
이 지역은 자치구 시각과 북경시각을 따로 쓴다고 합니다. 공무원은 북경시간을 쓰고 자치구 방송이나 현지인(위그르족)은 여기 시간을 쓴다고 하죠. 우리는 북경시간을 기준으로 움직였습니다. 때문에 밤 10시 반이 되어서 밖은 훤합니다. 오늘도 맥주로 여독을 풀며 하루 일정을 마칩니다. 안주로 먹은 과일이며 처음 먹어보는 망고는 정말로 맛있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