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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촌전통자원은 무엇으로 사는가?
하나. ‘없다’는 것에 반기를 든다
평택사람들은 ‘없다’는 것에 익숙하다. 하지만 ‘없다’는 것은 결코 객관적이지 못하다. 어쩌면 그것은 ‘우리 안의 참다운 가치를 잘 모르고 있다’는 의미로 해석될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고장은 수 천 년 농업과 어업을 중심으로 발전했다. 근대 이후에는 철도교통과 항만을 중심으로 도시화, 공업화가 진행되면서 현재는 도농복합도시가 되었다. 수 천 년 농사를 짓고, 고기를 잡고, 소금을 구우며 살아오는 동안 우리 조상들은 다양한 역사와 문화를 남겼다. 하지만 우리는 그것들에 대하여 큰 관심을 가져본 적도, 가치를 이해하려고도 하지 않았다. 현재를 살고 있는 우리의 무관심은 과거의 역사와 문화, 민중들의 소중한 문화유산을 잊히게 하고 생명을 빼앗는 결과를 가져온다. 과거에 생명을 불어 넣는 것, 그것은 관심이다. 관심을 갖고, 질문하고, 가치를 인정하고, 후대에 전승하려 애쓰고, 우수한 콘텐츠로 계발하여 오늘을 살고 있는 평택시민들이 향유케 하는 것이다.
둘. 농촌전통자원연구회
평택농업기술센터 내에 농촌전통자원연구회가 결성된 것은 2012년 9월 초다. ‘농촌전통자원맥잇기사업’의 일환으로 만든 일종의 시민연구조직이다. 서둘러 조직되었지만 평택지역의 역량 있는 활동가들이 결집된 것은 참으로 다행스런 일이었다. 임원을 선출하고 사업계획을 수립하는 과정에서, 우리지역도 공부하고 답사활동을 통하여 우수지역 사례도 공부하자는 쪽으로 방향을 정했다. 사업계획에 따라 10월 8일에는 세미나를 개최하였고, 주말에는 농촌전통문화 콘텐츠 계발의 우수사례로 남원 운봉, 인월지역을 답사하기로 결정하였다.
10월 둘째 주 금요일 오후 우리 회원들은 남원으로 출발하였다. 농업기술센터 담당직원 2명에 회원 11명, 업저버로 참가한 두 명의 임시회원을 포함하여 모두 15명이다. 답사준비는 완벽했다. 남원에 숙소와 일정도 정해두었고, 남원문화원 사무국장 출신의 가이드도 사전 예약하였다고 했다.
이번 답사에서 강의는 두 시간이 할애되었다. 나에게는 내려가는 버스 안에서 강의하라는 옵션이 주어졌다. 버스 안에서의 강의는 무척 불편하다. 회원들과 소통도 불편할뿐더러 영상자료를 활용하는데도 제한을 받는다. 하지만 찬밥 더운밥을 가릴 처지가 아니었다. 강의주제는 평택지역과 마을의 이해로 잡았다. 아무래도 처음 만들어진 조직이다보니 평택지역의 시간과 공간에 대한 객관적 이해가 필요하다고 싶어서였다. 버스가 출발하고 식전행사가 끝난 뒤 마이크를 잡았다. 1시간 반 가까이 웃고 떠들며 강의하다보니 버스는 고속도로 톨게이트를 지나간다. 강의는 체계적이지 못했지만 회원들은 나름 괜찮았다는 평을 해주었다.
셋. 문화로 먹고 사는 비전마을?
어둑한 시간에 운봉에 도착하였다. 우리의 숙소가 있는 전촌은 판소리의 고향 비전마을과 남강을 사이에 두고 있었다. 강둑에는 주차장과 커다란 안내판이 있었으며, 건너편에는 동편제라고 멋스럽게 쓰인 자그마한 체험관이 마주보고 있었다. 체험관에서의 저녁식사 메뉴는 흑돼지 돈가스였다. 한식이 익숙할 우리에게 돈가스 저녁밥은 생경했지만 일행은 즐겁게 맥주잔을 주고받으며 식사를 즐겼다.
운봉의 특산물은 지리산 산채나물과 흑돼지라고 하였다. 한 때 정부시책으로 바래봉에 산양도 사육했던가 본데, 정치적인 일들이 다 그렇지만 1970년대 후반 대관령으로 옮겨갔다고 한다. 지리산 흑돼지는 기대와는 달리 영국산 바크셔라고 하였다. 바크셔는 영국 바크셔지방의 돼지인데 검은 털에 목과 발목에 흰털이 박혀 있는 것이 특징이다. 그와 같은 바크셔가 똥돼지에서 출발한 자그마한 체구의 흑돼지로 둔갑했다는 것이 선뜻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그보다는 현명한 소비자의 이해를 구하는 차원에서라도 ‘토종’이라는 단어를 사제하고 ‘바크셔 흑돼지’라고 하거나, 토종 흑돼지로 사육종을 바꾸는 것이 나을 듯싶었다.
저녁 프로그램은 다도체험과 박성복 국장의 강의였다. 장소를 옮겨 실시한 다도체험은 결론적으로 별로였다. 강사의 전문적 지식과 가치관도 받아들이기 힘들었고, 체험과정도 자연스럽지 못했다. 사실 이런 점은 농촌자원을 콘텐츠화할 때 우리가 눈여겨볼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시골이라는 한계 때문에 수준 높은 전문가를 구하기가 쉽지 않은 것은 분명하지만 어설프게 다도(茶道)니 뭐니 하느니 차라리 마을주민들의 솜씨를 살려 식혜나 수정과, 오미자차 등 전통음료 체험이 더 나을 것 같았다. 박국장의 강의를 매우 의미 깊었다. 오랜 지역언론인, 문화원 사무국장 경험에서 빗어진 체계적이고 객관적인 지식은 나에게도 배울 점이 많았다. 특히 도표를 활용하여 평택지역의 문화자원으로는 무엇이 있고 우리가 지향해야 할 것들은 무엇인가를 조밀하게 설명한 부분은 의미 깊었다.
넷. 답사는 밤에 이뤄진다
박국장의 강의가 끝난 시간은 밤 10시, 일행은 무척 피곤해하였다. 서둘러 마무리를 하고 잠자리에 들자는 조계장님의 제의에 제동을 건 것은 나였다. 나는 각자 자기영역에서 활발하게 활동하는 분들과 허심탄회한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다. 바닥에 신문지를 깔고 투박한 안주와 술 몇 병으로 자리를 폈다. 웃고 떠들다보니 시계는 어느덧 열두 시, 자리를 털고 일어서는 성선생님께 들길 별구경을 가자고 꼬드겼다. 해발 6백미터에 이르는 운봉고원은 지대가 높아 별이 한결 가까이서 보였다. 마을 솔숲 사이로 언뜻언뜻 보이는 별빛도 참으로 아름답고 맑았다.
처음에는 미적대던 여성들 가운데 총무님과 몇 명이 동행하겠다며 따라 나섰다. 회관 옆 대숲을 돌아서 자그마한 솔숲을 지나자 별들이 촘촘히 박힌 하늘이 열렸다. 군데군데 환하게 밝혀 놓은 가로등 불빛만 아니었다면 더 많은 별들이 우릴 반겼을 것이다. 우리가 전통문화발굴 또는 전통문화콘텐츠를 자주 입에 올리지만 실상 농촌마을의 전통문화는 실상 멀리 있는 것이 아니다. 한적한 산간지역 개울가에 산책로를 만든 뒤 군데군데 평상을 놓아 쉼터를 조성하고, 가로등과 전깃불을 모두 끄게 한 뒤 별밤트래킹이나 반딧불과 함께 하는 여름별 관찰하기, 도깨비체험 같은 프로그램을 만든다면 큰 호응을 얻을 것이다. 함께 걸었던 일행 가운데 ‘우리 평택도 이런 풍경이 있는데....’ 라고 중얼거리는 분이 있었다. 내 짐작으로는 유학순 회장이나 조선희 회장님이었을 것이다. 그분들이 오늘밤을 거울삼아 평택들판의 별밤트래킹같은 아름다운 콘텐츠를 만들어주기를 바랐다.
새벽녘 타는 듯한 갈증과 갑갑함에 눈을 떴다. 밤새 추워 감기라도 걸릴까 걱정이 되었던 주인어른의 배려가 도를 지나쳤던가 보다. 시원한 보리차를 들이켜고 다시 자리에 누웠는데 도무지 잠이 오지 않는다. 부지할 수 없는 공간에서는 몸을 뒤척이는 것조차 눈치가 보였다. 살며시 다시 일어나 겉옷을 몸에 걸치고 밖으로 나왔다. 가로등이 많이 꺼진 새벽 하늘에는 북두칠성, 북극성, 카시오페아, 금성 같은 별자리가 또렷하다. 별을 올려다보며 다리를 건너 비전마을로 건너갔다. 먼저 황산대첩비를 답사하려는데 좀 으스스하다. 발길을 돌려 가왕 송홍록, 박초월 고택 주변을 배회하였다. 송홍록과 박초월은 비전마을 출신이지만 평택출신의 예술인 모흥갑, 지영희와 밀접한 관련이 있는 인물이다. 모흥갑은 송홍록과 함께 활동해던 인물로 송홍록에게 가왕(歌王)의 칭호까지 붙여주었고, 근대 여류명창 박초월은 지영희와 함께 국립전통국악고등학교를 세워 박범훈, 김영재, 최경만, 최태현같은 국악계의 거목들을 길러냈던 인물이다. 상념에 잠겨 이곳저곳을 기웃거리다보니 몸에 한기가 스민다. 다시 숙소로 돌아와 잠시 눈을 붙였더니 어느새 날이 밝았다.
다섯. 전통문화는 어떻게 콘텐츠가 되는가?
숙소에서 아침을 먹고 마을회관에 앉아 커피를 마시는데 지리산콘텐츠진흥원(주) 박찬용 대표가 도착하였다. 오늘 우리의 답사를 안내할 가이드라고 하였다. 박국장은 일찍이 안면이 있었는지 반갑게 인사한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박찬용 대표는 남원시 공무원으로도 일했고 남원문화원 사무국장으로 일했던 경력의 소유자였다.
박찬용 대표와 앞전마을과 비전마을을 답사했다. 우리일행이 전통문화자원을 어떻게 콘텐츠화하는지에 관심이 있다는 사실을 사전 인지한 박대표는 운봉지역 전통산업자원을 콘텐츠화한 튀각체험장과 하몽체험장으로 안내했다. 튀각은 지리산을 넘어온 남해안의 김에 조와 기장 소스를 발라 튀긴 음식이었다. 튀각의 맛은 그저 그랬지만 전통의 토속음식을 마을주민들이 직접 참여하여 상품화하고 수익을 나눠 갖는 모습이 매우 인상적이었다. 하몽은 대규모 축사를 운영하는 농가에서 운봉고원의 서늘한 기온을 활용하여 만들어내는 고가의 상품이었다. 비록 많은 자본과 수준 높은 기술이 요구되는 사업이기는 하지만 축산업이 발달한 평택농촌에서 눈여겨 볼만한 수익사업이라고 생각되었다.
비전마을 앞에는 남천이 흐른다. 남원시는 운봉을 거쳐 인월로 연결된 남천 둑방을 지리산 둘레길 제2코스로 활용하고 있었다. 다시 한 번 송홍록, 박녹주 생가를 답사하고 돌아 나오는데 마을 입구 둥구나무 정자에서 판소리 한 판이 벌어졌다. 보통은 국악의 성지 체험관에서 공연 하는가 본데 가끔씩은 둘레길 답사객을 위해 비전마을에서도 공연한다고 했다. 유적이나 유물 그리고 전통문화는 존재하는 것만으로는 콘테츠 활용이 제한적일 수밖에 없는데, 이렇게 열린 공간에 나와 대중들과 호흡하며 공연을 해주니 비전마을도 살고 남원 판소리도 살아나는 것 같아 고개가 끄덕여졌다.
지리산은 높은 산과 수려한 경관으로 등산객의 요람이 되기도 하지만 가축사육, 산나물 채취, 임업과 같은 천혜의 자연자원도 제공한다. 남원시가 지리산을 콘텐츠하기 위해서는 이 같은 자연자원을 활용해야 할 것이다. 우리가 점심을 먹은 곳은 88고속국도 지리산I.C부근의 한식뷔페였다. 박대표의 말로는 본래 남원의 특산품인 이화옹기(주)가 폐교를 구입하여 만든 옹기박물관과 음식체험장이었다고 하는데, 2세 경영이 시작되면서 관심을 갖지 않아 박물관은 거의 폐쇄상태고 식당은 임대를 줘서 운영하고 있다고 말했다. 한식뷔페는 7천원짜리라고는 상상도 할 수 없을 만큼 훌륭한 식단이었다. 특히 지리산 특산의 참취 장아찌와 흑돼지는 비게는 많았지만 혀끝에 고소한 뒷맛이 남을 만큼 맛있어 기분 좋게 포식하였다.
점심식사 뒤에 흥부마을과 인월오일장을 답사했다. 흥부마을은 고전소설 흥부전의 고향이라고 하였다. 박대표는 전통자원에 대해서는 해박했지만 역사전공자는 아닌지 역사와 문화해설에는 미진한 부분이 많았다. 이 같은 미진함을 극복할 수 있는 방법은 정확하고 재밌으며 친절한 문화유산 해설사의 양성뿐이다. 농촌전통자원콘텐츠개발 측면에서도 이 부분을 유념해야 할 것이다.
오일장의 자원화 가능성은 매우 높다. 본래 장시(場市)는 농촌마을의 상품이 교역되는 곳이며 필수품을 구입하는 장소이기도 했지만, 이웃마을 주민들과 만나 이야기를 나누고 정보를 교환하던 프랑스의 카페와 같은 존재였다. 오일장이 전통자원화되어 전국적 명성을 가진 곳은 강원도 정선장과 대화장 정도다. 정선장이 전국적 명성을 갖게 된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강원도 두메산골에 위치하여 전통의 모습을 고스란히 간직했기 때문이었다. 반면 내 고향 서천장이나 부산 자갈치시장은 현대화를 명분으로 본래 위치에서 옮겨 최신 시설을 갖추면서 오히려 전통의 이미지가 탈색되어 자원으로서의 가치를 잃어가고 있다. 인월장은 함양과 남원사람들이 만나고 교류하는 상징적인 장시였다. 일행과 함께 찾아간 시장에는 지리산에서 채취한 오미자나 밤, 감, 산나물이 일부 눈에 띄었지만, 대부분 전국 어디서나 구입할 수 있는 상품들이 대부분이어서 특화된 느낌이 적었다.
여섯. 에필로그
박대표와 마지막으로 찾은 곳은 취나물 재배장이었다. 사장님은 타지에서 사업을 하다가 지리산에 들어와 전업농이 되었다고 하였다. 처음에는 여러 작물을 재배하였고 기술상의 문제로 어려움을 겪었지만 이제는 울창한 지리산 송림숲 2만 5천 평에 취나물밭을 갖게 되었다고 하였다. 남들에게는 단순한 소나무숲이었던 곳이 한 사람의 창조적 인식의 전환으로 1평 당 2~3만원의 수익을 올리는 취나무밭으로 탈바꿈한 현장은 경이로움 자체였다.
남원에서 박대표와 헤어져서 평택으로 돌아왔다. 우리는 너나 할 것 없이 돌아오는 내내 꿈속을 헤멨다. 짧은 1박 2일의 일정이었지만 워낙 강행군이었던 터라 무던히도 고단했던 가 보다. (2012.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