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뮈의 페스트와 코로나 19 사태
1947년 알베르 카뮈(Albert Camus,1913~1960)는 <페스트>라는 전염병을 주제로 한 소설을 발표했다. 작가는 재앙이라는 비극적이고 집단적인 운명에 마주한 인간들이 죽음밖에 없는 상황에서 함께 질병에 대항하며 싸우는 ‘인간과 의지' 라는 주제로 새로운 휴머니즘을 제시한다. <페스트>는 프랑스의 지배를 받고 있는 알제리의 해안 소도시 오랑에 몰아닥친 페스트(흑사병)으로 인하여 하루아침에 고립되고 폐허가 된 도시 안에서 암흑의 시기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과 죽음의 문제를 통해 어떻게 인간의 존엄과 가치를 실현할 것인가에 대한 커다란 울림을 주는 소설이다.
줄거리를 보자면, 평범한 해안 도시 오랑에서 의사로 일하고 있는 리외가 왕진 때문에 진찰실을 나서는 순간, 계단에서 하마터면 죽은 쥐를 밟을 뻔한 일을 시작으로 소설은 막을 연다. 건물 수위 미셸에게 쥐가 있음을 알리지만 미셸은 쥐가 없다고 단언 하고, 리외는 집으로 돌아가던 중 계단에서 피를 토하고 사지를 떨며 죽어가는 쥐를 만난다. 후에 기이하게 죽어가는 쥐가 점점 많아지면서 도시는 순식간에 쥐의 시체로 뒤덮히고 시민 들은 점점 불안해하지만 정부는 대책을 내놓지 못한다.
그러던 어느 날 그 많던 쥐들은 보이지 않고, 수위 미셸은 수많은 몸의 반점과 멍울, 찢어질 듯한 고통, 정신착란 등의 증상을 보이며 죽는다. 페스트의 시작이다. 이제 사람들에게 죽음이 다가올 차례, 오랑 시의 의사들이 한 자리에 모여 페스트를 선언했으나 공무원 들은 현실을 외면하고, 오랑 시의 시민 들은 계속 죽어나간다. 그러던 어느 날 정부에서 페스트 사태를 선언하고 도시 폐쇄령을 내린다. 그 와중에 도시 밖에 있는 아내를 만나기 위해 밖으로 나갈 수 있는 진단서를 써달라고 찾아온 랑베르는 리외에게 거절당하고, 교회의 신부 파늘루는 페스트를 신이 내린 형벌이라고 주장하며 회개하라는 설교를 한다. 그 때 타루라는 묘령의 인물이 리외를 찾아와 잘못된 보건 위생과의 조직을 지적하며, 랑베르와 함께 보건대를 조직하여 페스트와 맞서 싸움을 시작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도시는 방화, 약탈, 거짓 기사, 예언 등 극도의 혼란 속으로 빨려 들어간다. 이후 랑베르는 도시를 탈출할 기회가 있었음에도 그냥 남아 계속 페스트와 싸우고, 오통 판사의 어린 자식과 파늘루 신부마저 페스트에 걸려 죽는다. 리외의 환자 들이 기적적으로 회복하고 도시에 다시 쥐들이 나타나는 등 페스트는 잠잠해지면서 소설은 끝이 난다.
지금, 우리나라뿐만 아닌 전 세계를 강타하고 있는 21세기 최대의 시련 코로나 19 바이러스 사태는 2차 세계대전 중에 쓰인 <페스트>와 별반 상황이 다르지 않다. 중국에서 발생한 코로나 19의 초기대응실패로, 이단 종교인 신천지에서의 집단 감염, 날로 급증하는 환자를 수용할 의료 시설의 부족으로 치료도 못 받고 자가 격리된 환자들의 고통, 자고 일어나면 감염 확진자와 사망자 수가 폭증했다는 뉴스 보도에 내 가족도 감염되어 죽을 지 모른다는 극도의 불안감, 마스크를 사려고 줄지어 늘어선 시민들의 불편함, 정부의 사회적 거리두기 지침에 반하는 일부 교회의 예배 강행, 유흥업소 개장으로 인한 집단 감염, 자가격리자 들의 양심 없는 탈출…이런 와중에도 마스크 사재기로 한 몫 챙기려는 파렴치한 업자들이 있는가 하면, 정부 당국자들은 코로나 사태에 잘 대응하고 있다고 국민여론을 호도하는데 급급하고. 긴급재난지원금을 둘러싸고 여‧야는 정쟁을 벌리고 있다. 물론 감동적인 소식도 없지 않았다. 코로나19가 집중된 대구‧ 경북 지역으로 달려간 의사·간호사·자원 봉사자, 목숨을 걸고 치료하는 의료진 이야기는 많은 사람들에게 잔잔한 감동을 안겨 주었다. 처음부터 끝까지 담담하게 페스트와 싸워온 의사 리외같은 사람들이다.
코로나19와 맞닥뜨린 우리 사회와 페스트에서 만났던 다양한 인물 군상들과 겹쳐지는 것은 모순투성이의 부조리로 채워진 인간의 실존을 작품 주제로 글을 썼던 까뮈가 페스트라는 소설에서 말하고 싶어 했던 것이 지금까지도 유효하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