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백두대간 (육십령-여원재)
육십령-깃대봉-민령-북바위-논개생가 갈림길-전망바위-영취산-백운산-중재
-월경산-광대치-봉화산-치재(철쭉식당 1박)-복성이재-아막산성-시리봉-새맥이재
-사치재-유치삼거리-매요리-고남산-여원재
51,4 Km
2011년 9월 3일 01:30-9월 4일 17:00
백오동, 칼용담, 요물
육십령이라 부른 근거는 어느 고개보다 많은 것 같다.
장수감영에서 육십령까지 육십령, 안의감영에서도 육십리여서 육십령,
고개가 60개나 된다고 해서 붙혀진 이름 육십령고개,
고개를 넘으면서 60명 이상의 도둑을 만난다 하여 육십령이라 했다더니
우리가 찾아간 육십령고개의 고개이름이 궁색하였다.
허기사 요즘은 교통이 좋아 남부터미널서 밤 10시 거창행 버스를 타고
휴게소를 지나 서상Ic에서 택시를 타고 자정을 넘겨 한시가 되어 육
십령에 닿았으니 수많은 고개를 넘었는지 도둑을 만날 수 있었는지 요즘
세상 참 좋아졌다.
수많은 별들이 반짝이는 밤, 고개들어 밤하늘을 쳐다본다.
처음으로 야간산행한다는 친구는 우리보다 더많이 좋아하고
더 많이 밤하늘을 헤아려 본다.
"몇 년 전 가야산 만물상을 걷던 때도
이런 밤하늘였잖아, 같이 다니면 뭐해 기억도 못하는 때국 년"
그리 좋다는 얘기다.
깜깜한 밤하늘에 꿈틀거리는 거대한 빛을 발하고 있는 저
높은 곳에 누굴위해 별이 되고 달이 되었을까,
오랫만에 걸어보는 산중의 언덕에 앉아 공중정원을 한없이
쳐다 봅니다,
반짝이는 별빛이 꽃가루처럼 떨어지는 건 아닌지 몰라.
별빛이 없었다면 우린 그냥 그대로 걷는 것,
깜깜한 산속을 아무 생각없이 있는 그대로 걷는 것인데
폭신한 신작로같은 깃대봉 오름길을 걸으려니
안내판에 쓰여진 맨발 지압 등산로에 좋은 오장육부는
물론이거니 상쾌함까지 더할 나위 없이 좋다.
내 다리가 성하여 이렇게 다닐 수 있는 것만으로 행복해 하자.
벌써 내 친구들은 무릎이 아프다고 산에 못간다는 하지.
다리가 아파 걷지 못한다고 하지, 그런말은 적어도 내가 사는
동안 나는 하지 말아야겠다는 약속을 나 혼자 해 보기로 한다.
10년을 넘께 나라는 년은 허리에 인생을 건거처럼 살지 않았는가.
지독히 아파본 사람, 그래서 더 눈물이 많은 나란 년은누구보다 건강이란
두글자에선 비껴갈 수 없는 사람!!
이런 저런 생각에 이 길을 걷만으로 좋은 난 눈물이 난다.
영남알프스를 걷을 때 만큼 좋다.
신불평전을 수많은 발길 속에 지친 몸으로 걷을 때 만큼 좋다.
억새가 별빛에 한들거린다. 바람결에 출렁인다.
이제 막 피어난 억새꽃의 은빛물결 가을이 성큼 우리곁에 다가왔다.
가을볕은 은빛머리 찰랑이는 억새를 사랑했드래.
따스한 미소로 손내미는 가을햇살을 마다하고 억새꽃은 스쳐
지나가는 바람을 사랑했드래.
고개 돌리면 바로 거기 사랑이 있는데 언제 올지,,,
어데서 불어 올지도 모르는 바람을,,,,이런 시를 읊은 그들의 마음을
조금은 이해할 수 있는지 몰라.
우리보다 더 커있는 억새들이 하얀 국수발처럼 별쳐진 별천지를 걸었다.
1,015Km의 구시봉, 신라와 백제가 전쟁에서 이길 때마다 깃대를
꽂고 소나 말의 먹이통인 "구유"형상이라서 장계주민들의 요구
대로 구시봉으로 전라도 방언을 사용하였다는 봉우리에 뿌연 안개
가 하늘로 오르는 시선까지 덤으로 얻는 색다른 데이트도 할 수
있었다.
올 가을엔 어쩐지 안개가 낀 더 낭만적이고 커다란 마음의 진동이
느껴질질 몰라, 난 사랑을 하고 있으니까,
5년 전 그 때 그 모습 그대로, 아무일 없던 것처럼,
그렇게,,, 이 운무가 거치고 나면 이 어설픈 것도
예전처럼은 아니어도..
앞서간 친구 둘이 다정히 까만 하늘끝 북바위에 앉아 있다.
매미는 어른벌레가 되기까지 땅속에 꼭꼭 숨어 자라는 매미의 비밀스런
애벌레의 7년을 기다려 한 달을 이 세상에 나와 짧은 생을 살다 간단다.
임진왜란 때 일본군이 진주성을 유린하고 수많은 양민을 학살하는 등
만행을 저지른것에 의분한 논개는 기녀로써 왜장 게야무라 후미스케를
끌어안고 남강에 뛰어들어 함께 죽은 논개의 이야기가 "진주보다 더
아름답다"고 했던가,
논개의 슬픔과 눈물과 비애가 이 밤의 이미지들로 가득차 있는 산길위
를 걷는다고 생각해 보자.
암컷매미를 부르는 수컷매미의 울음소리가 더 크게 들려왔다.
욕구를 채우려면 '그래, 많이 울고 , 원없이 사랑하다 가거라"
몇 년을 어둡고 습한 곳에서 기다린 큰 소리가 논개의 뜨거운
정열과 애국충절의 숨소리가 들리듯 큰 울음소리였다.
오른쪽 장수면 주촌에 오동저수지가 내려다 보이는 논개 생가가 어림되고
왼쪽 함양군 서상면 방지마을에 그 분의 묘가 있으니 진주의 촉석루
의암 절벽에 적장을 껴안고 몸을 날린 조선 기생을 생각하니 처연한
마음으로 민령을 넘었다.
벌써 어둠이 거치고 밤새 이슬이 내리고 황금빛 아침을 맞는 함양에 고운빛이
밝아온다.
바로 이 산등성이 덕운봉 너머 거창땅 금원, 기백, 황석산 어귀에 펼쳐지는 광
활한 자연의 신비가 산, 산, 산, 산을 너머 산이 되었구나.
억새밭에 걸었던 밤하늘, 논개의 눈물이 이 햇살로 말려 주길 바래"
덕운봉 전망바위에서 아침상을 차렸다. 7시가 아침 밥먹는 시간이라고 미리 알려준
시간, 먹고 가자.
등짝에 달았던 도시락을 꺼내 이것저것 펼쳐 보이니 한 상이 된다.
호두조림도 달고, 마늘장아찌도 달고, 달달 볶은 김치도 달고,
그래 이 세상 이보다 더 달은 것 있으랴,
무엇보다 이 세상 펼쳐진 이 환한 산 위에서 먹는 그 풍경이 진수성찬이지.
아침 달고가 힘이 됐다. 걸어도 걸어도 좋았다.
수없이 걷는 산길 위 흙길을 하루 종일 걸어도 좋다.
이런 길들을 칼 친구는 원했었단다. 밤새 걸었던 억새도,
큰 소리로 울던 매미소리도, 밤하늘 펼쳐진 별빛도 보면서
걸었던 그 길들을 생각하면 이제 시간이 흘러 흘러서
추억으로 남을 것,
융단을 깔아 놓은 듯 산들이 더 가깝게 느껴지는 건 지금 산릉
위에 이야기가 꽃이 되고 산이 되어서 일께다.
밤새 걸어 영취산에 온 우리를 보고 "정신 나갔어요?"하는 어떤
아저씨의 말 "우린 미쳤어요!!"하는 대답과 무엇이 달라,
이 곳의 출발점, 영취산에서 무령고개를 넘어 장안산으로 이어
지는 금남호남정맥의 진안 마이산이 문뜩 생각났다.
산죽을 헤치며 우린 또 걸었다.
흰 구름산이란 뜻의 백운산중 이곳이 제일 높단다.
고도가 그리 높아 보이지 않는데 지도위에 표시가 1,279M
이곳 백운산은 눈과 구름이 어느 산보다 많단다.
백운산에 서서야 지리산을 쳐다 보았다.
지리산의 봉우리들이 하늘금아래 펼쳐 보였다.
자세히 거창쯤 되어 보이는 곳에 가늠해 보았다,
군사시설이 있고 유난히 뾰족한 오도산이 들어왔다.
가야천지 종주할 때 깜깜한 밤 강풍이 불어 지도를
펼쳐 볼 수 없을 때 길을 찾지 못해 구해준 인연이
생각났다. 그런 뜨거운 산정이 있던 때도 있었는데,
옛시간이 자꾸 흘러가는 걸 난 잡으려 하니
마음대로 되지 않겠지
무심코 걸었더니 월경산이 있었다.
아주 조그마한 풀밭, 정상같지도 않은 분지에 정상표시를 해놓은 걸 보았다.
자세히 보니 월경산이라 한 이름값을 생각해 보았다.
미친년 엉덩이짝에 비하면 딱 안성마춤인것 같아 빙그레 웃어 보았다.
나도 모르게 월경산이 대간 길중 조금 비껴 있다는 사실도 모르고 올랐다가
칼한테 전화를 한 후 지도를 펼쳐보이니 나는 헤메고 있었던 거다.
한심한 지고..
오고 가는 사람 줄줄이 달아 표지기 빨래줄인양
많기도 하다.
오랫만에 바위를 보니 칼은 폼을 잡은 듯 했다.
하루 종일 내내 흙길만 걸었으니 그럴만도 하지.
뒤돌아 보지도 않고 몇 시간을 걷고 놀고 했는데 이제사 걸어온 산을
쳐다 보았다.
월경산 너머 백운산이 뾰족히 들어왔다. 멀리서 보아도 저 백운산은
금발 알아 볼 수 있을 것 같았다. 흰 줄이 쳐진 것처럼 암반이 있어서,
지리산이 시작되는 함양이 고즈넉한 농촌 마을로 눈에 들어왔다.
논개의 묘가 있는 저 함양에는 누각이 어느 고장보다 많이 있는
곳이다.
구로정, 원계정, 하한정, 영귀정, 모운정등과
호는 고운이고 시호는 문장호인 최치원은 신라 최고의 문장가요
우리나라 한묵학의 원조이고 12세 때 당나라에 유학하여 18세에
과거에 급제했다고 전하니 함양 최고의 인물이었던 것 같다.
밤에 걸었던 억새밭이 또 있었다.
봉화산 가는 길에
산릉은 나무도 없고 오로지 억새만 있는 듯
가도 가도 억새밭,
누워있는 듯한 큰 소나무가 억새밭의 운치를 더했다.
칼은 아무 생각이 없는 듯 뒤도 돌아 보지 않았다.
나란 여자는 안중에도 없지
오로지 혼자서 즐기며 걷고,
하늘에 비치는 억새가 더 아름답다.
지금이 가장 좋다라고 말하고 싶다.
이제 지리산으로 가는 길 멀지 않은 듯 하다.
펼쳐지는 지리산릉이 더 가까이 들어 오면서
주릉의 산군들이 하늘금을 그리고 있었다.
얼마 남지 않은 저 길들 , 담 여정은 저기에서
오늘처럼 또 걸어가겠지.
여름내내 아무일 없었던 것처럼,
유난히 잦은 비가 뿌렸던 올 여름이었는데
하루가 멀다하고 내렸던 폭우가 내렸었는데
바람타고 흔들거리는 억새는 하늘공원을 만들어 주었다.
내 걸어가는 길도 억새꽃으로 온통 억새풀밭,
반바지를 입고 온 난 내다리가 억새칼로 찢어 놓은 듯 갈기갈기 할퀴어 놓았다.
이리 걷다 내려가면 누구와 칼부림하고 싸운 것 같은 팔과 얼굴,어찌할꼬!!
봉화산 정상
억새밭만 보이는 이 광할한 하늘정원 억새가 봉화산에 올려 놓았다.
지나온 길을 되돌아 보며 나무테크에 앉았다. 봄에는 철쭉이 장관을 이루고 있을 산릉,
굽어보면 봄하늘에 한들거릴 울긋불긋 철쭉꽃, 뭉개구름 앞세워 있는 높아 가는 가을하늘
은 봄을 그리워 하리라!!
치재
나무테크에서 바라다 보면 봉화산은 철쭉동산으로 더 화려한 봄날을 기다하리라.
아영쪽 계단을 따라 치재를 내려왔다. 철쭉식당에 전화하여 하룻밤 유숙할 곳
을 부탁하여 찾아간 그 곳은 빈집, 주인아줌마는 포도밭에 포도따러 가고 우린 긴
여정을 내려 놓았다.
백두대간을 하면서 민박집도 여러 곳 거쳐 왔는데 시골인심은 그래도 느낄만 한 곳
이라 생각했는데 생각했던 것보다 많이 달라 있었다. 대간꾼들이 만들어 놓은 아
줌마의 인심을 누가 탓하리,
쌀을 사서 밥을 안치고 묵은 김치 한조각 주길래 김치에 참치캔 한통사서 부글부글
끓여 반찬이자 찌게를 만들어 내일 아침까지 먹을 수 있었다.
가스1통, 맥주 몇병을 사고 포도 3송이, 초코파이 1통, "우와 비싸요"
그래도 우리가 이렇게 하룻밤을 오붓하게 즐길 수 있는 좋았던 기분만 생각하기로
하자
민박집 아줌마는 흥부의 마음을 안 닮았는가 보다.
이 곳에서 얼마 떨어져 있지 않은 곳에 생가와 묘와 공원을 알리는 복성이재에서
2일째 산행을 시작했다.
아막산성
복성이재에서 2개의 임도를 넘어 너덜길위에 아막산성 터였다.
백제와 신라의 쟁탈지였고 북동쪽 지대가 높은 것으로 보아 신라에서 쌓은 것
같다라는 추측일 뿐 허물어진 성곽을 따라 한 동안 걸을 수 있었다.
흙길위 고마니풀은 시골 도랑길 아무데나 수북히 자라 돼지 먹이감이 되었고
뽀빠이 과자속에 들어 있던 별사탕도 생각나고 이러저런 어린시절 추억창고에
서 나오질 못했다.
소나무가 제멋대로 자라 구불구불 소나무숲이 되었다.
지리산휴게소
고남산이 손짓했다, 양팔 벌려 큰 환영을 하는 것처럼 우릴 기다리고 있는 것 같다.
대간을 3번째 하고 있다는 부산에서 온 아저씨들을 만나 이러 저런 얘기를 하면서
사치재까지 왔다. 88고속도로만 만나도 지리산을 다 온것 같은 기분이라고 친구는
말했다,
그래, 여기까지만 와도 누가 반가이 맞아줄 것 같은 푸근함 , 지리산이 품고 있는
엄마와 같은 품속, 지리산은 그렇게 그렇게 덕두봉에서 바래봉으로 큰고리봉으로
부터 서서히 다가오고 있었다.
할머니가 찍어준 사진
칠십은 넘으신것 같은데 오메 가메 대간꾼들
사진을 많이 찍어준 듯
제법 사진을 잘 찍으셨다.
언제 샷타를 눌렀는지 "찍었다"하시면서..빙그레
웃으시던 모습,,
그지?
유치삼거리에 오자 할머니 모습이 보였다. 마치 우리를 기다리고 계신 것처럼,
"할머니" 손을 들어 할머니를 불렀다.
운봉 십승지를 할 때 할머니와 한 이불속에서 이야기하며 하룻 밤을 묵던 날 할
머니의 인정을 잊을 수 가 없었다. 그랬는데 오늘 또 할머니를 뵐 수 있었다.
할머니는 날 알아보지 못하실지 몰라도 난 그 날을 기억하고 있다.
할머니 왈 "한 번 갔으면 그만이지 왜 또 와"
난 "할머니가 보고 싶어 왔지요"
그 때 할머니가 김치국에 밥말아 주시던 한 끼가 그렇게도 맛났는데 묵은김치와
걸쭉한 막걸리 한 잔이 목구멍을 타고 내려갔다.
"카 시원타"
대전에서 왔다는 대간꾼들을 만나 또 한 잔 떨어지지 않는 발길로 "할머니 건강하
시고 이 다음 또 이 길을 걷게 된다면 또 뵐 수 있겠죠!!"
고남산 오름길에 물봉선이 가득 피었다.
내 친구는 노래를 불렀다고 했다. 너무 좋아서, 소나무숲이 좋고 우리가 걷는
이 길이 좋고 할머니가 따라 준 막걸리에 취해 좋고,
난 울었다, 울 엄마도 생각나고, 내가 좋아하는 사람도 생각나고,
자연의 아름다운 산촌에 흔들리는 풀꽃으로 활짝 웃어 보였다.
고남산 헬기장에도 억새는 가득했다.
억새 너머로 아직도 백운산과 매봉이 내 모습을 지켜보고 있는 것
같았다.
매요리 할머니는 애들 키울 때 이곳으로 손잡고 소풍오셨다고 들었다.
할머니 뿐이겠는가, 운봉에서도 소풍지로 으뜸이었을 것 같은 고남산,
운봉에서 인월로 넘어가는 황산에서 덕두봉과 바래봉이 저편에 대한
이미지가 바람에 스치는 억새가 어루만져 준다.
소나무 숲을 걸어 가면서 어제와 오늘의 이야기가 물살처럼 밀려갔다
밀려오는 것 같다. 여원재로 가면서 어딘가에 나풀거릴 억새와 산죽길,
민령의 논개와 흥부골, 그리고 우리가 나누었던 이틀 간의 향취와 여운은
이 가을로 가는 국화 향기만큼이나 될 것 같았다.
졸졸 내려가는 또랑물에 주옥같은 땀방울을 닦아 보냈다.
발끝에서 느껴지던 억새 숲의 푹신푹신한 이야기들을 추억창고에 쌓아
두련다,
첫댓글 자주가는 광교산도 밤에 한번씩 가면 알바를 많이 하는데
대간길을 밤에 했다
정말로 존경 합니다.
대간길은 행길, 눈만 뜨면 걷죠
힘든 여정이 더 선연한 색깔과 더 짙은 향기를 지니듯 그렇게 아름다운 산기가 쓰여지는거지!!!!
음~~원더풀
친구 산기를 보니 밤하늘의 별빛 오랜만의 친구와 밤 산행 넘 행복했어 친구들아 고맙다. 그저 행복 만땅ㅋㅋㅋㅋㅋㅋㅋㅋㅋ
정영이가 행복했다니 덩달아 좋아...~~ㅎ
사진기를 잃어버려 사진한장없는 허전함을
요물사진으로 채웠어.......
두친구들 수고했고~
담구간 얼른가고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