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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일 밤 9시 30분. 집을 나온 서연이는 갈 곳이 없다. 서울 신림역 사거리 유흥가 한복판에 서연이가 혼자 서 있다. [김경빈 기자] | |
정수(17·가명)도 그중 하나다. 또래 아이들처럼 대학 입시에 대한 고민은 없다. 대신 오늘 하루 끼니를 어떻게 때울지가 걱정이다. 사실 돈 문제는 고통스럽긴 하지만 별로 낯설진 않다. 초등학교 입학 무렵 닥친 외환위기로 정수는 중산층에서 빈민층으로 떨어진다는 게 뭔지 알게 됐다. 건축업을 하던 아버지가 직장을 잃고 생활고에 시달리자 엄마는 집을 나갔다. 그래도 당시엔 “재기하겠다”고 다짐하는 아버지가 중심을 잡고 있던 터라 정수는 완전하진 않아도 가족의 울타리 안에 있었다. 그러나 최근 두 번째 맞은 경제위기는 정수를 아예 ‘거리의 아이’로 내몰았다. 지난해 말 경기 불황으로 일감이 뚝 끊기자 아버지는 집에 머물며 하루 종일 화만 냈다. “집에서 빈둥거리느니 차라리 집을 나가라”는 폭언은 예사였다. 결국 가출을 택했다. 중졸 학력이 전부인 정수에겐 꿈이 없다. 아니, 내일도 없다. 당장 오늘 필요한 돈을 어떻게 구하느냐가 유일한 관심사다.
이자형 (16·가명)군이 8일 천호역 인근 분식집에서 청소년 쉼터 설문지를 작성하고 있다. 이군의 손은 겨울 바람으로 심하게 터 있다. 이군은 20일 정도 제대로 씻지 못했다고 한다. | |
경찰청에 접수된 청소년 가출 신고는 2007년 1만8636건에서 2008년 5만322건(11월 현재)으로 크게 늘었다. 복지부는 신고하지 않은 아이들을 포함하면 실제로는 훨씬 많다고 본다. 청소년 보호기관에서 집으로 연락해도 “데려갈 생각이 없다”는 답이 적지 않다고 한다. 이들에게 가족은 먼 얘기다.
갈 데가 마땅하지 않다 보니 전국의 청소년 쉼터를 전전하는 아이들도 있다.
은주(17·가명)도 그런 아이다. 1999년 아빠의 노래방 사업이 망하자 엄마는 가출했다. 겨우 경제적 안정을 되찾았지만 아빠는 은주를 제대로 돌볼 여유가 없었다. 학교를 빼먹어도 아빠나 선생님 누구도 나무라지 않았다. 2008년 아빠가 운영하던 인력사무소가 다시 문을 닫게 되자 은주는 집을 나와 전국의 쉼터를 전전하고 있다.
전국 77개의 쉼터는 연간 1만2000~1만3000명의 청소년을 짧게는 하루에서 길게는 2년까지 수용한다. 그러나 수요에 비해 턱없이 부족하다. 더 큰 문제는 쉼터를 찾은 아이들이 정상적인 교육을 받고 자립할 수 있도록 도와주지 못한다는 데 있다.
가톨릭대 조성호(심리학과) 교수는 “가출 청소년은 학업을 이어 가기 어려운 경우가 대부분이며 이러다 보면 좋은 일자리를 얻을 기회를 잡을 수가 없다”며 “그러나 쉼터는 일시적으로 숙식을 해결해 주고 다시 내보내기 때문에 결국 빈곤·무지를 대물림하게 된다”고 말했다. 조 교수는 “이 문제는 장기적으로 우리 사회에 큰 부담을 안길 것”이라고 우려했다.
거리의 10대들은 대부분 중학교를 겨우 졸업했거나 고교 중퇴 학력이 전부다. 이 학력으로는 나이를 먹어도 번듯한 직장을 구할 수 없다. 그렇다 보니 나쁜 유혹에 쉽게 빠진다.
대전대 남미애(사회복지) 교수팀의 ‘가출 청소년 및 청소년 쉼터 실태 조사’(2007년)에 따르면 쉼터에 입소한 가출 청소년 대부분이 구걸·앵벌이(78.8%·복수 응답)를 하거나, 훔치거나 빼앗아(31.8%·복수 응답) 용돈·생활비를 마련했다. 아르바이트할 때 용돈과 생활비 마련을 위해 성매매를 했다는 응답도 8.5%나 됐다. 숙명여대 김광웅(아동복지학과) 교수는 “미국의 사례를 보면 가정경제의 파탄이 부모의 일관성 없는 훈육으로 이어져 결국 청소년들의 비행을 초래했다”며 “아동·청소년 빈곤을 개인의 문제로 방치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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