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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리반은 왜 싸우는가?
법은 지배이데올로기이다. 통치의 수단으로서 존재하며 1965년 이전의 미국에서처럼 백인들만의 참정권 보장, 우리나라의 7, 80년대식 체육관선거, 국가보안법, 집시법처럼 때로는 무자비한 폭력으로 나타난다. 그러니 법은 절대적일 수 없고, 늘 맞서 싸우는 자들에 의해 상대화된다. 2000년대 들어서면서 만들어진 이 땅의 상가임대차보호법이나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사업법(도정법) 또한 예외일 수 없다. 경기부양을 목적으로 건설사의 개발 사업을 용이하게 하느라 만들어진 두 법은 삶의 터전이 곧 목숨인 이들에게는 차라리 없느니만 못한 법이다.
그런데도 이 나라의 건설업 비중이 OECD 평균 5-7%보다 무려 세 배가 넘는 17-28%의 경제구조로 유지되는 한 이 법은 좀처럼 바뀌지 않을 것이다. 개발이 계속될수록 땅값은 상승한다. 돈 있는 자들은 땅 투기에 열을 올린다. 투기와 개발이 맞물려 미쳐 돌아가니 이 나라 산업이 온전히 돌아갈 리 없다. 건설업 비중은 날이 갈수록 높아만 간다. 땅값 폭등으로 인해 땅 부자 재벌들 외에는 아무도 공장을 돌릴 수 없게 될 지경이다. 그런데도 기형적이고 편중된 건설업 위주의 경제구조를 고쳐나가기는커녕 단기 경기부양을 목적으로 오히려 건설업에만 목을 매고 있으니, 땅 없는 서민들에겐 천추의 한이 되는 재앙이 아닐 수 없다.
건강한 경제구조를 위해서라도 건설업자 위주의 법은 바뀌어야 한다. 일례로 “상가세입자는 5년간 영업권을 보장받는다”는 상가임대차보호법 제10조만 해도 상가세입자들의 현실을 전혀 모르는 법조항일진대, 곧바로 단서조항까지 달아 “재개발, 재건축일 경우엔 예외”라고 하여 5년의 영업권조차 박탈하고 있다. 그 얼마나 노골적으로 건설업자의 손을 들어주는 법인가.
도정법은 한술 더 뜬다. 서울 왕십리는 ‘주택재개발’이기 때문에 영업 손실에 대한 보상이 있고, 상도동은 ‘조합주택개발’이기 때문에 이사비용만 던져주면서 쫓아내도 된다. 심지어 도정법은 주무르는 대로 변화무쌍해지는 찰흙덩이 꼴이다. 건설사가 결정하는 대로 ‘재개발이 재건축 지역이 될 수도 있고, 재건축이 재개발 지역’이 될 수도 있다. 건설사가 토지나 건물매입이 손쉽다고 생각하면 재건축으로 결정하고, 어렵다고 생각하면 재개발로 결정할 수 있다는 얘기다.
물론 재개발일 경우엔 상가세입자들에게 영업보상 4개월에 시설투자에 대한 보상의 의무가 있고, 재건축일 경우엔 그냥 알몸으로 쫓아내도 된다. 생계터전을 닦아온 기존의 생명은 죽거나 말거나, 여하한 개발을 쉽게 하여 건설 붐을 끝없이 일으키겠다는 데에 그 목적을 둔 것이 도정법이라는 말이다.
하여 개발업자만을 위하는 악법에는 도대체 맞서 싸우는 길밖에 없다. 비록 범법자로 내몰리고, 떼쓰는 자들로 비쳐질지라도 그 길 말고는 전혀 길이 없다.
악법에 맞서는 길
악법에 맞서는 길은 극한의 삶을 강요한다. 아니 강제철거에 맞서는 길이 순탄하다면 그게 오히려 이상하다. 버림받은 생존권, 인권유린, 개를 패도 지탄받는 시대에 인간을 패는 야만의 폭력이 집중되는 곳, 강제철거 현장은 그런 곳이다.
건설사들은 하나같이 속전속결을 원한다. PF(Project Financing, 건축지원자금)자금으로 공사를 진행하는 터라, 대출이자의 부담을 덜기 위해 필연의 강행군을 한다. 물론 PF자금이라는 게 특별한 담보도 없이 건설사업의 성공 가능성만 보고 빌려오는 대규모 자금이다 보니, 건설사들은 이래저래 한국사회의 황태자임이 분명하다.
어쨌든 건설사들은 손에 피를 묻히지 않고 속도전을 치르기 위해 거의 언제나 철거용역업체를 끌어들인다. 허가받은 조폭집단인 철거용역업체는 결코 실망을 주지 않는다. “법대로!”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그것들은 일사분란하게 움직인다. 강제철거에 맞서 법이 잘못됐다고, 생계터전을 보장하라고 철거민들이 외치면 그것들은 짓뭉개기에 급급하다. 그것들은 모든 일을 합법적으로 하고 있다는 기묘한 과신 탓인지 패고, 집어던지고, 때려 부수는 것조차 합법이라고 믿는 것 같다.
그건 역설이다. 범법자들을 징치한다는 자신감 때문일까? 아니면 철거민들을 하루라도 빨리 쫓아낼수록 더 많은 돈을 쥘 수 있다는 당근 때문일까? 여하튼 그것들은 합법을 가장한 폭력을 휘두르면서도 전혀 죄책감조차 없다.
여기에는 이유가 있다. 원래 자신의 추함을 감추기 위해 항용 남용하는 수법이 남을 매도하는 것이다. 건설사들이 꼭 그렇다. 담보물이 없는 서민들은 상상할 수도 없는 수백, 수천억 원대의 PF자금 지원(부산저축은행 사건이 그 좋은 예다), 상가임대차보호법과 도정법이라는 명분 확실한 법적 지원처럼 건설사들은 실인즉 대한민국의 부끄러운 황태자들이다. 뿐만 아니라 열 배, 스물아홉 배(두리반 일대를 매입할 때 7평짜리 부동산중개소를 실제로 그렇게 매입했다)까지 웃돈을 들여 개발 부지를 매입하는 데서도 알 수 있듯, 돈을 벌기 위해서라면 상도덕이고 나발이고 없다. 그러면서도 상가세입자들을 내몰 때는 전형적인 냉혈한이 된다. 영업보상이나 시설투자에 대한 보상도 없이 쫓겨나게 된 상가세입자들이 억울함을 호소하면 건설사들은 폭력은 기본이고, ‘권리금’ 얘기까지 전가의 보도처럼 들고 나온다.
권리금! 말 그대로 그것은 상가세입자들의 권리지만, 달리 보면 상가세입자들의 치명적인 약한 고리이기도 하다. 건설사나 건물주들은 그 약점을 들고 나온다.
“권리금? 언제 건물주에게 권리금 준 적 있어?”
미안하지만 결론부터 말하자면 상가세입자들은 건물주에게 누누이 권리금을 줬다. 적어도 G20을 치르면 2조원의 경제적 효과가 있느니 마느니 하는 허상의 숫자놀음이 아니라, 눈에 보이는 실제적 권리금을 줬다는 얘기다.
두리반 인근에 있는 SP빌딩을 예로 들어보자. SP빌딩은 건물가치가 7백억 원대에 이르는 엄청난 곳이다. 한때 상가세입자들은 SP빌딩에서 점포를 열고 영업을 시작했다. SP빌딩에 들어간 상가세입자들은 전기시설을 하고, 주방을 꾸미고, 환기시설을 했다. 고군분투의 홍보기간을 거쳐 짧게는 8개월, 길게는 1년 이상 영업을 했으나 적자운영의 벽을 넘지 못하고 끝내 문을 닫았다. 적자운영을 하는 동안 SP빌딩 측은 월세를 깎아주거나 적극적으로 홍보에 나선 적이 결코 없었다. 만약 상가세입자들의 노력으로 손님이 모여들어 장사가 잘 됐다면 SP빌딩의 가치는 졸지에 9백억, 1천억 원대로 뛰었을 것이다. 건물주는 권리금 그 이상의 돈을 상가세입자들로부터 챙겼다는 얘기다. 하지만 상가세입자들은 죽었다. SP빌딩도 죽었다. SP빌딩은 끝내 경매로 나왔다. 경매가는 5백6십억 원대로 곤두박질쳤다.
권리금이란 그렇다. 상가세입자들이 손님을 끌어 모아 점포를 살리면 당연히 건물도 살아난다. 상가세입자들이 권리금을 주장할 때는 건물의 가치도 상승해 있고 월세도 상승해 있다. 소위 권리금 장사를 목적으로 하는 몇몇 부도덕한 상가세입자들로 인해 권리금 문제 자체를 거론할 수 없다면, 이는 빈대 잡으려다 초가삼간 태우는 꼴이다.
인정해야 한다. 권리금은 상가세입자들의 약한 고리가 아니라 강한 연결부위임을 인정해야 한다. 콘크리트 덩어리에 구멍만 뚫려 있는 건물에 들어가 열흘이고 보름이고 점포를 꾸미는 과정을 인정해야 한다.
하수구와 개수대를 만들어 주방을 꾸미고 집기까지 비치하고 나면 상가세입자들은 홀을 꾸미기 시작한다. 구멍이 뚫려 있는 전면을 강화유리로 꾸미고, 현관을 낸다. 바닥은 모래를 채우고 타일을 깔거나 방음 패널을 깐다. 뒤이어 전기시설을 하고, 벽을 꾸미고, 환기시설을 하고, 테이블세트와 계산대까지 시설한다. 마지막으로 화장실까지 손보고 나서 영업을 시작하지만, 장사라는 게 하루아침에 빛을 보는 게 아니다. 3개월, 또는 6개월의 기나긴 적자의 터널을 지나는 동안 살아남기 위해 모진 노력을 다한다. 그 같은 자본 투여와 노력 끝에 점포를 살려냈다면 당연히 그것을 인정해야 하는 게 아닌가. 겨우 흑자를 낼 만하자 건물주가 바뀌었으니 나가라고 하거나, 건설사가 매입했으니 알몸으로 나가라고 한다면 이는 가히 도덕적 살인에 가깝다. 불행히도 강제철거에 맞서 농성하는 상가세입자들 대부분이 그 같은 처지에 놓여 있다. 그러니 철거농성은 사느냐 죽느냐의 문제로 귀결된다.
강제철거에 맞선 두리반의 최종목표
분명히 밝히지만 연도가 헷갈리면 안 된다. 두리반은 2005년 3월에 문을 열었다.
마포구청이 두리반 일대를 지구단위계획 지역으로 발표한 것은 이듬해인 2006년 3월 16일이다.
GS건설은 유령회사 남전디앤씨를 내세워 두리반 일대를 매입하기 시작했다. 2007년의 일이다.
GS건설의 유령회사가 두리반 일대 건물 중 제일 먼저 매입한 곳은 라틴댄스클럽이 있는 4층 건물이다. 그들은 건물을 매입하자마자 1층부터 4층까지 모든 유리창을 깨뜨려버렸다. 건물 외벽에는 ‘철거’ ‘위험’ ‘접근금지’ 따위의 글자를 써갈겨놓았다. 지하에 자리한 라틴댄스클럽은 졸지에 손님의 발길이 끊겼다. 명도소송에 맞서 11세대 상가세입자들이 법정싸움을 할 때 라틴댄스클럽은 이미 고사돼버렸다.
상가임대차보호법 10조의 예외조항에 걸려 11세대 상가세입자들이 패소했을 때 라틴댄스클럽은 항소를 포기했다. 6개월 넘게 영업을 방해받아온 터라 항소할 비용조차 마련할 길이 없었던 것이다.
1심판결로 끝장난 라틴댄스클럽은 발가벗겨진 채 쫓겨났다. 미쳐버릴 것 같은 억울함 때문에 목숨 걸고 싸우겠다고 했으나 소용없는 일이었다. 항소한 덕에 폭력적 위협으로부터 자유로웠던 나머지 상가들은 어떠했는가? 두리반은 실외기를 니퍼로 끊어 에어컨을 고장 내는 가벼운(?) 해코지를 당했을 뿐이다. 두리반 지하에 있던 단란주점도 똑같은 해코지를 당했다. 아름다운꽃집은 수도가 끊긴 채로 영업을 계속했다.
항소심에서 패한 뒤, 상가세입자들은 유령회사의 각개격파에 맥없이 무너져 뿔뿔이 흩어졌다. 두리반은 2009년 12월 24일, 강제로 들려 나갔다. 막아놓은 철판을 뜯고 되돌아와 농성을 시작한 지는 2011년 2월 20일로 420일을 넘어섰다.
강제철거에 맞서 두리반이 농성하는 이유는 분명하다. 개발이익금을 노리는 건설투기꾼 GS건설에게 생계터전인 두리반을 다시 열 수 있도록 해달라는 것이다. 개발악법을 이용해 5년도 안된 두리반을 합법입네 하면서 빼앗았으니, 그 법을 인정할 수 없는 두리반에게 생계터전을 기어이 마련해달라는 것이다. 이는 비정규직으로 일하다가 생계터전에서 쫓겨난 기륭전자 분회원들의 복직투쟁과 다르지 않다. 비정규직으로 일하다가 하루아침에 생계터전을 잃고 농성에 돌입했던 홍대 미화노동자들의 복직투쟁과도 전혀 다르지 않다.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그리고 복직의 목표 대신 몇 푼의 보상금에 목을 맸다면 기륭 분회원들은 어찌되었을까. 그들은 쉽게 가는 길 대신 고난의 위대한 길을 택했다.
두리반은 지금 기로에 놓여 있다. 지난해 연말부터 GS건설은 철거용역업체인 삼오진을 내세워 두리반을 정리하고자 한다. 결코 자신들은 피를 묻히지 않겠다는 간농이다. 삼오진은 왕십리뉴타운과 사당동 정금마을을 정리한 더러운 경력을 갖고 있다. 어떤 악랄한 방법으로 폭력을 자행했는지 두리반은 익히 알고 있다. 거간꾼 삼오진은 두리반대책위를 향해 보상금 지급 운운하면서 협상을 종용하고 있다. 두리반대책위는 두리반 자리에 건물이 들어서면 그 한 귀퉁이에 영업장소를 마련해달라고 요구하고 있다. 만약 그게 현실적으로 어렵다면 인근에 두리반이 다시 문을 여는 것, 그게 최종목표라고 분명히 밝혔다.
앞날은 불투명하다. 삼오진은 폭력적으로 두리반 문제를 해결할지 말지 목하 고민 중일 것이다. 두리반은 분명한 길로 가는 가닥만 잡아놓고 있다. 앞날은 불투명하지만 최종적으로 두리반은 다시 문을 열 것이다. 돈에 눈먼 자들과의 싸움에서 생계터전을 되찾고자 하는 눈 밝은 자가 진다면 그게 말이 되겠는가?
두리반대책위원회
김성섭(보임기획 대표, 성미산주민대책위), 김은영(한국교회인권센터 사무국장), 김종수(촛불을 켜는 그리스도인들 집행위원장), 윤성일(민주노동당 마포구위원장), 정경섭(진보신당 마포구당원협의회 위원장), 조약골(인권활동가), 최헌국(예수살기 총무), 황규관(한국작가회의 자유실천위원회 부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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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사장님의 어쩌면 힘들고 피곤한 희생이 우리나라 세입자들의 권익증진에 큰 도움을 주시는것 같아 저희어머님도 자그마한 가게 월세내시며 장사하시는데 세입자로 장사를하시는분들은 따뜻하고 감사한 마음입니다..
흠...가까이 살면서 이런일이 있는지 자세히 몰랐다니..이번 공연에 참가합니다.
ㅋ 두리반에 함 가본다는 것이 실천으로 이루어지지는 않는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