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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가리스 vs. 『인간은 왜 늙는가』
『인간은 왜 늙는가 – 진화로 풀어보는 노화의 수수께끼』, 스티븐
어스태드 지음,
『Why We Age : What Science Is
Discovering about the Body's Journey Through Life』,
Steven N. Austad, 1997.
이 글을 쓰는 이유는 두 가지다. 첫째, 장수 마을에 대한 미신을 폭로하기 위해서다. 둘째, 『인간은 왜
늙는가』라는 책을
소개하기 위해서이다.
20세기
후반에 와서야 우리는 노화의 미스터리를 어느 정도 풀기 시작했다. 이 책은 매우 읽기 쉬우며 노화의
문제에 대한 미신을 폭로하고 과학적인 이론들을 잘 설명하고 있다. 아쉬운 점이 있다면 1997년에 출간된 책이기 때문에 그 이후의 발견들이 빠져 있을 수 밖에 없다는 점이다.
장수 마을에 대한 모든 이야기는 다 뻥이다. 세상에 장수 마을은 없다. 자세한 이야기를 하기 전에 먼저 장수 마을이 무엇인지를 정의해야 할 것이다.
실제로 다른 마을보다 더 장수하는 사람이 많이 사는 마을이 있다. 그것은 세 가지 이유
때문이다. 첫째, 수명도 유전적 요인의 영향을 받는다. 따라서 이주가 적은 집성촌(같은 성씨끼리 모여 사는 마을) 중에는 장수하는 유전자를 타고난 사람들이 사는 마을이 있을 수 있다. 둘째, 탄광촌처럼 장수에 해로운 마을이 있을 수 있다. 반대로 말하면 장수에
이로운 마을이 있을 수 있다. 셋째, 우연적 요인. 세상 일이 모두 그렇듯이 완전히 골고루 분포되는 일은 없다. 약간씩
편차가 있을 수밖에 없다.
여기서 말하는 장수 마을은 앞에서 언급한
이유로 생기는 그런 장수 마을이 아니다. 그런 마을에는 장수하는 사람들이 다른 마을보다는 많다. 하지만 그 차이는 그리 크지 않다. 따라서 뉴스거리도 아니다. 내가 “장수 마을은 없다”라고 말할 때에는 다음과 같은 장수 마을을 말한다.
KBS 문화부 나신하 기자(daniel@kbs.co.kr">daniel@kbs.co.kr)가 쓴
<<[세계의 장수 마을 1회:불가리아(1)] 제목:불가리스? 요구르트? 불가리아!http://news.kbs.co.kr/bbs/exec/ps00404.php?bid=77&id=97&sec=&page=14>>
라는 글에는
“불가리아 남쪽 국경
인근 지역에 좌우로 편쳐져 있는 로도피 산맥엔 크고 작은 장수 마을이 산재해 있습니다. 해발 천 미터
안팎의 봉우리들이 울창한 나무들로 둘러싸인 천혜의 무공해 지역에 바로 세계적인 장수촌 스몰랸이 위치해 있습니다.
스몰랸에서도 대표적인 장수마을로 손꼽히는 곳이 바니테 마을입니다. 세계 각국의 장수 연구자들과 언론이 주목하고 있는 곳으로, 평소엔
산 입구에서 차량으로 반나절이면 도달하는 곳이지만 눈이 많이 오면 하루가 꼬박 걸릴 만큼 외진 곳입니다.
100살 이상 고령자 수가 10만명 당 38명으로
세계 최고 수준입니다. 우리나라와 비교한다면, 한 동네에
한 명 이상의 100살 노인이 살고 있다고 보면 됩니다.”
라는 구절이 있다.
장수하는 나라인 스테웬과 일본에서도 100세 이상인 사람의 비율이 10만 명 가운데 한 명 꼴이다(『인간은 왜 늙는가』, 57쪽). 나신하 기자의 말이 맞다면 불가리아의 어느 지방에는 100세 이상인
노인이 그 38배나 된다.
이 글의 제목에서도 드러나듯이 이 마을은
남양유업의 <불가리스>라는 상품의 광고에 이용되었다.
남양유업 측에서 쓴 것으로 보이는
<불가리스 프라임 기능성과 감성 마케팅의 이중주http://company.namyangi.com/cyber/Pressroom/View.asp?news_idx=258>
라는 글에는 다음과 같은 구절들이 있다.
“제품명은 '불가리스'로 정했다. 원래
불가리스는 유산균발효유의 종주국인 불가리아의 대표적 유산균 불가리커스에서 따온 말로 락토바실러스, 애시도필러스, 비피더스, 불가리커스 등 복합균주를 사용, 장운동에 도움을 주어 변비,설사
등에 효과가 있기 때문이었다.”
“이러한 배경하에 '장수마을 불가리스'라는 론칭 캠페인이 탄생했다. 장수국가로 알려진 불가리아의 조그만 마을을 배경으로 한 이 광고는 서정적인 풍경과 간결한 메시지로 소비자들의
감흥을 일으키며 단시일 내에 소비자들의 기억에 각인되는 효과를 발휘했으며, 이는 곧 불가리스 제품에
대한 호감도로 이어졌다. 이 론칭 광고는 15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소비자들에게 기억되는 광고로 불가리스 제품이 시장에 성공적으로 정착할 수 있는 단초가 됐다.”
지금은 “장수마을 불가리스”에서 “쾌변 불가리스”로 광고 컨셉이
바뀌었지만 남양유업은 ‘장수마을 불가리스’라는 론칭 캠페인에 대해 전혀 반성하고 있지 않다. 장수마을이라는 미신을 이용한 광고의 성공을 자랑스러워할 뿐이다.
KBS특강(세계장수 마을 기행)
진행 :
초청연사 : 허 정(71. 현
서울대학교 보건대학 명예교수)
강의 제목 : 세계장수마을기행
http://www.kbs.co.kr/1tv/sisa/special/vod/1227404_1230.html
허정 교수는 지난 10 여 년간 세계 여러 장수 마을 돌아다녔다고 한다. 그는 그 경험을
바탕으로 장수의 비결에 대해 특강을 했다. 우선 그는 그런 마을 사람들이 상당히 비위생적으로 사는 데
왜 장수하는지가 미스터리라고 한다.
그러면서도 그는 그들의 공통점에 대해 이야기하고
그것을 장수의 지침으로 제시한다.
첫째, 장수
마을은 벽촌이다.
둘째, 장수
마을에서는 음식을 가리지 않는다. 채식과 육식을 골고루 한다. 그리고
발효식품을 많이 먹는다. 일본에서 발효식품인 청국장을 많이 먹는 것이 일본의 첫째가는 장수 비결이라는
어떤 학자의 연구를 허정 교수는 호의적으로 인용한다. 이런 믿음은 불가리스의 광고에 쓰였다.
셋째, 나이
먹어서도 일한다. 허정 교수에 따르면 장수 마을에서는 90살, 100살 먹은 사람들이 일을 한다고 한다.
넷째, 전통을
지키고 독실하게 종교를 믿는다. 허정 교수는 전통 특히 대가족 제도를 지키고 종교 생활을 할 것을 권한다.
다섯째, 약을
적게 먹는다.
허정 교수는 이런 장수 마을이 몽땅 뻥이라고
폭로하는 『인간은 왜 늙는가』라는 책 등을
전혀 고려하지 않는다. 그러면서 여러 가지 반동적인 주장을 한다. 전통
특히 대가족 제도를 지키고 종교를 믿으라는 것이다. 또한 “약을 적게 먹는다”라는 말로 말장난을
하고 있다. 벽촌에 사는 소위 장수 마을에는 가난하기 때문에 약을 못 먹어서 사람들이 고칠 수 있는
병으로도 죽는 경우가 많다(따라서 장수는커녕 한국보다 훨씬 수명이 짧다). 그것과 항생제를 남용하는 한국을 비교하는 것은 말도 안된다.
『인간은 왜 늙는가』에서 몇 구절을 인용해 보는 것으로 충분할
것이다.
미국 인구통계사무국은 이 문제 때문에 1970년에 100세를 넘었다고 주장하는 10만 6,000건의 사례 가운데
94% 이상을 위조된 것으로 처리했다. (『인간은 왜 늙는가』, 47쪽)
이 지역들의 특징으로는 스파르타식 농업, 힘든 육체노동, 공동체 협동사회인 점과 더불어 출생 기록이 제대로
되어 있지 않은 점을 꼽을 수 있다. 장수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에 관심이 많은 과학자들은 이 지역을
적어도 한 번씩은 방문했다. 그러나 분명히 말하지만, 과학자들이
이런 과학적인 목적으로 이 마을을 방문한 것 자체가 이 마을이 장수마을이라는 것을 입증하는 것은 아니다. 과학자들
역시 다른 사람만큼이나 잘 속기 때문이다. (『인간은 왜 늙는가』, 48쪽)
그러나 믿을 만한 기록을 가진 나라에서는 100세 이상의 여성이 남성보다 훨씬 많다는 사실로 미루어볼 때, 나이
많은 남성만 지나치게 많은 것은 어딘가 이상하다. (『인간은 왜 늙는가』, 51쪽)
특히 러시아에서 망명한 유전학자 조레스 메드베데프Zhores Medvedev는 코카서스 지방, 특히 그루지아 사람들의
이례적인 주장에 대해서 스탈린이 그루지아인이어서 그루지아인이 아주 오래 산다는 이야기를 듣기 좋아했다고 설명한다.
1959년
인구조사에 따르면, 소련에서 100세 이상 산 사람 가운데 97%가 소련 인구의 2%도 되지 않는 그루지아인이었다. (『인간은 왜 늙는가』, 53쪽)
발키밤바의
[장수마을] 전설의 전모가 과학 단체를 통해 폭로된
1978년에도 일본의 투자가가 고층 호텔을 짓기 위해 지역 유지와 교섭을 했고, 미국의
한 사업가는 빌카밤바의 물을 상업적으로 팔 계획까지 세웠다. (『인간은 왜 늙는가』, 57쪽)
그 지역에는 중국 인구의 1%만이 거주하는데 110세가 넘는다고 주장하는 사람의 84%가 살고 있다. (『인간은 왜 늙는가』, 61쪽)
사악하기는 하지만 결코 순진하지는 않은 자본가들의
신문 《월스트리트
저널》도 이런 미신을 기사로 싣는다.
장수하고 싶은가? 그러면 거세한 후 일본이나 스웨덴 같은 부자 나라에서 소식하면서 살면 된다.
가난한 나라에서 태어났다면? 일본으로 이사가면 된다. 하지만 모든 나라에는 이민 장벽이 있다. 그리고 가난한 사람들에게는 그 장벽이 더 높다. 또한 부자들은 굳이
이민가지 않아도 오래 산다. 일본, 스웨덴 사람들이 오래사는
이유는 영양 상태, 의료 서비스 등이 좋기 때문이다.
20세기 초중반에 정신지체자들을 대대적으로 거세시킨 나라들이 있다. 어떤 학자가 그런 사람들의 기록을 뒤지다가 놀라운 발견을 했다. 거세를
당한 사람들이 훨씬 더 오래 산 것이다. 물론 거세에는 부작용이 따른다.
쥐를 대상으로 한 실험에서 소식이 장수에
이롭다는 것이 드러났다. 하지만 쥐는 인간과 꽤 가까운 친척이긴 하지만(둘 다 포유류다) 인간은 쥐가 아니다. 또한 소식에는 부작용이 있을 수 있다. 우선 영양 실조에 걸릴 가능성이
있다. 쥐를 대상으로 한 실험에서도 처음에는 소식한 쥐가 더 일찍 죽었다. 영양 실조 때문이었다. 하지만 신진대사에 꼭 필요한 영양분을 포함한
소식 신단으로 키우자 장수했다. 따라서 장수하기 위해 소식하려면 전문 영양사의 조언이 필요하다.
그리고 소식이 끼치는 다른 영향에 대한 평가는
그 실험에서 고려되지 않았다. 예컨대 쥐가 배고픔 때문에 얼마나 괴로와했는지는 실험자의 관심 밖에 있었다. 아마 동물해방론자는 잔인한 실험을 한 그 연구자들을 비난할 것이다. 소식이
정말로 인간 장수에 도움이 된다고 하더라도 배고프게 오래 사는 것이 과연 좋은 것인지는 의문이다.
『인간은 왜 늙는가』의 핵심 테마는 인간이 왜 늙는지를 진화론적으로
설명하는 것이다. 주로 홀데인(John Burdon Sanderson
Haldane), 메다워(Peter Brian Medawar), 메이나드 스미스(John Maynard Smith), 윌리엄스(George Williams) 등의
이론을 소개한다. 나는 이 책을 직접 읽어보길 권한다. 여기에서는
아주 간단하게 간추려 보겠다.
생물은 늙지 않더라도 죽는다. 사고사, 병사, 포식자에게 잡혀먹기 등등으로 죽을 수 있다. 따라서 불로장생은 유전자의
입장에서 볼 때 사람들이 보통 생각하는 만큼 매력적이지 않다. 왜냐하면 늙지 않기 위해서는 많은 투자를
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빨도 갈아 끼워야 하고, 피부도 재생해야
한다. 어쩌면 늙지 않으려면 심장과 뇌와 같이 핵심적인 부품을 여분으로 가지고 있어야 할지도 모른다. 이것은 생물체에게 엄청난 부담이다. 반면 이런 투자에 대한 회수는
별로 크지 않다. 특히 포식자에게 잡혀 먹는 일이 많을 때에는.
이런 진화론적인 설명은 아주 많은 것들을 설명해준다. 예컨대 거북이가 왜 장수하는지, 연어는 왜 첫번째 생식을 한 후에 죽어버리는지를 설명해준다. 거북이에게는
딱딱한 껍질이 있어서 잘 잡아먹히지 않는다. 따라서 늙지 않는다면 다른 이유로 죽을 이유가 별로 없다. 이것은 장수가 유전자의 입장에서 볼 때 매력적임을 뜻한다. 대체로
큰 동물이 장수하는데 큰 동물들은 잘 잡혀먹지 않는다. 또한 박쥐, 새들도
장수하는데 이들을 날 수가 있어서 잘 잡혀먹지 않는다. 반대로
연어는 생식을 하기 위해서는 강을 거슬러 올라오는 엄청난 모험을 할 필요가 있다. 한 번 강을 거슬러
올라와서 생식을 마친 연어가 다음 번에도 성공할 확률은 극히 작다. 따라서 차라리 온 힘을 바쳐 알을
낳고 죽어버리는 편이 유전자의 입장에서는 이득이다.
생식에는 비용이 필요하다. 짝을 찾아서 섹스를 하는 데에는 에너지가 필요하고 정자, 난자 등을 만드는 것에도 다 비용이 든다. 이것은 거세가 장수로
이어진다는 관찰 사실을 어느 정도 설명해 주는 것 같다.
어떤 유전자는 어린 시절의 건강에는 유익하지만
노년의 건강에는 해로운 영향을 끼칠 수 있는데 이런 유전자가 자연선택에 의해 선택되기 쉽다. 왜냐하면
어짜피 노년기에 이르지 못하고 다른 이유로 죽을 수 있기 때문이다.
첫댓글 붉은 여왕에서는 바이러스 때문에... 자가생식에서 남과 여가 생겼고 새로운 개체를 생산해내고 기존의 개체들은 사라지기 때문에 바이러스에 한방에 무너지는 것을 방지한다라는 말이 있던데... 이게 큰 이유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