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도시의 스카이라인은 과거의 이야기를 해주지 않는다. "캄보디아 문화예술부"(MCFA)의 초청을 받은 꽁 나이(Kong Nai 혹은 Kong Nay)는 1990년대 초반 프놈펜(Phnom Penh)으로 이주해왔다. 비록 그는 그 변화하는 모습을 시각적으로 볼 순 없었지만, 매우 민감하게 귀를 기울였다.
지난 20년동안 10명의 자녀를 둔 시각장애를 가진 아버지이자 캄보디아에서 가장 사랑받는 전통음악인이기도 한 꽁 나이 옹은, 이 도시뿐만 아니라 전세계를 순회하며 전통현악기 짜뻐이 동 웽(chapei dong veng)을 연주해왔다. 올해 65세인 꽁 나이 옹은 아직도 짜뻐이를 타며 영혼이 깃든 창법으로 노래하고 있다. 하지만 그는 해먹(hammock: 지면에서 이격시켜 걸어놓은 그물침대)에 누워서 "어떤 낱말들이 더 좋은 소리를 내는 조합일지를 생각하는" 시간이 더 많다.
그가 13세였을 때 껌뽀웃(Kampot) 도에서 처음으로 연주를 들은 이래, 사물들이 소리를 내는 방법에 관한 것이 그의 전문분야가 되었다.
우리 마을에 한 남자가 오더니 짜뻐이를 연주했습니다.
그때 저는 생각했어요. "야, 이걸 내가 배워서 연습하면 정말 할 수 있을 것 같애"라고 말이죠.
그는 15세 무렵부터 관객들 앞에서 공연했다. 특히 전통적인 잔치에 불려가면 밤 9시부터 새벽 5시까지 연주하는 날도 있었다.
나는 지치지도 않고 하루 종일 연수할 수 있었죠.
비록 그 미세한 느낌까지 전달할 순 없겠지만, 누군가 초상화를 그린다면 마치 레이 찰스(Ray Charles)의 그것과도 유사한 느낌을 줄 미소를 머금고, 그는 이같이 말했다.
난 사람들이 듣는지 안 듣는지도 몰랐어요. 그냥 연주와 노랠 한거죠.
꽁 나이 옹은 짜뻐이 연주가 없을 때면 주변의 목소리들을 듣거나 각 지방의 음악들을 감상한다.
시골에 있는 우리 집에 가면 새들과 곤충들이 조화롭게 합창을 합니다. 그게 너무 듣기 좋습니다.
프놈펜에는 그런 소리들이 없어요.
그는 지금도 자녀들이 남아 살고 있는 고향을 방문하곤 한다. 껌뽀웃 도와 시하눅빌(Sihanoukville)에는 8명의 자녀들과 40여명의 손주들이 살고 있다.
제 주변에 있었던 모든 목소리들이 그리워요.
뛰노는 아이들과 인생에 대해 논하는 어른들의 목소리도 말이죠.
하지만 이렇게 단순한 생활을 원하는 그의 바램과 달리, 그는 프놈펜에 살고 있다. 그의 수입원은 민간단체인 "캄보디아 현존예술협회"(Cambodia Living Arts)의 재정지원과 "문화예술부"의 연금과 정부 관료들의 기부금, 그리고 매달 출연하는 TV 출연료 등이다. 그는 빈곤에서 허덕였던 가족들을 위해 모든 수입을 자신 및 후손들의 명의로 해놓았다.
처음에 프놈펜엘 오니, 사람들이 너무 조밀하게 살고 있는 것이 이상하게 느껴졌습니다.
그의 오랜 정착지 더이 끄러홈(Dey krahorm)은 프놈펜에서도 가장 활기찬 예술인 공동체가 살고 있었지만, 현재는 개발사업을 위한 강제철거로 악명이 높아진 곳이다.
저는 방안의 벽을 통해 사람들이 말하는 모든 것을 들을 수 있었지요.
어떤 처녀 하나가 남자와 같이 걷고 있다는 것을 알고, 그녀가 좋지 않음도 알았어요.
시골에서는 모든 게 조용해서, 그냥 앉아서 생각하기만 하면 되지요.
프놈펜은 항상 소음으로 가득합니다.
이 노 음악인은 탁식을 했다.
그래서 저는 외부에 대한 관심을 끊고, 오직 머리 속에서 흘러가는 낱말들의 소릴 듣는 법을 배웠죠.
제 머리 속에는 항상 어떤 낱말들이 떠돌아 다닙니다.
제가 노래를 할 때면, 이들을 차곡차곡 쌓아나갑니다.
꽁 나이 옹이 아직도 위안을 받을 수 있는 곳은 그나마 파고다(pagoda: 와트, 사찰)이다.
아이들이 뛰노는 소리와 스님들이 독경하는 소리만이 제가 자랄 때의 모습들을 기억하게 만듭니다.
물론 프놈펜은 시끄럽지만, 그래도 그런 소리들이 저를 기쁘게 해줍니다.
현재 그는 프놈펜 교외에 위치한 상대적으로 좀더 넓은 공간의 빌라로 2명의 자녀 및 아내와 함께 이사했다. (이 집은 그가 강제철거의 부당성을 표현한 노래를 발표하자, 프놈펜광역시청에서 마련해준 것이다.)
그는 이 시가지에 대해 이전에는 그다지 익숙하질 않았다. 그렇지만 그는 대중적 공연이나 개인적 볼일, 그리고 자신의 주변을 감싼 야단법석한 소리를 듣기 위해 정기적으로 시내로 들어가는 모험을 강행하고 있다. 때로는 아들이 운전하는 오토바이 뒷자석에 앉아 가기도 하고, 때로는 "토요타 포어런너"(Toyota Forerunner) SUV를 이용하기도 하는데, 이 자동차 역시 께입 주떼마(Kep Chuk Thema) 프놈펜 광역시장이 선물한 것이다.
때로는 오토바이와 자동차들이 한대씩 지나가는 소리를 듣곤 합니다.
하지만 지금은 교통량이 끝이 없어요. 엔진소리와 소음의 끊임없는 연속입니다.
비록 수많은 교통량이 이 도시의 청각적 풍경을 지배하는 주류이긴 하지만, 꽁 나이 옹은 길가에서 새나오는 삶의 소리들도 놓치지 않는다.
저는 모든 곳에서 사람들이 말하는 걸 들을 수 있어요.
하지만 기분좋은 소린 아닙니다. 대부분은 언쟁을 하거나 고함치는 소리예요.
가장 큰 소리들은 나이트클럽과 결혼식 피로연, 파티와 카라오케 레스토랑들에서 터져나오는 음악들이다.
사람들이 뭘 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저는 그들이 좋은 시간을 갖고 있다는 건 느낄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음악소리가 크고 사람들을 흥겹게 해주니 말이죠.
그는 웃으면서 이렇게 말했다.
이 날은 토요일 아침이었다. 꽁 나이 옹은 자신의 침실 앞에 놓여진 나무평상에 두다리를 오른쪽으로 포개고 앉아, 자신이 사랑하는 부인에게 차를 달여 따라주고 있었다. 그의 악기는 바로 앞에 놓여져 있었다. 그는 자켓 주머니 속으로 깊이 손을 집어넣어 "리버티" 담배와 라이터를 꺼내들었다. 담배를 물어든 그는 자신의 손가락 끝마디들을 움직여 고정시켰다. 그리고 다른 손으로 라이터를 켜 담뱃불을 붙였다. 마치 그 불길을 손가락 끝이 느끼기라도 하듯이, 그는 담배 끝까지 불길을 빨아들였다. 그후 그는 다시금 라이터를 주머니에 집어넣은 후 흡연을 계속했다.
저는 지금의 제 집이 마음에 듭니다. 하지만 시골집과 같진 않아요.
여기에서는 언제나 굴착기와 망치질 소리밖에는 들리질 않아요.
제 주변에서 공사가 진행된다는 건 압니다. 그게 뭔지만 모를뿐이죠.
● "크메르의 세계" 가 추가한 동영상들
캄보디아 전통악기를 대표하는 짜뻐이 동웽은, 주로 줄거리가 있는 이야기를 진행하며 연주한다. 따라서 때로는 이 형식을 이용해 정치적 풍자나 홍보도 이뤄지고 있다. 꽁 나이 옹은 크메르루즈 시대에 살아남은 짜뻐이의 명인으로, 캄보디아 전통음악인 중 가장 유명한 사람 중 한명이다.
오늘날 기타의 조상인 류트는 그리스 문화권에서 시작되어 실크로드를 타고 동진하면서, 비파류를 비롯한 각 지역의 주요한 민속악기들로 발전했다. 캄보디아에서는 짜뻐이로 자리를 잡았다. 블루스 기타리스트 케빈 브라운과 함께 하는 잼세션.
더이 끄러홈에 있었던 자신의 자택에서 연주중인 꽁 나이 선생.
다큐멘타리 : 꽁 나이 선생과 오웃 사위(Ouch Savy) 여사의 호주 및 뉴질랜드 초청 여행
그렇죠 .. 이 분이 바로 인간국보 중 한명이죠... 그리고 짜뻐이 연주를 시각장애인들이 하는 게 아니라... 캄보디아에서 방송되는 짜뻐이 연주는 거의 이 분 혼자서 독식을 하는 상황인데요... 항상 검은 선그라스를 쓴 꽁 나이 옹을 보고... 혹시 여러명으로 착각하고 계시는 건 아닌지요? 사모님께 재차 확인 좀 부탁드립니다.. ^ ^ 현재 생존한 고수가 이분 빼고는 거의 없는 실정이라고 합니다...
첫댓글 캄보디아 영자신문인 <프놈펜포스트>와 <캄보디아 데일리>의 저널리즘... 수준 높고 인정할만 합니다... 이 기사 역시 시사해주는 바가 참 여러가지네요... 하여간 이 대가를 언젠가 한번 다루려고 했었는데, 이번 기회에 다루기로 합니다...
한국으로 말하면 인간문화재 이군요. 아내 말에 의하면 짜뻐이 연주는 시각장애우들이 많이 한다고 합니다.
그렇죠 .. 이 분이 바로 인간국보 중 한명이죠... 그리고 짜뻐이 연주를 시각장애인들이 하는 게 아니라... 캄보디아에서 방송되는 짜뻐이 연주는 거의 이 분 혼자서 독식을 하는 상황인데요... 항상 검은 선그라스를 쓴 꽁 나이 옹을 보고... 혹시 여러명으로 착각하고 계시는 건 아닌지요? 사모님께 재차 확인 좀 부탁드립니다.. ^ ^ 현재 생존한 고수가 이분 빼고는 거의 없는 실정이라고 합니다...
아내의 말이지만 일반화 시킬수는 없는 듯 합니다. 그리고 동네에서 짜쩌이를 연주하는 사람이 시각장애우라고 합니다 고수는 아닌 듯 하고요.
원래 시각장애인들이 소리에 상당히 민감합니다.... 저도 어린 시절(초등학교)에 옆집에 시각장애인 형(당시 고교생)이 있어서,... 그 형한테 기타를 배웠던 기억이 납니다... ^ ^
줄이3개인 악기이군요,,, 화음<코드>이 잡히지는 않는것같고,,,,
장인의 솜씨를 느낍니다, 탓치가 힘이 넘칩니다, 노인의 텃치,,캄보디아의 레이챨스,,,
^ ^ .... 그러고 보니 3줄이네요... 그렇담 일본의 사미센(三味線)과 외형뿐만 아니라 기능상으로도 아주 유사한 것 같습니다...
1)동영상 내용: 엄마도 아빠도 시각장애우였고,자신은 4살부터 앞은 볼수 없었다. 꽁 나이의 시각장애우로서 삶의 비애를 노래하고 있답니다.
3)록 란얄(지위가 높은 사람 이름)을 만나서 감사하다는 내용
해설 감사합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