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2장18-25절에덴동산16 돕는배필 에제르2 220216 원주희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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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술원고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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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돕는 배필, 에제르의 신성한 사명과 창조 섭리
창세기 2장 18~25절에 기록된 하나님의 창조 질서는 인간이 지닌 존재론적 고독과 결핍을 해결하기 위한 '돕는 배필'의 창조로 완성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담이 에덴동산에서 만물을 다스리며 각종 짐승의 이름을 지어주는 탁월한 권세를 지녔을지라도 혼자 사는 것이 좋지 않다고 탄식하셨습니다. 아담 주변에는 코끼리, 사자, 소, 말 같은 동물들이 있었으나 이들은 필요할 때 이용하는 대상일 뿐 고독을 메워줄 존재가 아니었습니다. 또한 그가 경작하는 터전인 땅 역시 온전한 동반자가 될 수 없었습니다. 이에 하나님께서는 아담의 실존적 외로움을 채우기 위해 돕는 배필을 지으셨습니다.
성경 원어로 '돕는다'에 해당하는 단어는 '에제르(Ezer)'입니다. 이는 결코 능력이 부족한 자를 보조하는 하급자의 개념이 아닙니다. 구약 성경 전체에서 '에제르'는 인간의 힘으로는 도저히 구원받을 수 없는 절박한 위기의 순간에, 압도적인 능력과 자비를 지닌 존재가 손을 내밀어 건져낼 때 사용되는 단어입니다. 시편 기자가 고백한 "나의 도움(에제르)이 천지를 지으신 여호와에게서로다"라는 구절처럼, 이 단어는 대부분 생명의 근원이신 '여호와 하나님'의 구원 사역을 표현할 때 사용됩니다.
이 거룩한 단어가 인간에게 쓰인 유일한 사례가 바로 하나님께서 아담을 위해 여자를 지으셨을 때입니다. 남편은 겉으로 강해 보이지만 영적·정서적으로 수많은 결핍과 취약함을 지닌 존재입니다. 아내라는 존재는 남편의 단순한 조력자가 아니라, 남편의 치명적인 한계를 보완하고 그의 영혼을 살리며 하나님 앞에서 바른 인간으로 서갈 수 있도록 '하나님의 도우시는 손길'을 대행하는 신성하고 영광스러운 영적 사명을 부여받은 존재입니다. 따라서 아내들은 가정을 세우는 좋은 에제르가 되어야 하며, 자녀들의 가정 위에도 이 에제르의 은혜의 역사가 풀어지도록 늘 기도하고 권면해야 합니다.
2. 조건적 만남(나와 그것)과 인격적 만남(나와 너)의 본질
세상에는 조건적인 만남과 인격적인 만남이라는 두 가지 형태의 관계가 존재합니다. 조건적이고 수단 중심적인 만남을 '나와 그것(I-It)'의 만남이라고 부릅니다. 이는 철저하게 필요와 기브 앤 테이크(Give and Take)를 중심으로 형성되는 관계입니다. 마치 칠판지우개가 화이트보드를 지우는 동안에는 유용하게 쓰이지만 성능이 떨어지면 미련 없이 버려지는 소모품인 것과 같습니다. 지우개는 인격이 아닌 '그것'이기에 성능이 다하면 장모님께 새 지우개를 갖다 달라고 편하게 요청하면 그만인 대상입니다. 동물과의 관계 역시 인간이 돌봐주는 대가로 우유나 고기를 얻는 필요 중심의 '나와 그것'의 만남입니다.
반면 사람은 본질적으로 '나와 너(I-Thou)'의 인격과 인격의 만남이어야 합니다. 사람은 한문 '사람 인(人)' 자가 서로 다른 짝대기 두 개가 맞닿아 지탱하고 있듯이, 서로를 받쳐주며 더불어 살아가도록 지어진 사회적 존재입니다. 물론 사람에게는 각자의 '쓰임새(기능)'도 존재합니다. 목사 역시 운전도 할 수 있고, 마이크 들고 찬양도 할 수 있으며, 설교나 심방 기도 사역을 감당하는 등 다양한 쓰임새가 있습니다.
그러나 사람을 대할 때는 쓰임새보다 '인격'이 우선되어야 합니다. 만약 부부 사이를 남편은 돈 벌어 오는 기계, 마누라는 집에서 밥 하는 기계로만 대한다면 그것은 '나와 그것'의 만남에 불과합니다. 그런 기능적 관계는 남편이 퇴직하여 돈 벌어 오는 쓰임새가 끝나거나, 아내가 치매나 질병에 걸려 밥 해주는 쓰임새가 끝나는 순간 심각한 위기를 맞이합니다.
가까운 일본에서 황혼이혼이 크게 유행했던 이유도 이와 같습니다. 남편의 경제적 쓰임새가 끝날 때까지 꾹 참고 살다가, 기능이 상실되는 순간 자신의 인격성을 찾아 독립하겠다며 갈라서는 것입니다. 부부는 단순히 쓰임새로만 맺어진 관계가 아니라 인격과 인격이 깊이 결합된 관계여야 합니다. 성령의 역사 또한 철저하게 인격과 인격의 관계를 통해서만 흘러갑니다. 우리의 가정은 쓰임새의 만남을 넘어 온전한 인격의 결합으로 단단하게 세워져야 합니다.
3. 가정, 서로의 모서리가 깨어지는 성화의 공동체
부부는 첫 번째로 서로를 '영혼의 동반자'로 여겨야 합니다. 영혼의 동반자라는 것은 하나님께서 내 곁에 계신 배우자를 통해 나 자신의 모나고 비뚤어진 인격을 다루시고 다듬어가신다는 뜻입니다. 이 세상에서 인간의 뜻대로 쉽게 떠나지 못하도록 묶어놓으신 공동체가 두 개 있는데, 하나는 '예배당 교회'이고 또 하나는 '가정'입니다. 세상의 직장이나 학교에서는 인간관계가 틀어지면 사표를 내거나 전학을 가버리면 그만입니다. 그러나 가정이라는 공동체는 하나님의 주권 속에 묶여 있어 쉽게 떠날 수 없습니다.
인간이 지닌 고유한 죄성과 이기심은 결혼 후에도 여전히 남아있기 때문에, 부부는 필연적으로 서로에게 상처를 주고받으며 갈등을 겪게 됩니다. 그러나 도망칠 수 없는 가정의 울타리 안에서 서로를 참고, 용서하고, 사랑으로 품어 안으려고 눈물로 몸부림치는 과정을 통해 인간은 비로소 거룩해지는 '성화(Sanctification)'의 단계를 밟게 됩니다. 내 코드와 도저히 맞지 않는 사람을 품기 위해 내 자존심을 내려놓고 자아가 깨어지면서 주님의 성품을 닮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이는 마치 시냇가 상류에서 거칠고 모난 돌멩이 두 개가 물결에 휩쓸려 구르고 떠내려오면서 우당탕탕 서로 끊임없이 부딪히는 과정과 같습니다. 날카로운 모서리들이 부딪치고 깨어지는 아픔을 통과하여 마침내 하류에 도달했을 때, 동글동글하고 매끄러운 아름다운 '몽돌'이 되는 원리와 정확히 일치합니다. 하나님께서는 가정을 바로 이러한 영적 성화의 훈련장으로 디자인하셨습니다. 따라서 가정이라는 공동체 안에서 깨어져 보고, 부딪침 속에서 믿음의 극복을 해본 사람들은 영혼의 깊이가 달라지며 그 영이 자라나게 됩니다.
4. 가정의 영적 흐름과 세대 간 대물림을 차단하는 복음
가정은 성화의 장소일 뿐만 아니라 치열한 영적 전쟁터이기도 합니다. 가정에는 분명히 부모로부터 자녀에게로 이어지는 영적인 흐름과 분위기가 존재합니다. 부모가 흘려보내는 거룩한 영적 유산은 '축복'이 되고, 깨어진 흐름은 '저주'의 형태가 되어 대를 이어 흘러가게 됩니다.
정상적이고 건강한 가정에서는 남편과 아내가 한 몸을 이루고, 그 아래서 아들은 아버지를 보며 자아상을, 어머니를 보며 배우자 상을 정립합니다. 딸 역시 아버지를 보며 배우자 상을 세우고, 어머니를 보면서 지혜로운 여성의 삶을 배웁니다. 이것이 가정의 선순환입니다.
그러나 부부가 매일 싸우는 역기능적 가정에서는 치명적인 영적 대물림이 일어납니다. 아버지가 어머니를 폭행하는 모습을 보며 자란 아들은 "나는 절대로 아버지처럼 살지 않을 것이다"라며 분노를 품습니다. 하지만 영의 세계는 독특하여, 대상을 극도로 미워하고 정죄해도 그 영이 무의식 속에 고스란히 카피(Copy)됩니다. 의식적으로는 거부하지만 무의식 깊은 곳에는 폭력적인 성향과 죄악의 패턴이 그대로 주입되는 것입니다.
과거 한 신혼부부의 사례가 이를 증명합니다. 연애 시절에는 다정했던 남편이 결혼 후 어느 날 갑자기 아내를 온통 빨가벗겨 놓고 거실에 물을 뿌린 뒤 잔인하게 폭행했습니다. 다음 날 남편은 자기가 저지른 만행을 보며 경악하여 울부짖었습니다. 알고 보니 그의 아버지가 과거 부엌(정지)에 물을 뿌려놓고 엄마를 빨가벗겨 놓은 채 두들겨 댔던 가정폭력의 목격자였던 것입니다. 그는 평생 아버지를 증오했으나, 술에 취해 이성이 마비되자마자 무의식 깊이 숨어있던 폭력의 영에 사로잡혀 똑같은 짓을 저지르고 말았습니다. 이처럼 영적 전쟁에서 패배하면 부모의 영적 굴레가 자녀의 인생에 그대로 대물림됩니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모든 저주의 사슬을 끊어내는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있습니다. 복음은 가계에 흐르는 모든 저주를 끊고, 죄를 사하며, 내면의 깊은 상처를 깨끗이 씻어내는 유일한 능력입니다. 매일 하나님 앞에 엎드려 "내 안에 숨겨진 죄와 상처가 있다면 성령님 기억나게 해주세요"라고 정직하게 기도해야 합니다. 부부가 함께 말씀을 먹고 찬양하며, 십자가 앞에서 서로의 허물을 풀고 용서할 때 어둠의 영은 떠나가고 영적인 대전환이 일어납니다.
5. 영적 전쟁의 진정한 승리와 가정의 화목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영적 전쟁장이라고 하면 밤새 부르짖어 기도하며 귀신을 쫓아내는 것만 생각합니다. 그러나 영적 전쟁의 진정한 승리와 최종적인 결과물은 다름 아닌 '가정의 화목'입니다.
한 목회자 집회에서 강사 목사님이 "교회가 부흥하기를 원하십니까? 그렇다면 당장 사모하고 다투지 마십시오"라고 뼈 있는 한마디를 던지셨습니다. 처음에는 그 말씀의 깊은 의미를 알지 못했습니다. 부흥을 원한다면 성령의 강력한 은사를 받고 병든 자를 고쳐야 마땅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목회를 하면 할수록 그 말씀이 진리임이 와닿았습니다. 영적 전쟁의 종국적인 승리는 내 거친 마음과 성품이 예수를 닮아가는 것이며, 그 예수 닮은 인격이 가장 먼저 발현되어야 할 자리가 바로 내 가정이기 때문입니다. 부부가 서로 치열하게 화목을 완성해 낼 때, 그 인격은 이미 영적인 거대한 고비를 넘어서서 신앙의 가장 깊은 세계를 정복한 것입니다. 가정을 화목하게 지켜내는 것이야말로 원수 마귀의 참소를 깨뜨리는 가장 강력한 영적 승리입니다.
6. 벌거벗었으나 부끄러워하지 않는 온전한 연합의 여정
성경적 가정이 도달해야 할 최종적인 연합의 극치는 창세기 2장 25절에 기록된 "아담과 그의 아내 두 사람이 벌거벗었으나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니라"는 말씀에 담겨 있습니다. '벌거벗었다'는 것은 내면에 자리 잡은 모든 연약함, 추함, 과거의 허물과 상처까지 숨김없이 상대방 앞에 온전히 드러낸 상태를 의미합니다. 그럼에도 '부끄러워하지 않았다'는 것은 나의 온갖 약점이 노출되었음에도 비난이나 정죄를 느끼지 않고 상대방의 깊은 사랑 안에서 완벽한 용납과 안전함을 누렸다는 뜻입니다.
인간은 다 본질적으로 종류가 다를 뿐, 하나님 앞에서는 다 같은 비참한 죄인들입니다. 남편이 짓는 죄가 따로 있고, 아내가 짓는 죄가 따로 있을 뿐입니다. 그러므로 부부는 십자가 앞에서 서로의 연약함을 있는 그대로 고백하고 용납해야 합니다. 신앙 안에서 같은 비전을 품고 하나님 앞에 믿음으로 충성할 때, 가정 안에 에덴의 축복이 강력하게 열리게 됩니다.
부부 관계가 단순한 기능적 필요를 채워주는 관계를 뛰어넘어 허물을 덮어주는 깊은 인격적 만남으로 승화될 때, 그 가정은 노년 생활이 말할 수 없이 행복해집니다. 병원에 가보면 남자 병실에는 아내들이 간이 침상에서 쪽잠을 자며 남편을 간병하지만, 여자 병실에서 남편이 아내 곁을 지키며 간병하는 모습은 참 보기 드뭅니다.
인생의 노년기에 누가 먼저 치매가 올지, 누가 먼저 중병에 걸릴지 우리는 아무도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나와 너'의 참된 인격적 결합을 이룬 가정은, 젊은 날 함께 쌓아온 깊은 사랑의 추억과 성령의 은혜가 있기에 모진 위기가 찾아와도 도망치지 않고 끝까지 품고 가고, 안고 가고, 넉넉히 극복해 내는 아름다운 황혼을 맞이하게 됩니다.
7. 결론 및 결단의 기도
결혼 생활을 행복하게 이끌어가는 비결은 인간의 지식이나 기술에 있지 않습니다. 남편과 아내는 영혼의 동반자로서 날마다 한 몸을 이루기 위해 언어 생활, 취미, 자녀 교육, 건강 관리, 그리고 무엇보다 신앙의 사이클을 같이 맞추며 하나 되기를 힘써 노력해야 합니다. 또한 결혼한 부부는 반드시 근원 가정(시부모와 친정부모)의 그늘로부터 영적·정서적으로 완전히 분리 독립해야 합니다. 남자가 부모를 떠나 아내와 연합해야 하고, 여자 역시 부모를 떠나 남편과 연합해야 거룩한 연합의 터전을 지켜낼 수 있습니다.
지금 부부의 연을 맺고 계신 분들은 천당까지 함께 걸어가는 영원한 믿음의 동반자로 서로를 끝까지 세워가시기를 축복합니다. 혹여 배우자를 먼저 천국으로 보내신 분들이 있다면, 우리의 자녀 세대들이 이 거룩한 에제르의 은혜 속에 단단히 세워지도록 눈물로 기도의 대를 이어가시기를 예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합시다.
좋으신 아버지 하나님, 독처하는 아담의 고독을 보시고 하나님의 구원 손길을 대행할 거룩한 '에제르'를 허락해 주시니 감사합니다. 결혼 생활 중 수많은 위기를 만나지만, 우리가 사람을 단순히 쓰임새로만 대하는 '나와 그것'의 악한 버릇을 십자가 앞에 못 박게 하시고, 인격 대 인격으로 깊이 연합하는 '나와 너'의 복된 만남이 되게 하옵소서.
우리 가정을 성화의 공동체로 삼아주셨사오니, 부딪치고 깨어지는 아픔 속에서도 서로를 용서하고 품어 안으사 주님을 닮은 매끄러운 몽돌과 같은 인격으로 자라나게 하옵소서. 가계에 흐르는 더러운 폭력과 저주의 흐름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복음의 능력으로 이 시간 완전히 끊어지게 하시고, 오직 주님이 주시는 축복의 흐름만 자녀 세대에 흐르게 하옵소서.
귀신을 쫓아내는 지식적인 영적 전쟁을 넘어, 부부가 피차 십자가 앞에서 허물을 고백하고 용납함으로 '가정의 화목'이라는 최종 승리를 선포하게 하옵소서. 벌거벗었으나 부끄러워하지 않는 에덴의 축복이 모든 성도들의 가정 위에 임하게 하사, 인생의 노년기까지 천당 가는 그날까지 영혼의 동반자로 아름답게 동행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복하며 기도드리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