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태귀농을 꿈구는 벗들에게 띄우는 편지
농촌에서 일구는 교육의 텃밭
귀농은 지금껏 살아왔던 것과는 전혀 다른 삶의 궤적을 스스로 찾아가는 길이다. 단순히 공간의 이동만은 아닌 것이다. 어쩌면 근본적인 가치관을 송두리째 흔들거나 180도로 홱 돌아야 하는 일이기도 하다. 그러한 귀농에서 자녀 교육은 핵심에 놓일 수밖에 없다. 어떤 이는 자녀 교육 때문에 귀농을 결심하고, 또 어떤 이는 자녀교육 때문에 귀농을 망설인다.
글 정현숙(농촌유학전국협의회 대표, 전 전국귀농운동본구 공동대표)
귀농을 망설이는 이유는 '아무래도 교육은 도시에서 받아야 하고 좋은 대학을 가서 안정된 직장을 잡아야 하니까, 그 뒷바라지를 하기 위해 도시에서 살아야 한다'는 것이다. S대가 존재하고 S기업이 존재하는 한 그러한 사회 체계는 어느 정도 지속될 것이다. 그러나 여기서는 좀다른 얘기를 하고자 한다. 시골의 작은 학교, 농촌 학교가 가진 무한한 가치와 그 아름다운 이야기다.
우리아들 어진이가 다니던 수곡초등학교는 입학하던 해 전교생이 21명인 작은 학교였다. 벽지 학교라는 것 말고는 별다른 특징이 없는, 폐교 대상인 시골 학교였을 뿐이다. 그런데 다니면서 보니 참 특별한 학교였다. 선생님들은 늘 밝은 표정으로 뭔가를 열심히 하셨고, 아이들은 사랑을 많이 받은 듯 정서가 안정되고 어딘가 반짝반짝 빛나 보였다. 부모들은 늦게까지 들에서 일하면서도 아이들을 걱정하지 않았다. 그리고 학교를 자랑스러워했고 학교일을 궁금해하며 자주 학교를 드나들었다.
아토피로 고생하던 아이를 입학시킨 학부모도 그렇고, 먼 길을 돌아 학교 부근으로 이사 온 학부모도 모이면 농담 삼아 "수곡을 생각하면 눈물이 앞을 가려서…"라고 말을 했다. 그런데 그 말이 빈말이 아니라 어디 가서 수곡초를 소개라도 할라치면 괜스레 눈물이 앞을 가릴 때가 많았다.
농촌 학교는 도시 아이들에게도 새로운 희망 교장선생님은 늘 운동장에서 노는 아이들을 지켜보고 계셨고, 휴일에도 학교에서 뛰노는 아이들에게 선생님들은 컵라면을 끓여서 나눠 드셨다. 늘 바쁘고 신경 쓸래야 뭘 해야 될지도 모르는 부모들을 대신해서 선생님들은 아이들을 산이나 냇가나 들, 또는 수영장 · 스키장 · 영화관 등을 데리고 다니셨고, 뒤처지고 소외되는 아이가 없도록 골고루 눈에 넣어주셨다. 글씨를 못 떼고 입학한 우리 아들도 전혀 기죽지 않았고, 글을 익히고는 수업 시간에도 다른 책을 꺼내 뒹굴어가며 일고 다녀도 문제가 되지 않았다.
결국 이에 감동한 학부모들이 모여 우리는 뭘 해야 할까를 고민하면서 전교생이 모두 내 아이가 되었다. 이후 행복한 학교에 슬금슬금 외지의 아이들이 오기 시작했다. 도시 학교가 답답한 아이, 아토피로 힘 드는 아이, 귀농한 가정의 아이, 객지로 나갔다가 다시 돌아온 집 아이…. 이 학교느너 지금 전교생이 103명인 유명한 학교가 되었다. 교육 과정이 독특한 학교, 아이들이 행복한 혁신 학교, 정읍시 아토피 예방 학교, 선생님들이 열심인 학교, 학교 때문에 귀농한 인구가 많은 학교 등 여러 타이틀을 가진 농촌학교의 모델이 되었다.
이번 학기에는 그간 수고하신 공모제 교장 선생님의 임기가 끝나면서 교육장으로 가시고 두 번째 공모 교장선생님을 새로 모시는 역사적인 순간을 맞았다. 짧은 기간 동안 황토방 교실과 유치원 급식실 등을 새로 지으면서 학교는 폐교 걱정 없는 활기찬 학교가 되었다. 동시에 지역에는 빈 집이 없을 정도가 되었다. 살만한 집에는 진즉 이사를 왔고, 더 이상 집이 없다고 생각한 시점에도 어떻게 어떻게 옛날 집을 차지하고 들어온 귀농인들은 학교의 돌봄 교사, 방과후 교사, 코디네이터 등을 맡아 아이와 함께 학교를 다니기도 한다.
농촌에서 학교는 마을의 중심이기도 하고, 그 지역 문화와 관계의 뿌리이기도 하다. 농촌에서 학교가 폐교되면 그 지역은 더 이상 희망이 없는, '생산'과 '출하'만 있는 쓸쓸한 빈 마을이 된다. 그리고 농촌의 학교는 도시의 아이들에게도 새로운 희망이다. 수십 명이 한 반에 있고, 전교생이 천 명 단위를 오르내려 쉬는 시간에도 제대로 뛰어놀지 못하는 환경, 학교를 마치면 저마다 학원을 전전하며 그 사이사이 아쉽게 친구들 얼굴을 보고 빈 마음을 스마트폰과 컴퓨터 게임과TV로 채우는 도시 아이들에게 출구를 제공해줄 수 있는 곳이 바로 농촌의 작은 학교들이다.
나는 개인적으로 우리 아이들이 어릴 때 시골에서 작은 학교를 다니면 앞으로 30년 뒤, 우리 국민들의 정서가 좋아지고 몸과 마음이 건강한 사회가 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자연 속에서 길러진 정서가 어른이 되어 세상을 살아가는 데도 기본이 될 것이며, 지금 어른들이 그러하듯 마음속에 정겨운 고향을 갖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자연에서, 전통적인 시골에서 경쟁력을 갖추는 아이들 지금 전북은 '농촌유학 1번지 전라북도'를 내세우며 다양한 프로그램을 준비하고 있고, 강원도 · 충청북도 · 경상남도 등도 농촌의 비어가는 작은 학교들을 귀농 또는 농촌유학을 위한 새로운 장으로 준비하고 있다. 농촌유학 프로그램은 부모가 귀농이나 귀촌을 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자녀를 시골학교로 보내는 경우에 해당되는데, 지금 전국적으로 30여 곳에 농촌유학 실행지가 있다.
학교 부근으로 귀농하는 경우, 도시의 다른 아이들을 머물게 해서 시골 학교로 보내는 농촌유학을 직접 할 수도 있다. 도시에서 살다가 생태적인 삶을 살기 위해 귀농하는 귀농자들을 농촌유학을 직접 해도 별로 어려움이 없을 것으로 생각된다. 그리고 집집마다 자녀 수가 적은 요즘, 형제 없이 자라는 아이들을 위해 내 자녀를 다른 아이들과 함께 키워보는 것도 좋은 경험이 될 것이다.
농촌의 작은 학교들은 귀농의 결과로 어쩔 수 없이 자녀를 보내야 하는 마음 아픈 현장이 결코 아니다. 오히려 어릴 때 아이의 창의성과 소통 능력, 생태적인 감수성을 키워줄 수 있는 가장 좋은 스승인 자연에 가까이 갈 수 있는 절호의 기회이며, 경쟁과 갈등으로 맺어지는 인간관계에서 서로 존중하고 배려하는 인간관계로 나아가는. 그리고 아무 거리낌 없이 마음껏 뛰어놀며 커나갈수 있는 장이 된다.
내 자녀가 자존감을 가진 건강한 아이로 자라기를 원하든, 소통할줄 아는 새로운 시대의 리더로 자라길 원하든, 또는 생태적 감수성을 가진 온전한 인간으로 자라길 원하든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은 아이를 자연에 맡기고, 온 마을이 한 아이를 키울 수 있도록 전통이 남아 있는 시골에서 자라게 하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것은 이 시대 우리가 농촌으로 가야 하는 진정한 이유이기도 하며, 역으로 이 시대에 우리 아이들이 진정한 경쟁력을 갖추는 길이기도 한 것이다.
정연숙씨는 중학교 국어 교사 출신으로 1996년 전북 정읍으로 귀농을 했다. 전북한살림 이사장, 전국귀농운동본부 공동대표를 역임했으며 지금은 농촌유학전국협의회 대표를 맡고 있따. 현재 정읍 자연학교(자연건강 농촌유학)를 운영하고 있다.
ⓒ전원생활 2012년 10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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