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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간 [수필세계]
2011년 상반기 신인상 발표
계간 수필세계는 2011년 제14회 상반기 신인상 당선작으로
김희자 씨의 응모작 '뒷짐' 외 4편을 선정했다.
신인상 시상식은 7월 8일(금) 대구 프린스 호텔에서 개최되는
계간 수필세계 창간 7주년 기념식에서 있을 예정이다
▪ 당선자 :
김 희 자
경남 남해 출생
2009년 천강문학상 수필부문 대상
2009년 목포문학상 수필부문 대상 수상
▪ 응모작
「뒷짐」외 6편 (참고작 3편 포함 10편)
▪ 심사위원
박양근 , 최원현, 한상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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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심사평
존재 해석의 진중함과 의미화의 파토스(pathos)
『수필세계』는 김희자라는 무명의 작가를 한국 수필문단에 찬란하게 등장시키는 데 한 몫을 다했다. 수필문단의 쾌거이다. 왜인가? 한 해에도 신인은 수백 명씩 쏟아져 나온다. 하지만 그들이 모두 제몫을 다하지는 못한다. 더러는 열정적 창작으로 문단에 새 얼굴로 등장하기도 하지만, 소리 소문 없이 문단에 뒷전에서 빛을 보지 못하는 이들도 있다. 결국 등단은 하나의 통과의례일 수 있다. 문제는 작가 정신에 있을 것이다. 초심을 잃지 않고 부단히 자기 연마와 창작에 매진할 때 비로소 작가로서의 생명력을 얻게 될 것은 자명하다.
이 점에 있어 『수필세계』는 한국 수필문단에서 작가의 옥석을 가리고 작가로서의 생명력을 키우는 엄중한 소명을 다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수다한 예비 작가 중에서 이번에도 단 한 명의 신인을 등단자로 결정하였다. 그가 바로 김희자이다. 먼저『수필세계』의 굽히지 않는 창간의도와 결의를 엿보게 한다. 신인등단자의 숫자가 문제는 아니다. 등단자의 작품의 질은 그 문예지가 추구하는 작가 정신과도 통한다. 이 점에서 단연『수필세계』는 한국 수필문단에 독보적인 문예지라 하겠다.
평자에게 넘어온 김희자의 작품은 무려 10편이다. 이들 작품은 저마다 색깔을 지니고 있으며 미려한 문체와 미학적인 언어로 잘 짜여진 완성도 높은 작품들이어서 우열을 가릴 수 가 없었다. 무엇보다 존재의 해석과 생명의 이해를 위한 정서와 사상 그리고 상상이 하나로 용해되어 수필문학이 추구하고자 하는 존재 파악에 닿아 있다. 이는 곧 김희자의 수필이 ‘인간학’을 지향하고 있음을 보게 한다. 말 할 것도 없이 수필은 이미 있는 또한 있을 수 있는 인생을 밝혀내고, 여기에 새로운 의미를 부여하는 ‘문학하는 일’일 것이다. 이 점에 있어 김희자의 수필은 본격수필로 나아가고 있음을 보게 한다. 특히 존재 파악의 진중함은 삶의 해석과 의미화를 의한 열정, 파토스의 구현을 보게 한다. 인간 존재의 의미를 밝혀내고자 하는 김희자의 수필작업이야말로 진정한 문학이 될 수 있을 것으로 판단되었다.
우연인가, 아니면 의도적인 창작행위인가. 김희자가 다루는 소재는 ‘인간’이다. 그가 표현 대상으로 삼고 있는 담론의 포커스는 공통적으로 ‘인간’에 있다. 수필 <뒷짐>에서는 아버지의 뒷모습을 훔쳐보고 있고, <녹비>에서는 작은 꽃을 닮은 친구에 포커스를 맞추고 있으며, <밑불>에선 가난한 사람들의 밑불로 은근하게 남는 ‘정’씨에서 초점이 모아진다. 그리고 <회화나무>는 문학에의 순수한 열정을 지닌 화자의 스승을 회화나무에 비유하고 있다. 그런가하면, <아궁이>와 <손>에선 어머니를, <반지>에서는 남편을 화소로 하고 있다. 이렇듯 김희자의 소재 부려 쓰기는 시선의 공통점 곧 인간 존재의 해석과 의미화에 있음을 보게 한다. 이는 한 작가에게 있어 최초로 요구되는 작가 정신이라 해도 좋겠다. 수필은 무엇을 다루었던 간에 어디까지나 인간의 영혼을 울려주는 생명의 구경적인 의미 발굴과 표현에의 인간학임을 전제한다 할 때, 김희자의 수필은 인간 체험에의 언어적 의미화로서의 가치 있는 시사라고 하겠다. 그의 수필은 미셀푸코가 말했듯, “사유의 전 지평을 산산이 부숴버리는” 존재의 의미를 해석해 냄으로써 독자로 하여금 삶의 진실에 눈뜨게 한다.
크로체에 따르면 예술뿐만 아니라 언어도 표현이라고 했다. 언어가 곧 예술임을 의미한다. 이 점에 있어 칼 포슬러 역시 언어학자는 언어가 가진 예술성에 주목하여 언어학을 미학에 종속시키기까지 했다. 하지만 예술은 미메시스 즉 모방이 아니다. 예술가의 영혼은 정신세계 속의 ‘원형’을 보고 그에 따라 창작된다. 이 원형인 형상을 무정형적인 ‘질료’에 부여하여 아름다운 형태를 만들어낸다. 김희자의 수필은 질료의 의미화에 천착하고 있는 한편, 우리들 일상을 소재로 취택하고 있지만 그 안에서 일상 이상의 것을 추구하고 있다는 데에서 장점이 발견된다. 수필은 그 소재를 생활 속에서 찾아낸다. 따라서 생활이 곧 수필이고, 수필이 곧 생활이 되는 셈이다. 그러나 우리의 일상생활이란 너무도 낯익어서, 무심히 지나쳐버리는 일이 허다하다. 무심한 눈에는 아무것도 띄지 않는다. 그러므로 생활 속에서 소재를 찾으려면 익숙하고 낯익은 것들을 ‘낯설게’ 바라볼 수 있어야 한다. 김희자의 수필은 어디서 보았음직한 사유의 단서를 소재로 하고 있지만, 그만의 얼굴로 자신의 성을 구축하고 있다는 데에서 작품으로서의 완성도를 높이 사게 한다.
수필 <뒷짐>은 “묵정밭이 늘어진 골을 지나 재를 오른다. 빈 가지로 서 있는 나무들이 처연하다. 우리네 인생처럼 구불구불한 길을 앞서가는 아버지의 등이 텅 비어있다. 세월에 부대끼고 풍상에 시달린 등은 꼿꼿하던 자존심마저 누그러뜨린 듯 구부정하다. 빈 등에는 두 손이 동그랗게 올려 져 있다.”라는 서두와 “선산이 있는 재가 가까워진다. 아버지의 등에 있는 세상을 내 등 위에 올려본다. 둥근 세상을 업은 내 마음이 둥글둥글해진다.”는 결미를 조응시키면서 아버지에 대한 처연한 페이소스를 구체화하면서 존재의 해석과 정서의 지성화와 함께 의미화에 이바지하고 있다. <아궁이>에서 어머니에 대한 소회 또한 등가의 관계에 있다. “사랑과 희생마저도 은근하지 못하고 쉬이 더워지고 식는 요즘이다. 인내심도 진득하지 못해 빨리 포기를 한다. 아궁이에 군불을 지펴야 방이 따뜻해졌던 예전에는 가족애도 깊었고 아랫목을 내어주는 정도 깊었다. 그래서 우리는 뜨거운 삶을 받아들인 어머니의 인내와 식지 않는 정을 그리워하는 것이 아닐까. 훨훨 타올랐다 식어가는 아궁이 앞에서 어머니의 삶과 내 삶을 반추해본다.”라는 결미 역시 존재 파악이라는 인간학적 측면에서 보면 합목적이라 하겠다.
이런 인간학적 측면이 극대화된 작품은 바로 <밑불>과 <녹비>다. <밑불>에서는 빡빡한 삶을 살아가는 이웃들에게 밑불이 되어주는 ‘정씨’에게 포커스를 맞추고 있다. “할머니가 연탄을 들고 좁은 부엌으로 들어간다. 그 뒤를 정씨가 따라 들어가 불구멍을 맞추고 불씨를 당긴다. 식었던 아궁이가 벌겋게 달구어지고 두 사람의 얼굴이 환해진다. 부엌 입구에 핀 키 작은 소국이 그들을 따라 웃는다. 정씨가 지핀 밑불은 겨우내 꺼지지 않고 할머니의 찬 겨울을 데워줄 것이다. 따뜻한 인간애로 살아가는 사람이 있어 음지에 사는 사람들의 겨울은 춥지 않고 희망적이다. 아궁이에 밑불을 살린 정씨가 또 다른 집을 향한다. 나도 가슴에 불씨를 품으며 까맣게 변한 장갑을 다시 끼고 작은 대문을 나선다.”라는 장면은 삶을 긍정적으로 살아가는 진솔한 태도가 독자를 감동하게 한다. “가난한 사람들의 밑불로 은근하게 남는” 삶의 진정성은 <녹비>에서의 “작지만 넉넉하게 베풀고 희생되는 모습은 진정 아름답다. 자신을 희생하여 가족을 지킨 친구처럼 자비가 가득한 꽃이다.”라는 해석과 근거리에 있다.
무엇보다도 김희자의 작품들은 존재 파악이라는 주제의식만이 아니라, 그 행간의 담긴 삶에 대한 진정성이 언어 미학적이다. 타자의 삶을 내 것으로 하는 즉대자의 감동이 오래도록 마음에 남게 하는 수필들이다. 이런 수필을 두고 어찌 키치 운운하랴. 『수필세계』는 비로소 한국 수필문단의 새로운 지평을 여는 또 한 사람의 작가를 탄생시켰다고 하겠다. 김희자의 행보를 지켜볼 일이다.
심사평 : 한상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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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인상 당선소감
인연의 길
겨우내 닫혀 있던 창을 엽니다. 햇살이 고루 퍼진 들녘에 봄이 오고 있습니다. 꽃샘추위에 옷깃을 여미지만 도처에서 봄기운이 소리 없이 번집니다. 잎이 시들었던 토분에도 새싹들이 움 돋고 꿈길인 듯 어려 오는 그리움이 움츠렸던 가슴을 펴게 합니다.
세상의 단절을 맛보며 뜨겁게 눈물을 흘리던 시절, 그리운 것들은 늘 등 뒤에 있었습니다. 어디론가 떠나 나를 찾고 싶었습니다. 그럴 때마다 나는 마음의 길을 만들어 자연과 옛 향기 속으로 여행을 하였습니다. 자연 속에는 오래된 풍경이 있었고 오래된 풍경 옆에는 늘 자연이 함께했습니다. 세월의 더께가 앉은 것에는 불투명한 빛깔이 감돌았고 그 빛깔 속에는 옛 그림자가 남아 있어 마음이 쏠렸습니다. 여행길에서 돌아오면 그 풍경을 그려내었고 감정을 다듬어 글을 썼습니다. 하지만 그 글은 문학성이 결여된 기행문일 뿐이었습니다.
문학에 몸을 담고 있는 지인께서 글을 끌고 가는 힘이 엿보인다며 수필을 써 보라고 권하였습니다. 멋모르고 수필과 연을 맺었습니다. 수필의 숲에 당도하는 길이 얼마나 험난한지를 길에 들어서고서야 알았습니다. 아득하기만 한 길을 걸으며 기쁨과 슬픔, 좌절과 다시 일어서기를 체험하였습니다. 스승님의 절제된 가르침은 감정에만 치우치던 나의 글을 조금씩 무르익게 만들었습니다.
수필은 나를 찾고 구원하는 길이며 세상을 깊이 사랑하며 하루하루의 삶을 사색으로 이끄는 인연의 길이었습니다. 깊은 고뇌와 시련에서 허덕일 때 나를 바로 세우는 길이 되어 주었습니다. 고통을 이겨내기 위해서는 고통 하는 법을 익혀야 했고 기다림 또한 필요했습니다. 고통의 언덕을 넘고 어둑한 터널을 지난 후에야 나는 깨달았습니다. 모든 것에는 때가 있고 긴 기다림 뒤에 아름답게 열매가 맺는다는 것을.
지나간 흔적은 모두 그대로 남는 것이 아니라 세월이 흐르면서 바뀌거나 치유된다고 하였습니다. 수필은 지나간 시간의 기록이 아니라 우리를 향해 다가오는 미래를 품는 것이었습니다. 모든 고통과 기쁨이 정제되어 수필의 품에 뿌리를 내릴 때 우리의 삶도 빛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한 편의 수필을 그려내면서 내가 설 자리와 가야 할 길을 다시 한 번 확인했습니다.
인생은 한 편의 긴 수필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기쁜 날에는 기쁨을, 슬픈 날에는 슬픔을 고독한 자존심으로 삭여 정제된 언어로 진솔하게 표현하고 싶습니다. 당선이 끝이 아니라 시작임을 가슴에 품으며 인연의 길을 걷겠습니다. 등단 후 5년까지는 신인이라는 말을 기억하며 또다시 걸음마를 뗍니다.
설익은 글에 기꺼이 정을 내어 주신 수필세계 심사위원님들께 감사한 마음을 전합니다. 삶의 길을 잃고 헤맬 때 인연의 길이 되어 주신 스승님과 선후배 문우님들께 감사를 드립니다.
신인상 당선작품
뒷짐 외 4편
김 희 자
묵정밭이 늘어진 골을 지나 재를 오른다. 빈 가지로 서 있는 나무들이 처연하다. 우리네 인생처럼 구불구불한 길을 앞서 가는 아버지의 등이 텅 비어 있다. 세월에 부대끼고 풍상에 시달린 등은 꼿꼿하던 자존심마저 누그러뜨린 듯 구부정하다. 빈 등에는 두 손이 동그랗게 올려져 있다.
나는 허락도 없이 아버지의 뒷모습을 훔쳐본다. 뒷짐을 진 바른손이 왼손을 감싸 안고 있다. 누가 보아도 여유로운 모습이다. 젊은 날 이 고개를 오르내리며 등에 졌던 지게도 없고 세월의 등짐도 고스란히 내려놓았다. 아버지는 구멍이 숭숭 뚫린 뼈마디의 등허리로 세상을 업고 간다. 뒷짐 진 아버지의 둥근 모습에서 세상의 이치를 배운다.
아버지는 젊은 시절에 올곧고 고집이 셌다. 모두들 입을 모아 농사지을 사람이 아니라고 했다. 이장, 새마을 지도자, 대의원까지 하신 아버지는 개척정신이 강해 농사보다 바깥일이 더 어울렸다. 젊은 날 뜻대로 되지 않는 세상을 탓하며 좌절의 늪에 빠져 술로 세월을 달래었다. 가장의 자리를 망각한 채 술에 전 몸으로 감나무 아래 쓰러져 있기도 하였다. 그런 아버지를 헤아리지 못한 나는 마음을 트지 못하고 모난 마음을 품고 살았다.
한창 꿈을 키울 사춘기 때였다. 나는 상급 학교에 들어갈 수 있는 충분한 성적이었으나 형편상 진학을 포기하였다. 주경야독을 할 작정으로 낯이 선 도시로 나왔다. 이끌어 주는 이가 없어 홀로 가는 길은 아득하고 외로웠다. 모든 것이 무책임한 아버지의 탓이라고 넘겨씌웠다. 그 당시 축산업에 손을 댄 아버지는 소 값 파동으로 큰 빚을 안게 되자 자신의 불운을 한탄하며 술독을 끌어안고 살았다. 착잡한 아버지의 속마음을 헤아리지 못하고 보잘것없는 딸이라 관심이 없다고 여겼다. 속내를 숨긴 채 술을 가까이했던 아버지를 이해하는 데는 오랜 시간이 필요했다.
가정을 꾸리고 마흔 줄에 이르니 부녀지간에 두는 거리가 얼마나 우스꽝스러운지 알게 되었다. 사리에 눈을 뜨고 보듬는 법을 터득하면서 마음이 풀리기 시작하였다. 모난 마음을 갈아 둥글게 품는 연습을 하였다. 애써 손 내밀어 아버지의 손을 잡았고 내 마음을 보냈다. 한 해, 두 해가 흐르자 속내가 드러나지 않던 아버지의 정이 차츰차츰 느껴졌다. 아버지의 의중과는 상관없이 분별이 서지 못한 나의 일방적인 생각이었음을 뒤늦게야 깨달았다. 소원해서 내 안에 머물던 마음이 둥그레졌다.
지난해 가을, 몸이 쇠한 아버지는 경운기의 힘을 이겨내지 못하고 언덕길에서 넘어졌다. 등뼈에 금이 간 아버지는 옴짝도 못하고 병상에 눕게 되었다. 큰언니가 다시는 농사일을 하지 말라며 으름장을 놓지만 아버지는 아무런 대꾸도 없이 두 눈을 꼭 감았다. 평생토록 일군 터전이 묵정밭으로 버려지는 것을 차마 보지 못하는 탓이었으리라.
하룻밤이라도 치성으로 간호하며 마음을 트고 싶어 피붙이들은 모두 보냈다. 좁다란 보조 침대에 누워 있으니 아버지의 신음이 들려왔다. 소변기를 찾아 뒤척이는 소리에 몇 번이나 일어났다. 산수(傘壽)에 이른 연세이니 배뇨장애가 없을 리 만무하다. 시원치 않은 배뇨 탓에 소변을 보는 횟수도 잦고 변기를 비우려면 기다림 또한 필요했다. 밤이 깊어지자 진통제를 맞은 아버지의 앓는 소리는 점점 옅어져 갔다.
새벽에 눈을 뜨니 소변기가 제법 차 있었다. 깊게 잠이 든 나를 위해 기척을 내지 않고 몇 번이나 소변을 본 것이다. 변기를 비운 후 몸을 닦아 드릴 요량으로 수건을 적셨다. 침대 옆으로 바투 다가서니 아버지의 코와 내 코가 닿을 것만 같았다. 늘 높기만 하고 멀게만 느껴졌던 아버지였다. 원망만 했던 아버지의 노쇠한 얼굴은 광대뼈만 앙상궂고 물기라곤 없어 까칠하였다. 어릴 적 다리를 밟아 드린 적은 있었지만 소세를 돕는 건 처음이다. 세월은 아버지의 얼굴을 비껴 가지 않고 골을 남겼다. 그 곧던 성격도 세월에 깎여 둥글둥글해졌다.
골진 세월을 펴 주기라도 하듯이 얼굴을 닦고 또 문질렀다. 무슨 생각에 잠겼는지 아버지는 입을 살짝 벌린 채 웃으셨다. 나는 미소에 답례라도 하듯 살며시 웃다가 못 볼 것을 보고 말았다. 틀니를 뺀 잇몸은 비어 있고 대문니 하나만 아버지의 자존심처럼 우뚝 드러나 있었다. 미라처럼 앙상하게 마른 몸은 더욱 초라하게 만들었다. 순간 아버지의 흐린 눈과 물기가 도는 나의 눈이 마주쳤다. 눈자위에 맺히는 이슬을 감출 수 없어 나는 딴청을 피웠다.
병실을 떠나오기 전 아버지의 어깨를 살포시 감쌌다. 아버지도 중년이 된 여식의 어깨를 감싸 안았다. 아버지의 가슴에 내 가슴이 닿는 순간 얼었던 봄눈이 녹아들 듯 굳었던 마음도 풀어졌다. 중년이 되고서야 안겨 보는 그리운 품이었다. 젊은 날 풍성하던 가슴은 빈약해졌지만 처음 안겨 보는 품은 햇솜 이불처럼 포근했다. 기억을 더듬어도 아버지의 품에 안겨 본 적이 없고 멀게만 느껴졌던 가슴이었다. 그제야 나는 아버지를 다 안을 수 있었다.
양지가 있으면 음지 또한 있는 법이다. 아버지의 완고함 뒤에는 여린 마음이 숨겨져 있었다. 그 여린 마음 때문에 자신과의 싸움에도 약했던 것이 아니었을까. 세월은 잔잔한 바람결처럼 혹은 세상을 뒤엎는 폭풍처럼 지나갔다. 아버지의 성품은 세월 따라 흘러온 강물처럼 유연해지고 마을 회관 경로당 출입도 잦아졌다. 사는 일이 마음대로 되지 않아 아버지가 품을 수 없었던 세월을 이제는 이해할 것 같다. 나 또한 그랬었다. 세상사 뜻대로 되지 않을 때는 내 가슴만 시린 줄 알았다. 아버지를 이해하고 존경하는 일에도 인색했던 내가 세상을 둥글게 품는 일이 어디 쉬웠을까. 지금에 와 생각하니 옹졸했던 내 자신이 한없이 부끄럽다.
팔순을 코앞에 둔 아버지가 빈 등으로 세상 한 채를 업을 수 있음은 여유가 아닐까. 등허리의 빈손 위에 가볍게 올라앉은 우주를 볼 수 있음은 나의 가슴이 둥글어지고 있기 때문이리라. 모든 것을 내려놓은 아버지를 닮기에는 부족함이 많지만 가끔 뒷짐을 져 보는 일도 괜찮을 듯싶다. 등 뒤에 두 손을 올려 삶을 뒤돌아보기도 하고 설익은 생각과 행동들을 둥글게 만들면 세상을 안는 마음이 더 너그러워지리라. 나도 아버지의 연륜이 되면 세상을 다 안을 수 있을까.
선산이 있는 재가 가까워진다. 아버지의 등에 있는 세상을 내 등 위에 올려본다. 둥근 세상을 업은 내 마음이 둥글둥글해진다.
녹비
고만고만한 꽃들이 아기같이 여리기도 하고 맑은 별처럼 초롱초롱 빛나기도 한다. 먼발치에서 바라본 자운영은 부드러운 꽃구름처럼 보이더니 바투 앉아 들여다보니 어느 것 하나 청순하지 않은 것이 없다. 투명한 하오의 햇살마저 연보라 꽃 속으로 스미더니 논바닥에서 땅이 숨 쉬는 소리가 들린다. 대지는 비우고 채우며 생명을 키워낸다.
작은 꽃이 무리 지어 핀 들판을 보니 잃어버린 옛날이야기가 꽃으로 피어난다. 머리를 맞대고 재잘거리는 자운영은 학교 숲 사이로 부서지던 햇살처럼 깔깔대던 친구들과 흡사하다. 이제 그 시절의 친구들은 사십 줄의 중반에서 자식 두세 명을 거느린 엄마로 살아간다. 강가 논에서 만발한 자운영을 농부가 쟁기로 갈아엎는다. 가장 아름다운 순간에 자신을 희생하는 꽃을 보니 세 아이의 엄마로 살아가는 친구가 떠오른다.
그해 여름은 유독 무덥고 길었다. 찻집에서 만난 친구는 하루가 천 년 같다며 울먹였다. 남편의 사업이 수렁에 빠질 줄은 몰랐다며 작은 가슴을 쳤다. 천장이 뚫어져라 한숨을 토하는 그녀를 내가 거들 수 있는 것은 딱한 사정을 들어 주는 일과 위로뿐이었다. 수년 전 친구의 남편은 멀쩡한 직장을 그만두고 유통업에 뛰어들었다. 순풍에 돛 단 듯 나아가리라 믿었던 사업이 실패하자 그 사실을 차일피일 미루다가 파산의 지경에 이르렀다.
답답한 속이 시원하게 풀리도록 하소연을 받아 준 나는 친구의 어깨를 감쌌다. 한때 나 또한 그녀의 아픔만큼이나 버거웠던 시간들이 있었기에 힘주어 보듬었다. 지난날의 경험담을 들려주며 개인 회생을 준비하는 남편 옆에서 소중한 가족을 지키라고 당부했다. 그녀는 터질 것 같은 울음을 꾸역꾸역 삼키며 어금니를 앙다물었다. 가족을 위해 다시 일어서 보겠다는 결심에 갈채를 아끼지 않았다. 그녀는 온실에서 자란 꽃처럼 살아왔다. 세파에 시달려 보지 않은 친구라 닥쳐올 어려움을 감내하기란 쉽지 않을 거라며 무거운 걸음으로 헤어졌다.
환경이란 참으로 무서운 것이었다. 그해 가을 두 가지 일을 시작했다는 친구의 연락을 받고 움찔 놀랐다. 그녀는 이미 온실에서 자란 꽃이 아니었다. 아이들을 키우기 위해 자신의 희생을 감내하고 있었다. 강해진 모습은 상상 밖이었다. 평소 자기 몸을 아끼고 재바르지 못한 성격이라 두 가지 일을 해내기는 어림없는 일이라 생각했었다. 하지만 내 짐작은 빗나갔다. 그녀는 일벌처럼 일만 했다. 돈을 버는 일이 생활로 되어 버렸다는 말이 그해 가을을 더 쓸쓸하게 만들었다.
스산한 가을이 몇 번 지나가고 매운 겨울날들이 지나갔다. 살을 에는 하루하루를 견디며 가계를 꾸려 가는 친구의 모성은 위대했다. 취미를 살려 보려고 수년 동안 준비했던 꽃 공부도 접었다. 꿈을 막 펼칠 즈음 모든 것을 포기하고 일터에 작은 몸을 내던졌다. 본업이 끝나는 저물 녘이 되면 또 다른 일터로 자리를 옮겨 일을 더했다. 키는 작달막하고 몸은 가늘었지만 다부졌다. 가끔 만나서 차도 마시고 정담을 나누었건만 일에 파묻혀 사는 그녀의 얼굴은 나라님 보기보다 힘들었다. 동안이던 얼굴은 힘든 세월에 부대끼며 까칠해지고 야위어졌다.
어둠이 깊숙이 깔린 밤까지 일을 하던 그녀는 과로로 병까지 얻어 쓰러졌다. 목에 칼을 대는 수술을 하고도 가족 걱정뿐이었다. 입원 와중에도 일자리를 잃을까 봐 안절부절못했다. 수술의 상처가 채 아물기도 전에 일터로 나가는 친구가 참으로 신통방통했다. 그런 친구를 보며 산다는 것은 사랑하는 이들을 위해 자신을 다 버리는 거라고 생각했다. 세 아이의 엄마였던 그녀는 자신을 아낌없이 희생하여 쓰러져 가는 가정을 다시 일으켜 세우고 주름과 흉터만 남았다.
오월의 들판이 넉넉하다. 언덕 아래 흐르는 섬진강처럼 관대한 사랑을 나누는 작은 꽃이 아름답다. 가을걷이가 끝나면 농부들은 들판에 밀이나 보리를 심어 이듬해 봄이 되면 들판을 푸르게 한다. 밀이나 보리를 심지 않은 논에는 자줏빛 꽃이 구름처럼 피어난다. 꽃이 가장 아름답게 피는 순간에 갈아엎어 모내기 준비를 한다. 자운영을 갈아엎은 농부의 논바닥이 속살을 드러내고 누워 있다. 절정의 순간에 자신을 희생하는 자운영은 농부의 야만 때문이 아니라 꽃이 스스로 베푸는 자비이다. 연한 잎이 돋아났을 때는 소박한 사람들의 배를 채우는 나물이 되고 꽃을 피워서는 꼬마 벌에게 공양을 한다. 가장 아름다운 순간에는 땅과 한 몸이 되어 땅을 살찌게 하고 새로운 생명을 잉태하게 한다.
땅속으로 들어간 작은 꽃은 땅의 심을 키우는 대표적인 녹비가 된다. 만물은 겪으면서 숙성한다. 자운영도 발효가 잘되어야 좋은 녹비가 되고 대지는 땅속 녹비를 아우르고 버무려야 비옥해진다. 삶이 위기라고 느낄 만큼 절박할 때 친구는 운명처럼 들이닥친 현실을 거부하지 않고 묵묵히 일만 하였다. 말없이 피었다가 제 몸을 썩히는 녹비와 진배없었다. 몸은 여리지만 가족들을 위해 살아온 그녀는 온실 안의 꽃이 아니라 들판에 피는 꽃이었다. 절박한 삶을 이겨낸 그녀에게서 이제는 성숙한 삶의 향기가 풍겨진다.
작고 여린 것에서 은혜로움을 배울 때가 있다. 작은 꽃이 유혹하는 들녘에 앉았다가 자운영을 꼭 닮은 친구를 떠올렸다. 키 작은 꽃처럼 작은 몸집이었지만 자신의 희생조차도 감내했던 친구가 오늘따라 간절하게 생각난다. 자운영은 이 땅에 사는 민중들의 삶을 닮아 키가 작지만 넉넉하게 베풀고 희생되는 모습은 진정 아름답다. 자신을 희생하여 가족을 지킨 친구처럼 자비가 가득한 꽃이다.
논바닥에 핀 작은 꽃을 보며 나 자신을 돌아본다. 나는 얼마나 자비로운 존재인가. 말없이 피었다가 제 몸을 썩혀서 생명을 잉태하게 하는 작은 꽃을 얼마나 닮았을까.
밑불
말갛게 개는 하늘에서 가는 빗방울이 흩어진다. 할머니는 젖은 마음을 숨기려는 듯 야시비가 내린다며 하늘을 본다. 밑불의 불구멍을 맞추듯 차곡차곡 쌓아 올린 연탄이 빈 창고를 채운다. 금방이라도 떨어져 나갈 것 같은 창고 문짝이 간드랑거린다. 처마에는 작은 메주 두 개가 할머니의 빡빡한 삶처럼 매달려 있다.
창고에 쟁여진 연탄을 보며 마치 부자가 된 듯 할머니는 고맙다며 연방 허리를 굽실거린다. 할머니 집 연탄 창고는 지난겨울이 끝날 무렵부터 텅 비었다. 마지막 남은 연탄마저 타서 재가 되고 시커멓게 분칠을 한 창고만이 덩그렇게 남았다. 찬바람이 나도는 가을까지 비어 있던 창고가 채워지자 할머니의 골 진 얼굴이 펴지며 엷은 웃음이 입가에 번진다. 색 바랜 찻잔에 내어 온 유자차가 넘칠 듯 찰랑댄다. 할머니는 차를 내어 온 쟁반을 내려놓으며 혼잣말로 중얼댄다.
“가심에 불씨가 없으면 이런 일은 못 하제.”
겨우내 땔거리가 될 연탄을 준다기에 며칠째 잠을 이루지 못했다는 할머니는 고마움 반과 부끄러움 반이 섞인 마음을 유자차에 띄우고 나왔다. 한 뼘쯤 열린 낡은 현관문 사이로 속 살림이 들여다보인다. 홀로 사는 집주인이 지방에서 일을 하기에 독거 노인인 할머니가 주인인 양 집을 지킨다. 습한 기운 때문인지 천장에 붙은 벽지가 금방이라도 떨어질 듯 너덜댄다.
거실 한 켠의 낮은 탁자에는 피붙이 하나 없는 할머니의 마음이 둥지를 튼 것인지 오순도순 모인 닭 식구들의 모형이 올려져 있다. 문틈으로 그 모습을 엿본 내 눈에 물기가 괸다. 짠해지는 마음을 외면하려고 바깥으로 눈길을 돌려 연탄을 나르던 사람들을 바라본다. 언제 절인 유자인지 색 바랜 유자차는 금방 식었지만 정성을 생각하여 찻잔을 말끔하게 비운다. 할머니의 혼잣말처럼 야시같이 내리던 비가 그새 그쳤다. 말개진 하늘을 올려다보던 나는 유자차의 찌꺼기까지 들이켜고 있는 정 씨의 등에 시선이 멈춘다.
정 씨가 덧입은 옷은 빛을 상징하는 주황색 옷이다. 등 뒤에 새겨진 하트가 빛을 발하여 뜨겁다. 그는 주말이면 음지에 사는 사람들의 집을 찾아다니며 온기를 나눈다. 여느 사람들 같으면 취미를 즐기거나 나들이를 나갈 터인데 그는 주말마다 하트가 그려진 옷을 입고 그늘진 곳에 가서 뜨거운 존재가 된다.
이태 전, 마음에 여유가 생겨 이웃에게 눈을 돌리면서 알게 된 정 씨이다. 그늘진 곳에서 만난 그는 늘 일복 차림이었다. 그는 천장이 낮은 사람들의 집을 찾아다니며 여름에는 도배를 하고 겨울에는 연탄을 넣어 준다. 여름에는 풀이 덕지덕지 묻은 옷을 입고 있었고 겨울이면 동이 트지 않은 새벽에 나와 까만 연탄으로 화장을 하고 있었다. 가난한 사람들의 상처처럼 얼룩진 벽은 그의 손길만 닿으면 말끔하게 고쳐졌고 가을의 끝자락에 넣어 준 연탄은 찬 방의 밑불이 되었다. 거칠어지는 손은 아랑곳하지 않은 채 음지 사람들의 가슴을 데워 주었다.
한 번은 알코올 중독자가 혼자 사는 집에 연탄을 넣으러 갔다가 토악질을 할 뻔했다. 한 사람이 누울 정도의 어둑한 공간에 이불이 검불덤불 엉켜 있고 온 방이 쓰레기장이 되어 구더기가 나올 것만 같았다. 그런 방을 정 씨는 가장 먼저 들어가 소제를 하였다. 몇 번이나 음지로 나갔지만 그가 게으름을 피우는 모습은 본 적이 없었다. 더럽고 힘든 일에 앞장을 서는 그를 보면 뒷전에서 눈만 멀뚱거리는 나 자신이 숨고 싶을 정도로 부끄러웠다.
거침없이 소리를 내며 타오르다 이내 불꽃이 사그라지고 마는 나 같은 사람이 있는가 하면, 가난한 사람들의 밑불로 은근하게 남는 정 씨 같은 사람도 있다. 그는 몸으로만 베푸는 게 아니라 푼푼이 모은 용돈으로 해마다 연탄을 기부한다. 그의 따스한 가슴은 홀로 사는 노인들의 빈 마음을 채워 주고 훈훈한 기운을 전한다. 밑불은 온몸으로 자신을 태워 한 덩이 재로 남지만 다른 연탄에 불씨가 옮겨지면 하염없이 뜨거워진다. 말없이 희생하며 누군가에게 희망의 불씨가 되어 살맛을 도드라지게 하는 사람, 정 씨가 바로 밑불 같은 사람이다.
다가올 겨울이 걱정 없다며 할머니는 콧소리가 섞인 유행가를 구성지게 부른다. 노랫소리는 까치 감을 매달고 있는 나뭇가지로 올라가 걸린다. 가슴이 뜨거워진다. 가난하고 쓸쓸한 할머니를 신명이 나게 만든 것은 밑불 같은 사람의 가슴이다. 벌겋게 달아오른 연탄 밑불이 새로 놓인 연탄에게 불꽃을 넘겨주듯이 가난한 사람들의 선득한 방구들을 데우는 밑불 같은 사람이 있어 세상은 아직 따스하다. 사랑하기를 두려워하지 않고 먼저 손을 내밀어 외로운 마음들을 보듬는 사람을 보면 주위 사람들도 그 따스함이 전염된다.
할머니가 연탄을 들고 좁은 부엌으로 들어간다. 그 뒤를 정 씨가 따라 들어가 불구멍을 맞추고 불씨를 댕긴다. 식었던 아궁이가 벌겋게 달구어지고 두 사람의 얼굴이 환해진다. 부엌 입구에 핀 키 작은 소국이 그들을 따라 웃는다. 정 씨가 지핀 밑불은 겨우내 꺼지지 않고 할머니의 찬 겨울을 데워 줄 것이다. 따뜻한 인간애로 살아가는 사람이 있어 음지에 사는 사람들의 겨울은 춥지 않고 희망적이다. 아궁이에 밑불을 살린 정 씨가 또 다른 집을 향한다. 나도 가슴에 불씨를 품으며 까맣게 변한 장갑을 다시 끼고 작은 대문을 나선다.
거리에 내린 플라타너스 이파리가 몸을 뒤적이며 뒹군다. 생활이 어려운 사람들에게는 걱정이 하나 더 느는 계절이다. 스산한 바람이 옷깃을 스치면 가난한 사람들의 마음은 더 쓸쓸해진다. 세상은 한쪽이 양지라면 한쪽은 음지이다. 볕이 잘 들지 않는 그늘진 곳을 데워 주는 일, 그게 바로 밑불 같은 나눔이 아닐까. 정 씨가 손수레에 또 연탄을 싣고는 앞장을 선다. 나는 그가 끄는 손수레에 힘을 싣고 가파른 언덕길을 오른다.
회화나무
산천은 연두에서 초록으로 건너간다. 물줄기를 거슬러 길을 돌아서니 낙동강의 정취가 한눈에 들어오는 도산서원이다. 서원 계단을 한 계단씩 오른다. 한 발짝씩 걸음을 옮기니 배움의 길 또한 이와 다를 바 없다며 퇴계 선생님이 말을 거는 듯하다. 뜰에는 봄이 깊어 선생님이 좋아하던 매화는 지고 모란이 흐드러지게 웃는다.
계단이 끝닿은 곳에 진도문이 서 있다. 학문을 하여 도(道)로 나아간다는 문을 바라보니 설렌다. 배움의 길을 걷고 있는 나에게는 다가서는 계단 하나하나가 유별나다. 막다른 계단에 이르는 순간 무언가에 붙들린 듯 옴짝할 수가 없다. 호기심이 많은 탓일까. 미지의 사물을 유심히 보는 버릇이 있다. 서원 안과 밖은 온통 봄빛이건만 봄을 잊은 나무 한 그루가 눈길을 붙든다. 잔가지는 모두 잃고 몸통만 남아 우뚝 서 있다. 밑동까지 썩은 걸로 봐서는 죽은 나무가 분명하다.
나무의 몸통을 담쟁이가 뒤덮고 있다. 그 모습은 마치 자신의 모든 것을 내어 준 형상이다. 잎을 찾아볼 수 없으니 무슨 나무인지 침량할 수 없다. 움푹 파인 밑동의 속마저 내어 주어 어린 담쟁이가 뿌리를 내리고 있다. 나무를 뒤덮은 담쟁이 잎들이 튼실하고 기운차다. 도대체 무슨 나무이기에 말라 죽은 후에도 자신의 몸을 내어 주고 있단 말인가. 살신성인을 하고 있는 나무를 보니 코앞에 둔 진도문을 들어설 수가 없다.
궁금증이 발동하여 나무 아래로 바투 다가섰다. 수피를 만지며 살피니 은발이 무성한 노신사가 외국인들과 다가선다. 사학자인 듯 노신사는 금발의 미인과 신사에게 여기저기를 손짓하더니 고사한 나무는 학자나무 또는 선비목으로 불리는 회화나무라고 한다. 쭉 뻗은 가지가 학자의 기품과 기개를 닮았다. 예전에 학식이 높은 집안이나 서원에서는 큰 인물이나 학자가 배출되기를 바라며 길상목(吉祥木)으로 회화나무를 심었다. 선비를 양성하던 이곳에 회화나무가 서 있는 뜻은 필시 우연이 아닐 것이다.
동방의 주자로 불리는 퇴계 선생님은 말년에 수십 회나 내려지는 벼슬을 사양하고 도산서당을 세웠다. 다가오는 시대를 위해 후진을 양성하고 학문의 세계를 분별하였다. 내면 수양의 기초가 되는 심성 탐구에 온 힘을 기울여 한결같은 학자의 태도로 만대 스승의 본이 되었다. 양지의 영광보다 음지의 미덕을 추구하셨으니 회화나무를 서원 뜰에 심은 속내가 있었을 터이다. 있어야 할 잔가지와 잎이 없어 허전하지만 절명한 후에도 우뚝 선 회화나무는 사상의 큰 줄기가 되었던 퇴계 선생님이 아닐까.
자기의 몸을 내어 주어 인(仁)의 모습을 보여 주고 선 회화나무를 가만히 들여다보니 나의 스승님과 참 많이 닮았다. 나무를 타고 줄지어 오르는 담쟁이 잎들이 마치 도반들 같다. 몸통뿐 아니라 밑동의 속까지 내어 준 회화나무는 자신의 몸을 아끼지 않는 스승님이나 진배없다. 곧게 뻗은 나무는 한결같은 스승님의 인품 같다. 평생을 교단에만 섰던 스승님이니 가르치는 일이라면 신물이 날 터이다. 하지만 제자리를 잡지 못하고 폄하되는 문학의 한 분야를 꽃피우기 위해 순수한 열정을 아끼지 않는다. 오직 한곳만을 바라보며 뜻을 세운다.
순수한 열정이 치닫던 지난해였다. 동에 번쩍, 서에 번쩍하던 스승님의 모습을 한동안 볼 수 없었다. 스승님이 서지 않는 배움터는 있어야 할 것이 없어 공허한 들판 같았다. 스무 날이 지난 후 여윈 모습으로 홀연 나타난 스승님은 먼 여행을 다녀왔다고 하였다. 여행을 위해 가르침을 소홀히 할 분이 아니라는 걸 익히 알기에 의아하였다. 큰 수술을 하고 돌아왔음을 뒤늦게 알고서야 가슴이 아렸다.
몸의 일부분이 망가져 장기를 이식하는 대수술까지 하였지만 연약함을 보이지 않았다. 후학에만 전심력을 다하였으니 몸이 성할 리 만무하다. 나무나 사람이나 쉬어야 할 때 쉬어 주지 않으면 탈이 난다. 해거리를 하는 나무처럼 우리 몸도 쉼의 시간이 필요하다. 하지만 스승님은 쉴 틈이 없었다. 학교 일이 끝나면 평복을 벗고 추구하는 문학에 매달렸다. 밑동까지 썩어 자신의 속을 내어 준 이 회화나무처럼 신체의 장기 한 부분을 도려내는 아픔을 겪고서도 가르침을 놓지 못한다. 수술 후 근기를 잃어 몸이 약하건만 자신을 아끼지 않으니 안쓰럽기 그지없다.
의연한 스승님이지만 어찌 한결같을 수 있을까. 수많은 도제들을 거느리는 것이 어디 쉬운 일인가. 제아무리 꿋꿋한 나무라도 모진 바람 앞에서는 흔들린다. 때로는 생각과 뜻이 서로 달라 표류하는 선박처럼 휘청거리곤 한다. 마음이 산산조각 나고 가슴을 치며 제자의 손을 놓아야 하는 아픔 또한 겪는다. 혼신을 다해 걸어온 길이 헛길이었다는 생각이 들 때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꿋꿋하게 서서 마음의 파도를 가라앉히며 뜻을 굽히지 않는다. 회화나무의 열매가 염주 알처럼 열려 이름난 선비가 많이 양성되기를 바랐던 퇴계 선생님처럼 스승님도 쓰러져 가는 문학의 한 분야를 제자들이 세워 주기를 바라며 묵묵히 기다린다.
진도문 안에서 담 너머로 회화나무를 내려다본다. 죽어서도 자신의 몸을 내어 준 나무가 우러러보인다. 주목은 살아서 천 년, 죽어서도 천 년을 산다고 하였다. 십여 년 전에 고사하였지만 퇴계 선생님의 사상이 고스란히 배어 있는 이곳의 회화나무는 얼마나 오래 살까? 잎이 무성하여 우아하던 고태야 볼 수 없겠지만 해마다 가을이 되면 회화나무 열매 대신 담쟁이 열매가 오종종하게 열릴 것이다. 훗날 나의 도반들도 갈고닦은 웅숭깊은 글을 쏟아내어 스승님이 기다리는 문학의 계절을 오게 할 것이다.
해가 중천에 뜨자 회화나무를 타고 오르는 담쟁이가 더욱 반짝인다. 빛을 내며 반짝이는 담쟁이를 바라보며 한곳에 마음을 모은다. 나무 꼭대기에 걸려 있는 퇴계 선생님의 사상을 좇는 담쟁이처럼, 나 또한 스승님의 뜻을 좇아 학자나무를 타고 오른다.
아궁이
까만 가마솥에서 김이 오른다. 아궁이의 불길이 거세지자 솥뚜껑 사이로 누런 콩물이 흘러내린다. 부지깽이로 불길을 헤집는 어머니의 옷섶에 그을음이 날아든다. 어머니는 지나온 삶을 어루만지듯 세지도 약하지도 않게 불땀을 조절한다.
고향 집을 찾았더니 어머니가 메주를 쑨다. 큰 채에 있던 아궁이는 집을 개조하면서 사라지고 아래채에 딸린 아궁이만 남아 해마다 메주를 쑬 때 불을 지핀다. 두 노인네가 일 년에 자시는 장이야 얼마나 될까마는 육 남매의 장을 대는 어머니는 해마다 이맘때가 되면 허옇게 식은 재 무덤을 긁어내고 아궁이에 장작을 땐다.
아궁이 속 불길을 무심히 바라보는 어머니의 모습이 애잔하다. 타오르는 불빛이 골진 세월을 어루만지듯 너울거린다. 삭정이 타는 소리가 어머니의 시린 무릎을 탁탁 두드린다. 마른 입술 사이로 무슨 노래인지 알 수 없는 옅은 가락이 새어 나온다. 어디에서 많이 들어 본 듯 애절한 노래. 속절없는 세월을 달래며 어머니 홀로 흥얼대던 애달픈 심곡이다. 어머니의 얼굴에는 메주에 움트는 곰팡이처럼 주름이 하나 둘씩 늘어 세월의 강처럼 흐른다.
어머니는 설익은 열일곱 살에 가마를 타고 시집와서 부지깽이 장단으로 한을 달래며 육십 년을 살았다. 그런 어머니에게는 부엌 자체가 몸통이었고 아궁이는 가슴이었다. 아궁이 속 불길에는 새색시 적 두근거림이 있었고 타는 눈물이 있었다. 맏며느리의 고단한 시집살이와 자식 셋을 가슴에 묻고 여섯을 기른 인고의 삶이 타서 재가 된 곳이기도 하다. 숙명적으로 타고난 것이 여자의 일생이라지만 어머니는 사시사철 일에 묻혀 살았다. 그 분주함을 잠시 내려놓을 수 있던 곳이 아궁이 앞이 아니었을까.
한때 세상을 품지 못하고 술독에 빠져 산 아버지의 주정을 받아 주며 어머니의 자리를 망각하지 않고 한 맺힌 노래를 풀어낸 곳도 아궁이였다. 치마 끝에 줄줄이 매달린 자식들 때문에 옷고름에는 눈물 마를 새가 없었다. 희생과 가난마저도 삶 자체려니 하고 뜨거운 불길을 받아들이는 아궁이처럼 삶을 품어야 하였다. 어머니의 삶은 고향 집 아궁이와 같이 타서 그을리고 남루해졌다.
가을걷이가 끝나면 어머니는 아궁이에 지필 땔감을 준비했다. 가족들을 위해 늦가을 내내 뒷산을 오고 갔다. 가을이 깊어지면 집 뒤란에는 어머니가 준비한 땔감으로 수북하였다. 장작 패는 소리가 끝날 즈음이면 겨울이 성큼 다가섰다. 처마 아래에 쌓인 땔감은 겨울나기에 효자 노릇을 했다. 어머니는 그 땔감으로 아궁이에 불을 지펴 가족들의 끼니를 짓고 방을 데웠다. 음식을 끓이거나 방을 데운 후 아궁이에 남은 잔불은 어머니의 잔잔한 마음 같았다. 자식들에게 내어 준 가슴처럼 불길이 사라진 잉걸불은 떡도 굽고 고구마도 구워 간식거리로 내어 주었다.
불을 가두어 추위를 안는 아궁이의 불기운은 가족들을 향한 어머니의 가슴이었다. 아궁이의 화기가 방 안으로 들어 구들이 데워지면 옹기종기 모인 가족들의 정도 덩달아 뜨거워졌다. 기나긴 겨울밤, 어둠이 물러나지 않은 첫새벽이 되면 정지문 여는 소리가 들렸다. 어머니는 식은 구들장을 데우기 위해 식구들이 잠든 새벽에 일어나 아궁이마다 군불을 지폈다. 지아비가 머무는 큰방 아궁이에 먼저 군불을 지핀 어머니는 자식들이 잠든 작은방에도 불을 지폈다. 아궁이를 붉게 달구던 어머니의 정은 식은 방을 달구어 자식들의 키를 키우고 희번하게 날을 밝혔다.
지난겨울 어머니의 생신날 도시 생활을 하던 자식들이 고향 집에 모였다. 옛 시절을 동경하던 피붙이들은 온돌방에서 잠을 청하고 싶어 했다. 자식들의 마음을 헤아린 어머니는 아래채 아궁이에 군불을 지폈다. 어머니의 사랑처럼 활활 타는 장작을 깊숙이 쑤셔 넣자 방바닥이 절절 끓으며 달아올랐다. 자그만 방에 모여 앉은 형제들은 어린 날을 회상하며 다리를 포갠 채 이야기꽃을 피웠다. 어머니의 정에 겨운 피붙이들의 정담은 방 안에 쟁여진 호박이 무르는 것도 모르는 채 밤이 깊도록 이어졌다.
한 번 데워진 온돌방은 식지 않는 어머니의 정처럼 오랫동안 훈훈하였다. 밤이 깊어 찢어진 창호지 사이로 찬바람이 새어들자 방은 서서히 식었고 도란거리던 이야기꽃도 시들해졌다. 새벽녘, 식었던 방이 다시 따스해지자 내 곁에 주무시던 어머니가 없다는 것을 알았다. 수년 전 중풍을 앓아 불편해진 몸을 끌고는 아궁이에 군불을 지핀 것이다. 점점 따스해지는 방바닥에 누워 평생 아궁이를 안고 사신 어머니를 생각하니 뜨거운 액체가 눈에 괴었다.
곁에 잠든 두 딸을 내려다보며 나는 얼마만큼 아궁이 같은 존재인가 하고 되물어보았다. 되돌아보면, 결혼 후 사는 동안 순탄했던 날들보다 고통스런 날이 더 많았다. 뜨거운 삶 앞에서 나 자신과 수없이 싸우며 자신감을 잃기도 하였다. 그럴 때마다 어머니는 나를 바로 서게 하는 스승이며 인생의 선배였다. 어머니처럼 아궁이 앞에서 고단한 삶을 달랠 수는 없었지만 뜨거운 불길과도 같은 삶을 받아들인 어머니를 생각하며 뜨거운 눈물을 꾸역꾸역 삼켰다.
오후의 해가 아래채의 그림자를 만들고 고향 집 굴뚝에 피어오르던 연기가 소멸한다. 시드는 불꽃에 마지막 콩이 허물어지고 아궁이는 그을음을 낳는다. 삶은 각각 다르지만 사람마다 아궁이처럼 뜨거운 불길을 안고 산다고 스스로를 위로한다. 나에게도 사랑스런 두 딸이 있으니 뜨거운 삶에 남루해져 가도 괜찮다.
사랑과 희생마저도 은근하지 못하고 쉬이 더워지고 식는 요즘이다. 인내심도 진득하지 못해 빨리 포기를 한다. 아궁이에 군불을 지펴야 방이 따뜻해졌던 예전에는 가족애도 깊었고 아랫목을 내어 주는 정도 깊었다. 그래서 우리는 뜨거운 삶을 받아들인 어머니의 인내와 식지 않는 정을 그리워하는 것이 아닐까. 훨훨 타올랐다 식어 가는 아궁이 앞에서 어머니의 삶과 내 삶을 반추해 본다.
참고작품 5편
반지/김희자
서산마루에 낙조 드리우고 땅거미가 내린다. 들녘을 삼킨 잿빛 어둠이 집안까지 비집고 들어와 발을 붙인다. 모두가 제자리로 돌아올 시간이다.
결혼기념일을 무심하게 넘긴 남편은 여느 날보다 이르게 현관을 들어선다. 그는 불룩한 호주머니에서 무언가를 꺼내더니 손에 쥐어준다. 분홍빛 통속에는 반지 두 개가 다소곳이 앉아 있다. 남편은 내 손을 슬그머니 당기더니 빈 약지에 반지를 끼어준다. 나도 세파에 시달린 그의 손가락에 반지를 끼어준다. 뜨거운 액체가 눈에 괸다. 구슬 같은 눈물방울이 반지에 뚝뚝 떨어진다. 젖은 낯빛을 감추려고 창밖으로 시선을 던지니 어둑한 들녘 너머로 지난 세월의 풍상이 주마등처럼 스쳐 간다. 감춰둔 사연이 설움에 겨운 듯 터진 눈물샘은 멈출 줄 모른다.
잃어버리고 싶은 지난날을 탓해 무엇 할까. 세월은 시간보다 더 많이 안다. 결혼 후 우리 부부는 행복했던 날들보다 치열하게 살았던 날이 더 많았다. 특별한 날이라고 여행을 한다거나 근사한 자리 한 번 갖지 못했다. 결혼 이십 주년이었던 지난해에는 수험생 딸이 있었고 분주한 일자리를 염치없이 비울 수 없어 여행도 접었다. 남편의 눈대중으로 사온 반지는 연화에 닳은 손가락에 꼭 맞는다. 돌아와 제자리이다. 몸이 약해진 그와 함께 남은 삶을 보듬어야 한다. 지난한 세월은 모두 잊고 다시 끼운 반지처럼 첫 마음으로 돌아가야 한다.
이십여 년 전, 어머니는 맞선을 보게 하여 넉넉한 집안으로 시집을 보내려 하였다. 그러한 어머니의 뜻을 어기고 어진 사람이 낫다며 내가 택한 결혼이었다. 성당에서 만난 남편과 나는 반지 두 개에 사랑을 담아 혼배를 올렸다. 단칸짜리 방에 단출한 살림으로 시작한 결혼생활이었지만 마음으로는 따스하고 모자람이 없었다. 남편은 하루하루에 정성을 쌓았고 두 딸도 곱살스레 커 주어 삶은 달았다. 알뜰살뜰히 모은 돈으로 내 집 장만도 하고 꿈도 부풀어 천석꾼이 부럽지 않았다
평온하던 둥지에 어느 날 반갑지도 않은 폭풍이 찾아왔다. 남편이 동료를 믿었던 게 되돌릴 수 없는 실수였다. 살뜰하게 모은 돈으로 마련한 둥근 보금자리가 남의 손에 허무하게 넘어가고 우리 가족은 길바닥에 나앉았다. 남의 빚까지 떠안다 보니 고통스런 날은 사그라질 줄 모르고 살아났다. 한 해, 두 해가 저물고 강산이 변해도 나아질 기미가 없자 남편에 대한 원망과 불신은 굴러가는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신물이 나는 삶에 치여 남편에 대한 믿음마저 와르르 무너졌다.
어느 순간부터 손가락에 낀 반지는 의미가 없다며 빼놓고 살았다. 밖으로 내색은 않고 안으로만 곰삭았던 속은 신경성으로 문드러졌고 상처 난 살림살이의 골은 패여만 갔다. 살아갈 방도를 궁리해도 뾰족한 수가 없어 결혼하면서 손을 놓았던 일에 다시 뛰어들었다. 어린 두 딸은 진종일 남의 손에 맡겨졌다. 이른 아침에 어린이집 문을 들어선 두 딸은 가장 늦게 그곳을 빠져 나왔다. 어스름이 깔린 저녁답에 두 딸을 보듬는 가슴은 늘 젖어 축축하였다. 삶이 질퍼덕댈수록 모성적 본능은 발동했다.
예전부터 어머니들은 생활이 힘들거나 뜻하지 않은 일을 당했을 때 아끼는 패물을 팔아 위기를 극복했다. 나 또한 빠듯한 하루하루를 연명하기 위해서는 앞서간 어머니들의 지혜를 따라야 했다. 패물이라고 이름조차 붙이지 못할 금붙이를 쓸어 모았다. 혼배반지까지 팔려고 마음을 먹었으니 가슴은 얼음장처럼 시렸다. 그런 내 마음을 눈치 채기라도 하듯 뒷모습을 보여야 할 겨울이 떠나지 않고 머뭇거렸다.
겨울 가뭄이 무색하게 연일 비가 내렸다. 몇 푼 되지 않는 반지를 들고 금방 앞을 보름이나 서성거렸다. 어금니를 앙다물고 금방으로 가는 날에는 온몸이 사시나무처럼 떨렸다. 찬 빗줄기에 얼어붙은 어깨는 무거운 돌덩이가 올라앉은 듯 무거웠다. 어렵사리 금방에 들어서니 안면이 있는 주인이라 당황스러웠다. 자존심이 종이처럼 구겨졌지만 거짓말을 할 수밖에 없었던 내 속내를 주인은 알 리 만무하다. 반지를 파는 순간 한곳에 머물던 사랑과 믿음이 무너져 내리는 듯 슬펐다. 슬픔은 더 강하고 깊어지게 하였다.
세월은 유수와 같이 흘렀다. 원망과 미움의 세월을 묻으니 연민의 정이 싹텄다. 언약을 담은 반지는 팔고 없었지만 두 딸은 반지처럼 연을 이어주었다. 남편의 속이 새까맣게 타는 줄도 모른 채 내 가슴만 시린 줄 알고 살았다. 나의 어리석음을 깨달았을 때는 이미 남편의 병이 깊어져 있어 가슴을 쳤다. 골이 패인 삶의 흔적은 긁힌 자국으로 남았지만 지나간 일들은 모두 껴안기로 마음을 먹었다. 온몸으로 울던 가슴의 통증을 걷어내고 남편의 손을 잡았다.
서럽기 그지없는 지난날이었다. 도와줄 피붙이도 있었지만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아 속내를 숨기고 살았다. 고통의 세월 속에서도 나를 바로 서게 한 것은 실 같은 희망을 이어주는 두 딸이었다. 나를 꼭 닮은 큰딸과 남편을 잘 따르는 작은딸이 우리 부부를 지켜주었기 때문이다. 녹록하지 않은 생활이었지만 아이들은 투정 한 번 제대로 부리지 않아 고마웠다. 쓰러질 듯 힘들고 또 다른 길 앞에서 서성거렸지만 두 딸을 보며 인연의 끈을 놓지 않았다. 그래서 자식은 부모를 연결해주는 인연의 고리, 반지가 아닐까.
가장 아프고 못난 곳에 생의 가장 뜨거운 부분이 걸리듯 다시 내 약지에 반지가 끼어졌다. 처음과 같이 순수한 마음으로 돌아가라는 뜻에서 반지는 시작과 끝이 맞닿았다. 만물을 포옹한 우주를 닮아 시작과 끝이 없이 무한하다. 험한 세상을 걷다보면 보이지 않는 돌부리에 걸려 휘청대기도 한다. 믿음이 깨어지고 분별에 눈이 멀어 소중한 연을 잃기도 한다. 처음처럼 사랑을 저버리지 않으려면 모나지 않고 금가지 않게 서로를 보듬어야 한다. 사랑은 말없이 둥글다.
이제 내 마음은 물처럼 편안하고 고요하다. 우수에 서려있던 낯빛도 사라졌다. 나의 약지에 다시 낀 반지처럼 두 딸이 있어 오늘 하루도 소중하다. 결혼 후, 평온하게 살아온 날보다 출렁대며 살아온 날이 더 많은 삶이었지만 둥글게 세상 담은 반지처럼 나는 늘 그 자리에 머물 것이다.
*원고 매수:16매
손/김희자
노모가 모은 두 손이 애잔하다. 늦가을 갈잎처럼 마르고 가는 손이지만 가지런히 모은 두 손에는 모정이 넘친다. 손등에는 세월이 강처럼 흐른다. 똑똑 떨어지는 수액을 쳐다보며 아들을 쓰다듬는 손길에 연민이 느껴진다. 비칠거리는 아들을 부축하고 병원 문을 들어선 노모의 온몸이 땀범벅이다. 여든 살은 족히 되어 보이는 노모는 아들보다 왜소하다. 축 처진 아들을 붙든다고 힘을 소진한 노모는 손끝만 닿아도 픽 쓰러질 듯하다.
일그러진 얼굴에 술 냄새까지 찌든 옷차림은 제아무리 환자라 해도 선뜻 다가설 수 없게 한다. 툭 불거진 오른쪽 눈과 초점을 잃은 왼쪽 눈동자는 보는 이의 시선을 돌리게 한다. 술 냄새를 풀풀 풍기며 침대에 늘어진 진수씨는 이십 대에 교통사고로 장애인이 되었다. 두 다리는 성하지만 어깨부터 한쪽 팔이 없어 몸에 균형이 잡히지 않는다. 노모는 속이 상한 아들이 며칠째 들이마신 술 때문에 밤새 앓았다며 링거를 놓아달라고 애원한다. 허구한 날 술로 마음을 달래야 한다니 속인들 어찌 문드러지지 않고 성할까. 한창 피가 끊는 나이에 장애인이 된 진수씨는 비어진 한 쪽을 채우기 위해 술과 가까워질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노란 액체가 출렁대는 병을 들고 침대로 다가섰다. 식은땀으로 범벅이 된 그의 팔에는 실핏줄만 몇 가닥 보일 뿐 링거를 놓을 만한 정맥은 드러나지 않는다. 쉬울 거 같지 않지만 환자가 탈진상태이니 무슨 수를 써서라도 링거를 놓아야 한다. 땀으로 끈적이는 손등을 닦고 나비바늘을 꽂자 가는 혈관이 툭 터지며 멍이 번진다. 긴 세월 동안 병수발을 해 온 노모는 주사를 더 잘 놓는 간호사는 없냐며 버럭 소리를 지른다. 콩죽 같은 진땀이 등을 흠뻑 적신다. 그는 사고로 오른 팔을 잃었고 머리까지 다쳤으니 온전한 몸이 아니다. 그런 몸을 치료하기 위해 수많은 수액을 꽂았을 터이니 밖으로 드러나는 혈관이 남아있을 리 만무하다. 목젖까지 끊어 오르는 부아를 억누르며 내 손에 한 번 맡겨보라고 넌지시 입을 뗐다. 등 뒤에 선 노모의 씩씩거리던 숨소리가 잠잠해진다.
그의 어머니는 한쪽 팔을 잃은 아들의 손 역할을 이십 년 동안 해왔다. 그래서 민감하게 반응할 수밖에 없음을 헤아린다. 어미한테 자식보다 더 소중한 존재는 없다. 나에게도 자식들이 있으니 애틋한 모정을 어찌 눈치 채지 못할까. 노모는 아들이 누운 침대 옆에서 떨어지지 않고 나의 행동을 유심히 들여다본다. 겨우 드러나는 가는 정맥이 그를 통증과 탈수에서 건질 수 있는 유일한 핏줄이다. 애타는 노모의 속을 풀어주기 위해서라도 마음을 한곳으로 모은다. 이럴 때는 눈보다 손에 느껴지는 감각이 더 낫다. 바늘을 찌른 손끝의 느낌이 좋다. 간절한 노모의 마음과 내 마음이 한 곳에 모아진 모양이다. 거꾸로 매달린 병에서 수액이 방울방울 떨어진다.
노모는 그제야 안심이 되는지 긴 숨을 토한다. 나도 안도의 숨을 내쉬며 진수씨를 다그쳤다. 그는 순한 양처럼 아무런 말도 잇지 못한 채 부자연스런 눈만 끔뻑거린다. 하나밖에 없는 손등에 링거를 맞고 있으니 정작 필요할 때 움직일 수 있는 손이 없다. 아들의 손이 대신 되어야 한다며 노모는 침대 옆에 바투 앉는다. 밤새 복통으로 잠을 이루지 못한 아들이 스르르 잠이 들자 곁에서 옴짝도 않는다. 졸였던 가슴을 다독이는 노모의 손 그림자가 커튼 너머로 흔들린다.
누군가의 손을 대신하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그를 낳아준 어머니였으니 이십 년 동안 아들의 손을 대신할 수 있었던 것이다. 노모는 깊은 잠에 빠진 아들을 보며 밀려오는 통한에 입술을 지그시 감쳐문다. 나에게 믿음이 생겼는지 입에서 물꼬를 터놓은 봇물처럼 사연이 쏟아진다. 이십 년의 애통함이 목소리에 고스란히 묻어난다. 피투성이가 된 아들을 부둥켜안고 울부짖던 그때의 심사를 한껏 토해낸다. 한 쪽 팔을 잃은 아들 곁을 한시도 비울 수 없었다고 지난 세월을 더듬는다. 애절한 사연에 가슴이 축축하게 젖는다. 가여운 아들을 위해서라도 건강하시라며 노모의 두 손을 꼭 잡았다.
가는 혈관으로 들어가는 링거 속도가 더디기만 하다. 그 지루함도 지난한 세월처럼 가슴으로 삭이는 것일까. 그의 어머니는 두 시간이 흐르는 동안 두 눈을 지그시 감고 부처처럼 앉아 있다. 진수씨의 몸에 배인 땀 냄새와 술 냄새 때문에 파리가 날아든다. 노모는 기다렸다는 듯이 두 손을 휘휘 내저으며 저리 가라고 소리를 친다. 그 모습을 엿보던 나는 노모의 손이 혹시 셋은 아닐까 하고 두리번거린다.
한잠을 늘어지게 잔 진수씨가 깨어나 정신을 차리자 병에 든 링거도 동이 났다. 까칠하던 그의 얼굴이 불그스레하게 핏기가 돈다. 몸 상태가 나아진 그는 말을 잃은 채 불거진 눈을 크게 뜨고는 순진하게 웃는다. 육신은 다쳐 망가져도 영혼은 맑고 순수한 사람 같다. 몸과 마음의 평정을 찾은 듯 두 모자의 웃음소리가 커튼 틈으로 새어 나온다.
손은 소리 없는 언어이다. 굳이 표현하지 않아도 마음을 대신할 수 있다. 누군가를 위해 손을 대신하는 것은 마음의 기운을 담는 것이다. 사랑하는 가족뿐만 아니라 세상을 향해 내미는 손 역시 사람 사이를 여는 마음의 열쇠이다. 진수씨 뿐만 아니라 병원을 찾는 환자들에게는 따스한 손길이 필요하다. 세상을 향해 내미는 나의 손이 아픔을 치유하고 세상 사람들의 마음까지 열 수 있다면 더없이 좋은 일이다.
몸을 추스르고 일어선 아들을 보며 노모의 입 꼬리가 귀에 가서 걸린다. 노모는 아들의 옷을 여미더니 그의 왼손을 꽉 쥔다. 아낌없이 내어주는 어머니의 손이 아름답다. 두 모자는 바람 부는 세상을 향해 발을 맞추며 병원 문을 나선다. 뒷모습을 쫓던 나는 그들이 읍내 모퉁이를 돌아설 때까지 눈을 떼지 못한다. 그의 어머니는 한쪽 팔이 없는 아들 옆에 서서 뒤뚱거리는 아들과 발을 맞추며 손을 흔든다.
등피 / 김희자
산마루에 걸린 마지막 햇살을 거두고 해는 저물었다. 산장 밖 밤하늘에 손톱달이 떠 있다. 세월의 더께가 앉은 등에서 불빛이 새어나온다. 유리관에 둘러싸인 심지는 산장으로 드는 바람에도 꺼지지 않고 활활 탄다. 투명한 등피의 보호를 받으며 타오르는 불빛을 보니 아득한 시절 고향집 처마에 걸어둔 호야등이 아슴푸레 떠오른다.
유년 시절, 저녁 무렵이면 마루 끝에 걸터앉아 푸른빛으로 물드는 저녁 풍경에 빠지곤 했다. 바닷가 비탈진 마을을 쬐던 해가 저물고 어둠이 마을을 삼키기 시작하면 남포에 석유를 채우고 등피를 닦아 밤이 되기를 기다렸다. 전날 밤에 타고 남은 그을음을 나직한 입김으로 닦아내면 등피는 허공처럼 맑아졌다. 투명해진 등피를 조심스레 남포에 씌우고 불씨를 당기면 어스레한 시골집이 환해졌다. 환하게 타오르는 등을 처마 아래 걸어두면 횟가루의 속살이 하얗게 드러나고 그 아래 옹기종기 모인 가족들의 이야기는 등피를 씌운 호야등처럼 훈훈했다.
흙 마당에 쑥으로 모깃불을 피우던 여름밤, 등피를 씌운 호야등은 처마 아래에 매달려 가족들의 마음을 이어주는 불빛이었다. 등피의 보호를 받는 불빛 아래에서 해어진 옷을 깁던 어머니의 손길은 자식들의 해어진 마음까지 기웠다. 쑥이 타는 냄새를 맡으며 살붙이들과 평상에 누운 나는 북두칠성이 거꾸로 선 하늘의 별을 좇으며 꿈을 키웠다. 분꽃 향기가 나던 언니는 입술을 모아 노래를 불렀고, 장난기 많은 남동생은 피어오르는 모깃불을 해작거렸다. 언니의 해맑은 노래가 끝이 나면 밤하늘에는 알 수 없는 이야기들이 모여 별로 가득했다.
등피속에서 타오르는 심지는 고된 삶속에서도 맑은 소망을 염원하는 어머니의 마음이었다. 부엉이 울음소리가 깊도록 어머니의 바느질은 이어졌고 호야등 불길이 가물가물해져 밤이 이슥해지면 밤이슬에 젖는다고 자식들을 방 안으로 들게 하였다.
가지 많은 나무 바람 잘 날이 없다는 말이 있듯이 자식 아홉을 낳았던 어머니의 근심은 끊이질 않았다. 장손으로 태어난 아들을 핏덩어리 째 잃었고 어린 두 딸은 홍역으로 가슴에 묻었으니 남아 있는 자식들을 보호하기 위한 어머니의 희생은 끝이 없었다. 그런 일이 있을 때마다 어머니는 애써 강한 척하셨지만 뒤란 장독대에서 멍든 가슴을 달래며 속울음을 삼켰을 것이다.
자식을 셋이나 먼저 잃은 어머니는 내가 초등학교에 다닐 무렵 또 한 번 놀란 가슴을 쓸어내려야만 했다. 뜨거운 볕이 쏟아지던 여름날 바닷가에서 멱을 감던 둘째언니가 물에 빠졌다. 밭에서 급한 기별을 받은 어머니는 김을 매던 호미를 내던지고 바닷가로 달려갔다. 물에서 허우적대던 언니가 물속으로 사라지자 동네 오빠가 바다 속으로 뛰어 들어가 구했다. 겨우 목숨을 구한 언니는 바위에 축 늘어져 있었다. 언니의 숨결은 약했고 체온까지 떨어지고 있었다. 어머니는 두르고 있던 치마를 벗어 언니를 감싸고 몸을 비비기 시작했다. 생명이 꺼져가는 딸을 감싸 안고 어머니는 울부짖었다.
어머니의 울음소리는 파도소리에 섞여 바닷가 언덕을 한참 동안 타고 올랐다. 애달픈 모습을 내려다 본 하늘이 돕기라도 한 것인지 언니의 식어가던 몸은 다시 따스해지기 시작했다. 언니가 깨어나자 어머니는 하늘을 향해 절을 몇 번이나 올렸다. 그 일이 있은 후 언니는 바다에 가는 것을 싫어했고 피붙이들에게도 바닷가에 가는 일은 한동안 허락되지 않았다. 그 때 언니를 감싸주었던 어머니의 치마는 바람에 꺼질 듯 흔들리는 불을 감싸는 등피와도 같았다.
이제 나도 그때 어머니의 나이가 되어 세월을 뒤따르고 있다. 어머니의 등피 같은 희생에는 따를 수 없지만 두 아이의 바람막이가 되는 노력은 아끼지 않는다. 녹록하지 않은 생활 때문에 두 딸은 학원에 다니지 않고 공부를 한다. 작은 아이의 중간고사가 하루 남은 휴일 오후였다. 책을 읽던 나는 평소 즐기지 않는 낮잠에 설핏 들었다. 모든 것을 알아서 척척 하는 찬찬한 맏딸과는 달리 철부지 작은딸은 늘 바람 앞에 선 등잔불 같이 덤벙댄다. 사춘기를 겪고 있는 작은 아이는 호기심이 많고 사회에 나도는 부정한 일들을 지나치게 비판하며 목소리를 높인다. 아직 사회나 어른들 일에 참견할 나이가 아니라고 여기는 나는 늘 걱정이다. 그런 마음이 내 안에 잠재하고 있었던 것일까. 작은 아이의 꿈을 꾸었다.
작은아이가 혼자 배를 타고 바다로 나간다. 어설프게 노를 저으며 바다로 나아가는 아이를 보며 나는 가슴을 졸인다. 일렁이는 파도와 싸우는 아이를 보던 나는 아무리 고함을 쳐도 말문이 터지지 않는다. 아이가 탄 배가 금방이라도 뒤집어질 것 같아 발을 동동 거리지만 아이를 구할 방도가 없다. 나는 아이를 애타게 부르지만 아이는 파도와 싸우며 자꾸만 바다로 나아간다. 그때, 내 신음소리를 들은 큰아이가 나를 흔들어 깨운다. 잠에서 깨어난 나는 꿈인 줄 알면서도 작은 아이의 목소리를 듣고 싶어 이름을 크게 불렸다. 제 방에서 공부를 하던 아이가 대답을 한다. 나는 안도의 숨을 내쉬며 꿈에서 얼른 벗어나고자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모든 어머니의 마음은 한결같은가 보다. 치열하고 험난한 사회에 섞여 살아가야 하는 아이들을 걱정하는 내 마음이나 지금도 고향집에 전화를 하면 어찌 사냐며 걱정 섞인 목소리로 울먹이는 어머니의 마음은 매한가지이다. 아직도 나를 걱정하는 노모를 보며 나는 내 아이들에게 얼마만큼의 바람막이가 되어주는지 되돌아보게 된다. 이제는 두 딸의 키가 나의 키를 앞질러 미래를 위해 한창 심지를 태워야 할 때이다. 커 가는 내 아이들에게 폭풍우 같은 바람은 없었으면 좋겠다. 아이들의 능력에 큰 보탬이 되어주지 못하는 마음이야 두고두고 아프지만 어미로서 그 부족함을 대신해줄 수 있는 것이라고는 마음을 모아 등피가 되어주는 일이 아닐까.
밤이 이슥하여 밤바람 소리는 깊고 등불은 은은하다. 사위가 밝은 형광등이나 백열등 불빛은 생활을 편하게는 하지만 등피를 씌운 호야등의 은은한 불빛은 허물이나 티끌을 살며시 가려주는 인정이 있다. 그래서 가끔은 호야등이 그립다. 이런 밤에는 향수병마저 도진다. 은은한 등불 아래서 밤이 깊도록 자식들의 해진 옷을 깁 던 어머니와 마당 가득 머물던 쑥 냄새와 피붙이들도 그립다. 지금은 등피를 씌운 등이 사라진지 오래지만 늘 바람막이가 되어주던 어머니의 마음은 그대로 남아 등불을 감싼 등피처럼 나를 안아 주고 있다.
저무는 강/김희자
머문 듯 유유히 흐르는 강 하류에 해가 저문다. 하늘의 빛을 따라 강물의 빛도 변한다. 쪽 푼 하늘이 노랗게 물들기 시작하여 붉은빛으로 변하는가 싶더니 강나루에 푸른 어둠이 내리기 시작한다. 한 순간도 멈출 수 없이 흘러온 강물은 하늘빛을 말없이 받아들인다. 강도 하루도 저무는 순간이 아쉬웠던 탓일까. 강물이 잠시간 질곡의 세월 속에 살아온 어머니의 한 서린 삶처럼 붉은 빛으로 요동을 치더니 다시 잠잠해진다.
먼 길을 흘러왔던 만큼 흔들림 없이 중심을 두고 밀려가는 물길이 어머니의 삶과 흡사하다. 저무는 강에 지리산이 내려와 안기고 하루해가 강물 속으로 잠긴다. 신선하고 비릿한 강물에서 어머니의 젖 냄새가 배어난다. 흐르면서 맑아지고 물기가 있어 비로소 생명이 사는 강. 삶의 시작은 물이며 어머니의 품이 아니런가. 조용히 흐르는 물살이 세상사에 찌든 우리 삶을 어루만져준다. 강가에 선 버드나무 가지가 물속으로 들어가 강물을 저으며 홀로 깊어지는 마음에 풍경소리를 낸다. 저무는 강이 이토록 아름답다는 걸 눈뜨게 되는 순간 저무는 어머니의 생이 강물에 아슴아슴 일렁인다.
섬진강 하류는 어머니를 닮았다. 피 어린 민족의 아픈 상처를 씻기라도 하듯 철철 흐른 피아골 물과 지리산의 넉넉한 산그늘을 품고 모든 생명이 시작된 바다로 몸을 섞으러 가는 길목이다. 하류로 갈수록 강은 넓어지고 강물의 속도도 부드러워진다. 지리산과 무등산 골짜기에서부터 한 갈래로 시작된 물길이 여러 갈래의 물길과 한 몸이 되어 깊은 심연을 이루며 흘러온 강물이다. 굽이치고 꺾이며 돌고 돌아 흘러 온 하류의 강은 깊고 넓은 강물을 끌어안고 머무는 듯 흐르며 바다로 간다. 그 장엄한 침묵은 우리네 삶도 그렇게 만만치 않다는 걸 일러준다. 젊은 날의 출렁임을 가라앉히고 인고의 세월을 다독이며 살아온 어머니처럼 상류에서부터 자분자분 흘러온 강물이다. 강물 위로 그려지는 길이 강 너머 마을에 등불을 켜듯 내 마음에도 작은 등불을 켠다.
이 강이 흐르고 흘러 바다와 만나는 곳이 고향 남해이다. 강물처럼 흘러간 희미해진 유년의 기억을 거슬러 더듬는다. 맏며느리 인 어머니는 집안에 혼사가 있을 적에는 옷감을 끊으러 큰 장이 열리는 화개장터로 나갔다. 먼 장터에 다녀와서 푼 보에는 젊은 날의 어머니 가슴을 닮은 다홍빛 옷감과 강물을 닮은 쪽빛 옷감이 물결처럼 접어져 있었다. 저무는 강에 화개장터를 오고 갔던 어머니의 모습이 물결친다.
어머니는 열일곱 살에 가마를 타고 무지개 재를 넘어 다랭이마을로 시집을 왔다. 외동딸로 곱게 자랐던 어머니는 한 살이 더 많은 아버지와 결혼을 해 맏며느리가 되었다. 꼬장꼬장한 시어머니와 층층 아래로 시동생이 줄줄이 있어 옷고름에는 눈물이 마를 새가 없었다고 했다. 그에 더해 마흔 다섯 살까지 자식을 낳아 셋을 먼저 가슴에 묻었으니 어머니의 애달픈 심곡을 생각만 해도 짐작이 간다.
아버지는 젊은 날 한때 뜻하는 바를 이루지 못해 술독을 끌어안고 살았다. 술만 입에 들어가면 아버지의 자리를 망각했다. 그런 탓에 가장의 역할까지 대신해야 했던 어머니는 강인하고 억척스러웠다. 아버지가 손을 놓은 일철을 놓치지 않으려고 남자의 일을 서슴거리지 않고 하셨다. 머리에 수건을 질끈 두르고 남정네처럼 소를 앞세우고는 쟁기질을 하셨다. 그 뒤를 따르며 고사리 손으로 일손을 돕던 피붙이들에게 어머니의 강한 생활력이 배어들었다. 굴곡진 삶을 끝내 다스리지 못한 어머니는 뇌경색으로 두 번이나 쓰러졌지만 꿋꿋하게 다시 일어나 팔순을 코앞에 두고 있다. 그런 어머니를 보며 나 또한 세월의 강을 말없이 뒤따르고 있다.
황혼이 깃들고 땅거미가 스미는 솔숲에 젖은 강바람이 불고 어둠이 눕는 강 위로 산 그림자가 따라 눕는다. 자연과 사람을 살리며 생명의 젖줄이 되는 강. 의연한 깊이를 보여주며 유유히 흐르는 강물을 바라보며 빈 가슴에 행여 남아 있을 온기마저 훌훌 털어낸다. 상류에서부터 산과 들을 지나고 바위와 돌 틈을 어렵사리 흘러온 어머니의 강물처럼 나 또한 삶을 끌어안고 지금까지 흘러왔다. 삶이란 끊임없는 순환과 반복이다. 흐르는 것이 어디 물 뿐이던가. 우리네 삶도 흐르는 물과 같아서 밤낮 쉼 없이 흐른다. 저렇게 강이 흐르듯 세월이 흐른다. 세월이 흐름으로써 저마다 갖고 있는 상처나 슬픔들이 치유되고 아물어진다.
흐르면서 맑아지고 강해지는 것이 강물이다. 물은 어머니처럼 세상에서 제일 부드러우면서도 가장 단단한 것을 이긴다. 또한 모든 것이 시작되는 근원이며 흐르면서 맑아지기 때문에 생명력을 부여하고 만물을 활성화 시킨다 모든 생명은 소금물 인 바다에서 시작되었고 그 생명이 땅에 이르러 삶이 시작되었다. 어머니의 자궁이 양수로 차면 태아가 그곳에서 자라듯이 물기가 있어 모든 것이 생생해진다. 저무는 강이 모든 생명이 시작된 바다로 흘러가듯 내 어머니 역시 세상을 실어오고 실어가는 강물처럼 한 생의 바다에 당도하고 있다.
강 건너 마을에 하나 둘씩 등불이 켜진다. 가는 물줄기로 시작된 강이 하류까지 먼 길을 흘러오듯 삶을 다독이며 먼 인생길을 걸어오신 어머니이다. 나도 이제 마흔 줄의 중간에서 어머니의 강물처럼 흘러간다. 샛강에서부터 모여든 강물이 하류에 이르러 이렇게 넉넉하듯, 고통의 길을 이겨내며 흔들림 없이 내 삶을 다독이며 어머니의 뒤를 따르고 싶다. 내 인생의 가을도 수많은 낯선 만남과 한 몸으로 녹아들어 한 생의 바다에 당도할 수 있도록...
터/김희자
태아의 터는 어머니의 태이고 물고기의 터는 바다나 강이다. 사람들에게 터는 단순히 한때 살았었던 장소가 아니라 삶의 애환이 서린 곳이다. 터가 좋다는 것은 환경적인 요인의 영향이 커겠지만 그 터를 지키는 사람들의 심성과 인내에 의해 좌우된다.
아버지는 오늘도 바지게를 지고 삿갓배미로 향한다. 다랭이논을 한 계단씩 기어오른 갯바람이 백발이 무성한 머리 결을 헝클고 지나간다. 한 해만 더하면 팔순을 바라보는 아버지의 등에는 김이 모락모락 나는 거름과 끈적거리던 삶이 담겨 있다. 좁다란 논둑길을 팔순에 이른 생의 그림자가 따라간다. 지나가는 남실바람이 행여 세차게 불까봐 언덕에 선 여식의 가슴은 고빗사위하다.
서러움이 흘러내릴 것 같은 설흘산 모롱이에 터를 잡은 내 고향은 바다가 끝도 없이 펼쳐져 있다. 해안선이 벼랑이라 배 한 척을 들일 수 없는 바닷가 마을이다. 강인한 고향 사람들은 바닷가 산비탈을 생긴 대로 깎아 터를 일구어 생계를 이어간다. 경사 진 곳에 터를 잡을 수밖에 없는 마을의 집들도 마을 사람들처럼 낮은 지붕을 하고서 기대어 산다. 고향의 터전은 선조들이 정착을 하면서 벼랑 끝에 제비집을 짓듯 일군 땅이다. 농토를 한 뼘이라도 더 넓히려는 윗대 조상들은 산비탈을 깎고 석축을 쌓아 계단처럼 차곡차곡 농토를 만들었다.
바다와 잇닿은 가파른 언덕이라 터전을 일구기에는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지만 하나 둘씩 늘어나는 식구들의 생계를 위해서는 산비탈의 거친 땅을 쓸모 있는 땅으로 만들어야 했다. 가족 한 사람이 늘어나면 작은 삿갓배미 하나가 생기고, 또 한 명의 식구가 늘면 그 위의 산비탈을 깎아 장구배미를 만들었다. 식구 수가 늘수록 하나씩 불어난 논들이 백팔 개의 계단을 이루어 마을 사람들의 터전이 되었다. 바닷가 터전이라 태풍을 비롯한 강한 해풍에 시달린 나락은 내륙의 벼처럼 튼실하지 못하고 농작물의 수확량도 풍성할 수가 없다. 농기구가 발달하여 농사일이 쉬워진 지금도 고향 사람들은 소의 힘을 빌리거나 지게를 지고 농사를 지어야만 한다. 그래서 평지의 논보다 품이 많이 든다.
다랭이마을은 아버지가 태어나서 팔십 평생을 함께했던 터전이다. 장손으로 태어난 아버지는 농사일을 하며 목수 일까지 배워서 마을의 노후 된 다리를 없애고 차와 경운기가 다닐 수 있는 다리를 놓았다. 또한 산에서 내려오는 물을 모아 마을 사람들의 식수를 공급하기 위해 구불구불한 골목길을 따라 상수도를 이었다. 물동이로 물을 길어 나르던 동네 아낙들의 불편함을 덜어 주었고, 가뭄이 들 때는 물의 양을 조절하여 마을 사람들의 타는 목을 적셔 주었다. 상수관의 물을 조절하기 위해 아버지는 하루에도 몇 번씩 연장을 들고 사립문을 나섰고, 마을이 꽁꽁 언 한겨울에는 집으로 돌아온 아버지의 갈라진 손등에서 피가 흐르기도 하였다.
아버지는 마을 사람들의 집수리와 다리 공사를 하기 위한 자재들을 구하느라 먼 길을 다녀오기도 하셨다. 감나무 그림자가 드리운 마당에 차려진 아버지의 작업장은 구해온 자재들과 연장으로 가득 쌓였고 대패질을 하는 아버지를 돕기 위해 고사리 손으로 합판을 붙들기도 하였다. 합판을 곧게 자르기 위해서는 먹줄을 튕겨놓고 줄을 긋곤 하였는데 길게 늘어진 그 먹줄은 아직도 가슴에 남아 고향집 마당에 길게 쳐져 있다. 동네일에 앞장을 선 아버지의 흔적들은 지금도 고향에 가면 여기저기에 남아있다. 아버지는 태어나고 자란 터에서 고향 마을과 식솔들을 위해 자신의 삶을 바친 것이다.
다랭이논은 논 자락마다 이름이 하나씩 붙어서 다 헤아리기 힘들다. 옛날에 한 농부가 일을 하다가 논을 세어보니 한 배미가 모자랐다. 아무리 눈을 크게 뜨고 둘러보아도 찾지 못해 집으로 가려고 삿갓을 들었더니 그 밑에 논 한 배미가 있었다는 민담이 전해진다. 경작지가 워낙 작아서 삿갓배미라는 민담까지 생겼지만 땅에 대한 애착은 여느 농군들보다 깊다. 벼농사에 필요한 물을 빗물에만 의존해야 하는 산비탈 천수답은 봄에 내린 빗물을 가두고 누렁 소를 앞장세워 써레질을 한다. 봄철에 충분한 비가 오지 않으면 모내기가 늦어지고, 모를 심은 후에도 하늘의 뜻에 따라 수확량이 정해진다. 모내기를 할 때는 인근 산에서 흘러내려 온 물이 논도랑을 돌고 돌아 바다로 간다. 농부들은 자신의 논에 들어온 물을 다시 아래로 내려 보내줘야 이웃 논에 모내기를 할 수 있다. 부족한 것은 서로 나누고 이웃끼리 푼푼한 마음으로 돕지 않으면 생계가 어려워질 수밖에 없는 터이다.
육십 년을 아버지와 함께 터를 지켜오던 어머니께서 뇌경색으로 쓰러지자 지난해 가을부터 농사짓는 것을 그만두셨다. 평생을 가파른 땅과 함께 해 온 분들이라 터전을 내버려 두지는 못하고 소일거리 삼아 채소를 재배한다. 힘은 부치지만 터전이 묵정밭이 되는 건 허락되지 않는 것이다. 다랭이논에는 마늘로 온통 파란색이다. 내 유년 시절에는 이 맘 때가 되면 논에는 청 보리가 노래를 했건만 지금은 파란 마늘의 알싸한 향이 코를 자극한다. 층층이 계단을 이룬 논은 봄이면 풋풋한 마늘로 푸른 물결이 일고, 가을이면 여름내 해풍을 이긴 나락이 익어 황금물결을 친다. 그렇게 터는 비우고 채우며 무수한 생명을 키워낸다. 모진 바닷바람과 온갖 고충을 다 이기며 어렵게 일군 터를 지키는 부모님을 생각하니 가슴 한 편이 뭉클하다. 그래서 고향으로 대표되는 터는 우리에게 신성하게 추억되는 장소가 되고 회상되는 장소이다. 모든 사람들은 타향살이를 하다가도 자신이 태어나 자란 터로 돌아가고픈 꿈을 꾼다.
삿갓배미에 거름을 내러갔다가 돌아온 아버지의 바지게에는 고향의 흙이 묻은 시금치가 소담하게 담겨 있다. 절벽을 생긴 대로 일구어 논둑처럼 굽이굽이 살아가는 고향 사람들. 손바닥만 한 다랭이논으로 생계를 잇는 고향 사람들의 아침은 가파른 언덕길에서 시작되고 막막한 바다로 지는 노을이 저녁이 된다. 밭을 갈던 소도 한눈을 팔면 절벽으로 떨어진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가파른 절벽을 끌어안고 사는 사람들은 삶의 척박함을 이겨내고 비틀거리는 생존을 다랭이논에 맡기고 살아간다. 고향 사람들의 투박한 사투리가 언제 들어도 정겨운 것은 발목을 붙드는 바닷가의 파도소리와 우리들 한 생의 귀퉁이에 헛디디면 안 될 절벽 한 칸씩을 껴안은 채 터를 잡고 살기 때문이다
<계간 수필세계 2011년 여름호 제29호>
첫댓글 수필세계 신인상을 진심으로 축하합니다. 그리고 두손 들어 환영 합니다. 김희자 작가님
계간 수필세계 2011년 상반기 신인상에 당선하심을 축하드립니다.
김희자작가님 신인상을 진심으로 축하 드립니다~~
선배님, 수필세계 당선을 미리 축하드립니다.
선배님 수필세계 신인상에 당선되심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선배님, 수필세계 신인상을 축하드립니다.
김희자 작가님 축하드립니다.
김희자 님 당선 축하 축하합니다.
지화자~~ 축하드립니다.
수필세계 신인상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함께 길을 감에 행복합니다.
수상을 축하 하며 건필을 기원합니다.
설익은 글에 정을 내어 주신 수필세계 심사위원님들께 감사한 마음을 전하며, 축하해주신 분들께도 감사를 드립니다. 더욱 정진하는 작가가 되겠습니다. ^^
김희자 작가님 축하드립니다. 수상일에 뵐께요.
김희자 작가님, 수필세계 가족 됨을 축하합니다. 수필을 향한 아름다운 열정 오래도록 이어가시길 기원합니다.^^
김희자 작가님 축하드립니다^^*
김희자 작가님, 수필세계 신인상 수상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선생님글을 또박또박 읽어 내렸습니다~ 애잔한 감동이 밀려왔습니다 축하 받으시기에 지당하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