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라운드볼(Ground ball)
최근 국내 프로야구에서 ‘땅볼투수’들이 새롭게 각광받고 있다. 가장 직접적인 원인은 2007년 두산 다니엘 리오스, 2009년 KIA 외국인 투수 아킬리노 로페즈 등이 보여 준 맹활약일 것이다. 당시 로페즈는 강력한 싱킹 패스트볼과 슬라이더 조합을 앞세워 팀을 한국시리즈 우승까지 이끌고 자신은 투수 부문 골든글러브를 수상했다. 이후 구단들은 앞다퉈 싱커와 투심 패스트볼을 던지는 외국인 투수 영입 경쟁에 나섰다. 적지 않은 국내 투수들이 커터와 싱커를 새로운 구종으로 연마하기 시작했다. 이는 국내만의 현상이 아니다. 메이저리그에서도 투수의 땅볼 유도 능력은 그 어느 때보다 높은 가치를 인정받고 있다. 이유가 무엇일까.
땅볼 유도의 가장 큰 장점은 적은 투구 수로 아웃카운트를 늘릴 수 있다는 것이다. 삼진을 잡는 데는 최소 3개의 투구가 필요하지만 땅볼 아웃은 공 1개만으로도 가능하다. 게다가 주자가 있는 경우에는 공 하나로 아웃 두 개를 잡는 플레이도 노려볼 수 있다. 땅볼의 위력이 가장 잘 드러난 예는 2008년 베이징올림픽 결승전에서 바뀐 투수 정대현이 잡아 낸 마지막 더블플레이 장면일 것이다. 땅볼은 긴 이닝을 던지면서 페이스 조절이 필요한 선발 투수는 물론 주자 있는 상황에서 자주 마운드에 오르는 구원 투수에게도 매우 반가운 친구다. 실제로 세이버메트리션들의 연구에 따르면 투수의 땅볼 유도가 많으면 그만큼 이닝당 투구 수가 줄어드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또한 그라운드볼 유도는 투수의 피홈런과 장타 허용이 크게 줄어드는 효과도 있다. 땅볼 타구가 홈런이 되기란 아예 불가능한 일이고 2루타 이상의 장타로 연결되는 경우도 좀처럼 나오기 어려운 게 사실. 땅볼 유도는 투수의 실점을 적게 하고 평균자책을 향상하는 결과로도 이어지게 된다. 투수들이 눈에 불을 켜고 야구공을 볼링공으로 만드는 데 열중하는 것도 이해할 만하다.
땅볼 유도가 싱커나 투심 패스트볼 등을 구사하는 투수들만의 전유물은 아니다. 일반적인 투수들도 로케이션이나 투구 메커니즘의 조정을 통해 땅볼을 유도하는 비율을 높일 수 있다. 대표적인 예가 2009년 이후의 LG 트윈스다. 이전까지 LG 투수진은 넓은 잠실구장과 발빠른 외야진을 무기로 플라이아웃을 유도하는 패턴을 즐겨 사용했다(땅볼/뜬공 비율 0.96으로 최하위). 하지만 2009년 외야에 이동식 펜스가 설치되면서 투수들은 땅볼을 유도하는 방향으로 전환해 지난해에는 땅볼/볼넷 비율이 1.22로 역전됐다(전체 3위). 허약한 내야 수비로 그라운드볼의 이점을 전혀 살리지 못한 게 문제였지만.
한편 타자에게는 높은 땅볼 비율은 부정적인 신호로 여겨진다. 주자 있는 상황에서 병살이 나올 가능성을 높이는 것은 물론 장타가 나올 가능성이 극도로 낮아지기 때문이다. ESPN의 칼럼니스트 제이슨 처칠은 높은 땅볼 비율을 삼진 비율, 낮은 타율 등과 함께 빅리거로 성공할 가능성이 낮은 타자의 특징으로 거론하고 있다. 홈런을 비롯해 장타를 날릴 수 있는 파워를 갖추지 못한 타자는 수비하는 쪽에서도 부담이 적은 상대다. 물론 같은 펑고 기계라도 이대형(LG)이나 장기영(넥센)처럼 발이 빠른 선수들은 예외다. 내야수들이 다급한 나머지 실책이나 내야 안타를 허용할 가능성이 높아지기 때문이다.
포스아웃/태그아웃
야구의 친아버지를 찾으려는 노력은 종종 영화 [맘마미아!]의 주인공 소피처럼 복수의 아버지라는 딜레마에 빠진다. 날조된 더블데이 창조 신화를 무시하고 볼 때 영국의 구기 종목인 라운더스는 야구와 피가 꽤 많이 섞인 유력한 아버지 후보 가운데 하나다. 이 종목의 특징 중 하나는 베이스에서 벗어난 주자를 향해 공을 던져서 맞히면 아웃으로 처리했다는 것이다. 이 규칙은 1800년대 초기 야구에도 이어졌다. 물론 당시만 해도 야구공은 지금처럼 딱딱하지 않고 카스테라처럼 말랑말랑했다.
알렉산더 카트라이트는 야구의 창시자는 아니지만 현대 야구의 발전에 결정적으로 기여한 몇 가지 중요한 규칙을 만든 인물이다. 그가 1845년 창안한 규칙 중에는 공 또는 공을 쥔 손을 주자에 갖다 대는 ‘태그플레이(tag play)’도 있었다. 그리고 이때부터 야구에서 연식구가 아닌 딱딱한 공을 사용하기 시작했다. 이 사소해 보이는 변화는 이후 투수와 타자, 수비, 전술, 경기장 규격 등 야구가 모든 면에서 폭발적인 속도로 진화하는 계기가 되었다. 또한 공에 대한 두려움이 타자와 투수의 대결에서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게 됐다.
태그아웃의 창안은 포스아웃의 탄생으로 이어졌다. 처음에는 태그를 시도하는 1루수와 타자주자의 충돌을 방지하기 위해 생긴 규칙이었다. 공을 잡은 야수는 타자주자를 태그할 필요 없이 1루 베이스에 먼저 닿는 것만으로도 아웃을 잡아 낼 수 있었다. 이는 다른 베이스에도 응용되어 현재와 같은 포스아웃의 형태로 자리를 잡았다. 더블플레이, 희생플라이 등 오늘날 익숙한 규칙들이 여기서 갈래를 치고 나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