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6차 천반산(天盤山·647m) 산행
산행일시 : 2006년 7월 3일(월요일) 맑음. 14:30
참 여 : 전귀옥, 김을수, 한태순, 김현철, 김수영(5명)
위 치 :전북진안군 진안읍, 상전면과 장수군 청천면에 경계를 이루고 있는 산
26차 산행지는 기말고사 중인지라 입암산으로 정하여 카페 산행안내 난에 입암산 안내문까지 올려놓고 산행날짜만 손꼽아 기다렸는데 일기예보상으로 화, 수요일 비가 많이 내린다는 예보가 우리를 당황케 만들뿐만 아니라 우울하게까지 한다.
순연하려 해도 7월5일은 학교 교직원 극기 훈련 일환으로 모악산 산행 계획으로 잡혀 있어이번 주는 26차 산행이 이루어지지 못하는 아쉬움을 달랠 수밖에.
오늘 기말 고사를 치르고 있는 중에 마침 오늘 날씨가 오랜만에 장맛비도 그치고 산행하기에 아주 좋은 날씨이니 오늘 앞당겨 조금 가까운 천반산으로 하면 어떻겠냐는 전귀옥 선생님의 제안에 따라 부랴부랴 팝업메세지로 오늘의 계획을 전하니 많은 회원님들께서 각각 약속이 있어 사정이 허락한 5명만 산행하기로 하고 14시30분에 학교에서 만나기로 하고 각자 집으로 가서 등산 준비를 마치고 학교에서 회원님들을 기다리니 약속 시간에 멋진 등산복 차람으로 나타나 출발하면서 전귀옥 선생님하고 우아동 철다리 부근에서 만나기로 하고 약속 지점에 도달하니 먼저 와 기다리기에 김을수 선생님은 전귀옥 선생님차로 옮겨 타고 진안 방면으로 신나게 달렸다.
5명이지만 산행 하산 지점 죽도에 차 한 대를 주차해 놓고 산행 지점 장전마을 휴양림쪽으로 가려고 차 두 대로 죽도 방면으로 가는데 마침 전귀옥 선생님이 죽도 길을 잘 알아 우리는 전귀옥 선생님 차만 졸졸 따라만 갔다.
죽도 방향 도로는 그저 한산하기만 하다. 우리는 자동차 오디오에서 흘러나오는 하모니카 연주 음악을 들으며 그윽하기만 한 농촌 풍경을 한가로이 즐기며 거의 한 시간을 달리노라니 죽도에 도달하는데 마침 공사트럭이 길을 가로 막고 있기에 우리는 다른 길이 있겠지 하고 한참동안이나 가는데도 우리가 가고자 하는 곳이 나오지 않기에 경로당에 이르러 차를 주차해 놓고 길을 물으려 하는데 경로당 문은 닫혀 있어 김현철 선생님이 동내로 가 할머니께 물으니 자세히 가르쳐 주시기에 그 길을 따라 가니 죽도 천변에서 자동차 길이 끊겼다.
우리는 이 지점에 차를 주차해 놓고 구량천(천 이름은 나중에 알았음)을 건너려 하는데 물이 너무 탁하여 깔끔한 김을수 선생님이 그 물에 발을 담그기를 꺼려하는 눈치를 보이기에 우리는 장전마을 천반산 휴양림 입구 쪽 구량천의 낮은 시멘트다리를 건너니 천반산 휴양림이 나온다. 시간은 16시 30분
휴양림 식당 주인 아저씨께 등산로를 물어 우측의 이정표가 있는 숲길로 들어서기 전 안내판을 살펴보니 우리 차 두 대가 주차한 곳에 원점회귀하려면 성터 삼거리까지의 산행이 적당할 것 같아 정상 깃대봉을 향하여 오르기 시작하였다.
7월2일 일요일 전귀옥 선생님이 산행한 일이 있어 전귀옥 선생님을 따라 등산로를 따라 오르는데 시작부터가 가파른 오르막길이어 장마 중 후텁지근한 날씨에 땀이 옷을 적시기 시작한다.
앞장 선 전귀옥, 김을수, 김현철 선생은 힘도 안 드는지 힘차게 오르는 모습이 부럽기만 하다. 한태순선생과 나는 헉헉거리기에 체면 불고하고 잠시 쉬면서 숨고르기를 하며 줄줄 흐르는 땀을 닦으며 쉬고 나니 원기가 회복되는 듯하기에 발걸음을 천천히 떼기 시작하여 오르는데 그나저나 무슨 산이 이렇게 오묘한가. 능선을 따르는 동안 좌우 양편으로 툭하면 아찔하게 오금이 저려오는 낭떠러지가 나타난다. 천혜의 요새다. 산 아래엔 어디에나 강물 경치가 일렁인다. 오른편으론 구량천이, 왼편으론 연평천이 굽이쳐 휘돌아 가는 모습에 저절로 탄성이 터져 나온다.
아무튼 이러한 절경이 우리를 쉬게 만들뿐만 아니라 우리 몸에 기를 몰아주어 생기를 돋우어 밝은 모습으로 사진을 찍도록 해 준다.
35분쯤 땀을 흘리며 오르자 천반산 정상이 나온다.
우리는 이 곳에서 잠시 쉬면서 사진 촬영을 마치고 전귀옥 선생님이 준비해 온 하얗고 말랑말랑하기만 한 찹쌀떡을 입속에 몰아넣어 혀로는 그 달콤한 맛을 음미하며 머릿속으론 조선 선조 때의 우리 고장의 풍운아 정여립을 새겨 보며 ‘전북 산수’ 홈페이지에서 제공하여 준 천반산에 관한 글을 읽어 보며 사위를 살펴보니 더욱더 정감이 어린다. 그리고 또한 이 정보를 제공하여 더 많은 것을 보게 하여 준 ‘전북 산사랑’ 산사람들에게 감사를 드리고 싶다.
천반산은 죽도와 금강 어우러진 천혜의 요새지이란다.
비단결 같이 곱디고운 금강의 옥류가 휘돌아 가는 천반산 서쪽엔 예부터 천혜의 피서지로 명성이 자자했던 죽도가 있다. 이 산자락엔 깎아지른 암벽엔 송판서굴, 할미굴의 애닲은 전설과 선비들이 풍류를 즐겼던 한림대와 형제바위, 마당바위, 할미대, 그리고 치성을 드리는 장소인 정상의 감투바위 등 명소들이 즐비하다. 특히 이산은 동쪽을 제외하고 삼면이 금강에 둘러싸인 독특한 지세와 깎아지른 절벽을 걷는 스릴을 맛볼 수 있다.
이 산은 선조 22년(1589년)전라도를 반역향이라 하여 호남 차별의 분수령을 이룬 기축옥사 의 주인공 정여립(1546~1589)의 한이 서려 있는 곳이다.
정여립은 전주 남문 밖에서 태어나 선조 3년 25세 때 문과에 급제하여 수찬이라는 벼슬에 올랐으나, 선조와 서인들의 미움을 사 벼슬을 버리고 고향으로 낙향, 대동계를 조직하고 모악산 앞 제비산(현재의 김제시 금구면)에 머물면서 죽도에다 시설을 지어놓고 천반산에서 군사훈련을 시켰다고 한다.
정여립은 선조 22년 역모로 몰리자 아들과 함께 죽도로 피신했다가 관군에 쫓기자 이 산에서 자결했다고 전해진다.
천반산에는 정여립이 성터와 망루로 사용하던 한림대터, 그가 뛰어다녔다는 뜀바위 등이 남아 있고, 군사를 조련할 때 사용했다는 거대한 돌솥이 묻혀 있다는 전설도 전해진다.
<동서만록>에 의하면 정여립은 평소에 천반산 아래 죽도를 자주 찾았기에 그를 죽도선생이라 불렀다고 하며, 더욱이 역적도 아니었기 때문에 죽도로 피난 간 것이 아니라 평소처럼 죽도의 비경을 즐기려고 나왔다가 관군에게 잡혀 억울하게 죽었을 뿐 자살로 조작되어 있다고 기록되어 있다.
또한 단종 때 왕위찬탈에 항거하여 벼슬을 버리고 낙향한 송판서가 수도하였다는 송판서굴, 그리고 송판서의 부인이 살았다는 할미굴, 정여립이 친지들과 바둑을 두었다는 말바위 등이 산자락에 자리하고 있다. 산 아래 신기 마을은 정감록이 예언한 10승지의 한 곳이다. 조선조 유학자인 유겸안이 겸안록을 통해 이곳의 지리가 호남 제일의 땅이라고 칭송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제 죽도(竹島)의 넓은 모래사장과 자갈밭, 그리고 천연기념물 쏘가리가 옥류 속에서 노닐던 곳은 선조들의 예언대로 용담댐 들어서면서 전설속의 이야기로 남게 됐고 육지속의 섬으로 변해 버렸다.
천반산의 유래를 고찰해 보면 퍽 이채롭다. 첫째는 서쪽 산정 1천여 평의 분지가 하늘(天)에서 보면 마치 소반(小盤)모양이라는 설이다. 둘째는 이산 남쪽 가막리에 경주정씨가 400년 전에 이주하여 집성촌을 이루었는데 마을 앞 냇가에 있는 ‘장독바위’가 하늘에서 떨어진 복숭아 형상 즉, 천반낙도(天盤落桃)라는 점이다. 셋째는 천반, 지반, 인반의 명당 중에서 이 산은 천반(天盤)에 해당하는 명당이 있기 때문이란다.
천반산 서쪽 금강과 구량천이 파(巴) 자처럼 돌아나가는 육지 속의 섬 죽도는 넓은 모래사장과 자갈밭으로 이뤄진 한 폭 그림과 같은 아름다운 곳으로 정평이 나 있다.
그러나 천혜의 비경지대인 죽도는 세월 따라 용담댐이 만수위가 되면 절반 가량이 수몰된다고 주민들은 말한다.
정상주변에는 동쪽을 제외하고는 접근할 수 없는 천혜의 요새지이고, 장수의 5대 명산으로 불리는 천반산은 장수의 북방을 수호하는 수문장이기도 하다.
이산은 들어가는 입구와 나오는 길이 따로 있어 포수들이 사냥을 하면서 좁은 목을 지키고 있으면, 짐승들이 이곳에서 모두 잡힌다는 특성을 갖고 있다.
깃대봉에서 40분쯤이면 석축을 쌓은 성터삼거리(576m)에 닿는데 이정표와 안내판, 표지석, 벤치가 설치돼 있다. 이곳에서 북쪽은 죽도천변(3.3km)와 송판서굴(2.1km), 서쪽 한림대터. 할미굴(1km)이다. 할미대란 4백여 평의 평지에는 작은 산석이 나란히 정렬한 듯 기이한 형상을 하고 있어 마치 부인들이 대오를 갖추어 나란히 앉아 밭을 매는 모습이라서 할미대라 불리고 있단다.
우리는 이 곳에서 사진 촬영도 하고 준비해 온 오이와 영양갱을 맛있게 먹으며 죽도쪽으로 가는 등산로가 자꾸 우리에게 와 보라고 손짓하는데 만약 그 곳으로 하산하면 우리 차가 주차 곳까지 도보로 걸어오려면 많은 시간이 걸릴 것 같아 아쉬운 마음을 안고 다음 기회로 미루자고 협의가 이루어져 원점회귀하기로 하고 부지런히 하산하기 시작하여 오르막 내리막길이 반복되어 하산도 그리 만만치 않아 땀이 줄줄 흐르기만 한다.
그래도 올라올 때는 시원한 공기가 우리를 시원하게 해 주어 힘은 들지만 상쾌감을 느껴가며 올라갔는데 하산 때는 습도가 높아서인지 끈적거리며 후텁지근하여 힘들다.
눈가로 흘러내리는 땀이 안경사이로 흘러 내려 안경을 벗고 수건으로 씻어 내렸다.
안경 쓴 사람은 이것 또한 불편하기가 짝이 없다.
그렇다고 안경을 벗어버리면 그 신비한 풍광을 흐릿하게 볼 것이 뻔하므로 불편을 참고서라도 눈앞의 멋진 장관을 자세하고 선명하게 새기고 싶어 소금기 어린 안경 렌즈를 깨끗이 닦아 다시 귀에 걸어 걸어가며 등산로 주변의 앙증맞은 참나리꽃에게 넌지시 윙크를 보내며 웃음 짓다 보니 어느새 우리 차가 있는 곳으로 왔기에 시계를 보니 19시 30분이다.
정확히 세 시간 걸린 산행이었다.
우리는 각각 차에 올라 전주 방면으로 가는데 이번엔 전귀옥 선생님과 김을수 선생님이 뒤쪽에서 따라 오는데 앞선 차(남선생들이 탐)가 방향을 잘 못 들면 뒷 차가 자동차 하이빔과 방향지시등으로 신호를 보내 주어 제 방향으로 가는데 용담댐 물은 보이질 않고 풀만 우거져 있기에 김현철 선생에게 불어보니 용담물을 대전 금강쪽으로 흘려보내기 때문에 물이 보이지 않는다 한다.
우리는 뒤쪽에서 잘 지시하여 주는 덕에 힘들이지 않고 땅거미가 지는 저물녘의 한적한 도로를 가르며 정겨운 농촌 풍경을 보노라니 그저 아늑하기만 하고 고향집에 온 기분이 든다.
우리는 진안-전주 도로에 접어들어 가면서 화심 부근에 차에 비상등을 켜 놓고 우리 뒷차를 세워 화심 순두부 집에서 저녁 식사를 하였다.
맛있게 식사하면서 오늘 산행을 되돌아보니 마냥 즐겁기만 하다.
바로 이러한 맛으로 우리가 산행을 하는 것이 아닐는지······.
김현철 선생님이 우리에게 오늘 저녁 식사를 대접하시기에 감사를 표하였다.
전귀옥 선생님은 바로 호성동 자택으로 가야하기 때문에 김을수 선생님은 차를 우리 차로 옮겨 타고 정겨운 인사를 나누고 우리는 어둠을 가르고 학교에 도착하여 각자 지상천국으로 향하며 오늘 산행도 무사하게 마침에 대하여 하느님께 감사드림을 잊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