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그림 - 牛眼 최영식
설상가상[雪上加霜]이란 말이 있다.
눈 위에 서리가 또 내렸다는 의미다.
무슨 일인가 생겼을 때 엎친데 덮친 격으로 사용한다.
설상가설[雪上加雪], 눈 위에 또 눈이 내렸다.
자연현상이다.
그제 눈이 5cm정도 내렸고, 낮에도 영하권으로 추워 녹지 않은 상태에서
오늘은 10cm가 내렸다는 기상뉴스를 봤다.
전국에 고루 내렸다고 한다.
떡가루같은 고운 눈이 오후 1시경 부터 내리기 시작해
해가 진 후까지 내리고 개어서 밖은 별빛이 반짝인다.
바람도 없이 천천히 내리는 눈이 한결같은 속도로 변함없이 지속됐다.
추위가 계속될 거라니까 이번 눈은 꽤 오래 쌓여 있을 터이다.
낮에 해우소 가며 빗질을 해 눈을 치웠으나 저녁 무렵 나가 봤더니
치운 흔적도 없이 눈이 그 위에 고스란히 덮였다.
현관엔 눈길을 달려온 우편물이 눈을 소복이 덮은 채 놓여 있었다.
신문과 춘천문학이 두툼하다.
눈이 내린 후 빨리 녹으면 연이어 내려도 눈이 쌓이지는 않는다.
이번 같은 경우는 흔치 않은 일이다.
산촌에서는 먹을 양식과 땔나무만 넉넉하다면
눈이 많이 쌓여도 생활에 불편한 건 별로 없다.
집과 집 사이에 넉가래로 사람 하나 다닐 만큼만 눈을 밀어내 놓으면 된다.
산야를 덮은 풍성한 눈이 만들어낸 설경이 장하기만 하다.
산막골에서 열세 번째 맞이하는 겨울이다.
똑같은 겨울은 없었다.
이번 겨울은 또 어떻게 지내게 될 것인지 궁금해진다.
현재는 아무런 계획도 없는 상태다.
건강을 유지하고 틈틈이 좋은 작품을 하게 된다면 뭐 더 바랄게 있으랴.
눈이 거푸 내리며
아직도 미련을 못 버리고 가을을 붙잡고 있던 마음을
겨울 한복판으로 끌어낸 듯하다.
어째 혹독한 겨울이 되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추위를 견디는데 누구보다 강하다고 자부해 왔으나 이젠 은근히 걱정이 된다.
몸의 저항력이 스스로 느낄 수 있을 만큼 떨어져 있어서다.
추위에 많이 약해졌다.
심혈관 환자의 한계다.
산방에서 내가 쓰는 방은 천장이 높아서 포근한 기운이 없다.
한자 높이를 자갈로 채운 심야전기 난방이라 그나마 이부자리를 깔아 놓으면
방바닥은 온도를 조절하기에 따라 따끈한 편이다.
실내에서도 손이 시리면 밖이 제대로 춥다는 것을 알게 된다.
겨울 들어 처음으로 방에서 손이 시리다.
또 눈이 올 거라는 기상뉴스를 봤다.
그러면 삼중 눈쌓임이 될 듯하다.
내린 눈 위에 또, 또, 눈이 덮이는 거다.
아무래도 초겨울부터 초목을 비롯해 나까지도 혹독하게 단련을 시킬 모양이다.
겨울이 겨울답고자 하는 데 불만은 없다.
답지 않은 데 문제가 있는 것이지, 답다는 데 어쩔 것이냐.
여름은 덥고 겨울은 추워야 한다.
이 당연한 명제가 어긋나면 이상 기후라는 말이 나온다.
7일, 또 눈이 내렸다.
역시 떡가루처럼 고운 눈이지만 2cm나 왔을까, 많이 내리지는 않았다.
그럼에도 화실 앞 자귀나무는 둥치와 줄기, 가지에 반은 눈이 덮여 만들어낸 선이 곱다.
다른 나무에 비해 단단함도 부족하고 가지의 성김도 부족하나 그게 또 여간 매력이 아니다.
현관 주변의 아람드리 전나무 몇 그루와 잣나무가 잎새에 얹힌 눈을 다 떨구지 못한 모습이 검푸르다.
전나무와 비교 돼서 작아 보이지만 결코 작지 않은 향나무 두 그루도 당당하다.
십여 그루의 아담한 오죽도 청청한 기운을 잃지 않고 있어 결기가 느껴진다.
운동장은 커다란 화폭을 펼쳐 놓은 듯 순백의 바탕에 습관처럼 무엇인가 그려 넣고 싶게 만든다.
눈이 내리면 여기저기 여백이 펼쳐져 간결해진 사물들이 더 돋보이고 여유로워 보인다.
해우소까지만 눈길을 쓸다가 처음으로 큰길에서 들어오는 진입로도 눈을 쓸어냈다.
눈길 속을 다니는 집배원에게 미안해서다.
<시와 소금> 겨울호 20권이 든 택배가 와 있었다.
산막골이 춘천시 북산면이지만 화천 간동면 우체국에서 배달을 해준다.
집배원 분들이 험한 길을 다니는 데 탁월한 기량을 가지고 있어서
꽤 여러 해 전이지만 '세상이 이런 일이'에도 나왔을 정도다.
사륜구동에 체인을 감고도 다니기 힘든 눈길을 체인도 안한 티코로 종횡무진 다니며
우편물은 물론,
부탁 받은 생필품까지 무상으로 배달해 주는 신기에 가까운 솜씨와 봉사정신은 존경스럽다.
산막골 배달은 작은 오토바이를 타고 한다.
나도 담배 부탁을 몇 번 하였고 잘해줬다.
혼자 견뎌야 하는 산촌생활은 한없이 단조롭고 막막하다.
이젠 익숙하지만 불편하지 않은 게 없다.
모든 게 원시에 가까운 상태가 된다.
푸세식 해우소에서 볼 일을 보는 것도 그렇고,
한번 씻으려면 난방이 안된 상태에서 절반은 따끈하고 절반은 시린 상태로 샤워기 물을 이용해야 한다.
주방도 난방이 안되기는 똑같다.
그나마 수도가 얼지 않으면 고맙다.
물이 얼어 계곡에서 길어다 먹는 물고생을 겨우내 한 적도 몇 번 있다.
극도로 절제된 생활을 하는 데 숙달이 된 편임에도 허둥댈 때가 종종 생긴다.
무엇보다 적막강산에 살며 고적함을 감내하는 일은 만만치 않다.
새들의 기척이 어느 계절보다 반가운 이유가 된다.
작년 겨울엔 고양이 쨈보라도 있었는데 지난 초여름부터 사라지고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