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릉도에서 나흘(4 完)
(2022년 3월 31일∼4월 3일)
瓦也 정유순
4. 석포∼내수전둘레길(2022년 4월 3일)
오늘은 울릉도를 떠나야 하는 날이라 해뜨기 전부터 바쁘다. 돌아갈 짐을 다시 꾸리고 평상시 보다 한 시간 이상 일찍 출발하기 때문이다. 오늘 코스는 북면 현포리 송곳산 밑에 있는 숙소에서 버스를 타고 천부리를 경유하여 석포마을에 있는 안용복기념관 앞에서 내려 석포∼내수전둘레길을 따라 저동항까지 걸어간다. 가까운 곳에는 독도의용수비대기념관 있는데 두 곳 다 시간에 쫓겨 들르지는 못했지만, 그 분들의 희생과 숭고한 정신이 없었다면 어찌 우리가 이곳에서 활보를 할 수 있었을까?
<울릉도 북서부 해안 지도>
<안용복기념관>은 북면 천부리 87-1에 있다. 안용복은 조선시대 사람으로 울릉도와 독도를 지키기 위해 자발적인 활동을 펼친 인물이다. 그는 1693년 강제 피랍, 1696년 자발적 행보로 두 차례 일본에 다녀왔다. 이 두 번의 일본행으로 울릉도와 독도가 조선의 영토이고, 두 섬의 영유권과 조업권이 조선에 있음을 공고히 하게 되었다. 안용복기념관은 이러한 업적을 기리기 위해 2013년 10월에 개관했다.
<안용복기념관>
<독도의용수비대기념관>은 열악한 환경에서도 울릉도 주민들의 생활 터전이자 대한민국의 고유영토인 독도를 수호했던 독도의용수비대의 희생이 없었다면 지금의 독도는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독도의용수비대기념관은 이러한 독도의용수비대의 헌신을 기리고 국토수호정신을 계승하기 위하여 건립되었다. 육안으로 독도를 바라볼 수 있는 울릉도 천부 석포마을에 위치한 독도의용수비대기념관은 대한민국 독도 수호의 상징이며 독도의용수비대의 활동상을 생생하게 체험하는 공간이다.
<독도의용수비대기념관 이정표>
천부리(天府里)는 울릉도 개척 초기 이곳에 살기 위해 들어 온 사람들이 나무를 베어 낸 후 막을 치고 사방을 살펴보니 울창한 나무로 아무 곳도 볼 수 없었는데, 나무를 베어 낸 곳만 하늘이 보여 천부로 불렀다고 한다. 현포리(玄圃里)는 개척 당시 사람들이 배를 타고 와 보니 대풍감에서 노인봉에 이르는 해안선이 까마득하게 보이기 때문에 ‘가문작지’또는‘거문작지[黑斫支]’라고 하였다고 한다. 또한 마을 동쪽에 있는 촛대바위의 그림자가 바다에 비치면 바닷물에 검게 보이는 데서 유래하였다고도 전한다.
<일선암>
해발 300m 이상의 석포마을에는 부지갱이나물을 재배하는 밭을 지날 때는 숲 사이로 어제 다녀왔던 관음도도 보인다. 부지갱이나물은 국화과에 속하는 다년생 식물로 울릉도에 집단적으로 자생하고 있다. 부지갱이는 섬쑥부쟁이를 울릉도에서 부르는 이름으로 재배하여 나물로 먹거나 특산품으로 판매한다. 울릉도에서는 겨울 눈속에서도 자라고 있어 사계절 채취가 가능하며 맛이 뛰어나 전국적으로 유명하다. 부지갱이나물은 흉년에 구황식물로 이용하였다고 한다.
<부지갱이나물 재배밭>
석포길은 자동차도 다닐 수 있게 포장이 잘되어 있으나 <내수전둘레길>은 울창한 숲길이다. 청량함이 패속 깊이 스며들 때 성인봉자락의 산봉우리들은 맑은 하늘과 어우러져 봉긋 솟아오른 봄 처녀의 가슴처럼 부풀어 오르는 것만 같다. 울릉도에는 아름다운 길이 여러 곳이 있으나 산길로는 <석포∼내수전둘레길>을 첫 번째로 꼽는다. 특히 내수전둘레길에 들어서면 환경생태가 잘 발달된 길을 걷는 것 같아서 이 길을 걸으며 울릉도 생태식물에 대하여 대표적인 것만 알아본다.
<석포길>
우선 울릉도는 천연의 기후 조건을 갖추고 있어 겨울에는 본토 육지에 비해 눈이 많이 오고, 여름에는 서늘한 기후를 유지하고 있으므로 남부지역에서 자라는 난대수목부터 온대북부지역에서 자생하는 온대수목까지 함께 자라고 있다. 그리고 제주도는 아래산간지역에 난대림, 중산간지역에 온대림, 해발 1,000m 이상에는 한대림이 발달되어 있으나, 울릉도는 해발 800m 아래 산간지역에는 난대림이, 그 이상은 온대림이 발달하였다.
<석포길 옆의 산봉우리>
울릉도에서만 자생하는 초본류인 섬초롱꽃은 다년초이며 쌍떡잎식물로 연한 자주색을 꽃을 피운다. 왕해국은 높이는 30~60㎝로 줄기는 비스듬히 자라고 밑 부분에서 여러 개로 갈라진다. 특히 울릉도 특산종인 여우꼬리사초는 꽃이 여우 꼬리를 닮았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주로 울릉도 산속 음지에서 높이 10∼50cm로 자라고 밑 부분이 섬유로 덮이며 뿌리는 토양의 침식을 막아준다. 열매는 수과이며 세모진 긴 타원형이다.
<섬초롱꽃-네이버캡쳐>
<여우꼬리사초-네이버캡쳐>
목본류로는 낙엽소교목인 섬벚나무는 울릉도에서 자라는 한국 특산종이고, 섬단풍나무는 울릉도를 비롯하여 제주도와 남해안의 완도, 진도 등에서 서식하고 있다. 우산고로쇠는 단풍나무과의 낙엽교목으로 섬고로쇠라고도 하며, 우산고로쇠란 울릉도에서 자라는 고로쇠라는 뜻이다. 잎은 마주나고 잎자루가 길며 고로쇠나무와 비슷하다고 한다. 일반 고로쇠나무처럼 수액(樹液)을 채취하여 음용한다. 후박나무와 동백도 울릉도를 대표하는 수종이다.
<섬벚나무 열매>
<우산고로쇠 수액채취>
울릉도에 숲이 무성할 수 있는 것은 너도밤나무를 간과할 수 없다. 너도 밤나무는 울릉도에서 자라는 특산식물로 키가 20m에 달하며 꽃은 5월에 암꽃과 수꽃이 따로따로 핀다. 가을에 씨를 따서 땅 속에 묻어두었다가 다음 해 이른 봄 땅에 다시 뿌리면 싹이 잘 트는데, 울릉도를 제외한 우리나라 다른 지역에서도 간혹 볼 수는 있으나 육지에서 자라는 것은 열매가 제대로 열리지 않는다고 한다.
<너도밤나무꽃-네이버캡쳐>
“옛날 울릉도에 사람이 살기 시작했을 때 산신령의 주문으로 밤나무 100그루를 심었고, 산신령이 내려와 그 수를 세어보았더니 99그루밖에 되지 않았다. 이에 산신령이 벌을 주겠다고 하자 옆에 있던 나무가 ‘나도밤나무’라고 외쳤고, 산신령이 ‘너도밤나무’냐고 되물으며 화를 모면했다고 한다. 그 뒤 사람들이 밤나무를 정성들여 키웠으나 밤나무는 모두 죽고 너도밤나무만 살아남았다”는 전설이 있다. 그래서인지 울릉도에는 밤나무는 없고 대신 너도밤나무만이 잘 자란다고 한다.
<너도밤나무>
내수전둘레길을 걸으며 이곳에도 주목(朱木)이 서식하는구나 하고 생각했는데, 안내판이 일깨워 준다. “울릉도에는 육지에서 천 년 동안 산다는 주목과 비슷한 회솔나무가 자란다. 회솔나무는 주목과 모양은 비슷하지만 울릉도에서만 서식하며 주목에 비해 잎이 넓다. 높이는 10~17m이다. 나무껍질은 적갈색이고 광택이 있으며, 오래될수록 얇게 벗겨진다. 열매는 중심부에 단단한 핵이 있는 핵과(核果) 형태이고 8~9월에 붉은색으로 익는다.”고 일러 준다.
<회솔나무>
울릉도는 화산토로 이루어진 지질에 눈이 많이 내려 얼었다가 녹았다가를 반복하면서 사면침식이 계속 진행되어 오솔길이 점점 넓어지고 있다. 이러한 현상은 내수전둘레길을 걷다보면 침식작용이 진행 중인 곳이 많이 눈에 띠는데, 초목(草木)들이 이를 막아주고 있다. 특히 너도밤나무는 뿌리로 온 힘을 다하여 금방이라도 쏟아질 것 같은 토사를 감싸 안고 있다. 자연은 이 세상에 존재하고 있는 모든 생명들이 공존하는 이유를 설명해 준다.
<토사유출을 막아주는 나무>
이렇게 무성한 숲속에는 각종 곤충을 비롯한 동물군도 풍요롭다. 숲길에는 울도하늘소, 톱사슴벌레, 송장벌레 등이 서식한다고 안내판이 친절하게 알려준다. 특히 천연기념물(제215호)로 지정된 흑비둘기가 후박나무가 울창한 울릉도 어디에서든 관찰되다가 겨울만 되면 사라져 멸종위기종(Ⅱ급)이 되었는데, 최근 추적조사결과 일본에서 월동하는 것으로 밝혀졌다. 흑비둘기는 비둘기 종류 중에서 몸길이가 40㎝로 가장 크다고 하며, 진주 빛이 나는 녹색과 광택이 있는 자색(紫色)을 함께 띠고 있다고 한다.
<흑비둘기-네이버캡쳐>
내수전둘레길을 얼마나 걸었을까? 깊은 골을 이어주는 출렁다리 옆에는 <정매화골 쉼터>가 있다. 정매화골은 ‘정명학’이라는 사람이 살던 곳이라 한다. 저동리 내수전(內水田)이 ‘김내수(金內水)’라는 사람이 화전을 일구고 살았다고 해서 이름 붙여진 것처럼 ‘정명학’이 와전돼 ‘정매화’로 지명이 된 것이다. 그러니 ‘정매화’는 섬 개척기인 1880년대 초 이곳에 집을 짓고 살았던 사람이다. 이후 이효영 씨 부부가 1962년부터 1981년까지 이곳에 살면서 폭우와 폭설에 조난당한 300여 명을 구조했다고 한다.
<정매화골 옆 쉼터>
<정매화골 출렁다리>
걷다 보면 목적지가 가까워지는 것은 당연하다. 천혜의 자연이 선물한 내수전둘레길에서 만나는 많은 생명들과 속삭이며 걷는 길은 나에게 주어진 크나큰 행복이다. 더 걸었으면 하는 아쉬움이 있을 때 발걸음은 이미 저동에 도착하여 <한국전력저동발전소> 앞을 지나 갈매기들이 노니는 바위섬 앞에 서있다. 이는 울릉도 여정의 끝이고 이제 울릉도를 떠나야 한다는 신호다.
<저동항 갈매기 서식지>
“백 년 동안 몇 번이나 이런 경치 구경할까/세월은 무정하다 나는 이미 늙었는데…”방랑시인 김삿갓은 영주 부석사에 들렸다가 이런 독백으로 아쉬움을 달랬는데, 뱃고동은 울리며 울릉도 북쪽 해안을 따라 잔잔한 바다 위로 파도를 가르고 강릉항으로 향하는 내 마음이 꼭 이렇다. 욕심은 끝이 없지만 울릉8경을 섭렵하지 못한 아쉬움은 다음을 위해 꼭꼭 숨겨 놓자.
<저동항-강릉항 여객선>
참고로 울릉8경은 1. 배의 출어 행렬인 도동모범(道洞暮帆), 2. 오징어잡이 배의 화려한 등불 저동어화(苧洞漁火), 3. 사동 하늘에 뜨는 달을 가리키는 장흥망월(長興望月), 4. 겨울철 달밤 남양의 설경을 일컫는 남양야설(南陽夜雪), 5. 석양에 걸려 출렁거리는 바다와 섬들이 만들어낸 낙조의 향연이 환상적인 태하낙조(台霞落照), 6. 솟아나는 생명의 무한한 힘을 일컫는 추산용수(錐山湧水), 7. 절경에 취하고 단풍에 반한 나리분지의 단풍을 가리키는 나리금수(羅里錦繡), 8. 대자연의 조화로 만들어진 알봉이 불타는 단풍을 이르는 알봉홍엽(紅葉)이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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