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의 향기 // 대장장이 박경종
강철은 어떻게 단련되는가
밥 끓여먹고 살려면, 혼자 살건 둘이 살건 있을 건 다 있어야 한다. 구례에 마련한 시골집에는 고맙게도 그토록 바라던 마당과 손바닥만하지만 텃밭이란 게 있었다. 일의 절반은 연장이 한다는 말을 절감했다. 상추씨라도 뿌리고 밭을 갈아먹으려면 호미가 필요하고, 비 한번 오면 우북하게 올라오는 풀을 벨 낫도 있어야 한다. 가을에 가랑잎 긁어 태우려면 쇠스랑도 있어야 한다. 독거노인으로 살다 돌아가신 할매는 고맙게도 없는 것 없이 남겨주었다. 도무지 쓸 일이 생길 것 같지 않은 곡괭이에 도끼까지 있었다.
그런데도 낫을 하나 샀다. 이를테면 충동구매였다.
대장간은 장터 한 가운데 있다. 화덕 안에는 웅크린 고양이처럼 석탄이 빨갛게 타오르고 쇠망치 소리가 쟁쟁 울린다. 쇠모루 위에서 벌겋게 달아오른 쇠가 이리저리 몸을 뒤채고, 그때마다 메질이 가해진다. 천이백도가 넘는 불구덩이 속에서 달아오른 쇠다. 쇠가 쇠를 다루는 긴장된 순간. 쇠와 불, 쇠와 쇠의 긴장을 가늠하며 메를 내리치는 사내는 묵묵하다. 묵묵한 가운데 어떤 리듬이 살아있다. 오랜 세월 몸에 내장된 리듬이다. 리듬을 타면, 긴장은 가벼워지고 위험한 것도 놀이가 된다. 쇠와 쇠가 부딪치는 소리도 리듬을 탄다. 기계음이었다면 신경을 긁었겠지만 사람 손에서 리듬을 타며 울리는 소리는 귀를 거스르지 않는다. 대장간의 쇳소리가 왁자한 장터의 소음을 가른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주위를 둘러싸고 있는 듯한 정적이다. 열과 소음과 먼지가 가득한 공간이 왜 이토록 고요해 보이는 걸까.
그러거나 말거나 그건 내 사정이고, 메질을 하는 이에게는 노동이고 생활이다. 벗어나려고 해도 벗어날 수 없는 질긴 운명 같은 것이었다.
하필이면 아비가 대장장이였던 것. 대장장이의 아들로 태어났던 것. 40년 넘게 쇠를 다루며 온 몸에 골병이 든 아버지는 아들들은 그 일을 하지 않기를 바랐다. 그러나 당장 눈앞에는 처리해야 할 일들이 쌓였고, 급하면 조막손도 요긴했다. 아침에 학교 가기 전에 삼형제는 메질을 해놓고 가야 했고, 학교에 다녀오면 연탄집게며 소 쟁기를 고리로 연결하는 일이 산더미처럼 기다리고 있었다. 아버지가 “오늘은 낫을 좀 만들어야겠다” 그러면 그때부터 몸이 뒤틀리면서 “몇 개나 만들 건디요?” 볼멘소리가 나왔다. 그런 그에게 불과 쇠를 다루는 것에 대한 어떤 매혹? 이런 말은 씨알도 먹히지 않는 것이다.
두 형은 학교를 졸업하고 용케도 직장을 잡아서 집을 떠났다.
결국 마지막까지 집에 남은 그가 발목이 잡힌 것인가.
그에게도 떠날 기회는 있었다. 광양제철소 하청업체와 레미콘 회사가 그가 다닌 직장이다. 둘 다 몇 달을 넘기지 못했다. 아이엠에프 때 자기보다 나이 많은 사람들이 짤리는 걸 보고 있자니, 그에게 딸린 식솔들이 떠오르며 그리 마음이 애리더란다. 자기는 여기 아니어도 먹고 살 수는 있는데, 하면서 제철소를 그만뒀다. 그토록 떠나고 싶던 대장간이 그의 보루였다.
레미콘 회사는 출장이 잦았다. 경남 산청으로 출장을 갔는데 도무지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그래서 순천에서 산청까지 출퇴근을 했다. 군복무시절 외박을 나왔을 땐 아버지가 너무 보고 싶어 서울에서 순천까지 내려가서 잠만 자고 새벽같이 올라간 적도 있었다. 어머니 얼굴도 기억하지 못하던 어린 나이에 어머니를 여의고 홀아버지 손에서 자란 그는 아버지에 대한 애착이 강했다. 그렇게 세월이 흘렀고, 문득 고개 들어보니 자신이 아버지 자리에 서 있었다. 불혹을 바라보는 나이. “그만 두려면 한 살이라도 젊은 나이에 그만 둬야 된다.” 돌아가신 아버지가 하던 말이 요즘 들어 문득문득 떠오른다. 40년간 일한 아버지의 작업장에 바닷물이 차올라 옮겨야 했을 때 몹시도 마음이 아팠단다. 아버지가 쓰던 모루를 옮겨야 하는데 얼마나 깊이 박혔는지 크레인까지 동원했단다. 애증이다.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과 일, 드렁칡처럼 얽히고설킨 그것이 너무도 깊이 박혀 빼려면 평생이 걸리는 그런 것이다. 이제는 조막손으로 연탄집게 고리를 끼우던 그 나이의 아들이 자신을 바라보고 있다.
그도 아프지 않은 곳이 없다. 불똥이 튀어서 데거나 칼에 베이고 찢기고 까지는 것은 차라리 일상이다. 칼자루를 꽂다가 나무의 압력 때문에 튕겨 나온 칼이 엄지손가락의 살을 뚫고 칼자루로 박힌 적이 있었다. 그런 일은 정말이지 찰나에 일어난다. 얼른 차가운 물에 손을 담그고 병원에 갔는데, 피도 나지 않았다. 이상해서 물어보니 워낙 뜨거운 것이 뚫고 지나간 바람에 핏줄이 다 타버렸다고 했다. 무릎이 까졌을 땐, 살이 썩어 들어가기도 했다. 파상풍이었다. 작업장에 날리는 미세한 쇳가루 때문이었다. 뜨거운 쇳덩이를 모루에서 부침개 뒤집듯 뒤집어대는 왼손은 손목 인대가 늘어났고 망치를 내리치는 오른쪽 어깨는 아프지 않은 날이 없다. 낫 하나 만들려면, 일곱 번 이상 화덕에 들어가야 하고, 한번 들어갔다 나올 때마다 백 번 이상 메질을 해야 하니, 낫 한 자루에 천 번 정도를 뒤집고 내리쳐야 한다는 계산이 나온다. 이러니 안 아프면 그게 오히려 이상한 일이다.
작업환경은 뭐라 말할 수도 없을 정도다. 열악하다는 말로도 모자란다. 끔찍하다. 농기구 연장이 요즘으로 치면 휴대폰 못지않게 필수품이던 시절에는 마을마다 대장간이 있었다. 그러나 공장제품에다 플라스틱까지 가세해서 안 그래도 점점 설 자리가 없어지고 있는 터에, 소음과 먼지를 발생시키는 공해 업종으로 낙인찍혀 완전 천덕꾸러기 신세가 되었다. 벌교 정비공장 옆에 간신히 구한 작업장은 밀폐된 공간이다. 미세한 쇳가루와 이산화탄소는 이중 필터의 방진마스크를 써도 폐부 깊숙이 박히는 것 같다.
“언젠가 작업하는 걸 찍겠다고 사진작가가 왔는데 석탄가스 때문에 눈도 못 뜨겠다며 도망간 적이 있어요.”
여름에는 흠뻑 젖었다가 말랐다가 하는 옷을 차라리 활활 벗어던져 버리고 작업을 한다. 숨이 턱턱 막히는 더위보다 차라리 불똥에 데는 걸 택한 것이다. 그런 곳에서 망치질을 하고 나면 골이 다 흔들린다. 쇠를 때리는 것인지, 자신을 때리는 것인지. 한동안 멍하다.
그러니 사방이 툭 트인 장터의 작업장은 천국이다.
“내가 죽으면 모루랑 망치도 같이 묻어달라고 했어요. 그러니까 망치는 묻겠는데, 그 무거운 모루는 어치케 들고 올라가란 말인가, 그러대요.”
삼대는 정말 끔찍하다.
하지만 자신은 어차피 여기까지 온 것, 잘 하고 싶다. 그리고 끝내고 싶다.
중국산 물결을 피할 곳은 세상천지 어디에도 없는 것 같다. 연장도 마찬가지다. 대장간에 화덕은 꺼지고 대신 중국산을 갖다놓고 파는 곳이 많다. 품삯도 나오지 않으니 당연한 일이다.
“저는 그렇게 못 하겠더라고요. 뭘로 만든 건지 모르니까 자신이 없어요. 그런 걸 화덕에 넣으면 날이 물결쳐버리거든요. 내가 만든 건 부러지면 교환하고 이가 빠지면 수선을 해주면 되지만......”
공장에서는 쇠 자체도 좋지 않은 것을 쓰지만 프레스로 눌러서 만든다. 똑같은 모양으로 매끄럽게 빠지기는 하지만, 금방 틀어진다. 잘 만들어진 것은 아무리 오래 써도 모양이 틀어지지 않고 그대로 닳기만 한다. 그러러면 당연히 재료인 쇠가 좋아야 한다. 가장 좋은 것은 기차 레일이라고 한다. 이런 것을 얇게 펴려면 사람 힘으로는 안 된다. 기계 해머로 두드려야 한다. 그리고 천 이백도가 넘는 불과 수 백 번의 메질과 담금질을 거쳐 연장 하나가 태어난다. 강도가 셀수록 부식이 덜 된다. 자동차 쿠션을 잡아주는 스프링 코일도 강해서 좋은 재료가 된다. 이런 재료들은 폐차장이나 고물상에서 구한다.
낫을 충동구매하게 만든 건 손잡이였다. 쇠의 내력이야 농사꾼도 아닌 내게 보일 리가 없지만, 매끈하게 기계로 깎은 것이 아닌, 생 나뭇가지를 다듬어 두꺼운 철사로 동여맨 투박한 손잡이가 내 눈을 잡아끌었다. 일을 쉬는 날이면 그는 나무를 찾으러 산을 돌아다닌다고 한다. 또 하나 눈에 띈 건, 작두였다. 약초 같은 두꺼운 뿌리 종류를 써는 작두. 자연스럽게 Y자로 갈라진 나뭇가지에 칠을 해서 만든 작두는 아름다웠다. 빨래판 같은 판자에 고정한 작두와는 격이 달라보였다. 가격을 물어보니, 파는 게 아니란다. 그것 하나 만드는데 하루가 걸렸는데, 비싸게 받을 수도 없고 하니 전시용이란다.
그의 대장간은 아버지 대부터 거래해오던 농사꾼들이 단골이지만 관광객들의 발길도 자주 머문다. 하등 쓸 일이 없을 텐데도 그들도 나처럼 충동구매를 하게 만드는 무엇이 그의 대장간에는 있다.
그러고 보니 그가 만든 연장에는 모두 같은 표시가 낙관처럼 찍혀있다. 그게 아니어도 자신이 만든 건 금방 알아볼 수 있단다. 아버지 대부터 해오던 것인데, 십자가 모양이다. 왜 십자가를 새겼는지는 못 물어봤단다. 그런데 내 눈에는 영락없이 사슴 발자국 같다.
그의 눈이 꼭 그렇다. 초식동물처럼 순하고 그렁그렁하다.
뜨거운 불과 단단한 망치, 노동량과 험한 작업환경과 상관없이 그는 참으로 섬세하고 여린 사내였다. 쇠를 담금질한 세월이 자신을 담금질한 세월이었으려나.
그리스로마 신화에는 대장장이의 신 헤파이스토스가 나온다. 그는 제우스와 헤라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이었지만 두 신의 불화 때문에 버림받는 불우한 처지가 된다. 그러나 그의 기막힌 손재주 때문에 다시 신전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 그가 만든 것은 걸작 중의 걸작이었다. 아폴론과 아르테미스의 활과 화살, 태양과 달과 별로 아름답게 조각한 아킬레우스의 갑옷, 디오니소스의 술잔과 아리아드네가 쓴 왕관도 그가 만든 것이다. 아리아드네의 왕관은 나중에 하늘로 올라가 별자리가 되었다. 제우스가 들고 있는 번개도 그가 만든 것이다. 어떤 창이나 칼도 따르지 못하는 위력과 빠르기에 흡족한 제우스는 여신 중에 가장 아름다운 아르테미스를 배필로 맺어준다. 박경종 씨의 아내도 불처럼 아름답다는 소문이 있다.
나는 대장간 귀퉁이에 앉아서 이 책을 읽었다. 그를 취재하러가면서 어린 아들에게 줄 그림책을 급하게 몇 권 챙겼는데, 대장간에 와서 펴보니 대장장이의 신 헤파이스토스 이야기가 있었다. 대장장이는 신의 반열에 오른 직업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신의 시대가 저물어가듯, 원시성을 떠올리게 하는 신화적인 공간도 곧 사라질 것이다.
장에 갈 때마다 자주 그 앞에서 발길이 멈추었던 것은, 그 안타까움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는 일어서는 나를 위해 급히 메질을 하기 시작한다.
철근을 손가락 새끼 마디크기로 끊어내더니 화덕에 달구어 메질을 하고 찬물에 담금질을 수차례 한다. 가운데 구멍도 뚫는다.
새끼 도끼란다.
옛날 어른들이 부적처럼 지니던 것이라는데, 기생질 서방질 하지 말라, 아들 낳게 해 달라, 이런 기원을 담은 것이라고 한다. 효험을 보려면 집에서 쓰던 작두 고리로 만들어야 한단다.
그를 취재한다고 대장간 옆 국밥집에서 막걸리를 마셨는데, 나 때문에 일 못한 건 생각지 도 않고, 막걸리 값이 많이 들어서 어떡하냐며 새끼 도끼를 내민다. *
첫댓글 많이 보던 사람이지요? 시 전문 계간지 "시로 여는 세상"에 실린 취재글입니다. 이렇게 큰 목소리 내지 않지만 자신의 삶을 묵묵히 살아가는 사람 취재글을 연재하기로 했는데요, 제가 그 제목을 "사람의 향기"로 정했습니다. 소박하지만 향기가 느껴지는 그런 사람, 주위에 혹시 아는 분 있으면 추천 좀 해주세요.
아..인터뷰 대상에 대한 추천을 말씀하시는군요? 울 삼실에 자주오는 박인규 어르신 말씀을 들으니 구례에는 석청꾼두 있구..울 아부지랑 작년 여름에 자주 다니신 송이꾼두 있구...상여메구 갈때 선소리꾼두 있을거에요. 주변에 없어서 그렇지.. 아마도 할머니, 할아버지 델구 얘기 나누면 꽤 많은 대상자를 만날수 있을듯한데요. 넘 쉽게 생각한건가...?
'사람의 향기'라-- 빛과 향기나는 사람을 찾는구만~~기다리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