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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으로 가는 길
도경수가 골목 한가운데 떨어져 있는 데스노트를 발견했다.
도경수는 죽이고 싶은 사람이 없어서 그것을 그냥 지나쳐 걸었다.
에 메 랄 드 데 스 노 트
우지호 민윤기 식물인간 외전/ by. 얼음빙수
집으로 가는 길이었다.
우지호가 골목 한가운데 떨어져 있는 데스노트를 발견했다.
크리스마스 선물인가?
“오 지저스크라이스트! 메리크리스마스!”
우지호는 지난 17년간 눈물 흘리지 않은 것에 대한 보람을 이제야 느꼈다.
“산타, 갓 블레스 유.”
우지호가 조심스럽게 데스노트를 들어 책가방에 넣었다.
우지호의 책가방 속에는 햄버거 포장지와 플라스틱 필통밖에 없어 자리가 남아돌았다.
우지호의 텅 빈 가방이 달그락댔다.
우지호가 달그락 소리에 맞춰 징글벨을 불렀다.
에 메 랄 드 데 스 노 트
우지호 민윤기 식물인간 번외/ by. 얼음빙수
민윤기는 지랄이 났다.
“아 얻다 놨지.......”
민윤기의 가사노트가 사라졌다.
“아오... 들고 다니는 게 아니었는데...”
온 방을 다 뒤져도 나오지 않았다.
혹시라도 잃어버릴 경우, 주운 사람이 절대로 열어보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에
부러 ‘데스노트’ 라고 적어두었건만
“와이씨 누굴 죽이지?”
그걸 진짜 데스노트라고 믿는 새끼가 주워갈 줄은 오늘 태어난 지저스도 몰랐다.
상심한 민윤기가 차가운 방 바닥에 쓰러져 누웠다.
민윤기의 17번째 크리스마스는 선물을 받기는커녕 아끼던 물건을 잃어버린 최악의 크리스마스였다.
에 메 랄 드 데 스 노 트
우지호 민윤기 식물인간 외전/ by. 얼음빙수
민윤기는 이유 없이 속에서 무언가 치밀어 오르는 때가 많았다.
보통의 17세는 근본도 없이 치솟는 그것을 축구에 쏟았다.
그러다 게임을 하고, 술 담배를 하고, 비행을 하고, 후회가 되면 그냥 씨발, 하고 말았다.
민윤기는 보통의 17세이자 구체적으로 격동하는 청춘기였다.
민윤기는 넘치는 마음을 공책에 적고 가끔은 입 밖으로 뱉었다.
“망했네.”
혹시 몰라 사물함도 찾아보고 가방이며 책상이며 할 것 없이 온통을 뒤지고 다녔지만
민윤기는 가사노트를 찾지 못했다.
누가 보면 안 될 내용이 적혀있는 것은 아니었으나 그래도 누가 보면 안 될 것 같았다.
적어둔 문장 중 유독 간지러웠던 것들이 민윤기의 머릿속을 어지럽게 떠다닌다.
“망했다고.”
민윤기가 까칠한 뒷통수를 마구 헤집었다.
방학을 맞아 에메랄드색으로 물들인 머리카락이 이리저리 넘실댔다.
에 메 랄 드 데 스 노 트
우지호 민윤기 식물인간 외전/ by. 얼음빙수
우지호가 데스노트를 펼쳤다.
“다 뒤졌어. 류크 어딨어! 나와!"
(류크: 데스노트를 만지면 보이는 사신)
그게 진짜 데스노트일 리 없었다.
“이게 뭐야...”
花樣年華
(화양연화)
함께한 시절
방방뛰던 우지호가 공책에 휘갈겨진 첫 문장을 읽더니 잠잠해졌다.
“뭐야 이거. 시집이었어?”
우지호가 드문드문 이어진 문장들을 읽어 내렸다. 그 중에는
First love
“오오~ 첫사랑~”
First love
내 기억의 구석
한 켠에 자리잡은 갈색 피아노
어릴 적 집안의 구석
한 켠에 자리잡은 갈색 피아노
그때 기억해
내 키보다 훨씬 더 컸던
갈색 피아노 그대 날 이끌 때
널 우러러 보며 동경했었네
“첫사랑이 피아노임?”
목소리의 주인을 알 수 없어 시가 되고만 가사를 음미한다.
“슈발 멋있다.”
우지호는 이 정체를 알 수 없는 문장들 전부가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에 메 랄 드 데 스 노 트
우지호 민윤기 식물인간 외전/ by. 얼음빙수
우지호가 데스노트 속 시인의 삶에 대해 탐구한다.
진짜 데스노트가 아님을 알았을 때의 실망감은 온데간데 없었다.
우지호는 그저 응답하고 싶었다.
만약 이걸 쓴 사람을 만나게 되면 나는
봄날 이 제일 좋았다고
보고 존나 울 뻔했다고
솔직히 계절 가지고 이러는 건 반칙이라고
아주 그렇게 말할 거다.
봄날
눈꽃이 떨어져요
또 조금씩 멀어져요
보고싶다
보고싶다
얼마나 기다려야
또 몇 밤을 더 새워야
널 보게 될까
만나게 될까
추운 겨울 끝을 지나
다시 봄날이 올 때까지
꽃피울 때 까지
그곳에 좀 더 머물러줘
머물러줘
“근데 왜 이렇게 끝나냐고... 아련하게...”
문장이 끝난 곳에서 우지호의 이야기가 시작됐다.
에 메 랄 드 데 스 노 트
우지호 민윤기 식물인간 외전/ by. 얼음빙수
민윤기가 죽을상을 하고 알바를 하러 왔다.
민윤기는 개털알러지가 있었으나 용돈벌이를 위해 애견카페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었다.
동물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모여 친목을 다진다.
오늘은 햄사모(햄스터를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가
정기모임을 위해 카페를 통째로 예약한 날이었다.
햄사모가 왜 애견카페에서 정기모임을 갖는지는 아무도 알 수 없었다.
민윤기는 음료를 서빙하기 위해 찾아간 테이블에서 같은 반 친구인 우지호를 만나게 됐다.
“우지호, 너 햄스터 키워?”
우지호는 눈송이처럼 하얀 햄스터 한 마리를 손에 들고 눈사람처럼 웃고 있었다.
“의외네.”
“뭐가?”
“햄스터 말이야.”
“그러니까 우리 물방울이, 뭐.”
“이름이 물방울이야?”
“물방울,이 아니고 물방울이,가 이름이야. 이 멍청한 새끼야.”
“방금 물방울이,라고 말한 거 못 들었냐?”
물방울이의 이름을 단번에 알아들은 사람은 민윤기가 처음이었다.
우지호는 감격스런 마음을 감추고 버럭 화를 냈다.
“물방울이라고 제대로 말했어야지. 발음이 왜 그 모양이야?”
“그러니까 물방울이.”
“틀렸어!”
“뭐 이 미친새끼야. 해보자는 거냐?”
“달 보자 시발!”
“돌아이 새끼가.......”
민윤기는 어이가 없었지만 해와 달 펀치라인이 마음에 들었다.
“너 뭐냐?”
“또 뭐가.”
“너 얼굴이 왜 그렇게 빨갛냐. 내가 우리 물방울이를 애지중지하는 모습보고 반하기라도 한 거냐?”
“뭔 개소리야.”
“너는 사람한테 반하면 얼굴에 두드러기도 나냐?”
“개털알러지 있어서 그래.”
“야 아무튼 내가 이렇게나 귀여운 햄스터를 키운단 사실 아무한테도 말하지 마. 특히 김태형.”
“왜, 가오 떨어지냐?”
“아니. 소문나면 너도 나도 보여 달라고 한다고!”
“알았다.”
“그리고 너. 이런 걸로 약점 잡을 생각은 하덜덜 마.”
“알았다고오”
에 메 랄 드 데 스 노 트
우지호 민윤기 식물인간 외전/ by. 얼음빙수
우지호는 데스노트를 펼친 이후 그곳에 계속해서 무언가를 썼다.
그렇게 시작했다.
그러다가 문득 드는 생각에 데스노트 전 주인이 쓴 문장들을 중얼중얼 읽어보고는
“오오...”
이거 시 아니고 가사였구나, 하며 소름끼쳐 하는 것이다.
우지호는 가사를 쓰고, 그것과 어울리는 비트를 찾고, 소리로 뱉어내기까지의 생산적 과정에 흠뻑 빠져 들었다.
이윽고 적혀있던 가사보다 자기가 쓴 가사들이 더 많아지고 나서야
정말 좋다고 나는 계속해서 이 짓거릴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에 메 랄 드 데 스 노 트
우지호 민윤기 식물인간 외전/ by. 얼음빙수
햄사모는 모이는 빈도가 무척 잦았음에도 불구하고 회원들의 출석률이 매우 높았다.
민윤기와 우지호가 자꾸만 마주친다.
“민윤기, 나 고민 있어.”
“뭔데”
“내가 귀여운 것에는 사족을 못 쓴단 말이지.”
“그래서”
“햄스터를 한 마리 더 사고 싶어. 이번엔 골든 햄스터로.”
“그럼 물방울이 나주든가.”
“뒤지고 싶냐?”
“물방울이한테나 잘해주라고. 왜 한 눈을 팔아? 자꾸 그러면 진짜 눈 하나 파버린다.”
“라임 좋았다. 그래도 물방울이는 안 돼.”
“미친놈이”
에 메 랄 드 데 스 노 트
우지호 민윤기 식물인간 외전/ by. 얼음빙수
햄사모는 정말이지 비현실적으로 자주 모였고, 우지호는 지치지도 않는지 매번 모임에 참석했다.
“민윤기. 나 또 왔어.”
민윤기는 우지호와 정이 들 지경이었다.
“이젠 반갑지도 않다.”
“이전까진 내가 반가웠어?”
“닥치고 꺼져.”
“민윤기 너 또 두들레기 났어.”
“두들레기가 뭐냐. 두들래기가.”
“발음 갖고 존나 놀려대네. 진짜 놀래미인가?”
“아 말 나온 김에 우지호 나 부탁이 하나 있다.”
“솔직히 우리가 부탁 주고받을 사이는 아니지.”
“야...”
“왜...”
“함 해줘라.”
“그래!”
“내일 하루만 알바 대타 좀. 하는 건 많이 없어. 아침에 와서 청소하고, 누가 주문하면 음료수 따라다 주고. 손님 없을 땐 폰 해도 돼.”
“내가 너 불쌍해서 하루만 도와준다.”
“그래. 고맙다.”
에 메 랄 드 데 스 노 트
우지호 민윤기 식물인간 외전/ by. 얼음빙수
우지호가 애견카페에 앉아 카운터를 보고 있었다.
어쩐 일인지 손님이 단 한 명도 없었다.
우지호가 가사나 쓸 생각으로 데스노트를 꺼내자 갑작스럽게 개들이 싸우기 시작했다.
우지호가 개들의 싸움을 말리기 위해 개싸움판에 뛰어들었다.
병원에 알레르기 약을 타러 갔던 민윤기가 생각보다 일찍 애견카페로 돌아왔다.
민윤기는 돌아오자마자, 개들과 싸우고 있는 우지호를 뜯어말려야 했다.
“이게 무슨 일이야.”
“몰라. 너 왔으니깐 이제 나는 간다.”
우지호가 앉아있던 자리로 돌아가 데스노트를 챙겼다.
“잠깐만.”
익숙한 노트를 발견한 민윤기가 우지호를 붙잡았다.
“야 그거...”
우지호는 본능적으로 데스노트의 주인이 민윤기라는 사실을 알아챘다.
“화양연화,”
“함께한 시절.”
“first love,”
“내 기억의 구석
한 켠에 자리잡은 .......”
“갈색피애노?”
“이런 씨발!”
마치 정해진 암호를 확인하는 과정 같았다.
“민윤기?”
“와, 너 그거 어디서...”
“나는 봄날이 너무 좋아.”
에 메 랄 드 데 스 노 트
우지호 민윤기 식물인간 외전/ by. 얼음빙수
“내놔.”
“안돼.”
“뭐?”
“안 된다고.”
“어이가 없네.”
우지호는 데스노트의 주인을 만났지만 돌려줄 수 없었다.
“그...”
“......”
“하이씨.. 야 민윤기, 이제 여기 네가 쓴 거보다 내가 쓴 게 더 많아.”
“뭘 썼는데.”
“......”
“너 내가 거기 쓴 게 뭔 줄 알아?”
알아. 나도 그거 한다고...
“잔말 말고 내놔.”
우지호는 노트를 돌려주더라도 자신이 쓴 가사는 지우고 돌려주고 싶었다.
우지호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민윤기가 원래 제것이었던 가사노트를 빼앗아 펼쳤다.
“......”
“....... 뭐냐”
“뭐가”
“너도 썼네. 가사?”
“뭐... 아, 야 다시 줘. 내가 쓴 건 찢게.”
“왜 찢어?”
민윤기가 우지호에게 노트를 순순히 돌려주며 말했다.
“나도 언제 한번 들려줘라.”
우지호는 밀려오는 민망함에 고개를 들 수 없었다.
“봄날이 그렇게 좋았냐?”
“진짜 아련했다. 나는 울 뻔했다. 솔직히 계절 가지고 그러는 거 반칙이야. 내가 그거 우리 물방울이한테도 들려줬어.”
“이 밑에는 니가 쓴 거야?”
“나는 수미상관성애자야.”
에 메 랄 드 데 스 노 트
우지호 민윤기 식물인간 외전/ by. 얼음빙수
봄날
눈꽃이 떨어져요
또 조금씩 멀어져요
보고싶다
보고싶다
얼마나 기다려야
또 몇 밤을 더 새워야
널 보게 될까
만나게 될까
추운 겨울 끝을 지나
다시 봄날이 올 때까지
꽃 피울 때 까지
그곳에 좀 더 머물러줘
머물러줘
벚꽃이 피나 봐요
이 겨울도 끝이 나요
보고싶다
보고싶다
조금만 기다리면
며칠 밤만 더 새우면
만나러 갈게
데리러 갈게
추운 겨울 끝을 지나
다시 봄날이 올 때까지
꽃 피울 때 까지
그곳에 좀 더 머물러줘
머물러줘
“멋있네. 야 우리 나중에 잘나가는 래퍼되면 같이 작업이나 함 하자.”
“됐고. 찌그래기여도 그냥 껴줘.”
“그래. 니가 오늘 나대신 알바도 뛰어줬는데.”
에 메 랄 드 데 스 노 트
우지호 민윤기 식물인간 외전/ by. 얼음빙수
“그나저나 넌 우리 물방울이 이름을 어떻게 한번에 알아들은 거야?”
“우리 물방울이. 라임이 쩔잖아.”
-에메랄드 데스노트 끝-
*first love, 봄날: 방탄소년단의 곡
*17세 겨울 이야기
*식물인간 17편에 나오는 우지호의 보물 2호(가사노트)를 처음 영접한 사람이 민윤기인 이유 = 원래 주인이 민윤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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