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Jorge Luis Borges는 1930년에 쓴 글에서, 미래 언젠가는(1990년 정도일 거라고 추측했다) 종래의 시인들의 작품에서가 아니라 대중잡지에 실린 땅고 노랫말에서 ‘우리 시대의 진정한 시’를 읽어낼 수 있으리라고 말한 바 있다. 땅고 멜로디에 노랫말을 얹기 시작한 1880년대 이후로 수천 편의 가사들이 만들어졌다. 가장 초기의 가사들은 즉흥이었거나 기록이 남지 않은 경우가 많은데, 아마도 사창가를 언급하는 경우가 잦은 저속한 내용 때문이었을 가능성이 크다. 1910년대 빠스꾸알 꼰뜨루시Pascual Contrusi의 등장과 함께 땅고 가사는 뚜렷한 형태와 형식을 획득하고, 특유의 전형적인 요소들이 생겨난다. 꼼빠드리또와 그의 지저분한 밑바닥 환경이라든지 그가 헤어나지 못하는 서러운 집착들, 말하자면 어린 시절의 집에 대한 향수, 배신으로 끝난 불행한 연애, 이상화된 어머니의 사랑, 가난, 우울과 체념 같은 정서들이 그것이다.
땅고 노래는 거의 완전히 도회적이라 해도 무리가 없다. 그 언어에는 룬파르도lunfardo 표현들이 많이 들어있고, 그 특징적인 주제에는 도회적 테마와 도시의 인물들(이민자들도 포함된)이 반영되어 있다.
1928년 Carlos de la Púa가 쓴 <Los bueyes(황소들)>는 스무 살 나이에 땡전 한푼 없이 부에노스아이레스에 도착한 두 명의 이탈리아 이민자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이들은 쉬지 않고 일을 함에도 불구하고 인생의 마지막까지 가난에 찌들어 지내고, 자식들도 이들에게 아무 도움이 되지 않는다. 가난의 덫에 빠져 허우적대는 이민자의 모습은 여러 땅고 가사에서 등장하는 주제다. 1930년 Guillermo del Ciancio가 쓴 <Giuseppe el zapatero(구두장이 쥬세뻬)>의 가사는, 구두장이 쥬세뻬가 밤낮없이 일해 아들을 뒷바라지해 아들이 의사도 되고 영지를 가진 신부를 만나 결혼까지 하지만, 자신의 신세는 조금도 나아지지 않고 아들의 수입을 불려주기 위해 여전히 쉬지 않고 일해야 한다는 내용이다.
Orquesta Ricardo Tanturi con Enrique Campos, <Giuseppe el zapatero>
신분 상승이라는 주제도 여러 가지 형태로 나타난다. 1930년 Carlos Barthe가 쓴 <Gacho gris(회색 모자)>는, 변두리 동네의 밑바닥 출신으로부터 출세하여 전국 모든 계층의 쓸것이 된 것에 대해 꼼빠드리또의 회색 모자를 찬양하는 내용이다. “너는 승리하였도다, 마치 땅고처럼!”
여성들에게는 가난한 서민 공동주택을 벗어나는 길이 바로 캬바레 입구로 이어지는 일이 잦았다. 가난하지만 야심만만한 소녀가 가난한 삶보다 몸 파는 일을 택하거나, 자신의 잘못이 아닌 불행한 연애의 결말로 인해 캬바레 댄서의 삶을 살게 되는 이야기는 아주 흔한 땅고 가사의 주제다. Roberto Emilio Goyeneche가 1923-24년에 쓴 <De mi barrio(나의 동네에서)> 속의 여인 역시 그러한 운명으로, 가사는 이렇게 끝난다."캬바레의 흥청망청한 분위기와 형형색색의 불빛들에 둘러싸인 채 / 애무를 팔고, 사랑을 파네 / 날 떠나간 그 사람을 잊기 위하여"
사랑을 잃고 슬퍼하는 내용도 단골로 등장한다. 가장 유명한 노래들 중 하나로, 1917년경에 빠스꾸알 꼰뜨루시가 쓰고 까를로스 가르델이 불러 유명해진 <Mi noche triste(나의 슬픈 밤)>의 주제 역시 이것이다. 이 엄청난 히트곡을 따라한 노래들이 한둘이 아니었고, 너무나도 당연하게 이 주제는 고금을 막론하고 호소력을 지닌다. 1963년에 Cátulo Castillo가 쓴 <El último café(마지막 커피)> 역시 같은 주제를 좀 더 세련되고 미묘하게 나타낸다."...그때 그 차가운 입술로 / 한숨 같은 목소리로 / 네가 청했던 마지막 커피 한 잔 / 너의 무심한 목소리가 / 까닭 없이 떠오르네 / 네가 여기 없어도 들리네 / '우리는 끝났어' / 달고도 쓰디쓴 작별 인사를 건넸지..."
땅고 작사가들은 변두리 동네barrio(혹은 부에노스아이레스 자체)에 대한 애정을 파고들기도 한다. 많은 이민자들과 그 자식들에게 있어, 특정한 지역에 대한 애착은 떠나온 고국에 대한 향수를 대체할 수 있는 것이었다. 1932년에 나온 <Melodía de arrabal(변두리 동네의 멜로디)>의 가사를 보자."거친 사내들과 가수들의 요람 / 말다툼과 갑작스런 주먹다짐 / 그리고 내 모든 사랑들이 있던 곳 / 너의 집 담벼락에 칼로 새겨넣었지 / 내가 사랑했던 그 이름들을 / 로사, 캬바레에서 만난 그녀 / 금발머리 마르곳..."
가사의 주인공들은 종종 자신의 기억 속 과거의 동네barrio에 사로잡혀 있고, 때로는 그 동네가 알아볼 수 없을 만큼 번화해져서 더 이상 소속감을 느끼지 못하기도 한다. 실제로 많은 땅고 가사들이 이상화된 과거의 기억과 잔인한 현재를 대비시키고, 그 주인공들은 실패에 고통받으며 성숙을 모르는 루저인 경우가 많다. 끊임없이 사랑에 실패하고 버림받으며, 종종 성인 같은 존재로 등장하는 엄마에게 돌아간다. 여자들은 모두 사기꾼이고, 오직 엄마만이 기댈 수 있는 존재라는 듯이.
대부분의 가사들이 이와 같은 전형적인 인물과 상황들을 계속 갖다썼지만, 1930년대에는 엔리께 산또스 디세뽈로Enrique Santos Discépolo라는 걸출한 작사가가 등장하여 신랄하고 현실적인 가사를 선보인다. <Esta noche me emborracho(오늘밤 나는 취할 거야)>, <Malevaje(암흑가)> 등 빼어난 작품을 남긴 그는 당시 최고였을 뿐 아니라 전 시기를 통틀어 최고의 작사가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또한 디세뽈로는 연주자, 작곡가, 지휘자, 시인, 배우, 극작가, 영화감독 등을 다 하는 만능 재주꾼이었다. 그의 아버지는 이탈리아인이고 어머니는 아르헨티나인이었는데, 어린 나이에 고아가 되어 숙모 밑에서 자라났다. “땅고는 슬픈 생각이 춤으로 추어지는 것이다El tango es un pensamiento que se baila.”라는 유명한 말을 남기기도 했다.
엔리께 산또스 디세뽈로 (1901~1951)
1944년, 최초의 아르헨티나산 반도네온을 테스트해보는 자리에 땅고계 거물들이 모였다.
왼쪽부터 프란시스꼬 까나로, 엔리께 산토스 디세뽈로, 아니발 뜨로일로,
(가르델과 듀오였던) 호세 라사노. 맨 오른쪽은 반도네온 제작자 루이스 마리아니
과거에 쓰인 다수의 땅고 가사들은 지금 들으면 어딘가 낡고 시대착오적인 느낌을 주지만, 디세뽈로의 가사는 오늘날에도 개연성 있고 시의성 있게 들린다. 그가 1935년에 쓴 가장 유명한 가사 <Cambalache(고물상)>는 땅게로스들이 ‘우리의 애국가’라고 일컫는 노래로, 20세기를 고물상에 빗댄 강렬한 이미지로 현대의 타락상을 비판하고 도덕의 쇠퇴를 애도하는 내용이다.
2016년 미드 <나르코스> 시즌2 ep2에서 주인공이 <Cambalache>를 부르는 장면
1930년대의 대공황을 겪으며 이와 같은 저항적인 가사들이 많이 나온다. 1932년 Celedonio Esteban Flores가 쓴 <Pan(빵)>의 가사는 가족들이 먹을 빵이 없어서 울고 있는 남자를 다루고 있다. 남자의 아내와 어머니는 병을 앓고 아이들은 배고픔에 울고 있다. 같은 해 나온 Enrique Cadícamo의 <Al mundo le falta un tornillo(이 세상은 나사가 빠졌어)>는 이런 거지 같은 상황을 한 마디로 요약한다. "이 세상은 나사가 하나 빠졌어./ 수리공을 불러와서 고칠 수 있나 보라구!"
1943년에는 땅고 가사에 룬파르도를 쓰는 전통이 타격을 입게 된다. 당시 권력을 잡은 군사 정권이 라디오에서 사용되는 언어를 순화하는 것을 목표로 규제들을 도입한 것이다. 룬파르도는 사용이 금지되고 많은 땅고 노래들이 제목과 가사를 수정해야 했고, 디세뽈로의 <Cambalache>는 수년 동안 금지곡이 되었다. 이 같은 검열은 1949년에야 해제된다.
대체로 땅고 가사 속의 세계는 적대적인 곳으로, 환상들이 깨지고 필연적으로 염세적인 정서가 지배하는 곳이다. 보르헤스는 땅고의 이런 면이 마음에 들지 않았고, 그의 표현을 빌리면 ‘씩씩하고 명랑한’ 초기의 가사들을 더 좋아했다. 후기의 땅고 가사에 대해서는 “시끄러운 자기 연민에 빠져 허우적거리며 뻔뻔스럽게도 타인의 불행에 기뻐한다”며 비난했다. 보르헤스의 견해가 맞고 틀리고를 떠나, 20세기 초와 그 이후 상당 기간 동안 땅고가 부에노스아이레스라는 용광로에 뛰어든 여러 국적의 이민자들에게 공통의 정서적 토대를 제공해 준 것만은 틀림없다. 오늘날까지도 많은 아르헨티나인들이, 상실감과 무력감을 구체화하여 이해하고 극복하는 데 땅고 가사가 도움이 되었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리고 의심의 여지 없이 땅고 노래들은 라틴아메리카 현대 문화의 일부로 확고하게 자리잡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