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2009. 06. 20(토)
■ 심온선생묘(沈溫先生墓)
[종 목] 시도기념물 제53호(수원시)
[지정년월일] 1979. 09. 10
[소재지] 경기 수원시 팔달구 이의동 산13-10
●개 관
묘역 안에는 돌로 만든 석등과 좌우에 문인석 1쌍이 배치되어 있고 안평대군이 글을 쓴 묘비가 있다.
묘역 아래에는 9대손 심하단이 글을 짓고 서명균이 글씨를 쓴 신도비(神道碑:왕이나 고관 등의 평생업적을 기리기
위해 무덤 근처 길가에 세운 비)가 세워져 있다.
▲심온선생신도비(沈溫先生神道碑)
ⓒ고대평생교육원 풍수지리동문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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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심온신도비(沈溫神道碑)
[시 대] 조선
[연 대] 1737년(영조13년)
[유형/재질] 비문 / 돌
[문화재지정] 시도지정문화재 - 시도기념물 제53호(수원시)
[크 기] 높이 210cm, 너비 86cm, 두께 35cm
[소재지] 경기도 수원시 팔달구 이의동 산 13번지
[서 체] 해서
[찬자/서자/각자] 심하단(沈賀檀) / 서명균(徐命均) / 미상
●개 관
이 비는 1737년(영조 13년) 경기도 수원에 건립된 심온신도비(沈溫神道碑)로 심하단(沈賀檀)이 비문을 지었고, 서명균(徐命均)이 글씨를 썼다.
심온(沈溫 : 1375~1418년)의 본관은 청송이고, 자는 중옥(仲玉)이다. 세종의 장인이다.
고려 말 문과에 급제하였으며, 조선이 개국한 뒤 병조의랑, 대호군, 풍해도관찰사, 대사헌, 이조판서 등을 역임하였다.
1418년(태종 18년) 태종이 선위하여 세종이 즉위하자 영의정으로서 사은사(謝恩使)가 되어 명나라에 갔는데 아우인 심정(沈泟)이 태종의 국정처리에 불만을 말하는 것을 병조좌랑 안현오가 밀고하자 태종은 이들과 함께 병조판서 박습(朴習) 등을 참수하게 했다.
심온은 그 수괴(首魁)로 지목되어 귀국 도중 의주(義州)에서 체포된 뒤 수원(水原)에서 사사(賜死)되었다.
그러나 이 사건은 심온의 세력이 커지는 것을 걱정한 태종과 좌의정 박은이 무고한 것으로 밝혀졌다. 시호는 안효(安孝)이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