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의연주자, 박영미 박사학위 논문청구전이다.
심석 박영미는 음악가에서 필을 연주하는 서예가로 변신한 작가다.
심석 박영미가 서예를 시작한 것은 1994년 34살에 온양에서 중학교 음악교사로 근무할 때 부친의 소개로 아천 김영철선생을 소개받았다. 아천 선생은 그림을 권유하셨지만, 평소 서예를 배우고 싶다는 말씀을 드렸더니 다시 소정 전윤성 선생님을 소개해 주셨다. 글씨를 잘 쓰셨던 친정 아버지를 닮고 싶었던 꿈이 있었기 때문이란다.
내가 심석을 만난 것은 1995년쯤일까 싶다. 소정서실의 화서회 회원들의 전시회가 있었는데 서예를 감상하는 태도의 눈빛과 말소리가 또렷하게 필법에 대한 예리한 질문과 필치가 남달랐다. 이미 예술가로서 그에게 있어서 예술에 대한 강렬한 의지와 공감이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심석이 30여년 동안 붓을 잡고 서예의 도를 실천하면서 그가 보여준 서예에 대한 학문의 의지는 남달랐다. 2003년도에는 튼튼하게 세운 필법으로 경기대학교 대학원 서화전공에서 서예이론을 본격적으로 공부하였고, 2022년도에 대전대학교 대학원 박사과정에 입학하여 학교에서의 마지막 학문의 열정을 태우고 있다.
근대 독일의 유태인 지휘자이며 작곡가인 브루노 발터 슐레징어(Bruno Walter Schlesinger, 1876-1962)는 그의 자서전 『주제와 변주』에서 “ 모든 예술의 본질은 질서다. 음악 연주도 질서정연하고 체계적이어야 한다”. 그리고 아름다운 음악이란 “우주의 원초적인 내적 울림이 인간에게 창조의 영감을 불러일으키는 것”이라고 했다. ‘음악의 해석자’이자 ‘감성적 사색자’이며 ‘고전적 낭만주의’의 후예로, 조화와 화해, 융화와 창조를 향해 정진했던 작가다.
훌륭한 예술 작품의 가치가 창작자의 재능과 능력, 영감과 의도, 뛰어난 인격에 의해 결정된다는 것을 전제로 한다면 예술가에게는 원초적인 내적 울림에서 터져나온 창조적 영감이 훌륭한 인격과 결합하여 만들어낸 작품이 최고의 가치가 될 것이다.
심석은 음악에서의 멜로디와 서예에서의 절주를 아는 사람이다. 그가 음악과의 동행했던 시간과 건반과 악보 사이에 지필묵을 두고 붓으로 연주하는 서예의 시간은 그의 인생에 가장 아름다운 삶이라고 자부한다. “붓의 털은 마치 거문고의 현과 같이 탄력이 있어 글씨 쓸 때 내 감정에 의해 강약, 지속, 장단등은 마치 내가 종이 위에서 줄을 튕기고, 건반을 두드리는 것 같다.” 심석이 느끼는 것은 손끝의 감각 작용에 따라 나오는 소리를 귀로 듣고 연주를 이어가는 것은 소리와 서예의 획이 다르지 않다는 것이다. 소리와 점획!
한나라 서예가 채옹(133-192)은 유명한 음악가이며 서예가였다. 서한시기까지 서체가 미정했던 시기 제체를 정리하여 태학의 문전에 삼체석경을 세운 인물이며 서론을 처음으로 제기한 인물이다. 그가 피난살이를 할 때 어느 시골 골목을 지나다가 오동나무가 아궁이에서 타는 소리를 듣고 끄집어 내어 거문고를 만들었다. 거문고의 끝부분이 검게 그을려 있는 나무로 만든 거문고라 하여 焦尾琴이라고 불렀는데 음악계에서는 그의 악보를 매우 중시한다.
채옹은 그의 필론에서 “書者散也.”라 했다. 글씨라는 것은 마음에 회포를 풀고 감정에 맡기고 본성에 의지한다는 뜻일 것이다. 여기에서의 ‘散’은 채옹의 마음에 음률에서 나오는 것으로 음악에서 말하는 ‘산조’ 뜻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된다. 산조는 연주자의 기량과 독창성을 마음껏 발휘할 수 있는 음악이 아닌가.
심석은 음감이 뛰어날 뿐만이 아니라 선의 감각에도 매우 뛰어나 전·예·해·행·초의 서체가 갖고 있는 본질미를 잘 활용하여 작품을 완성하는 작가다.
심석은 음악과 서예는 함께 인류의 예술 형태로, 서로 간에 깊은 연관성과 유사성을 지니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음악은 소리와 멜로디를 통해 감정을 표현하는 반면, 서예는 글씨와 선을 통해 감정을 녹여낸다. 이 두 가지는 모두 인간의 내면 세계를 묘사하고 표현하는 수단으로 매우 중요한 예술적 표현 가치를 지닌다. 음악은 다양한 음을 조합하여 리듬과 조화를 이루며, 서예 역시 선의 두께, 길이, 기울기 등으로 리듬감을 주며, 글씨의 배치와 구조에서 조화를 이룬다. 음악은 소나타, 협주곡, 교향곡 등 다양한 형태를 가지고 있으며, 서예 역시 眞書, 草書, 行書 등 다양한 스타일과 구조를 가진다.
심석은 음악과 서예, 이 두 가지의 규칙과 구조를 알고 있으며, 그의 서예 작품에서는 자신만의 감성과 창의성으로 규칙과 구조를 만들어 내는 작가다. 지금은 그의 인생 여정에서 예술인으로 태어나 예술인으로 성장하는 과정이다.
이번 그의 작품 전체는 갑골문에서 광초에 이르기까지 動態와 張力을 조절하면서 작품의 시작부터 끝까지 일관된 필의와 분위기를 유지하고 있다. 앞으로 음악의 울림과 필묵의 조화를 통해 더욱 생동감 있고 많은 사람들에게 공감을 느낄 수 있기를 기대한다. ( 이주형/ 대전대학교 서예미학과 교수(학과장) 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