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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퇴는 없다
강병철(대산고등학교)
최근 자주 듣는 질문 중 하나를 오늘도 듣는다.
“명퇴 언제 해?”
귓바퀴에 푹신 익어야 할 그 문장이 여전히 생경하다. 먼저 명퇴수당이라는 수치를 나열하며 구체성을 제시한다. 한 방 짜리 뭉텅이 명퇴 수당을 퇴임하는 날까지 매달 쪼갠 다음 공무원 연금에 플러스시키고 차비와 밥값을 빼면 현장 안팎으로 별 차이가 없다는 얘기다. 어지간히 실속도 보이는 그 셈법이 여전히 진부하므로.
“정년퇴임까지 분명히 갑니다.”
단순우직 타법으로 맞서는 춘삼월이다. 쥐불놀이 흔적 너머 노란 새순들 우쑥불쑥 흙더미 헤집는 모습이 꿈결처럼 아름답다. 고개 돌리니, 제비새끼처럼 재잘거리는 새내기 교사들이 창살 아래로 콧등을 스치기도 한다. 이른 봄날의 교단 생애 첫 출근은 얼마나 설렐까. 첫 사랑만큼 두근거리는 첫 봉급도 만나리라. 나에게도 그런 시절이 있었다며 잠시 아득했던 센티멘털에 젖는다.
대전시 홍도동 자취방 뒷골목에서 생전 처음 장거리 택시를 때리던 그 날이다. 이불 한 채와 살림살이 일체를 담은 라면 박스를 승용차 트렁크에 채우고 논산 부창동 하숙집에 짐을 옮기던 총각 선생의 봄이 있었다. 앞치마 두른 여고생들이 유리창 닦는 풍경을 보며 쿵쿵 가슴을 다졌던가. 담장 너머 종소리를 들으면서, ‘아이들을 절대로 때리지 않을 거야’ ‘역사 앞에 떳떳한 스승이 될 거야’ 그런 결의로 가슴 설레면 산수유 노란 빛이 우르르 가슴을 파고들었다. 그리고 30년여 년이 훌쩍 지났고 팔팔했던 청년 교사의 피부에 초로의 검버섯이 박히기 시작한다.
“후배들을 위해 자리를 내줘야지.”
미안하지만 그 주문도 아니라고 부인한다. 나는 이제껏 대학교수나 교육관료, 사업가나 노동자가 그런 당위성으로 명퇴한다는 얘기를 단 한 번도 들어보지 못했다. 잘 나가는 정치가들이나 작가, 의사나 과학자 역시 마찬가지다. 살 비비고 함께 살겠다. 다양한 조건과 품격이 한 울타리에서 어우러지는 게 학교요, 세상이다. 그 울긋불긋 못난 얼굴들끼리 공생하며 순환하는 것이다. 게다가 이건 밥그릇 문제 아닌가.
구내식당에서 마주친 중년의 제자는 자의 반 타의 반 직장에서 밀려난 후 주택관리사 시험대비로 재기를 다지는 중이었다. 식판을 꺼내면서 그가 한 마디 툭 던진다. 강철 칼바람이 시나브로 잦아들면서 생강나무 꽃 피는 그 계절이다.
“선생님은 언제 교장이 되시나요?”
수십 탕 귀가 솔도록 우려내고 굳어버린 그 얘기도 기실 지겹다. 나는 대답 대신.
“식당 김치, 이 정도면 맛있는 거야.”
얼렁뚱땅 출입문을 나온다. 팽팽하게 물이 오른 후박나무 가장이가 금세 불어터질 것 같다. 봄은 산수유부터 시작된 다음 ‘노란 개나리 →목련 →진달래 →영산홍 →싸리꽃’ 순서로 차례를 기다리는 꽃잔치 예고편이 터질 것이다. 그렇게 ‘하늘 →물 →땅’의 순으로 빗줄기 자양분으로 한 해를 여는 것이다.
아프고 벅찼던 계절을 다시 떠올린다. 30년 전 봄날 여고교사 총각선생 시절, 아이들을 사랑한다는 문장을 주술처럼 외우고 다닐 즈음이다. 자취방 번개탄 푸른 빛을 비수처럼 품으면서 혁명의 작두에서 춤추는 상상에 시달리기도 했다. 아주 빠른 찰나 시퍼런 작두날이 자꾸 리펫된다. 아버지가 작두를 밟는 사이마다 재빨리 짚토매를 쑤셔넣으면 누이의 입술 조각이 함께 옴싹옴싹 움직였던가. 실제로 손목이 날아가는 꿈에 시달리며 새도록 가위에 눌리기도 했다. 그 작두 속에 전교조 교사 1500여 명이 목을 넣으며 울타리 부여잡는 투쟁에 몰입하기도 했다. 아!
마침내 새벽 아지랑이 사이로 젊은 훈장들의 스크린이 울멍울멍 붙박이로 자리 잡는다. 해직의 벼랑 끝에 서서 복직 이후의 비장한 상봉을 새롭게 떠올리는 중이다. 네 명의 사내가 도원결의 후 술떡으로 젖은 채 눈망울 퉁퉁 부풀렸던가.
“우리는 반드시 교단으로 돌아가 마지막까지 평교사로 남는다.”
봄비 젖은 사내들의 옷깃이 석고처럼 뻣뻣한데 까마귀 날개 칠 때마다 우지끈 뚝딱 삭정이 떨어지던 갑사의 신새벽.
“분필을 잡은 채 교단에서 쓰러진다.”
감격에 북받쳐 꺼이꺼이 울음을 터뜨리던 막내 후배는, 지금은 교장 승진을 목전에 둔 시점이다. 가장 착했던 키다리 친구는 해직교사 때 췌장암으로 먼저 떠났고, 울지 말라며 등허리 두들기던 목석같은 선배는 정년 5년을 남기고 쿨하게 명퇴를 했으니, 이제 나 홀로 홑바지 차림으로 남아있다. 버틸 만하다.
자본주의는 약진을 거듭하며 세상을 상전벽해로 바꾸었다.
산골짜기를 뚫고 헐어서 아스팔트를 깔았고 스마트폰 행렬에 치여 공중전화 박스를 찾기가 힘들다. 전교조 교사가 아니면 아무도 눈에 들어오지 않던 시절이 지척인데 지금은 상황이 다르다. 전교조에 미안한 눈빛을 던지던 벗들은 어느 새 관료가 되어 승리감으로 후배들 앞에 서서 그들의 판을 짜는 중이다. 학교는 공문서 천지가 되어서 가르침보다 공문서 처리가 우선한다.
한때 교단을 ‘뻐드렁니 악마’와 ‘꽃 든 천사’로 나누었던 이분법도 아주 쬐끔은 흐려져서 그들에게 술잔을 권하기도 한다. 그러면서 딱 한 가지 변하지 않는 결심을 다진다. 나는 반드시 평교사로 마감하리라. 한때 목숨까지 바치려했던 젊은 날의 결의를 확인하고 또 열어본다. 명퇴할 때마다 조합원이 하나씩 삭감된다며 조바심하며 사랑의 상처를 싸맨다. 지렁이 맨살로 굳은 땅 숨통을 헤집으며 녹색 식물 자양분을 만들자고 한다.
지금은 1년 간 안식년의 행복했던 시간을 마감하고.
25년 만에 인문계 고등학교로 컴백하려는 시점이다. 돌아온 교단이 예상보다 만만치 않아서, 초로의 사내는 요즘 대학 도서관에서 EBS 문제집으로 굳은 몸을 푸는 중이다. 오랜만에 인문계 수능문제를 접하면서 만감이 교차한다. 통합출제에 대한 신비로움과 구태스러이 동시에 겹쳐진다. 그래도 이상하다. 수십 종의 국어교과서 중에서 유독 EBS에서만 수능문제를 출제하는 타법이라니, 정답과 해설판을 제시하고 감독관 자리에 서는 셈이다. 변화는 또 있다. 외우는 게 완전히 사라진 대신 독해력의 스피드 게임이다.
예전 총각 선생 때는 주로 암기식 유형이었으므로 좔좔 외우기만 하면 해결되었었다. 때까치 여고생들 앞에서 신비스런 포즈를 보여주기 위해 아예 국어교과서를 덮은 채 강단에 섰다. ‘불휘 기픈 남 바라매’를 외우면서 ‘용비어천가 2장에만 유독 중국고사가 없으며, 순 우리말을 상징적으로 사용했다’부터 운을 띄웠다. 그러면서 ‘바람애’는 분철이고 ‘바라매’는 연철이며 ‘됴코’가 ‘좋고’로 변하는 건 구개음화이고, 받침은 원래 8종성이었으나 ‘ㅅ’이 빠지면서 현대는 발음상 7종성만 사용한다고, 2배속 빠른 테이프로 돌려버렸다. 범생이 여고생들은 입을 딱 벌린 채 쳐다보다가 노트 필기에 몰입하곤 했다. (이 스타일은 해직교사 이후 학원강사 때 마지막으로 써먹고 종을 쳤다.)
문제집 500쪽 이상을 독파했다. 통합 논술이라는 엄청 긴 지문에서 ‘A글과 B글의 공통점과 차이점을 찾으시오’로 일방통행하는 문항도 익숙해졌다. 물리나 지구과학, 건축학 그리고 경제도표와 미술사까지 틈입자로 등장하니 노력보다 두뇌 회전의 싸움이다. 지문 해독의 속도가 둔해지면서 해설판에 밑줄 긋고도 행간 찾기에 땀을 흘린다. 나이 탓이다.
난감한 표정을 보이면 인문계 훈장 벗들이 우르르 훈수를 둔다. ‘선수보다 실력이 좋아서 감독을 하는 게 아니거든’ ‘그러니까 문항 하나하나를 일단 ○× 퀴즈처럼 유도하세요. 아이들 스스로 풀게 해야 합니다’ ‘문제를 먼저 훑어본 다음 본문을 읽게 하는 게 문제 풀이에 더 유리해요’라는 식의 조언도 있다. 그렇게 충고를 되새기며 ‘개 발에 땀내는’ 재미도 솔직히 짭짤하다. 그러나 현대문학의 지문 몇 개는 아직도 나를 ‘울울 젊은 피’로 둔갑시킨다.
김소운의 수필 ‘가난한 날의 행복’이 아직도 남아 있었다. 홍차와 고구마로 아침을 때우는 시인부부의 아침이 배경이다. (전업 시인 부부라는 직업이 과연 있긴 할까?) 나중에 쌀이 떨어졌음을 알고 뾰로통한 남편을 향해 아내가 사근사근하게 달랬다나, 어쨌다나. ‘저희 작은 아버님이 장관이셔요. 어디 가면 쌀 한 짝이야 못 구하겠어요. 이런 사연도 있어야 나중에 늙은 다음 얘기 거리가 되지요.’ 라는, ‘안개나라 러브 스토리(?)가 30년 내내 존재했을 줄은 미처 몰랐었다. ‘가난은 한갓 남루일 뿐이다’나 ‘장애는 하느님의 축복이다’처럼 한갓진 소리다. 해고자의 칼바람 영상이나 철탑 위 한진중공업 노동자의 공복의 그림자가 싸늘하게 겹친다.
희곡 ‘맹진사댁 경사’도 사슬처럼 발목 잡는다. 고교 시절 흑백 TV의 추석특선프로에서 만난 그 영상이 40년 내내 똑같은 쳇바퀴로 등장한다. ‘착한 여자는 결코 장애 남자와 결혼하지 않는다’는 잔인한 주제를 어떤 방법으로 설명해야 할까. 그 갈등이 거미줄로 얼굴을 덮는다. 절름발이 흉내로 낄낄대는 관객들의 입술을 보며 절망에 빠졌던 사춘기의 울분이 재생되는 것이다. 민중적 ‘해학의 힘’을 놓치고 ‘헤픈 익살’로 관객을 우롱하다니, 그게 독이다. 종시 분하고 억울하다.
‘난쟁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에서 장애 비하의 점입가경 혼란에 빠진다. ‘덩치맨에게 시달리던 곱추와 앉은뱅이가 그를 살해함으로써 응징하는 대목이다. 서술형 문제는 ‘이 글에 나타난 갈등해결 방식의 한계를 찾으시오’였는데, 정답은 ‘합리적인 해결방식을 찾지 않고 비윤리적이고 극단적으로 갈등 상황을 해결하려고 했다’였다. 어지럽다. 도대체 소설 속의 난쟁이 들은 어떤 합리적 해결 방식을 찾을 수 있었을까. 천길 벼랑 끝 바로 앞에 서서 ’자, 한 발자국씩 양보하는 합리성을 찾으세요‘라고 가르쳐야 할까. 이도 장차 풀어야 할 매듭들이다.
나의 성정 탓도 있었을 것이다. 기실 인기 드라마 ‘대장금’을 보면서도 그네들은 주제와 다른 방향에서 가슴앓이를 했다. 일하는 사람 따로 있고 먹는 놈 따로 있는 궁궐이란 배경이 분통이 터지는 것이다. 지체 높은 카스트들의 입맛이나 맞추는 것에 전설적 대장금들의 인생을 걸어야 한단다. 기껏해야 편협된 왕족 하나가 숟가락에 입술을 대면서 이맛살 찌푸리면 대장금들의 얼굴이 사색이 되고, 그 화상이 기분 좋게 입맛을 다시면 특급요리사들의 얼굴이 환하게 펴지는 그 대목이다. 그 정교함, 집중력, 신들린 감각 신산의 산물이 권력자의 이맛살 움직임에 좌지우지 되다니, 그게 계급의 뻔뻔스런 횡포다. 안 된다. 내 아이들에게 뒷걸음치던 암소처럼 신데렐라 행운을 기대하라고 가르칠 수는 없다.
내 나이 쉰여덟, 새로 복직하는 대산고등학교에서는 전 직원을 통틀어서 내 호적이 가장 빠르다. 어느 새 몸이 도미노로 잦아지는 중이다. 몸무게가 9킬로 빠졌으며 키가 2센티 줄었고 임풀런트 인조이빨을 아홉 개 심었다. 오징어를 씹을 수가 없고 노래방 책제목도 돋보기 도수를 높여야 간신히 찾아낸다. 더러는 빗방울이 바위처럼 무겁고 오후의 햇살이 거미줄처럼 끈적끈적 달라붙기도 한다.
관료가 된 벗과 평교사 친구는 눈빛부터 달라서 수제비처럼 따로 따로 낙하한다. 인생의 나이 ‘오후 세 시에서 다섯 시’쯤 된 초로의 동창회에 나가도 관료와 전교조는 눈빛부터 다르다. 관료에 입성한 동기들은 쉴 새 없이 건강관리 체크 중이고 혁명을 꿈꾸던 벗들은 여전히 술자리에서 토론 중이다. 종이 울려도 출석부 들고 교실에 들어가지 않아서 좋다는 관료들의 자랑도 귀엽게 봐주려고 노력 중이다. 그리고 초로의 레이스에 합류중인 나는 때로 관념적 진정성까지 껴안고 싶어지기도 한다.
교실의 벗들도 여전히 천태만상 사이클로 오르내리락거린다. 오토바이가 세상에서 가장 멋진 쇠붙이인 줄 아는 사춘기도 있고, 컴퓨터 그래픽 총칼로 심장과 목을 치는 질풍노도도 있고 더러는 그늘에서 부은 발목 주무르는 범생이 화상들도 있다. 그만큼 스승들은 바쁘고 힘이 부친다. 공문에 치이고 네이스나 에드파워에 치이고 교원평가와 학교 평가에 머리가 무겁다. 그저 ‘내가 힘들어야 남이 행복하다’는 문장만 주술처럼 외우고 있다.
호박덩굴의 일생은 양떡잎 피워올리던 새순 시절부터 시작된다. 처음 세상이 아름다워서 일단 햇살의 따스함을 아스라하게 받을 수도 있다. 남들처럼 철망 타고 우쑥불쑥 성장하는 예전의 사춘기도 거쳤었다. 마침내 한여름에는 꽃과 열매를 터뜨리는 청장년의 모습으로 절정을 드러내다가 순식간에 찬서리 맞기 시작한다. 이제 인생의 저울추가 휘청 기울면서 봄날의 떡잎이 어느 새 늙은 꼰대 살갗처럼 누렇게 퇴색한다. 그러면서 시든 몸으로 저 끄트머리 새순만큼은 새파랗게 피워내겠노라 혼신으로 자양분을 빨아내는 중이다. 마지막까지 그 비늘을 털어내야 하므로 명퇴는 절대 없다. 할 말 있나?
처음처럼 꿈꾸던 그 세상, 그대, 아직도 유효한가. 아프게 담았던 사연들 나뭇잎처럼 훌훌 털어낼 각오는 되어있는가. 아우성으로 뿌리내리는 질경이꽃 다독거리며 산맥과 오물 번갈아 추스를 빈 가슴들 분명히 남아있는가. 지금은 그 장밋빛 행보 접었던 스크린을 떠올리며 운동화끈 죄는 중이다. 새순 솟는 토방에서 마른 살비듬 부스스 털어낸다. 새로 가는 그 학교에서-는 고3수험생 비문학 강의를 맡을 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