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전쟁 포항지역 미군폭격 사건 내용
한국전쟁(1950. 6. 25) 당시 포항지역 미 항공기 폭격 및 함포사격에 의해 억울하게 희생된 민간인 희생사건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북송리. 흥안리 폭격>
한국전쟁 시기인 1950. 8. 16일 오후 1시경 북송리 마을과 북천방에 가해진 미군의 폭격으로 신원이 확인된 주민과 피난민 53명이 희생되었고. 같은날 오후 3시경 흥안리 마을과 곡강천변에 머물던 피난민들에게 가해진 폭격으로 주민과 피난민 18명이 희생되었음이 확인되었다.
이 폭격은 미 5공군의 요청에 따라 국군3사단의 철수를 엄호하기 위해 이루어졌다. 폭격의 주체는 제7함대 사령관 스트러블(Athur D. Struble)이 지휘하는 제77항모 기동부대(CTF-77)의 항공모함 필리핀 씨(pilippine Sea CV47)호 소속의 제11항모 비행전대(CVG-11) 항공기들이다.
오후 1시경부터 항공기들은 네이팜탄 등 폭탄 10여기를 북송리 마을에 투하하고 약 30분간 기총소사하였다. 이후 인접 북천방으로 피난했던 인근주민들이 오후에 다시 폭격당했고. 오후 3시경부터 항공기들은 네이팜탄 등 폭탄 10여기를 흥안리 마을에 투하하고 마을과 인근 곡강천변의 피난민들에게 약 20분간 기총소사하였다.
<용한리 해변 폭격>
1950. 8. 27일자 미 공군 제18전폭전단 소속 39폭격대대의 임무보고서 에는 이 날 9시에 미군 폭격기 F-51 2대가 출격하여 포항 지역에 근접지원공격 임 무를 수행하였고. 오전 10시에 미군 지상통제관 발리 볼(Volly Ball) 14의 지시 하에 용한동 해변에서 흰 깃발을 흔들고 있는 흰옷을 입은 사람들(people clod in white and waving white flags on beach at yonghan-dong)에게 1.500피트 (457.2미터) 고도에서 기총공격을 했다고 기록되어 있다. 또한 이 문서에는 당시 날씨는 맑았으며 폭격기는 공격을 마친 후 11시경 목포 지역을 떠났는데. 용한동 해변에는 흰 옷을 입은 사람이 수백 명 있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그중 신원이 확인된 주민은 8명이 희생된 것으로 확인되었다.
<칠포리 폭격>
1950. 8. 29일 낮 12시경과 오후 5시경 흥해읍 칠포리 마을과 해변에 가해진 폭격으로 신원이 확인된 주민은 8명이 희생된 것으로 확인되었다. 미 해병 함재기 VMF 214폭격대대의 항공공격보고서에 따르면 8. 29일 당일 F4U-4B 5대가 출격하여 포항 지역의 근접지원공격 임무를 수행하였다. 폭격기들은 이 날 11시 45분부터 13시 25분 사이에 5군데 공격을 나갔는데. 그 중 “칠도동(Childo-Dong. 좌표 1236-1473 지점)에서는 1,200피트(356,76미터) 고도에서 공격을 시작하여 로 켓탄8게를 투하하고. 20밀리미터 기관총을 쏘았으며. 그 결과 화재가 발생했다. 라고 기록되어 있다. 좌표 1236-1473 지점은 흥해읍 칠포리에 해당되며 항공모함 시실리의 전투일지(wardiary)와
대조한 바. 항공공격보고서에 기록된 “칠도동(Childo-Dong)”은 “ 칠포동(Chilpo-Dong)”의 오기이다.
<마북리 폭격>
1950. 9. 5일 오후 5시경 정찰기 1대가 마북리 마을 뒷산(90미터)에 닿을 정도로 저공비행을하며 날아와 마을 동쪽에서 서쪽으로 쭉 올라가며 정찰을 한 뒤 기일리 방향으로 날아갔다. 정찰기가 지나가고 약 5~10분 후에 검고 작은 폭격기 2대가 굉음을 울리며 낮게 날아왔다. 폭격기는 오자마자 차례로 1개씩의 폭탄을 하천 위에 떨어뜨리고. 다시 치솟아 올라 왼쪽으로 돌아서 다시 내려오면서 기총소사를 했다. 폭격기는 20분가량 이런 형태의 폭격을 2~3차례 반복하면서 폭탄5개를 투하하였고 이에 마을 여러 곳이 불과 연기로 휩싸이고 가옥 4채에 불이 붙어 화제가 났다. 그리고 마북리 마을의 공동우물에서 여성 10여 명이 밥을 지어 절골로 가져가기 위해 쌀을 씻고 있었는데. 폭격기는 이들을 향해 기총사격을 했다.
그중 신원이 확인된 주민은 3명이 희생된 것으로 확인되었다.
<환여동 함포사격>
1950. 9. 1일 오후 2시경 환여동 송골해변에 가해진 미군의 함포사격으로 민간인이 집단희생된 사건이다. 사격 함정은 포항 앞바다에서 해안봉쇄 및 지상군에 함포사격 지원을 수행하던 미 태평양함대 소속 구축함 헤이븐 호(DD727 De Haven)이다.
당일 헤이븐 호는 “해안 함포사격통재반(SFCP)”으로부터 함포사격 명령을 받자 목표물이 피난민이라는 사실을 알리고 재확인울 요청했다. 통재반은 “피난민 속에 인민군이 섞여있다는 육군으로 부터의 정보를 받았고 육군이 그 사람 들에게 포격을 요청했다”며 포격을 명했다. 헤이븐 호는 좁은 해변에 밀집해 있던 노인과 여자. 어린이가 대부분인 1,000여명의 피난민에게 10여분간 5”/38 함포 15발을 포격하였다.
그중 신원이 확인된 주민은 51명이 희생된 것으로 확인되었다.
<기타지역 희생사건>
1950. 8. 23일부터 1950. 9. 23일 사이에 포항시 흥해읍 남송리. 청하면 이가리. 월포리. 유계리. 송라면 광천리. 방석리.
연일읍 유강리. 신광면 만석리. 송도동 해변 등에서 이 일대의 주민과 이 지역으로 온 피난민들이 미군의 폭격으로 48명이 사망한 사실을 확인하였다.
이상 내용은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 기본법(법률 제7542호)』 제26조에 의거조사가 종료되어 진살규명이 의결된 사건내용을 발체한 것이다.
【자료출처】
-포항 흥안리 미군폭격사건 진실규명 결정서(2008. 12. 02. 다-6230호)
-포항 환여동 미군함포사건 진실규명 결정서(2008. 6. 22. 다-6230. 1호)
-포항 북송리 미군폭격사건 진실규명 결정서(2010. 12. 28. 다-6230. 2호)
-포항 칠포리 미군폭격사건 진실규명 결정서(2010. 6. 30. 다-6230. 3호)
-포항 용한리 미군폭격사건 진실규명 결정서(2010. 6. 30. 다-6230 4호)
-포항 마북리 미군폭격사건 진실규명 결정서(2010. 12. 23. 다-6230 7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