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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의 정원은 연못, 분수, 수로 등의 물을 이용해 구성되는 특정한 형태의 정원을 말한다. 디자인적으로는 1) 자연스러운 형태의 호수나 연못 정원, 2) 기하학적 문양이나 패턴을 반복시키는 포멀 정원 (Formal water garden), 3) 분수나 폭포 등의 특별 시설물을 사용한 정원 등으로 분류할 수 있다. 동양에서는 거의 대부분 물의 흐름을 역류시키지 않고 자연스럽게 모으거나 흐르도록 하는 디자인이 큰 주류를 이뤘다면, 서양의 경우는 분수와 수로와 같이 물을 끌어올리고 뿜어내게 만드는 물의 정원 디자인이 크게 발달했다.
보길도 세연정의 연못. 정원 주변을 흐르는 개물물을 살짝 돌려 집안으로 들어왔다가 나갈 수 있도록 구성했다. 우리나라의 전통 정원에서 물의 정원은 인공적인 변화를 최소화하면서 자연 그대로의 풍취를 잘 살릴 수 있도록 디자인했다.
‘정원의 주인공이 누구일까?’라는 질문을 해본다면 지금으로서는 ‘식물’이라는 답에 그다지 이견이 많지 않을 듯하다. 그러나 놀랍게도 ‘식물’이 정원이 주인공으로 자리매김하게 된 역사는 그리 길지 않다. 식물이 정원의 주인공으로 등장하게 된 것은 상업적인 식물 시장이 본격적으로 형성되기 시작한 19세기 말 부터였다. 그렇다면 그 전까지 정원의 주인공은 무엇이었을까? 정원의 핵심은 바로 ‘물’이었다.
물의 정원은 동양에서는 중국, 서양에서는 페르시아와 이집트 정원에서 그 역사를 찾는다. 중국(일본과 우리나라 포함)이 풍부한 물을 이용해 호수와 계류(溪流: 산골짜기를 흐르는 시냇물)와 같이 자연스럽게 물이 담기고 흘러가도록 정원을 디자인했다면, 페르시아와 이집트는 물을 먼 곳으로부터 끌어와야 했기 때문에 수로가 발달하고 더불어 물을 뿜어내는 분수와 같은 특별한 형태의 시설물이 발달하였다. 그런데 물을 끌어올리기 위해서는 곡선보다는 직선이 기능적으로 큰 장점을 지니기 때문에 서양 정원 문화 속의 물의 정원은 직선과 기하학적 문양이 매우 선호되었다. 또 물을 얼마만큼 힘차게 물을 끌어올리고 흘려보낼 수 있는지의 기술적 측면이 매우 강조되어서 물의 정원은 과학, 특히 엔지니어링의 발달과 매우 밀접한 관계를 맺었다. 특히 물의 정원 디자인은 철저한 물의 양 조절과 수압을 이용하는 고도의 계산이 필요했기 때문에 정원 디자이너보다는 엔지니어가 직접 디자인을 하는 경우도 많았다.
이탈리아 티볼리의 빌라 데스테(Villa d’Este) 정원의 분수. 철저한 수압 계산으로 백개가 넘는 분수가 물길을 뿜어낸다. 16세기 이탈리아의 르네상스 정원은 화려하게 장식된 물의 정원을 보여준다. 정원은 분수는 물론 대형 폭포, 수로, 연못 등 엔지니어의 철저한 계산과 가든 디자이너의 예술적 감각으로 디자인되었다.
Tip point 1 다양한 물의 정원
폭포 형태와 분수가 합성된 물의 정원
물을 담아두는 형태의 자연스러운 물의 정원
계단식 폭포와 물을 내뿜는 폭포의 집은 유럽식 물의 정원을 대표하는 한 형태로 정착되어 있다.
Tip point 2 바빌론의 공중정원은 어떻게 만들었을까
한때 세계 7대 불가사의 가운데 하나였던 ‘바빌론의 공중정원 (Hanging garden of Babylon)’은 지금으로서는 문헌상으로만 남아 있을 뿐 그 흔적을 찾을 길 없지만, 기원전 500년대에 만들어진 거대한 인공 정원으로 추측하고 있다. 바빌론은 지리학상으로 지금의 이라크 바그다드 인근에 위치했으며 메소포타미아 문명이 이어져 온 지역이다. 당시 바빌론의 왕이었던 네부카드네자르(Nebuchadnezzar, 602~562 BC)가 멀리 이웃 나라에서 데려온 왕비가 고향을 그리워하며 향수병을 앓자 그녀가 살았던 환경을 만들어 주기 위해 인공의 산을 조성해 그 곳에 정원을 만들었다고 전해진다. 그런데 이 정원의 높이가 현대 건축물로 따지면 10층 정도에 이르렀기에, 과연 어떻게 물을 끌어와 식물에게 공급했을까가 의문이었고 바로 이런 이유에서 세계 7대 불가사의로 선정된 것이었다.
하루 3만 7천 리터의 물을 사용했을 것으로 추정되는 고대 바빌론 왕국의 공중정원을 상상해서 그린 그림. 16세기의 네델란드 화가인 마르텐 반 헤엠스케르크(Maarten van Heemskerck)가 상상력을 동원해 만든 바빌론의 공중정원 모습이다.
학자들은 공중정원이 사라지게 된 원인을 기원전 2세기에 있었던 몇 차례의 지진으로 보고 있는데, 정원은 사라졌지만 그리스와 로마의 시인들에 의해 공중정원의 이야기가 문헌으로 전해지면서 지금까지도 실재했던 것으로 여겨지고 있다. 다만 오늘날까지도 그 정확한 장소와 흔적을 찾지 못하고 있다. 당시 공중정원의 위용이 얼마나 대단했는지는 거기에 사용된 물의 양을 계산한 것만으로도 확인할 수 있다. 지금으로서는 그 형태를 정확하게 재현할 수는 없지만, 문헌의 기록을 종합했을 때 공중정원은 거대한 물의 정원으로 하루에 3만 7천 리터의 물을 사용했던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물의 자연스러운 흐름을 중시했던 동양권에서의 물의 정원과 달리 서양에서 발달한 물의 정원은 그 장식이 매우 화려하고, 시대별 건축과 문화 변화에 따라 그 디자인 또한 매우 달라졌다. 대표적으로는 화려한 조각으로 장식된 분수와 함께 계단형 폭포(Cascade), 기다란 물길(Canal), 작은 통 안에 담겨져 있는 물(Basin), 물고기 모양의 물 뿜어내는 장치(Spout) 등의 발달을 들 수 있다. 이런 장식물은 물의 정원을 좀 더 값비싸고 화려하게 만드는 요인으로, 물의 정원은 주로 상류층을 중심으로 화려하게 꽃을 피웠다.
이탈리아의 빌라 파르네세(Villa Farnese) 정원의 인공 폭포. 16세기 이탈리아의 르네상스 시대에는 화려한 물의 정원이 특히 발달했다. 물의 정원은 낙차와 수압을 이용한 고도의 계산을 요하기 때문에 엔지니어와 예술가의 공동 작업을 통해 디자인되곤 했다. 폭포를 구성하고 있는 것은 전설의 물고기들로 물소리를 좀 더 강렬하게 내기 위해 계단식으로 격차를 두었다.
대구 달성 삼가헌의 연당(蓮堂). 연당은 연꽃을 구경하기 위해 연못가에 지어 놓은 정자로, 연못에 가득 연을 심어 여름부터 가을까지 꽃과 잎 그리고 뿌리와 씨앗을 함께 즐겼다. 이처럼 우리나라의 전통 정원은 일반적으로 연못을 조성한 뒤 그곳에 알맞은 수생식물을 심어 식물과 물이 좀 더 잘 어우러지도록 디자인했다.
서양에서는 물의 정원이라고 해도 인공적인 구성이 매우 강했기 때문에 물 안에서 식물을 키우는 이른바 아쿠아 플랜팅(Aqua planting)이 크게 인기를 끌지는 못했다. 하지만 우리의 경우는 자연스러운 형태의 연못과 호수를 조성했기 때문에 연이나 창포 등과 같이 물 속에서 자라는 식물을 더불어 키우며, 식물이 어떻게 물이라는 공간과 어울리는지에 관심이 많았다. 수생식물은 취향에 따라서 물의 정원에 키울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지만, 정원의 관리 측면에서 수생식물은 물의 정원에 큰 도움을 준다.
<물의 정원에 수생식물을 키웠을 때의 장점>
1) 물의 자체 정화력이 강화돼 연못을 관리하기가 좀 더 쉬워진다.
2) 야생동물의 먹이 사슬이 형성되기 때문에 자연 친화적인 정원을 조성할 수 있다
3) 디자인적으로 훌륭한 식물 디자인을 구성할 수 있다.
그렇다면 물 속에서 키울 수 있는 식물에는 어떤 것들이 있을까? 우선 물 속에서 자라는 식물이라고 해도 그 습성이 매우 다르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수생식물은 크게 세 종류로 분류가 가능하다.
1) 물에 잠겨 사는 식물군(Submerged plants)
뿌리를 완전히 물 속에 두고 잎만 지면 위로 내보내는 식물. 연, 물칸나가 대표적이다.
2) 물에 떠서 자라는 식물군(Floating Plants)
뿌리를 흙에 두지 않고 물에 뜬 채로 자라는 식물군. 대표적으로 부레옥잠, 물상추, 개구리 밥 등이 있다.
3) 물가 주변에 뿌리를 살짝 담그고 사는 식물군(Marginal Plants)
식물 전체가 물에 잠기지 않고 뿌리 부분만 10센티미터에서 20센티미터 정도 물에 잠겨서 사는 식물. 주로
물가 주변에서 자라기 때문에 영어권에서는 marginal plants라고 부른다. 갈대, 창포 등이 있다.
그 외에도 늪과 같은 진흙 땅에서 자라는 식물도 수생 식물의 일종으로 분류된다. 수생식물을 디자인할 때는 바로 이런 식물을 제대로 이해해 전체적인 연못의 느낌을 잘 살려주는 것이 중요하다.
Tip point 3 산소를 만들어내는 수생식물
연못을 관리하는 데 있어 가장 어려운 점은 역시 물의 오염이다. 한곳에 가두어진 물은 쉽게 썩을 수 있는데 이때 물 밑의 흙에 뿌리를 두고 자라는 수생식물군은 물 속의 둔탁한 영양분을 흡수하고 물을 정화시키는 능력이 뛰어나다. 더불어 물 속에서 광합성 작용을 위해 호흡을 하기 때문에 연못에 산소를 공급해 물이 깨끗하게 유지될 수 있도록 도와준다.
그런데 여기서 한 가지 주의할 점이 있다. 물 속의 식물도 햇빛을 필요로 하기 때문에 식물이 물의 표면을 지나치게 많이 덮어버리면 물 밑에 뿌리를 두고 있는 식물이 죽어 썩게 되면서 급속도로 물이 오염될 수 있다는 사실이다. 바로 이런 이유 때문에 일반적으로 연못의 표면이 식물의 잎으로 50~60% 이상 덮이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자연 속 계곡에 잘 심어진 수국의 꽃이 아름답다. 수국은 뿌리를 물 속에 두지는 않지만, 물이 많은 땅을 좋아하기 때문에 물가에 심었을 때 화려한 꽃을 피운다. 이처럼 수생식물 디자인의 가장 중요한 점은 물을 좋아하는 식물을 잘 파악하고 적재적소에 심어주는 것이다. 아무리 아름다운 꽃을 피우는 식물을 심고 싶다고 해도, 그 식물이 물을 좋아하지 않는다면 생존할 수 없다.
다른 식물 디자인의 경우도 마찬가지지만, 식물을 디자인하는 데 있어서 중요한 교과서는 자연에 있다. 자연 스스로가 조성한 연못을 잘 살펴보면 다양한 식물군이 그 특성에 맞게 자리를 잡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즉, 연못의 가장 가장자리는 뿌리만을 물 속에 담그고 사는 갈대류의 식물군이 자라고 있고, 물 위에는 물에 뜨는 물상추, 개구리밥 등이 수면을 덮어준다. 그리고 물 속에 뿌리를 두고 있는 연과 같은 수생식물은 가운데 가장 깊은 물에서 자란다. 자연의 생태를 잘 고려한 이런 식물 디자인의 가장 큰 장점은 연못 스스로가 자생력을 갖게 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더불어 물은 야생동물을 불러들이는 원천이 되기도 하는데, 특히 연못을 서식지로 하는 개구리, 두꺼비, 수생곤충들이 살 수 있는 장소를 제공한다. 그리고 이런 동물의 천적인 야생의 새들이 찾아오기 때문에 물의 정원은 최근 큰 유행이 되고 있는 자연 친화적 정원(Wild Life Garden)의 근본이 된다.
물 속에서 자라는 식물도 그 관리법은 땅에서 자라는 식물과 거의 같다. 중요한 점은 땅에서 자라는 식물처럼, 수생식물들도 다년생의 경우 대부분 가을이 오면 광합성 작용을 멈추고 월동을 위한 채비를 한다는 것이다. 가을이 되면 연과 같은 식물은 잎사귀를 물 속에 떨어뜨린 채 뿌리만 살아남게 되는데, 이때 연못에 떨어지는 낙엽이 섞으면서 연못 물을 오염시키는 중요한 원인이 된다. 때문에 다년생 수생식물의 관리를 위해서는 겨울이 오기 전 뿌리를 캐낸 뒤, 가볍게 죽은 나뭇잎이나 줄기를 잘라 깨끗이 정리하고 망화분에 담아 보관을 해두었다 다시 봄이 되었을 때 연못으로 내보내는 것이 좋다. 화분에 일일이 연을 담아 두는 것이 곤란하다면 적어도 뿌리를 한번은 캐내어서 손질을 한 뒤 다시 연못에 넣어두는 작업이라도 해두는 것이 좋다. 식물을 캐내지 않고 그래도 둔 채로 수년 간 식물을 키우게 되면 땅이 딱딱하게 굳어지는 것은 물론이고 물이 오염돼 원치 않는 수생잡초가 여름에 엄청나게 늘어나는 원인이 될 수 있음을 명심하자.
늦가을부터 겨울은 연못을 관리하기에 좋은 시기다. 자라고 있는 식물을 떠서 분갈이를 해주거나 썩거나 병든 수생식물은 제거해주는 것이 좋다. 더불어 여름 내내 번진 물이끼(Blanket weed)를 건져주는 등의 작업을 통해 물을 깨끗하게 만들어주는 것도 매우 중요하다.
Tip point 4 물의 정원과 물고기
동서양을 불문하고 고대 문명 속의 정원 문화를 살펴보면 ‘물고기가 있는 연못(Fish Pond)’이라는 물의 공간이 등장한다. 이것은 말 그대로 물고기를 길렀던 연못으로, 특히 중국에서는 비단 잉어와 같은 관상용 물고기를 수생식물과 함께 길러 좀 더 역동적인 느낌을 강조했다. 반면 고대 이집트에서는 연못에 식용이 가능한 물고기를 넣어 기르다 필요시 바로 요리에 사용하는 보다 실용적인 방식을 택했다.
연못에 물고기를 기를 때 얻을 수 있는 가장 큰 장점은 연못 물 속 환경이 지나치게 영양분으로 가득 차는 것을 막아주어 좀 더 깨끗한 연못 관리가 가능해진다는 것이다. 더불어 우리나라와 같이 여름철이 고온다습한 기후에서는 연못 속에 알을 낳는 모기의 번식을 걱정하지 않을 수 없는데, 모기의 유충을 먹이로 삼는 물고기를 기른다면 모기의 번식을 상당 부분 막을 수 있다는 장점이 생긴다.
물의 정원이 아름답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물의 관리가 중요하다. 또한 물의 정원을 디자인하기 전에 단순히 물을 담아두거나 흘러내리도록 할 것인가 혹은 수생식물을 함께 디자인할 것인가를 생각하고 결정해야 한다. 그리고 이 결정에 따라서 연못의 깊이와 모양도 달라진다. 예를 들어 수생식물을 심게 된다면 깊이가 최소한 50센티미터 이상이어야 하고, 가장자리에는 물에 뿌리 정도만 살짝 담고 사는 Marginal plants (20~30센티미터 깊이 필요)를 심어주는 것이 필요하다.
다음 주는 ‘정원의 발견- 가든 디자이너 오경아와 함께 하는 정원 이야기’ 열아홉 번째 순서로 ‘컨테이너 화단 가꾸기’ 편에 대해 다룰 예정입니다. 우리가 주변에서 많이 볼 수 있는 화분에 식물을 담아 키우는 것으로, 그 화분들로 정원을 꾸미는 방식입니다. 작은 화단부터 큰 화단까지 규모를 조절해 만드는 컨테이너 화단 디자인 방법에 대해 알아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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