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1학년인 용진이는 요즘도 나를 보면 "아빠"라고 부른다.
학습 효과라고나 할까!!!
몇 년 전 추석 때로 기억이 난다.
윤진이,수진이,유현이 등이 나를 "큰아빠"라고 하니까
"형들은 이상해, "아빠'를 '큰아빠'라고 그래"라며
혼자서 중얼거리는 용진이를 본 적이 있었다.
그 때야 워낙 어려서 '아버지'와 '아빠'의 차이를 알지 못해서 그랬겠지만,
워낙 어릴 때부터 그렇게 부르도록 시킨 관계로
지금은 내가 '아빠'가 아니란 걸 알면서도 쉽게 바꾸지를 못하고 있다.
그 만큼 어릴 때부터 스스로 그렇다고 단정지은 사실을
나이가 들었다고 해서 쉽게 바꾸지 못하는 것이 사람인 것같다.
오죽하면 지 엄마보고 나를 칭하며
"내가 아빠라고 부루는 큰아빠 있잖아"라고 할까!!!
2년 전 쯤인가 나를 여전히 "아빠"라고 부르는 용진이를 보며 사월이 내게
"형, 이제 용진이에게 '아빠'라는 소리를 들을 날도 1년밖에 안남은 거 같네.
설마 초등학교 입학한 후에도 '아빠'라고 그러겠어"
나는 그런 사월에게 '글쎄'라는 유보적인 답을 하였었다.
그 만큼 어릴 때부터 써온 언어 습관은 고치기가 힘들기 때문이다.
어릴 때 세련사모와 훠니는
형들의 누나에 대한 호칭을 따라
'언니'가 아닌 '누나'라고 했고,
나와 동생들은 다행히 '누나'의 호칭을 왜곡해서 부르진 않았지만
'누나'들의 호칭을 따라
'형'을 ''오빠'로 바꾸어 불렀다.
초등학교에 입학했을 때 이것은 바른 호칭이 아니다는 것은 알았다.
그렇다고 해서 사람에 대한 호칭을 바꾼다는 것은
생각처럼 쉬운 문제가 아니었다.
그릇된 사실을 알면서 틀린 호칭을 그대로 고집한다는 것 또한 쉬운 것이 아니어서
'형'에 대한 호칭은 집에서는 여전히 '오빠'였었고,
밖에서는 호칭 대신 옆구리를 쿡 찌르는 식으로
잘못된 호칭에 대한 시정을 끝끝내 거부했었다.
물론 나도 모르게 무의식적으로 '형'을 '오빠'로 부르는 일도 허다했다.
그것은 어차피 습관이었으니까...
내가 초등학교 1학년일 때 작은형은 초등학교 6학년이었다.
외부에서 발생한 호칭에 대한 문제는
결국 나와 작은형 사이에 국한된 문제였다.
작은형을 '오빠'라고 불렀던 동생들은
작은형과 같이 학교를 다닌 적이 없었으므로
애시당초 밖에서 '형'을 '오빠'라고 부를 일이 거의 없었다.
초등학교 1학년 중반 무렵이었다.
하루는 작은형이 나를 '머릿방'으로 불렀다.
그러더니 은밀한 목소리로 내게 제안을 했다.
"원아, 나보고 '형'이라고 한 번 해 봐,
그럼 내가 1원 줄께"
그러면서 1원 짜리 지폐 한 장을 내 앞에 내밀었다.
하지만 나는 끝끝내 대답하지 않았다.
거부하기 힘든 돈의 유혹에서 벗어날 수 있었던 것은
내성적인 성격으로 인한 부끄러움 탓이었을 것이다.
지금은 충분히 이해가 된다.
다른 친구들 앞에서 불쑥불쑥 내뱉는
남동생의 '오빠'라는 호칭이 얼마나 남사스러웠을까?
그리고 형이라는 호칭을 얼마나 듣고 싶었을까?
하지만 작은형은 모른다.
꿋꿋하게 '오빠'라고 믿고 있던 '형'이
어느 날 갑자기 '형'이라고 부르라고 할 때
그 말을 한다는 것이 얼마나 부끄러웠는지를...
지금은 자연스럽게 '작은형'이라는 호칭을 쓰면서
그 때 '오빠'라고 불렀던 사실이 오히려 이해할 수 없는 과거가 됐지만,
지금도 내 친구 진억이는
지 형을 '오빠'라고 부르고 있다.
그 만큼 사람의 습관은 바꾸기가 힘들다.
첫댓글 그 또한 그리운 호칭들이다.엄마...아버지...만큼이나...
사월동 보성아파트 살 때 옆집에 용진이와 나이가 같은 주현이라는 애가 있었지. 갸는 용진이가 별로 탐탁찮게 여겨 친구라기는 뭣했고.. 어쨌던 갸가 하도 자주 우리 집에 놀러오니까 딸이 없는 내가 장난삼아 나를 "아버지"라 부르게 하고 몇번만 길들였더니 그대로 했다. 옆집 갸 "아빠"가 알고는 소동이 벌어져 관뒀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