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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작가론]
작가 박경리의 문학과 사상, 창작방법론 연구
3-1. 박경리 초기소설 연구 (문학적 연대기를 중심으로) 발표자: '95 정은진
1. 서언
작가들은, 누구나가 다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는 담론질서를 권위주의적인 것으로 거부하고 내적 설득의 담론을 찾아 나서도 록 부추긴 계기를, 하나 둘쯤 갖고 있기 마련이다. 그런데 이 계기들이란 하나같이 불행, 저주, 억압, 고독 등으로 명명하기에 적합하다. 정상적인 것이라는 외피를 등에 업고 다가오는 거세공포의 위협, 개체보전마저 위태롭게 만드는 역사적 격변이나 정쟁 과 가난, 모든 가치를 교환가치로 균질화해 내는 도구적 합리성의 팽창 등의 요소가 작가들의 삶에는 짙은 그림자로 드리워져 있 다. 이로 인해 작가들은 일상적인 삶의 형식 대신에 운명처럼 작가의 길로 접어들곤 한다. 작가적 삶을 뒤쫓아 보는 일이 유쾌하 지 않은 것은 이 때문이다.
하지만 한편으로 즐거움이 없는 것은 아니다.
작가 생애의 추적은 때로는 인간승리를 엿보는 즐거움이 수반되곤 한다. 저주처 럼 받아 쥔 그 고통의 삶을 예술가의 삶으로 승화시켜내는 대목이다. 만인이 만인과 경쟁하는 이 사회에서 공동체적 삶을 이루어 보려는 그 열정이 하나의 작품으로 영글어지는 장면은, 불길한 욕망에 자신을 내맡기며 자기향유적인 삶에 탐닉하는 세태에 비추 어보자면 단연 아름다운 풍경에 속한다.
박경리의 문학적 삶에서도 역시 이러한 고통과 즐거움이 같이 있다.
박경리의 경우 이 희비의 편차가 어느 작가보다도 크다. 박경리는 종종 '나는 슬프고 괴로웠기 때문에 문학을 했으며 훌륭한 작가가 되느니보다 차라리 인간으로서 행복하고 싶다'는 말 을 하곤 했다. 그만큼 작가가 겪어야 했던 고통의 양과 질은 무한하고 집요했다. 불행한 출생, 남편과 아들을 잃은 슬픔, 그리고 암선고 등의 여러 불행이 그의 삶 주변을 집요하게 서성거렸던 것이다. 그러나 이 고통을 딛고 작가가 뿜어낸 소설적 향기는 짙 은 것이었다. 박경리는 <불신시대> <사랑과 전장> <토지>등이 없는 한국소설사는 생각할 수 없을 정도의 작가 로 우뚝선 것이다.
박경리 문학은 한국문학사의 거대한 사령탑이다. 작가는 자신의 삶을 헐어서 소멸이라는 집을 짓는다고 하는데, 박경리가 이룩 해낸 견고한 문학의 탑은 자신의 불우했던 삶에서 힘입은 것이라고도 볼 수 있겠다. 이에 본고는 박경리 문학의 출발이자 그 사 령탑의 견고한 단초가 되는 초기소설을 문학적 연대기의 중심으로 살펴보고자 한다.
2. 삶의 무게, 혹은 문학의 무게
2-1. 불합리한 출생과 회의주의
작가 박경리는 1927년 10월 28일 경남 진주 출생이다. 그의 출생은 불행했다. 아버지는 14살 때에 네 살 연상의 어머니와 결혼 했다. 조강지처를 버리고 한 결혼이나, 둘 사이의 애정은 그리 깊지 않은 듯 하다. 또한 작가의 아버지는 유랑생활을 자주 했고, 또 이곳저곳에 가정을 꾸렸다. 그러니까 작가는 아버지는 있으되, 홀어머니 밑에서 어렵게 성장한 셈이다.
한마디로 고독했고, 이 고독은 작가를 조숙하게 만들었다. 작가 박경리는 어린 나이에, 선이라는 담론에 담겨진 악의 모습을, 화려함 속에 깃들여진 어두움을, 자연스러움 속의 부조화를, 제의 속에 가녀린 희생양을 보아버렸던 것이다. 기존의 질서 전부를 위악적인 것으로 규정할 만큼 반항정신이 강했던 만큼 박경리의 관심은 자연 문학적인 것으로 돌려진다.
박경리는 성장기의 체험을 통하여 자기의식을 소유하지 않은 삶은 허망하다는 것을 절감한다. 세상의 인습에 얽매어 산다는 것 은 의미 없다는 것, 한 인간의 선택과 결단이 결과로 자신의 삶을 꾸려지지 않을 경우 순간적으로 다가오는 행복마저도 불행일 뿐이라는 것, 이것을 남편을 붙잡아 두려 한 어머니는 역설적으로 알려주었다. 이 자기의식에의 열정은 작가를 낭만적 사랑에 대 한 집착으로 이끈다. 때문에 박경리의 소설에는 낭만적 사랑과 좌절을 다룬 소설이 많다. <가을에 온 여인> <노을진 들 녘> <영원한 반려> <단층> <성녀와 마녀> 등이 직접 이 문제를 다룬 소설이거니와, 이외의 다른 소설에도 이 주제는 반드시 끼여있다.
이 낭만적 사랑에의 열정은 여성 억압적 현실에도 눈 돌리게 한다. 작가는 여성인 어머니를 억압하는 남성인 아버지의 모습을 통해 억압-피억압의 인간관계가 얼마나 한 인간의 운명을 불행한 것으로 만드는지를 확인했고, 이를 계기로 남성에 의한 여성지 배구조를 발견하게 된 것이다. 이로 인해 박경리는 아주 일찍부터 여성문제를 다루는 작가가 될 수 있었고, 이러한 관심은 그의 초기작 <剪刀>에서부터 <표류도> <김약국의 딸들> <파시> 등의 성과로 산출된다.
박경리의 성장기는 이처럼 뚜렷한 흔적을 남기며 마감된다. 1945년 진주여고를 졸업한다. '여자가 공부를 하면 뭣하나' 라며 학비를 대주지 않은 아버지에 반발해 1년간 집에서 쉬었고, 그리고 여고시절을 마쳤다. 이런 박경리에게 동족상잔의 비극인 한국 전쟁이 눈앞에서 벌어졌고, 작가의 모든 것을 휩쓸며 지나갔다.
2-2. 전쟁의 상처, 혹은 불가해한 질서의 발견
1950년, 한반도에는 폭풍우가 질러간다. 수많은 사람이 이유를 모른 채 죽었으며, 단란했던 가족공동체는 부스러져 버렸다. 박 경리 역시 이 폭풍우에 휩쓸렸다. 그것도 잔혹하게, 박경리는 전쟁 중에 남편을 잃고, 또 전쟁 직후에는 아들을 잃는다.
박경리는 전쟁을 통해 거역할 수 없는 운명 또는 숙명을 생각해야 했다. 작가는 문득 자신의 삶은 인간의 지혜보다는 초월적 질서로 설명해야 적합하다고 느꼈는지도 모를 일이다. 이 운명론적 사고가 박경리 소설의 한 중요한 서사구성 원리로 자리하게 되니 말이다.
박경리는 이처럼 한국전쟁에서 맛볼 수 있는 개인적인 비극을 모두 맛보았다. 그러나 이후 그의 소설을 풍부하게 하는 여러 요 인이 또한 한국전쟁이라는 비극 속에서 얻어졌으니, 이 때문에 흔히 소설가를 '저주받은 영혼'이라 표현하는지도 모를 일이다. 한국전쟁은 '불합리한 출생'과 더불어 박경리 문학의 질을 결정지은 값진 경험내용에 속한다. 전쟁을 경험하면서, 불합리한 출생 으로 인해 항상 내부로만 움츠러들던 작가의 시선이 외부로 향하기 시작한 것이다.
또한 한국전쟁은 박경리에게 중요한 위치에 서게 한다. 그것은 그의 사회주의적 시선과 관련이 깊다. 예컨대, 한국전쟁을 좌익 과 우익, 혹은 민족주의자나 사회주의의 맞섬으로 규정한다면, 박경리는 염상섭, 최인훈과 더불어 한국전쟁을 객관적으로 파악할 수 있는 몇 안되는 작가 중의 한사람으로서 한국전쟁을 생생한 현장감과 더불어 객관적으로 파악할 수 있는 자리를 확보하고 있 었던 것이다. 이것은 <시작과 전장> 등의 성과로 이어진다.
2-3. 불길한 환금가능성의 세계
박경리는 전쟁의 와중에 남편과 아들을 잃었지만, 또 하나 잃은 것이 있었다. 인간에 대한 믿음이다. 남편과 자식을 잃고도 살 아남은 사람은 꾸역꾸역 살아야 했다. 어머니와 딸을 부양해야 하는 작가의 삶은 강팔랐다. 누구하나 돌보아줄 사람이 없었다. 거기에 강팔라진 인심들, 작가는 세상을 불신해야 했고, 암흑 속에 놓인 자기를 발견할 수밖에 없었다. 세상이 역겨운 냄새를 피 우기 시작한 것이다. 재화란 인간의 삶을 위한 한 수단일 뿐일 터인데, 그것을 목적으로 하는 사람들이 생겨났다. 그 사람들 속 에서 작가의 슬픔과 고독은 더욱 짙어졌다.
작가 박경리에게 이러한 자본주의화는 하나의 오질고 질긴 덫이었다. 작가를 가난에 몸부림치게 했고 인간 사이에 가로놓은 ' 불신'으로 신음하게 했다. 이러한 뒤틀린 현실이 당시를 살았던 모든 사람의 삶을 불구적인 것으로 만들었을 터이지만, 충일한 인간적 삶을 꿈꾸었던 작가 박경리에게는 특히 고통의 깊은 원천이었다. 박경리는 한발씩 불행의 늪으로 밀려났고, 이 늪의 몸서 리치는 감촉을 느낄 때마다 작가의 길로 다가섰다. 박경리의 등단작의 제목 자체가 <계산>인 것도 이와 관련이 깊으며, 자 본주의화와 인간의 운명에 대한 탐색이, 초기작인 <불신시대> <암흑시대>들에서부터 후기의 <단층>에 이르기 까지 집중적으로 구현된다는 것도 이 때문이다.
3. 삶의 고통과 소설의 향기
1955년 8월, 박경리는 등단한다. 박경리의 삶은 이대부터 소설 쓰기 그것만으로 채워진다. 정릉과 원주에 칩거하면서 오직 글 쓰기로 사회적 삶을 살아가고 있으니 말이다. 박경리의 초기작은 주로 단편이고, 작가가 살아온 삶의 내력이 많이 담겨져 있다. 남편과 아들을 잃은 여성이자 홀어머니를 모시고 있는 딸이 작중화자로 등장하는 작품들이 많다. 작가는 개인의 체험을 바탕으로 당대를 읽어낸다. 그리하여 자신의 비극조건을 단지 작가 개인의 운명 때문만이 아니라 그 시대 자체의 구조 때문임을 밝혀낸다 . 순진한 영혼을 지난 화자가 있다. 거듭되는 비극을 겪었지만, 그 비극에 좌절하지 않으려 한다. 그러나 사회는 더욱더 그의 삶 을 벼랑으로 밀어 넣는다. 화자의 삶을 비극적인 것으로 몰고 가는 것에는 여러 이유가 있다. 전쟁의 상흔(<불신시대> <영주와 고양이> <표류도>), 여성 억압적 현실이나 불길한 욕망에 휩싸여 사는 남성들(<전도> <사랑섬 할 머니> <표류도>), 재화를 수단으로서가 아니라 합목적으로 인정하며 살아가는 군상들(<계산> <불신시대> <표류도>)은 화자의 삶을 비극적인 것으로 만드는 조건들이다. 즉, 작가의 삶을 소설의 몸체로 삼고 있되, 그것을 삶의 문 제로 확대시키는데 충분히 성공하고 있는 것이다.
작중 화자들은 이 비극적인 상황에서도 꿈과 낭만을 잃지 않으려 노력한다. 그러나 현실의 벽은 높다. 번번이 질기디 질긴 허 위와 이기에 그 꿈은 좌절한다. 이 꿈은 낭만적 사랑에의 동경으로 나타나기도 하고 (<표류도>), 또는 현실에 대한 부정으 로 표출되기도 한다 (<불신시대>).
박경리에게 있어 꿈이 없는, 이상이 없는 인간은 인간이 아니다. 또는 사랑이 없는 인간관계도 역시 용인할 수 없는 것이다. 아버지와 어머니의 관계를 통해, 또는 불합리한 출생을 통해 꿈과 사랑이 없는 인간이란 얼마나 황폐한 것인가를 확인했기 때문 이다. 이 꿈 혹은 낭만에의 의지는 강렬하다. 때로는 그토록 증오했고 아버지를 '나는 아버지를 미워하지 않는다. 그는 어느 점 에서는 낭만적인 사람이었으니까. 정확하고 소심한 어머니의 피보다 반항적이며, 격정적인 아버지의 피를 나는 내 속에서 더 많 이 느낀다'고 표현할 정도로. 이 이상적인 것에의 의지는, 1950년대의 전후소설과 관련시켜보자면 이채를 띤다. 손창섭, 이범선 등의 전후소설이 주로 무기력과 불구적인 삶을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인물에 주로 주목하고 있다면, 박경리의 소설은 일단 그러한 소설적 경향과는 구분되는 것이다.
그러나 박경리의 초기소설에서 삶의 희망이나 역사적 전망이 나타나는 것 또한 아니다. 초기소설은 하나같이 비극적인 결말로 끝맺거나 결단의 의지를 곱씹는 것으로 끝난다. 이상적인 것에의 의지는 비록 강렬하다 하더라도, 박경리는 이미 꿈의 실현이 얼 마나 어려운가를 경험을 통해 확인했던 것이다. 이상적인 것에의 의지는 포기하지 않되 현실의 벽을 인정하는 자세이다. 이것이 박경리 초기소설의 특성이다.
4. 요약 및 결어
박경리의 초기소설은 더 나아갈 수밖에 없는, 의미 있는 출발점에 불과하다. 박경리의 초기소설에는 이상적인 것의 구체적인 내포가 분명하지 않기 때문이다. 초기소설에 나타나는 이상적인 것이란, 허위와 이기적인 것을 넘어서는 어떤 것일 뿐이지 구체 적인 내용은 확연하지가 않다. 이렇게 지향해야 할 어떤 것이 불분명할 때, 항시 짝패로 등장하기 마련인 모순의 근원 또한 막연 하기 마련이다. 단지 의식의 위물적 구조 또는 '계량기처럼 수학적인' 삶이 경계될 뿐이지, 그 근원이 어디에 있는지라는 문제에 는 시선이 가 닿고 있지 않은 것이다. 문제적인 작가는 하나의 세계가 고정되고 그 의미가 축소될 때 또다시 나아가는 결단과 선 택이 남다른 법이다. 이런 면에서 보자면 박경리는 문제작가임에 틀림없다. 박경리는 또다시 출발한다.
3-2. 박경리 <토지>에 관한 전반적 이해와 감상 발표자: '96 황현정
1. <토지>의 문학사적 성과와 가치
박경리의 장편소설 <토지>는 무려 25년에 걸쳐서 줄곧 많은 사람들의 주목을 받으며 탄생한 것으로, 그 규모와 문학적 성취로 보아서 우리 소설사 또는 문학사에 커다란 획을 긋고 있다. 이 작품은, 구한말에서 일제 말기에 이르는 시간과 공간의 역 사를 조명하는 방대한 작품으로 여기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계보는 4대를 다루고 있으며, 이들의 개인적인 고통과 민족애, 가정사 에 얽힌 이야기를 다룬 역사적인 소설이다. 또한 문벌과 재물로 백년 넘게 평사리를 군림한 대지주요 양반계급인 최참판댁의 몰 락과 전이과정을 그린 작품으로, 가족사소설로서의 성격도 지니고 있다.
<토지>는 그 근원적인 성격에 있어서 역사적인 상상력에 의해서 그려지고 극화된 역사의 상상적인 초상이다. 그렇기 때 문에 역사와 인간의 관계에 대한 작가의 비전이나 숙고가 짙게 투영되어 있는 것이다. 그래서 표제의 <토지>는 단순한 땅 이나 흙으로서의 의미를 가지는 것이 아니라, 항속적인 성격을 가지면서 생성의 수용력과 창조력을 가진 생의 원천과 자궁으로서 의 의미를 함축하고 있는 역사 그 자체를 표상하며, 인간이란 그 역사의 밭에 뿌려지는 씨앗과 같은 것이라는 농경적인 상상력이 근거되어 있는 것이다. 밭과 씨앗의 기본 관계로 이어지는 것이 농경이듯 이 역사는 그 역사의 밭에 뿌려진 인간의 생성과 소멸 , 지속과 변화의 거듭되는 과정인 것이다.
그런 면에서, 작가 박경리가 광대한 <토지>의 역사적인 무대 위에 역사를 움직였던 역사적인 실제 인물들을 등장시키지 않고 오히려 숨은 역사를 대리하는, 그 역사 속에서 살아간 이름은 있으되 역사적으로는 무명상태인 허구의 인물들을 주역으로서 등장시키고 있다는 것은 역사의 민중성에 대한 그의 신뢰와 인지의 면모를 드러내주는 의의를 지니는 것이다. 또한 <토지 >는 인간의 보편적인 삶의 진실을 기록한 점에서 가치를 지니고 잇는데, 그것은 한민족이 일제의 억압으로부터 해방되기 위해 싸우는 과정에서 획득한 역사적 진실이면서 인류의 보편성을 드러내는 진실이다. 이밖에도 <토지>가 언어 예술로서 사투 리와 속담, 격언 등을 효과적으로 이용하여 한국어가 지닌 미적 특질을 한껏 살리고 있음을 비롯하여 <토지>가 보여주는 장엄한 우주, 생명에 대한 깊은 연민과 사랑, 문학적 실험을 이끌어온 작가적 치열성 등은 높이 살만하다.
2. 작품의 줄거리
최참판댁의 정신적인 지주인 윤씨 부인은, 젊어서 남편을 잃고, 동학당 접주로 사형을 당하게 되는 김개주와의 관계에서, 환이 라는 아들을 낳게 된다. 환은 동학당이 되어서 몸을 피하다가 구천이라는 가명으로 최참판댁에 숨어든다. 애정 관계에서 괴로움 을 당하다가, 결국 자신의 형인 최치수의 부인 별당 아씨와 함께 지리산으로 들어간다. 자신의 어머니가 가진 비밀을 알려고 하 는 최치수는, 이종형 조준구와 어울려 방탕한 생활을 즐기다가 성적 불구자가 되고, 아내와 구천을 찾기 위해 총을 구해서 지리 산을 뒤진다. 별당 아씨가 환의 품에서 숨을 거둔 뒤, 환은 연곡사 우관 스님에게로 간다.
한편, 신분이 천한 귀녀는 최참판댁의 대를 거둘 욕심으로 최치수에게 접근하지만 실패한다. 그는 강포수와 칠성이를 꼬여 씨 를 받은 후, 최치수를 살해하고 최씨 집안의 대를 이으려 하지만 윤씨 부인이 알아내고 자백을 받아내다.
용이는 무당의 딸 월선과의 사랑을 이루지 못하자, 마을의 임이네와 관계를 맺어 홍이라는 아들을 얻게 된다. 대를 잃은 최씨 집안으로 재산을 탐내고 있던 조준구가 찾아온다. 호열자와 흉년으로 윤씨 부인과 마을 사람들이 죽자, 그는 최씨 집안을 독차지 한다. 고아가 된 서희가 조준구와 맞서 싸우던 중에 러일 전쟁과 을사보호조약이 체결되자, 기세는 조준구에게 유리해진다. 불만 이 쌓인 마을 사람들이 의병을 일으켜 최씨 집안으로 쳐들어오지만 조준구를 찾지 못하고, 서희와 길상은 재물을 챙겨 간도로 떠 난다.
간도에 정착한 서희는 가문을 찾으려고 노력한 끝에, 길상과 공노인의 도움을 얻어 거부가 된다. 그녀는 친일 관계도 하였다. 길상과 혼인한 그녀는 두 아들을 얻는다. 길상은 옥이네에 대한 죄책감을 가지고 있지만 아내 서희의 가문에 대한 집착과 신분 때문에 고독을 느낀다. 이 때, 환이 나타나 그의 비밀을 알게 되고 환은 별당 아씨가 죽은 후, 윤봉, 윤도집, 지삼만, 판술 등과 함께 의병활동을 벌이지만 정신적인 패배감 때문에 안주를 하지 못한다.
서희와 헤어진 봉순은 기생이 되고 이름도 기화로 바꾸어 지내면서 미모와 소리를 잘하는 기생으로 이름이 난다. 그녀 또한 간 도로 건너가 서희와 길상 등 고향 사람들을 만나보지만, 외로움으로 인해 마음의 지주를 갖지 못한다.
용정에 정착한 용이는, 월선과 함께 국밥집을 해보았으나, 돈에 욕심이 많은 임이네 때문에 괴로워하고 장사가 몸에 맞지 않는 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홍이는 퉁슬포에 있는 청인의 소작인이 되어 농사를 짓고, 겨울에는 벌목꾼으로 일한다. 용이가 떠난 후, 월선은 홍이와 함께 살지만 암에 걸려 생을 마친다.
조준구 때문에 억울하게 죽은 정한조의 아들 석이는, 송관수의 도움을 받아 공부를 하게 되고, 조준구에게 복수를 하기 위해 하인으로 신분을 숨긴 채 조준구의 집으로 잠입한다. 서희는 광산에 실패한 조준구에게 빼앗긴 토지와 재산문서를 되찾는다. 그 리고 월선의 장례식이 끝난 뒤, 독립운동을 위해 떠난 길상과 환이와 헤어져 귀향길에 오르게 된다.
윤도집이 운봉과 함께 죽은 뒤, 동학의 세력은 급격히 무너진다. 지삼만은 청일교의 교주가 되어, 많은 신도들로부터 돈을 모 으고 자살하게 만든다. 또한 그도 심복인 지서방에게 살해당한다. 김두수가 중국인으로 가장한 금녀를 붙잡게 되는데, 그녀는 묵 비권으로 맞서다가 치욕을 견디지 못하고 벽에 머리를 부딪쳐 자살한다.
한편, 길상은 계명회 사건에 연루되어 2년형을 언도받고 복역한다. 환국은 아버지 길상을 훌륭히 생각하고 뜻을 이어받으려 하 지만, 서희의 권유로 와세다대학 법과에 입학한다.
상현이 유학 후 서울로 돌아온 뒤에, 기화를 모델로 소설을 써보지만 심한 무기력감과 자괴심으로 방황을 하게 되는데, 그를 사모하던 명희는 상현이 사랑을 받아들이지 않자, 결혼을 하지만 실패하고 상현의 딸 양현을 낳은 뒤, 상현과의 관계에 대해 죄 책감을 일으키게 되고, 보살펴 주던 서희를 떠난다. 기화는 그를 사모하는 정석에게 돌아오지만, 석이가 학교에서 쫓겨나고 가정 파탄이 생기자 섬진강에 몸을 던진다. 이를 안 상현은, 방황을 끝내고 소설을 출판한 뒤 고료를 양현을 위해 써달라고 한다. 명 희는 양현을 데려가려고 하지만 서희는 양현을 친자식처럼 키운다. 서희는 두 아들이 시국 사건에 참여하게 되자 걱정이 생기고, 명희는 우여곡절 끝에 자살을 시도하지만 뜻을 이루지 못한다. 유인실은 오가다의 아이를 낳은 후 독립운동을 위해 중국으로 떠 난다.
끝으로, 5부에서는 친일파인 우개동 가족과 배설자 형제가 등장하고 이 인물 등에 의해 시달리는 피해자들, 이들이 일본 제국 주의 몰락과 함께 비참한 최후를 맞는 사건을 시대적 분위기로 전달한다. 또 길상이를 중심으로 서의돈, 유인성, 권오성 등이 사 상병 예방 구금으로 구속되고 민족적 상황이 급박해짐에 따라 지리산에 한 사람 두 사람 모여들고 급박한 상황을 타개하려는 새 로운 움직임을 보여준다. 한편, 양현은 어머니인 봉순이가 죽자 서희의 딸로 입양돼 서희의 권유로 의학공부를 마친 의젓한 의사 가 된다. 그러나 양현은 기생의 딸이라는 신분적인 열등감에 의해서 비슷한 처지의 영광과 사랑에 빠진다. 영광은 외가가 백정이 라는 출신이 알려지면서 연애 관계에 있던 여학생 집의 투서로 학교에서 쫓겨나 일본으로 떠나지만 유학 생활에도 적응 못한 채 국내로 들어와 어디에도 애착을 못 느끼며 결국 색소폰 연주자로 떠돌이 생활을 하게 된다. 양현과도 결국 사랑의 결실을 이루지 못하고 만주로 떠나게 된다. 결국 양현은 서희의 품으로 다시 돌아오므로써 최참판네의 일인으로 회기 한다.
3. 등장인물의 유형 분석과 주요 인물의 성격상
<토지>의 인물들은 작가의 서술 목적에 의해서 네 가지 형의 인간 부류로 나누어 볼 수 잇다. 첫째는 집안의 또는 본인 의 타고난 얄궂은 운명의 지배를 받는 인물들이다. 최치수, 윤씨부인, 월선이, 봉순이, 양현이, 야무네, 송관수 가족 등이다. 두 번째는 작가의 문학적 이상인 인간의 근본적인 믿음과 신뢰를 둔 낭만적인 사랑을 구현하는 인물들이다. 용이와 월선이 별당아 씨와 구천이, 오가다와 인실이, 이상현과 봉순이, 송영광과 양현이, 몽치와 과부 모화, 김여옥과 최상길, 서희와 길상이까지 포 함시킬 수 있을 것이다. 세 번째 부류는 자신의 강한 욕망 내지 성격에 의해서 불행을 겪게 되는 인물군이다. 네 번째는 역사적 상황에 따라 변화되는 민족적 현실을 드러내기 위해 등장되는 인물군이다. 세 번째 부류의 인물은 대체로 1·2부의 핵심 사건과 관련되어 있으나 3·4·5부에서도 조용하라든가 우개동, 배설자 등 몇 명이 등장된다. 세 번째 부류의 인물들은 대체로 우리가 일상적으로 만나는 보통 사람보다 개성이 강하다. 자신의 강한 성격으로 인해 현실과의 교류가 단절되고 비일상적인 삶을 살아가 는 인물들이다. 반면 네 번째 부류의 인물들은 현실과의 교섭을 통해서 역사적인 변화를 드러내는 인물들이기 때문에 우리가 일 상적으로 만나는 보통 사람들이다.
최서희: 최치수와 별당아씨의 소생이자 최씨 집안의 마지막 핏줄. 어린 나이에 육친을 잃어 고아가 된 후, 조준구에게 모든 재 산을 빼앗기고 길상 등과 함께 용정으로 이주한다. 윤씨 부인이 비밀리에 남긴 금괴를 처분한 돈을 밑천으로 하고, 용정 대화재 와 전쟁을 계기로 막대한 부를 이룩한다. 대상인으로 용정에 자리를 잡아가면서도 몰락한 가문의 부흥과 귀향을 유일한 삶의 목 표로 삼는다. 조준구에게 복수하고 고향으로 돌아갈 날을 준비하기 위해 이동진의 독립운동 자금 요청을 거절하고, 일본인이 지 은 절에 시주하기도 하는 등 일본과 친밀한 관계를 유지한다. 이러한 과정에서 서희는 자신의 잃어버린 자존심과 집안의 빼앗긴 재산을 도로 찾겠다는 집념의 화신으로 변하면서 다소 광폭해지기도 한다. 그러던 중, 이상현과의 은밀한 사랑을 냉정히 정리하 고 하인 출신의 길상과 결혼하여 환국과 윤국, 두 아들을 낳는다. 공노인과 임역관의 중개로 빼앗긴 대부분의 토지를 회수한 뒤, 길상과 헤어져 귀국을 감행하고 진주에 자리잡는다. 결국, 몰락한 조준구에게서 평사리의 집문서를 넘겨받으므로써 가문의 재건 과 복수를 마무리한다. 가문의 재건과 길상으로 인한 위험에 대한 방어 수단으로 타인에게 자신의 감정을 드러내지 않고 자기 혼 자 감당하던 강인한 성격이 많이 약화되어 스스럼없이 자신을 열어 보이기도 한다.
김길상: 고아 출신으로 연곡사 우관스님에게 거두어져 자라다가 최씨 집안의 심부름꾼 노릇을 하게 된다. 침모의 딸 봉순의 은 근한 사모를 받지만 서희에 대한 동정과 연모의 정을 간직하고 있으며, 최씨 집안의 몰락 과정 속에서 끝까지 서희를 지키고 보 호한다. 회령에서 옥이네라는 과부와 불륜에 빠지기도 하지만 서희의 회령 행을 계기로 서희와 결혼한다. 서희의 귀국에 동행하 지 않고 간도에 남아 독립운동에 투신하며, 이를 통해 신분적인 질곡에 대한 심리적 압박감을 견뎌내면서 그것으로부터 자유를 얻는다.
최한국: 신중하고 사려 깊은 성품을 지닌 서희의 큰아들로, 서울에서 중학을 마치고 와세다 대학 법과에 진학했다가 동경 미술 학교로 전학, 화가의 길로 들어선다. 귀국 후 서울에서 미술 교사로 일하며, 근화방직회사 황태수 사장의 딸 덕희와 결혼한다. 회한에 찬 아버지의 삶을 이해하기 위해 애쓰면서 아버지가 떠나 있는 집안에서 어머니 서희를 도우며 최씨가를 지켜간다. 양현 과의 사랑의 실패로 영광이 만주로 떠나자 영광에 대한 인간적인 신뢰와 윤국에 대한 사랑으로 자책하며 번민한다.
최윤국: 형 환국과는 달리 정열적이고 행동이 앞서는 성격을 지닌 서희의 둘째 아들로, 진주고보 재학 중 광주학생의거를 계기 로 민족 의식에 눈뜨게 된다. 청년의 혈기와 민족 현실의 우울함 사이에서 고뇌하다가 가출, 온갖 고생을 겪은 후 귀향한다. 한 편, 집안에서 남매로 커온 양현에 대해 이성으로서의 사랑을 느끼면서 격렬한 감정의 소용돌이에 빠진다. 양현의 완강한 거부 뒤 에 송영광과의 사랑이 있음을 확인하고 절망감으로 괴로워하다가 사랑의 좌절을 가슴에 뭍고 학병에 자원한다.
이양현: 이상현이 기화(봉순)에게서 낳은 딸. 기화는 아편중독 끝에 투신 자살하고, 정신적 방황을 거듭하던 이상현은 간도로 떠나버린 후 최서희가에 양녀로 들어가 자라게 된다. 서희의 극진한 사랑으로 밝고 아름답게 커가던 양현은 자신의 생장의 비밀 을 알게 되면서 내면의 그늘을 키운다. 그러던 중 백정의 핏줄로 괴로워하며 자학의 삶을 살고 있던 송영광과의 만남에서 운명적 동류 의식을 느끼며 격렬한 사랑에 빠진다. 그러나 영광과 양현의 사랑에는 아무런 출구도 보이지 않고 운명의 가혹함만이 거듭 두 사람을 막아서고 영광이 떠난 후 다시는 영광이 돌아오지 않을 것을 예감한다. 화해의 전주곡처럼 서희가 찾아오자 서희를 따라 진주로 내려간다.
이상현: 이동진의 아들로서 아버지로 대표되는 전통적 도덕관과 새로운 세대의 윤리 사이에서 방황하는 무기력한 지식인. 서희 일행을 따라 간도에 있다가 서희가 길상과 결혼할 뜻을 밝히자 낙심하여 귀국한다. 이후 소설을 써보기도 하지만 실연의 상처와 이국 땅에서 죽은 부친에 대한 회한과 자책감에 빠져 끝없는 여성 편력과 폭음으로 세월을 보낸다. 애정이 없는 본처와의 사이 에 두 아들을 두었으며, 기화에게서 딸 양현을 낳는다. 서울 생활을 청산하고 서의돈을 따라 만주로 뛰쳐나가 만주의 독립군 조 직에서 일하지만 조직이 사회주의 성향이 짙어지자 관계가 소원해진다. 더 이상 조직에 속해있지도 않으면서 늙은 주정뱅이로 하 얼빈 뒷골목을 배회하면서 낙오자라는 인식 속에서 오히려 편안함을 느낀다.
조준구: 최참판댁의 외가 친척뻘 되는 인물. 개화 바람을 타고 일본인의 역관 노릇을 하기도 했던 교활하고 소심한 성격의 악 인이다. 최치수가 살해되고 윤씨부인이 호열자로 쓰러지자 서울의 가족을 이끌고 평사리로 들어와 어린 서희를 몰아내고 최씨 집 안의 모든 재산과 실권을 장악한다. 토지를 담보로 광산업에 진출했다가 연속되는 실패 끝에 결국 서희에게 토지를 모두 되빼앗 기고 만다. 전당포와 고리대금업자로 전락하여 말년을 보내다 빈털터리가 되어 아들 병수의 집으로 들어와 온갖 횡포를 부리며 추악한 욕망을 거두지 않던 그는 중풍으로 쓰러져 비참한 최후를 맞는다.
4. <토지>의 주제
<토지>의 주제를 파악하기는 좀처럼 쉽지 않다. 대하소설이라는 칭호가 붙을 만큼 웅장한 규모의 감동을 자아내고 있을 뿐 아니라, 다양한 층위의 세계를 중층적인 이야기로 구조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기존의 연구들을 바탕으로 하여 그 층위를 대충 살피면 다음과 같이 열거할 수 있다. 역사라는 주제, 그 역사 아래 민족의 운명, 민족 정신, 민족 운동, 그 아래 동학이라는 주 제, 또는 농민의 삶, 농민의 현실, 농민을 중심으로 하는 풍습, 다른 한편으로 민족 고유의 한과 회한, 비극적 운명, 우연으로 점철되는 인간사의 얽힘, 애증 그리고 생명 사상 등등이다.
3-3. <토지>의 시점 연구
소설에서의 시점이란 소설이라는 한 이야기 속의 화자를 누구로 삼을 것인가 하는 작가의 서술각도이다. 작가가 어느 시대에 어느 부류의 인물을 소설의 주체로 삼았나에 따라 그 소설 속에서의 삶의 모습과 양상은 판이한 여러 모습으로 우리에게 다가오 는 것이다. 단편소설이나 그다지 방대하지 않은 장편소설은 그런 주체의 시선을 어렵지 않게 포착할 수 있으므로 이야기의 맥락 을 쉽게 찾아낼 수 있다. 그러나 양이 방대한 대하장편소설은 그것들과는 좀 다른 면이 있다. 그 길이의 방대함으로 인해 직접적 으로 한 주체의 시선만을 가지고 그의 관점으로 이야기를 끌어가기에는 많은 무리가 따른다. 여러 다수의 인물들이 그들이 처해 진 특정한 환경과의 상호작용을 통해 여러 가지의 단편적인 이야기들을 만들며, 그 안에서 어떤 관점을 형성시켜야 그 '큰 물줄 기'를 엮어나갈 수 있기 때문이다.
<토지> 역시 예외일 수는 없다. <토지>는 구한말에서 해방에 이르기까지 격동의 근대화시기를 다룬 대하소설이다. 장장 16권에 달하는 방대한 양인만큼 그 속에 등장하는 인물들 또한 다수일 뿐만 아니라 그들 각자가 간직한 특출한 개성들은 이 대하소설을 이끄는 주요 부속물들이 된다. 어떤 한 특정인이 아닌 이 작품에 등장하는 모든 이들이 주인공이 되어 이 소설을 이끌어나가는 것이다.
따라서 <토지>는 작가가 전능성을 지닌 '전지적 작가 시점'이 작품 전체의 시점이지만 그런 점은 작품 속에서 상당히 미 세하고 (물론 작품 후반부에서는 사정이 좀 달라지지만) 실상은 앞서도 말했듯이 소설 속에 등장하는 다수 인물들이 모두 화자(= 주체)가 되어 그들의 시선에 의해 작품이 전개되는 것이다. 다시 말해, 작품 전체를 총괄하는 총지휘자는 작가지만 작품을 엮는 데 필요한 사건의 관점을 만들어 내는 것은 작품 안에서 살아 숨쉬는 확실한 개성의 소유자들이라 할 수 있다.
최참판댁이라는 평사리의 지주와 그가 소유하고 있는 토지를 중심으로 그 안에서 쉴새없이 부대끼는 서민들의 삶이, 조국을 잃 은 채, 아무 가진 것 없이 고향을 등진 채 남의 땅으로 이주해 가야만 하는 그들의 비참한 모습이 비록 그 개인들 각자의 비극처 럼 보였을지라도 그 속에는 격동의 시기를 애환으로 채웠을 민족의 역사가 들어 있는 것이다.
하지만 아쉽게도 후반부로 갈수록 작품의 시점은 역동성과 현실성이 부족한 대신에 틀에 박힌 관념만이 가득한 지루하고 딱딱 한 분위기로 작품을 끌어간다. 전반부는 파란만장한 역사의 주인공인 민중의 삶과 애환의 시선은 물론이요 이것도 저것도 아닌 혼돈의 소용돌이 속에서 개인적 운명이 혼란의 역사와 뒤엉켜 결국은, 서로 조화를 이루지 못한 채 이별을 맞이하는 길상과 서희 의 애틋한 연분이 당시의 시대적 현실과 맞물려 현실감 있게 묘사된 데 반해, 후반부는 통념화되고 획일화된 부류들의 관념적 시 선만을 내세워 주제의식은 확연히 드러내되, 전반부와 같은 현실감 있는 서사적 역동성은 오히려 감소시킨다. 곧 전반부에서는 여러 대중들에 의한 사실적인 대화방식과 작품 속에 잘 투영된 그들의 감정이입으로 인해 독자들이 비통한 역사의 한줄기를 현실 감 있게 느꼈을 테지만, 특정한 계층의 지식인들이 주인공이 되어 그들의 시선과 의식만으로 한 시대를 바라보게 한 것은 너무나 편파적인 방법으로, 도리어 독자로 하여금 반감을 가지게 할 것 같다. 주제의식을 확연히 드러내기 위하여 작가 나름대로 선택 한 이들이겠지만, 그들의 의식이 너무나 딱딱하게 관념화되어 있기 때문에 그런 그들의 시선에 의해 만들어진 작품의 이야기 또 한 딱딱하고 지루할 수밖에 없는 것 같다.
물론, <토지>란 작품은 어느 모로 보나 우리 문단사에 길이 남을 대작이요 필자 또한 그런 대작을 비방 할 수 없다. 단 지 우리 역사의 굴곡진 모습을 처음처럼 민중의 시선을 중심으로 대치시켰다면 더욱더 값진 민중의 <토지>가 탄생되지 않 았을까 하는 <토지>를 사랑하는 한 독자의 바램으로 말한 것이다.
3-4. <토지>의 세계와 사상
<토지>라는 제목의 의미는 '소유'를 연상케해서 이것은 인간의 역사와 관련되는 것이다. <토지>가 보여주는 작품 의 전체상은 곧 세계상을 의미한다.
곧 일음지 일양지 하는 도(道)이며, 창조적 전진으로 표현되는 진행이며, 생명 탄생이며, 장엄한 우주 역사의 재현, 그 우주의 음양 변화가 나타난 하나의 마디, 한말에서 해방까지의 한민족의 생활사, 일제하 한민족의 해방 역사라는 것이다.
작품의 통일원리와 인물 형상화 방법에서 설명한 상관적 관계위치의 개념도 동양적 세계관과 긴밀하게 연결된다.
<토지>의 통일원리는 '관심의 통일'로 표현되기도 했지만 동양적 세계관과 결부시켜 이야기 할 때는 유기체 사상의 측면 에서 설명될 수 있다.
<토지>는 전제뿐만 아니라 부분들 자체에 우리의 주의를 기울이게 하는 것이다. 이것은 인물들을 형상화하는 방식에서도 드러나는데, 인물들이 고정된 실체를 갖는 것도 아니고 특정한 관계에 의해 일방적으로 규정되지도 않는 것은 그들이 여러 관계 의 복합을 통일하는, 내면 속에 다양한 심적 지향을 가지면서 그 갈등 속에서 현실을 파악하면서 자기의 운명적이고 창조적인 한 걸음을 내딛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또한 <토지>의 인물 형상화 방법과 통일의 원리는 전체와 함께 부분에 초점을 맞추도 록 하는 구조 형식을 산출한다.
<토지>의 사상은 동양적 세계관에서 파악된 생명들의 모습을 드러낸 것, 한민족의 고유사상이라고 할 수 있는 샤머니즘 적 세계관 내지 동학사상에서 파악된 생명의 모습, 작가의 창조적인 사유의 결실이라고 할 수 있는 한의 사상이다.
본고는 작품 구조 전체가 보여주는 상을 떠나서 작가가 설정한 초점심로에 따라 작품의 의미를 살펴보겠다.
<토지>는 영웅적이거나 비범한 인물을 주인공으로 하지도 않았고, 어떤 인물이 주인공이라는 이름을 얻기에 족하다고 할 수 있는 역할을 하지 않는다. 일상생활의 평범한 인물, 주의를 끌만한 것이라곤 아무것도 없을 것 같은 그런 인물들을 등장시켜 시답지도 않은 사건으로 이야기되는 것은 보통이다. 그러나 작가는 어느것 하나 허투루 다루지 않으며 그들의 능력에 비추어 그 인간됨을 그리고 있다. <토지>에 나타나는 생명존중의 사상은 이러한 측면에서 살펴볼 수 있다. 절대자에 대한 무조건적 인 헌신이나 복종보다도 개개 생명에 대한 큰 자애심을 강조하는 동양적 세계관이 <토지>의 초점 심도에 놓이는 것이다.
또한 <토지>는 작품의 주제적인 측면에서, 곧 내용적 전개의 측면에서 영성의 존재로서 생명을 표현하고 있음은 물론, 형식적인 측면에서도 긴장된 균형을 통해 생명의 선을 살리고 있다. <토지>에 표현된 생명사상의 양태는 한(恨)의 사상이 라고 할 수 있다. <토지>에서 인물들은 모두 한을 가지고 있다. 한이 생명 자체의 본질로 작가에게 인식되고 있기 때문이 다. <토지>는 그 한을 지니고 살아가는 여러 인물들의 모습을 통해 인간의 본질을 탐구하고 있다. <토지>가 보여주 는 인간상은 물질이 지배하는 시대와 사회를 넘어서는 비전을 보여주는 부정성이다. 그 인간탐구를 인류는 삶의 방식에 깊은 성 찰을 요구하는 것이다.
3-5. 박경리가 보는 세계, 그리고 문학/박경리 강의노트 <문학을 지향하는 젊은이에게>
1. 들어가며
<문학을 지망하는 젊은이에게>는 소설가 박경리가 1992년에서 1993년에 걸쳐 연세대학교 원주캠퍼스에서 창작론 강의를 한 것을 책으로 묶은 것이다. 이 책은 저자의 수십 년간의 문학인생에서 나름대로 터득한 소설 창작 방법론을 소개하고 있으며 박경리의 세계관 및 예술관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본고에서는 <문학을 지망하는 젊은이에게>를 통하여 박경리가 생각하는 문학, 그리고 그의 소설창작 방법론을 요약, 정 리하고자 한다.
2. 박경리의 '문학이란 무엇인가'
박경리에 의하면 다른 학문과 마찬가지로 문학 역시도 삶에 관한 것이다. 모든 학문은 삶이 현장이며 삶은 모든 학문의 기초 가 된다. 그러나 삶의 총괄적인 것을 다루어야 하는 문학은 어떠한 부분, 어떠한 분야도 수용해야 하지만 그것은 실체가 아니며 사실도 아니라는 점, 그러면서도 진실을 추구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사실, 하여 소설을 창작이라 한다고 그는 말한다. 또 우리 존 재는 본질적으로 불안정한 존재이며 항상 본질에 도달하지 못하는 상태이다.
개체는 저마다 소우주를 가지고 있고 하찮은 미물이라도 삶의 법칙에 의해서 살아가며 이는 어떤 존재도 마찬가지다. 모든 생 명은 총체로서의 개체이며 총체는 개체로서 이루어지고 고리사슬에 엮어진 존재일 것이다. 어쩌면 소설을 쓰는 작가는 고리사슬 을 물어 끊으려는 모반자일지도 모르며, 그러면서 고리사슬이 풀릴 것을 두려워하여 합일을 치열하게 소망하는 사람일지도 모른다.
소설에 있어서의 공간, 포용해야 할 공간은 바로 문학의 질과 맞닿아 있다. 이야기를 한다함은 공간의 확장을 뜻하기도 한다. 공간을 창조하고 작가는 문학적 공간을 확보하고 그 곳에 존재케 하는 이가 소설가일 터이다.
문학은 자기 자신에 대한 존엄성 없이는 투신할 수 없다. 자기 자신에 대한 존엄성이라 함은 자유를 일컫는 것이다. 어떤 대에 도 문학가는 정당하고도 공평한 대우를 받아야 한다. 불운하다고 해서 동정 점수를 받는다는 것은 작가나 시인에게 내려진 형벌 이다. 불우한 것이야말로 치열한 문학정신은 될지언정 처세가 되어선 안된다.
작품이 상품이 될 수가 있는가. 그렇다. 여타 수공예품처럼 상품이 될 수도 있다. 수공예품도 예술품과 상품이 있듯이 문학에 도 예술품과 상품이 있다. 무엇으로 구별해야 하는가. 이렇게 답변할 수는 있다. '상품은 기술이며 예술은 창작이라고'. 그러나 문학은 그리 간단하지 않다. 정신적 문제이기 때문이다.
앞에서도 언급했듯 생명의 본질은 공간과 시간이다. 그러나 여전히 존재는 그에게 접근을 하지 못하며 그것에서 어떤 보편성을 획득하지도 못한다.
작가는 시작이 아니다. 결과도 아니다. 인생에는 결과가 없기 때문이다. 죽음만이 있을 뿐이다. 이처럼 끝없는 벌판에서 작가 가 되겠다는 이들은 도저히 알 수 없는 삶의 모순을 이야기해야 하며 안다고 해야 하는 게 아니라 모른다고 해야한다. 알고 있는 것은 다만 방식이며 생활이며 형상일 뿐이다. 그러면 작가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모른다고 해야할 터인데 어떻게…? 그것은 바 로 물음이며 질문이다. 작가는 칠흑과 안개를 향해 왜 라고 물어야 한다. '왜' 라는 질문이 없으면 문제는 없거나 종결되었음을 뜻한다. 그러므로 문학도 종결된다. 그러나 생명이 엄연하게 생사의 상반된 것을 포태하고 있는 이상 '왜' 라는 질문을 멈출 수 는 없다. 이 점이 문학의 골자로서 어떤 작품이든 그 갈등과 모순, 운명과의 싸움이 전개되는 것이다. 문학은 '왜' 라는 질문으 로 시작해서 '왜' 라는 질문 그 자체가 문학을 지속적으로 지탱하게 하는 것이기도 하다. 생명이 영원했다면 존재의 이유는 묻지 않았을 것이다. 그렇다. 존재란 무한 속의 유한을 말하는 것으로 유한에 한(恨)이 있는 것이다. 모든 문제는 유한성에서 비롯되 었으며 인류의 염원은 무한이다. 부활과 윤회에서 알 수 있듯이 진정한 작가는 인생을 보는 눈이 정확하다. 그렇지 않으면 남을 모방하는 껍데기 소설을 쓰게 될 테니까.
창조적 삶이란 자연 그대로, 어떤 논리나 이론이 아닌 감성이다. 다시 말하면 창조의 원동력은 순수한 감성이다 라는 것이다. 또 창작을 하려면 깊은 사고가 있어야 한다. 그런데 사고 할 수 없는 시간이 바로 사람을 만나는 시간이다. 사람을 만나지 않으 면 고독하다. 그러나 그 고독이 사물을 정확하게 판단하게 한다. 사고는 창조의 틀이며 본(本)이다. 작가는 은둔하는 것이 아니 라 작업하는 것이다. 예술가는 도피하는 것이 아니라 작품으로 참여하는 것이다.
3. 현대 사회와 문학
3-1. 현대 사회의 양상
박경리에 따르면 현대 사회는 사람들의 생활 방식이 변하는 것과 동시에 사고 방식도 변해버린 사회이다. 편리하게만 변해온 생활 방식이 자본주의 내지 유물론적 사고방식을 낳았고 급기야는 그것이 우리의 행복을 위협한다. 또 현대 사회는 소위 분업 시 대의 영향으로 집단 혹은 단체의 범람 시대라고 한다. 집단이란 개체들의 힘이 약할 때 만들어져 방어능력을 갖게 됨으로써 기능 하지만 그 힘이 거대해지면 어딘가로 폭발해야 한다는 것이다. 또한 암기력이 뛰어난 경우를 수재라고 하고 창조적 두뇌가 월등 한 경우를 천재라고 할 경우 현대 사회는 천재보다는 수재를 더 요구하는 사회라 한다. 빠른 속도 속에서 멈추어 생각할 겨를이 없는 사회라는 것이다. 바야흐로 다이제스트가 판을 치기 시작했다. 박경리는 자본주의의 속성을 세 가지로 규정했다. 첫째, 경 쟁 제일주의이다. 경쟁으로 인하여 어느 정도 문명 발전을 이룩한 것은 사실이나 그보다는 황폐함이 많았다. 둘째, 이윤 제일주 의이다. 이윤 제일주의로 인한 폐단은 우선 순환이 막히고, 약육강식의 논리를 합법화한다는 것이다. 셋째, 소비 제일주의이다.
3-2. 현대 사회와 문학
이 같은 현대 사회에서 문학이 차지하는 위치는 어디쯤이며 문학이 해야 할 일은 무엇인가. 현실주의자-물신을 섬기는 이들은 가시 밖의 것은 인정하지 않는다. 불확실성을 용납하지 않는 것이다. 그들은 해부하고 분석하고 물(物)로서 증명한다. 그러나 삶 이란 그렇게 자르고 분석해서 보여줄 수 없다. 천재보다는 수재가 필요한 시대에, 즉 다이제스트가 판치는 사회에 박경리는 개념 적 지식의 습득을 경계하라고 말한다. 왜일까. 왜 시대에 역행하라 하고 현실적응을 하지 말라고 하는가 국어국문학도이기 때문 이라고 박경리는 말한다. 그에 의하면 문학은, 특히 소설은 어떠한 경우에도 총체성을 띠는 것이며 개념이라는 조박지로 끼워 맞 추는 것이 아니다. 설령 불확실하다 할지라도 사물을 개념적 시각 속에 가두어 버리면 안된다는 것이다.
4. 문학의 방법
지금까지 문학이란 무엇이며 현대 사회는 어떠한 사회이며 문학과 어떤 관계에 있는가를 살펴보았다. 그러면 이제 그 방법론 을 보자.
생각, 느낌, 인식, 감성, 흔히 쓰는 말들이다. 무게를 느끼면서 쓰지도 않는다. 그러나 심층으로 내려가 말로 표현되는 그 실 체의 성질과 역할을 탐색해 볼 것 같으면 그것이 얼마나 큰 것인가를 알게 된다. 느낌이란 오감의 기능을 이르는 것으로서 사유 이전의 감각을 말하고 인식이란 이성을 말하며 이 둘을 두 개의 기둥으로 본다면 감성은 이 둘을 떠받치는 형상으로도 볼 수 있 다. 감성은 특히 정신의 바탕으로서 심성이라고도 할 수 있는데 다양하게 나타나고 매우 가변적이다. 느낌과 인식과 감성의 관계 를 삼각형으로 짜보자. 이것이 창조의 원천이다. 생각은 어떤가. 프랑스 작가 모리악은 작가를 두고 산을 닮으려는 사람이라 했 다. 작가는 생각 속에서 범람하는 사물을 이성과 정열로서 골라내어 놓고 말을 찾아 나서며 세계를 창조한다. 작가는 또 필수적 으로 시대를 파악할 수 있는 안목이 필요하다. 시대는 생명이 생존하는 시간이며 시대의 자라는 모든 생명의, 삶의 터전이기 때 문이다. 또 글을 쓰기 위해서는 체험과 기억이 필요한데 기억은 희미할수록 좋다. 사실에 매이지 않고 자유로워져 상상력이 풍 부해지기 때문이다. 또한 작가지망생들은 이론에 연연해서는 안된다. 마찬가지로 상상력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또 대상을 표현할 때는 생동감 있는 인물을 그려내야 한다. 판에 박힌 듯 화석처럼 되어버린 인물은 춘향전의 방자에서 끝내는 것이 좋다. 문장보 다는 내용에 유의하라. 문장이 아무리 유려하고 정확하다 하더라도 내용이 빈약하고 생명이 없다면 그것은 허울에 지나지 않는다 . 구성이란 허공에 띄워진 보이지 않는 구조물이다. 또 프로작가에게도 구성은 막막한 경우가 종종 있다. 많은 이들이 현장감이 나 사실감은 문장에 달려있다는 생각을 하지만 가장 리얼리티가 요구되는 것이 구성이다.
4. 박경리 선생과의 대담
일시: 1997년 8월 28일 오전 10시
장소: 원주시 단구동 자택. 원주시 단구동에 있는 박경리 선생의 자택은 선생이 80년부터 16년간 살면서 토지 4, 5부를 완성한 곳이다. 이곳이 원주단관지구 택지개발 지구에 포함되자 지역주민과 작가 자신이 현지 보존을 주장했다. 그러자 사업주체인 한국토지공사측이 전례 없이 가옥과 주변 일대에 대한 사업 안을 변경, 토지문학공원으로 조성할 것을 결정했 고, 그 때 박경리 선생이 받은 보상비가 토지문화관의 씨앗이 된 것이다.
4-1. '토지문화관' 기공에 관련하여
전국에서 처음으로 문화예술계의 국제교류장을 목표로 세워지는 박경리 토지문화관 기공식이 8월 15일 오후 2시 원주시 흥업면 매지리 570번지에서 열렸다. 토지문화관은 대지 1만 5천 4백 37평에 건평 3백 12평의 4층 건물로 1층 회의실, 2층 세미나실, 3 층 집필실 5실 객실 10실이 갖춰지며 98년 9월 완공, 10월 입주 예정이다.
토지문화재단이 첫 사업으로 시작하는 토지문화관은 박이사장이 자신 소유의 임야 등 재산을 기증하고 한국토지공사가 40억원 의 기부금을 출연, 동우건축이 설계하고 현대건설이 시공한다. 토지문화관은 앞으로 문학도를 위한 집필 공간, 환경학자, 경제학 자 등 학술가들의 지속적인 토론 공간으로 운영될 예정이다.
박경리씨는 '21세기는 한계와 전환을 선택해야 할 시대인 만큼 원주에 이 시설을 두는 것은 원주(原州)의 지명이 한반도의 중 심이란 뜻이 담겨있어 통일 한국의 문학적 비약을 기약하기 위한 것이라고 강조했으며, 토지문화관은 학술의 장으로 삶의 본질을 추구하는 공간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강원도민일보, 1997년 8월 16일, 土.
다음 글은 작가 박경리 선생의 육성 그대로를 녹음하여 적은 것이다. 구어 자체를 문자화시키는데 따르는 논리적 비약과 비일 관성, 문맥간의 단절 등을 감안하고서 한 번의 거름 없이 그대로 적은 것은 선생의 목소리를 보다 생생히 전달하기 위해서이다. 또한 대담내용이 주제별로 나뉘어져 있으나 이것은 본고의 이해를 돕기 위해서 편의상 나눈 것임을 밝혀둔다.
박경리: 토지문화관을 두고 문학관이라고 오해하는 분들, 기념관이라고 오해하는 분들이 있어요. 토지재단이 생기게 된 것은 이 집이(택지 개발지구에 포함되어서) 넘어가게 되니까 토지공사에서 기념관으로 넘기겠다고 하고, 내가 기념관으로 안 넘긴다고 하더라도 어차피 정해졌으면 내가 비워줘야잖아요. 보상금이 10억 정도 나올 예정을 하고, 이 집이 내가 죽어도 우리 애들이 팔 아서 쓸 성질이 아니니까 가는 사람은 모르지만 어쨌든 남아가지고 있는 분들이 와서 보기도 하고, 그렇게 내 의사와 관계없이 그리 될 거란 말이에요. 그러니까 그 돈을 받으니까 내가 사용을 할 수가 없어요. 이게 내놓은 집인데, 그리고 또 내가 5천만 원 을 주고 산 집인데 올라가니까 땅장사한 기분도 들고, 그래서 내가 그 돈을 공익으로 쓸라고 여러 궁리하다가 조그만 세미나실을 만들면 어떨까, 연대에다가 할려니까 내가 살 곳이 없드란 말이에요. 그래서 연대 가까운 데 땅을 구했는데, 생각한 거와는 달 리 7억 5천 밖에 돌려주지 못한다고 하잖아요. 그러자 토지공사에서는 여러 가지로 미안하지요. 작가가 여기서 16년 동안 자릴 잡고 살았는데, 돌 하나 나무 하나도 전부 내가 심고 했는데, 꼭 내가 공중분해 되는 기분이에요. 그러니까 토지공사에서도 미안 하고 이러니까 박경리 문학상을 하나 제정하겠다고 의논을 해요. 문학상 얘기는 다른 데서도 몇 군데 있지만도, 그걸 제가 거절 한 이유는 살아 있는 사람 문학상을 정하는 게 관례적으로 옳지도 않고, 내 정서에 맞지도 않고 그래서 거절을 했는데 토지공사 에서 나왔어요. 그럼 내가 7억 5천을 기증을 할 테니까 토지공사에서 문화관을 하나 지어 달라 그러면 우리가 30년이든 50년이든 사용권만 우리에게 달라고. 그러니까 토지공사에서도 기꺼이 응했어요. 응했는데 그러나 토지공사의 재산은 받을 수가 없어요. 지어 가지고 뒤에 넘기지. 토지공사 자체는 가지지 못하니까 문화재단이란 걸 만든거에요. 그러니까 엄격히 말해서 토지공사에서 해주는 거고, 저는 이것이 토지라는 작품과 연관되는 것이 싫어요. 솔직한 얘기로 내가 없어진 다음에 남은 사람들이 어떻게 하 는 것은 자유지만 내가 자청해서 토지라고 붙이는 게 내 정서에 안 맞는데, 그래서 처음에 그 장소가 오봉산 밑이어서 오봉문화 관이라고 할라고 했는데, 토지공사에서 절실히 바라고, 또 다른 이사분들도 오봉문화관이라고 하면은 누가 아느냐는 거예요. 앞 으로 기공문제도 있고, 박경리를 이용할 필요가 있으니까 강력하게 토지공사에서 토지문화관이라고 했는데, 기분에 참 안 맞는 게 찜찜한 거지요. 그래서 기자들이 오면 제가 그래요. 소설 토지하고는 아무 관계 없다구. 토지공사의 그 토지라고 생각해 달라 고 제가 그렇게 얘기하고 있어요. 그러니까 내가 글을 썼고, 토지를 썼고 하니까 그 토지를 연상하고 제가 문학을 위해서 만들었 다고 생각하는 오해가 참 기분에 안 맞는 거지요. 그러나 그 건물을 제가 기분에 맞든 안 맞든 해놓으면 후학들이 그것을 다 이 용하니까 내가 그것을 감수해야 되지 않느냐 그렇게 생각해요. 그 뭐 다른 분들은 왜 문학관을 하지 문화관을 하냐 이런 항의도 하는데, 물론 사람마다 다 생각이 달라요. 문학관도 다르듯이…
4-2. 박경리가 말하는 삶·문학·생명
저는 문단에 나오면서부터 참 많이 제가 인생에 있어서 행복했다면 문학을 한했을 것이다(고 생각했어요.) 그것은 인제 추억이 고. 사적인 얘기지마는 그것을 확대해 보면 모든 생명들이 행복하다면 추구할 게 없지 않아요. 문학도 그렇고, 모든게 영생불멸 이고 뭐 이별도 없고, 우리가 봉착하고 있는 가장 어려운 문제가 다 해소됐다면 문학이고 철학이고 아무것도 없는 게 아니겠어요 . 그러나 물론 이젠 그런 경지에 인간의 영혼이, 인간뿐만 아니라 모든 생명이 탄생하고 죽는 이 글 하나의 원시림에 서있는 이 상 해결이 안되는 거지요. 우리가 뒤집어 말하면 모든게 인간이 완벽하게 이루어낼 때는 그 때는 정지상태가 되는 거예요. 그러 니까 희망이 없어지는 거지요. 절망이 없어지면 희망도 없어지는 거예요. 그리고 우리가 죽지 않는다면 시간을 인식할 필요가 없 고, 공간에 대한 인식도 없어지고 그 때는 모든게 정시상태, 어떻게 보면 완전한 죽음이에요. 또 우리가 죽고 태어나고 끊임없이 순환하기 때문에 우리가 살아있다는 것이지요. 실연도 하고 희망도 가지고, 절망도 가지고…
이젠 생명도 인식하는 거예요. 영원히 산다면 생명에 대한 인식이 있겠어요? 없지요. 시간에 대한 인식도 없고, 공간에 대한 인식도 없고 아무 것도 없어요. 그야말로 완전히 無로 돌아가는 거예요. 무와 완성은 동일선상에 있는 것이거든요. 그래서 저는 문학에 있어서도 탐미주의와 예술지상주의에 대해서는 출발부터 항상 반대방향에 섰던 사람이고, 그러니까 문화관을 세우는 것도 삶의 문제를 고려했기 때문이지요. 우리의 환경이 지금 오존층 얘기도 나오고, 북극에 얼음이 녹아서 그야말로 제 2의 노아의 홍수가 난다는 등 뭐 설들이 많지요. 어쨌든 그것은 하나의 설로 그치는 게 아니고 그런 가능성을 실제 우리가 피부로 느끼거든 요. 실제로 우리가 물의 오염이라든지 땅의 오염, 산성비 등은 우리 피부에 딱 닿아 있잖아요. 그러니까 이런 것들은 우리의 삶 을 위협하는 거고 또 자본주의라는 게 어떻게 하면 이윤을 추구할까, 뭐 우선 눈앞에 그 어떤 재화에 대한 추구이니까 어떤 경우 에는 생명을 끊임없이 부정하는 거지요. 그게 오늘날에 환경이 파괴되는 결과로 나타나잖아요. 그런데 우리가 이 시대에 있어서 보면 모든 게, 매일 신문 보면 맨 경제 얘기예요. 우리가 경제가 뭐냐?(물을 때) 그것은 알기 쉽게 말하면 돈이거든요. 황금이거 든요. 그것은 우리가 무엇에 의해서 얻어지느냐? 이게 공업화거든요. 그러니까 끊임 없이 물건 만들어 파는데, 그 물건의 주종이 뭡니까? 농산물이 아니거든요. 전부가, 극단적으로 얘기하면 없어도 우리가 생존이 가능한 물건들이에요. 가령 자동차, 냉장고, 뭐 모든 게, 막말로 하면 그거 없어도 땅에 나오는 것만 있으면 우리가 생존하거든요. 그런데 없어도 생존할 수 있는 물건만을 추구하므로써 환경을 말살하는 방향으로 가고 있단 말이에요. 첫째 지구가 오염되고 땅이 오염되고 있단 말이에요. 그리고 우리 가 보면 (지구가) 자꾸 사막화 되어 가는 현상이 앞으로는 전쟁의 양상으로 나타날 거예요. 또 하나는 가령 지하수를 막 퍼 올리 잖아요. 그런데 지하수를 여기저기서 퍼 올릴 때 제가 그런 얘기를 했어요. 석유를 수입 안하는 일이 있더라도 물은 수입해 먹을 수 없어야 한다, 그 얘기는 따지고 보면 내 민족주의적인 이기심이지요. 그러나 물론 세계 전체가 그렇게 되야 하지만. 이건 우 리가 당면한 문제예요. 왜냐하면 우리는 물이 없으면 살수가 없다. 그러니까 우리 지하수는 손대지 말고 그냥 보존하자. 앞으로 는 물에 대한 전쟁이 있을 거라는 얘기도 있거든요. 그런데 석유는 없어도 우리가 살수가 있거든요. 물이 없으면 도저히 살수가 없잖아요. 그래서 우리가 이렇게 보면 바이칼 호수라든지 이런 것들을 세계인류를 위해서 보존돼야 하는 거지요. 그러면 인제 우 리 지하수도 보존이 되고 세계 도처에 있는 물도 보존이 되야 한다(는 거지요). 그러면 왜 조급하게 생각하느냐 하면 (우리 지구 가) 끊임없이 사막화되어 가는 상황이거든요. 그러면 우리가 뭐가 앞이고 뭐가 뒤냐? (묻는다면) 저는 단적으로 얘기하면 인생이 먼저고 그 다음이 예술이다. 전 그렇게 보거든요. 그 예술지상주의자들은 가령 말하자면 예술을 위해서 모험도 하고, 또 예술을 위해서 모든 것을 희생하는 데, 삶이 없는 곳에 문학이 있을 수 있을까요? 문학의 근본적인 기준이 없어지는 것이거든요. 우리 가 젊었을 때 이 생명에 대한 추구, 삶의 문제 등을 상당히 도외시하고 있어요. 그것은 내가 요즘 가만히 보면 일본서 들어온 풍 조예요. 그런데 상당히 기성인들 속에도 일본문화를 찬양하는 경향도 있고, 일본 문학이 우리보다 앞서가 있는 것 같이 착각들을 하고 있어요.
4-3. '일본을 바로 알자'고 말하는 박경리
일본의 전통, 문학이라는 게 그 역사의 시작이 하나의 칼로 시작했고, 간단히 얘기하자면 우리 연표를 보면요, 우리는 마디가 굉장히 길어요. 뭐 신라 천 년, 이래가지고 이조는 오백 년이거든요. 그런데 일본은 많이 짜개져요. 마디가 짧아요. 그게 뭐이 냐? 끊임없는 전쟁에서 모든 말하자면 변혁이지요. 새로운 강자가 나오면 또 뺏고, 그러니 일본은 전통적으로 칼을 숭상하는 나 라였어요. 이 사람들은 수동적으로 살았어요. 힘 앞에서는 수동적으로 살 수 밖에 없는 거 아니겠어요. 사람의 생명이라는 것은 그 본질이 능동적인 것이거든요. 이런 거는(앞서 말한 일본인의 근성) 전부 수동적이지마는 우리가 손가락 하나 움직이는 것도 다 생명 가진 능동성 때문에 움직이는 거예요. 그래서 일본 국민은 한마디로 수동적으로 살아온 민족이에요. 왜냐하면 집단을 하 나로 밀고 나갈려면 국민들을 수동적으로 만들어야 하거든요. 그런데 일본을 단결이 잘된다고 부러워하거든요. 단결이 뭡니까? 수동적이어야만이 단결을 할 수 있어요. 개성을 죽이고 시키는 대로 하는 거. 이것을 단결을 잘한다 해 가지고 한국사람들이 굉 장히 일본을 칭찬하는 거예요. 단결을 잘한다는 것은 수동적인 거고 수동적이라는 것은 창조적인 능력이 없는 거지요. 그러니까 어디서 본을 가져오면 갈고 닦고, 기능은 되지만 창조할 능력이 없는 거예요. 그런데 우리 국민들은 창조적인 능력이 있고, 일본 에는 기능적인 능력이 있어요. 그런데 그 기능적인 능력이 자본주의가 들어오면서 이게 맞아떨어진 거지요. 기능가지고 하는 게 자본주의 아니에요? 왜냐하면 자꾸 복제품을 만들어서 파는 거니까. 그러니까 우리가 일본을 찬양하고 하등 부러워할 것도 없고, 오히려 일본사람들이 우리를 부러워해야 하거든요. 그러니까 문학은 어떤 형태로 나타나냐? 이건 허무주의, 도피주의로 가거든 요. 그래서 일본(문학의) 주류를 이루는 것이 거의 탐미주의, 예술지상주의, 그러니까 생활과 예술이 유리되어 있는 상태지요. 그런데 이것이 일본에서 들어와가지고. 난 요즘 작품 잘 안 읽었지만 무라카미 하루키라든지, 아쿠타가와 그 사람도 공언화 했잖 아요. 자기는 예술을 위해서 살겠다고. 그러나 예술을 위해서 산다면 인생에 있어서 최고가 없어요. 흔히 일본에 얼마나 많은 문 인들이 자살을 했습니까? 다 그런 이유가 있어요. 그런데 그게 인제 탐미주의의 아류가 되거나 질이 떨어지면 에로티시즘이 되는 거예요. 또 칼로 갖다 매일 싸우기 때문에 밤낮 피를 연상하게 되고 그게 그로테스크 에요. 그로테스크하고 에로티시즘이 일본 의 탐미주의예요. 그런데 그로테스크나 에로티시즘이라는 것은 의미가 없는 거예요. 그래서 뭐 일본에 우리가 알다시피 위대한 사상가나 철학가가 안 나오는 거예요. 그 종교도 형식만 갖추고 있지 진정한 종교가 없어요. 그러니까 그것을 우리가 어디서 볼 수 있냐면은 에도시대에 보면 일본에는 신도라는 게 있잖아요. 어느 나라 종교든 간에 메시지가 있지만 일본의 신도라는 것은 전 혀 그런 게 없습니다. 선조 대신이 남긴 말이라는 것이 내 자손이 대대손손 일본을 다스릴 것이라는 그 말 한 마디뿐이에요. 그 러니까 상속문제만 얘기한 거예요. 그러니까 신도라는 것이 종교로 성립 안 되는 거지요. 그 에도시대에 보면 안되겠으니까 불교 를 가지고 와 가지고, 말하자면 신불석학이라는 불교이론을 가지고 와서 썼다, 물렀다가, 그것도 안되니까 유교를 가지고 와 가 지고 써먹었고, 이런 식으로 일본의 종교라는 것이 갈팡질팡 아무것도 완전히 없는 거예요. 그런데 여러분들이 그걸 생각 못하는 것이 안타까운 거예요. 젊었을 때 일본을 너무 모르고 있다는 거예요. 그리고 오늘날도 보면 기성세대도 마찬가지예요. 전부 입 만 열었다 하면 경제예기예요. 그러니까 우리가 이 한반도에 금덩이를 산더미같이 쌓아놨다고 합시다. 얼마나 경제적으로 성공했 습니까? 그러나 우리가 배가 고플 때 그 금괴를 먹을 수 있어요? 우리가 사는 데는 아무 소용이 없는 거예요. 그래서 문학하는 분들이 그런 생각 때문에 문화관의 중심에다가 환경문제를 잡은 거예요. 내 얘기는 이 정도로 하고, 질문 있으면 얘기하세요.
4-4. 질의 및 응답
전상국 교수 : 선생님께서 아주 우리가 평소에 선생님한테서 들을 수 없었던 귀한 말씀을 듣고 있습니다. 환경문제, 선생님 아 주 오래 전부터 관심을 가지고 계신데다가, 생명철학과 환경문제를 결부시켜서, 또 현대산업사회의 어떤 구조가 일본, 선생님이 아까 말씀하셨듯이, 여러분들이 깊이 새겨들었겠지만, 기능 위주고 우리 쪽은 창조적인, 여러분들은 어제 토론하는 과정에도 그 런 얘기가 나왔습니다만 그런 쪽을 환경문제와 결부시켜서 아주 좋은 말씀을 해주셨는데, 환경문제뿐만 아니라 원주, 여기서 조 금만 나가면 흥업면에 선생님이 아까 말씀 하셨지만 그 토지 문화관, 선생님은 겸손하게 토지가 들어가는 것을 뭣하다 하셨지만 저는 오히려 토지문학관으로 했으면 하는 바램이 있는 사람 중에 하나입니다. 저는, 선생님은 겸손하셔서 자꾸 그러시는데 저는 오해가 있을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누가 그런 오해를 할 수도 없구요. 선생님이 해놓으신 업적에 대한 그걸 통해서 우리가 이어 받자는 거 때문에. 또 선생님한테 좋은 말씀을 들었는데 학생들이 몇몇 질문을 하겠습니다.
반지영: 먼저 저는 국어국문학과 학술 답사 중에 지면으로만 통해서 뵐 수 있었던 박경리 선생님을 만나 뵙게 된 것을 정말 영 광으로 생각을 하구요. 전에 토지문화관하고 토지문학공원에 대해서 좋은 말씀을 해주셨는데요. 선생님께서 의도하신 바와는 조 금 다르게 처음 시작이 됐지만 내년에 완공이 된 후에는 선생님의 작품 <토지>를 많이 사랑했었던 애독자들을 포함한 일반 시민들이 어떻게 문화관과 문학공원을 이용하게 될지. 바람직한 이용방법에 대해서 말씀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박경리: 全 선생님이 그걸 자꾸 겸손이라고 말씀을 하시는데 제 성질이 남 앞에 나가는 걸 싫어해요. 물론 토지를 26년 동안 썼기 때문에 그런 경향들이 있겠지만, 원래 제가 외동딸로 자랐고 또 아버지가 새로 장가를 가 가지고 어머니하고 나하고 살았기 때문에, 내가 천성적으로 굉장히 낯가림이 심해요. 또 애들이라도 처음 대할 때는 내가 당황해요. 그래 내가 사람을 새겨도 10 년 20년 뭔 이래 사귀어야 무난해지지. 늘 당황하고 서두르고 그런 성격이기 때문에 남이 보기에는 뭐 문학정신이 투철해서 안 나가고 그런다, 그게 아니고 다 성격 탓이에요. 뭐 여러 사람 앞에 나가면 내가 없어지는 것 같애요. 내 줏대가 없어지고, 허둥 지둥하고 뭐 이런 성격 탓이고, 또 인제 내가 토지 이야기를 해달라는 방송국의 인터뷰를 내가 거의 피해 왔는데, 그것도 내 성 격이에요. 쑥스럽다는 생각이지요. 내 얘기를 어떻게 하면 어떤 면에서는 그런 세대지요. 나이도 많고 그러니까, 어떤 면에서는 솔직하게 자기 자랑하는 분들이 더 순진한지 몰라요. 오히려 나는 자꾸 안할라카는 이게 내 이기적인 거예요. 말하자면 돌아서면 내가 불쾌한 거, 이런 거 느끼기 싫은 거지요. 그래서 인제 선천적인 내 성격에서 오는 거고. 또 원칙적으로 제가 생각하기는 작품 하나 끝내놨으면 그건 독자의 몫이고 작가가 덧붙일 수 없다는 그런 생각도 있고, 또 이제 기념관이다 뭐 이런 것도 저는 작가하고는 아무 관계가 없는 거예요. 왜냐하면 그건 작가가 없어진 뒤에 그 작가를 높이 평가하든 아니면 그 작가가 형편없었다 고 평가를 잘 못하든 간에 그것은 살아 있는 사람의 몫이지 일단 이 세상에서 떠나간 사람은 남아 있는 사람들이 어떻게 하든 전 연 관여할 수도 없고 모르는 거예요. 작가한테는 전혀 무의미하거든요. 그런 거는 어쨌든지 제 생각이 그래요. 그래서 저도 등소 평이 화장했다는 소리를 듣고 참 동감을 했는데, 죽고 난 뒤에 뭐 화려하게 남는다, 또 동양에서는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는 의식 이 있는 것 같은데, 그런 면에서는 저는 좀 떠나 있는 거 같애요. 그래서 그런 면에서는 허무주의자인지도 모르겠어요. 내가 세 상 떠나는 그날로써 작가는 이 곳이랑 이별하는 거니까 아무것도 뭐 칭찬이든 욕먹는 거 관여할 필요가 없거든요. 그런데서 이 기념관이란 것도 내가 사실은 쑥스럽고, 난 토지공사에서 아주 요란하게 설계를 하고, 뭐 놀이동산이 뭐이다 이래가지고 하는데, 내가 쑥스럽다고 하기도 했지만, 이미 토지공사에서 하는 일에 대해서는 내가 관여할 수가 없거든요. 그래서 사담으로 나무나 심고 주민들이 그저 산책이나 했으면 좋겠다는 그런 정도고, 그리고 전에는 원고지도 다 태우고 편지 온 것도 다 태우고 이랬는 데, 그런 이야기를 하더라구요. 말하자면 요즘에는 전부 컴퓨터로 하기 때문에 그런 손으로 쓴 원고가 없다, 그래서 선생님 그걸 좀 념겨 주십시오, 그래서 내가 토지 5부를 줄여서 원고를 넘겼어요. 그리고 최근에 편지 온 거를 마침 내가 박스에다가 넣으면 서 참고자료가 되는 지도 모르겠다 싶어서, 그러니까 그런 면에서는 제가 허무주의자인지도 모르겠어요. 그러니까 거기에서 하는 것도 인제 원주에서는 행사 중심으로 생각할 수가 있거든요. 시민들이 그걸 이용을 할 수 있지 않겠느냐 이런 생각도 하고, 또 어떤 분들은 질문하기를 전시실이 있느냐 이런 얘기도 하고, 그래서 내가 그런 전시실도 없고, 행사 중심의 그런 장소도 없다. 왜냐하면 세미나실이 여러 개 있어요. 그러니까 제일 큰게 80명 수용하는 것, 50명, 30명 이렇게 하고, 물론 전시실도 없고, 그 게 왜 그런가 하면 첫째, 그 목적이 우리가 21세기에는 전환을 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그야말로 전환하지 않으면 우리가 살아남 을 수가 없어요. 그러니까 그야말로 우리가 변화하지 않으면 안 될 때, 새로운 하나의 이념이 생겨야 합니다. 지금 뭐 사회주의 는 종말을 고했다고나 할까요. 그리고 아까 말했듯이 자본주의도 그게 말기거든요. 또 이 자본주의의 끝은 어디 에요. 끝은 이런 속도로 가면 지구 파괴밖에는 아무것도 아닌 겁니다. 물론 자본주의가 방향을 전환해 가지고 어떤 질서를 잡아주거나 순환이 원 활하게 된다면 모르지만, 자본주의 원리가 이윤추구가 절대적인 거거든요. 그러니까 이 세계가 하나로 되어 있는 것도 아니고, 각자 약소국 강대국의 이해관계가 상관이 되고, 전쟁도 있고, 이런데서 이 내리막길을 내려가는 마차를 멈출 수 없게 돼있어요. 그러니까 내리막길을 내려가는 마차는 언덕에서 구르던가 물에 빠지던가 이것밖에 없거든요. 지금 현실적으로. 그러니까 새로운 이데올로기가 있어야 한다, 그건 저도 모르겠어요. 이제 그런 하나의 새로운 이데올로기 창출, 그런 걸 위해서 말하자면 많은 분 , 각 분야에서 가령 경제 분야나 과학, 철학, 역사 각 방면에서 모여 가지고 토론을 하고, 연구도 하고 해서 21세기를 준비하는 대안을 만들자는 거예요. 말하자면 토지 문화관은 각 분야의 학술가들의 토론의 장이라고 말할 수 있지요.
장연희: 책에선가 본 기억이 있는데 선생님께서는 슬프고 괴로웠기 때문에 문학을 했으며, 훌륭한 작가가 되기보다는 한 인간 으로서 행복하고 싶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제가 여쭙고 싶은 것은 선생님 자신의 삶을 한 작가로서가 아니라 한 인간으로만 바라 볼 때 어떻게 평가하시고, 또 얼마큼 만족하시는지요?
박경리: 작가의 욕망. 그것은 다분히 예술지상적 요소가 있는 거지요. 또 어떤 모험도, 가령 소설을 쓰기 위해서 어디를 가고 , 자기 생애를 희생하는 건 나는 참 반대하는 입장이에요. 내가 처음에 문단에 등단을 두 번째까지 추천을 받고 대한 공문사에서 무슨 문학의 밤이 있었어요. 새파랗게 아주 뭐 젊을 때죠. 시낭송, 강연도 하는데, 막간에 조연현 선생님이 나와 박경리씨 인사 하세요 그러더라구요. 난 평생 그런데 서 본적이 없고 청중으로 있는데 갑자기. 생각도 안했는데. 그래 난 너무 놀라 가지고 나 가서 대뜸 한 말이 " 내 삶이 행복했다면 문학을 안했을 거다. 산다는 것이 슬프기 때문에 문학을 했다" 철없고 어린 내 얘기지만, 그건 내 사적인 얘기지만 크게 얘기하면 환경을 중시하는 것도 이거와 같지요. 말하자면 내가 글을 쓰기 위해 내 삶을 희생하고 뭐를 자처하고 그럴 생각은 전혀 없어요. 여기서 얘기하자면 우리 사위가 감옥소에 들어갔을 때, 우리 손주를 업 고 그야말로 상거지같이 해서 시장도 보고 그러면, 얼마나 비참한지 그때 뭐 사형선고도 받고해서 그 광장한 속인데도 그리고 사람들도 믿을 수 없어요. 모두 정보부 끄나풀이기 때문에 하여간 애 없고 시장보고 양손 다 시장거리를 들어도 그게 하나도 고 통스럽지 않았어요. 왜냐면 이 손주의 무게, 이거 너무 행복한 거 있죠. 한 생명을 짊어졌다는. 그러니 내 느낌 그건 문학 그거 아무것도 아니다. 별거 아니다. 왜냐면 나는 문학을 100번 포기하는 한이 있어도 내 손자는 내가 포기할 수 없다고 생각했어요. 그러니까 문학을 위해 뭐 어쩌구 하는 건 나에게 의의가 없고 또 하나는 문학을 위해 난 절대 불행해지길 원하지 않아요. 그러나 내가 여러 가지 고난을 겪었을 때 고난은 사람을 상당히 정직하게 합니다. 군더더기를 빼버려요 장식적 요소도 빼버려요. 그러 니까 남의 체면을 생각하고 모양도 내고, 그러니 내 영혼과 다른 외양에 두지 않아요 관을 겪을 때 그런 게 필요 없어요. 하나의 영혼으로 다 모이는 힘 이게 인제 글을 쓸 때도 그 잣대예요. 어렵고 힘들 때 오히려 글은 살아있더군요. 왜냐하면 그때 가장 고난 겪을 때 글을 쓰면 군더더기 다 버려 버리고 정직하고 삶 자체를 직시하고 하기 때문에 그럴 때 오히려 참 글을 쓸 수 있죠 .
난 삶의 값어치가 절대로 여류 작가로 토지를 쓰고 사회적으로 누구나 알았다는 그 자체가 한 인간의 행복하고는 아무 관계가 없어요. 오히려 영이라든지 말할 수 없이 고독하게 하고 허무하게 하는 게 많아요. 산골에서 호미자루 하나들고 밭메고 하면서 도시에서 아들이나 손자고 오면 객관적으로 행복이란 건 외형적으로 보아지는 그 사람이 가지고 있는 거 부귀 명예 또는 타고난 용모는 행복의 조건일 수 없어요. 행복의 질이라는 건 무엇을 기쁘게 생각하느냐 하는 거예요. 그것은 사랑이에요 애정이에요. 여러분들은 그것을 남녀 애정으로만 생각하는데 부모자식 간의 애정이에요 근원적인 거죠. 가령 곤충에도 사랑이었오. 모든 생명 에는 사랑이 있어요 예를 들면 곤충이 알을 낳아 동게동게 쌓아두고 옆에 있거든요. 자기 목으로 멕인다는 거예요. 참 그걸 사람 들은 본능이라고 하거든요. 그러나 본능이란 명칭은 통일이 없잖아요. 본능은 사람이 편의상 만든 거지 그게 본능인지 아닌지 어 떻게 알아요. 편의상 만든 거지 어떻게 알아요, 그래보면 모든 동 식물이나 자기 자손 종자에 대한 애정이란 인간보다 더 길고, 헌신적인 부분이 많아요. 그러니까 생명의 본질은 결국 혼자라는 거 어렵다는 거 살아가기가 힘들다는 거, 생명으로 태어나 힘들 다는 거, 그리고 세 번째는 어떤 것도 생명엔 자기 씨앗이나 생명에 헌신적이라는 거, 그 3가지에 도합된다고 생각하는데 그러니 까 사랑, 헌신적인 거 그게 희생이죠. 희생은 자기 몸을 바치는 것이고 그것은 사랑이죠. 그건 불행하지 않아요. 행복한 거죠. 우리의 살기 위한 시간들 중에 그런 시간은 아주 짧아요. 근데 대부분 우리 자신만 살기 위해 시간을 가져온 남들이 생각하면 객 관적인 지금 글도 쓰고 모든 사람이 이름을 알고 사실은 한 인간으로 행복하고 전혀 관계가 없어요. 다만 내가 글을 썼다는 것은 내 사는 가정이에요. 난 그렇게 살 수 밖에 없으니까 그게 다른 거지 뭐. 내가 꼭 글을 써야겠다고 생각한 적은 없어요, 한번도 . 물론 답답하면 일기도 쓰고, 시도 쓰고 하지만 내가 내부에 폭발하는 것에 의해 쓴거지 작가가 될려고 한 것도 아니고 내가 작가로 나간 것도 우연한 기회였어요. 김동리 선생의 원래 부인이 우리 선배였어요. 근데 겨울에 이사를 가 서울에 올라 왔어요. 나랑 가장 친한 친구가 방을 잡아 한적한 곳에 살았어요. 나도 그 집에 좀 살았어요. 선배 언니가 내 친구랑 내가 글을 쓴다 하 니까 김 선생님한테 말을 한 거예요. 그럼 뭐 하나 가져와 봐라 하시는 것을 너무 부끄럽고 챙피스러웠어요. 부인이 말씀을 안하 시는 거예요. 그러다 한참 있다가 삶은 좋은데 작품이 안되겠다는 거예요. 난 마루 장을 오르락내리락 거렸어요. 너무 챙피스러 워서, 그리고 그냥 집으로 와버렸죠. 그리곤 내 친구에게 그 언니에게 막 뭐라고 그랬죠. 괜히 사람 망신준다고. 나는 작가로 나 갈 생각은 없고 어디에 투고한 일도 없고 하여튼 그 언니가 하시는 말씀이 김동리 선생님한테 그건 아주 희망적이라는 거예요. 많은 사람이 원고로 가져와도 도대체 말씀은 안하신다는 거예요. 이렇다 저렇다. 내려가시면서 언니에게 하시는 말씀이 그 원고 내려면 다방으로 가져나오라 했던 거예요. 저절로 된 거예요. 김동리 선생님이 처음에는 시인 이였어요. 그래서 시를 써서 드렸 더니 소설 쓰는 게 어떻겠냐고 하시는 거예요. 그때부터 내가 소설을 쓰기 시작한 거고 소설공부도 하시는 거예요. 그때부터 내 가 소설을 쓰기 시작한 거고 소설공부도 하고자 했죠. 그러니 내가 되고자해 그렇게 된거 아니에요.
6.25때 남편 죽고 그런 것이 내가 자초한 불행도 아니고 또 김지하 들어갈 때도(오적 때문에) 난 김지하가 정치적으로 관련되 었는지는 몰랐어요. 단지 이 오적 때문에 들어간 거라고 생각했죠. 아무튼 그것도 내가 원한 건 아니죠. 그러나 예술지상주의는 난 반대입장이에요.
황현정: 선생님께서는 저희와 같은 소녀 시절이 있었을 텐데... 그때 가졌던 이상과 포부는 무엇이었으며, 지금 작가가 되지 않았다면 어떤 일을 하셨을 것 같은 지요?
박경리: 글쎄 내 성격상 한 시도 일을 하지 않고 견딜 수 없어해요. 그래서 글쓰다가 밤에 나가서 풀을 뽑고, 빨래도 하고, 냄비에 낀 때도 벗기고, 계속 움직여요. 결국 내가 만드는 본능이 강한 것 같아요. 어쩜 그게 내가 작가가 된 원인이겠죠. 난 건 축가가 되고 싶어요. 끊임없이 만드는 거, 내가 혼자있을때 그런 상황에 난 참 불편하거든요. 난 안에 혼자 있고 사람이 밖에 있 으면 난 그때 감옥에 갇힌 것 같아요. 자꾸 신경이 그리 가곤 해. 난 불편해요. 웬만하면, 내가 미장이 노릇도 하고 웬만한 도구 도 집에 다 있어요. 내가 못으로 두드려 박고 그것은 내가 마지못해서 하는 게 아니라 그런 일들 후에 오는 성취감 같은 것 때문 이에요. 저 울타리에 담쌓은 것도 대야에 모래하고 섞어 연못도 내가 만들었고, 물로 타서 콘크리트 한 것도 돌로 붙였는데, 아 침에 옷을 입고 나가 손에 장갑을 끼고 붙여나가는 거죠. 저쪽에 돌이 두리벤치라고 담 쌓을 때 세모 돌이 있잖아요. 저게 우리 산밑에 돌이라는 게 이만큼한 돌인데, 내가 매일 나가 돌을 쌓으면 야 나도 대야에다 막 눌러요. 꽉꽉 눌리면 그게 폭이 이 만큼 밖에 안 되는데, 버텨요. 그러니까 일년 내내 눌러요. 그러니까 장기전이죠. 여기 돌도 전부 내가 깎았는데 말하자면 만드는데 대한 기쁨이죠. (탁자를 만지면서) 이것도 우리 조카가 보냈는데, 맨 처음에 다 혹들이 붙어있는 거예요. 그게 너무 그로테스크 해요. 그래서 내가 밤만 되면 신문지를 마루에 깔고 끌로 내가 다 베꼈어요. 또 곰팡이도 쓸으니까. 내가 일을 하는 걸 좋아한다 기 보다는 그것은 시간과의 싸움이랄까? 아무것도 안 하는 시간과의 싸움은 괴로워요. 견디기가 힘들죠. 밤에도 맘이 답답하면 가구를 옮기는거에요. 무거운 것을 어떻게 옮기는냐하면 아주 간단해요. 담요를 깔고 그 위에 가구를 올려놓고 끌고 오는 거예 요. 들고는 못 가도. 그러나 끊임없이 일거리를 만들어요. 그러니까 우리 집에는 항상 미완성인 뭔가가 있어야 내가 안심이 돼 요. 일거리가 있어야 된다고 생각하는 거죠. 처녀 때에 내가 얘기했죠. 대담성이 있었다고. 일제 때였죠. 옷감도 없고, 엄마가 해준 새로 치마라든가 그런걸 꺼내서 가위로 뚝 잘라낸다던가, 그래 입었어요. 근데 그렇게 못할 때도 있죠. 계산을 해 완벽하게 하는 게 아니라 직감적으로 하는 거죠. 그래서 엄마가 나보고 간이 크다고 그랬어요. 어떤 만드는 대에 대한 기쁨, 문학관은 좀 다르지만 나는 글쓰기가 어려우면 노동을 해요. 노동은 휴식이고 글쓰기가 나오는 거죠. 한가지 내가 여러분에게 말씀 드리고 싶은 것은 명예를 생각하고 부를 생각하고, 그렇게 살았다면 괴로운 25년을 보내지 못했어요. 그야말로 다른 길을 택했어요. 그 러니까 그게 너무너무 괴로웠으면 돈도 명예도 지속시킬 수 없어요. 한마디로 고통과의 대결이죠. 니체는 운명에 라고 했는데, 나이를 먹으면 더 많이 그 말이 실감나요. 나에게 불행이 오면 내가 그곳에서 도망가려 하면 더 괴로운 거예요. 그런 나한테 불 행까지 쌓아가고 안아 가면 더 이상 내려갈 때가 없어요. 바닥까지 내려오는 거죠. 그러니 정직해 질 수밖에 없는 거죠. 분명 거 기에는 분노도 있고 원한도 있지만 왜 사는가 그것은 끊임없는 물음이죠. 그게 난 문학의 출발이라 생각해요. 생명은 다 물음이 있죠. 개미가 어딜 가야 하는데 어떤 사고가 있어 죽고, 다른 곤충에게 먹히기도 하고 우리가 돌을 던지면 개미 속에는 전쟁이 일어나는 거예요. 그러니 개미 사회 속에서도 삶의 어려움, 사는 동안에 뜻하지 않은 재앙이 있죠. 이 뜻하지 않은 재앙은 분노 를 느끼고 원한을 만들죠. 그런데 이것도 원한을 만들고 분노를 느끼죠. 그런데 이것도 우리가 살아가는데 있어 죽음으로써 이유 가 되는 거죠. 인간만 아니라 요즘에는 그 너구리, 나왔다가 밤에 그 안에서 먹을게 없어. 이 세상에 먹으려고 살려고 나왔다 가 차에 치여 죽고, 먹을 거 구하러 나왔는데, 그 새끼들도 있는데 새끼들은 어머니를 기다리다 죽고 인간이랑 똑 같아요. 그러 니까 끊임없는 죽음이 있는 거죠. 내가 여러분에게 말하고자한 것은 돈을 보고 명예를 보고 출발한다는 것은 반 문학이죠. 그래 서 요새 충고하고 픈 것은 학생들에게 과일나무 기르는데 멀리 내다보라는 얘기죠.
말하자면 퇴비를 주고 20년 후 좋은 과일을 딸 수 있다는 거죠. 지금 화학비료, 농약, 영양제 주고 그러면 당장 좋은 과일을 따겠죠. 당장 과일 만드는 거, 그것도 다 자본화 되 있어요. 지금 농사도 그렇죠. 순리대로 안 하잖아요. 보세요. 닭도 자연스 럽게 사는 닭이 없어요. 다 닭장에 사는 거죠. 반 자연으로 사람도 다 똑같아요. 그 아파트에 극단적으로 심하게 보면 그게 닭장 하고 똑 같은 거죠. 오늘의 현실이 다 자본주의에서 오는 거죠. 내가 전적으로 부정하는 게 아니에요. 부정적인 요소가 너무 많 은 거죠. 그럼 옛날로 돌아가라는 얘기냐 하지만 어떻게 없는 시간으로 돌아가요. 그러나 우리가 이 시간을 계속 타려면 말하자 면 전환해야 해요. 복원시키는 과학. 인간질서가 아니라 자연질서를 확립하는 거예요. 자연질서가 먼저 서야 인간 질서가 서는 거죠. 일본 문화란 인간질서가 앞서요. 앞에서도 말했듯이 피동적인 삶의 끊임없는 복제죠. 그러나 돈만 벌어요. 그러나 한계가 있는 거예요. 우리 민족이 좀 멋대로죠. 그래서 4,19도 있었던 거죠. 그러나 일본은 그렇지 않아요. 누구든지 다 정해진 자리에 선다면 위에서 주어진 것에 복종만 있는 거죠. 다 부정적이고 긍정적인 면이 있어요. 어떤 시대는 부정적인 면이 많을 수도 있 고 적을 수도 있고 새로운 이데올로기가 필요하기도 하고. 그게 완벽하다고 할 수 없거든요. 우리가 사회주의라는 건 좋은 거예 요, 인간의 이상이죠. 그러나 인간이 만들기에는 한계가 있는 거죠. 그러니까 사회주의란 것은 부정적인 면이 있다는 걸 인정해 야 해요. 왜냐하면 아무리 죽기 싫어 죽지 않을 수 없는 사람이 어떻게 완벽한 것을 만들겠어요. 근데 우리 7,80년대 학생들이 희생도 당하고 상당히 시끄러웠는데, 내가 운동하는 사람이 오면 그래요. 너희들이 그것을 절대시하기 때문에 한계가 있다. 전술 과 전략은 목적을 위한 방편이 아니냐, 전술과 전략은 한계가 있다. 또 한가지 북쪽에서 치악산을 보는 사람은 눈에 보이는 그 것만 치약산이라고 우기고 남쪽에서 바라보는 사람은 남쪽에서 보는 치약산만 치약산이라고 우긴다고요. 그러나 생각해 보세요. 치약산이란건 서,동 에서만 각도로 볼 수 있다고 봐요. 그걸 우리가 수만 가지 각도로 볼 수 있나요. 그저 하나의 개념으로 파악 할 뿐이죠. 그렇지 않아요. 치약산이라니까 어떻고 하는 거지, 우리가 치약산의 진실을 모르거든요. 그러니까 우리가 학생들도 사회주의, 사회주의 자체가 가지고 있는 좋은 유형은 사라지고 부정적인 면이 나온다구요. 하나의 이데올로기도 탄생이 있고 소 멸이 있잖아요. 문예사조도 그렇죠. 사라지고 또 새로운 유형이 나오잖아요. 그저 부정적인 것은 긍정적인 걸로 어떤 시간적으로 이끄는 거지 절대적인 건 없거든요. 그래 이제 너무 절대시했기 때문에 거의 물질만능에 너무 너무 신봉하고 그랬잖아요. 이게 이젠 한계에 도달한 거죠. 젊은 사람들 보면 아까 반문학적이라고 했던 것도 그렇고. 대충 봐서 문학은 할 수 있다. 그렇게 생 각해요. 컴퓨터다 그런 게 있어 그런 경향이 창조자 라는건 기술이 아니고, 문학도 기술화하려고 해요. 예술은 기술이 아니거든 요. 컴퓨터 같은 걸로 기술적으로 기법을 중시하고, 대학수업도 문학개론이다 뭐다 가르치는데 그것도 그렇고, 오히려 그런것은 기술이 창작하는데 저해가 될 수 있어요. 나도 그런 경우가 있는데, 나한테 자료가 많았다면 나의 창작적이고 역사적인 토지의 인물이 나오지 않을 거예요. 그 인물들은 다 창작에 의한 거지, 기록 기능에 의한 게 아니에요. 그러니까 있을 수 없는 이야기를 써도 문학적 리얼리티가 없으면 문학일 수 없어요.
박경은: 사위가 김지하 분이잖아요. 사위가 정치적 성향이 있었기 때문에 따님을 쉽게 주실 수 없었는지, 김지하 선생님도 생 명운동을 했는데 그럼 선생님과 어떤 교감이란 게 있었는지요?
박경리: 김지하도 참 개성이 강한 사람입니다. 김지하 못지 않게 나도 참 개성이 강해요. 고집도 세고요. 그러나 김지하하고 만나면 장모와 사위사이에 대화가 없어요. 그저 애들 좀 잘 길러라. 왜 그렇게 하니, 부엌에 가서 거들어 좀 줘라 하고 싸움좀 하죠. 사위 장모로 넘어선 얘기는 한적 없고 생명사상도 그것도 나는 생명사상으로 시작한 사람은 아니고 김지하는 생명사상으로 시작했는지 알 수 없지만... 토지 1부를 쓸 때 김지하가 내 사위는 아니었어요. 1부 쓸 때는 몰랐어요. 말기에 김지하를 알았죠 . 난 생명사상에 대해 딱 도장찍은 것도 아니고 내가 김지하를 보면 그럽니다. 넌 책에는 써 있는 줄 몰라도 실제적인 것에는 너 가 나를 따라 올 수 없다고, 왜냐면 풀보고 실제 자연 속에서 깨닫거든요. 이론도 그러게 아니고 작품도 틀짜놓고 쓰질 않아요. 작가가 틀 짜놓고 쓰는 건 나는... 작품 주인공이 머릿속에서 놀지요. 우리 딸이 28살에 결혼을 했어요. 그때 내가 암 수술을 했어요. 붕대도 안 풀렀는데, 김지하가 어떤 사람인지도 모르고 그때 오적이 그렇고 해 출판사 사람에게 그것을 달라고 해 읽어 보았는데, 어느 날 현대문학사 김국태씨하고 김지하하고 우리 집에 쳐들어 왔어요. 붕대도 안 풀고. 그때는 토지 1부를 쓸 땐데 밤낮 누가 찾아와도 없다고 했는데, 그때 김지하는 어떻게 왔냐면 내가 그때 현대문학에 연재를 했거든요. 그래 사무적인 일이 라 생각하고 들어오게 했죠. 내가 김지하도 잘 몰랐는데, 내 맘으로 내가 암 병중이었고 그래 불안했죠. 내가 죽으면 내 딸 저거 어떻게 하나 하는 불안한 생각이 있었죠. 근데 김지하랑 어떻게 됐는지, 김지하가 피해 우리 집에 오고 그랬는데, 그땐 우리 딸이 붙들려 갈까봐 돈주고 여관가서 자라고 그랬어요. 우리 딸 정보부에 붙들려 매라도 맞으면 그거 큰일 아니에요. 그랬더니 결혼하고 나서 왔는데 그때 그러더라구요. 아! 뭐 원한을 가지고 그러더라구요. 그래서 너도 부모 돼 봐라 그랬죠. 지금 잘 살 지 않아요. 아들 둘이고 마누라 무서워하고, 애들 하면 벌벌 기어요. 워낙 심히 약해요. 그래서 애들 하나 때려주지 못한다구요 . 김지하가 출세하는 거 보고 난 김지하가 평범한 아버지가 되어 주는 게 좋아요. 고생하는 우리 딸도 그렇고 나도 그렇고, 말 도 많죠. 그 심정은 칼끝에 서 있는 생명의 위협도 받고, 그렇게 부딪히니까 사람이 더 강해지고 맘으로 내가 바위가 되어 우리 자식들 보호해야 한다는 거, 그런 생각이 들고 이 세상에 헛된 건 없어요. 고통은 고통대로 뭔가 떨어뜨리고 가요.
전상국 교수: 요즘 집필활동은?
박경리: 요즘 내가 이 집을 지금 두고 떠나서는 문학 활동은 못해요. 그저 인제 뭐 잡일이라 할까. 문학의 이론이나 좀 쓰 고, 옆에 땀도 좀 있고 하니까 나 사실 농사짓는 거 매일 나가 농사짓는 거죠.
전상국 교수: 다음주부터 강의 나가지죠. 오늘처럼 이렇게...
박경리: 몸이, 내가 나이가 참 많지 않아요. 서울에 일주일에 한 번 나가 3시간 하는데, 그것도 못하겠어요. 올라가고 내려 가는 게 그게 안되겠어요. 그래 다음주부터 원주에서만 해요. 서울에서 듣고 싶은 사람은 내려오고, 이렇게 그것은 일주일에 한 번 하는데... 이젠 한 학기 하면 돼요. 이젠 정말 강의는 못하겠어요.
전상국 교수: 이렇게 선생님이 장장 2시간에 걸쳐 좋은 말씀 많이 해 주셨는데 선생님 말씀으로 우리를 사로잡아 주셔 가지 고요, 우리에게 올바른 잣대를 심어주시니 너무 감사해요.
박경리: 근데 참 안타까워요. 왜냐면 한 시대 세대마다 특출한 자질을 가진 사람이 있을 텐데, 사회상 교육제도가 그런 싹을 다 잘라버리는 현상이에요. 연대에서도 그랬는데 국문과가 그냥 평론화 현상, 그거 참 난센슨데 자료가 있어야 평론할게 아니에 요. 작가로 있어야 하는데 평론가만 쏟아져 나오거든요. 또 사람이 갈곳이 있냐 그건 아니거든요. 평론을 뭐 예술이냐, 학술은 예술이냐 그건 아닌데. 그게 다른 학문하고 달라서, 가령 외국의 평론가가 쓰는 것은 문학에 가깝거든요. 예술에 가깝거든요. 여 호수아 같은 사람은 망명해 [영원한 반려]라고 평론집인데, 그걸 읽으면 그건 새로운 창조 에요. 도스토에프스카 코차로프니 뭐 다 그런 작가들의 작품인데 작가하고 작품하고 똑 같이 창조적인 작업이거든요. 내가 피난을 가 머리맡에 두고 읽었는데, 똑같 이 창조적인 작업이거든요. 근데 읽고 있으면 그 세계관 굉장한 세계예요. 근데 한국을 보면 그것도 새로운 것이 아니고 전부 얘 기된 거 되풀이 여러분도 알겠지만 국문과 논문을 보면 인용으로 채우고 있어요. 인용도 토씨하나 안 틀리게 사용하는 거예요. 누구는 이리 말하고 누구는 저리 말한다. 새로움일 수 없잖아요. 그런 경향이 너무 만연되어 있는 거예요. 작가도 너무 균형을 잡지 못하고 새로운 거다. 그게 아주 당연히 갈길이라고 보는데 이걸 균형을 잡아 그러니까, 감성이 뛰는 사람 더나가 그런 천재 성을 끌어내 줄 바탕이 안 되는 거에요. 누구나 그런 머리를 가지고 있는데, 사회나 교육제도가 그렇게 안 되는 거예요. 모두가 비어 있어서가 아니라 사회나 교육제도가 그렇게 만들어요. 질문 안 하는 거 그런 생각을 안 한다는 거거든요. 생각할 수 있는 걸 자꾸 방해한다고 할까. 그게 뭐 객관식 지금도 이것에 너무 오랫동안 길들여져 있어 개개인이 따라가지 말고 자기 나름대로, 그러기 위해 진득이 독서를 해야 되요. 그런데 생각이 없다는 건 여러 가지 교육제도 사회제도가 안 되었다는 얘기도 있지만 그 다음으로 독서를 안 했다는 거거든요. 모든 지식이 다이제스트 식이고 그건 아무 쓸모가 없는 거예요. 문학 지망생들은 누구의 소설만 읽거든요. 문체를 보고 그러냐구, 그게 아닌데 사실은 삶의 문제 에요. 독서양은 참 넓어야 해요. 철학, 역사 모든지 다 방면에 넓게 읽어야 하나의 세계관이 넓게 형성되거든요. 세계관도 없고 역사관도 없이 그냥 깊이 없이 읽고 밑천 삼으려 하는데 그러니까 내가 멀리 내다보라는 거예요. 거름주고 가꾸고 심고 거두는 그런 게 그 거예요. 참 놀라울 정도로 젊은 사람들이 독 서를 안 하더라구요. 책은 많이 팔리는데 나는 반드시 문학 책만을 권하고 싶지 않아요. 일단 세계문학전집을 완전히 소화하고 요즘 나오는 개미라든지 그런 책 있잖아요.
전상국 교수: 여러분 지금 가슴이 꽝 하죠. 세계전집 얘기하시니 말이에요.
박경리: 그 재미를 붙여야 해요. 여러분 중 아마 토마스만의 [마의 산] 읽은 분이 별로 없을 거예요. 진짜 재미가 없어요. 처 음에 읽기가 어려워요. 조금 나가면 이게 막 흥분하는 것도 아니고 산을 무너뜨리는 기쁨, 아주 놓아지지가 않아요. 빨리 가는 것도 아니고 그래 읽었던 토마스 만이 얼마나 성실하고 정직했는가, 말하자면 이상적인 작가 상이죠. 천천히, 은은히 읽는 거죠. 아까운 거죠. 조금 읽고, 조금 읽고. 설탕을 만들면 하나씩 서서히 꺼내 먹는 기쁨, 바로 그거죠. 그런 재미를 붙여야 난해한 작품도 읽는 거죠. 그런 곳에서 나온 것은 옛날에 박영근, 박계주씨 같은 사람의 소설과 맏 먹는 이상한 소설이 많아요. 또 배우 도 서고 뭐도 서고 실제 작가들은 잠잠해요. 아무것도 안 하고 있는 거 같아. 그런 사람이 너무 많이 하고 뭐 아버지를 써 가지 고 적어도 심심풀이로는 몰라고 문학을 지망하는 사람은 낭비이고, 그것을 좋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문학에 대한 감성이 없다는 것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