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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9차 진안 [마이산] 산행기
일시;2004년 12월 19일 07시 30분 북문 출발
동참인원;40명
회비;2만원
1.
벌써 한 해를 마감해야 하는 올해의 마지막 달이다. 한 해를 정리한다는 마음으로 뭔가 뜻 깊은 행사로 대미를 장식해야 겠다는 생각은 갖고 있었으나 구체적인 묘안이 떠오르지 않던 차에 거사회 [금강지역]장인 박 노훈 거사로 부터 제안을 받았다. 산행지야 월초 연찬회 자리에서 거의 결정을 본지라 행사를 어떻게 꾸밀까 하고 걱정하고 있는데, 박 거사 말이
"우리 금강 지역이 망년회를 겸해 지역원과 조촐한 자리를 가질려 하는데 다정산악회 산행과 함께 하면 어떨까 해서----"
뜻 밖의 제안이었지만 궁리를 하고 있었던 상황이어서 그것도 괜찮은 거라는 생각이 들어 그 자리에서 흔쾌히 수락하였다.
우리 다정산악회의 산행일은 매월 넷째 주가 정기 산행일이지만 이번 달은 연말인데다가 여러 행사가 겹쳐 부득이 셋째 주로 옮겨서 하기로 한 것이다.
하지만 셋째 주로 옮기고 보니 여러 문제점이 대두 되었다. 가장 큰 문제점은 회원 확보였다. 그 동안은 협력적인 관계에 있는 '까치산악회' 회원들의 도움을 받아 회원 확보에 큰 어려움이 없었으나, 셋째 주는 그들과 산행일이 겹치는 관계로 우리 다정산악회가 독립적으로 회원 확보를 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지역원 수가 꽤되는 금강 지역이 총 동원 된다면 이미 회원의 반은 확보된 상태이니 나머지 반이야 그 동안의 입지로 충분히 확보할 수 있으리라는 판단이 들었다.
예상했던 판단은적중이었다. 아니 괜한 기우였다는 생각마저들었다. 인터넷을 통한 첯 메세지 광고가 나가던 날 이미 회원 확보가 끝나 버렸다. 보통은 삼 사회 나가도록 예약해 놓은 메세지 광고를 첯 회만 내 보내고 취소해 버렸다. 이제 부터는 다른 걱정을 해야만 했다. 예약을 하지 못한 회원님들의 성화를 어떻게 거절해야 하나 하는 걱정이다. 늘 믿고 자신의 자리 하나 정도는 확보해 주겠거니 하며 느긋하게 주말이 가까워서야 연락을 취하는 고참 회원님들을 어떻게 마음 상하지 않게 거절할것인가다.
궁리하던 중, 요즘 개인적인 시간이 있기에 아내와 여행을 떠나기로 마음 먹고 목요일에 차를 몰고 아내와 집을 떠났다. 휴대전화는켜 놓대 선별적으로 받으며 또 불통 지역에 있으면 거기에 신경도 덜 쓰일 것 아닌가.
오랫만에 조상 세거지(世居地)인 경북 예천를 들러 구십 노모와 형님 내외분 그리고 친척들을 만나보고 월악산 어름으로 향했다. 월악산 밑은 내가 유년기와 초등 시절의 대부분을 보낸 곳이라서 어릴적 소꿉 친구들이 아직도 고향을 지키고 있어 몇몇의 친구가 살고 있기에 그들을 만날 수 있었다. 천둥벌거숭이적 친구들과 밤이 이슥하도록 술잔을 나누며 유년기의 아스라한 추억들을 되새김하였다.
수안보 온천장에서 일박을 한 뒤 다음날 동해 바다가 있는 속초로 가서 하룻 밤을 묵고 새벽에 내설악 백담사로 향하였다. 백담사에서 다시 봉정암으로 오르고 봉정암을 오르니 아내가 설악산은 와 본적이 있지만 대청봉엔 오르지 못하였다고 한다. 기왕 온김에 원이나 남기지 않으려고 대청봉으로 향하였다. 대청봉에 오르니 벌써 해는 서산에 걸려 하산할 시간적 여유를 주질 않는다. 아무런 준비도 없이 올라 왔기에 난감했으나 어찌 되겠지 하는 마음으로 중청 대피소에 들르니 왜 예약을 하지 않고 왔느냐며 심문하듯 물었다. 사정이 여의치않아 그렇게 됐노라고 궁색한 변명을 늘어 놓으니 묵어 가란다. 대피소에서 파는 컵라면과 비상식으로 준비한 쵸컬릿으로 때우며 담요를 빌려 차가운 마룻방에서 밤을 지샜다. 다행이 미약하나마 난방 장치가 돼 있어 얼어 죽을 정도는 아니었다.
간밤을 자는둥 마는둥 뜬 눈으로 지새며 날이 밝기를 기다렸다. 이 생각 저 생각하며 밤을 지새우는데 또 다른 욕심이 동한다. 내가 설악산을 이골 저골 열심히 뒤져 능선을 탔지만, 오직 한 곳 못 타본 곳이 '서북능선'인 데 이참에 타고 가야 겠다는 생각이 불쑥 들었다. 서북능선은 대청봉에서 서북 방향으로 난 산줄기로 한계령 까지 이어진 능선이 백두대간의 주능선이고, 좌로 꺾어지는 한계령으로 가지 않고 직진해서 귀떼귀청봉을 넘어 대승령까지가 서북능선의 종점이다.
다음날 서북능선을 넘는 사이 휴대전화는 열심히 울어댄다. 산중이라 통화가 안돼는 지역이 많아 선별적으로 받으면서 장수대로 내려왔다. 오늘이 토요일이니 산행예약을 할려고 하는 전화가 많았으나 전화기에 찍힌 번호를 보고 예약 전화인 것 같으면 의도적으로 받질 않았다. 거절하기가 쉽잖은 회원님들에겐 참으로 죄송한 일이지만---.
밤 열한시가 넘은 시각에 수원에 도착하여 할인점으로 바로 갔다. 준비해갈 물품들을 사 싣고 집으로 오니 자정이 넘는다.
2.
잠자리에서 눈을 뜨니 아내는 언제 일어 났는지 도시락을 준비하고 있었다. 피곤하기도 할텐데 새벽같이 일어나 도시락을 싸는 아내를 보며 미안한 마음이들었다. 한편으론 고맙기도하구---.
아내가 북문까지 태워다 줘 도착하니 버스엔 몇 분의 회원이 타고 있었다. 시내를 가로질러 통과하니 사십 명의 회원이 동참하였다. 부득이한 사정으로 불참할 인원을 예상하여 사십 칠 명의 예약 인원을 받아 놓았는데 칠 명이 불참한 것이다.
사십 사인승의 버스는 만원이나 마찬가지였다. 인원 점검과 공지 사항, 광고 등을 마치고 지난 번 연찬회 때 선임한 두 분의 여성 부회장님의 소개와 협찬 보시한 물품의 소개와 인사 등을 하는 사이 버스는 경부고속도로를 달려 논산 쪽으로 난 새길을 달린다.(금강지역에서 떡 한말과 이 상국 거사님이 김밥 보시, 서 순덕 부회장님이 커피 보시를 하였다.)
버스는 익산 톨게이트를 나와 진안으로 달렸다. 마이산 입구의 남부 주차장에 도착한 시간은 오전 열 한 시였다. 산행 코스는 남부주차장에서 마이산의 능선을 타고 탑사로 내려와 북부주차장으로 넘어가는 코스이다.
회원들을 대동하고 매표소에서 표를 끊고 입장을 시켰다. 마지막 분까지 입장을 확인하고 뒤 따르니 앞서간 회원은 벌써 저 만치 가고 있었다. 상점이 즐비한 곳에서 좌측 샛길로 들어가야 능선을 탈 수 있을 텐데, 선두는 지나쳐 가고 있었다. 불러세우자니 하마 저 만치 가고 있어 몇몇에게 방향을 제시하니 쉬운 길로 간다고 한다. 산에서의 코스 안내는 등반대장의 소관이니 내가 이래라 저래라 하질 않았다. 나를 포함한 5명과 이미 앞서간 5명 등 모두 10명만이 능선길로 들어서고 나머지 모두는 탑사 직행길을 택한 것이다.
입새의 농로길을 들어서서 얼마 안가 산의 초입이었다. 야산같은 등로을 올라 십여 분을 올라섰을까, 능선 마루길이 나타난다.
철로 봐서는 겨울인데도 요즘의 날씨가 도통 춥지가 않으니 겨울 맛이 나질 않는다. 눈이라도 쌓였으면 그래도 덜 할텐데, 눈도 한 번 와주질 않고 날씨는 늦가을 처럼 스산함만 있을 뿐이다.
낙엽이 쌓인 등로을 열심히 걸었다. 땀이라도 나야 산에 오른 것 같기에 부지런히 걸으니 얼마안가서 등줄기에 땀이 흐른다.
[마이산]은 그 이름 값에 비해 산줄기는 미약한 편이라 험하거나 멀지가 않다. '비룡대' 팔각정에 막 오르니 안승준 고문님 일행 다섯분이 내려 갈려고 차비를 하셨다. 사진을 찍고 가시라고 하니 빨리 뒤 쫓아 오기나 하라는 듯 손사레레를 치시며 내려 가셨다. 일행(서순덕 부회장님 내외, 조남종 부회장님, 장상덕 보살님)과 사진을 찍으며 땀을 식힌 뒤 비룡대 봉우리를 내려 타기 시작하였다. 다시 능선에 올라서서 얼마 쯤 암릉 오름길을 오르니 작은 봉우리에 닿는다. '나봉암(527m)'이다. 11시 50분. 오다가 뒤처진 앞 사람들을 만났다. 안고문님 보살님과 다른 한 분의 보살님이셨다. 좀 전에 안고문님으로 부터 전화를 받았었다. 뒤쳐진 사람들을 만나면 산을 내려와서 밥을 먹을 것이니 그리로 인도하라고---.
나봉암에서 안고문님 일행이 기다리고 계셨다. 과일로 목을 축이고 사진도 찍은 뒤 다시 하산길, 십여 분 뒤 참성단이다.
산허리를 앵돌아 내려온다. 살폿한 흙길을 밟으며 암마이봉 오름길 입새에 도착하니 입산금지 표식이 있었다. 휴식년제에 해당되는 등로라 들어 갈 수가 없다. 하는 수 없이 내려 가야 할 판이다. 아까 전에 박노훈 거사로 부터 전화를 받아 알고 있었던 일이지만, 주산의 주봉을 눈앞에 두고 지나칠 수 밖에 없는 심정이 안타깝다. 오늘 동참 인원 중 열명을 제외하곤 모두 탑사 직진 코스를 탔으니 그들은 산을 탔다고 말할 수 없을 정도가 되 버렸다. 탑사 오름길은 포장된 도로를 따라 삼십분 정도만 가면 바로 당도하는 길이다. 산 입새에서 그들에게 미처 알릴 새도 없이 진행된 일이라 어쩔 수 없는 상황이었다. 그렇다고 다시 역진하라고도 할 수 없으니 난감할 일이다.
탑사 어름에 내려오니 낮 한시를 넘긴다. 공터 한켠에 자리를 틀고 앉아 밥을 먹고 가기로 한다. 모두 열명이 둘러 앉아 시장한 뱃속을 채우며 환담을 나눈다. 나도 오늘은 술을 두병이나 챙겨 왔다. 지난 달 강화 마니산 등정 때 안고문님께서 술좀 한병 주고 가라는 것을 가지고 온 술이 한병 밖에 되질 않아 거절한 것이 마음에 걸려서 였다. 여럿이 술병을 내 놓으니 여러 병의 술이 모였다. 연신 잔을 주고 받으며 병을 모조리 비울 쯤에 식사 자리도 함께 파한다.
탑사에 들러 참배를 하고, 바로 옆에 있는 은수사에도 들르고 하는 사이 시간은 훌쩍 흐른다. 약속한 세시 삼십분까지는 북부 주차장에 도착해야 겠다.
계단으로 된 길을 따라 한참을 내려오니 북부주차장이다. 일찍 내려온 이들은 남는 시간에 주차장 옆의 작은 봉우리에 다녀 왔단다. 그렇게라도 산길을 밟았으니 다행이란 생각이 든다.
3.
북부주차장을 출발한 버스는 인삼조합 전시장에 잠깐 들른 뒤 강경으로 내 달렸다. 강경의 유명한 젖갈집에 들러 쇼핑을한 뒤 금강하구 어름의 매운탕집으로 갔다. 오늘 산행 이 후의 일정은 박노훈 금강지역장과 협의하여 그의 안내를 받아 진행되는 코스이다. 그는 연고가 이 쪽이라 매우 소상히 알고 있었다. 젓갈집도 후배가 경영하는 곳이라 저렴하였고, 매운탕집도 동창이 운영하는 곳이었다.
매운탕집에서 메기 매운탕과 함께 우어 회무침이 서비스로 제공되었다. 우어는 이 지방에서만 나는 진귀한 특산물이었다. 민물과 바닷물이 만나는 지점에서만 잡히는 민물 고기로, 팔뚝만한 크기의 고기를 채썰듯 잘게 썰어 가진 양념에 무친 채소에 버무려 만든 일종의 무침회였다. 채와 함께 먹으니 감칠 맛이 있었다.
횟집을 나오니 해는 서산에 잠기어 곧 어두어 질 것 같았다. 갈길을 재촉하여 사람들을 태우고 상행 길에 들어 섰다.
생각보다는 정체가 심하지 않아 쉽게 수원에 닿을 수가 있었다. 더러는 잠을 자고 또 더러는 차안에서 소주잔을 기울이며 모두들 거나해진 상태로 무사히 종착지에 도착하여 헤어진다.
오늘도 무사히 산행을 마칠 수 있어 회원 여러분과 노고를 아끼지 않은 임원 여러분에게 감사드린다. 탄일 합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