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이션빌딩’을 향한 발빠른 움직임 ⑤
60년대 진로를 결정한 ‘월남파병 카드’
1961.11.12~11.27
11월13일 워싱턴에 도착한 박정희 의장. 1961-11-13. (국가기록영상관)
앞서 박의장은 시카고에 들러 유학생과 교민들이 주최한 환영조찬회에 참석한 후
13일 오후 4시 워싱턴 내셔널 에어포트 군용 터미널에 도착, 존슨 부통령의 영접을 받았다.
박정희 의장의 도착성명.
존슨 부통령의 환영사에 이어 박의장은 도착성명에서 “미국과 한국 상호간 여러가지
문제들을 토의할 수 있는 기회를 가지게 된 것을 기쁘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14일 백악관 방문. 1961-11-14 (정부기록사진집5)
박정희 의장은 13일 워싱턴 주미 한국대사관저에 여장을 푼 뒤 이튿날 백악관을 방문했다.
케네디 대통령이 현관에서 박의장을 영접하고 있다.
아이들의 한복을 받아들고 있는 재클린.
케네디는 박의장에게 부인 재클린 여사를 소개했다. 박의장은 준비해 온
족자와 한복을 케네디 부부에게 선물했다.
박정희와 케네디는 패기만만한 40대 중반의 동갑나기(1917년생)였다 .
케네디는 “1951년에 잠시 한국에 머문 적이 있었는데 사실 한국에 대해서 아는 것이
거의 없다”고 말했다.
케네디의 자세를 응시하는 박정희. 1961-11-14. (정부기록사진집5)
박의장을 대하는 케네디의 자세가 강자의 여유와 우월감이 지나쳐 오만무례해 보였던 장면이 있었다. .
어쨌든 두 정상은 두차례의 회담 뒤에 공동성명을 내놓았는데 그 내용은 “양 지도자는 양국간에 전통적으로 존재하는 굳은 우호적 유대 및 자유와 정의에 입각한 세계평화의 확립을 위한 공동노력을 강화할 결의를 재인식하였다”는 것과, 케네디 미 대통령이 “한국 신정부가 달성한 많은 발전상에 만족하며 한국의 장기경제개발의 촉진을 위하여 모든 가능한 경제원조와 협력을 박의장에게 확약했다”는 것을 골자로 하고 있다.
그러나 여기에 더하여 양국 관계를 획기적으로 새롭게 진전시키는 계기가 있었으니 바로 박의장의 ‘월남파병 카드’였다. 필요하다면 월남에 파병할 용의가 있다는 것.
“박대통령이 케네디 대통령에게 월남파병 용의의 의사를 밝힌 것은 누구의 부탁을 받고 한 것이 아니라 스스로 한 것이다. 미국에 대한 카드로 던진 것이다. 미국이 한국으로부터 이민을 받아들이게 된 것도 월남파병에 대한 반대급부의 하나였다.” (김종필) 이후 ‘월남파병’은 정치, 외교, 경제가 얽히고 설킨 도도한 흐름으로 이어지면서 60년대의 가장 파워풀한 진운을 동반하게 된다.
16일 내셔널 프레스 클럽 방명록에 서명하는 박의장. 1961-11-16. (정부기록사진집5)
박의장은 워싱턴 내셔널 프레스 클럽에서 군사혁명의 불가피성을 강조하는 연설에 이어
기자회견을 한 뒤, 이튿날 뉴욕으로 향했다.
뉴욕 교포들의 환영 물결. 1961-11-17. (정부기록사진집5)
뉴욕에서 박의장은 한 호텔에 숙소를 정해 놓고 있던 맥아더 원수를 예방했다. 팔순의 건강한
맥아더 원수는 진지한 기쁨의 표정으로 박의장 일행을 맞아 기념촬영을 하고 1시간 동안
환담을 나누었다.
또, 마침 그곳에는 전경련의 외자도입 교섭단이 와 있어 그들이 접촉한 미국 실업인들과 함께
박의장의 면담을 고대하고 있었다. 박의장은 한국 기업인들의 외자유치 활동을 독려하고,
확고한 경제개발의 의지로 미국 실업인들에게 신뢰를 심어주었다.
뉴욕에서 샌프란시스코로 가는 기내에서. 1961-11-20. (정부기록사진집5)
샌프란시스코에서 박의장은 미 제6군사령관 존 L 라이언 중장 자택의 만찬회에 참석했다.
이 만찬에는 윌리엄 F 딘 퇴역 소장(한국전쟁 때 북한군에게 포로가 되었던 사람)과 한국전쟁
당시 미8군사령관 밴플리트 장군도 참석해 한국전쟁 당시 한미 양측 전우들이 밤 깊은 줄
모르고 이야기꽃을 피웠다.
이후 박의장은 샌프란시스코를 떠나 21일 하와이 호놀룰루 공항에 도착했다. 하와이에서는
그곳에 망명해 와 있는 이승만 전 대통령에게 의전비사관을 보내 위문토록 했다.
모든 일정을 마치고 귀로에 오른 것이 11월24일―
11월25일 아침 김포공항에 도착한 박의장의 귀국 인사. 1961-11-25. (정부기록사진집5)
그는 귀국 인사말을 통해 이렇게 강조했다.
“미국 정부와 국민들은 우리 혁명정부와 우리 국민들이 지난 6개월 동안에 수행한 모든 개혁과 성과에 대하여 높이 평가하였을 뿐만 아니라 한국 민주주의 토대를 마련하고 강력한 반공태세를 이룩하기 위해서는 강력한 군사력의 계속적인 유지와 한국경제의 재건이 시급하다는 점을 충분히 인식하고 혁명정부가 시도하는 장기경제발전을 촉진하기 위해서 가능한 모든 원조와 협조를 계속 제공할 것을 확약한 바 있습니다.”
27일 청와대로 윤대통령을 예방하고 귀국 인사를 했다. 1961-11-27. (정부기록사진집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