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례36. 의료기관과 동일한 건물의 약국 유치
소도시에서 내과의원을 운영하고 있는 K원장은 4층 건물을 지어 4층에는 자신과 가족들의 살림집을 내고 3층은 역시 살림집으로 전세를 주었으며 2층은 자신의 의원으로사용하고 1층은 미용실을 세를 주었다. 미용실이 다른 건물로 확장해서 나간다고 하여 1층이 며칠 동안 비어 있게 되었고 K원장은 이 층을 인근 부동산에 상가 월세 물건으로 내어 놓았다. 이 건물은 비교적 도심에 있어서 왕래하는 사람들이 많은 편이었다.
그러던 중 K원장에게 약사 자격증을 가진 P씨가 찾아왔다. P씨는 약국을 개원할 만한 자리를 보러 다니다가 K원장의 건물을 알게 되었고 바로 옆 건물에는 소아과와 이비인후과가 있기 때문에 이 건물에 세를 드는 편이 유리하겠다는 생각을 하였다고 했다. 그리고 K원장이 자주 처방하는 약들을 자신에게 알려 주면 불편함이 없게끔 항상 갖춰 놓겠다고 하였고 월세도 K원장의 생각보다 좋은 조건으로 해 주겠다고 하였다.P원장은 미용실보다는 약국이 들어오는 편이 깔끔하고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리고 자신의 처방대로 잘 시행해 주는 약국이 있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이렇게 한 건물에 약국을 들이는 것이 법에 저촉되는 것은 아닌지 궁금하였다.
<윤리적 고찰>
위 사례에서 P원장은 한 건물 내에 약국을 들이는 것이 법에 저촉되는것은 아닌가 의구심을 갖고 있다. 법에서 의료기관의 시설 안이나 구내에 약국을 설치하지 못하도록 하고, 분리되어 있더라도 의료기관과 약국 사이의 전용 복도나 계단, 승강기, 구름다리 등이 설치되어 있다면 약국의 설치를 금지하고 있다. 그렇다면 이런 법규를 만들어 놓은 근본 취지가 무엇이고, 근본 취지에서 고려해야 할 윤리적인 사항이 무엇인지 생각해 보는 것이 도움이 될 것이다.
물론 의료기관의 시설 안 또는 구내에 약국 설치를 금지하는 것은 의약분업 실시 때문이다. 이러한 금지는 의사의 업무와 약사의 업무가 독립적으로 운영되어야 하고, 의료기관의 외래환자에 대한 원외조제의 원칙이 공간적, 기능적으로도 실현되도록 하려는 취지라 하겠다. 그렇다면 왜 의사의 업무와 약사의 업무가 독자적으로 운영되어야 하는 것인가? 어떤 윤리적인고려가 있는가?
첫째, 의사와 약사 사이의 경제적 이익을 포함한 경영상의 어떤 연계를 막고자 하는 의도이다. 의사의 처방은 환자의 치료를 위한 최선의 선택이어야 한다. 선택한 약이 이윤이 많이 난다거나 제약회사로부터 어떤 해택이 있다거나 하는 고려가 의사의 판단에 개입되어서는 안 된다. 이것이 의약분업이 달성하고자 하는 긍정적인 측면이라고 할 수 있겠다. 따라서 약국의 경영이 환자의 진료에 영향을 미치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 약국이 의료기관의 시설 안이나 구내에 설치되지 못하도록 한 것의 윤리적 측면에서의 고려라 하겠다.
사실 환자에 따라서는 의료기관 구내에 약국이 있는 것이 더 편리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리고 의약분업의 정신이 정확하게 준수된다면 구내에 설치되었다는 것 자체가 윤리적으로 문제라고 볼 수도 없을 것이다. 그러나 법은 이런 취지가 잘 반영될 수 있는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기도 해야한다.
따라서 위 사례에서 건물의 1층에 약국을 들이는 것이 법적으로 저촉되는 것은 아니라 하더라도 위 취지를 저해한다고 생각할 만한 사항이 발생 한다면, 윤리적으로는 문제가 있는 행위라고 할 수 있다. “월세도 K원장의 생각보다 좋은 조건으로 해 주겠다”는 제안이나 “자신의 처방대로 잘 시행해 주는 약국이 있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다”와 같은 부분은 현재 이 정도만으로는 법률의 취지를 저해하고 있다고 할 수는 없으나 모종의 연계가 발생할 위험이 있다. K원장의 입장에서는 약국이 잘 되는 것이 높은 월세를 요구할 수 있어 좋은 일이다. 약사의 입장에서도 의료기관과 거의 같이 붙어 있다고 할 정도로 건물의 1층에 위치하는 것이 더 많은 환자들이 자신의 약국을 찾게 하는데 아주 중요한 요인일 수 있다. 물론 공간적으로 가깝다는 이유만으로 의사와 약사간의 연계가 발생한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이런 연계는 의료기관과 거리상 어느 정도 떨어진 약국과도당연히 가능하다. 그러나 문제는 같은 건물에 있는 만큼 그러한 상호 이익이 좀더 가시적이기에 그만큼 주의해야 할 것으로 생각된다.
둘째, 의료기관 시설 안 또는 구내에 약국 설치를 금지하는 것은 이런 공간에 설치된 약국은 다른 약국들과 공정한 경쟁을 한다고 보기 어렵기 때문이다. 병원을 나와 여러 약국이 있다면 반드시 어느 한 약국을 찾아갈 이유는 없다. 따라서 의료기관을 나온 환자들이 이용하는 약국이란 일정한 범주의 다수 약국들이고, 또한 의료기관 근처가 아니라 자신의 집 근처 약국을 이용하는 환자들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의료기관 시설 안 또는 구내에 약국이 위치할 경우, 다른 의료기관을 방문한 사람이 굳이 이 약국을 찾을 가능성은 낮기에 약국이 설치된 의료기관의 전용 약국과 유사하게 기능할 가능성이 높다.
또한 의료기관 구내에 위치한 약국에 대해 환자들은 이곳의 약이 더 좋다거나 만약 의사가 처방한 약이 흔히 쓰는 약이 아니라면 다른 곳보다는 이곳이 그 약을 비치해 놓았을 것이라는 생각을 할 수 있다. 따라서 다른 약국보다는 의료기관 시설내의 약국을 선호할 가능성이 있다. 따라서 이런 경우 의료기관과 약국은 일대일의 긴밀한 연계가 가능해지고, 의료기관 밖에 위치한 약국과 공정한 경쟁을 한다고 보기 어렵다. 따라서 공간상의 이점으로 의료기관으로부터 혜택을 입고 있다고 인식되는 상황에서 약국은 의료기관과 특수한 관계를 유지할 가능성이 높다. 따라서 환자가 의료기관 밖에서 약국을 찾아야 하는 불편이 있을 수 있고, 의료기관 밖의 설치가 의사와 약사의 연결 고리를 반드시 단절하는 것은 아닐지라도 법은 이러한 윤리적 고려를 제도적으로 실현하는 최소한의 장치로서 위와 같은 내용을 규정하고 있다고 하겠다.
<법률적 고찰>
약사법 제16조 제5항에 의하면, 약국을 개설하고자 하는 장소가 의료기관의 시설안 또는 구내인 경우이거나, 의료기관의 시설 또는 부지의 일부를 분할·변경 또는 개수하여 약국을 개설하는 경우, 혹은 의료기관과 약국 간에 전용의 복도·계단·승강기 또는 구름다리 등의 통로가 설치되어 있거나 이를 설치하는 경우에는 약국개설등록을 할 수 없도록 되어 있다.
이 사례에서는 병원이 있는 건물의 다른 층에 약국을 개설하는 것이 약사법 제16조 제5항에서 금지하는 사항에 해당하는가 여부가 쟁점이 된다.
판례는 ‘약국을 개설하고자 하는 장소가 약사법 제16조 제5항 제2호에서 금지하고 있는 ‘의료기관의 시설 안 또는 구내’에 해당하는지 여부를 판단함에 있어서는, 그 문언적 의미와 더불어, 의약분업의 원칙에 따라서 의료기관의 외래환자에 대한 원외조제를 의무화하기 위하여 약국을 의료기관과는 공간적·기능적으로 독립된 장소에 두고자 하는 위 법률조항의 입법취지를 고려하여야 한다.’고 하고 있다.(대법원 2003. 12. 12. 선고 2002두10995판결)
이 사례에서는 층을 달리하고 있는 경우이므로, 약국이 의료기관의 시설안에 있는 것도 아니고 의료기관과 전용의 통로가 있는 경우라고 볼 수도 없다. 따라서 이 사례의 경우 법령 위반은 아니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