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누리그물 한말글 모임 모람이랑 이효상입니다.
훈민정음(한글)의 창제는
국악의 정비와 많은 관계가 있다는 글을 계속 보내고 있습니다.
국악의 정비과정 중에서 삼분손익법이 나오는 음계 중 9번째 이칙음의 소리가
높음을 듣고 지적한 내용입니다.
편경은 'ㄱ'자 모양의 경석이라고 하는 돌로 만드는데, 돌로 만들어 음의 변화가
적기 때문에 국악기의 합주시 조율에 쓰이는 악기였다고 합니다.
이 악기는 긴 쪽과 짧은 쪽의 돌이 부딪힘을 가졌을 때, 울리는 진동주파수가
서로 달라 서로 어우러지면서 나는 맥놀이파형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 맥놀이 파형은 우리가 기타를 치며 놀 때 5줄의 음을 맞출 때도 생겨나는데,
이런 맥놀이 파형이 없어질 때 바르게 음이 맞춰졌다고 합니다.
세종큰임금님은 이러한 천재적인 음감이 있어
말과 글과 뜻이 하나되는 훈민정음을 만들 수 있으셨다고 합니다.
좋은 하루^^
“아악(雅樂)은 본래 우리 나라 악이 아니고 중국의 소리이다. 중국사람들은 일상 들어 익혀서 제사에 음율을 잘 연주한다. 우리 나라 사람들은 나서부터 향악(鄕樂)을 듣다가 죽은 뒤에는 아악을 들으니 어찌 된 일인가? 더욱이 아악은 중국에서도 역대 왕조마다 제작 정리 한
것이 다 같지 않아서,
황종의 소리[黃鐘之聲 : 아악의 표준음]에도 높고 낮은 것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아악의
제도는 중국에서도 아직 완전히 정해지지 않았다.
황종관(黃鐘管)을 만들자면 그 기후 조건을 쉽사리 바꿀 수가 없다. 중국 동쪽에 있는 우리
나라는 춥고 더운 기후가 중국과 아주 다르기 때문에, 우리 나라에서 나는 대(竹)로 중국 음악의 황종 관을 만들어 쓸 수가 있겠는가? 황종에는 반드시 중국의 대를 쓰는 것이 옳겠다.”
[<세종실록> 권49 12년 9월 기유(11)]
음악의 기준음을 설정하는 것에 무엇이 기초원리인가를 바르게 알고 있다는 것이 확인되는
것이다. 이러한 작업을 구체화한 사람이 바로 세종과 맹사성(孟思誠) 그리고 박연(朴堧)에
의해 이루어지게 된다. 특히 실제 작업의 세세한 것은 지음(知音)과 악리에 정통한 박연이
맡아서 하였다. 여기서 세종의 배려와 세종 자신의 능력이 한층 돋보이는 역사기록이 세종실록에 적혀있는 것이다. 신하들에게 일을 맡기고 그 결과를 측정함에 있어 누구보다도 더
상세하게 알고 모자라는 점과 흡족한 점을 지적하고 있는 것이다. 실로 세종과 박연의 관계는 군신의 관계뿐만 아니라 그 음악을 사랑하는 마음은 서로가 같았다. 다음의 대화내용을
보면 더욱 잘 알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은 박연이 새로 만든 편경을 세종 앞에서 시험 연주하면서 생긴 일이다.
“중국의 편경(編磬)은 조율이 정확하지 않은데 박연은 참 잘 만들었다. 경돌을 얻은 일도
다행한 일이려니와 이 돌로 만든 편경의 소리는 맑고 고우며, 그 뿐만 아니라 조율도 퍽 잘
되었다. 그런데, 이칙(夷則 : 12율 가운데 하나. 9번째의 소리)의 경돌이 소리가 좀 높으니 어찌된 일인가?”
라고 그 음의 다름을 지적하고 있다. 음을 모르고 있었다면 도저히 지적할 수 없는 구체적인
부분이었다. 곧바로 박연은 경돌을 다시 세워 정밀하게 조사하고 일일이 소리를 귀기울여
들었다. 그러던 중 박연은 깜짝 놀랐다. 세종의 지적대로 이칙의 경돌에 무언가 문제가 있었던 것이다. 그것은 그가 이칙의 경돌을 만들 때 그어놓은 먹줄이 아직 그대로 남아 있는 부분이 있었기 때문에 본래 나야하는 소리가 높게 나게 된 것이었다. 등줄기로 식은 땀이 흘렀고, 더욱 세종에 대한 경모하는 마음이 생겼다. 그 즉시 그 경돌을 갈아 음이 올바로 잡히도록 고쳐 흡족한 결과를 얻을 수 있었다.
<맥놀이 파형>
주파수의 차가 근소한 2개의 파동이 간섭을 일으켜,
두 주파수의 차에 따라서 진폭이 주기적으로 변하는 합성파(合成波)가 이루는 현상.
이를테면 동시에 전해 오는 두 음이 규칙적으로 강해졌다 약해졌다 하는 현상을 말한다.
두 파동체뿐만 아니라 한 파동체에서도 진동수가 부분적으로 다를 때에는 맥놀이현상이
일어나는 경우가 있다. 예를 들면 범종(梵鐘)의 은은한 여운 같은 것인데,
이것은 재질이나 두께의 불균일, 모양의 비대칭성 등이 원인이 되어 종의 각 부분에서
다른 진동수의 소리가 나오기 때문에 생기는 맥놀이의 일종이다.
단 소리가 똑똑히 들릴 경우의 맥놀이주파수는 6∼7Hz 이하일 때이며,
그 이상이면 소리가 흐려 분간하기 어렵다. 또 두 주파수가 같으면 맥놀이는 사라진다.
이 현상은 이미 알고 있는 주파수에 의해 다른 미지의 주파수를 알아내는 데 이용된다.
전기적인 파동일 경우에는 이 밖에 주파수의 변환에도 이용되는데, 라디오의 헤테로다인
방식이나 수퍼헤테로다인 방식 등의 수신원리는 이를 응용한 것이다.
< 편경 >
이 악기는 본래 중국 고대의 대표적인 악기로
한국에는 1116년(예종 11) 송나라의 대성아악(大晟雅樂)과 함께 들어왔다.
그러나 악기를 만드는 경석(磬石)이 희귀하여 중국에서 구하거나
흙으로 구운 도경(陶磬)을 대용하기도 하였다.
그러던 중 1425년(세종 7) 경기 남양(南陽)에서 질이 좋은 경석이 발견되어 이를 박연(朴堧)
·
맹사성(孟思誠) 등이 갈고 닦아 중국의 석경보다 좋은 편경을 만들어 내게 되었다.
두 개의 방대(方臺) 위에 백아(白鵝) 한 쌍을 앉히고 그 위에 나무틀[架子]을 세워
양편에 봉두(鳳頭)를 조각하였으며 틀 위에는 다섯 마리의 목공작(木孔雀)을 세워 장식하였다.
이 틀에 16개의 ㄱ자 모양의 석경을 8개씩 두 줄로 나누어 걸고 각퇴(角槌)로 쳐서 소리를 내는데
반드시 긴 쪽인 고(鼓)의 끝을 쳐야 한다.
음역은 12율 4청성(十二律四淸聲) 즉 황종(黃鐘:C音)에서 청협종(淸夾鐘:d#音)에 이르며
음색은 매우 청아하다. 편경은 습기와 건조, 추위와 더위에도 음색과 음정이 변하지 않아
모든 국악기 조율의 표준이 되고 있다.
《대전통편(大典通編)》에 종 ·경을 다룰 때 잘못하여 이를 파손한 자에게는
태장(笞杖) 일백, 도형(徒刑) 3년의 벌을 규정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 이 악기의 소중했음을
짐작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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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 석 >
옥돌이라고도 한다. 처음에는 이러한 악기들을 중국에서 들여다 썼으나,
1425년(세종 7) 경기도 남양(南陽)에서 무늬가 아름답고 소리가 맑은 경석을 발견한 뒤부터는
직접 만들어 사용하였다. 편경은 경석을 ‘ㄱ’자 모양의 같은 크기로 깎아 16매를 매달아
만드는데, 크기는 같으나 두께에 따라 음높이가 다르다. 남양 외에도 평안도 성천,
함경도 단천에서 생산되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