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국 시대란?
지금까지 한국사에서는 고구려?백제?신라의 삼국시대를 거쳐, 신라가 삼국통일을 이룬 이후의 시기를 ‘통일신라시대’라는 용어로 설명해왔다. 그러나 신라가 병합한 고구려의 영토는 전체 중 극히 일부분이었으므로, 그것이 진정한 의미의 삼국통일인가에는 의문의 여지가 많았다. 오히려 발해야말로 정신적, 제도적 측면에서 고구려를 계승했다는 의식이 강하게 남아있으므로, 발해사를 포함하지 않는 ‘통일신라시대’라는 용어는 불완전한 것이었다. 따라서 발해를 한국사의 범주에 넣는다면 발해와 통일신라를 둘 다 아우를 수 있는 포괄적인 시대개념이 필요하다고 할 것이다. 이런 필요에서 등장한 이론이 ‘남북국시대론’인 것이다.
‘남북국’이라는 용어는 1784년, 정조 때의 학자인 유득공의 『발해고(渤海考)』에서 처음 등장한다. 그 후 ‘통일신라시대’라는 용어 대신 ‘남북국시대’라는 용어가 다시 학계의 주목을 받게 된 것은 지난 1975년에 한국사학자인 이우성(李佑成)의 주장에 의해서였다. 당시에는 이 주장이 그다지 호응을 얻지 못하였지만, 1980년대에 들어서 남한에서 발해사 연구가 활기를 띰에 따라 점차 발해사를 전공하는 학자들을 중심으로 이 논의가 제기되었다. 이후 1990년 이후에는 마침내 고등학교 국사 교과서에서도 통일신라와 발해의 세부 항목들을 ‘남북국’이라는 소제목 아래에 다루고 있다. 이로써 발해사는 ‘한국사의 미아’, 내지는 ‘한국사의 부록’이라는 모호한 이미지에서 탈피하여 한국사상의 제 위상을 찾게 되었다.
그러나 남북국시대라는 용어의 사용에 반대하는 주장도 만만치 않다. 우선 발해사가 한국사의 범주에 속하는가의 문제는 접어두더라도, 발해와 신라는 하나의 통일체에서 갈라진 것이 아니므로 남북국시대라는 용어를 사용할 수 없다는 주장이 있다. 이것은 주로 북한 측의 입장이 반영된 것이다. 다시말해서 남북국시대라는 용어를 부정하는 것은, ‘남북국’과 ‘남북한’을 동등한 입장으로 볼 수 없다는 정치적 태도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북한은 발해사를 남한 측보다도 더 강력히 한국사의 범주에 넣고 있다. 이것 역시 현재 발해지역의 일부를 차지하고 있는 북한으로서는 당연한 이유일 것이다. 한편, 북한 측의 주장은 발해사를 중국사로 편입시키려는 중국에 의해 지지받고 있다는 점에서도 다소 오해의 소지가 있다고 하겠다.
이와 유사한 반대 이유는, 당시 발해와 신라 또는 발해와 고려 사이에 동족 의식이 존재하지 않았다고 주장하는 경우이다. 이것은 국내의 일부 학자들에게서도 제기되는 문제이다. 일본 학자들 중에는 신라가 발해를 ‘북국’이라고 한 것은, 북쪽에 위치한 동일민족을 표현한 것이 아니라, 단순한 방위 개념에 불과한 것이라고 지적하였다.
이 외에도 발해와 신라가 후대의 한국사에 어떻게 계승되었는가의 문제를 들어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도 있다. 신라와 발해가 그 당시에는 대등한 국력을 가지고 있었다고 해도 현재적 관점에서 볼 때, 신라사가 발해사보다 한국사에 보다 큰 비중으로 계승되어 있음을 부정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이상과 같은 문제제기에도 불구하고 남북국시대는 이제 보편적인 용어로 자리잡아가고 있는 듯하다. 그 이유는 첫째, 민족통일체 의식의 있어야만 남북국이라는 시대구분을 할 수 있다는 논리가 그다지 타당성이 없기 때문이다. 즉, 8세기에서 10세기까지 신라와 발해가 동일한 한국사의 범주에 속한다면, 남북국이라는 용어가 그 시대를 서술하는데 적합하게 사용될 수 있다는 주장이다. 또한 계승성으로 인한 비중은 지극히 현재적인 관점이므로, 당시의 상황을 객관적으로 서술하는 데 있어 그러한 비역사적인 관점이 기준이 되어서는 안된다는 것도 설득력을 얻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