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생 만앗지야
하솔식당은 교회 사무실 식구들의 두레밥상에 붙인 정겨운 이름이다. ‘모난 밥상을 볼 때마다 어머니의 두레밥상이 그립다’던 어느 시인의 고백처럼 밥을 먹으러 다니는 것이 고역처럼 느껴질 무렵 우리는 독립을 택했다. 우리는 ‘외식하지 말라’는 성경 말씀대로 산다는 말장난으로 시작한 밥상공동체, 반찬은 각자 집에서 싸오고 밥은 함께 지어 먹는다. 시간을 절약할 수 있으니 좋고, 사람들 속에서 복닥거리지 않아도 되니 즐겁다. 누군가가 별식이라도 가져오는 날이면 칭찬이 늘어진다. 그래야 다음을 기약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오늘의 주 메뉴는 병어조림이었다. 바특한 병어조림을 먹으며 행복했다. 음식 맛도 맛이려니와 그 병어조림에 덤으로 딸려온 이야기가 오히려 알천이었다.
병어조림을 싸 온 이가 들려주는 이야기에는 물기가 묻어 있었다. 그에게 병어를 가져다 준 이는 생선을 떼다 파는 것으로 생업을 이어가는 먼 일가붙이였다. 시간이 생명인 직업인지라 늘 분주한 데도, 계절이 바뀔 때마다 그는 계절의 진미라며 이런저런 생선을 가져다주었다. 가깝지도 않은 거리를 마다지 않고 찾아오는 그 정성스러움에 기껍지 않을 사람이 있을까? 물기어린 음성으로 이야기를 들려주던 이는 그를 가리켜 “자칫하면 끊어질듯 위태로운 우리의 가족 관계를 이어주는 든든한 실”이라고 말하고는 입을 닫았다. 그는 어떻게 조각난 마음을 이어주는 실이 될 수 있었을까? 아우구스티누스 성인은 죄인이란 ‘자기 자신 안으로 꼬인 인간’을 이르는 말이라 했다. 죄는 따라서 자신에게 갇혀 하나님과 이웃을 향해 마음을 닫는 것이라 할 수 있겠다. 타인을 향한 배려와 애태움이야말로 사람과 사람을 이어주는 실이 된다.
음악 용어 가운데 레가토라는 것이 있다. 둘 이상의 음을 이어서 부드럽게 연주하라는 표시를 이르는 말이다. 사람도 레가토가 될 수 있다. 조각난 마음을 이어주어 서로 통하게 만드는 사람들, 그들이야말로 레가토로 살아가는 이들이다. 요한복음은 “태초에 ‘말씀’이 계셨다”라는 장엄한 어구로 시작되어,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그 말씀으로 말미암아 창조되었다는 고백으로 이어진다. 말은 뭔가를 창조한다. 물론 그 말은 발화된 말뿐만 아니라, 몸짓이나 눈짓 혹은 표정 속에 감춰진 말도 포함해서 하는 말이다. 지금 우리 시대를 횡행하는 말들이 창조하고 있는 것은 무엇인가? 불신, 미움, 갈등, 거친 심성, 냉소 등이 아닌가?
모임에서 고두현의 시 <늦게 온 소포>를 함께 읽었다. 서울에 사는 아들은 남해에 계신 어머니가 부쳐온 소포의 포장지를 뜯으며, 그 서투른 글씨로 동여맨 매듭에서 주름진 어머니의 손마디를 느낀다. 남루하기도 하고 쓸쓸하기도 한 풍경이 아령칙하게 떠오르는 순간, 시인은 어머니가 보내온 편지를 소개한다. “큰 집 뒤따메 올 유자가 잘 됐다고 몇 개 따서/너어 보내니 춥을 때 다려 먹거라. 고생 만앗지야/봄 볕이 풀리믄 또 조흔 일도 안 잇것나. 사람이/다 지 아래를 보고 사는 거라 어렵더라도 참고/반다시 몸만 성키 추스르라”. 모임에서 이 시를 함께 읽은 사람들은 누구나 눈시울이 시큰해졌다. 구어체 시어 속에 담긴 것은 어머니의 따사로운 마음이었고, 동시에 든든함이었다. 이 각박한 시대에 듣는 ‘고생 만앗지야’라는 위로의 말은 의례적이 아니기에 더욱 치유의 말로 다가온다. ‘봄 볕이 풀리믄 또 조흔 일도 안 잇것나’. 이 말은 별별 꼴을 다 보며 땅에 엎드려 살아온 노인의 말이기에 더욱 울림이 크다. 철저한 낙관주의라는 어려운 말을 쓰지 않아도 이 말 한 마디는 이 덧거친 세상을 살아가야 하는 아들딸들에게 큰 힘이 되지 않겠는가.
욕망과 욕망이 충돌하는 굉음 속에서 멍들고 찢긴 마음들이 거리를 서성인다. 따스한 말, 진정한 말 한 마디 그리워서다. 사람과 사람 사이를 이어주는 말, 잃어버린 살맛을 되찾게 해주는 말의 주인은 누구인가? 이 쓸쓸한 계절에 수능 시험을 보느라 지치고 지친 아들딸들에게 사랑의 인사를 건넨다. ‘고생 만앗지야’.
지금 숙대교수로 근무중인 연세대후배가 있어요.
참~ 돌아보니 그 후배랑 인연이 긴 사이네요.
고녀석은 국문학과 난 영문학과....1년 차이
여름방학때 <거지 순례>란 것을 갈 때 같은 조원이었는데
가정형편을 알게 되었지요.
배다른 형제간 사이에 막내아들
교회나 선교단체의 신앙생활과 일상 삶속에서의 갈등을
참으로 담담하게 털어놓고 "누나는 어때요?" 빙그레 웃더라구요.
"비슷한 고민한 적 많아. 살아있는 존재에게 고민거리가 왜 없겠니?
아무튼 말하기 힘든 가정사까지 몽땅 털어나줘서 고맙구나.
앞으로도 네 얘길 잘 들어주는 것으로 누나는 네 진심보여준 것에 답할께."
그래서 고녀석 군복무때 편지를 부지런히 보냈고
제대하고도 대학원거쳐 취업하고 그후 유학다녀와 숙대에 자리잡은 후
대학로에서 만나 두 아이의 애비가 된 얘기를 편안한 표정으로 들었고
-미국유학중에 전자메일을 주고받아서 쉽게 통했지요-
지금도 한결이 주간일지에 가끔 자기소식을 보내주는 후배입니다.
그녀석이 숙대다니며 찾아낸 교회가 김기석목사님이 책임맡고 있는
1호선 남영역부근 청파교회인데 책읽고 고민하며 사는 모습이 누나가 좋아할 것 같다고
홈피를 소개해줘서 찾아들어갔더니 목사님이 독후감정리해둔 코너가 있더군요.
-홈피 맨 윗줄 목회 칸 아래 클릭 목사님글 란-
아래는 한겨레신문에 실린 그교회 소개 복사해보냅니다.
정선배
하여간 어머니 병간호 하시고, 요즘 고생 많으세요.
나중에 이렇게 지인들에게 보낸 글들 다 모아서 책 한권내세요.
다 기록물이고, 소중한 흔적들 남에게 은혜도 될겁니다.
책도 잘 팔릴거 같습니다.
잘 지내고 있고요, 저는 노무현 죽음 이후로,, 여러가지 생각들.. 여기 학교 시국선언에도 서명하고..
나이가 들수록, 이런일을 겪을 수록 생각할수록 고민을 많이하게 되네요..
후배들에게 정말 해주고 싶은 말들이 많은데..
시간 나면 청파감리교회 (www.chungpa.or.kr) 김기석 목사 주일설교 파일로 다운받아 들어보세요..
그래도 예수의 진정한 의미를 살리려고 애쓰는 목사도 있음을 봅니다.
여름 잘 나시고요..
첫댓글 저녁에 친정엄마일로 급히 해결해야할 일이 있어.. 건성 읽고 나갑니다.. 이따가 다녀와서 찬찬히 음미하듯 읽어보지요 좋은 사람이 주변에 많아서 한결님은 마음만은 누구도 부럽지 않은 재벌이겄어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