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減膳撤樂[감선철악]이란 나라에 변고가 있을 때 근신하는 뜻에서
임금의 밥상에 음식 가짓수를 줄이고 음악을 폐하던 일을 말하며 나라의 변고란 천재지변으로
태풍, 홍수, 호우, 폭풍, 해일, 폭설, 가뭄, 지진 등 자연계의 변화로 받는 재난을 말한다
인재가 아닌 자연재해에도 임금은 스스로를 돌아보며 백성의 안위를 살폈다
무소불위의 권력을 행사하며 모든 것을 다 가졌을 것만 같은 조선시대 왕도
자신의 존재기반이 되는 근본은 어디인지를 늘 생각하였다는 뜻이다
조선의 재해재난 전래이야기-기타
점복
01.사대장전
중국 진나라 시절 기주 소흥현에 사는 사인이란 명관은 만년에 서천 추월사에 가서 발원하고 기남자를 얻어 이름을 안이라 하였다. 사안은 자라면서
말달리기와 활쏘기를 좋아하며, 8세에 이르러서는 경서와 병서를 달통하고 천지조화를 가슴에 품는다.
하루는 한 도인이 와서 사안의 관상을 보고 15세를 무사히 넘기면 부귀와 공명이 당세에 으뜸이 도리라 하며, 외유를 시키면 면액할 수 있다 하고는 간다.
사공은 안이 13세가 되매 명승고지를 찾아 유람하고 돌아오라 하면서 내보낸다. 사안은 한 종복을 데리고 사방을 유람하며 낙양에 이르니 그의 나이 15세가 되었다. 김덕만이란 집에 묵으면서 주인에게 자기의 운명을 이야기 하였더니, 신통한 영무가 있으니 같이 가서 문복해 보자고 한다. 그 무당이 대경하며,
“공재 명일 자시에 명을 맞힐 거시니 차악하도다. 공재 액을 면코자 하시면 고문대가에 황가 처자로 인연을 이루어야 그 대명을 보전하리니, 명일 자시 전에 어대가 황 처자로 인연을 일우리오. 황가 여자를 취하기는 죽는 이에서 다름이 없으리니, 내 이같이 지휘함이 수재 요량하야 처치를 엇지 할는지 모르노라”
하는 것이다. 김덕만은 돌아와 너의 참사를 차마 볼 수 없다고 하며 나가라는 것이다. 사안이 김덕만의 집을 나와 주점에서 쉬고 있는데, 때마침 황 승상의 집 유모가 망부의 기제를 지내려고 본가에 나와 치제하니, 망부가 그녀의 꿈에 나타나 명일 년 시에 만나는 공자의 소원을 소취해 주라고 지시한다.
그 유모가 돌아가는 길에 사안을 만나 그의 소원을 듣고, 밤중에 사안을 인도하여 황 승상의 딸이 있는 별실로 들어가게 한다. 사안이 황 소저의 방으로
들어가 그 소저에게 신상을 고백하니, 황 소저는 사안의 기상으로 장차 왕후장상이 될 수 있으리라 생각하고 백년의 가약을 맺는다. 그날 밤 자시가 되자
신장이 나타나,
“소아의 명이 다하였사기로 내 잡아가랴 왔더니, 대안 왕비 황씨의 복록이 장원하니 차마 수행하지 못 하리로다.”
하며 돌아간다. 날이 새자 사안은 황 소저와 후일의 상봉을 기약하고 작별하고 나와, 과거에 장원급제하고 황 승상을 찾아간다. 황 소저가 부친에게 홍패를 보여 달라 하고는 품에 품고 내놓지 않으매, 황 승상은 딸의 마음을 짐작하고 사안으로 택서하고자 한다. 사안이 거짓 거절하니, 황 승상이 황제를 움직여
구혼한다. 사안은 마지 못하는 듯이 허혼하고, 종복을 고향으로 보내 부친께 고하게 한다.
사공이 대희하고 상경하니, 황제는 사공으로 초공을 봉하고 식읍 천호를 하사한다. 이때, 대안왕과 남만왕이 동심모역할 새, 황제는 사안으로
평북장군대사마를 삼아 출전하게 한다. 사 원수가 출전하여 양적을 격파하고 항복을 받아 개선하니, 황제는 사 원수로 대안왕을 봉한다는 것이다.
* 이 작품은 1926년 1월 29일 황학서포에서 발행한 활자본(pp.33)인데, 6회로 되어있는 회장본이다. 그리고 필사본으로 ‘사안전’이 있다.
02.홍계관·연산군
맹인 홍계관은 점복으로 이름이 났다. 연산군이 그를 불러 시험하니 모두 잘 맞히므로 매우 미워했다. 하루는 연산군이 책상 위에 역서를 올려놓고,
홍계관에게 책상 위에 무엇이 있는지 물었다. 홍계관이 점을 치더니, “태세가 임금 앞에 있고, 여러 신이 사방에 벌려 있다.” 라고 했다.
또 노랑색 귤을 손에 쥐고 홍계관에게 점을 치라 했다. 홍계관은 “만약 황계란이 아니면 동정호의 귤이로다.” 하고 말했다. 이어서 연산군이 쥐를 한 마리
손에 감추고 무엇인지 점을 치라 했다. 홍계관은 “네 발 짐승으로 낮에는 숨고 밤에 활동하며, 굴 뚫기를 좋아하니 틀림없이 쥐입니다.” 하고 말했다. 그래서 임금이 다시 몇 마리냐고 물으니, “네 마리입니다.” 하고 아뢰었다.
곧 연산군은 한 마리를 네 마리라고 틀리게 대답했다고 해 사형에 처했다. 홍계관이 사형장에게 말하기를, “미처 말하지 못한 것이 있다. 그 쥐는 암쥐로 새끼 세 마리를 배고 있으니 그래서 네 마리라고 한 것이다.” 라고 했다. 이 얘기를 전해들은 왕이 쥐의 배를 갈라보게 하니 과연 뱃속에 새끼 세 마리가 들어
있었다. 임금이 급히 명령을 내려 사형을 중지하라 했는데, 이미 사형이 집행된 뒤였다. (연산군)
03.홍계관·점복
홍계관은 본래 양주의 향족이었다. 유복 독자로 태어난 맹인으로, 그 모친이 집 뒤 돌부처 앞에 나아가 늘 빌면서 ‘아들이 사람 노릇을 할 수 있게 해 달라’고 치성을 드렸다. 집이 가난해 이웃집 일을 해주고 얻은 음식이며, 또 남의 잔칫집이나 제사 음식이라도 생기면 항상 그 돌부처에게 가져가 제를 지내고 먹었다.
홍계관 나이 15세 때, 하루 밤에는 꿈에 돌부처가 나타나 점치는 일에 대해 시키는 대로만 하라고 일러 주었다. 그래서 이튿날 아침 집 앞에 나가 앉아
있으니, 한 사람이 와서 점을 칠 줄 아느냐고 물었다. 홍계관이 점을 친다고 하니, “어제 저녁 사냥매가 없어졌는데 어디에 있는지 점을 쳐 달라.”고 했다. 곧
홍계관은 점을 쳐서 “아무 재상집 벽장 속에 있다.”고 일러 주었다.
이 사람이 그 재상집에 가서 사실을 말하고 사냥매를 찾으러 왔다고 했다. 재상이 매를 내주고는 점을 쳐주었다는 홍계관에게 와서, “우리 집 외동아들이
병이 났는데 온갖 약을 써도 낫지 않으니, 그 병을 좀 고쳐 달라.” 하고 사정했다. 곧 홍계관은 점을 쳐서 “어떤 약을 쓰면 차차 나아지고 며칠 지나면 완전히 낫습니다.” 라고 말해 주었다.
재상이 반드시 병이 낫겠느냐고 다짐하니, 홍계관은 틀림없다고 말한 다음, “만약에 아들 병이 낫고, 집에 1천금이 생기면 나에게 사례로 그 돈을
다 주시겠습니까?” 하고 물었다. 재상은 그렇게 하겠다고 약속했다. 재상은 아들에게 홍계관이 일러 주는 약을 쓰니, 그 말과 같이 병이 나았다. 그리고
재상이 전에 이조판서로 있을 때, 지방 관장으로 임명해 준 사람이 편지와 함께 1천 냥을 보내왔다. 재상은 곧 홍계관에게 그 돈을 모두 보냈다.
이날 밤 꿈에 다시 돌부처가 나타나, “그 돈 1천 냥을 가지고 선물을 마련해 아무 술사에게 가서 바치고 제자가 되어 점술을 배워라.” 하고 현몽했다. 꿈을
깬 홍계관은 그 술사를 찾아가 점복술을 모두 배워, 스승보다도 더 우수한 점복술을 지니게 되었다. 그리고 어려운 문제에 부딪히면 돌부처가 수시로 현몽해 가르쳐 주었다.
인조반정 후 그 재상이 홍계관을 임금에게 추천해, 국정에 많은 도움을 주었는데 언제 사망했는지는 알 수 없다.
04.홍계관
맹인 홍계관은 점을 잘 쳤다. 하루는 비가 내리는데 한가로이 앉아 있다가 아이를 시켜, “대문 밖에 오늘 죽을 사람이 있으니 쫓아버려라.” 하고 말했다.
아이가 나가 보니 어떤 소년이 대문에서 비를 피하고 있었다. 소년이 그 얘기를 듣고는 들어와 홍계관에게 절하고 살려달라고 애원했다. 이에 홍계관은
소년에게 말하기를,
“저녁 때 동대문에 가 있으면 나막신을 신고 땔나무를 지고 오는 사람이 있을 테니, 그 사람을 따라가 오늘밤을 같이 지내면 살 수 있다고 일러 주었다.”
소년이 곧바로 동대문에 가서 기다리니, 과연 저녁때 나무를 지고 오는 사람이 있어서 따라가니, 그 사람은 훈련원으로 들어가 밤을 지내는 것이었다. 소년이 따라가 함께 있으니 밤중에 여자 귀신 울음소리가 은은히 들리고 가까이 오더니 앞에 와 엎드리면서,
“공께서는 제 원수를 내주십시오.”
하고 애원했다. 이 사람이 귀신을 꾸짖으며 물러가라고 소리치니, 귀신은 들락날락하며 주위를 맴돌다가는, 새벽닭 울음소리가 들리니 어디론가 사라졌다.
소년이 홍계관에게 와서 사례하고, 자기를 구해 준 사람이 누구인지를 물으니, 홍계관은 “잠곡 김육인데 담력이 강해 능히 귀매를 제어한다.”고 말했다.
(조선 중기)
05.영남선비
한 영남의 선비가 시골에서 실시한 향시에는 여러 번 합격했지만, 서울에서 보는 회시에는 계속 낙방해 가산이 거의 탕진되었다. 마침 또 회시의 소식이
있어서 다른 때와 마찬가지로 마을의 점복사 김씨에게 가서 점을 쳤다. 김씨가 말하기를, “이번에는 과거는 고사하고 큰 액이 있으니 어찌 하리?” 하고
걱정했다. 그래서 선비는 김씨에게 액을 면할 수 있는 방법을 애걸하니, 김씨는 다시 점을 치더니 다음 같이 말했다.
“이번에 액만 면하면 급제는 하게 되어 있다. 지금 바로 출발해 50리 길을 가서 여사에서 자고, 내일 아침 산 고개를 넘으면 골짜기 시내에서 빨래하는
소복 여인이 있을 테니, 그 여인과 무슨 방법을 쓰더라도 통정을 해야만 액을 면하고, 급제도 할 수 있다.”고 일러 주었다. 그래서 집에 가서 준비를 해서
가야 한다는 종을 꾸짖고는 재촉해 바로 길을 떠났다.
김씨가 50리 길을 가서 주막에 자고 이튿날 산 고개를 넘어 계곡으로 들어가니, 과연 한 여자가 빨래를 하는데, 옆에 소복을 입은 젊은 여인이 서 있다가,
선비를 보고는 빨래하는 여자를 독촉해 집으로 돌아가는 것이었다. 그래서 여인을 따라 가서 그 집 사랑으로 들어가니, 사랑에는 먼지가 쌓여 있었고 남자는 보이지 않았다. 곧 사랑에서 쉬고 있으니 얼마 후 한 노인이 와서 말하기를, “이 집은 내 죽은 아들 집인데, 청상과부인 자부만 있으니, 이웃의 내 집으로 가서 묵어가도록 하라.” 하면서 따라올 것을 독촉했다. 그러나 선비는 여기 사랑에서 하룻밤을 묵고 가겠다고 우겨 따라가지 않으니, 노인은 할 수 없이 돌아갔다.
밤에 집 사방을 살피니 담이 높아 안으로 들어갈 수가 없었는데, 한 곳에 가니 담이 허물어진 곳이 있어서 넘어 안으로 들어갔다. 마구간 앞을 지나가니
큰 말이 사람을 보고 소리하며 서 있고, 불이 켜진 한 방을 살피니 이불만 펴져 있고 아무도 없었다. 그리고 건너편 방에는 서너 명의 여인들이 웃고 떠들고
있었는데, 보니까 낮에 냇가에 서 있던 소복 여인도 거기 있었다.
선비는 이불만 펴진, 아무도 없는 방으로 들어가 불을 끄고 기다리고 있었다. 얼마 후 그 여인이 오더니 혼잣말로 이상하게 불이 꺼졌다면서 어물거리다가
들어왔다. 선비가 인기척을 하고 사람이 있음을 말하니, 여인은 놀라면서 무슨 도적이 여인 혼자인 방에 들어왔느냐고 물었다. 그래서 선비는 도적이 아니고 생명을 구해야 하기 때문에 왔다고 말하고, 점쟁이의 말을 일러 주었다.
얘기를 듣고 있던 여인은 “이것은 하늘이 정해준 인연이다.”고 말하고 지난 밤의 꿈 얘기를 했다. 꿈에 골짜기 냇가 서쪽에서 황룡이 나와 사람으로 변했는데, 옆에 있는 사람이 가리키면서 “이 사람이 네 남편이다.” 라고 말했다. 그래서 낮에 여자 종이 빨래하는 데를 따라 나가보았는데 서방님을 만났고, 곧 모습이
꿈속의 남자와 같았다는 것이었다.
여인은 부잣집 딸로서 16세에 시집와 17세에 과부 되어 지금 19세라고 했다. 그러고 낭군님의 점괘와 자기 꿈이 부합되니 하늘이 정해준 것임에 틀림없다고 말하고, 드디어 두 사람은 옷을 벗고 이불 속으로 들어가 억눌렸던 가슴을 열어 운우지정을 나누었다.
일이 끝나고 여인은 다락에 올라가 감추어 두었던 비단과 보물을 싸서, 마구간의 말에 실어 주면서 말했다. 이 말은 남편이 타던 말인데 매우 잘 달리니, 종을 시켜 밤에 집을 빠져나가 멀리 가서 어느 지점에서 만나기로 약속하고, 낭군님은 사랑에서 잔 것처럼 해 뒷마무리를 한 다음 내일 아침에 떠나라고 했다.
그러고 여인은 담 한 곳을 무너뜨려 놓고 들어갔다.
선비가 사랑에 나와 있으니 새벽에 여인이 울면서, “남편이 타던 말을 애지중지했는데 도둑놈이 몰고 갔다.”고 하면서 소리를 지르며 소란을 피웠다.
곧 시아버지와 남편 형제들이 와서 사랑의 선비를 도둑이라고 때리려 했다. 선비는 도둑이면 이렇게 앉아 있겠느냐고 말하고, 자기를 따라온 종이 없어졌다고 하니, 사람들도 모두 그 종이 도둑질해 간 것으로 알았다. 그리고 노인은 미안하다고 하면서 집으로 데리고 가서 아침밥을 먹여 보냈다.
집을 나온 선비는 약속 장소에서 종을 만나고, 곧바로 상경해 과거를 보아 당당해 급제했다. 다시 고향으로 돌아오는데, 중간에 몇 명의 종이 기다리고
있다가 “새로 급제한 낭군님이 아니십니까?” 하고 물었다. 선비가 그렇다고 대답하고 안내하는 종을 따라 가니, 그 여인이 이미 친정에 가서 지난 모든 얘기를 다 하고, 선비를 따라갈 준비를 하고 있었다. 여인 친정에서는 결혼식과 같은 성대한 잔치를 준비했었고, 그래서 즐거운 신혼의 밤을 또 지냈다. 이후 선비는 여인과 함께 집으로 돌아와 행복한 생활을 누릴 수 있었다. (조선 후기)
06.한 선비
한 선비가 나이 30세를 지나 한 아들을 낳았는데 6, 7세가 되면서 매우 비범했다. 하루는 맹인 점복사에게 아이 장래를 점치니, “이 아이는 15세 넘으면 크게 귀하게 되는데, 장가를 들어 횡사할 액운이 있다.” 하고 말했다. 그래서 맹인에게 액을 면할 방법을 일러 달라 하니, 점쟁이는, “결혼 후 하루도 신부와 함께
잠자지 말고, 결코 처가의 음식을 먹어서는 안 된다.” 라고 일러 주었다. 그리고 종이에 글을 써서 주며, “아이가 늘 이 종이를 펴보지 말고 지니고 있다가
위급한 일이 생길 때 내보이게 하라.” 라고 말했다.
아이가 15세가 되어 권 귀가의 딸과 결혼을 했는데, 정말 신부와 접하지 않고 또 처가에서 밥도 안 먹으니 모두 이상하게 여겼다. 그러고 10일쯤 지나 밤에
신부가 칼에 찔려 죽었다. 처가에서는 신랑의 이상한 행동을 들어 의심해 형조에 고발하니, 형조에서는 신랑을 불러 문초하고 매를 치려고 했다. 이때
보관하고 있던 옛날 맹인 점복사가 준 종이를 형조판서에게 제출하고 처분을 부탁했다.
형조판서가 열어 보니 노랑 종이에 개 세 마리가 그려져 있기에, 하루 종일 연구하다가 관원을 시켜 “신부 집안에 가서 ‘황삼술’이란 사람이 있으면
잡아오라.” 라고 말했다. 형조 관원이 신부 집에 가서 탐지하니 그 집에서 일 보는 사람 중에 황삼술이 있어서 데리고 왔다.
형조판서가 문초해 죄 지은 사실을 자백하라고 호통을 치니 황삼술이 드디어 자기 죄를 자백했다. 즉, “이전부터 이 집 딸과 통정하여 왔는데, 처녀가
결혼하게 되니 헤어질 것을 슬퍼해 신랑을 죽이고 둘이 함께 도망하여 멀리 가 살기로 약속했습니다. 그러나 신랑이 처가에서 잠도 안 자고 음식도 먹지 않아 죽이지 못했는데, 신부가 차차 마음이 변해 다시는 만나지 말자고 하기에 그만 화가 나서 죽였습니다.” 하고 자백했다.
곧 형조판서는 황삼술을 죽이고 신랑을 석방하니, 노랑 종이에 개 세 마리 그려진 것을 황삼술이란 사람으로 추리해 알아낸 형조판서의 판단력과, 맹인의
신통한 점술이 놀랍도다. (조선 후기)
07.이유성
이유성은 송도 천인으로 키가 8척이고 용모가 기이하고 뛰어났다. 일찍이 역부로 왕릉 만드는 일에 동원되었는데, 관장 중 감독자가 관상에 능해 이유성을 보고 감탄하면서, 이름이 세상에 나고 수복이 무궁할 것이라고 말하며 군역을 면제해 주었다.
이유성은 모친에게 극진한 효도를 다했고, 하루는 모친에게 “옛날에 우리 집은 사족 집안의 종이었다고 하는데, 너무 오랫동안 숨기고 있는 것은 좋지
않으니, 옛 주인의 성명을 기억하십니까?” 하고 물었다.
이에 모친은 옛날 서울 김 감찰 집 여자 종이었는데, 나이 14세 때 장사하러 온 사람이 꾀어내어, 이곳에 와서 부부 되어 살아 이유성을 낳은 얘기를 했다.
그리고 김 감찰의 성명은 모르지만 살았던 동네와 또 그 집에 자신과 동갑인 외동딸이 있어서 함께 놀았던 얘기며, 김 감찰 부부가 자신을 친딸처럼 대해 준 일 등을 들려주었다. 또 옛날 함께 있었던 여러 여자 종들의 이름도 일러 주었다.
이유성은 곧 많은 물자를 준비해 옛날의 김 감찰 댁을 찾아갔다. 김 감찰은 이미 10여 년 전에 사망하고, 딸도 먼저 죽고 노마님만 남아 늙은 몸에 가난하게 살고 있었다. 그래서 이유성이 나아가 절하고 사실 얘기를 아뢴 다음, 싣고 온 물자를 전달했다. 이후 때마다 물자를 보내고 극진히 노마님을 섬기니 모두들 칭찬이 자자했다.
노마님이 사망에 임박해 면천 문서를 만들어 주고 사망했는데, 이유성은 마님 무덤에서 그 면천 문서를 불사르고, 상복은 입고 극진히 3년상을 마쳤다.
이때 김 감찰의 문중에서 기특하게 여기고 다시 면천 문서를 재작성해 주었다.
이유성이 어린 시절 친구들과 성거산에 놀러갔다가, 어미가 죽고 굶어 죽게 된 호랑이 새끼 두 마리를 발견했다. 친구들이 죽이자는 것을 말려 안고 와
길렀다. 4, 5개월이 지나니 사나워져 사람을 보고 물려고 하기에, 집 뒤 산골짜기로 옮겨 놓고 먹이를 갖다 주면서 길렀는데, 한 달쯤 뒤에 호랑이는 어디론지 사라졌다. 그러고 얼마 후에 보니 두 호랑이는 함께 어린아이를 잡아먹고 있었다. 그래서 무서워 멀리 쫓아 버렸다.
그런데 이듬해 겨울밤에 호랑이 소리가 나기에 아침에 나가 보니, 커다란 사슴 한 마리를 두고 갔다. 그래서 일가가 함께 그 사슴을 나누어 먹었는데, 몇 달 후 또 사슴 한 마리를 갖다 놓았다. 이유성은 이 물건을 이렇게 사사로이 계속 먹을 수는 없다고 말하고, 그 사슴을 관가에 갖다 바쳤다.
이에 유수 강현이 이유성의 풍채와 태도를 보고 감탄하여 ‘이인(異人)’이라고 칭찬하고, 널리 사람들에게 소문내고 알리니, 이 고을을 지나는 관리들이 모두 이유성을 불러 보고 그 모습에 감탄했다. 마침내 고을 유생들이 글을 올려 조정에 상소하니, 중종 임금이 복호(가문을 일으킴)의 은전을 내렸다. 그리고
고을에 명령해 많은 물자를 공급해 주도록 했다.
이유성은 아들 4형제를 두었는데, 장사를 해 모두 넉넉하게 살았고 자식들이 효도하는 속에 90세까지 편안히 살았다. 그리고 자손들이 사방에 흩어져
번창했고, 자손 중에는 무과 급제하고 벼슬이 수령이나 변장의 자리에 오른 사람도 있었으니, 이는 이유성의 적선에 대한 보답임에 틀림없다. 지금도 송도
사람들은 하나의 미담으로 얘기를 하고 있다. (중종)
08.풍년 흉년 점치는 둔두니의 선비
원주요, 원주 그 어갈 비행장 뒤에 둔두니라고 있지요. 그 둔두니에는 옛날에 서울에서 어떤 고명한 선비가 한 분이 내려와 살면서, 그 보름달 뜨는 걸 보고 금년에는 무슨 곡식 무슨 곡식을 심으며는 풍년이 든다. 일러 주는 대로 주민들이 그대로 했더니 과연 풍년이 들고 했다고 그런 전설이 있습지요, 현재도
그 둔두니 사람들은 보름달 뜨는걸 봐 가면서 콩이나 팥이나 여러 가지 곡식을 거기 달에 따라서 심으면 대개는 그 흉년을 면하고 풍년이 든다는 전설이
있지요.
풍흉 [상동읍 설화 15]
09.흉년을 점친 지혜로운 소년
그전 한 사람이 애기를 열둘을 낳았어. 열둘을 낳았는디, 하나를 아직 안 나서 열한째 낳는디, 열하나째 난 애기를 어쩐지 어머니 아버지가 더 이뻐 혀, 그런게 그 위의 형들 둘이 이뻐하는 그 꼴을 못 봐, 형제 앉아서 밤낮 의론을 혀. 아무 거를 죽이자 그렇게만 얘기를 혀. 열하나째 동생을 죽이자구.
그런데 죽일 새가 없어. 이러다 저러다 보닌게 벌써 일곱 살이나 먹었네. 일곱 살이나 먹도록 못 죽였어. 그러자 구시월이 돌아왔는 게벼. 그래서 산골짝
고라실(항상 물이 있는) 좋은 논농사를 두 마지기를 짓는 놈이 있는디, 내일은 나락(벼)을 베려가게 됐어.
“야 잘됐다. 내일 같이 데리구 가서 죽이자.”
그렇게 상의를 했어. 나락 베러 간다구 제일 큰 성(형)이 낫을 썩썩 갈은 게 제 동생이,
“성, 나도 낫 하나 갈아줘.”
“네까짓 것이, 무슨 나락을 베어서 낫을 갈아줘 이놈아!”
“아녀, 나도 성 따라가서 벨톄.”
“그래라.”
역시나 무방 혀, 그렇지 않여. 그렇잖아도 어떻게 돌라가지구(속여서) 죽여야 겟는디 따라 간다니 게, 낫을 갈아서 세 자락을 짊어지고 셋이 가, 그 중 큰 성 둘하구 열하나째 동생하구. 성이 한 다발 벼서 묶으면 동생두 한 다발 벼서 묶어. 즈이 성이 세울라구 하먼 먼저 세워, 나락 한 다발을 벼 묵어서,
“성 나락못이 내 나락못 보구 절하네.”
“내 나락못보구 네 나락못이 절 하지, 어째 네 나락못 보구 절 하냐?”
또 한 다발 벼서 세우먼 저두 한 다발 벼서 세워, 아 이놈을 아무리 죽이려 해두 일곱 살 먹은 동생을 꼴딱 죽일 수가 없네. 해는 너웃너웃 가게 되구
큰일 났네. 이걸 어떻게 죽이구 가야겠는디, 그러자 팥죽 장사가 팥죽을 팔구서 두 내외가 가던 게벼, 흥얼흥얼 콧노래를 부름서 가더래,
“여보시오. 왜 그렇게 시내 노래를 부름서 가요!”
“어떤 사람은 아들을 낳아서 저렇게 중거니 산거니 나락을 비는디, 우리는 딸두 아들두 혈육이 없어서 이렇게 팥죽 장사를 해서 먹구 산다,”
역시나 좋네, 저만치 안 듣는 디루 쫓아갔어.
“어떤 어린애 하나가 일곱 살 먹었는디, 즈이 집을 모른다구 하닌게 당신네가 데려다가 아들을 삼으시오.”
얼마나 좋겠어,
“그러라.”
“옷은 좀 벳겨야 하겠어요,”
그러더럐, ‘집에 가서 호랭이 물러갔다구.’ 그럴라구. 그 추운디 옷을 홀딱 벳겨서 벌개둥이를 데리구 갔어, 옷을 짝짝 찢어서 피칠을 해서 저쪽 소나무에다
걸어놓고 갔어, 골짝 논인게. 집에를 간 게,
“왜 애기는 안 데리고 오냐?”
그런게 아이구 벌써 여기 오는 인편에다 딸려 보냈는디 왜 집에를 안 왔느냐고, 그 사람들 따라 갔는 게비라구. 그런게 어떻게 혀, 암만 거식해도(거시기
해도). 기다려도 밤을 샜지, 그러고 정녕 그 골짝이 깊던가 골짝에서 호세(호환) 만난 것 같다고, 풍수쟁이를 동원을 해가지고 갔더래. 아니나 달라 그 골짝에가 피묻은 그 애 옷이 찢어져 산발을 해서 걸어놨네. 그런게 호랭이 물어간 줄 알지 어떡 혀? 할 수 없이 또 하나를 낳았어. 그래 열둘여.
아들 삼을란게 팥죽장사가 데려다 키웠어, 그러고저러고 그 애가 어언간 열다섯 살 먹었더래. 열다섯 살 먹던 해에 나라 임금이 꿈 한 자리를 얻고 해독을
못 혀. 아무리 천지 사방에다 나라 임금이 꿈 한 자리를 얻고 해독을 못해서 거의 죽게 됐다 소문이 났네, 꿈 해독할 인재가 있들 안혀(있지 않아). 그런게 그 열다섯 살 먹은 애가, 팥죽장사 아들이 무르팍(무릎)을 탁 치면서 아무리 임금 꿈이라도 해독을 해줄 백성이 없어서 죽게 되었다니 쓰것냐고, 이 소리가
소문이 났네. 그놈이 관가에로 불려갔네, 갖다 놓고서는 나라 임금이,
“꿈 해석을 못해서 이렇게 됐으니 네가 해독을 하겠느냐?”
여러 어른 백성이 많은데 미장절(대관절) 어린애가 어찌 나랏님 꿈 해독을 할 수 있느냐?“
“너 의견 들어가는 대로만 혀 봐라.”
“고지를 들을란가 안 들을란가 모르지만 제가 한 마디 할 것이니 그것을 믿을려느냐?”
“믿는다.”
“다른 뜻이 아니라 7년은 풍년이 드는디 8년은 흉년이 든다. 그러니 금년부터 풍년 들적부터 공출(供出)(기물(器物)이나 농산물을 백성들에게 강제로 정부에 바치도록 하던 일), 여기서는 정부에 바치는 세금을 하라고 해서 쌓아두었다가 흉년들 때에 기민(飢民)을 줘라.”
보내주기나 하간디 팥죽장사도 뺏겼어, 그래서 관가에 두고 볼라고 세월이 마주 안 가면 죽어. 그 애를 놓고 보는디, 어쩌면 7년이 그렇게 쓰러지게 풍년들
수가 없어. 그래 공판을 하랬어. 싸래기면 싸래기, 그저 되는대로 다 해갖고는 산과 같이 쌓아놓고 미리 방패를 혀, 넓다란 강변을 다듬어 놓고는 방안 만한
솥도 두 채 해놓고는 미역도 얼마나 샀던지 저런 산과 같이 쌓아놓고 기다린게, 7년 풍년 들더니 8년째부터는 흉년이 들어갖고 인제는 죽게 됐어.
말이 그렇지, 한 해 두 해 흉년 들어도 굶으며 살았는디 8년 흉년 들으니 죽지 살겄어. 미리 그놈 안 해 놨으면 죽어, 올은 흉년 들었어도 그냥 지내. 내년이
흉년 들었어도 그 끝에 그냥 지내, 삼년부터는 죽게 됐어. 그때부터는 나라에서 기민을 줘(구제사업을 해).
그러자 저러자 삼십 살 먹었지. 7년, 8년이면 그러지 안 혀. 열다섯 살 먹어서 들어가서 벌써 그 애가 삼십이 넘었어. 그런게 나라 임금이 살았겠어, 죽었지.
그 애가 용상에 올라갔어. 용상에 올라갔어. 호패를 찼어, 죽여 지가니, 그제부터는 기민 타러올 때에 바가지 하나씩을 꽁무니에다 차고 오너라. 그 그릇을
그리야 주지.
“꽁무니에다 바가지 하나씩 차고 오너라. 새 바가지 하나 씩 들고 오너라.”
방안만한 솥에다가, 말이 그렇지 한 모금씩 줘도 여간여, 멱(미역)도 그렇게 다 빨아놓겄어, 소금도 어떻게 다 하겄어. 그런개 작도다(작두에다가) 송송
쓸어서 넣고, 건건하니 싸라기라도 쪼그매씩 넣어 그렇게 끓여서, 한 그릇씩 먹여서 기민을 줘 보내라 그랬어.
그 임금이 어째든지 즈이 식구를 만나보자는 거여 그게. 옥상에 가만 앉아서 보면, 아 기민 타러 가먼 어디서부터 긴다고 안 혀. 앉아서 절들 하고 그러잖여. 옥상에 앉아서 보면 즈이 형이 헌 누더기 감발을 하고 삐척삐척 굶어싼 게. 동생 앞에 와 절을 하지, 가는 놈마다 절하고 나가야 적히지 않겄어. 가만히 보면 기가 맥혀.
얼마가 됐던지 간에, 한 번은 눈치를 봐둬, 언제든지 ‘해라’를 하지, 형 아니라 할애비라도 눈치를 봐둬. 죽이자고 의논한 즈이 큰형이 타러 다녀왔나 봐,
그저 앞에 와서 절을 하고. 한 번은 즈이 형더러 어느 골서 왔으며 성은 뭣이며 다 묻네, 쪼르라니 다 가르쳐 줘,
“몇 형제나 되느냐?”
“열 둘인디, 열하나째 동생은 연전에 호세(虎食)에 갔습니다.”
“너희 부모도 다 살았느냐?”
“바깥 부모하고 모두 살아계십니다.”
“네 열두째 동생을, 아무정끼(아무때) 아무 날 기민 타는 날이 있겄지? 데리구 오너라.”
관가에서 데리고 오라고 하는디 죽인다고 해도 데리고 가야지, 팥죽장사 줬은게 그 놈이 어디 가서 죽은지 산지 알간디? 큰일 났어. 열두째 동생은 또 호랭이 물려갈까 비 문 앞에도 안 내보내는 놈을, 기민을 타다 먹어싼게 죽일라고 그러는가 큰일 났어. 즈 집에 가서 그 소리를 한게, 관가에서 부른게 안 보낼 수
있간디. 즈이 어머니 즈이 아부지 즈이 형들까지 온 식구가 다 와, 그 애 데리고, 죽이는 데나 본다고, 즈이 어머니 아버지가 얼마나 늙었던가, 박-박- 기어서
오더래. 그래도 간다고, 못 먹은 게 더군다나. 즈이 어머니 아버지까지 와서 절을 하고 그래쌓더래.
“어서 돌아가거라.”
“열두째 동생을 데리고 오라고 하닌게 온 식구를 다 데리고 왔느냐?”
연전에 하나를 호세에 보내고 본게, 이것도 만일 어쩌까 싶어 울안에서만 키웠지. 사립문 박에 안 내보낸 것이다. 그래도 관가에서 어떻게 기막히게 할까
몰라서 죽이면 죽이는 것이나 볼라고 따라온 것이다. 개개복진(個個伏陳. 낱낱이 엎드려 말함)을 해쌓고, 즈이 어머니 아버지가 살려달라고 해싸.
“그러면 다 데리고 가거라.”
안 죽이고 보낸게 참 좋아, 다음에는 기민을 또 타러올 때가 되었은 게 오야지. 오닌게, 기민 주는 그 노복들더러,
“야 아무거리 아무 오는 사람의 자루 속에다가 자기 먹는, 나라 임금 먹는 술잔하고, 기민을 타러 와도 시방마냥 차 비는 주는 게벼, 엽전 네 잎 씩여, 그놈 주고 기민 타갔는가 보더구먼, 그 사람이 준 돈하고 자기 먹는 술잔하고 그 사람 몰래 기민 쌀 밑에다 넣어줘라 그랬어. 맘을 볼라고 그랬어. 그랬더니 그 이튿날
술잔하고 돈하고 가지고 와서,
“살려달라고. 제가 정신없어 술잔 훔쳐갔다고, 돈도 안 내줬다고, 그저 죽여 달라.”
술잔하고 도로 가지고 왔어, 맘을 볼라고 그랬는디 맘은 옳거든, 즈이 형이 맘이 옳아, 즈이 살다온 고을을 모르겠어요. 그 고을은 언제든지 기민도 후히 줘서 보냈어. 그러고저러고 식구도 다 데려오고, 그제는 팥죽장사도, 어머니 아버지 다 데려다가 살리고 그 고을 사람들은 다 부자 돼서 굉장 혀. 왜 안 가봤어?
-풍흉 [동상면 설화 6]
10.풍년을 알리는 우물
통리에 있는 샘물인데, 샘물의 이름이 헌천인데 그 불빛을 봐서 풍년이 들겠다 아니면 흉년이 들겠다는 것을 안다. 색깔이 붉은 색이 많이 나면 그 해가
흉년이고, 색깔이 맑으면 풍년이고, 조금 뿌여면 흉년이 되었답니다.
- 풍흉 [삼척읍 설화 145]
11.마피로 출세한 농부
조선 사회에서 점쟁이두 아니구 암 것두 아닌 사람인디 천기를 잘 봐. 비온다구 그라면 비가 오거든. 날이 좋다구 그라면 날이 좋구. 그래서 그 명성이 펼쳐 났어. 그래서 지금으로 일루면 대통령 관저나 그런 디까지두 알게 됐지. 누가 그렇게 훌륭한 사람이구 인재라구. 그때 당시는 뭐 선각자를 인재라구 그랬는가 보지.
“어느 골서 인재가 하나 났다.”
그런디 동네 사람이 봐두, 평범한 평민이지 잘 아는 사람두 아니면서두, 비가 온다구 그라면 비가 와, 날이 좋다구 그라면 좋구. 천기 하나는 영락없이 보거든. 그래서 그 명성이 떨쳐서 서울 상감님께 까지 그게 알게 됐는디, 순전히 그 천기만 보는 것이 용하지 다른 것은 알지 못 허는디, 말하자면 조선 사회에서
조선에 훌륭한 인재가 하나 생겼다구.
중국서 중국 천자가 도적을 맞았댜. 도적을 맞었는디 ‘즈이 나라에서 그렇게 머리가 좋은 사람이 있을 것 같지 안 하구. 조선이 그렇기 좋은 머리가진 사람이 있은게 나 도적을 잡어야겠다.’ 하는 생각이서 이 사람을 불렀거든. 이 사람을 불르구 보니까 모른다구 할 수두 없구. 안 갈래 안 갈 수두 웂어. 그래 대국 사신이루다가 간 거여. 가서 앉히 놓구서는 뭐라구.
“뭘 잊어 번졌는데 이걸 찾아줘야 하잖느냐. 어느 때까지 이걸 찾아다구.”
그래 죽을 것을 가까이 말할 수는 없지. 거 못 찾으면은 죽는 관계가 나타나 거짓말 한다구. 저 매칠 두 차례 세 차례 연기를 시켰어.
“날 좀 달라.”
연기를 시켰는데, 나중이는 인저 꼭 죽을 날이 닥쳐 왔네. 뭐라구 할 말이 웂어. 할말이 웂어서 저 혼차 밤이 군소리루 그라느 겨.
“마피란 놈이 나를 죽이는구나. 마피가 나를 죽인다.”
그런데 그 도적놈이 날마다 와서 밤이믄 그 행동을 무신 말을 하는가, 뭐 하는가 그거를 배깥에서 엿을 듣는 거여. ‘저 사람이 진짜루 나를 찾아내서
도적놈이라구 누명 쓰는 것 보댐두 나를 죽이구 그 물건을 찾을 것이냐’, 그런 생각에서 마피를 찾구서, 그날은 막 죽는 날인디 그 소리를 하구 있어. 근디
도적놈이 와서 보닌게나, 그놈이 승이 마가구 이름이 피랴. 아 그래서 그놈이 인자 틀림없이,
“내가 죽을 판인디, 어떡해서 나를 살리야 살릴 수두 있을 것이 아닌가. 죽일 사람을.”
그래 와서 드려빌구 사과를 했어. 그래 인저 눈치는 빠르던가 말여.
“니가 가져간 물건, 여기다 갖다 놓구 가면은 누가 가져왔다는 소리를 내가 안 할테니까 갖다 놔라.”
그래 밤에 갖다 놨다. 갖다 놓구 갔는디, 그 내용인즉슨 어째서 그 사람 이름이 났느냐 하면은, 예전이는 말 가죽이루다가 쌈지를 맨들어 가지구 들구 다녔다, 차구두 댕기구 돈 많던 사람여. 그런디 이런 말가죽이 어떤 역할을 하느냐 하면은 날이 습하구 비 올랴구 하면은 부들부들 하였다거든. 그 날이 좋구 청명한 날은 빳빳 하구. 그래서 그걸 밤낮 쌈지니께 대에다가 담배를 늘라면 그것을 들구, 담배를 피구 그러니게 자기 손이서 떨어지들 안 햐. 그 만쳐 봐서 빳빳
하믄은 ‘어 날 좋겄구나’ 하믄 날이 좋았구, 또 부들부들 하구 그러면은 ‘오늘 날 궂겄구나’ 그러니 틀림없이 맞단 말여. 그래서 말가죽 쌈지 하나를 가지구서
인재 노릇을 하구 그랬댜. 알았어?
부여군 석성면 석성리 경로당, 고양환(남, 72) 1983. 2. 2.
12.마피때문에 나 죽네
옛날에 말이여, 그전에 한 삼십 리 길을 이렇게 장을 보러 다니는디, 장을 보러 갈라면 고개가 있단 말이여. 그래서 사람들이 그 고개 날망이 가서, 재가
크니깐 올라가면 대간해서 쉬어서 가는디, 그 아들하고 아버지하고 장을 보러 가게 됐어.
그래 그날 재 날망에서 날이 구름 한 점두 읎이 날이 좋았단 말이여. 그래 재 날망에서 이젠 아들하고 이렇게 쉴 사람들이 여럿이, 장꾼들이 장을 보러
갈라니께 여럿이 앉았잖야. 그래 고기서 장을 보러 갈라다가 담배를 피울라고 이 지갑을 내갖고선 담배를 이렇게 대에다 넣을라고 보니께 담배가 꿉꿉하니
눅었단 말이여.
근디 그 양반 가지고 다니는 그 지갑, 담배 지갑이 말로 만든 가죽이여. 그런디 비만 올라구 그라믄, 그 지갑이 눅어갖고선 담배가 인제 눅었어. 그래서 이제 구름 한 점두 없이 날이 좋은디 담배를 피울라고 보니께 그냥 꿉꿉하니 담배가 눅어갖고선 잘 안 탄단 말이여. 그래니께 사람들이 주욱 앉았다가, 그 양반
아들 이름이 차돌인디, 차돌이를 델코(데리고)선 이제 장을 보러 가다가,
“아이고 오늘 큰 비가 오게 생겼다, 집이 가자.”
그람선 이 사람이 그냥 구름 한 점도 없이 날이 좋은디 되로 왔단 말이여. 장을 보러 안 가고. 그래 딴 사람들은 한 오십 리 길을 걸어서 장을 보러 장터를
막 들어갈라고 그러는디, 느닷없이 그냥 막 거먹 구름이 떠갖구서는 막 비가 쏟아지기 시작하는디 워짤 수가 없어. 비가 원래 막 많이 오니까. 그래 이
사람들이 장이를 막 들어가다가 비를 만내(만나) 갖고 되로 돌아왔어. 그랬는디 그 사람들이 소문을 내기를 우떻게 했는가 하니,
“아무게 사는 차돌이 아버지가 세상에 그렇게 세상일을 잘 맞춘다.”
이젠 비도 안 올 구름 한 점 없었던 날이 ‘오늘 큰비가 온다.’ 구라면서 되로 내려 갔으니껜. 이제 소문이 났단 말이여.
그래서 그 소문이 이웃 동네로 가고, 이웃 동네에서 절루 가고 절루 그렇게 해갖고, 막 이놈이 퍼져 갖고 나라 임금님까지 갔네. ‘차돌이 아버지가 그렇게
용하다’고. 차돌이 아버지는 말 보태갖고 소문이 나갖고 임금님까지 가갖고, 임금님이 하두 그렇게 ‘차돌이 아버지가 영(용)하다’고 그렇게 하니깐 차돌이
아버지를 서울로 불러 올렸어.
‘워떻게 생긴 사람이 그렇게 영하다’ 하고선 불러 디렸는디. 임금님이 이렇게 앉아서 언제고 돌 두 개, 하얀 돌을 두 개를 이렇게 ‘딸그락 딸그락’ 갖고 놀았단 말이여. 사뭇 그러니껜 그 하인이,
“차돌이 아버지가 아무 디서 이렇게 왔다.”
인제 임금님한테 그렇게 하니께,
“들어오라.”
그렇겠단 말이여 임금님이. 그래놓고 그 채돌(차돌)을 얼른 깔구 앉았단 말이여. 망석 밑에다 놓구 그 양반이 왔는디,
“너가 그렇게 모르는 것이 없이 영하다고 소문이 말하자면 팔도에 이렇게 소문이 났으니, 니가 나 깔구 앉았는 것이 뭘 깔고 앉아 있는가 좀 알켜 내봐라.”
임금님이 이렇게 얘기를 했단 말이여. 그러니께 이 양반이 큰일 났어. 인제 소문만 그렇게 크게 났지 아는 것은 모르는디. 그때 인제 고개를 푹 숙이고 있는디 임금님이 자꾼 재촉을 한단 말이여.
“니가 그렇게 영하고 모르는 것이 없담선, 하여튼 내가 깔고 앉아 있는 것을 알쳐 내야지, 못 알쳐 내면 너 나한테 벌을 받는다.”
그래 이 양반이 고개를 푸욱 수구리고서는 생각하니께 이거 큰일 났어. 이젠 아무 것도 몰르는 사람이 그렇게 소문만 크게 나갖고. 그래 인젠 할 말이 있어, 아무 할 말도 없고 그래서 자기 아들을 불름선,
“차돌아, 나 죽는다.”
그랬단 말이여. 그래니껜 임금님이 양 무릎을 침서 임금님이 기냥 탄복을 해버렸어.
“니가 과연 소문이 그렇게 크게 났더니, 니가 모르는 것이 읎구나. 내가 차돌을 깔고 앉아서 내가 물어 봤는디, 네가 영락없이 ‘차돌아 나 죽는다’는 게 니가
그렇게 영하다. 과연 니가 알기는 아는 놈이라!”
이렇게 했단 말이여. 그때 그놈의 소문이 말도 못하게 크게 나잖여. 그래 그 소문이 중국까지 들어갔네. 그 중국까지 들어 가갖고, ‘아무 조선 사는 차돌이
아버지가 모르는 것이 없다’구. 중국 임금님이 그전에 이 관을 입비렸어.(잃어버렸어.) 관을 잊어버려 관이 읎으니 큰일 아니여. 그러니께 관을 찾아야겄는디 찾을 도리가 있어야지. 아무리 중국서 점쟁이니 용하다는 사람을 다 불러들여도 알켜낼 사람이 읎어. 그러다 조선에서 용한 차돌이 아버지가 이렇게 잘
맞추는 사람 있다 하니까 중국서 사신을 보냈단 말이여.
“조선 아무디 사는 차돌이 아버지를 중국이루 보내라.”
그래갖구 하루는 하인들이 와갖구서는 중국까지 델구 간 거여. 그러니께 중국 가서 차돌이 아버지가 가만히 생각하니께 ‘이거 인제 죽을 고비가 당했구나’
싶어서, 그러면은 차돌이 아버지가 집에서 집을 떠남서, 그때 인제 한 정월달쯤 됐는디 이제 아들한티 한단 소리가 뭐라구 했는가 하니, 뭐라구 (하구)
떠나는가 하니,
“니가 삼월 삼짓날 우리 집에다 불을 질러라.”
그럭하고선 중국으로 떠났단 말이여. 그래 중국 가서 임금님이 관을 찾아내라고 그렇게 하니께,
“나한테 석 달 기한을 주시오. 석 달 여유를 주믄 내가 인제 하여튼 찾는 데까지 찾아보겠다.”
이렇게 했단 말이여. 그래 그때가 언젠고 하니 삼월 한 초열흘께 되던 게벼. 초열흘 게까지 기한을 석 달 간을 해달라고 그렇게 했은께. 그래 삼월 삼짓날
됐는디 차돌이가 지 집에다 불을 질렀단 말이여. 그러니까 하루 삼월 삼짓날 중국서 밥을 갖고 들어가니께 이 사람이 울고 있거든.
“어째서 우냐?”
“우리 집이 지금 불이 나갖고서는 말이여. 우리 집을 다 태웠으니 우리 아들이 어떻게 됐는가, 그렇게 내가 울고 있다.”
그렇게 했단 말이여. 그래서 중국서 사신을 데리고 삼월 삼짓날 이 집이 탔는가. 보내보니까 삼월 삼짓날 아 영락없이 탔거든. 그러니께 임금님이,
“이놈이 과연 알기는 아는 놈이다. 중국서 집이 불난 것까지야 다 알 때야 뭐 이놈이 틀림없는 놈이다.”
이렇게 중국 왕이 찬복을 해버렸어. 그래서 삼월 삼짓날이 참 삼월 초열흘 날이면 기한 날여. 그래 인제 저녁에 가만히 드러눠서 생각하니께 한심하거든.
‘이거 아무 것도 모르는 놈이 소문만 널리 나갖고서는 날이면, 내가 이제 죽게 됐구나.’ 하구서 달만 바라보고 드러눴는디.
이 사람이 워떡게 찾는가 하구서는 유서(엿)를 와서 들어. 중국 왕 밑에서 있는 사람들이. 그래 이 사람이 드러눠서 뭐라고 하는가 하니, 말하자면 비올 때
눅어서 담배 피우는 걸 보구 비가 올랑가 않을랑가 이 사람이 알아서, 결과적으로 말가죽 때매 죽게 됐단 말이여. 그래니껜 이 양반이 드러눠서,
“마피때미 나 죽는다. 마피때미 나 죽는다.”
두러눠서 자꾸 그렇거든. 그런게 그 훔쳐간 놈 이름이 마피여.(일동 웃음) 그래 그놈이 와서 유서를 듣는단 말이여. 지가 찔리니까, ‘이 사람이 나를 영락없이 찾아낼란가?’ 싶어서 유서를 와서 저녁으로 듣는단 말이여. 그런데 자기 이름을 불름선,
“마피때미 나 죽는다. 마피때미 나 죽는다.”
이럭하고 있거든. 그러니께 마피라는 사람이 그 관을 갖다 도둑질을 해갖는디, ‘마피 때미 나 죽는다. 나 죽는다.’ 그럭하니께 마피가 냥 들어오더니 무릎을
탁 꿇음선,
“선생님! 제발 목숨만 살려 달라.”
“목숨을 살려줄 테니깐 관을 가져와라.”
“관 갖다 드릴테니껜 목숨만 살려 달라.”
그럭하거든. 그래서 양 내일이 말하자면 기한 날인데, 그날 저녁에 임금님이 관을 찾았어. 그래갖구선 아주 중국서도 아주 이름을 기냥, ‘그 차돌이 아버지가 그렇게 영하고 잘 찾는다’고. 그렇게 호가 나갖구서는 잘 살다 죽었댜.(일동 웃음)‘
금산군 금성면 양전리 자택, 제보자2(70, 남) 1996. 11. 9.
폭설
01.오세암유래
[조사자:오세암이라는 사람이요?] 쪼까난 거. 쪼까난 거 고 하나만 살았어. 나는 저 그 무슨 중인가 몰라. 중 양반이 데꼬 가서, 할아버지가 이렇게 설악산에 있는 중이거든. 설악산 거기 그 오세암이라는 데가 설악산 밑이여. 그 거시기 그런게 전두환이 있던 백담사에서 더 올라가야 돼. 그런데 절터 흔적이 읎어.
전설만 남아 있지.
그래서 그 중이 데리고 가가지고, 가를 거서 키우는 거여. 근디 거기서 강릉 가가지고 쌀을 갖고 와야 찬을 먹어. 밥을 먹는다 이거여. 그런데 이 냥반이 참
강릉을 갔거든요. 그래 이게 오세암이여. 다섯 살 먹은 아를 그 절이다 놓고 강릉으로 쌀같은 바라고 간 거여.
근디 눈이 어떻게 많이 오는지 길이 막혀 버린 거야. 못 가지. 그러니 이 중 양반은 이냥 걱정이 되지. 저거 죽지. 다섯 살 먹은 놈이 뭘, 뭘 해 먹어. 바라
물담은 놈은 눈이 절퍽 그냥 와가지고 녹으니깐. 그래 거기 강원도라면 눈이 올 것 같으면, 봄판이 녹아서 길 뚫버질까? 안 뚫버지거든. 그래 봄판에 참 눈이 녹아가지고, 그것 죽었는 게비려 오세암이라는 그 절이를 온 거여. 절로 크게 뚜드리고 오니깐, 환하게 빛이 하늘로 올라가더라는 거여.
“야야! 야야!”
인제 불를 꺼 아녀. 부르니깐 다섯 살 먹은 놈이 나오드라는 거여. 그래 죽은 줄로만 알았는데,
“어떻게 살았냐? 어떻게 살았냐?”
“어떤 아주머니가 와서 밥도 해 주고 그래서 살았다.”
그게 관세음보살이여. 그런게 내려와 가지구 살린 거여. 한판씩 들린 거여. 그 절 이름은 오세암이 아니었는데, 그 애 다섯 살에 그것 살았다고 오세암이라고 지은 거지. 근데 절 지금은 흔적 읎어.
금산군 군북면 호티2리 사거리 자택, 전군식(55, 남) 1996. 11. 9.
02.마누라 같이 피난가면 안 된다는 이야기
옛날에 그 엄씨란 사램이 살았던 모넁이지. 엄씨란 사람이 살민선 그 때 세상에 혼란해 가지고 모든 인심이 막 소동이 되고 이러 쌓는데, 그래 그 때도
가산난리라는 난리가 있었던 모넁이라. 가산난리라 하는 난리가 있었는데,
“난리가 난다.”
“이 우리가 피란을 가야 되지.”
내우간에 앉아서 하는 말이 이기라.
“피란을 가야 되는데 우리가 이 땅은 되겠나? 모도 다 피란을 가는데 우리 피란을 가자.”
그래 인자 두 내우간에 아를 하나 짊어지고 피란을 간다. 가는데 저 깊은 산꼴로 자꾸 가는 질이라. 가는데 눈은 자꾸 퍼붓재, 그러구로 가다가 한 골에 간께 쪼매난 절 암자가 하나 있는데, 절에 디다 보닌께 절은 탱 삤거던.
“아라. 우리가 저 더 가도 몬 하고 여서 저녁에 여서 우리가 피란하자.”
그 거기서 그날 저녁에 잘라고 마음을 묵고서 아를 내라놓고, 그래 둘러 보인께 그 참 쌀도 있고 머 반찬 겉은 것도 다 있고, 중들도 어두로 고만 피란 가고
없는 모넁이라.
“그 천상 됐다. 고만 이 우에 더 좋은 데가 있나? 여서 고만 피란하자.”
그래 내우간에 거서 떡 부치놓고는 그래 밥을 해서, 그래 어른 아 하나 없고 간 거같이 젖을 묵고, 그래 그날 온종일 오다 본께 온 종일 피곤하거던. 고만 패(피)곤해서 잘라고 요랑하고 떡 있으닌께, 아이 어데서 뜻밖에 머시 소리가 꿍 나거던. ‘거 이상한 일이다. 이 무슨 소리가 이래 나는고. 이거 큰일 났다.’ 속으로 싶으디, 쪼매 있은께 또 꿍 겉는 기라.
이 머이 그런고 알 수가 있나. 그래 가마이 문구녕으로 내다보고 있은께, 눈은 펄펄 오는데 마당에 들어 닥치는데, 키가 팔대장상 겉은 사람이 참 짐이 나서 어깨너머로 풀풀풀 넘어가는 기 장사라.
떡 칼을 하나 들고, 그래 마당에 와서 신바닥에 눈이 붙은께, 눈 그 놈을 툭 떠니라꼬 툭 버티리만 소리가 꿍꿍꿍 겉고. 그래 그 떡 마당에 들어서서
머라는고 하니,
“이 놈의 집구석에 사램이 있나 없나?”
카민선, 이 담뱃대로 가지고 문을 휙 끌어당기는데 보닌께 아 눈이,
뚝 서 상봉장 겉은 놈이 어떠키 무섭던지 고만 겁이 잔뜩 난기라. ‘아하 이거 오늘 저녁 우리가 피란 온 기 아이라, 이기 길국(결국) 죽으로 왔구나’ 싶은 매음(마음) 빼이 안 나는 기라.
“여게 웬 놈들이 여게 왔노?”
그 때는 고만 방으로 들어오거던.
“예, 그런기 아이고, 내 성은 엄간데 그래 이 모도 피란을 다 가고 해서 우리도 피란한다고 여게 왔습니다.”
“응, 그래야? 그러면은 피란 왔걸랑커든 너거 날 조석을 밥을 좀 해도라.”
“예, 해 디리지요.”
그래 그 부인이 나가서 밥을 해서 이리 갖다 준께, 그 말밥을 묵는 사램이라. 장사라서. 그래 밥을 실떡 묵디마는 그래 머라는 기 아이라, 그 여자를 고만
그 장군 그 놈이 고만 도때는 택이라.
“넌 저 아랫목에 누 자거라.”
이카민선 고만 여자를 디꼬 웃묵으로 쑥 가거던. 그래 둘이서 여자를 고만 껌어 안고 이러싼께, 여자는 마다꼬 자꾸 뿔그지고 이래 그러쌓거던.
“저녁에 너는 아무리 그러싸도 나한테 하룻저녁 안 자고는 안 된께 자야 된다.”
어쩔 도리가 없지. 그래 엄죽 머이라 카는 사람은 죽은 더끼(죽은 듯이) 가마이 눘다. 고개만 숙이고 안 본드끼 눘고, 이것들 둘들은 고만 죽을 뚱 살 뚱
모르게 나부대는데, 그러다 안 되인께, 아 그 장사 이놈이 무슨 약을 하나 내디마는, 약을 하나 내디마는 고만 그걸 여자를 믹이는 기라. 믹인께 여자가
그때사 고만 마음이 휙 돌아지민선 장사하고 고만 마음이 하날이 되가지고 웃목에서 고만 자는 기라.
자는데 그 남자가 생각할 때 기가 차지. ‘저놈의 같이 피난 갔다가 옛날부터 내우간에는 피난 안 간다 카디 이기 참 맞구나. 이 내우간에 피란 댕기는 거
아이로구나.’ 그래 그런 마음을 묵고 있으나마 어짤 도리가 없지. 그래 한 숨 자고 뿌드기 뜨고 인나디마는 여자가 머라는 기 아이라,
“아랫목에 저거 갖다가 없애 삐리라.”
이러 카거던. 그런께 에나 그 장군이 있다 머라는 기 아이라,
“아 그까짓 거 있으나 없으나 우리 할 짓 다 하는데 머 할라꼬 없앨라 쌓노?”
“그래도 저 내 눈에 베기 싫으니 없애라.”
“그러면 없애 삐리자.”
카민선, 고만 두 팔을 뻗고 거다 짊어지고, 그 절 앞에 그 은행나무가 있는데, 은행나무 밑에다, 고만 은행나무에다가 대롱대롱 달아놓거던. 달아놓고
방에다 드가삐리는데. 눈은 자꾸 내리뿌리제. 거서 꼭 죽기가 된 기라. 그래 어쩌다가 발을 내가지고 은행나무를 꺼머 앎아가지고, 제일 그 그석하고 입으로
끊고 살살 내리와서 생각을 하닌께, 천지분간 할 수도 없제, 도망을 갈라이 어데가 어덴지 모르고 갈 수가 없제. ‘에라. 요놈의 자석을 내가 어떻기 직이도
직이야 되는데 어짜야(어떡해야) 되겠노?’ 싶어서 가마이 디다 보닌께 마 잼이 들어서 누 자는데, 거창하이 잘 누 자거든.
“에라, 이놈의 자석. 내가 죽을 백끼다.”
그래 그 놈이 갖고온 칼을 세아났는데(세워놨는데), 칼 그 놈을 갖고 드가서는 쑥 빼가지고는,
“에끼 요놈!”
베지(배)를 고만 푹 찔러가지고 긁어 뻬끼라. 고만 턱 걸티타고는 고만 베지를 콱 찔러가지고 확 잡아 댕기삐린께 고만 이 벌떡 일어나디마는 영금시리
바깥으로 나갔삐리는 기라. 바깥에를 떡 쫓아나가디마는 꿍 소리가 나거던. 이 난제 보닌께 이놈은 고만 창세(창자)는 나가다가 고만 마루에 떨어져 죽었어. 죽었는데 그때는 여자가 발발 떨고 인나거든.
“바라. 여자 디꼬 피란을 몬 한다더라. 이 정성이 불쌍하지마는 너하고는 나하고는 있다가는 피란을 못 할테니 널 직이야 되러다.”
고만 그 칼로 가지고 저그 마누래 목을 쳐가지고 직이삐리고, 그 떨어져 죽은 놈 뱃속에다가 밀어 넣어가지고 고만 엉크내삐리 뿐이고, 그래 자고 그 이튿날 아침에 그 디비보닌께, 그케 양식이니 자북하이 있거던. 그서 한 두 달 동안 피란을 했어. 피란을 하고 나닌께 봄새가 됐던가 인자 피난됐다꼬 싼께, 그래 저거 아들 업고 저거 고향엘 내려오닌께, 피난이 됐는 기라. 잠잠하이 그래서 그때는 저그 아 키와 가지고 며느리 보고 잘 살더라고.
- [마리면 설화 32]
추위
01.광문자전
주인공 광문은 서울 청계천변에 굴을 파고 사는 걸인 중의 한 사람이다. 걸아들은 그를 어떻게 보았던지 두목을 삼았다. 그래서 그는 걸식도 하지 않고
앉아서 먹게 되었다.
어느 몹시 추운 겨울날 모든 거지아이들은 걸식하러 나갔으나, 한 아이가 아파서 나가지 못하고 누워 있었다. 그는 불쌍히 여겨 밥과 반찬을 얻어가지고
돌아와서 먹이려고 하였더니, 그 거지아이는 그 사이 죽어 있었다. 광문은 죽어가는 거지아이를 붙들고 울었다. 마침 걸식하러 나갔던 아이들이 모두
들어온다.
그들은 한 아이가 죽은 것은 두목인 광문의 소치라 여기고 광문을 때리기 시작한다. 그가 아무리 변명하여야 들어 주지 않는다. 할 수 없이 견디다 못해
도망해 나온다. 그는 추운 밤을 지낼 수가 없어서 인가를 찾아들어 갔더니, 그 집에서 도적이라 하고 광문을 묶어 놓고 마구 때린다. 그는 그 이튿날 도적이
아님을 변명하고 사정을 이야기하였다. 그 집 주인은 그가 어딘지 순진한 데가 있어 보이므로 놓아 주고 그의 뒤를 따라가 본다.
광문은 그 집을 나와서 거지 아이들이 아무렇게나 묻어 놓은 거지의 시체를 파가지고, 거적에 싸서 공동묘지에 갖다 묻는다. 그 주인은 그의 소행에 감동하고 달려가서 광문을 붙잡고 전후 사실을 물어 본다. 그 주인은 이야기를 듣고 기특히 여겨 자기 집으로 데리고 와서 목욕을 시켜 새 옷을 입히고는, 잘 아는
약종상에다 소개해서 사동으로 채용하게 해 주었다.
광문은 그 날부터 열심히 일을 하였다. 하루는 그 부인이 돈을 잃고서 광문의 소행이라 여기고 의심을 품는다. 그런데, 하루는 처질이 와서 “내가 돈이
필요해서 가져갔다”고 말한다. 이에 그 부인은 광문에 대한 의심을 풀고 도리어 광문에게 사과하고는, 만나는 사람마다 광문의 착함을 이야기삼아 자랑한다. 그래서 장안에서 광문이라면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유명해진다.
광문은 얼굴이 못 생겼으나, 싸우는 사람을 보면 곧 익살을 부려서 싸움을 말리기도 하였는데, 그는 허욕이 없는 순진한 생활을 계속하여 간다. 그런데
처음에는 원수와 같이 여기던 사람도 나중에는 친구가 되었다 한다.
* 이 작품은 걸인인 광문의 생활을 표현한 것인데, ‘연암외집’에 수록되어 있다.
02.완월회맹연
대명 영종 년간 정월도선생의 후예인 정한이란 명환이 있었으니 호를 문청이라 했다. 성조황제가 돌아가시며 문청공에게 유언하여 영종을 받들게 하니,
영종은 국가의 대사를 반드시 문청공에게 물어서 처결하고, 문청공을 정상부라 부르며, 태자를 정부에 보내어 덕행을 닦도록 하니, 문청공의 천총이 일세를 풍미한다. 문청공이 입조한 지 30년에 치사하고 남문 밖 태운산 밑에다 복거지지를 정하니, 왼쪽에는 와룡탄이요, 오른쪽에는 완원대가 있다.
문청공의 부인은 개국공신 서달의 손녀이다. 공의 부부는 동주한 지 30년에 2남1녀를 두었으니, 장남 정잠의 호는 청계로서, 16세에 추밀사 양조의 딸을
취하여 두 딸을 얻었고, 차남 정참의 호는 운계로서, 정대한 군자라 공명에 뜻이 없고, 15세에 우승상 화첨의 딸과 결혼하여 3남 1녀를 두었다.
이 때, 문청공에게 수학하고 있던 장헌이란 사람이 있었다. 청계공과 동년생으로 그의 부 장합이 고향을 떠나 태운산으로 들어와 문청공의 도움을 받고
살다가, 장헌이 7세 되는 해 부부가 연달아 죽으매 서 부인이 고아가 된 장헌을 기출같이 길러, 14세가 되자 태사 정침의 딸과 결혼시킨다.
이렇게 성정한 장헌이 장원급제하고 벼슬에 나아가자, 정 부인의 냉정한 성격을 꺼려 다시 박씨를 취하니, 장헌은 정 부인을 멀리 하고 박씨에게 빠진다.
장헌이 소주판사가 되어 가다가 도적을 만나 정 부인이 낳은 아들 창인을 잃는다. 박씨가 남매를 낳고 정 부인을 미워하며 원위를 앗고자 하는데, 이빈 등이 고우를 생각하여 간의태부를 시켜 장헌을 내직으로 들어오게 한다.
이 때, 예부상서로 있는 청계공은 부인 양씨가 딸만 낳고 몸이 쇠약하여 생산할 가망이 없자, 운계공의 장남은 인성으로 양자를 삼는다. 정 태부의 탄일을
당하여 황제가 정 태부에게 친서를 보내 축하하고 풍악을 내린다. 연회가 끝나고 밤이 되매 청계공 형제가 부모를 모시고 완월대에 올라 놀며, 조ㆍ양ㆍ화 등 제공이 그들의 자녀와 문천공의 손자ㆍ손녀로 가연을 맺을 새, 청계의 장녀는 조태사의 아들 세창과 약혼하고, 차녀는 자기의 제자인 태학사 이빈의 장남
창인과 약혼하도록 하고, 운계의 딸은 이학사의 차남 창현과 약혼하고, 양자 인성은 이학사의 딸과 약혼하고, 운계의 차남 인광은 장태사의 딸과 약혼하고,
조태사의 청을 들어 장성한 손녀 명염과 조학사 세창과의 결혼식도 곧 올리도록 한다.
때에 추밀사 양공이 졸하였다. 양 부인이 친정에 가서 부친의 장례를 마치고 돌아온 후 득병하여, 인성과 명염 등의 지극한 간호에도 불구하고 죽는다.
청계공은 모친의 권유를 물리칠 수 없어 원외랑 소희광의 딸과 재취한다. 그러나, 청계공은 죽은 양 부인을 생각하는 마음이 간절하여 소씨를 박대하다가
모명을 거역할 수 없어 소씨의 방에 들어가자는데, 소씨가 양자인 인성을 칼로 찌르는 꿈을 꾼다.
이 때, 정 태부가 득병하여 두 아들의 지극한 간호에도 불구하고 졸하니 향년이 겨우 50이었다. 청계공이 선산에 있는 태주에 가서 시묘하다가 득병하기도
하나, 무사히 시묘를 마치고 돌아온다. 소씨가 쌍동을 낳으니, 형 인중은 마음이 사나우나 아우 인웅은 착하다. 소씨가 쌍동을 낳고 나서는 양자인 인성을
없이하고 기출을 적자로 앉힐 음모를 꾸미기 시작한다. 시녀 녹빈과 계월을 시켜 음모를 꾸미게 할새, 계월은 간부 맹화와 짜고 녹빈은 오술수와 짜고 정
상서가 자녀들을 데리고 태주로 내려갈 때 강상에서 죽이기로 하니, 소씨의 외현내흉을 아무도 알지 못한다.
정 상서가 태 부인을 받들기 위하여 자녀들을 데리고 태주로 가다가 월청강에서 수적을 만나 양자 인성과 조카 인광, 그리고 땅 월염을 잃는다. 수적에 의해 강수에 던져졌던 인광과 월염이 표류하여 닿은 곳이 제남 땅이었다. 한 여 도인의 안내를 받아 가보니 도관이다. 인광은 태청관으로 들어가고, 정 소저는
청성관으로 가 있다가, 운화선인의 제자가 되기를 거부하고 옥에 갇혀 온갖 고생을 한다.
이 때, 조 학림 세창은 어사태부가 되어 있는데, 개노 마천이 중원을 침공할 새, 왕자 왕건이 황제에게 친정을 권한다. 조 어사가 부당함을 간하다 왕건에게
몰려 북변으로 유배를 당한다. 왕건이 조 태사가 마저 음해하려 할 새, 조 태사가 벼슬을 사하고 하향하다가, 상경하난 정 상서의 종제 되는 문계공을 만나
문계공의 양자 인웅과 자기 손녀와 약혼을 해 둔다.
문계공 정흠이 상경하니 황제는 예부상서를 삼고, 그의 아우 의계공 정렴으로 강서안찰사를 삼고, 양계공 정혐으로써 남월사신을 삼아 보내니, 왕건은 다시 정상서를 음해한다. 정상서가 고문에 견디다 못해 토혈하고 죽으니, 7세 되는 정상서의 딸 기염이 혈소를 올리고 죽고자 할 때, 궁녀들이 정 소저를 살려내어 정부로 보낸다.
태주에 있던 청계공이 종제의 흉음을 듣고 상경하여 종제와 같이 죽지 못함을 슬퍼한다. 참사를 당한 서 태부인은 동저에 있을 마음이 없어 문계공의 영구를 따라 태주로 내려간다. 왕건은 다시 태주로 내려가는 정부의 일행을 없애려고 하다 실패하고, 청계공은 무사히 도착하여 문계공의 장례를 치른다. 이 때,
북호가 다시 중원을 침공할 새, 황제가 왕건의 말을 듣고 친정하였다가 호군에게 생포되어 호영으로 들어가는데, 북변에 유배되어 있던 조어사 세창이 달려와 황제를 구출하고, 조어사가 호영에 남기로 하고 황제를 명진으로 돌아가게 한다.
한편, 남월의 천사로 갔던 양계공 정겸이 남월왕을 설득하여 천조를 섬기게 하고 돌아오다 형의 죽음을 듣고 못내 슬퍼하고, 강서안찰사로 갔던 의계공
정렴도 순찰을 마치고 돌아와서 형의 죽음을 슬퍼하다 득병까지 한다. 태주 고향으로 내려와 있는 청계공은 지난 월청강에서의 봉적이 집안에서 일으킨
음모가 아닌가 생각하며 소씨를 의심할 새, 운계공 등은 그럴 리가 없다고 하며 형을 간하다. 청계공은 황제를 모셔오기 위하여 북으로 가고, 운계공은
모부인을 모시고 천태산으로 들어가 숨어 있기로 한다. 청계공은 떠남에 있어 소씨에 대한 정이 없으나, 모부인의 말을 들어 가사를 부탁할 뿐이다. 소씨
또한 어찌 박대함을 모르리마는 마음으로 자기 신세를 탄식하며 사색하지 않고 말을 들을 따름이다.
선시에 정인성이 월청강에서 천척강심에 떨어졌으나, 상제가 굽어보고 수신을 명하여 구출하라 하니, 수신이 인성을 몽고의 배에다 올려놓는다. 몽고의 배를 타고 몽고로 들어간 인성은 왕권을 다투는 왕자 난에서 부왕을 죽이고 왕위에 오른 세자를 처단하고, 전왕의 셋째 아들을 즉위하게 한다. 이에 몽고왕이
인성의 뜻을 쫓아 척발유를 사신으로 삼아 인성을 데리고 대국으로 들어가게 하는데, 인성의 일행이 풍랑을 만나 금국으로 잘못 들어간다. 금왕은 정 공자를 영접하며 인성이 득병하매 친히 문병한다. 금국에 대한 이들매 정 공자가 기우하여 비를 오게 한다. 이넝이 환국할 새 금왕은 사신을 딸려 보낸다. 인성은
황제가 북호를 치고자 50만 대군을 이끌고 와서 노영에 머무르고 있다는 소문을 듣고, 금국을 떠나 황제가 머물러 있는 노영까지 간다.
한편, 인광남매가 태청관의 석혈과 청성관의 은실에 갇혀 있는 지 3년이 되었다. 탈신지계를 생각하고 있는데, 태행산에 살고 있는 엄 도사가 나타나 도관을 요기를 없애고, 조부의 제자인 장두가 어사로 나타나 요도를 죽이고 인광남매를 구출한다. 인광남매가 태주를 찾아가다가 도적을 만나 누이를 잃고 본부의
장확인 운학과 경농을 만나 도적을 물리치고 노주 3인이 누이를 찾는다. 한편, 예부상서로 있던 장헌이 안찰사가 되어 순찰하다가, 인광의 일행을 만나
도적인 줄 알고 잡아오게 한다. 인광이 장 어사를 보고, 장인 될 사람인 줄 알고도 모른 척한다. 장어사도 사위 될 인광임을 알았으나, 금황이 정가의 삼대를
멸하고자 하는 사실을 알고 있는 지라 모른 체하고 놓아 보낸다.
인광이 풀려나와 누이를 찾는데, 백부가 부리는 최언선이 장어사의 봉서를 가지고 가서 전하는데 보니, 황제가 출전한 후 세자로 즉위한 경태황제가 세자 때 정문청과 주비함을 함원하고 맹추를 시켜 찾고 있으니 피신하라는 사연이다. 인광이 누이를 찾아가다가 또 도적을 만나 잡혀 장어사의 앞에 나아가니, 인광과 2노를 가두라고 한다. 인광은 조부의 대은과 활인지덕을 잊어버림이 이와 같은가 여긴다. 매파 월낭이 장 어사에게 시비 위정의 집에 있는 미녀를 천거한다는 말을 듣고, 최언선이 찾아가 위정이 꿈을 꾸고 절벽에 떨어져 있는 소녀를 구출하여 데리고 왔다 하기로, 살펴보니 정소저이다. 위정은 정소저의 외가인
양추밀의 시복의 아내로서 최언선과는 구면이다. 둘이 짜고 미백단을 얻어 옥족에게 먹이고 인광을 탈출시켜 위정의 집으로 데리고 가서 남매가 조봉하게
한다.
정 소저는 운암산에 사는 본부로 가 있기로 하고, 정 공자는 최언선과 위정을 살리기 위해 여화하여 장 어사를 현혹하기로 한다. 장 어사는 여화한 정 공자를 보고 반하여 정욕을 풀고자하나 정 공자는 교묘한 말로 피하며, 장 어사가 자기 딸을 황제의 후궁으로 드리겠다는 말을 듣고는 장 소저도 숙녀가 아닌가
여긴다.
정 공자는 최언선을 시켜 누이를 데리고 상경하게 한다. 정 소저가 상경하다가 부친과 상봉하니 정 상서가 딸의 생환함을 보고 못내 기뻐한다. 정 상서는
딸에게 태주는 집이 비어 있으니 가지 말고, 외가인 양부에 머물러 나의 회환을 기다리라고 한다. 이 때, 장 어사가 황제의 부름을 받고 장 미인을 데리고
상경하여 예부상서가 된다. 장 상서는 정 부인을 내쫓고 외씨만을 데리고 있다. 장 소저는 부친이 자기를 후궁으로 들여보낸다는 말을 듣고 자결하고자
하는데, 시비 춘홍이 위로하며 화를 피할 방도를 강구하자고 한다.
어사태부 박상규 딸 교낭이 외가인 범부에 갔더니, 화성 공주의 부마인 범단의 아들 경화가 장 소저의 성화를 듣고 주선해 달라고 한다. 교낭은 장 소저의
현숙함을 시기하고 있던 터라, 범 공자를 월장시켜 장 소저의 방으로 들도록 한다. 장 소저가 월장한 범 공자를 잡고도 부마의 권위에 눌려, 딸의 음행으로
돌리고 죽이려는 듯 질책하니, 장 소저는 누명을 씻을 수 없어 자결한다.
장 상서는 그래도 딸인지라 눈물을 흘리며 태공산 구가로 보내어, 정 미인에게 살리라고 부탁하며 그 동안의 매정을 나무란다. 정 공자는 비로소 장 소저의 절행을 알고 전날 청허자 두보 형으로부터 배운 신약을 만들어 먹이니 생도가 있다. 마친 두공이 와서 주는 약을 먹여 장 소저를 소생시킨다.
이러할 때 장 상서의 시녀가 박씨에게 정 미인의 이야기를 하니, 박씨가 달려와 장 상서에게 달려들어 마구 할키고 치고 한다. 장 상서가 칼을 들어 정 미인을 치려고 하는지라, 정 공자는 칼을 빼앗아 던지고 장 상서의 혼암을 꾸짖고 본부로 돌아온다. 장 상서는 정 미인이 정 공자임을 알지 못하다가, 교낭의 말을
듣고야 대경실색한다.
교낭은 다시 범 공자를 시켜 장 소저를 납치하게 한다. 장소저가 집을 나와 도망하다가 대강을 만나 투신자살하니, 제적이 찾지 못하고 산곡에 있는 범 공자에게 아뢰니 낙담 실망한다. 이 때, 정인광이 옛집으로 돌아와 보니, 4ㆍ5명의 노복들이 집을 지키고 있을 뿐이다. 남자의 헌 옷으로 갈아입고 양부를 찾아가니 양 참정의 아들들이 반겨 맞는다. 누이를 만나 부친이 천태산으로 들어갔음을 알고, 천태산으로 들어가다가 소 상서를 만나 인사하니, 문청공 정 태부의
손자임을 알고 택서한다. 다시 배를 타고 가다가 시체를 건져내어 보니 장 소저이다. 소 상서는 장 소저를 소생시켜 집으로 데려가서 양녀를 삼고, 정 공자는 천태산으로 들어간다.
선시에 운계공이 사백을 호지에 보내고 양자를 실리한 아픔이 극하여 일신에 병이 깊었더니, 문득 인광이 나타나 절을 하는 것을 보고 꿈인가 여기며 살아
돌아옴을 못내 기뻐한다. 아형의 생사를 알지 못하고, 문계형의 원사를 못내 슬퍼한다고 한다. 인광이 살아 돌아옴을 본 서태 부인이 기뻐서 어찌할 바를
모르고 있으나, 소씨는 인광이 돌아오고 월엄 소저도 살아 돌아옴을 듣고 못내 통분한다.
이 때, 양 참정의 편지가 왔는데, 이창린이 친생부모를 찾은 사연으로서, 생부는 예부상서 장헌이라고 한다. 운계공은 장상서가 아무리 배은망덕했다 해도
장생과 월염 소저와의 혼사는 파기할 수 없다고 하며 결혼식을 올리게 한다. 또, 호지에서 청계공의 편지가 왔는데, 인성이 살아 돌아와 같이 있다는 사연이다. 운계공과 서태 부인 등이 인성 부자의 상봉을 못내 기뻐한다.
하루는 소 상서가 찾아와서 장 소저의 구출을 이야기하며 숙연을 성취시켜 주자고 한다. 인광이 듣지 않으면 장 소저를 친딸이라 속여 결혼시키자고 하는지라, 운계공은 소 상서의 좋을 대로 하자고 한다. 이에 소 상서는 운계공과 굳은 언약을 하고 돌아간다. 선시에 장 상서가 정 미인을 한 칼에 죽이지 못하였음을 통한하고 있는데, 태운산 본부에 있던 딸이 행방불명되었다는 소식이 와도 애석하는 빛이 없다. 박씨가 낳은 아들 희린이 누이를 찾아 달라고 보채며 부모에게 달려들어 옷을 찢는다. 가중이 혼란해져서 박씨가 장 상서를 노비같이 야단을 치니 집안이 상하가 없다. 이러할 때 10년 전 소주 행도에서 도적을 만나
잃었던 아들 창린을 찾았다는 양 참정의 편지를 받고 기뻐한다.
본성을 찾은 장창린이 본부로 돌아오며, 박 부마의 손녀 교낭이 창린의 준수함을 보고 첫눈에 반하여 박씨에게 청혼한다. 장상서가 아들의 뜻을 묻는다.
창린은 전날 정부의 완월대에서 청계공의 차녀와 약혼한 것을 벌써 잊었느냐 하며 거절하니, 정부와는 혼사할 수 없다고 하는 부친의 말을 듣고, 이어
정부에서 결혼식을 올렸다고 하는 아들의 이야기를 들은 장 상서의 얼굴이 잿빛으로 변하며, 입 밖에 내지 말라고 당부한다.
박씨는 장 공자를 상사 끝에 정 부인을 살해하고자 집으로 데려오도록 한다. 금왕의 딸 운릉 공주가 태학사 등수의 부인이 되었더니, 공주의 딸 악선 군주가 또한 장 공자를 보고 반하여 부친을 움직여 청혼하나, 장 공자는 정상서가 호지에 갔음을 듣고 장인을 찾아 호지로 들어가니 박씨와 군주가 애를 태운다.
한편, 장 상서가 호지에 있는 황제를 찾아가니, 황제가 반겨 맞고 충량을 멀리 했음을 사과한다. 정 상서가 호영으로 가서 화평을 도모할 새, 호왕이 정 상서를 인질로 붙잡아 두고 명황을 환국하게 하고, 정 상서의 항복을 받으려고 하나 정 상서는 끝내 굴복하지 않는다. 조 태부도 호영에 있으면서 굴복하지 않고
장인인 정 상서를 보살피는데, 정 상서가 옥중에서 득병하여 위독하다.
이러할 때 인성이 천리구를 얻어 타고 호영으로 달려와서 부친을 구호하여 부친과 같이 옥중에서 지낸다. 환국한 황제가 경태를 폐하고 다시 등극하고는
경태 7년을 고쳐 순천 원년이라 하며, 간신ㆍ적자를 형육하고 충신, 열사를 맞이하니, 일월이 다시 밝아진다.
호왕이 죽으매 세자가 등극하고는, 장 상서와 조 태부의 충성을 가상히 여겨 환국시킨다. 황제는 정 상서를 반갑게 맞아 태사 태부에 참지정사를 삼고,
조 태부로 이부상서에 홍문관태학사를 삼아 그들의 충성을 기린다.
나라가 태평하여 설과할 새, 정인성이 장원이요, 제2는 장창린이요, 제3은 양추밀의 아들 필광이요, 재4는 의계공 정렴의 아들 인홍이다. 장창린이
태운산으로 장인인 정 태사를 찾아보고, 이부에 있는 아내 정 부인을 찾아가서 생후 얼마 안 되는 쌍아를 보고 못내 기뻐한다. 정 태사와 인성도 와서 보고
반김이 대단하다.
정인성 등이 삼일유가 후 입궐하니, 황제가 반기고 정인성으로 중서사인을 삼고, 장창린으로 한림학사, 양필광으로 금문직사, 정인홍으로 시강학사를 삼는다. 4인은 황제에게 말미를 얻어 고향으로 선산을 찾아가서 성묘하고 돌아온다.
선시에 장 학사가 마지못하여 박씨를 재취하였으나 돌보지 않았더니, 박씨가 함원하고 정 부인과 장 학사를 음해하려고, 시녀 일선으로 자기 복색을 하고
방을 지키게 하고는, 궁녀가 되어 황제를 받들며 황후를 해치려고 하다가 발각되어, 박씨를 엄형ㆍ고문함으로써 박씨의 자백을 받는다. 황제는 박씨를 처참ㆍ효시하고 범생은 공주의 낯을 보아 불문에 붙이고 그 외는 다 정배한다. 처음에 소씨가 도적을 시켜 인성을 월청강에서 살해하려다 실패하고 인성이 살아
돌아와 출세함을 보고 더욱 통한하며 어떻게 해서라도 죽이려고 한다. 맹추가 천태산에 은거하고 있는 운계공과 인광을 죽이려다 인광의 칼에 죽었음을 듣고, 이노강을 경각에 삼키지 못함을 통분히 여긴다.
이 때, 장 학사가 촉지로 가서 친모인 정 부인을 모시고 온다. 장 상서는 딸이 살아서 소부에 있음을 듣고 소부를 찾아가 부녀가 상봉하고, 딸을 데리고 상경하여 정부를 찾아가서 쌍손을 보고 못내 기뻐하며 정 부인을 본가로 데려온다. 이 때, 정인성이 약혼자인 이 소저와 결혼하니, 소씨는 이 부인마저 죽이려고 음모를 꾸민다.
장 학사가 모부인 정씨를 모시고 상경하니 부친이 나와 맞이한다. 정 부인이 처음으로 며느리인 정 부인을 보고 못내 기뻐한다. 장 학사가 친정에 가 있는
박씨를 모시고 오니, 박씨는 장 학사의 성효와 친정, 부친의 간곡한 충고를 듣고, 정 부인을 해할 마음을 버린다. 정 참정이 장 상서를 찾아보고 같이 소 상서를 찾아 인광의 혼사를 의논한다. 인광이 유산하고 돌아와서 소 소저와 택일 성례하니, 인광은 소 소저가 약혼자인 장 상서의 딸인 줄은 꿈에도 알지 못하고
장 소저는 죽은 줄만 알고 있다. 장 소저의 이야기가 나오자 인광은 장 상서를 비방하며, 비록 장 소저가 살아 있어도 취하지 않겠다고 한다. 운계공이
나무라며 소저가 곧 장 소저라고 실토하니 인광이 크게 놀라며 실망하여 장 소저를 박대하기 시작한다.
정인광이 과거에 급제한 후에도 장 소저와의 금실이 좋지 못함을 본 운계공은 소 소저와 결혼하게 했으나, 소 소저와도 금실이 좋지 않아 운계공은 안타까워 할 뿐이다. 장 소저는 소 소저를 반겨 맞고 자매같이 의좋게 지낸다. 박씨가 정부에 와서 소 소저를 보고 발악하는데, 장 학사와 정 부인이 와서 발악을
못하게 하고 데려가니 수그러진다.
소씨의 쌍생 중 인중이 모친을 닮아 마음이 고약하니, 모친의 뜻을 여합하여 형 인성과 형수 이 부인을 음해하려고 한다. 아우 인웅이 감기가 들어
누워있는데, 인중이 약을 가지고 가다 독약을 넣어 인웅을 실신하게 하고는, 그 혐의를 이 부인에게 돌린다. 청계공이 의심하고 인중을 문초하여 자백을
받는데, 인성은 부친에게 자기 처를 문초하라고 한다. 인중이 독약을 먹고 피를 토하며 죽는 체하기로, 청계공은 차라리 죽여 버리겠다고 하다가 모부인의
만류로 중지한다.
다시 인중은 의계공의 부인이 오라비 집에 가서, 얻어다 기르는 소녀를 데리고 와서 딸같이 사랑하고 있는 난소에게 혐의를 돌리려고 한다. 이에 난소가
하도 억울하여 우물에 빠져 죽은 것을 건져내어 보니, 품에서 한 봉서가 나오는데, 청계공이 보니 익은 서적이요, 난소의 얼굴이 영릉도위 한계선과 똑같다.
선시에 한 부마의 모친이 죽고 계모 주씨가 들어와 공주와 도를 미워하다가, 한 딸을 낳아 태학사 양순에게 출가시켰더니, 딸하나를 낳아 놓고 조사하니,
마침 공주도 딸을 낳았는지라, 도위의 자녀를 없이 할 양으로 자기의 딸이 낳은 딸과 바꿔치기하여 시녀 교란을 시켜 공주의 딸을 죽여 없애라 한다. 교란이 차마 죽일 수 없어 친척 되는 심파에게 주어 기르게 하고는 거짓 죽였다고 하였던 것이다.
한부마가 정부에 갔다가 난소가 품고 있던 봉서의 필적을 보니 자기의 글씨이다. 집에 돌아와 교란과 심파의 자백을 받아 자기가 기른 딸은 망매의 딸이요,
정부에서 자라난 난소가 바로 자기의 친딸임을 알게 된다. 이에 정부에 가서 부녀상봉 하니 청계공 형제가 못내 치하한다. 한 부마는 기연이라 하며 정인성의 부실로 삼으라고 한다.
이 때, 안남이 반역할 새, 부지참정 왕흠이 남해절도사 석흥과 싸우다 왕참정이 전사하고 석절도사가 패배함을 상계한다. 황제는 정 참정으로 의남대원수,
석흥으로 부원수, 이부시랑 정인성으로 체찰사를 삼아 출전하게 한다. 정원수가 떠나며 인중의 작변을 근심한다. 장 상서의 차남 희린은 박씨의 소생인데,
부모의 불인으로 배운 바가 없더니, 사백의 효우와 덕행을 본받아 군자가 되었다. 처사 주양의 차녀와 결혼하니 현숙하고 금실이 좋으나, 박씨는 주 소저를
좋아하지 않는다.
박씨는 일념으로 딸의 적인 소 소저를 없애고자 온갖 음모를 꾸미며 정부를 찾아가 발악하니, 인광과 장 소저와의 금실은 점점 멀어지고, 인광은 파혼까지
선언하며 장 소저에게 자결하라고 강박한다. 운계공이 아들을 태벌하니 피가 낭자하다.
선시에 주돈신의 후예 조처사가 부인 유씨와 딸 현염을 데리고 귀녕하다가 화적을 만나 딸을 잃고 수심으로 지낸다. 완경도위 교성의 장자 한필의 원비
여씨는 간악하고 차비 호씨는 착하다. 여씨는 생녀하고 호씨가 생남하니, 여씨는 호씨를 해치려고 한다. 여씨가 딸을 죽이고 문외 하니, 다시는 잉태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호씨가 다시 잉태하니, 여씨도 잉태한 양 꾸미고 남녀 간 생아를 구한다. 유모인 노유낭의 남편 장손탈을 시켜 생아를 훔쳐오게 하고는,
호씨가 낳은 아들과 바꿔치기하여 자기도 생남했다고 하니, 교사마가 곧이 듣는다.
여씨는 호씨가 먼저 낳은 아들의 입에 독약을 넣어 궤에 넣어 장손탈을 주며 강수에 던지라고 한다. 이 때, 한 노승이 나타나 궤를 빼앗아 가지고 회생약을
먹여 살리고, 예부상서 등심의 부인 유씨에게 주어 양육하게 하니 등공의 아들과 동갑이다.
장손탈의 거짓 보고를 받은 여씨는 크게 기뻐하며, 간부를 시켜 호씨 방에 들게 하니, 교사마가 보고 대노하여 호씨를 죽이려고 후당에 가둔다. 여씨는 다시 호씨의 생아를 자기의 생아라 하며 기르다가 독약을 먹여 죽이고 그 죄를 호씨에게 돌리니, 교사마가 대노하여 후당을 가서 호씨를 죽이려고 한다. 시녀
열섬이 호씨를 엎고 도망하다 강수에 몸을 던진다. 호씨가 죽은 후 호씨가 낳은 딸 숙란에게 자기의 생존을 알린다. 이에 숙란은 외가로 가서 모친과 상봉하고 못내 기뻐한다. 여씨가 알고 장손탈을 시켜 호가에 가서 불을 놓게 하나, 숙란은 타죽지 않고 살아서 본부로 돌아온다.
숙란이 장성하여 설계선생의 3자 인경과 약혼하니 여씨가 불열하고 표제인 윤직의 차남 경주와 결혼시키려고 음모를 꾸민다. 숙란의 결혼날 신랑에게
화살이 날아오고, 또 공중에서 그녀와 정을 통했다며 외치며 달려드는 요인을 화살이 날아와 맞쳐 도망하게 하는 변괴가 일어나매, 교사마가 대노하여 딸을 가두니 집안은 쑥대밭이 된다.
여씨가 다시 시어사로 있는 표종되는 매봉을 시켜 호씨의 음행을 상소하도록 하니, 여씨의 시녀 설영이 주인의 악행을 차마 볼 수 없어 등문고를 쳐서 여씨의 악행무도를 직고한다. 이에 숙란이 풀려 나오니, 여씨는 술련을 취봉산으로 보내며 윤경주에게 납치하라고 한다. 정부에서 이 사실을 알고 숙란을 호위하여 가니 윤경주가 납치하지 못한다.
정공자 인경이 결혼날을 망치고 잠을 이루지 못하다가 선계로 가서, 백모 양부인이 숙란은 여씨의 소생이 아니라, 주 처사의 딸 현염이라 하며 주 소저를
불러 만나 보게 하고, 선약을 주며 후일에 쓰라고 하는 꿈을 꾼다.
이 때, 국구 려형수의 장자 려원홍이 장상서의 3자 세린을 사위로 삼는다. 세린이 여씨의 박색을 보고 첫날밤부터 가까이 하지 않으니 여씨가 함원하고
질욕이 대단하다. 세린이 산수를 찾아 놀다가 왕영진인이 보낸 미인도를 보고 그 미인을 사모하니, 그 미인은 바로 의계공의 딸이다. 여씨가 음약을 장공과
박씨에게 먹여 마음을 흐리게 하고, 세린을 자기 방에서 자게 하나, 세린은 벽을 부수고 나와 부모에게 모진 매를 맞는다. 장공과 박씨가 본심을 되찾아
여씨를 친정으로 보내고 장공은 정부로 찾아가 구혼한다.
정부에서는 운계공이 선산에 간 사이를 타서 소씨 부자가 계교한다. 인중이 인성부부의 허수아비를 만들어 죽기를 축원하는데, 인웅이 발견하고 불태워
버린다. 인중이 인웅을 마구 구타하여 병이 나게 하고 소씨는 잉태한 이 부인에게 독약을 먹여 죽이려다 실패한다. 이 부인이 생남하니 소씨는 주태부인의
시녀가 낳은 아들과 바꿔치기 하여, 계월에게 인중을 딸려 보내 산중에 가서 죽여 없애라고 한다.
이 때, 인웅이 외가에 다녀오다가 한 꿈을 꾸고 절학봉을 찾아가니, 화부인의 시녀 홍주가 화부인의 지시를 받아 절벽에 던져진 아이를 구출해가지고 나오는 중이었다. 인웅이 만분 안심하고 집으로 가 보니, 모친이 이 부인을 뉘어 놓고 독약을 먹으라고 강박하고 있었다. 모친의 손으로부터 독약을 빼앗으니 소씨가 인웅의 손을 물어뜯는다. 인웅이 땅에다 머리를 치며 죽기로써 간하니 그제서야 중지한다. 그러나, 소씨의 인성부부를 죽이고자 하는 마음은 갈수록
굳어만 가고, 인웅은 모친의 행악을 더욱 통탄한다. 이부인은 홍주가 구출해 온 아들을 찾은 기쁨에 아픈 줄도 모르고 소씨를 지성으로 섬기나, 그럴수록
소씨는 이 부인을 죽이지 못하였음을 통탄할 뿐이다.
장세린이 정 소저를 상사하는 마음이 간절하여 병이 든다. 인중이 일을 꾸며 미인도를 교환한 일 을 여 추밀에게 이야기 하니, 여 추밀은 그 혼사를 방해하기 위해 장공을 찾아가 빨리 구혼하라고 한다. 이에 장공이 정부를 찾아가 미인도의 이야기를 하며 청혼하니, 의계공이 대노하여 딸을 죽이려고 한다. 성염
소저가 미인도의 허무한 이야기를 듣고 보니 기가 막힌다. 세린은 여추밀의 흉심을 알고 자기 혼사가 안 될까 근심한다.
이 때, 장 부인이 병이 더욱 심하여 토혈까지 하니, 장공과 박씨가 수시로 와서 문병하나 임신한 지 수삼 월이 되었음은 전혀 알지 못한다. 그러나 장부인의 병은 죽음 직전에 있다. 소공이 자주 와서 문병하고 순무하던 장상서가 돌아와 누이를 간호하니 차차 차도가 있기 시작한다.
한편, 대원수가 되어 출전한 청계공이 아들 인성을 데리고 양주에 이르니, 양주는 적년 자사를 지내던 곳이다. 자사만안이 환영하는 잔치를 여는데, 자사의
딸 초란이 인성에게 반하여 남복하고 시녀 석영을 데리고 행군을 따른다. 하남의 제적이 정원수의 격문을 보고 적장 남궁주와 장손술을 잡아 바치려 한다.
남궁주가 자객이 되어 명진에 들어 왔다 잡혀 죽고, 장손술도 정원수의 영채에 들어왔다 잡혀 죽는다. 적굴을 소탕하고 사옥에 갇혀 있는 석절도사의 딸을
구출하여, 석절도사에게 알리니 달려와서 부모가 상봉한다.
석 소저는 정원수의 은혜를 갚는 길은 오직 건즐을 받드는 길밖에 없다 생각하고, 정원수에게 그 뜻을 전하니 정원수가 준절히 꾸짖고 돌려보낸다. 마친 만 소저가 정 원수의 뒤를 따라오다 사경에서 한 이승에게 구출되고, 석 소저의 시녀가 되어 있으면 정 원수와의 인연을 맺을 수 있다는 그 이승의 말을 듣고
석 소저를 찾아와 같이 있다가. 정 원수가 석 소저를 타이르는 말을 듣고는 단념하고 산사를 찾아가 머리를 깎고 묘운이란 도고의 제자가 된다.
정원수가 안남으로 행군하여 들어가니, 안남왕이 천병을 맞아 싸울 새, 능운자란 도인을 맞아 상의하고, 세자로 하여금 수성하게 하고 친정하다가 전패한다. 안남공주가 관찰사 정인성을 보고 흠모하는 것을 안 적장 은이수가 공주로 하여금 정채찰을 미인계를 써서 죽이려 하다가 실패하고, 정체찰은 부친의 대노를 사기도 하나 안남왕이 세궁하여 항서를 올리니, 정원수는 다시 안남왕으로 복위시키고 안남왕의 부자를 교화시킨다.
이 때, 정부에는 장소저가 쌍태하여 남매를 낳으니 장공이 못내 기뻐한다. 소씨는 여전히 이 부인을 학대하여 난투하기도 하고 칼로 찌르기도 하나, 그때마다 인웅이 가로막고 모친을 간한다. 또, 인중은 이 부인을 음녀로 몰려고 하다가 실패한다. 한편, 교 사마 한필의 부인 여씨가 호씨를 가두고 교 소저와의 천륜을 끊으려고 한다. 윤경주는 교 소저가 갇혀 있는 취봉산 화장을 에워싸고 납치하려다 실패하고, 인웅이 가로막고 모친을 간한다. 또 인중 운계공의 장인인
송 학사를 취봉산으로 찾아왔다가 이 소식을 듣고 교 소저를 구출한다. 의계공이 달려와서 자부의 손을 잡고 못내 기뻐하며 돌아보며 잘 간호하라고 한다.
윤경주의 노복들이 교소저의 시녀로 교 소저의 복색을 하고 있는 채월을 잡아왔는데, 채월이 틈을 타서 몸을 빼어 조정에 들어가 격고하여 윤경주의 행악을 고발한다. 황제가 대노하여 여씨와 윤경주를 정배하고, 교 사마도 따을 데리고 돌아온 후로 천성을 회복하여 전후 다른 사람이 된다.
이 때, 장손탈이 누이와 노녀의 아우 비게가 궁중에 들어가 상궁이 되어 있음을 이용하여, 태감 진습의 아우 진탐을 죽여 개용단을 먹고 진탐이 되어
교가일문을 복멸하려고, 교사마가 여태후의 집안을 절치하는 서간을 써서 여 태후에게 보인다. 여태후가 대노하여 어림군을 시켜 교 사마를 잡아오게 하여
그 사실 여부를 대질시키니 전혀 다르다.
이에 비게를 추문하니 전후 악사를 실토하는데, 교 사마의 딸은 호씨의 소생이 아니라 주 처사의 딸을 장손탈이 납치하여 온 아이이고, 호씨가 생남하면
강수에 던져 죽여라 하고, 교 사마로 하여금 호씨를 멀리 하게 하였고, 교 소저를 윤경주에게 출가시키려다 실패하였으며, 교 소저가 정인경과 결혼하는
첫날밤에 간부를 시켜 교 소저를 음녀로 몰아 교사마로 하여금 화장에다 가두게 했다는 것이다. 그러니, 교 소저는 사실 주 소저라는 것이다. 황제가
주 학사를 불러 부녀상봉하게 하니, 주 소저가 된 교 소저는 어리둥절할 뿐이다.
이 때, 등위공이 교 사마의 옥사와 교 소저의 일을 보고 와서 기뻐하거니와, 혜안 법사가 찾아와 공의 아들 자현은 친자가 아니라, 교 사마의 아들이니
14년 동안 끊어졌던 부자지의를 맺어 주라고 황제에게 주달하라 한다. 교 사마가 궁중에 불려가서 자기가 기른 딸은 주 학사의 딸이요, 등공의 아들이
자기의 아들이라는 황제의 말을 듣고 꿈인가 여긴다. 이에 주 소저와 교 공자는 자주 양부모를 찾아 위로하고, 정인경과 주 학사를 찾아보고 새로이
옹서지간이 된 기쁨을 나눈다. 여씨가 이 소식을 듣고 죄를 생각한 끝에 강수에 투신자살한 양 하고 몸을 숨기니, 여 국구는 그 죽음을 알고 입던 옷으로
허장하고, 정부에서는 주 소저를 맞아 못내 기뻐한다.
이 때, 안남에 원정 갔던 정인성이 돌아오니, 소씨와 인중의 가슴에는 못이 박힌 듯이 인성의 성공을 통분히 여긴다. 정체찰이 안남에서 부친을 배별하고
오다가, 형주 땅에 사는 소원철이란 선비의 딸 명란소저가 도적 왕참에게 납치되어 가다 강수에 투신자살한 것을 구출하여 남매지의를 맺는다. 황제는
정체찰의 성공을 축하하고 예부상서에 남정후를 봉한다.
정부에서 서태 부인이 일가를 휘동하여 체찰의 돌아옴을 맞는데, 홀로 소씨와 인중만이 맞지 않는다. 이 부인이 몽창을 데리고 나와 처음으로 부자상봉하게 한다. 소씨는 몽창의 기이함을 보고 더욱 통한한다. 정상서가 장공을 찾아 인사하니, 장공과 박씨가 못내 기뻐하며 박씨가 소씨를 미워하는 마음이 없어지고, 장부인은 모친이 개과함을 보고 다행히 여긴다. 그러나, 소씨는 몽창마저 미워하여 독약을 먹인 것을 상서가 해독약을 먹여 소생시키는데, 소씨는 그 죄를
이 부인에게 돌려, 상서로 하여금 이 부인을 후원에 가두게 하고 죽일 계교를 꾸민다. 인중이 백씨를 죽이려고 활을 쏘니, 상서가 손으로 받아 버린다. 또,
장검을 가지고 치려하므로 칼을 앗아 버리고 순순히 타이르나, 인중은 감격함이 없이 형의 성현대도를 시기하여 마지않는다.
이 부인이 벽실에서 조용히 지내는데, 소씨가 시초를 쌓아 놓고 불을 지르게 하니 더워서 견딜 수 없다. 그래도 이 부인이 죽지 않으니, 시녀를 시켜 철장으로 무수히 구타하게 하고 얼굴의 살갗을 벗기게 하다가, 전신을 묶고 독약을 입에 넣어 연지에 던져 남강으로 떠내려가게 한다. 이부인의 시녀 월란이 연지로
가서 이 부인을 구출해 내는데, 인웅이 달려와서 같이 이 부인을 업고 채연각으로 모셔다가 극진히 간호하니, 이 부인이 다시 살아난다.
소씨의 시녀 연란이 엿보고는 소씨에게 이부인의 구출을 아뢰니, 죽이지 못하였음을 못내 통분한다. 인웅이 모친의 악사를 간하다 듣지 않으매, 칼을 들어
자기 명을 끊고자 하니 피가 낭자하고 인사불성이 된다. 상서가 보고 스스로 불효를 탓하며 잠을 이루지 못한다. 그러나 소씨는 일분도 감동함이 없다.
인웅이 깨어나 다시 간하며 녹빈과 계월 등의 시비를 멀리 내치기를 청하나 소씨는 들은 체도 않는다.
선시에 홍화방의 소부에서 소노공과 주 부인이 딸의 극악한 행사를 듣고 보니, 장차 정부를 망하게 하고 부모에게 욕보이게 할 것을 짐작하고, 계교를 써서 시비인 녹번과 계월을 유인하여 초사를 받아 가두고, 다시 딸을 본부로 오게 하여 시비의 초사를 보이며 대질하고 하옥하였다가 아예 독약을 먹여 죽이려고 한다. 소씨는 죽어 귀신이 되어서라도 인성부부를 없이 하겠다고 발악한다. 인중이 어미 죽이는 것을 보고 발악할 새 소공이 난투하니, 죽은 듯이 누워 있다가 틈을 타서 월장도주한다.
바야흐로 소씨가 석약을 먹으려고 하는데, 이부인의 시녀 월란이 나타나 월약을 빼앗고 이 부인이 문밖에 와 있음을 아뢰며 올리는 혈서를 보니, 모친이
죽음으로 써 불효부가 되오니 죽이지 말라는 사연이다. 주 부인이 나와 이 부인을 맞아 기꺼이 돌아가기를 청하여 돌려보내려 하니, 모친을 죽이지 않겠다는 보장을 받고 돌아가겠다고 한다. 이에 회서를 써서 죽이지 않겠다고 한다. 소씨가 이 말을 듣고도 그 효성에 감동함이 추호도 없고 발악은 갈수록 심하다.
정상서가 달려와 소씨를 붙들고 기절한다. 소씨가 칼을 들고 자결하고자 할새, 정상서가 칼을 빼앗다 손을 다쳐 피가 낭자하매, 소공은 할 수 없어 정사서로 딸을 구호하게 한다. 이윽고 소씨가 깨어나 인성과 인웅의 지극한 간호에 죽지 않겠다고 한다. 인웅은 형이 끝내 해 자위를 감화하지 못하면, 자기도 죽어
혼자는 살지 않겠다고 눈물을 흘리며 모친을 간한다. 소씨가 인성의 손을 잡고 뉘우치는 듯하다. 소씨는 시비들을 죽이려다 정상서의 말을 들어 원지로
추방하니, 녹빈 등이 가다가 수적을 만나 끝내 살해되고 만다. 정상서는 소씨가 회복되매 본부로 모시고 와서 지효를 다한다. 소씨가 돌아와 인중이 자취 없이 사라졌음을 애달파한다. 소씨는 여전히 이씨 모자를 해치려고 하나 심복시녀가 없음을 한한다. 이 때, 한부에는 주태부인이 인 소씨에게 보내는 서한이
왔는데, 주태부인 망녀의 딸 양소저가 정 상서의 회군 때 정 상서를 보고 반하여 상사병이 들어 죽게 되었으니 살려달라는 사연이다. 소씨가 인성을 불러
야 소저를 취하라 한다. 정상서는 모친의 뜻을 받들기 위하여 본의 아닌 승낙을 한다. 서태 부인도 승낙하고 한 소저와 같은 날 결혼식을 올리라고 한다.
양 소저는 본래 음녀이다. 소씨는 양소저가 미욱하고 비박함을 알고 실망한다. 한 소저를 먼저 맞이하고, 양 소저는 부친에게 불이 고취했기 때문에 안남으로 가서 부친에게 고하고 와서 맞이하겠다고 하니, 주태부인과 양 소저는 쾌쾌불락 한다. 정 상서는 부친의 승낙을 얻기 위하여 황제로부터 여가를 받아
안남으로 갈 새, 정 태부가 득병했다는 말을 들은 황제가 어의를 딸려 보낸다.
선시에 순무어사 정인광이 두루 돌면서 주현·자사의 치정을 일일이 살펴 어진 관원과 밝은 원님을 상표 · 주달하여 명관을 포상하고 탐관을 문책할 새,
백성에 대한 교화가 어진 정사는 신월이 돕는 듯하다. 인광이 장 부인을 생각하는 마음 간절하여 장 부인의 별을 살펴보고 걱정한다. 인광이 어릴 때 월청강에서 수적을 만났다가 도관으로 붙들어 가서 온갖 고생을 하고 돌아왔던 그 도관의 여도수가 계행산에 가서 도관을 차려 놓고 양가의 딸을 납치하여, 제자를
삼고 있으며, 조주자사 최경환의 딸 숙완과 그의 질녀 현완과 누이의 딸 명환의 세 소저를 납치하여 왔다가 말을 듣지 않으매 석굴에 가두어 두었더니,
정어사가 알고 그 도관을 습격하여 세 소저를 구출하고 남매지의를 맺으니, 소 소저는 정인성이 살려 주고 결의 남매한 여자였다.
정 어사는 순무를 마치고 병부상서가 되어 상경한다. 장공이 사위를 보러 왔으나, 인광이 장공의 손을 뿌리치고 매정하게 대하니, 장공은 무색해서 통한을
품고 돌아간다. 인광이 순무를 나간 사이에 장 부인이 남매를 쌍생하였는데, 집 안에서는 종제인 인명과 인함의 아들과 딸이라 속이고, 그 남매로 양자양녀를 삼으라고 하나 인광은 듣지 않는다.
인광이 황제로부터 말미를 얻어 안남으로 백부와 형장을 뵈옵고 적년 회포를 풀기 위하여 떠난다. 정 참정이 양자로 더불어 고요히 지내다가 인광을 맞아
못내 기뻐하고, 인광은 백부로부터 장 부인이 남매를 쌍생하였다는 말을 듣고서야 비로소 집 안에서 자기를 속였음을 깨닫고 새삼 장 부인을 생각한다.
정 참정은 인광에게 장 부인과의 금실을 좋게 하라 타이르고, 인성에게는 할 수 없이 양 소저를 맞아 오도록 한다. 이에 인성·인웅·인광 등 형제가 안남을
떠나 경사로 돌아온다.
이 사이 정부에서는 또 소씨가 독약으로 이 부인을 죽이려다 실패하고 이 부인이 생남할 새, 시녀 열성을 시켜 생아를 강물에다가 던지라 하고 석대랑의
아들을 얻어다 놓으니, 소공이 짐작하고 생아를 빼앗아 데리고 와서 기르거니와, 이 부인은 짐작하나 내색하지 않고, 집 안에서는 생아를 보고 의심한다. 또, 한 부인도 친정에서 생남할 새, 주 부인이 자기 외손녀 양 소저보다 먼저 생남함을 시기하여 시녀 홍련의 아비 계윤을 시켜 남강에다가 버리게 하거니와,
한 서생이 나타나 구출한다.
이 때, 인성 형제가 안남에서 돌아와 이 사실을 듣고 못내 통한하며 한부를 찾아 한 부인을 위로하니, 주태 부인과 양씨가 통분한다. 인성이 양씨를 본부로
맞이해 온 후에도 동침하지 않으니 양씨가 더욱 함원하고, 인성은 이 부인이 낳은 차남 몽현이 소부에서 자라고 있음을 알고 못내 기뻐한다. 양씨가 참다못해 소씨에게 하소하니, 소씨는 인성을 불러 양씨를 사랑하라 한다. 인성은 모친의 말을 거역할 수 없어 양씨 방에 가니 구토가 날 지경이다. 양씨가 한 부인을
구타하고 몽창을 언덕에 밀어 죽이고자 할 새, 인성이 양씨를 대질하니 발악하며 모친이 시켜서 그랬다고 한다.
이 부인이 한 부인을 극진히 간호하니, 소씨가 이·한 양 부인을 불러 질욕하며 공모하여 시모를 죽이려 한다고 발악한다. 벽상의 칼을 들어 이 부인을 찌르고자 할 때, 마침 인웅이 나타나 만류하며 칼을 들어 죽고자 할 새, 소씨가 마지못하여 방으로 들어가며 이·한 양 부인을 죽이지 못함을 통분한다. 이 때, 인웅의 길일이 와서 조 태사의 손녀와 결혼하니 금실이 흡족하고, 또 하한 과거에 장원급제하여 한림편수가 된다. 안남에서 부친이 득병했다는 소식을 듣고는 백씨를 모시고 안남으로 간다. 인성이 양주에 이르러 자사 양순을 만나 옹혼지정을 나눈다.
양자사가 처음에 영릉후 한공의 누이를 얻어 딸을 낳고 죽으매 외가에 보내고 윤 부인을 얻었더니, 죽었다고 한 자기의 딸은 죽지 않고 영릉후의 딸
옥앙군주요, 진짜 군주는 정부에 팔려 장성함이 되었다가, 영릉후가 딸을 찾아옴으로써 자기 딸이 살아 있음을 알려 왔고, 악모의 간악으로 딸이
간악해졌으나 정인성의 제 3부인이 된 소식을 듣고 못내 기뻐하고 있다가 딸의 포박을 풀고 사위에게 사과한다.
선시에 안남에서 정 참정의 부하 홍윤이 집주인 왕 대가와 같이 선유하다가 한 궤를 건져 열고 보니, 옥동자가 그 안에 들어 있다. 정 참정의 부하 최언선이 달려와 부중으로 안고 와서 보니, 분명한 한소저의 필적으로 몽현이라 쓰여 있다. 정 참정은 분명한 아손임을 알고 선약으로 살려내어 왕대가의 며느리로
하여금 기르게 한다. 인성형제가 안남에 도착하여 부친을 뵈옵고 인웅의 결혼과 장원급제를 아뢰니 정 참정이 못내 기뻐하고, 손자를 구출한 사연은 이성에게 알리지 않는다.
양 자사가 인성 형제를 전송하고 경사 본부로 올라와 정부를 찾아가서, 아녀의 귀녕을 청하여 데리고 와서 계하에 꿇리고 전후악사를 들어 치죄하고 사약을 손수 입에 부어 먹이니, 얼굴빛이 변해지며 죽어 간다. 마침 안남에서 정 참정의 서간이 왔는데 뜯어보니 딸을 죽이지 말라는 사연이다. 이에 해독환을 먹여 딸을 살리고 양주로 데리고 내려와서 후당에 가두고 개과천선하기를 기다린다.
이때에 사매가 승평하고 조정이 숙청하더니, 서융왕과 동월왕이 공모하여 중원을 침공한다. 황제가 대경하여 부지참정 정참으로 서정대원수를 삼고,
이부상서 정인성으로 호위대장을 삼고, 한림편수 정인웅으로 체찰사를 삼아 출전하게 할 새, 경조윤 정렴이 자원하매 부원수를 삼고 교지에 가서 회군하도록 한다. 부원수가 경사의 대군을 이끌고 부로 행군하니, 정원수가 아우를 맞아 신임 진유사 이황에게 인수를 전하고 바로 행군하니, 교지의 인민이 정원수의
떠남을 보고 못내 서운해 한다.
이에 정원수가 서융과 동월을 대파하여 양왕의 항복을 받고 황조에 전승을 주달하니, 황제가 크게 기뻐하고 즉시 회군하여 군신지락을 누리자고 한다.
정원수가 교지에 유진한 지 3년 만에 경사로 돌아온다. 정원수의 회군을 듣는 소씨는 남편의 부재중에 인성부부를 죽이지 못하고 정력만 허비함을 못내
원통히 여겨 발병까지 한다.
드디어 정 원수가 회군하여 황제를 뵈옵고 적년 끊어졌던 군신의 정을 나누고 환가하여, 모부인과 아우·손자들과 만나 못내 기뻐한다. 이튿날 황제는
정 원수를 불러 동진왕을 봉하고 승상을 삼으며, 부원수 정렴으로 동평공을 봉한다. 정 승상이 본부로 돌아와 소씨의 죄상을 다스릴 새, 소부에 가서
이 부인이 낳은 손자를 보고 더욱 소씨를 통한히 여기며, 이름이 몽환이라 고쳐 주고 데려오게 하고, 또 최언선을 시켜 교지에서 구출한 몽현을 데려오니,
이 부인이 양아를 보고 못내 기뻐한다.
소씨는 몽현과 몽환 양아가 죽지 않고 살아 돌아옴을 보고 흉중의 열화가 더욱 치성하고, 정 상국의 환희함을 보고 더욱 삼키지 못하였음을 통한한다.
소공한테서 시간이 왔는데, 빨리 보고 더욱 삼키지 못하였음을 통한한다. 소공한테서 서간이 왔는데, 빨리 딸을 죽여 후환을 없애라는 사연이다. 이에 소씨의 죄를 다스릴 새, 모부인의 뜻을 받들어 본부에 보내어 개과천선하게 한다. 소공이 아녀를 태장하여 죽음에 이르자, 아자를 시켜 후당에 누이게 하고 정부의
소식을 기다려 발상하기로 하니, 정 상국이 달려와 침을 놓고 약을 처방하여 주고 돌아간다. 이윽고 죽었던 소씨가 살아났으나 부모의 계책을 듣고도
감동함이 없어 여전하다.
이 때 현염 소저의 길일이 와서 의계공이 장희린을 사위로 맞이하고 그의 방탕을 우려한다. 장공과 박씨가 못내 기뻐하고, 정 상국이 장 상서 형제를 맞아
반기다.
동월진유사 정인웅이 조정에 상표하여 동월왕실의 내란을 평정하였음을 알리고, 서융간 사 정인성이 상표하여 남융왕의 천선과 천은을 감축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려 왔기로, 정상국이 황제에게 양궁이 무사하니 2자를 환국하게 해달라고 한다. 황제는 인성으로 서정공, 인웅으로 동평후를 봉하고 환국하게 한다. 인성형제가 환국하여 부친을 뵈옵고 소부로 가서 모친을 모셔오겠다고 간청한다. 정 상국이 인성 형제의 지성에 감동되어 모친을 모셔오라고 한다.
선시에 인중이 소부에서 뛰쳐나와 방황하다가 이부로 가서 이 부인을 죽이기 위하여 불을 질렀다가 실패하고, 주모의 양딸 김선을 사랑하다 중인에게 매를 맞고 있다가, 인성의 부탁을 받은 최언선이 아들을 시켜 인중을 찾게 하니, 최언선의 아들 창윤에게 구출된다. 인중이 창윤의 집에 가서 창윤의 누이를
겁탈하려다 그 미인으로 하여금 자결하게 하기도 하고, 최 자사의 딸을 겁탈하려다 들켜서 도망하다가, 정부에서 보낸 시동 운기를 만나 본부의 소식을 들어 모친이 본부에 와 있음을 알았으나, 집으로 돌아갈 마음은 없다.
백씨가 출전하였음을 듣고 뒤를 밟아 백씨를 죽이려다 실패하고, 한 선인을 만나 질책을 듣고 석굴에 갇혀 있는 것을 최언선이 나타나 구출하고 인성의
서간을 전하니, 인중이 백씨의 서간을 보고 비로소 그 신기함에 감동하고는 집으로 돌아온다. 태운산에 다다르니 산천은 예와 같다. 인중이 부친에게
청죄할 새, 형틀에 올려 태형하니 피가 낭자하다. 그러나 조금도 괴로워하거나 원망함이 봉이지 않는다. 개과하였는가 하고 용서한다. 인성형제가 지성으로
간병하여 상처를 낳게 한다. 최자사가 상경하여 인중으로 인하여 아녀의 혼기가 늦어감을 한탄할 새, 정 상국이 인중을 보내어 사과하고 구혼한다. 최 자사가 야녀의 의견을 물으니 결혼하지 않겠다고 하나 정 상국의 청을 들어 결혼시키니 인중이 첫날 밤 신부를 맞아 서먹서먹하다가 차차 금실이 좋아진다.
소씨가 인중의 돌아옴과 결혼함을 보고 기쁘나, 인성 부부에 대한 독심은 여전하다가, 꿈에 천하에 올라 전세보응을 듣고 깨어나 비로소 개과천선하고, 병이 나으니 태 부인께 전후악사를 고백하고 청죄할 새, 일문이 기뻐하고 인성형제의 기쁨은 비길 곳이 없으니, 비로소 정문에 화기가 감돌아 봄이 온다. 태 부인이 병이 들매 소씨가 하늘에 지성으로 빌어 병을 낫게 하나, 서태 부인이 수 백세를 누리고 돌아가매 왕후지례로 장사를 지내고, 이후로 정문의 부귀와 영화가
대대로 이어진다는 것이다.
* 이 작품은 현재 4종의 필사본이 전해 오는데, 장서각의 소장본은 180권 180책으로 필사되어 있고, 서울대 도서관 소장본은 180권 93책으로 필사되었으며,
연세대 도서관에는 낙질로 1·2·3·4·5·6·7권 5책이 남아 있고, 이화여대 도서관에는 낙질본 1권 1책이 있다.
* 장서각의 소장본은 180권 180책에 매권 70여면, 매면 11행, 매행 25자 평균으로 쓰여 있다. 면수로 총 1만2천5백여 면이고, 200자 원고지로 무려 3만여 면이나 되는 세계에서 최장의 소설이 아닌가 본다. 이와 같은 세계 최장의 장편소설인데도 많이 읽혔던 것을 알 수 있는데, 조선시대에 나왔다고 알려진지 80여 년이 지난 오늘날까지 별로 연구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