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월 9일 (화)
6시 어둠 속에 호텔을 출발하여 6시 30분에 쿠사다이 항구를 출발하여 그리스의 밧모섬으로 향하는 배를 탔는데 우리 일행만이 탄 작은 배였다.
새파란 바다를 배가 순조롭게 가서 좀 더 스릴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을 했는데 갑자기 소낙비가 세차게 쏟아지고 산 같은 하얀 파도가 무섭게 달려들었고 배가 심하게 흔들렸는데 연세가 많으신 사모님께서 멀미 때문에 이층 간판에 앉아 계시며 앞에 있는 나무를 꼭 붙들고 계셨고 나는 사모님의 허리를 꼭 잡고 하얗게 달려드는 무서운 파도를 보고 있었다.
소낙비를 흠뻑 맞으며 참으로 무섭고 스릴 만점이었고 소리 지르며 "주여!"를 외쳤다. 사모님께 내려가자고 했지만 무서워서 내려가지 못하셔서 나 혼자 층계를 내려와 아래 선실로 들어와서 목사님들께 이야기를 하니 서너 분의 목사님들이 올라가서 모시고 내려왔다. 참으로 일생 처음으로 세찬 파도와 풍랑을 맛보았는데 예전에 조그마한 배를 타고 풍랑 속에 가셨을 사도 요한을 생각했다.
그리스 밧모섬 :
12시에 아름답고 하얀(모든 집들이 하얗다 - 그렇게 지어야만 한다고 한다) 스칼라 항구에 도착했는데 날이 환하게 개어 있었다. 이곳은 활화산 지대로 인구 3,500명이 모두 희랍 정교도들이고 365개의 교회가 있다고 한다. 인구 10명당 교회가 하나씩이라는 말인데 이해가 되지 않았다. 나중에 알고 보니, 길가에 개집 크기의 조그만 집들을 세워 놓고 죽은 사람들을 기념하는 곳이라고 하며 그리스인들은 그런 것들을 교회라고 부른다는 것을 알고 씁쓸했다.
15년 전부터 고등학교가 세워졌고 흙, 나무들을 육지에서 실어와 아름다운 나무와 꽃들과 하얀 집으로 여름에는 순례객들이 많이 오고 있다고 한다. 옛날에는 사형수 다음으로 죄인들이 오는 돌산 황무지였는데 오늘에는 아름다운 관광지로 언제나 손님들로 들끓는 성지가 되어 있었다. 관광버스를 타고 사도 바울의 계시 동굴에 가서 요한이 닿았던 바위 위의 이마 자국과 손잡이 자국을 보았다. 이 동굴은 자연 동굴로 옛날 그대로라고 한다.
밧모섬 제일 높은 곳 정상에 있는 모나스트리(수도원)에 가서 성당에 들어갔는데 성화와 모든 장식품들을 온통 금색으로 화려하게 해놓았다. 밖에 나오니 검은 옷을 입은 두 명의 남자 수도사들이 종을 치고 있었는데 이곳에 30여 명의 수도사들이 있다고 한다. 3개의 초등학교, 알몬드 나무, 꽃들이 많은 이곳은 보이는 천국같이 아름답기도 하다.
그러나 이곳 그리스 사람들은 거의 성경책이 없고 성경을 읽지 않고 주일의 개념도 없고 세례식, 결혼식이나 예식이 있을 때에만 교회에 가는 그런 성도들이라고 한다. 말씀을 도무지 모르고 오직 성화를 통해서만 이해하는 그런 사람들로 성화는 저들의 성경책이 되므로 매우 중요한 숭배의 대상이 된다.
12시 30분부터 4시까지는 낮잠을 자는 시간이므로 상점도 문을 닫아 조용한데 우리를 위한 식당만 문을 열고 우리에게 점심식사를 제공하였고 저녁 7시에 다시 한 번 저녁을 그곳에서 먹기로 하고 우리의 짐을 그곳에 맡기고 그곳의 화장실을 쓰는데 여러 사람들이 쓰려니 눈치가 보이고 미안한 마음이 들었는데 주인들도 친절하지가 않았다.
밧모섬 사람들은 무뚝뚝하고 교만한 인상들이었고 터키인들은 오히려 순진하고 착하게 보였다. 7시까지 두어 시간 남은 시간에 밧모섬의 하얀 집들을 돌아보니 잠을 자는 시간이라선지 조용하고 너무나 쓸쓸하게 보였는데 해변에는 크루즈인지 아주 큰 배가 많은 사람을 꾸역꾸역 토해내고 있었다. 이곳에 한국 사람은 외로워서 못살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저녁 7시까지 남은 시간에 길에 의자를 놓고 앉아서 계시록 연구를 많이 하신 노 목사님께서 열강을 하셔서 공부를 잘 하고 저녁이 되어 먹고 쉬고 있는데 늦게 오신 목사님이 밧모섬에서 사역하시는 한국 선교사님 부부를 모시고 와서 또 그분의 뜨거운 교회사 강의와 이곳에서의 사역을 들었다.
사모님의 성함을 들으니 인터넷에서 만난 아는 사모님이어서 너무나 반가웠다. 일전에 이곳의 사역이 너무나 힘들고 외롭다는 탄식을 읽고 마음이 아팠던 그 사모님이었다. 내가 온다는 말을 인터넷의 내 카페에서 읽고 무척 기다렸다고 한다. 그런데 이처럼 우연히 만나게 된 것이었다. 이곳에 한국 사람이 산다면 참으로 외롭겠다고 생각을 했는데 ….
밤 9시 30분에 식당은 문을 닫아야 하므로 우리들은 짐을 갖고 해변에 나와서 밤 12시 배를 기다려야만 했다. 그 동안 가까운 곳에 있는 그 사모님의 집으로 걸어가서 여러 가지 이야기도 나누고 인터넷 메일도 열어보았다. 사모님이 고추장과 맛있는 양배추를 마침 오늘 잔뜩 담았다고 하며 많이 싸주셨는데 오늘 저녁에 먹었더라면 너무나 좋았을 것이었다.
배를 타고 와서인지 속이 느글거려서 옆 사람이 먹는 장아찌가 너무나 먹고 싶었지만 내 차례가 오지 않았는데 이렇게 많은 고추장과 김치를 얻게 되다니 …. 가지고 와서 회장 목사님께 드렸다.
선교지에 와서 이렇게 얻어 가기만 하면 미안한데 그래도 좀 전에 금일봉 헌금을 해서 마음에 조금은 위안이 되었다. 이곳은 육지에서 모두 가지고 오므로 물가가 비싼 곳이기도 한데 사모님이 많이 주려고 애를 쓰셨다. 너무 외로운 모습에 가슴이 아팠지만 이 우상단지 밧모섬에 꼭 필요한 주님의 종이셨다.
밤 12시에 큰 배가 와서 우리들은 무거운 짐을 들고 층계를 올라 네 사람이 함께 자는 이층침대에 다른 목사님 부부와 같이 자게 되었는데 하얀 수건들을 하나씩 주었고 샤워장도 있었지만 화장실과 모든 것이 더럽고 불편하고 조심스럽기만 했다. 그래도 몸을 길게 누울 수 있는 침대에서 자며 갈 수 있다는 것에 감사했다.
11월 10일 (수)
아침 7시 30분 아테네 피레우스 항구에 도착해서 최 장로님은 비행기를 타시고 이스탄불로 돌아가시고 새로운 안내자를 만났다. 이곳에서 집시 선교를 하시는 고경진 목사님이 버스로 우리를 마중 나오셨고 김밥과 김치를 가지고 오셔서 버스 속에서 아침식사를 했다. 먼저 그리스에서의 몇 가지 주의 사항을 말씀하셨다.
① 절대로 손바닥을 쫙 펴서 상대방에게 보이게 하지 말 것인데 그것은 욕이 된다고 한다. 질문이 있어서 손을 들 때에도 둘째손가락 하나만 들고 물어야 한다.
② 식당에 가서는 얌전하게 먹지 말고 큰 소리로 즐겁게 떠들며 먹고, 천천히 먹어야 더 맛있는 것이 나온다고 하며 한국 사람들은 빨리 먹고 빨리 가려고 해서 대접을 잘 못 받는다고 한다.
③ 코는 큰 소리로 많이 풀어도 되지만 재채기는 균이 나온다고 싫어하니 주의해야 한다.
④ 물건을 살 때에 터키에서는 값을 많이 깎지만, 이 나라 사람들은 터키 사람들을 대단히 경멸하는데, 특히 물건 값을 깎는 것을 싫어한다고 했다.
그리스 :
밧모섬도 그리스이기는 하지만, 부속 도서(島嶼)에서 드디어 본토에 도착하였다. 한 때 찬란한 문화를 꽃 피웠던 나라, 철학의 양대 산맥이라고 하면 헬레니즘과 헤브라이즘이 아닌가? 헬레니즘은 다신교요, 헤브라이즘은 유일신교로 구별된다. 고대 올림픽 경기가 시작된 곳이지만, 동시에 근대 올림픽 경기도 이 나라에서 시작되었다. 그리하여 금년 8월에도 이 나라의 아테네에서 올림픽이 열렸던 일이 우리 기억에도 생생하다.
그러나 이 나라가 우리에게 더욱 중요한 것은 신약성경이 바로 이 나라의 말로 기록되었다는 사실 때문이다. 헬라어는 네 종류로서 고대 헬라어, 코이네 헬라어, 근대 헬라어, 그리고 현재 사용하는 헬라어라고 한다.
성경은 코이네 헬라어인 고로 성경의 헬라어를 익히려면 이 나라 사람들도 새롭게 배워야 한다. 그런데 안내하시는 고경진 목사님의 설명에 따르면 학교에서 배웠던 발음 중에서 모음 위에 거친 숨표(强氣息, rough breathing)가 붙는 글자들, 곧 "호( , ), 헤( ), 하( ), 히( ), 후( )" 등의 'ㅎ'음은 잘못된 것이라고 한다. 모두 "오, 에, 아, 이, 우"라고 발음해야 하고, 또한 거센 발음(k, p, t)은 된 발음(ㄲ, ㅃ, ㄸ)으로 해야 하며, ' '의 경우에는 'ㄷ'으로 발음하지 말고, 'ㅆ'으로 발음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국명은 희랍공화국으로 수도는 아띠끼 지방의 아씨나(아테네)이고 종교는 그리스 정교(Greek Orthodox Church, 혹은 동방정교, 희랍 정교)로 주민등록증에 종교를 기입하게 하고 자기의 종교를 믿어야만 주민등록증을 받을 수 있게 하고 있다.
사제, 보제들은 결혼한 사람들로 한 번만 처녀(과부, 이혼녀는 안됨)와 결혼해야 하고 주교들은 결혼하지 않은 성직자나 홀아비가 된 사제들 가운데서 선출한다.
국토는 한반도의 3/5정도로 미국 알라바마 주와 같은 작은 나라이다.
로마와 오스만 터키 등 많은 외세의 지배를 받아 오다가 1947년 미국 대통령 트루만 독트린에 따른 미국의 군사 및 재정 원조로 1949년에 내란이 종식되고 입헌 군주제(왕정)로 복귀되었다. 그 후 군사정권, 신민당 정권이 되었다가 지금은 사회당의 시미티스(Simitis) 수상이 집권하고 있다.
그리스 문화의 특징이 몇 가지 있다.
① 베란다(발코니) 문화로 내부와 베란다가 얼마나 크고 아름답고 좋으냐로 빈부를 따지며, 우리나라처럼 차를 가지고 빈부를 따지지 않는다고 한다.
② 가족문화로 1층 가게, 2층 처가, 3층 시집 식구가 살며 시집과 친정 식구가 같은 아파트에 다 모여 살면서 부모님과 아이들 대가족제도로 살고 결코 아내, 남편 따로 다니지 않고 내년에 온 가족이 어느 섬에 가서 즐겁게 놀까를 항상 계획하는 철저한 가족중심이고 보수주의이며 전통을 고수하는데, 따라서 홍등가가 없다고 한다. 1,500 가족 당 한 쌍이 이혼하는 비율로 이혼율도 아주 작다. 세속화, 현대화를 싫어하고 보수화, 전통을 고수하며 가족중심을 철저히 지킨다고 한다.
③ 밤, 저녁문화로 낮잠을 자는 대신 밤과 저녁에 가족끼리 외식하고 술을 먹으러 가며 즐긴다고 한다. 일주일에 2.8회 외식을 하고 공원에 가면 남자들이 아기를 보고 여자들은 끼리끼리 모여 수다를 떠는 여자중심의 사회라고 한다.
④ 천천히 천천히의 문화로 공무원들은 월요일, 수요일 오후 2시에 퇴근하고 모든 업무 처리는 '시가 시가(천천히 천천히)' 즉 지극히 느리다고 한다. 우리나라의 '빨리빨리' 문화와는 상반된다 하겠다. 이들의 생활관은 현실만족으로 후세나 장래를 위하기보다는 금일의 향락과 자신의 행복을 위해 인생을 즐기는 경향으로 악착과 끈기가 결여되어 있으므로 사회발전이 안 되고 있고 무더운 날씨로 오후 2시부터 6시까지 낮잠 자는 습관은 겨울철에도 계속되어 외국인들을 많이 불편하게 하고 있다.
⑤ 이방인 배척 문화로 이 그리스에서 시민권을 받으려면 10년 동안 그리스인과 살아야 하고 그리스말로 시험을 보고 그리스 정교를 믿어야 한다. 이방인들이 그리스에서 살 수 없게 하고 모든 종교 활동은 안 된다. 그리스인 가정에는 집에 성경책이 없고 주일에는 가족끼리 놀러 다니기에 바쁘다.
아테네(현재명 - 아씨나) :
아테네는 그리스 남부지방에 위치하여 있고 삼면이 바다(에비아 만, 사로니꼬스 만, 꼬린소스 만)로 둘러싸여 있는 아띠끼 지방의 한 도시로 아테네는 삼면이 산들로 둘러싸여 있는 분지 형식의 그리스 문명의 요람지라고 할 수 있는 유럽 대륙 한 모퉁이의 빛과 지성의 역사를 가지고 있는 참으로 귀중한 도시이다.
아씨나(아테네)는 포세이돈(남)과 힘을 겨루어 이기고 선정되어 여신의 이름이 현재의 지명으로 사용되어지고 바다의 신 포세이돈을 위로하기 위해 최남단 수니온이라는 곳에 바다의 신 포세이돈을 위로하기 위해 장엄한 신전을 지었다고 한다.
아테네의 황금시대에는 페리클레스(개혁으로 인한 아테네의 민주정치), 소크라테스, 플라톤, 크세노폰, 아리스토텔레스 등의 세계적으로 유명한 학자, 철학자들이 많이 있고 많은 조각품들이 있는 문화와 예술의 도시이며 무엇보다 많은 토론으로 의회 정치인 민주주의 기초를 만든 본산지라고 할 수가 있다.
고린도 운하 :
고속도로의 톨게이트를 조금 지나자 길이 6.34km, 폭 20m, 수심 10m의 동방의 에게해와 서방의 고린도 만을 연결하는 좁고 긴 고린도 운하를 보게 되는데 이 운하는 67년 네로 황제가 유대인을 포함한 죄수(노예) 6,000명을 동원하여 공사에 들어가자마자 황제 자리에서 밀려나 공사가 중단되었다가 그후 1893년 프랑스 기술진에 의해 완공되었다.
이 운하는 여객선 같은 큰 배는 통과할 수가 없고, 폭이 좁아 배들은 일 열로 일방통행을 하되 배가 통과할 시 양쪽 끝에 있는 다리는 10m의 바다 속으로 잠기게 되어 차량들은 다리가 올라올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이 운하를 통과하여 이탈리아로 항해하면 반도를 돌아가는 것보다 10시간(약 400km) 정도가 줄어들게 된다.
아크로폴리스 :
'높은 곳에 세워진 도시'라는 뜻으로 높은 언덕 위에 웅장하게 세워져 있는데 성역과 도시 방어의 역할을 하였다. 안에 많은 유물들이 있었으나 전쟁으로 다 파괴되어 지금은 박물관에 남아 있는 것 외에는 이곳에는 없지만 대리석으로 된 그 웅장한 기둥과 겉모양만으로도 많은 관광객들을 사로잡기에 충분하다. 아테네 도시를 내려다보면 참으로 경치가 아름답다.
아그립바 기념 좌대, 승리의 여신 니까 신전 :
입구에는 거대한 문이 동쪽으로 나있는데 모두 장엄한 모습이고 대리석으로 되어 있다.
파르테논 신전 :
유네스코에서 지정한 세계 고적 1호이기도 하며 그리스 고적 1호이기도 하다. 디아의 딸을 위한 신전으로 파르테논이라고 부르게 된 동기는 아씨나가 처녀(동정녀)라는 의식에서 비롯되었다. 고대 올림피아의 유명한 조각가 피디아스가 감독하여 두 명의 건축가를 중심으로 건축이 되었는데 수많은 웅장한 기둥이 보는 사람들로 경탄하게 만든다.
이 신전은 페르시아의 전쟁에서 승리한 기념으로 만들어졌는데 콘스탄티누스 황제 때에는 이곳이 성 쏘피아 교회로, 오스만 터키의 지배 하에는 회교 사원 및 탄약고로 사용되는 비극의 신전이다. 이 신전을 빼앗으려는 이탈리아의 베네치아 군대가 쏜 폭격에 탄약고가 맞아 폭발하기도 하는 비극을 겪었고 막대한 양의 유물들은 현재 대영 박물관, 루불, 코펜하겐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매년 일천만 명이 이 신전을 찾는 이유는 일반인들이 생각할 수 없는 건축학적, 기하학적으로 뛰어난 건축물이기 때문이다.
아레오바고 :
아크로폴리스의 입구에서 50미터 내려가면 조그마한 대리석으로 된 언덕 가운데 계단이 있는 장소로 마루스의 언덕이라고도 불리는 곳으로 흉악범들에 대한 재판정 및 최고 의회 혹은 귀족 의회가 열리는 곳이었다.
사도 바울이 이곳에서 복음(행 17: 22-32)을 전하여 세 종류의 반응을 얻었는데 첫 번째는 조롱하는 사람, 두 번째는 신비하고 재미있다고 다음에 또 듣겠다고 하는 사람, 세 번째는 복음을 받아들인 사람들인데, 그들 중에 아레오바고 관원 디오누시오와 다마리라고 하는 여인과 또 다른 사람이 있었다. 그러나 모든 인간의 죄를 대속하기 위하여 주님께서 이 세상에 오시고 십자가를 지시고 부활하셨다는 것은 헬라인들에게는 어리석은 일이었다(고전 1:23). 언덕 오른쪽 하단에 사도행전 17장 22-32절의 말씀이 동판에 기록되어 있다.
제우스 신전, 아드리아누스의 문, 아씨나 청동 상, 헤롯 안티커스 음악당, 디오니소스 신전 터 및 극장, 헤파이토스 신전, 아고라(고대시장 혹은 저자거리)
목사님 한 분이 비디오 찍다가 넘어지셔서 바위에 머리를 다쳐서 병원에 가시다. (비가 와서 미끄러웠다)
11월 11일 (목)
오전 6 시 : 호텔 출발 - 공항으로
7:20 : 아테네 공항도착
9:05 : 비행기 출발 - 데살로니까로
10:30 : 데살로니까 도착, 버스로 출발
*** 목사님 간증 : 어제 다쳐서 병원에 가서 머리를 네 바늘 꿰매었는데 크레딧 카드로 지불하려니 안 된다고 해서 달러로 하려고 하니 또 안 되고 유로로만 내야 한다고 해서 유로가 없어서 서너 시간을 낭비하고 같이 간 분이 유로로 대신 지불하고서야 나올 수 있었다고 간증을 하셨다.
병원 비용은 굉장히 쌌다. 밧모섬에서는 밤에 배를 기다리며 차를 한잔 사 먹으려고 해도 유로가 아니면 안 판다고 해서 따끈한 차 한 잔을 못 마셨다고 한다. 그리스인들은 교만하고 고집스럽고 융통성이 없는 사람들 같다고 생각했는데 선교사님 간증도 같았다.
데살로니가(행 17:1-9) :
그리스 북부 지방으로 현재 그리스의 제2의 도시이고 아테네에서 비행기로 한 시간의 거리이다. 인구 75만 명 정도의 항구도시이며 상공업도시로서 비잔틴 시대의 이스탄불과 나란히 그리스 본토의 정치, 문화, 경제, 종교의 중심지로 교역량이 많고 교통의 요충지로서 대학과 비잔틴 박물관이 있다.
데살로니가전서 2장, 3장에 사도 바울이 비교적 이곳에 오래 머물며(서너 달 이상) 천막을 만들며 주야로 복음을 전파하였고 크게 성공하여 데살로니가 성도들의 믿음과 소망이 마케도니아와 아가야에만 들릴 뿐만 아니라 각처에 퍼져서 하나님께 큰 영광을 돌리고 사도 바울에게는 큰 기쁨이 되었다고(살전 2:19) 하였다.
암비볼리 :
초대 기독교 시대의 기념물 중 바닥이 모자이크 처리된 건물 터 및 기독 공회당, 교회의 터가 남아있는 기독교의 중심지로서 발전했다는 것을 증명하고 있다.
아볼로니아 :
아람드리 큰 나무가 있는 것이 인상적이고 넓은 공간을 비마 터라고 하며 사도행전 17장 1절 말씀이 석판에 기록되어 있다.
성 디미뜨리오스 교회 :
디미뜨리오스는 귀족의 가정에서 태어나 학업을 마치고 로마 군인으로 근무하였는데, 그는 하나님을 향한 뜨거운 믿음과 겸손, 검소함, 지혜로 많은 사람들에게 모범이 되었다. 갈레리우스 황제에 의해 순교한 후에 이 지방의 수호 성인으로 되었다고 한다.
그의 무덤에서 흘러나오는 기름이 병자들을 치료하는 기적이 일어남으로 성전을 더 크게 지었으나 화재와 터키의 침략으로 많은 유물들이 유실되고 회교사원도 되었다가 지금은 다시 복구되어 바실리카 양식의 그리스 최대의 교회가 되었다.
화이트 타워 :
부둣가에 높이 32m의 이 탑은 이탈리아의 베네치아 인들이 세운 방벽의 일부로 터키 점령시대에는 감옥으로 사용되어 대량학살이 자행되어 '피로 물든 탑'이라고도 불렸는데 후에 표면을 하얗게 칠하고 비잔틴 박물관으로 사용되어 오다가 지금은 근처의 새 박물관에 전시중이다. 주위를 공원으로 정비하여 시민의 휴식처로 관광명소로 세계에 알려졌다.
알렉산더 대왕의 동상 :
아름다운 바닷가 광장에 세워진 청동상이다.
갈레리우스 황제의 개선문 :
페르시아 군과의 싸움에서 승리한 로마군의 승리를 기념하기 위해 297년에 세워진 문이다. 이 개선문의 표면에 희생제사 및 갈레리우스의 전투장면이 조각되어 있다.
까발라(네압볼리 행 16:11) :
터키 국경인 압살라에서 서쪽으로 215km 지점에 위치하고 있고 시내 중심에 사도 바울 도착 기념 교회가 있다. 밤에 도착했는데도 길가에 화려한 벽화가 크게 그려져 있는 것을 볼 수가 있었는데(불빛이 환하므로) 그 벽화는 최근의 것이라고 한다.
사도 바울이 자는 모습, 천사가 나타나서 꿈에 말하는 모습, 바울이 마케도니아로 건너가는 모습으로 세 부분으로 그려져 있었다. 모두 그 앞에서 단체 사진을 찍었다. 이 교회에서 해마다 6월 29일 사도 바울을 기념하고 있고 아름다운 바닷가 도로의 이름은 '바울로'라고 하며 사도 바울을 존경하는 모습을 볼 수가 있었다. 밤이 늦어 성당 안에는 들어가지 못했다.
11월 12일 (금)
7시 30분 : 호텔 출발 - 비아 에그나띠아(도로 이름)를 달려서 빌립보를 향하다.
아침에 집시들을 위해 가지고 왔던 옷들을 주고 가시라는 목사님 말씀에 이번 여행에 우리 내외가 똑 같은 하얀색 잠바를 사 입고 온 것과 입지 않은 새 티셔츠와 쓰지 않은 로션을 드리고 금일봉을 선교비로 헌금하면서 전도할 수 없는 오만한 이 정교회 나라에서 참으로 고생하시는 귀하고 훌륭한 목사님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비아 에그나띠아 :
무역과 군사용 목적으로 건설되었고 이스탄불에서 로마까지 연결된 길로 사도 바울은 이 길을 따라 빌립보, 암비볼리, 아볼로니아, 데살로니까, 베뢰아를 순회하며 초대교회를 세웠다.
빌립보(행 16:12-18) :
까발라에서 북쪽으로 약 15km 떨어져 있는 곳으로 바울이 안식일에 문밖 강가에서 루디아를 만나 첫 유럽의 교회가 세워지게 되는 곳이다.
루디아 기념교회(행 16:14-15) :
문 밖 강가의 세례 터가 있었는데 아주 작은 샘이었다. 중앙에 루디아 기념 성화가 있었고 그리스인들이 성호를 그으며 입을 맞추고 우리들은 그 앞에서 사진을 찍었다.
바울과 실라가 갇혔던 감옥(행 16:30-34) :
귀신들린 여종을 고쳐주고 두 사람이 감옥에 갇혀서 기도하고 찬송 부를 때 감옥 문이 열리고 차꼬가 풀릴 때 자결하려는 간수를 만류하여 구원받게 하는 그 옛날의 기적을 생각하며 모두 초라한 돌로 된 무너진 감옥을 사모하며 사진을 찍었다.
공회당B :
로마제국이 기독교를 공인한 후, 비잔틴 시대의 전성기에 둥근 아치의 돔 형식(십자가형의 비잔틴형식)으로 이스탄불의 쏘피아 성전보다 더 거대하게 건축되었으나 9세기 불가리아인들에 의해 파괴되었고 현재는 기둥 세 개만 남았다.
공회당A :
술과 연극의 신인 디오니소스 신전이었으나 후에 기독교인들이 3층 규모로 교회를 건축하였고 성찬 식탁과 침례터가 있었으나 대지진으로 완전히 파괴되었다.
12시 30분에 그리스와 터키 국경인 압살라에 도착하여 입국 수속을 마치니 오후 2시가 되었다. 마중 나오신 최 장로님을 만나 버스를 옮겨 타고 테킬라를 거쳐 프린스 호텔에 여장을 풀고, 다시 태극식당에 가서 푸짐한 한식으로 맛있게 식사를 하였다.
11월 13일 (토)
공항은 많은 사람들로 붐볐고 모두 시간에 쫓겨 아우성을 쳤고 몸수색을 몇 번씩이나 했다. 철저히 하는 것은 좋은데 지금 비수기에 이렇게 복잡하면 한창 바쁠 때는 어떻게 감당하고 있을까? 더 시설과 인원을 늘려야 할 것이다.
1시간쯤 늦게 떠났는데도 뉴욕 공항에는 거의 정시에 도착해서 다행이었다. 조종사가 기술이 좋아서 비행을 빨리 했는가? 이 저녁에 또다시 비행기를 타고 각자 집으로 돌아가야 했으니까.
여행을 마치고
NKPC 다문화목회연구회 10주년 행사로 터키, 밧모섬, 그리스를 13일 동안 저렴한 비용으로 참으로 유익하고 감명 깊고, 잊지 못할 성지 순례를 하였다. 이 일이 성사되도록 계획하시고 열심히 준비해주신 임원들과 여러 가지 어려움 속에서도 적극 참여하여 매사를 잘 협조해 주신 모든 일행께 먼저 깊은 감사를 드린다.
부지런히 안내자를 따라다니면서 노트하여 한 권 가득 썼지만 빠뜨린 것이 너무도 많다. 그러나 그 여행 기록들을 컴퓨터에 정리하며 다시 새롭게 은혜를 받았다.
사도 바울, 요한, 디모데 그 외에도 주님의 많은 제자들의 발자취를 따라 순례를 하며 그 흔적들을 돌아보았는데 어찌하여 그 땅들이 그렇게 이슬람교도들의 통치하에 억압받고 있는지 안타깝고, 그러나 수많은 그리스도인 순례자들이 떨어뜨리는 달러로 그들이 먹고살고 있는 것도 참으로 아이러니였다.
다소에 있는 사도 바울의 생가에서 교복을 입은 귀여운 초등학교 어린이들이 교사들의 인솔 하에 이곳에 찾아와 터키 아가씨의 설명을 듣고 돌아가는 모습을 잊을 수 없다. 그들이 사도 바울은 참으로 위대한 사람이었다고 기억하는 한 이 나라는 소망이 있다는 고무적인 마음도 들었다.
여행을 떠나기 전에 터키의 옛 성도들의 생활을 비디오로 보았던 일이 있었다. 그런데 갑바도기야, 그 기적의 현장을 직접 가 보았다. 인간의 힘으로는 도저히 이루어질 수 없는 기묘한, 세계 어느 곳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장관을 보고 감탄이 절로 나왔다.
지진, 화산으로 쌓인 모래 바위들, 그리고 그 속에 깊고 깊은 지하 도시들과 굴속의 수많은 방들과 교회들과 수도원, 신학교들을 보며 옛날 핍박을 피해 그 속에 숨어서 살던 성도들의 모습을 상상하며 큰 은혜를 받게 되었다. 또 큰 대리석 원형극장에서 성도들이 사자에게 뜯겼던 그 현장에서 기도하며 뜨거운 찬송도 불렀다.
어마어마한 대리석 길과 기둥들이 그 옛날의 웅장함을 보여주고 있는데 도대체 그 옛날에 어떻게 대리석 돌로 이렇게 웅장한 건물을 지을 수가 있었을까? 정말 불가사의가 아닐 수 없다. 그런데 그것들이 지진으로 모두 다 땅속에 묻혔다가 지금 속속히 파헤쳐져서 어마어마한 위용을 드러내고 있는데 앞으로도 계속 발굴할 것이 무진장인데 터키 사람들은 그다지 열성을 내는 편이 아니라고 한다.
"돌 위에 돌이 하나도 남지 않고 다 무너지리라" 하신 주님의 음성이 생생하게 들려오는 현장이다. 예루살렘 성전도 다 무너뜨려 버리신 하나님이시다. 인간이 아무리 위대한 일을 하였다고 자랑할지라도 주님이 한번 땅을 흔드시면 순식간에 무너지리라. 생명의 종교를 우상의 종교로 바꾸어버린 타락한 지도자들의 죄가 얼마나 큰가?
정교회의 나라 그리스의 밧모섬에 천둥과 번개가 요란하게 치고 비가 쏟아지며 풍랑이 이는 바다를 건너서 갔을 때에는 다행히 날이 활짝 개어 요한이 계시 받은 바위 굴에 찾아갔다. 성전 안을 금칠로 온통 번쩍이게 장식해 놓고 많은 성화들로 성경을 말해주고 있는 것이 터키와 그리스의 특징이다.
터키는 이슬람교 나라지만 그리스는 기독교의 정교회 나라인데 주일 성수하는 사람은 별로 없고 성경책도 없고 신부가 알아듣지 못하는 고대 헬라어로 설교를 하고 믿음은 그 성화를 보고 깨닫고 신앙생활을 하니 성화가 발달했고 그 의미가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고 한다.
그리스 사람들은 전통과 가족을 중요하게 여기며 주말에는 가족끼리 다 놀러 가는 문화이고 세례 받고 교회에서 결혼식하고 때때로 교회 성화 앞에 가서 촛불을 켜고 기도하며 신앙생활을 하고 말씀은 읽지도 않고 알지도 못하면서 다 구원받았다고 믿고 우리 개신교를 벌써부터 이단으로 정죄하고 있다고 하며 선교하기가 너무나 어려운 나라라고 하는 선교사님들의 안타까운 말씀을 들었다. 그래서 등잔 밑이 더 어둡다고 하지 않았는가? 목사와 목사의 가정부터 혁신이 일어나야 하겠다.
사도 요한은 다시는 살아 돌아오지 못하는 돌산인 밧모 섬에 유배되었으나 그 동굴 속에서 오직 기도에만 전념하고 주님만 바라보다가 놀라운 하늘의 계시를 받았다. 그 섬이 지금은 하얗게 칠한 아름다운 집들로 가득 들어찼고, 흙을 대륙에서 가지고 와서 나무를 심어 천국 같은 아름다운 관광지가 된 것이 오히려 그 옛날 황폐한 모습보다 은혜롭지 않은 것 같다. 회칠한 무덤 같은 종교가 되지 말아야 한다.
빌립보에 전도하러 가서 감옥에서 고생하신 그 사도 바울의 성령의 역사가 지금 그리스에는 없다고 생각하니 참으로 가슴이 아프다. 그곳에서 집시 사역을 하시는 깡마르고 얼굴이 까만 선교사님의 고충이 얼마나 힘들고 큰지를 알 것 같다. 그 옛날 헬라시대에 찬란한 문명과 그들의 전통을 자랑하며 고수하는 그리스 사람들은 오만하고 불친절했다.
순례여행을 하며 그곳은 옛날의 발자취일 뿐 더 이상 거룩한 땅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도 십자가 밑에, 그 때의 피 흘리시는 그리스도를 바라보며 떨리는 심령으로 회개하는 심령 속에, 그들이 모여 안타깝게 울부짖으며 기도하는 교회에, 땅에, 성령의 역사가 일어나고 있는 현장이 성지일 것이다.
그 옛날에 주님의 나라를 사모하여 사자에게 뜯기며 고통하고 핍박을 받으며 뜨겁게 신앙 생활하던 선진들의 모습을 그리며 오늘날 그 은총의 촛대가 옮겨진 모습을 보며 우리들의 후손들에게는 신령한 성지를 물려주어야 하겠다는 간절한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