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풍수지리 과학화 30년 외길

[공 덕]

전통풍수지리 과학화 30년 외길

한국자연지리학회 신광주 회장

	신광주씨는 풍수지리학에 대한 과학적 타당성을 입증하기 위해 조만간 전문가들을 통한 본격적인 합동연구에 착수하겠다고 말했다. &김창길기자

한국자연지리학회를 이끌고 있는 우당(愚堂) 신광주(79) 회장은 전통 풍수지리학의 과학적 입증을 위해 30여년 동안 외길을 달려온 재야학자이다.

신씨가 1994년 펴낸 ‘정통 풍수지리학 원전’(전3권·명당)은 지금까지 관련 학계에서 풍수지리학 ‘교과서’로 통용돼 올 만큼 정평이 나있다.

이 책은 특히 기존의 풍수지리학 연구가 일부 갈래에만 국한돼 온 데 비해 전통 풍수지리에 관한 이론과 학설들을 총망라해 구명한 것으로 국내는 물론 중국·일본에서도 출간된 유례가 없어 전문가들로부터 높이 평가돼 왔다.

신씨는 오는 3월초 이 책의 개정 증보판을 낼 예정으로 준비가 한창이다. 지난 10년간 새로 연구한 내용들을 반영, 총정리하기 위해서다. 최근 학회 사무실 겸 연구실로 사용하고 있는 서울 종로 수운회관에서 만난 신씨는 70대 후반의 나이라곤 믿기 어려울 만큼의 건강을 유지하고 있었다.

“풍수지리학은 과학이 발달된 오늘날까지 사라지지 않고 2000여년이나 이어져 온 학문이야. 하지만 명문세가들의 발복지지(發福之地·후손에게 운이 트이게 한 땅) 등 실증사례는 많은데 과학적으론 반쯤밖에 설명하지 못하고 있거든. 이것을 온전히 구명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거지.”

신씨가 자연지리학회를 창립한 것은 80년대 초반. 지금까지 이곳을 거쳐간 회원은 수백명을 헤아린다. 매주 수·목요일에 이곳에서 정기적으로 강의가 열리는데 보통 40∼50명이 참석하고 있다. 수강생 가운데는 학자 등 사회 저명인사가 다수 포함돼 있고 연령분포도 30대부터 80대까지 다양하다.

지난해 말까지 다년간 원광대 동양대학원 동양철학과와 몇개 대학 강단에도 서왔던 그는 올 새학기부턴 강의를 모두 그만둘 생각이다. “올해도 몇몇 대학에서 강의 요청이 들어왔지만 건강도 옛날 같지 않아 모두 사양했어. 과학적인 확신이 없는 상태에서 이런 특수학문을 더 알리고 싶지 않은 거지.

그냥 자연 따라 사는 게 최고야.”

신씨는 이론 강의와 답산(踏山) 지도 외에 행술(行術·실제로 산소나 집터 등을 잡아줌)을 일절 하지 않기로도 유명하다. 행술의 공식은 있지만 그것을 적용하는 방법이 다양해 조금만 틀려도 실수할 우려가 있기 때문이란다.

나아가 그는 요즘 풍수지리 분야의 혼탁상을 경계한다. “풍수하는 사람들의 8할은 생계 유지를 위해 하는데 모르는 것을 아는 척하고 억지주장을 펴는 게 문제거든. 협잡과 돈벌이에 현혹되다 보면 사자의 백골(白骨)과 그 자손들한테도 해악을 끼치게 되지. 나는 그게 무서워서도 못해.”

신씨는 풍수지리를 연구하는 사람의 요건으로 동서고금의 서적을 두루 읽어 각종 이치에 통달할 것을 가장 먼저 꼽는다. 풍수지리학은 종합학문이므로 천문·지질·물리·생물·원자학 등 현대적인 학문까지 섭렵할 필요가 있다는 주장이다.

그런 다음 답산을 통해 산세에서 풍기는 기운과 그것이 돌아가는 양상을 파악할 줄 아는 능력을 길러야 한다고 설명한다.

이와 함께 정확한 판단을 위해 바르고 참된 정신자세를 가져야 하고, 자신의 연구결과를 과학적으로 입증시킬 수 있어야 하며, 우주 기운의 순환과 혈(穴)이 맺어지는 것을 볼 수 있는 빈 마음을 지녀야 한다는 것이다.

자유당 시절의 관료 출신인 신씨는 관직을 떠나 고향인 충청도에서 국회의원에 출마했으나 번번이 실패했다. 해방과 6·25, 토지개혁, 4·19 등 ‘난리’를 거치는 동안 가세가 기울면서 난관에 봉착한 것이 그에게 풍수지리와 만나는 계기를 제공했다.

 “어렸을 적에 할아버지로부터 한학을 익혔어. 당시 전국에서 유명하다는 풍수들이 사랑방에 머물다 갔고, 할아버지가 돌아가신 뒤엔 이장도 여러 차례 했지. 그런데 왜 집안이 망하게 됐는지 이유를 모르겠더라고.”

이때부터 그는 서울 강남의 국립도서관에 틀어박혀 풍수지리에 관한 자료수집에 몰입했다. 2∼3년 동안 20∼30권의 한문원서와 씨름한 결과 그는 이 분야에 관한 이론적인 토대를 확립할 수 있었다.

하지만 실제 방법론이 문제였다. 그래서 이번엔 전국의 유명 지관들을 찾아나섰다. 신씨의 눈에 비친 그들은 이론적 바탕이 부족해 직접 배울 점은 없었지만 그들과 접촉하는 과정에서 평소 의문을 품었던 문제들이 하나 둘 풀리는 것을 경험했다.

이렇게 해서 자신감을 갖게 된 그는 첫 저서로 ‘명당학 강론’을 내놓았다. 하지만 풍수지리를 공식화하는 등 과학적으로 입증하는 것이 여전한 과제로 남았다. 이후 그는 2년여에 걸쳐 현대과학에 관한 각 분야의 서적을 탐독하기도 했다.

신씨는 인간이 태어나는 것을 조상으로부터 물려받은 넋이 우주의 영·혼과 합일하는 현상으로 파악한다. 그리고 사람이 살다가 죽으면 영과 혼은 다시 우주의 본래 상태로 돌아가고, 넋은 땅으로 들어가 천기(天氣)·지기(地氣)와 합쳐진다는 것.

이때 망자의 넋이 어떤 천기·지기와 만나느냐에 따라 그 조화의 양상이나 기운이 달라지기 때문에 이것을 가리는 것이 풍수지리의 기본개념이라고 설명한다.

“현시점에 이르러 오랜 역사를 지닌 풍수지리학은 진일보냐 용도폐기냐를 판가름해야 할 중요한 기로에 놓였다”고 말하는 신씨는 “조만간 각 분야별 전문가 10여명을 불러모아 전공별로 풍수지리학을 비교연구케 해 과학적 타당성에 대한 최종 결론을 내리고자 한다”고 굳은 결의를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