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부(匹夫)가 기(旣)히 본 카페에 올린 바 있듯, 발자크(Honore de Balzac)의 『고리오 영감』은 자식을 위해 모든 걸 희생한 아버지 고리오이지만 그 결과는 참담할 뿐이었으나, 세익스피어의 『리어왕(King Lear)』에서 두 딸은 감언이설로 아버지의 총명을 가리지만, 막내딸 코딜리아는 마음을 모두 담아 말로 할 수 없으매 왕의 미움을 사게 되지만 그 결과는 변함 없는 아버지에 대한 고귀한 자식의 사랑이었으니...
19세기 프랑스의 사실주의 작가였던 발작을 두고 츠바이크(Stefan Zweig)는 '30년 전부터 발자크를 읽고 또 읽으며, 언제나 거듭 경탄하게 된다. 발자크는 젊은 작가들에게 시적 가능성의 화신이었고, 문학적 가능성 그 자체이기도 했다.'고 했는데...그렇게 문호 츠바이크에게 경탄을 불러일으킨 발작의 문학작품들이 훗날 유명한 문학작가, 예술가, 심리학자들에게 큰 영향을 끼쳤다는 건 새삼스레 놀랄 일은 아닌 듯하다.
스탕달(Stendhal- 이는 그의 필명이고 그의 본명은 Marie Henri Beyle이라네)은 또 어떤가? 스탕달 하면 우린 먼저 그의 소설 『적과 흑』을 떠올리거나, 아님 '스탕달 증후군(Stendhal syndrome)'을 생각할까? 그의 소설 『적과 흑』에서 시골의 한미한 가문 출신 쥘리엥이 신분과 계급의 벽을 뛰어 넘어 사랑과 욕망을 쟁취하려는 모험담은 프랑스 소설 특유의 빠른 전개와 명쾌한 반전의 맛에 더하여 독자들의 카타르시스를 한껏 느끼게 해 주긴 하지만...'타인이 내게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라고 되묻는 쥘리엥의 본심에서 우리는 자신의 출세를 위해 못할 짓이 없는 인간들의 끊임없는 욕망을 읽는다.
이 책은 츠바이크가 쓴 발자크와 스탕달에 대한 평전(評傳)이라 하지만, 작가는 자신의 마음에 투영된 대상 작가의 이미지를 토대로 글을 쓰는 방식을 취하기 때문에 소설에서와 같은 주체적인 묘사를 통해 대상을 사실적이고도 적나라하게 드러낸 것이라고 한다. 성격에 맞지 않고 아름답고 유려한 필체로 원당희군이 번역한 『발자크/스탕달을 쓰다』의 출간을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