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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해외출장 (1) --- 산강
[쉬어가기]/수필·감상문·기타
2012-03-21 09:45:52
첫 해외출장
2012. 3. 21. / 박광용
생애 첫 해외출장?
쫄병 사원 하나가 미국출장을 가는데 말도 많고 탈도 참 많았다.
1987년인가(?) 25년 전 그 얘기 한 번 해보자.
배경
럭키금성상사(지금은 LG상사), 내가 1984년 초 입사했으니까 4년차 사원으로 다른 회사 같으면 대리급이다. 하지만 회사는 그룹차원에서 <대리>라는 직급을 두질 않고 있어서 신입 딱지를 겨우 때어낸 중고참 사원 신분이다. 당시 근무하던 화학품부 화학품수입과에는 과장이 거의 1년 전에 공석이 되었는데도 아무런 인사조치가 없다. 게다가 내가 과에서 쫄병인데 아직 충원까지 안되고 있는 상태다. 옆의 부서에는 신참 쫄병들이 와서 신고도 하고 그러더니만…… 직속 부장, 상무에게 애비(과장)와 쫄병 없는 설움을 눈물(?)로 하소연한 게 몇 차롄지 모른다.
와중에 내가 맡은 일은 석유화학 수입이다. 화학품 중에서도 석유화학제품을 수입, 국내에 공급하는 일이다. 석유화학은 보통 포장이 되지 않고 대개는 액체 벌크(Bulk) 상태로 운송/보관 되는 화물이라 이에 따른 기술적 지식이나 취급에 세심한 주의가 필요하고, 또한 덩치가 커서(보통 3,000톤 단위) 건당 거래금액이 예사로 백만 불을 넘는지라 정책적으로는 사업부장(당시 상무)까지 어떤 경우에는 사장까지 결재를 받아야 집행할 수 있는데, 이런 품목을 쫄병 사원이 맡아 있었으니 조금은 비정상적이라 할 것이다. 그것도 애비도 없는 조직에서 매 건 부장에게 직보하고 어떤 경우에는 상무에게 보고/품의서 들고 뛰는 경우가 다반사다.
한편, 세계 석유화학시장은 미국의 멕시코만(US Gulf)을 중심으로 한 USG시장과 Rotterdam을 중심으로 한 북서유럽(NWE)시장으로 양분돼있고, 아시아에서는 우리나라, 일본, 대만을 중심으로 싱가폴, 말레이지아, 중국 등 한창 성장하고 있는 국가들은 규모는 작지만 무시할 수 없는 시장을 형성해가고 있는 상태다. 특히 석유화학이란 산업이 국가의 기초산업으로 우리나라의 경우 정책적으로 그 규모를 점점 확대시키고 있을 때다. 당시 우리나라 석유화학 생산규모는 미국의 1/50, 일본의 1/10 정도의 규모다. 자본주의가 잉태한 시장중심주의는 돈 가진 자들의 무대이고, 돈 없고 가난한 나라(사람)들은 가진 자들이 흘리고 다닌 고물을 주워먹기에도 숨이 가쁘다. 따라서 석유화학 시장 관련한 모든 정보는 USG, NWE에서 생산되고 그 일부가 아시아에서 가공, 소비되는 추세로, 아시아 시장이 USG나 NWE에 아직까지 큰 영향력을 미치지는 못하고 있다.
이런 배경으로 세계적 규모의 석유화학회의가 해마다 열리는데, 주최 측에서는 석유화학산업의 향후 전망이라던가 시장변화에 대한 장기예측 같은 것을 다루지만, 실제 비즈니스 측면에서는 전세계 장사꾼들이 한 곳에 모여 정보를 교환하고 별도의 미팅을 주선하여 실제 거래계약도 성사시키기도 하는 그런 축제 같은 모임이다. 봄에는 미국에서 열리는 NPRA Conference가 있고, 가을에는 EPCA Conference가 남부유럽에서 열린다. 아시아에서는 ‘동아시아석유화학회의’(EAPC)가 매년 대만, 일본, 한국에서 돌아가며 개최하고 있는데 그 규모 면에서 NPRA, EPCA에 견줄 게 못 된다.
이 중 NPRA는 매년 3/말~4/초 텍사스 산안토니오의 인공수로를 따라 즐비하게 늘어선 특급호텔(Hilton, Hyatt, Marriott, Sheraton, Intercontinental, Ritz Carlton, Novotel Ambassador 등등)에서 개최되는데, 당시 회사실정으로는 뉴욕지사 화학담당과장이 거의 매년 참석해서 수박 겉핥기 식으로 정보를 하나씩 나열하곤 하다가 본사에서 참석을 시작한 게 겨우 2년 전의 일이다. EPCA의 경우는 주로 모나코, 비엔나에서 번갈아 열리는데 아직 현지 지사조차도 참석한 경우가 거의 없다.
기록을 훑어보면 1985년 당시 본사 부장이 NPRA 다녀왔다는 보고서가 있긴 하나 시장정보를 파악하고 있었다는 것은 눈에 띄지 않는다. 다음해 1986년에는 본사 과장의 참석보고서를 보면 석유화학시장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아주 쬐끔 감을 잡았다고나 할까? 석유화학의 주요 메이저(큰손)들이 어떻게 정보를 생산하고 그 정보가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 하는 그런 구조에 대해 그림을 겨우 그릴 수 있는 상황까지는 파악이 된 거다. 이런 와중에 1987년 2월 중순쯤인가(?) 부장이 나를 부르더니 NPRA 회의에 참석하라는 명령이다. 부사장까지 품의서 올리란다. 과장이 공석이라 그런 건지 쫄병인 나에게 기회가 온 거다.
출장준비
갑자기 닥친 기회가 어리둥절할 뿐, 기뻐해야 하는 건지? 아니면 첫 출장이라는 부담감, 그것도 미국이라는 나라에서 말이나 한마디 제대로 통할까 하는 걱정이 먼저다. 영어라고는 회사에 들어와서 사수의 부탁(?)으로 김포공항에 손님 픽업하러 갔다가 몇 마디 해본 걸 시작으로, 간간히 들어오는 거래처 손님들을 만나 얘기해본 게 고작이었고, 업무적으로 국제전화로 샬라샬라 해본 게 전부인 내가 이래서는 안되겠다 싶어 공부해야겠다고 마음 먹고 <Time>지 사설을 비교적 정확한 발음으로 소리 지르며 읽어본 게 전부인데…… 그리고 비행기라곤 신혼여행 때 제주도 가면서 국내선 타 본 경험밖에 없는 내가 국제선 비행기를 탈 기회를 잡은 거다. 그것도 아시아가 아니라 미국 뉴욕으로 가는…… 회사 일로 김포공항 국제선 마중은 제법 나가봤지만 출국장으로 나간다는 게 잘 믿기질 않는다. 근데 문제는 이것만이 아니다. 여권, 비자, 티켓팅 등 모든 게 나로서는 처음 겪는 일이라 총무부와 업무연락이 잦아졌다.
당시 여권은 외무부 여권과에서만 발급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 절차나 제출 서류도 상당히 힘들고 기간도 오래 걸렸다. 물론 총무부 직원이 요구하는 소득세/재산세 관련 증빙서류 등 모든 서류를 다 준비해주고 기다리고 있으니 생애 첫 여권이 내 손에 쥐어졌다. 쫄병인 내가 받은 여권은 1년짜리 단수여권, 미국 한번 다녀오고 나면 그 여권으로는 다시 외국으로 나갈 수가 없는 그런 거였다. 문제는 또 있다. 미국 비자를 받아야 한다. 일전 합성수지부 부장이 미국 비자를 못 받아 다시 신청했다는 소식을 듣고 있었는데 걱정 하나가 더 는 셈이다.
세종로 미 대사관 담벽을 따라 길다란 줄을 서서 보슬보슬 내리는 봄비를 맞고 있어야 했다. 한참을 기다려 드디어 내 차례가 다가왔다. 어렵쇼? 우리말로 인터뷰하는 창구는 두 개밖에 되질 않아 기다리는 줄이 엄청 길다. 애~라 모르겠다. 이럴 때는 무지 용감한 내 자신이 밉다. 밖에서 줄 서서 기다리느라 지친 탓인지 조금이라도 빨리 마치려고 영어로 인터뷰하는 창구 앞에 줄 섰다. ‘미국에 뭐 하러 가냐?’라는 물음에 상용비자를 신청한 나로서는 한마디로 “Business”라고 답하면 될 것을 ‘NPRA Conference 참석하러 간다’는 둥,,,, 이러쿵저러쿵 장황하게 설레발을 쳤다. 그랬더니 ‘NPRA가 뭐냐?’ ‘미국에서는 누가 너를 보호해 주냐?’ ‘너 세금은 잘 내고 있냐?’는 둥 예상 외로 질문은 길어지고,,,,,,, 땀이 송글송글 맺히며 적절히 방어는 한 것 같은데, 결과는 돌아가서 기다리란다. 총무과 직원은 인터뷰에서 떨어지는 경우가 제법 있다며 합성수지부장 얘기를 들려주며 겁을 준다.
결국 미국비자는 받아냈다. 그것도 복수비자를…… - 이 복수비자 때문에 나는 다음에 발급 받은 복수여권에는 이 단수여권을 늘 붙이고 다녀야 했다 - 총무과 직원이 ‘축하한다’는 멘트까지 날려주네. 참 별일도 다 있네, 그게 뭔 큰일인가 하는 마음에 사무실로 돌아와서 비자를 보여줬더니 난리가 났다. 지난번 다른 과 고참의 경우도 두 번째 인터뷰에서 단수비자를 받았다고 했다. 이런 실패의 경험이 있었던 지라 결국 상무실로 불려갔다. 쫄병이 한 번 만에 바로 미국 복수비자를 받았다며 축하한다는 말과 함께 잘 다녀 오란다. 어쩌면 상무 자신도 참석할 거란다. 갑자기 골치 아프게 생겼다. 미팅스케줄 다시 짜야 한다. 물론 뉴욕지사 과장이 알아서 조정할 일이지만 상무를 모셔야 하는 일이라 더욱 신경이 쓰인다.
이렇게 NPRA회의 시작 1주일 전 월요일에 뉴욕으로 가서 본지사간 업무도 협의하고 거래처 몇 사람도 만나고, 또 상무가 참석하는 미팅이 있어 휴스턴에 들렀다가, 본 회의 시작하기 전 일요일에 산안토니오로 들어가는 스케줄이다. 회의 마치고 다시 뉴욕으로 돌아와서 하루를 묶고 서울로 돌아온다. 이렇게 10박12일로 예정된 스케줄에 따라 미 국내 비행 편까지 티케팅 하고, 해외여행에 필요한 가방도 하나 준비하고, 뉴욕지사 요원들과 거래처에 대한 선물도 준비한다. 한국인들이 해외에 나가 살게 되면 김을 좋아하게 된다니 좀 많이 준비했고, 거래처를 위해서는 기념이 될만한 것들을 준비했다. 그 중에는 금으로 도금된 거북선 한 척이 제법 크기가 크고, 그리고 크기는 좀 작지만 플라스틱에 도금된 금빛 칼을 기념품으로 준비했다. 상무가 휴스턴에서 만날 사람에게 줄 거라고 했다. 이것을 나보고 들고 가라네. 이거 미치겠다. 부피가 장난이 아니다.
이래저래 쫄병 하나가 미국 출장을 간다니 사내 분위기가 좀 요란하다. 상무까지 동행하게 된다니 더욱 그런 느낌이다. ‘잘 다녀 온나’, ‘잘 해라’, ‘와~~ 좋겠다’ 하면서 오늘도 술 한잔, 내일도 술 한잔이다. 우리 과에는 애비가 없으니 옆의 과 사원들한테서도 이러저러한 얘기를 많이 들어둔다. 해외출장경험이 수입과보다는 훨씬 많은 수출과장을 설득하여 김포 및 해외 공항에서의 행동요령 같은 것을 머리에 입력해둔다. 해외출장 경험이 별로 없는 수입과 고참선배들은 선물 안 사오면 죽일 거라며 악을 바락바락 쓰다가도 골벵이와 생맥주 한 잔에 이내 부드러운 미소로 응해준다.
예비군 동원소집
드디어 일이 터졌다. 떠나기 전 금요일 오후, 비상기획부(직장예비군중대)에서 연락이 왔다. 예비군 동원소집명령이란다. 이건 회사 사장 명령이 아니고 국가의 부름이란다. 하기사 내가 군 생활을 예비군관리대에서 했는데 이게 뭔 뜻인지 모를 리가 있겠나? 비록 방위 신분이지만 동원훈련에도 직접 참가한 적이 있어 어떻게 돌아간다는 것쯤은 알고 있는 터다. 출장 떠나는 비행기는 월요일 오전 11시인데, 소집명령은 같은 날 새벽 6시 본사 주차장에 대기중인 버스에 탑승해야 한단다. 마른 하늘에 날벼락이다. 방위가 무슨 동원훈련이냐며 급히 알아봤더니, 소집시각이 비행시각보다 빠르기 때문에 소집에 응하지 않으면 법령에 의해 구속(?)까지 될 수 있는 사유가 된단다. 해결하는 방법은 출장을 하루라도 일찍 떠나는 걸로 다시 품의를 받는 수밖에 없단다.
금요일 오후, 상무 결재를 받아야 하는데 부장, 상무 모두 외출 중이다. 어쩌라고? 당시에 뭔 휴대폰이 있기나 했나? 퇴근 무렵 연락이 닿아 부랴부랴 사무실로 돌아온 부장의 싸인은 겨우 받았는데, 상무는 아직 연락이 닿질 않는다. 비서를 통해 아무리 연락해도 되질 않아 결국 토요일로 넘어왔다. 토요일 아침 얼굴이 새파랗게 질려 부장 싸인 받은 출장품의서 들고 상무를 찾아간다. 자초지종 듣고 있던 상무,
“그래 촌놈이 미국 뉴욕 구경 함 할라카이 졸라 애럽다 그자? 우짜겠노? 하루 당겨서 다녀와라. 지사에도 연락해두고, 니하고는 휴스턴에서 만나면 되제?”
“예, 휴스턴에서 뵙겠습니다. 소란을 피워 죄송합니다.”
“그런데 티켓은 조정했나?”
“예, 총무과에서 가능할 거라는 언질은 있었습니다.”
이렇게 상무 결재는 받았다. 내가 못 가면 자신이 그 큰 선물보따리 들고 다녀야 하니 쫌 많이 번거로울 거라 생각한 것 같다. ㅋㅋ.
결재 받은 품의서 카피 예비군중대와 총무과에 전해주고 나니, 이제는 뱅기 스케쥴이 말썽이다. 이틀 전, 아니 하루 전, 그것도 토요일 아침에 뉴욕 가는 뱅기 자리 변경이 쉽겠냐고? 금요일 저녁 총무과에 미리 얘기는 해뒀다고는 하지만, 그것도 출발을 늦추는 게 아니라 하루 앞당기는 건데,,,,,, 또다시 총무과 직원과 맞붙어 앉았다. 여행사와 어려운 협상을 하던 직원이 한숨을 푹~ 쉬더니, 가능은 할 것 같으니 잠시 올라가서 기다리란다. 점심도 못 먹고 자리에 앉아 있는데 총무과에서는 소식이 없다. 이대로 동원예비군 가야 되나?
결국에는 하루 앞당겨진 뱅기 티켓은 나더러 여행사에 가서 직접 찾아 가란다. 그래도 그게 어디냐 싶어 퇴근길을 조금 돌려 티켓 찾아 집으로 돌아왔다. 근데 준비물 챙기던 마나님도 하루 앞당겨졌다니 뭔가 더욱 부산하다. 호텔에서 세탁하기가 힘들 거라니까 와이셔츠도 몇 장 더 준비하고, 속옷도 깨끗한 걸로 다시 준비했는데, 짐 챙기는 데 서툴기는 마찬가지. 무슨 옷을 갖고 가야 하고 어떤 옷을 입고 가는 게 좋은지부터 선물은 어떻게 포장해야 하는지 등등,,,, 보다 황당한 거는 짐 다 싸놨는데 면도기 준비 못했다며 부랴부랴 다시 사러 나가고,,,,,, ㅋㅋㅋ
보딩패스
신혼살림 차린 지 10개월 되는 신혼부부가 13일간 헤어져 있게 생겼다. 아직 아기가 들어서지 않아 여러 가지로 고민 많던 참인데도 처음으로 헤어져 있게 된 거다. 부산에서는 어무이 아부지께서 올라오셨다. 막내아들 첫 출장 간다는 걸 핑계로 신혼살림 집에 처음으로 다녀가시겠다는 거다. 죽으러(?) 가는 것도 아닌데, 당시에는 대단하게 생각들 하셨나 보다. 마나님은 시부모님에 대해 신경도 많이 쓰인 모양이더라. 집에서 아부지 어무이께 인사 드리고, 마나님은 굳이 공항까지 나오겠다네. 마나님도 국제선 공항은 처음 구경하는 거라 설레기도 했단다. 크다란 짐 보따리 택시에 싣고 소설책 몇 권 든 작은 서류가방 손에 들고 김포공항까지…….
수화물 부치는데 K항공사 직원이 그렇게 친절할 수가 없다.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어리버리한 내 모습을 보며 ‘처음 나가는 거냐’며 묻는다. 미소로 답해주니 ‘처음에는 다 그래요’ 하며 손님을 편하게 해주려는 정성이 보인다. 지금 생각하면 그 정도 보따리면 초과요금을 징수할 텐데 당시에는 보통 그렇게 들고 다녔나 보다. 짐 보따리가 벨트를 타고 돌아가는 모습이 신기하기만 하다. 저게 어떻게 내가 탈 비행기에 같이 실릴 수 있단 말인가? 보따리에 달린 태그 하나로 모든 게 처리된다는 말이겠지? 하지만 어째? 가장 선진화된 시스템을 갖고 있다는 분야가 항공산업일 거라 생각하니 저어기 안심이다.
보딩패스와 여권을 손에 쥐고 잠시 커피숍에서 마나님과 마주 앉았다. 지난 한 달 동안 마나님 얼굴을 바로 쳐다본 적이 없는 것 같다. 매일 늦게 들어갔으니 어쩔 수가 없는 거다. 그렇다고 엉뚱한 짓을 한 것은 아니라는 걸 알고 있으니 마나님도 조금은 대견해 하는 것 같다. 모든 게 처음인지라 시간적 여유를 갖는 건 당연한 일, 조금은 서둘러 출국장으로 향한다. 마나님 눈가가 촉촉히 젖어 든다. 이런~~!!! 마음이 뭉클 한다. 나 자신이 먼저 진정하고 마나님 등을 두드려 겨우 진정시키고는 ‘사랑해’ 하는 귓속말을 남기고 돌아선다. 뒷꼭지가 따갑다.
여권에 출국 스탬프 하나 받아 들고 잠시 면세점을 둘러본다. 참 희한한 것들도 많다. 캐논 소형 카메라(필카)를 만지작거리다가, 교과서처럼 외우고 다니는 술 두 병과 담배 두 보루만 준비하고 탑승게이트 앞에 도착하니 아직 시간이 좀 남았는지 탑승은 않고 있다. 대기하면서 갖고 온 소설책을 꺼내본다. <동의보감>에서 눈을 땔 수가 없다. TV 드라마로 방영도 된 것이라 소설이 시청각으로 머리 속을 맴돈다. 딩동딩동, 아리따운 아가씨의 낭랑한 목소리는 퍼스트 클래스, 비즈니스 클래스부터 탑승하란다. 기다렸다가 이코노미 클래스 탑승! 철저한 자본주의의 대표적 논리를 경험한다. 퍼스트 클래스는 이코노미의 3~4배 가격이라던가? 비즈니스가 2.5배 정도 되고……
B-747
당시 보잉747이 최신기종이었던가? 중요노선인 뉴욕으로 배치한 것이란다. 비즈니스 클래스와 퍼스트 클래스는 2층이나 1층 앞부분에 있고, 나야 뭐 이코노미 클래스니까 제일 뒤로 가는 게 상책이지. 하기야 담배 피는 놈이 앞자리 앉아서 뭐 하려고? 출발시간이 다가오는데 빈 좌석이 상당히 많다. 나는 흡연석 창가에 앉았는데 주변이 휑~하니 비어있다. 뭔 일일까? 가운데 4연속좌석은 팔걸이만 걷어 올리면 아예 침대로 이용해도 되겠다 싶다. 좌석 옆에 달린 각종 스위치의 작동여부를 확인하는 것도 꽤 재미 있다. 이 그림은 뭔 뜻이지 하고 눌러보면 불이 켜지기도 하고, 다른 그림을 눌러보니 승무원 아가씨가 다가 온다. 괜스레 미안해하며 얼굴을 붉힌다.
비행 전 비상시 행동요령에 대한 안내가 이어지고, 앞 좌석 그물망에 담긴 안내책자를 꺼내 본다. 처음 경험하는 것이니 이런 게 있다는 감은 잡고 있어야 할 것이라! 아하~~ 비행기 내부가 이렇게 생겼구나! 비행기 안에서도 면세품을 살 수 있구나. 아하~~ 세계지도가 이렇게 생겼구나. 그리고 정면 스크린에는 오늘 날아갈 비행노선이 붉은 선으로 그려지고 출발/도착 예상시간 및 소요시간, 외기온도, 도착지 예상날씨까지 상세하게 비춰준다. 한번은 영어로, 한번은 우리말로 번갈아 가며 소개하고 있다. 모든 게 신기하기만 하다.
비행기가 움직여 활주로로 이동하고 좀 오래 기다리는가 싶더니 실제 이륙에 앞선 기장의 코멘트, 묵직한 목소리가 조금은 명령조다. 승무원의 안내에 따르지 않으면 비행기 밖으로 던져버리겠다 하는 것 같다. 다시 영어로 얘기할 때는 어린애마냥 목소리가 나긋나긋하다. 같은 사람이 저럴 수 있을까 싶다. 갑자기 ‘괭~~~’하는 경음과 함께 덜럭덜럭 비행기가 움직이기 시작한다. 속도가 점점 빨라지며 귀가 멍~~할 정도로 굉음을 내면서 앞쪽이 일어선다. 앞 바퀴가 들린다 생각할 즈음 뒷바퀴까지 들컥 올라간다. 곧이어 바퀴들이 몸체로 들어가는 듯 또다시 경음을 뿜어낸다. 가변날개가 이륙모드로 움직이며 내는 소리도 보통이 아니다. 하기야 큰 덩치의 금속이 마찰하는 소리니 밤에 들으면 까무러치겠다. 속이 미슥미슥, 귀가 맹맹, 가슴이 답답,,,,,, 입 벌리고 소리 한 번 지르고 조금 시간이 지나며 안정을 찾아간다. 안전벨트 등은 아직 켜져 있다.
한참을 지나 고도를 제대로 높였는지 안전벨트 등이 꺼지자 몇몇 남녀들이 일어나더니 뒤쪽으로 저벅저벅 걸어간다. 비행기 뒷자리는 아예 굴뚝이다. 서로 모르는 얼굴을 힐껏힐껏 지나치며 뻐끔뻐끔 뿜어내는 연기가 그렇게 맛있을 줄이야! 어떤 이는 빈 자리에 앉아서, 어떤 넘은 아예 앉을 생각도 없이 출입문 손잡이를 한 손으로 잡고 다른 손에는 담배가 술술 타 들어간다. 14시간의 비행시간을 나름대로 죽이려는 표현방식이 참으로 다양하다. 거의 세시간만에 느껴보는 니코틴,,,, 아~~~ 좋다!
자리로 돌아와서 헤드폰을 쓰면 녹음된 방송과 음악을 자기 마음대로 선택해서 들을 수 있고, 정해진 시간에는 큰 스크린에 영화도 보여준다. 비행 중에 3편의 영화가 상영된다. 때가 되니 밥도 챙겨주네. 뭘 먹을 건지 시행착오를 한 번 하고서야 다음 식사에는 내가 제대로 골라 먹을 수 있겠더라. 비빔밥이 그렇게 맛있을 줄이야, 튜브 고추장이 그렇게 유용할 줄이야,,,,, 라면 국물의 색다른 맛을 느껴보기도 한다.
아직은 아침시간이라 잠 잘 생각은 전혀 없는데 옆자리 아줌마는 가운데 4연속좌석에서 담요를 덮고 누워버린다. 나중에 나도 잠 오면 저렇게 해야겠다 생각하며 펴든 소설 <동의보감>에 빠져든다. 어찌된 영문인지 나는 허준 마누라에 반해서 그 여인이 더 애처롭게 느껴지니 참 이상한 노릇이다. 소설에서는 별로 의미 있는 역할이 아닌데도 그 인고의 세월을 살아냈을 우리 할머니, 가깝게는 어머니를 생각했던 것일까? 또 지루해지면 담배 한 개피를 꺼내 문다. 흡연석 좌석에서 담배도 마음대로 필 수 있고, 음악 마음대로 들을 수 있고, 술도 달라면 양껏 가져다 주는 것 같고, 심심할 시간이면 영화도 보여주고 참 좋다. 난 비행기가 좋다. ㅋㅋㅋ
아직 내 시계가 오후 4시(서울시각) 정도인데 승무원들이 돌아다니며 창문을 다 내린다. 밖은 아직 훤한데 복도 전기불만 밝힌 채 다른 조명은 모두 꺼버린다. 비행기 안이 깜깜하게 어두워지며 밤이 돼버린다. 모두 취침하라는 뜻이란다. 독서용 등만 개인적으로 켜고 끌 수 있게 됐다. 뉴욕 도착하면 아침이 되는데 그 생활리듬에 맞추기 위해 인위적으로 미리 조절하는 것이란다. 이런 것도 항공사에서는 승객들을 위해 다 배려해야 하는 모양이다. 나도 취침 전 흡연을 만끽하고 등받이를 뒤로 뉘어보지만 잠도 아무나 자는 건 아닌 모양이다. 자는 둥 마는 둥 하다가 결국 <동의보감>에 빠져 든다. 두 권 끝까지 다 읽고 만다.
안 잔다고 하나도 안 잔 것은 아닌 모양이다. 동의보감에 빠져있었는데 그래도 잠시 눈을 붙이긴 했나 보다. 주변이 밝아지고 부산함에 눈을 뜨니 도착할 때가 돼가는 모양인지 기내에서의 마지막 식사를 준비하고 있다. 따끈한 물수건을 건네준다. 얼굴도 좀 닦아내고 흩어진 머리 가다듬고 닭고기 요리를 맛있게 먹었다. 모닝커피까지 시원하다. 그래도 화장을 좀 해야겠는데, 화장실 앞에는 줄이 길다랗게 서 있다. 나보다 동작 빠른 사람은 항상 있게 마련, 이럴 때 나는 포기도 빠르다. 아예 공항에 내려 볼일 봐야겠다고 마음 고쳐먹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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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해외출장 (2)
2012. 3. 26.
JFK
창 밖으로 아침 햇살이 따스하게 비치는가 싶더니 어느새 현지시각 10시가 지나고 있다. 안내 스크린에는 현지시각 및 기온, 날씨 등을 알리고 있다. 근데 뉴욕 현지시각 11시에 착륙예정이란다. 서울을 출발한 시각이 일요일 오전 11시였는데 현지 뉴욕도 같은 날 일요일 오전 11시라는 거다. 내 생애 14시간을 통째로 번 거다. 나중에 어찌 될 값에 지금은 좀 통쾌하기도 하다. 시차가 14시간이고 비행시간 또한 14시간이니 이런 현상이 생긴 거다. 지구는 서쪽으로 돌고 비행기는 동쪽으로 가는데 묘하게 비행시간과 시차가 일치하는 게 신기하다. 마치 비행기가 한 시간마다 15도의 경도를 이동한 것처럼……
다시 한번 ‘꽹~~~’ 하는 경음을 들으며 비행기는 파리의 샤를 드골 공항과 더불어 세계에서 가장 붐빈다는 뉴욕 JFK공항에 착륙하고, 계류장까지 이동하는 데도 한참이다. 세계각국의 비행기들이 줄줄이 서있는데 어느 게 어느 항공사인지 분간이 어렵다. 모든 게 처음 보는 건데 뭐가 뭔지 알 수가 있어야지. 겨우 기억 나는 것이 유니언잭이 선명한 브리티시 에어, 삼색기를 많이 봐온 탓인지 프랑스 에어가 눈에 띈다. 저건 미 국내항공인지 ‘A’만 서너 개 삐딱하게 써 둔 것도 보인다. 어휴~~~ 공항이 크긴 크구나!! 김포와는 비교가 안 된다는 걸 단번에 느끼겠다.
우리의 국적항공사 K사의 비행기가 내리는 곳은 공항계류장의 제일 구석진 곳인가 보다. 몇 번을 가다 서다를 반복하더니 한참을 걸려 완전히 정지한다. 이미 승객들은 자리에서 일어나 승강구 쪽으로 나가 있는 상태다. 승~질~ 급하기는 엄~청 급한가 보다. 물론 여기서도 퍼스트 클래스, 비즈니스 클래스가 먼저다. 선 채로 한참을 기다려 밖으로 이동하기 시작한다. 뒤 좌석에 앉았던 게 죄인가? 한참을 더 기다려야 했다.
승강장이 구석은 구석이었던가 보다. 꼬불꼬불, 오르락내리락, 한참을 돌고 돌아 보따리 찾으러 수화물 벨트 앞에 섰다. 큰 구멍에서 굴러 떨어지는 내 보따리가 애처롭다. 아무도 균형을 잡아줄 생각조차 없다. 결국 내 손이 닿고서야 똑바로 균형을 잡는다. 덩치 큰 보따리를 굴리고 다니니 여기저기 흑인들이 자기가 들어주겠단다. 필요 없다며 손사래를 쳐도 따라 붙는 놈이 있다. 그 놈들 팁 한 푼 받아보겠다는 것일 거다. 보따리에 달린 바퀴로 그대로 밀고 나오며 입국신고창구 앞에 선다.
젠~~장!! 여기서는 내국인을 먼저 우대해 주네. 김포에서는 내국인보다 외국인을 우선해줬는데 말이다. 미국여권 가진 사람은 줄도 짧은 창구에 별도로 통과시킨다. 약한 놈은 어디서나 약한 걸까? 촌놈 또다시 욕을 튕기며 긴~~ 줄에 섰다. 그래도 새치기 하는 놈 없으니 봐줄만하다. 내 차례, 같은 실수를 다시 한 번 반복하는 내가 밉다. ‘뭣 하러 왔냐?’는 물음에 여기서도 또 ‘NPRA 참석하러 왔다’ 그랬더니 질문이 길어진다. 그냥 ‘For Business’라고 했으면 단번에 통과했을 것을…… 완전히 촌놈 표시 내버린다. 휴~~ 입국신고는 마쳤다.
커다란 보따리 바퀴 굴려 세관 엑스레이 투시기를 통과시키는데 뭔 일? 나를 부른다. 별도의 투시기로 안내하더니 화면을 가리키며 저게 뭐냐고 묻는다. 환장하겠다. 회색 빛깔의 거무튀튀한 저 칼이 뭐냐며 칼이면 무기류로 통관 안 된다는 거다. 거래처 선물로 갖고 온 건데 모양만 칼이지 실제 칼이 아니라 도금된 거라서 엑스레이에 나타난 거라며 장황하게 설명했더니 꺼내보란다. 미치겠다. 보따리 제일 밑에 넣어둔 거북선을 포함한 선물꾸러미를 꺼내기 위해 위에서 옷가지부터 다 끄집어 냈다. 아예 보따리를 뒤집는 게 낫겠다. 포장지까지 뜯고 실물을 만져보고서야 뭔지 설명이 되고 이해시킬 수 있는 나의 부족함이 정말 밉다. 영어, 좀더 잘했으면? 다시 보따리에 집어넣는 데도 이놈들은 하나도 도와주지 않는다. 괘씸한 놈들!!! 겨우 주워담고 ‘신고물품 없음’ 쪽으로 나간다.
입국장 문을 나선다. 마중 나와있을 브라이언이 없다. 두리번거리고 있는데 어디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린다. 근데 그 목소리의 주인공이 안 보인다. 기둥 뒤에서 전화를 마치고 나타난 브라이언, 반가움의 악수를…… 브라이언은 교포 2.5세로 뉴욕지사에서 현지 채용한 사원으로 화학사업부를 담당하고 있다. 석유화학의 경우 직접 담당하지는 않지만 담당과장의 말에는 따라야 하는 입장이다. 원래 예정대로라면 근무시간인 월요일에 마중 나와도 되는 것이었지만 내 스케줄이 앞당겨지는 바람에 일요일인 휴일에 나를 이렇게 마중 나와준 게 너무 고맙다.
우선 점심때가 되었으니 밥을 먹어야 하는데 내가 묵을 모텔까지 가려면 한 시간 넘게 걸릴 거니 공항에서 먹고 나가잔다. 결국 ‘M’자가 억수로 큰 집에 들어가서 콜라와 같이 먹는 햄버거,,,, 미국 놈은 한 끼에 억수로 마이 먹나 보다. 제일 작은 놈을 주문했는데도 남겼다. 복도를 따라 걸어 나오는데 미국은 미국인가 보다. 사람들의 복장이 천차만별이다. 패션의 도시라 했나? 한겨울의 복장과 한여름이 공존하는데, 그 중 기억나는 하나는 입이 큰 흑인 아줌마가 노란색 핫팬츠, 모피코트, 분홍 부츠를 신고 크게 웃으며 전화하고 있는 모습에서 우물 안 개구리인 내가 이 상황을 이해하는 데는 상당한 시간이 걸렸다. 세계 각지에서 몰려든 인간들, 겨울나라에서 온 백인도, 한여름에서 온 흑인도 있을 터, 물론 따뜻한 봄날 아침에 나타난 황색인간도 있을 것이다. 또는 가야 하는 그곳의 날씨 또한 워낙 다양할 것이다. 국제도시, 패션의 도시, 뉴욕, 인터내셔널 에어포트에 걸맞는 풍경일 테다.
뉴욕 맨하탄
뉴욕 JFK에서 지사 사무실이 있는 뉴저지로 가려면 맨하탄을 지나 허드슨강을 건너야 한다. 현지시각 오후인데 쏟아지는 잠을 가눌 수가 없다. 서울로 따지면 한밤중이다. 브라이언에게 모텔로 데려 달라고 했다. 자기도 쉬는 날 쉬어야 할 것이리라. 그랬더니 지금 쉬면 Jet-lag (시차) 극복 못한다며 나를 뺑빠꾸 돌리겠단다. 모텔에는 저녁에 들어가기로 하고 보따리를 차에 싣고서는 맨하탄으로 나가서 걷기로 한다.
이놈의 뉴욕, 그것도 맨하탄,,,,,, 가는 곳마다 돈이다. 움직이면 돈이다. 맨하탄에서 길가에 주차란 건 없단다. 길 양 옆의 시커먼 빌딩들이 주차빌딩이란다. 돈 주며 주차하고, 흑인들이 빌딩 앞에서 주차시켜주면서도 팁을 받는다. 이놈도 돈, 저놈도 돈,,,,,, 온천지가 돈이다. 월 스트리트를 지나는데 자주 봐왔던 금융회사들의 로고가 눈에 띈다. 여기가 세계 금융의 중심이구나. 일요일이라 한산한 이 거리에 쓰레기만 넘쳐나는데 바쁘디 바쁜 평일에는 과연 어떤 구조로 세계 상권을 들었다 놨다 하는 걸까?
멀지 않은 곳에 타임스퀘어, 낮인데도 네온사인 옥외광고가 한창이다. 세련된 광고가 눈길을 잡아 끌고 움직이는 광고가 신기하기만 하다. 분명 네온사인인데 우리나라에서는 그 움직임은 볼 수 없는 것들이다. 어딜 가나 소니 아니면 담배 광고다. <SONY>라는 네 개의 단순한 알파벳이 전세계 젊은이들을 열광시킨다. 워크맨 테이프레코더? 미국 놈들은 소니가 미국회사인줄 알고 있다더라. 한편에서는 카우보이 모자를 쓴 존 웨인이 담배 하나 물고 나를 보고 웃는다.
브로드웨이의 뮤지컬 <캣츠>는 장기공연이란다. 지금 예매하면 1년 뒤에나 볼 수 있단다. 사진에서 보던 카네기홀이 초라해 보인다. 공사 중이라며 차양이 쳐져 있어 그리 느끼는 걸까? 번스타인이 뉴욕필을 지휘하는 모습이 아른거린다. 다시 차를 타고 센터랄팍을 지난다. 공원이라는 게 도심 한복판에 이렇게 커도 되는 건지 잘 모르겠다. 야구장이 스무 개가 넘을 거란다. 누구든 원하면 잔디 깔린 운동장에서 마음껏 던지고 치고 달리면 되는 거다. 이런 거는 정말 부럽다. 몇 해 전인가? 헤어졌던 사이먼과 가펑클이 다시 만난다며 기념공연 한 곳도 바로 이 센터랄팍였다. 구체적 위치는 모르겠지만 그 노래와 함성이 들리는 것 같다. 영화의 한 장면처럼 공원 벤치에 앉아 아이스크림 하나 맛본다. 이놈들은 이것도 엄청 크고 양도 많다. 역시 다 못 먹고 버렸다.
어둑해지기 전 잠시 구경만 해보자며 찾아 들어간 곳,,,, ㅋㅋㅋㅋ 19금 영화관. 등급별로 요금도 각기 다른 모양이라. 우리는 중간쯤 되는 등급으로 정하고 어두운 미로를 따라 들어가니, 메케한 냄새와 연기가 가득하고 언뜻 보이는 모습이 흑인들만 듬성듬성하다. 그들 특유의 껌 씹는 소리가 귀에 거슬린다. 그 자극적인 냄새는 마리화나 냄새인 모양이다. 마리화나는 불법이 아니란다. 비어있는 자리를 찾아 앉으니 화면 가득히 벌거벗은 남녀가 뒹굴고 난리다. 여배우의 괴성도 참 자극적이다. 청계천상가에서 붉은색 잡지를 구해 본 적은 있지만 이렇게 눈앞에서 그림이 움직일 줄이야. 스토리도 없는 이런 영화가 여기서는 상업적으로 허용된 사업이구나. 너무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화면을 똑바로 응시할 수가 없다. 10여 분을 봤나? 똑 같은 화면과 소리가 계속된다. 그만 자리에서 일어선다. 냄새에 연기에 머리가 아프다.
밖으로 나오니 이미 어두워졌다. 저녁이라도 먹고 모텔로 들어가자. 뉴욕의 한복판, 맨하탄의 거리는 이렇게 하나씩 어둠 속으로 사라져간다. 빨리 현지에 적응하려면 현지음식을 먹어야 하는데 조금 전에 본 영화 탓일까 속이 매스꺼워 한식으로 먹자 했다. 한식당 <아리랑>, 소주 한 팩에 만 원이 넘는다. 누린내 나는 불고기 좀 먹고 된장찌개로 마감한다. 아무리 한식이라지만 풍기는 버터냄새는 어쩔 수 없나 보다. 잘 적응해야 하는데 이런 게 거슬리기 시작하니 앞으로 10여 일이 걱정이다.
밤에 허드슨강을 건너 뉴저지로,,,,,, 사무실 근처 나지막한 3층짜리 모텔. 본사나 외지에서 출장 오면 단골로 묵게 하는 모텔이란다. 작지만 비교적 깔끔해서 별로 불만 없이 사용하고 있단다. 이제는 단골이라 서로가 잘 배려해준단다. 방 안도 거추장스러운 것 하나 없이 깔끔하다. 이 나라 땅이 워낙 넓어 그런지 카펫 깔린 바닥이 널따라니 기분 좋다. 방 하나가 서울 우리집 전체 넓이쯤 되겠다. 창문 밖에는 겨우내 떨어진 낙엽들이 흩어져 있는 풀장이다. 아직 날씨가 추워 옥외 풀장에 물을 담지 않고 있단다. 다음 출장 때는 수영복도 갖고 다녀야겠다.
브라이언을 돌려보낸다. 오늘 너무 수고했다. 샤워 후에 TV를 켜 본다. 유료채널 광고화면부터 뜬다. 자본주의의 시작이 광고라 했던가? 광고의 홍수다. 야릇한 화면에 궁금증이 발동? 잠시 맛보기를 감상한 후, 리모컨 확인 버튼만 누르면 되겠지만 저녁 무렵 경험했던 어지러운 영화가 생각나 실행에 옮기진 못했다. 한 30분 보는데 5불이니 비싼 건가? 스포츠뉴스에는 NBA농구와 다음주에 개최될 골프소식으로 가득하다. 시차로 인해 깨어날 시간 놓칠까 모닝콜을 요청하고 잠자리에 든다. 몸은 피곤한데 잠은 쉬 이루지 못한다. 잠은 오는데 자지질 않는다. 눈알이 뻑뻑하게 돌아감을 느낀다. 몸을 혹사시킨다고 시킨 건데 별로 효과를 보지 못한 모양이다.
업무 시작?
모닝콜 벨 소리에 일어나긴 했는데 머리가 무겁다. 띵하다. 아침 먹는 것도 일이다. 몇 가지 들은 게 있어서 에그프라이, 토스트, 요구르트, 주스로 해결한다. 볼일을 보고 싶은데 생체리듬은 이를 허락하지 않는다. 용만 쓰다가 실패로 그만두고, 업무서류 챙겨서 사무실로 간다. 날씨가 우중충한 게 어깻죽지에 찬 바람이 스친다. 모텔 앞 왕복 2차선 잿빛 도로에 다니는 차도 별로 없다. 어제 브라이언이 알려준 대로 걸어서 10분을 가면 쪼그만 소공원을 지나 널따란 주차공간에 4층 높이의 건물에 사무실은 3층이다. 내방객은 출입증 없이 들어갈 수가 없다. 로비에 마련된 전화기로 ‘헬로우’ 하니 안에서도 ‘헬로우’ 한다. 여차저차 샬라샬라 문 좀 열아 달라 하니 한 과장 부르는 소리가 들리더니 ‘징~~’ 하며 문이 열린다.
한 과장, 뉴욕지사 4년차. 뉴욕지사에서 몇 안 되는 수익 올리는 부서 담당과장이다. 물론 화학품부에서 사원으로 나가 지금 과장이 됐는데 이제 미국사람 다 된 것 같다. 전화 목소리만 듣다가 처음 얼굴을 대하니 예상했던 대로다. 가냘픈 인상이 날카로움을 더한다. 서울의 유명 S고교, S대 화학과를 나왔으니 어깨에 힘이 들어 갈만하겠다. 이제 본사로 귀임할 때가 되었는데 그 시기를 조절하고 있다는 첩보가 흘러 다니고 있을 때다. 그래도 이번 출장의 모든 스케줄을 관리하는 과장인데 내가 그의 손 안에 있다는 걸 명심해야지.
한 과장의 안내에 따라 뉴욕지사장 방문을 노크한다. 김 전무, 물자사업부에서 나온 인물이다. 나는 알고 있지만 자기가 나를 알고 있지는 못할 것이라 간단히 인사만 하고 나온다. 한 과장 자리 옆 회의탁자를 홀로 차지하고 조금 있으니 아가씨가 나타나 아는 채 한다.
“어~~~~?? 미스 김이 여기에??”
“안녕하세요? 저 아시죠? 한 과장님한테 온다는 말씀 들었어요.”
아하~~~ 순간 내 얼굴이 붉어진다. 서로 2년 전의 한 사건을 떠올리며 웃음짓는다.
아하~~ 2년 전인가 보다. 급한 텔렉스 보내려다가 텔렉스실과 마찰을 빗었던 사건이다. 업무에 적극적인 사람이야 급하지 않은 텔렉스 없을 거다. 마지막 순간까지 정보를 취합하고 의견을 조율해서 보내는 거니까. 하지만 텔렉스실 직원들은 이런 경우가 어디 한두 번이겠냐고? 모든 이가 급하다고 하는데 급한 순서를 차라리 신이 정해주면 좋겠단다. 이런 와중에 반달모양 유리창구 안으로 팔을 뻗어 창구에 앉아있는 여직원 멱살을 잡고 흔드는 일이 생겼으니 사건이라면 큰 사건이다. 일단 시간 내에 텔렉스는 나갔고 결국 내가 사과하는 선에서 마무리 되긴 했다. 그때 뒤에서 지켜보던 고참 미스 김이 불꽃 튀는(?) 나의 그 진지한 모습에 그건 꼭 해줘야 되겠더란다. 미스 김 자신의 손으로 오타 없이 제시간에 나간 텔렉스 덕분으로 그 비즈니스를 성사시킬 수 있게 된 것이었다.
“근데,,,, 여기 계신다는 말은 들었는데,,,, 참 결혼 하셨죠?”
“네, 뉴저지 살고 있어요. 커피 드려요? 여기서는 셀픈데 오늘은 특별히 제가 한 잔 타 드릴께요.”
“아이구 감사합니다. 그때 그렇게 큰 도움을 받았는데, 점심 한 번 사려해도 언젠가부터 안 보이더라구요. 어떻게 된 거예요?”
“ㅎㅎㅎ 그게요? 실은 그때 이미 결혼계획이 있어, 본사는 관두기로 한 상태였고, 여기 지사로 올 지는 아직 모르고 있었는데 지난번 여기 언니가 그만두고 나가면서 제게 기회가 온 거죠.”
“아하 그렇구나. 여기 근무한다는 얘기는 이번에 알았어요.”
“광용씨 얘기는 한 과장님한테 듣고 있습니다. 이 과장님 잘 계세요?”
“아~ 예~~ 수입과 이 과장님, 그만 두신 거 아시죠? 이제는 사장님인데, 잘 계십니다. 건강이 안 좋아 조금 고생하시지만……”
괴팍한 승질(?)들은 괴팍한 사람을 알아보는 법인가 보다. ㅋㅋㅋ 세상 참 좁다. 허튼 짓 하지 말라는 경고인가 보다. 기억하기 싫은 사건을 여기서 고스란히 되새김질 하고 있으니 말이야.
한 과장은 월요일 아침 바쁜 시간을 쪼개며 내게도 관심을 보여준다. 브라이언은 예정된 미팅이 있어 오후에 사무실로 나올 거란다. 원래 내 스케줄로는 이제야 뉴욕 공항에 도착하는 관계로 지금 이 순간 지사사무실에 앉아있는 거는 예정에 없던 스케줄이다. 그냥 사무실 구경하고 한 과장이나 브라이언이 실제 어떻게 움직이는가 보기만 해도 본사 돌아가서 업무 하는데 도움이 될 거라며 애써 위로로 삼는다. 사무기기도 미제라 잦은 고장으로 말썽 많은 서울 본사보다는 훨씬 좋아 보인다. 복사기도 페이지를 구분해주니 훨씬 편리하겠다. 미제 전화기는 인터폰으로도 편리하게 사용할 수 있겠다. ㅋㅋㅋ
급한 업무처리를 마치고 온 한 과장, 이번 출장스케줄에 대해 설명한다. 오늘 오후부터는 뉴욕투어란다. 원래 계획대로라면 공항에서 바로 투어 할 생각이었단다. 내일은 석유화학 트레이더 두 군데 만나 밥 먹고, 모레(수요일) 휴스턴으로 가서 강 상무와 조인하는데, 그 스케줄은 강 상무가 자신에게 얘기도 안 해줬단다. 누구를 만나는지 아직 모른단다. 목, 금요일 휴스턴에서 일 보고 토요일 산안토니오로 넘어가서 일요일 쉬면서 구경 좀 하고, 일요일 저녁부터 월, 화, 빽빽한 미팅이 대기하고 있단다. 수요일 오후에 다시 뉴욕으로 돌아와서 목요일 서울로 출발하면 나는 금요일 김포에 닿게 될 거란다.
이곳 도시들은 업타운, 다운타운의 구분이 분명하다. 베드타운엔 상점이 거의 없다. 여기 사무실 부근에도 음식점은 차 타고 나가야 한다. ‘미국에서는 자동차가 신발’이라는 농담이 진담처럼 들린다. 가까운 곳이라 해도 자동차로 10분 걸려 일식집에서 따끈한 국물과 초밥 몇 점을 먹었다. 이제부터 지사 과장이 본사에서 온 쫄병 사원 한 명을 태우고 직접 운전하여 다시 맨하탄으로 간다. 늘 하던 대로 익숙한 솜씨다. 나라고 별다르게 하는 건 없단다. 워낙 손님들이 많이 찾아오니까 그런 스케줄은 습관처럼 돼 있단다.
허드슨강을 건너며 통행료를 낸다. 어제 뉴욕에서 뉴저지로 올 때는 안 냈던 요금인데, 물어보니 뉴욕의 제정이 나빠서 이렇게 받고 있단다. 상대적으로 뉴저지는 그런 거 받지 않으니 뉴욕이 거지라는 표현도 거침이 없다. 60~70년대 왕성하던 마천루 뉴욕이 조금씩 슬램화 돼간다는 징조다. 자본주의의 꽃이라 불리며 상징이 돼버린 뉴욕 맨하탄,,,,,, 좁은 길거리에 빼곡히 들어선 빌딩의 숲, 훤한 대낮이라지만 햇볕 한 줌 찾을 수가 없다.
제일 먼저 찾아간 곳, 내가 가보자고 했다, 엠파이어스테이트빌딩, 구름 위에서 바람에 흔들린다는 건물, 맨하탄의 상징, 쌍둥이빌딩에 최고의 자리를 내줬지만 한 때 세계에서 최고 높은 빌딩으로 군림했던 103층 빌딩!! 건물 입구 삐끼(?)들이 “Visibility Zero”를 외치며 구경하란다. 이런 아이러니가 있나? 볼 게 없는데 보러 오라니? 이미 온 장날에 비는 뿌리지 않지만 날씨가 궂다. 그래도 워쩌? 오늘밖에 없는데. 입장료 내고 엘리베이터를 탄다. 귀가 멍멍~~ 두어 번 갈아타고 꼭대기 아래층에 마련된 전망대, 쌍안경에 동전을 넣어봐도 보이는 건 구름뿐…… 정면 유리창에는 맑은 날 이렇게 보일 거라는 그림을 새겨뒀다. 구름 위로 솟아오른 또 다른 빌딩의 꼭대기. 아~ 저놈이 이것이구나. 오늘은 이걸로 만족하자. 몇몇 유명한 빌딩을 들먹이며 한 과장이 설명해주는데 그때뿐이다. 물 한 모금 마시는 데도 돈이다. 목마르다는 얘기하기가 겁난다.
또 다시 뉴욕의 상징,,, 자유의 여신상을 보러 간다. 허드슨강 하구의 작은 섬, Liberty Island까지 페리를 타야 하는데 뉴욕 사람들은 그 섬에 가보지 못한 사람이 더 많단다. 관광객들만 저 긴 줄을 기다리며 싸지 않은 뱃삯을 지불한다. 긴 줄이라지만 새치기 없어서 좋다. 줄은 길지만 기다리면 반드시 내 차례가 온다는 믿음이 있는 거다. 다른 사람이 먼저 끼어들지나 않을까 하는 불안을 안고 사는 우리와는 조금은 다른 사고방식일까? 1센트짜리 동전(페니)을 두 개를 주면 한 개는 납작하게 눌러 여신상이 양각으로 새겨진 펜던트를 만들어준다. 한 개는 자기 팁(1불을 따로 받았는지 기억이 없다)이고… 우리나라 같으면 돈을 못 쓰게 만들었다며 불법이라고 소리쳤을 것 같다.
15분 정도 보트를 타고 가면 횃불을 든 여신의 팔뚝이 내 머리 위에 있다. 그 굵기가 머리 속에 새겨진 모습과는 다르다. 날씬한 이미지로 각인 된 그 여인이 힘도 장사인 그런 장부의 모습으로 내게 다가온다. 보이는 각도에 따라 그 이미지가 달리 인식되나 보다. 사람들은 관광가이드를 에워싼다. 프랑스가 어쩌고저쩌고…… 하지만 나는 한 과장만 옆에 있으면 된다. 위로 엘리베이터 타고 가면 전망대가 있다는데 그놈이 그놈이라 오늘은 생략한다. 건너편 맨하탄이 비교적 괜찮은 모습으로 그 음영으로 각인된다. 엽서에서 보던 모습이 여기서 찍은 사진인가 보다. 쌍둥이 월드트레이드센터가 선명하다.
다시 보트 타고 선착장으로 가면서 날이 맑기를 기다렸지만 별 소용이 없다. 이제는 120층 쌍둥이를 올라가보자. 엠파이어스테이트와 다를 것이 없겠지만 그래도 와봤다는 데 의미를 찾고자 기어코 올라보기로 한다. 월드트레이드센터(WTC)가 있는 이곳,,, 그 내부 일부를 관광객에게 공개하고 있다. 바삐 움직이는 이 사람들이 지구본 위의 모든 경제를 좌지우지할 것을 생각하니 이 나라가 축복 받은 것일까 싶다. 120층으로 올라가보지만 예상했던 대로 오늘은 볼 것이 없다. 단지 와봤다는 증명으로 만족해야겠다. (2001. 9. 11. 이후 그 쌍둥이빌딩은 지구상에서 사라졌다.)
수시로 사무실로 전화하던 한 과장, 프랑크푸르트지사 강 과장이 원래 수요일 휴스턴으로 오기로 했는데 하루 앞당겨 뉴욕 구경도 좀 하기로 했단다. 내일(화) 뉴욕에 도착한단다. 나를 위해 거래처와 미팅 약속이 잡혀 있는지라 공항 픽업을 못 가겠다며 뉴저지 사무실로 바로 찾아오라고 했단다. 힘들 텐데? 그래도 해외 생활에 익숙한지라 별 걱정은 않는다.
또 밥 타령이다. 지사 생활에서 제일 힘든 게 아마 이런 것일 거다. 천성적으로 즐겁게 받아들이는 사람도 있긴 하던데, 늘 먹는 밥을 이 사람은 어떤 걸 좋아할까 하는 걱정을 달고 살아야 한다. 이번에는 내가 먼저 근사한 레스토랑으로 가자 했다. 출장비 좀 쓰겠다고 하면서 스테이크 한 번 쓸어 보겠노라고. 단지 내가 워낙 소식인지라 양은 좀 적으면 좋겠다고 미리 말했다. 곰곰이 생각하던 한 과장, 알아서 하겠노라며 좀 특별해 보이는 식당으로 안내한다. 아주 싸구려 부페식당인데 야채가 많아 한국사람들이 좋아한단다. 이놈들은 원래 야채는 날 것으로 먹는데 여기는 삶은 것도 있고 데쳐서 무친 것도 있다며 동서양이 어우러진 그런 곳으로 당시 ‘퓨전’이란 말이 통용됐는지 모르겠지만 일단 그런 개념이다. 단지 향이 좀 강하여 역하기도 하더라. 결국 이번에도 한 과장이 밥 샀다. 내일 강 과장 오면 같이 식사 하자며 날더러 사란다. 그러마고 답하고 모텔로 돌아와 오늘은 일찍 잠자리에 든다. 한 과장 집은 모텔에서 30분을 더 달려야 한단다.
진짜 업무
화요일 아침, 어제와 같은 방식으로 밥 챙겨먹고 사무실로 찾아간다. 본사에서 나를 찾는 교신도 있고 해서 전화비가 싸다니까 국제전화 막 돌려가며 몇 군데 연락해두고 미스 김과 어제 있었던 애기로 긴장을 푼다. 날씨가 도와주지 않아 조금 실망했다는 요지다. 어제는 뉴욕 투어가 업무였던 셈인데, 오늘은 진짜 업무로 내 밑바닥 다 보여주게 생겼다. 진짜 미국 놈과 진짜 미국에서 진짜 미국말로 샬라샬라 해야 하는데 걱정이 앞선다. 점심약속이니 11시 사무실 출발할 거라며 준비하고 있으라는 한 과장의 언질이다. 독일 강 과장은 오후 4시경 사무실로 도착할 거란다. 다시 사무실 들어왔다가 강 과장 픽업해서 저녁 약속에 나가야 한단다. 이거 보통 일이 아니네……
이 친구는 한 과장이 미국 와서 처음으로 거래를 튼 사람이라 했다. 그런 인연으로 지금까지 관계를 이어오고 있나 보다. 합성수지 중간원료를 취급하는데 내가 직접 비즈니스 연결하기는 좀 거리가 있다. 취급하는 품목이 나와 좀 안 맞는다. 옆에서 얘기나 들어주겠다 생각하고 있는데 진짜로 알아듣기 어렵다. 시간이 지날수록 적응돼가며 업무 얘기는 조금씩 들린다. 식사하면서 말하는 게 더 알아듣기 힘드네.
이 친구 내 명함을 보더니 타이틀이 별로인지 콧방귀 뀌는 눈치다. 이때 약 오르면 지는 거라 했는데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묘안이 생각나지 않는다. 한 과장과의 비즈니스 얘기는 대충 끝난 것 같아 이제는 나도 얘기 좀 하자 싶어 내 이야기를 했다. 내가 취급하는 게 이러이러한 건데 지금 시장상황이 이러쿵저러쿵 하니까 앞으로 네가 취급하는 그 원료는 지금 확보해두면 좋을 것 같다는 둥,,, 내가 취급하는 비즈니스 관련한 얘기만 주절주절 읊어대기 시작했다. 이놈이 눈을 둥그렇게 뜨고 관심을 갖기 시작한다. 하기야 석유화학이라는 제품이 계열화돼 있어서 서로 시장변화에 민감할 수밖에 없는 거다. 그 원료의 가격동향에 대해 내가 얘기해주니 좋아할 수밖에… 난생 처음으로 본토에서 제대로 하는 영어라 아주 또박또박하게 천천히 말해줬다. ㅋㅋ
돌아오는 길에 한 과장이 날더러 처음 미국 온 거 맞냐며 영어발음이 처음 온 사람답지 않게 정확하단다. 칭찬인지, 사람 마음 떠보는 건지, 어리둥절하다. 내가 학교공부 외에 별도 영어공부 할 위인이 못 된다는 걸 잘 알고 있을 건데 당황스럽다. 한참을 망설이다 이렇게 설명해줬다. 내가 영어공부 한답시고 노력해본 것은 <타임>지 크게 소리 내어 읽은 것 밖에 없다. 사전에 표기된 발음기호대로 정확하게 발음하려고 했고, 특히 액센트는 틀리지 않으려고 무척 노력했다. 단어 하나하나의 액센트가 정확하면 문장을 읽을 때 높낮이(Intonation)가 저절로 만들어진다고 하더라. 그렇게 해보니까 연음이나 묵음도 쉽게 처리할 수 있다는 걸 깨달았다. 한국사람, 특히 경상도 사람이 영어발음 어려운 게 액센트가 잘못돼서 그런 거라는 걸 선배한테 들은 적 있다. 말 하는 거는 내가 아는 단어, 문장을 차근차근 하면 되겠는데 문제는 미국 놈들 말이 잘 안 들린다. 아는 만큼 들린다 하던데, 어쩌면 좋은지 좀 알려달라고 했더니 돌아온 답은 예상 외로 너무 일반적이다. 자기가 모르는 외국 말은 들릴 수가 없는 거니까, 많이 만나보고 어휘 많이 공부하고 슬랭 같은 것들도 많이 익혀두는 수밖에……
사무실에 닿으니 강 과장도 막 도착한다. 비행기가 한 시간 정도 빨리 도착했단다. 다행이다. 강 과장, 내 고교 선배다. 정밀화학과장을 하다가 프랑크푸르트로 나간 지 1년 남짓 됐나 보다. 1년 만에 상봉,,, 할 말이 많을 것 같은데 막상 얼굴 보니 말문이 막힌다. 차근차근 풀어가기로 하고, 한 과장은 밀린 업무 처리하고 강 과장은 인사하러 다닌다며 분주하다. 마당발 강 과장은 옆 사무실 (주)럭키, 금성사 사람들까지 인사하고 다닌다. 옛날에 자기를 도와준 사람이란다. 덕분에 덩달아 나도 인사하고……
Yigal Roter & Palm Restaurant
다시 전열을 가다듬고 맨하탄으로 나간다. 이번에는 강 과장까지 응원군이 생기니 한결 든든하다. 결과적으로 이 미팅은 내 평생 기억에 남을 거다. Yigal Roter와 Palm Restaurant 때문이다. Yigal은 비즈니스에 막대한 영향을 미쳤고 향후 나와 끈질긴 인연을 이어갔던 인물인데, 자기가 지난해 서울을 다녀갔을 때 나를 만날 시간을 만들지는 못했다. 오늘 처음으로 내가 그의 얼굴을 대면하는 것이고, 팜레스토랑은 내가 지금까지 먹어본 음식 중에 가장 비싼 걸 먹어본 곳이기 때문이다. 우선 이 팜레스토랑을 구글로 검색해 보니
Palm Restaurant, 837 2nd Avenue, New York, NY 10017, (212) 687-2953
로 나와 있네. 아마 지금도 그대로 있을 거라 생각 되는데, 아주 오래된 건물(짐작컨데 100년 정도?) 내부 나무계단을 따라 2층으로 올라가면, 삐그덕거리는 소리가 요란하고 유명 인사들이 다녀갔다는 싸인이 온 벽에 붙어있다. 프랑스 작가, 스페인 화가, 독일 음악가, 영국 마술사,,,,,, 보기에는 초라해 보이는 식당이 그 유명세를 타고 그 이름값 하느라 그렇게 비싼 거구나 생각했다. 좀 이른 시간으로 예약을 했던 것 같은데(??) 나무 계단에 서서 기다린 게 기억난다.
Yigal Roter, 이스라엘 사람으로 미국(때로는 뉴욕 부근, 때론 휴스턴)에서 청춘을 보낸 전문적인 장사꾼이다. 당시 그가 속한 회사이름이 McDermott인데 금융투자회사가 감세 목적으로 실물거래를 하기 위한 방편으로 자회사를 만든 거다. 석유화학 전문 무역회사로 Yigal Roter가 그 기반을 다져온 것으로, 회사 사장은 아니지만 실권자로서 금융/자본 관련 사항만 아니면 모든 중요안건에 전결권을 가진 자다. 굵은 목소리가 영화 <대부>의 말론 브란도 같은 인상인데, 입안에서 얼버무리는 듯한 발음으로 처음 미국에 온 나로서는 영~ 알아듣기 힘이 든다. 얘기 도중 수 차례 다시 말해달라는 부탁을 했다. 하지만 카리스마는 모든 이를 압도한다. 그 명성을 듣고는 있었지만 첫눈에 내가 반한 거다.
계단에서 기다리고 있을 때 Yigal이 식당의 연혁에 대해서 설명해준다. 누구누구가 다녀갔다는 일화도 자기가 알고 있는 만큼 상세히 알려준다. 이들은 이런 게 하나의 즐거움이고 그 순간 그런 추억을 하나씩 만들어간다는 생각을 했다. 한 과장이 먼저 만나자고 연락했는데 식사는 자기가 대접하겠다며 장소를 정했단다. 한 과장을 통해 비즈니스를 몇 차례 엮어본 적이 있어 Yigal도 나를 알고는 있는 터였다. 본사에서 애비 없이 나름대로 열심히 하고 있다는 정보는 갖고 있다고 했다.
드디어 좁다란 식탁에 네 명이 꼭 끼어 앉아 주문을 하는데 가격이 적히지 않은 메뉴가 있다. 궁금해서 한 과장에게 물어봤더니 가재요리인데 (당시 이 촌놈은 Lobster가 가재인줄 몰랐다) 그날그날 싯가에 제공한다는 거다. 금새 눈치 챈 Yigal이 얼마든지 시켜도 좋단다. 더불어 포도주까지 50년이 넘은 걸 시킨다. 아주 비쌀 텐데…… 포도주? 오래 됐다고 무조건 좋은 게 아니라 그 생산연도, 생산지역의 포도작황이 어땠느냐가 더 중요한 요소란다. 이런 걸 내가 어디서 듣고 배우겠나 싶다. 실생활에서 부대끼며 느끼고 터득해야 하는 것을……
포도주 맛이 떫뜨름한데 달지 않아 좋다. 기호에 따라 천차만별인데 고급스러운 것은 비교적 단맛이 적은 것이라 한다. 그래도 너무 떫은 것은 입안이 텁텁하여 싫다. 커다란 바닷가재가 내 앞에 나왔다. 주방장이 뭐라고 설명하지만 잘 못 알아듣겠다. 치즈가 뿌려진 달콤하고 짭짤한 맛이 혀끝을 감돈다. 포도주와 잘 어울리는 것 같다. 버터냄새는 내게 역하다. 하지만 어쩔 거냐? 내가 익숙해져야지. 어딜 가나 제일 좋은 안주는 옆에 없는 사람 씹는 것인가 보다. 동서양이 다르지 않은 것 같다. 다른 회사 누구는 얼마를 손해 봤는데 그 친구가 왜 그런 결정을 했는지 이해가 안 된다는 둥,,,, 또 다른 누구는 크게 이문을 남겨 보너스 충분히 탔다는 둥,,, 우리의 조직체계로는 상상할 수 없는 금액들이 애기되고 있다.
이런 놈을 만나면 실제 비즈니스 얘기는 단 5분이면 된다. 자기가 알고 있는 시장상황 쭉~~ 설명해주면서 ‘내가 할 수 있는 건 이러이러한데 네 생각은 어떠냐?’ 이런 식이다. 조건이 맞으면 얘기가 진행 되고 찬스가 아니면 다음에 다시 얘기하자 하면 되는 거다. 군소리 필요 없다. 근데 이런 놈들은 시장상황을 설명하면서 조금씩 장난을 치는데 그 상황을 크로스체크 할 능력이 없으면 고스란히 당하는 거다. 그게 이 바닥의 비즈니스 세계다. 자리 일어서면서 그가 던지는 오퍼는 검토대상이기는 한데 당장 결정할 수는 없는 것 같아 산안토니오에서 다시 얘기하자고 했다. 일어서며 그가 던지는 농담(?),
“너는 내 빅박(Big Buyer), 오늘 저녁은 내가 산다(buy). 산안토니오에서는 니가 내 꺼 사라(buy).”
“그래 그러자. 조건만 좋으면 10만 톤도 사겠다.”
했더니 깔깔 웃는다. 어린 친구가 장사 좀 하겠다고 생각한 건지 그의 웃음이 아주 호탕하다. 옆에 있던 한 과장 내 어깨를 툭 치며 우리말로
“잘한다.”
이렇게 나의 운명적인 Yigal과의 첫 만남은 마무리 되고 산안토니오에서 다시 만나자며 한 과장과 약속시간을 다시 확인한다. 큰 숙제 두 개를 하루에 해치웠다. 영어 때문에 걱정 많이 했는데 업무적인 거는 좀 따라가겠다는 자신감이 생긴다. 하기야 석유화학 트레이드 용어자체가 전부 영어를 쓰고 있으니까 그럴 테지만 그래도 진짜 미국에서 조금은 통했다는 게 큰 성과다. 하지만 아직 생활영어는 깡깡 멀었다는 걸 잘 안다. 어쩌면 영원히 따라잡지 못할 것인지도 모른다. 한 과장, 분위기 맞추느라 포도주 몇 잔 마신 것 같은데 운전하는데 지장 없다며 핸들을 잡는다. 그때 뉴욕에 대리운전이 있었나?? ㅋㅋㅋㅋ
낮에 잠시 얘기가 있었는데, 강 과장 형님이 뉴저지에 살고 있단다. 한번 찾아보고 싶은데 한 과장한테 폐가 될까 걱정스러워한다. 한 과장이 흔쾌히 대답을 했기로 전화번호와 지도만 갖고 한 시간 거리를 찾아간다. 일행 중 한 명이 빠지는 것도 어색하여 세 명 모두가 고속도로를 따라 달린다. 강 과장 형님, 국내 언론사에서 화려한 경력을 갖고 계셨는데 어떤 정치적 흐름에 편승하다 그냥 국내생활이 어렵게 돼버렸단다. 그때 이민을 결심하고 뛰쳐나온 곳이 여기 뉴저지, 벌써 10년이 넘었단다. 갑작스레 동생의 연락을 받은 형님 내외는 준비한 게 없다며 장성한 아들이 오토바이 타고 달려나가 준비해온 핏자 두어 판, 포도주를 곁들여 참 맛있게 먹었다. 10여 년만의 해후에 어찌 아쉬움이 없겠나? 각자의 생활이 있으니 또 헤어진다.
늦은 밤 모텔로 돌아와서 강 과장도 비용절감(?) 차원에서 내 방에서 같이 자기로 했다. 트윈베드라 큰 지장은 없을 것이지만 모텔 직원은 의심스런 눈으로 쳐다본다. 눈치 챈 한 과장, 걱정 말라며 이런 거 저 친구들 잘 알고 있단다. 우리(특히 한국사람들)가 예약하면 의례히 남자 둘이 같은 방 쓰는 줄로 당연하게 생각하고, 엉뚱한 상상이 필요 없다는 것도 그들이 알고 있단다. 한두 번 겪는 게 아니니 안심하란다. 내일(수)은 휴스턴으로 이동하는데 뉴욕 JFK공항이 아니라 뉴왁(Newark) 공항이다. 국제공항이긴 한데 로컬 노선이 많이 뜨고 내린다. 아침 9시에 픽업하러 올 테니 준비하고 있으라 하고 헤어진다.
애틀란타 그리고 휴스턴
다음날 (수요일), 모텔에서 체크아웃하고 보따리 큰 것 두 개를 더 차에 싣고 강 과장이 조수석에, 내가 뒷좌석에 앉아 뉴왁으로 이동한다. 컨티넨탈인지 델타인지 기억이 모호하다. 비행기가 뉴왁에서 애틀란타 경유해서 휴스턴으로 가는 노선이다. 단지 경유하는 건데 애틀란타에서 비행편명이 바뀌네. 이상하다 했더니, 설명에 따르면 항공기구에서 남북노선(뉴왁-애틀란타)과 동서노선(애틀란타-휴스턴)을 구분하는 규정을 정해놓고 있단다. 그런 걸 몰랐기로 티켓의 편명이 다른 것을 보고 다른 비행기로 갈아타야 하는 걸로 생각했다. 물론 내렸다 다시 타는 것은 마찬가지지만…..
조지아 애틀란타? 남북전쟁 당시 남부군의 수도다. 상영시간 3시간이 넘어 중간에 휴식시간이 있는 영화 <Gone with the Wind>의 배경이 된 곳, 목화밭이 끝없이 이어질 것 같은 곳, 클라크 게이블이 비비안 리에게 키스했던 그곳, 스칼렛 오하라의 도도함이 생생히 살아있는 바로 그곳이다. 비록 전쟁에서 져서 흑인이 해방되었다고는 하지만 아직도 텍사스를 포함한 남부지방의 그 도도한 자존심은 흑인들의 입지를 좁게 만들고 있다네. 연구 대상이다.
당시에는 관심도 없었고 뒤에 내가 골프를 하게 되면서 알게 된 사실이지만, 바로 다음주에 있을 <마스터즈 골프대회>가 열리는 Augusta로 가려면 여기 이 애틀란타에서 내려야 한다고 들었다. 4월초면 목련이 자신의 길(Magnolia Tunnel)을 화려하게 장식한다는 오거스타내셔날골프클럽의 자존심 <마스터즈>!! 참 대단한 대회다. 정규코스로는 단 18홀 밖에 없는 일개 골프클럽이 온갖 비난을 무릎 쓰고 자기만의 의지를 고집하는 대회, 그 의지가 서서히 다른 모든 클럽에도 적용되는 그런 기록을 갖고 있고, 모든 프로골퍼가 이 대회에 한 번 참가해보는 걸 꿈으로 갖고 있는,,,,, 바로 그런 대회?? 아직도 여자가 클럽하우스에 들어갈 수 없다는 규정을 유지하고 있는지 모르지만 오만함의 극치다. 하지만 그 오만함의 배경에는 관행과 원칙이라는 게 있다는데 어쩌면 부러움의 대상이기도 하다.
한 시간 반을 기다려 담배 한 대 피우고 다시 오른 비행기는 텍사스 휴스턴으로 향한다. 강 상무가 어떤 스케줄을 갖고 있는지 매우 궁금해 하는 한 과장, 어떤 준비를 해야 하는지 당황스럽단다. 그 양반 스타일이 원래 그러니 뭐라고 말도 못하겠단다. 그런 걱정 속에서도 NPRA 미팅의 분위기를 알려달라는 요청에 차근차근 일러준다. 석유화학산업 자체가 가진 자들의 대규모 투자를 앞세워 약육강식의 자본주의논리를 그대로 적용하여 시장을 좌지우지하려고 한다는 거는 다 알고 있는 거겠지. 주최측은 모양 좋게 장기전망이라던가 투자우선순위 같은 장기포석에 대한 예측을 하지만 대부분의 거래당사자들은 거래 하나하나, 3,000톤, 백만 불에 목숨 걸고 온갖 수단을 다 동원한다. 우리도 마찬가지로 월, 화요일에는 한 시간 단위로 미팅이 잡혀 있어 이 호텔 저 호텔 돌아다니며 정보 하나라도 얻어내야 하고 그 정보가 정확한 건지 스스로 검증해야 할 터이다. 얘기를 듣는 순간 머리가 띵~~하다. 내가 서울에서 너무 편하게 일해온 것 같은 자책이 든다.
어느덧 기장이 휴스턴 공항 착륙을 알린다. 미국이란 나라가 크긴 큰 모양이다. 국내비행으로 6시간이 넘게 걸리고, 시차도 생기니 오늘도 1시간을 벌었다. 도대체 이 나라에는 국제공항이 몇 개나 되는 거야? 주요 도시들은 거의 모두 국제공항을 갖고 있나 보다. 여기 휴스턴도 워낙 큰 공항이라 한참을 돌고 돌아 밖으로 빠져 나온다. 택시 타고 예약된 호텔(아마도 힐튼이지 싶다)로 찾아가니 강 상무 도착해서 잠자고 있으니 저녁 6시 로비에서 만나자는 메모를 전달 받는다. 강 과장과 내가 같은 방에 들고 한 과장은 워낙 분주한지라 독방을 쓰기로 한다.
각자 방으로 올라가 좀 쉬면서 포트워스(달라스와 트윈시티)에서 공부하고 있는 친구와 연락하니 일정이 딱 맞아떨어지지가 않는다. 암튼 내 연락처 알려주고 그의 연락을 기다리기로 한다. 침대에서 뒹굴다가 깜박 잠이 들어버린다. 샤워도 하지 못하고 허급지급 겨우 6시에 시간 맞춰 내려온다. 어렵쇼? 강 상무 옆에 금 부장이 같이 서있네. 미국비자 재신청 해뒀다는 바로 그 합성수지부장이다. 비자 문제 때문에 출장 간다는 말을 함부로 꺼내기 힘들었던 모양이다. 아무도 그가 출장 나올 거라는 걸 생각지도 못하고 있었던 거다. 강 상무 외에는…… 이렇게 되면 리야드 조 과장도 산안토니오로 오기로 했으니까 이번 NPRA회의에 참석하는 본지사 인원이 LGI 사상 최초로 정예부대로 6명이라는 대군이 형성된 것이다.
저녁식사 자리에서 강 상무 어깨 힘주며 이번 회의 참석하느라 돈 많이 썼으니 돈 많이 벌어야 한다는 당부(강요?)를 빼놓지 않는다. 이때 한 과장이 뉴욕에서 만난 Yigal Roter에 대해 구두보고 드렸더니
“광용이 너, 저녁 값이 얼만지 모르겠지만 서울 가면 100불에 만 톤씩 사줘야 할 거다. 밥 얻어먹은 값 해야 한단 말이다. 너 자신 있어?”
“예, 자신 있습니다. Yigal한테 조건만 잘 맞추라고 하지요 뭐.”
“ㅎㅎㅎ 그래 니 배짱 한 번 좋다. 이번에 언제 만나기로 했지?”
이번에는 한 과장이 답하기를
“예, 화요일 하이야트에서 12시 점심 있습니다.”
“그때 나도 나가야 되나?”
“상무님 편하신 대로…… 굳이 자질구레한 실무에 참석하시는 게 좀 어색할 것 같습니다.”
내일 모레 휴스턴에서의 일정에 대해 한 과장이 바쁘게 생겼다. 우선 내일 아침 10시 호텔로 리무진 차가 올 거란다. 그들 사무실로 가서 상무 자신이 만들어온 자료로 브리핑 할 거란다. 그때 무슨 내용인지 알 수 있을 거라며 기대하고 있으란다. 이거 뭐 감을 잡을 수가 있나? 얘라 모르겠다. 높은 사람이 안 가르쳐주는데 쫄병이 어쩌라구?? 잠시 화장실 거울에 비춰본 내 얼굴, 말이 아니다. 입가가 간질간질하더니 입이 부었다. 경상도 말로 띵나발이 됐다. 피곤하면 나타나는 증상인데, 앞으로의 험난한 일정을 예고하는 것 같다.
호텔 식당에서 포도주를 곁들인 식사를 마치자 강 상무와 금 부장은 방으로 올라가고, 강 과장, 한 과장과 나는 근처 바를 찾아가보지만 우리네 문화와는 너무 다른 분위기에 별 감흥이 없다. 담배연기 가득한 좁다란 공간에 전부 맥주병 하나씩 들고 홀짝거리기만 하고 쭉~~ 마시지는 않는다. 그들은 서로 바라보다가 잠시 흔들기도 하면서 더러는 짝도 찾아지나 보다. 잠시 분위기를 느껴보지만 어색함을 털어내지 못하고 일찍 자리를 뜬다. 괜히 입장료만 날렸다. 결국 제일 편한 거는 호텔 방이다. 맥주병만 방 구석 가득 채우고 자리에 든다.
다음날(목), 아침 뷔페에서 북어국을 찾아보지만 있을 리 만무! 그나마 니끼한 수프로 속을 누그러뜨린다. 9시 강 상무 방에서 간단히 업무내용과 선물전달요령 등을 전달받고 10시 10분전에 로비로 내려간다. 물론 준비해온 거북선과 사연 많은 도금된 칼도 줄줄 끌고 다닌다. 목, 금 이틀 동안 강 상무가 새로운 사업에 대한 투자 건으로 새로운 파트너와 여러 차례 미팅을 가졌고, 준비해온 거북선, 도금된 칼 등으로 선물공세를 펴기도 했지만 결과적으로 좋은 결실을 맺지는 못했다. 현장에서 MOU 체결까지는 무난하게 진행 되었지만 서울로 돌아온 후 추진과정에서 서로의 욕심이 부딪히는 바람에 무산되고 만 건이다.
내가 여기서 기록하고 싶은 거는 그야말로 길쭉한 리무진 승용차를 타본 거다. 아마도 전체길이가 버스만큼은 족히 되리라 생각된다. 뒷부분 좌석이 서로 마주볼 수 있게 배치돼있고 중간에는 좁다란 테이블도 접었다 펼 수 있게 돼있다. 운전석과는 공간을 나눌 수 있도록 창문까지 올리고 내릴 수 있어 중요한 얘기는 운전자가 전혀 듣지 못하게 할 수도 있겠다. 또 내부에는 냉장고까지 갖추고 있어 얼음이나 위스키, 포도주, 맥주 등 주류와 가벼운 안주까지 접대에 필요한 준비가 완벽하게 갖춰져 있다. 농담으로
“여자만 있으면 되겠네? ㅋㅋㅋ”
처음 미국에 온 부산 촌놈,,, 이런 게 참으로 신기해서 눈이 휘둥그래지고 차 안을 하나하나 뜯어본다. 이런 차는 가격이 얼마나 할까? 대통령 차는 이런 차와는 다르겠지?
또 하나, 금요일 저녁 포트워스에서 자동차로 휴스톤까지 찾아온 친구가 있었으니 나와는 초등학교 동창이다. 원래 서울내기였는데 초등학교 생활을 같이 하고 중학교 때 다시 서울로 올라갔는데도 계속 연락을 주고받았다. 지금은 핵물리 전공으로 마지막 학위 준비 중이었는데 지구 반을 돌아 찾아온 친구를 만나러 자동차로 삼천리 길을 운전하여 찾아온 것이다. 내일이면 산안토니오로 들어가는데 그러면 좀 운전을 좀 덜해도 되는 것을 함께 와야 했던 친구와의 시간 조정이 어려웠단다. 강 상무께 호텔 커피숍에서 인사시키고 저녁시간을 친구들과 함께한다. 함께 온 친구의 친구가 휴스턴에 볼 일이 있었기로 물어물어 찾아간 한국사람이 운영하는 술집에서 억수로 마셨다. 공부하는 학생이 뭔 돈이 있을까? 내 출장비(?) 좀 많이 썼다. 그 추억을 지금도 되씹으며 젊은 혈기가 없었다면 엄두도 못 냈을 한 사건으로 기억하고 있다.
2012-03-28 12:36:40
첫 해외출장 (3)
2012. 3. 28.
산안토니오 (San Antonio)
새로운 업무와 찾아온 친구 덕분에 휴스턴에서의 목, 금요일이 어떻게 지나갔는지 모르겠다. 얼마나 마셨는지 토요일 아침 일어나니 속이 쓰리고 정신이 없다. 이럴 때 콩나물국이 절실한데 버터로는 불가능할 것이라, 주스 한 잔만 마시고 그냥 속을 비우고 만다. 이제 산안토니오로 이동해야 한다. 내 친구는 그의 친구와 함께 휴스턴에서 볼일보고 다시 포트워스로 올라갈 거라 했다. 우리는 강 상무의 파트너가 제공해주는 편안한 리무진을 타고 휴스턴공항으로 나가 또 다른 비행기 타고 산안토니오로 간다.
산안토니오, 미 대통령 휴양지와 공군비행장이 있는 곳. 공항 셔틀버스를 타고 예약해둔 하이야트호텔로 이동 후 다른 사람들은 시내 관광에 나섰지만, 나는 속이 부대끼고 정신이 없는지라 그냥 호텔에서 충분히 휴식을 취한다. 부풀어오른 입술이 아예 터져버렸다. 리야드 조 과장이 저녁쯤 도착했다는 전갈이다. 함께 방에서 맥주를 마시며 그 동안의 안부를 전한다. 조 과장 역시 수입과 이 과장의 안부를 묻네. 퇴직해서 잘 계시노라고 전한다. 그렇게 끼리끼리 어울리나 보다.
다음날 일요일 늦은 아침 챙겨먹고 조 과장과 둘이서 시내관광에 나선다. 한 과장과 강 과장은 어제 다녀왔다고 했다. 볼 거라고는 별 게 있겠나? 걸어서 10분이면 도착하는 알라모 요새! 존 웨인과 리차드 위드마크가 열연했던 <돌아온 알라모>의 실제 배경인 이곳, 당시 멕시코와의 전쟁에서 산화한 그들의 무용담을 그린 영화. 영화에서는 제법 높게 여겨졌던 요새의 담장이 실제로는 내 키 정도의 높이에 불과하다. 이 정도로 적군을 막아낼 수 있을까 싶다. 우리의 산성과 비교해보더라도 크다지 큰 규모는 아닐 성싶다. 영화에서 리차드 위드마크가 쓰고 있던 동물의 가죽을 벗겨내 만든 모자가 꼬리까지 달린 채 박물관에 그대로 전시돼있다. 100년 역사를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그들이 잠시 부럽기도 했다.
미국 중남부 회의도시 산안토니오는 사시사철 Conference로 북적댄다. 이번 주 NPRA Conference가 끝나면 다음 주에는 Chemical Tanker 선박회사들의 회의가 개최되는 등, 일년 내내 꽉 찬 회의일정이 이 도시가 살아가는 길이다. 공군 비행장과 군부대, 알라모 요새 외에는 아무 것도 없던 황량한 벌판에 인공으로 강물을 끌어와서 수로를 만들고 주변에는 온통 30층이 넘는 호텔을 지어놓고, 그 수로를 따라 보트 타고, 기타 치며, 데낄라 마시며, 여흥을 즐기는 그들이 잠시나마 부러웠다. 휴스턴으로 대표되는 USG지역 원유를 채굴하거나 수입하는 항구를 중심으로 해안가의 정유 및 석유화학 공장과 각종 수송용 파이프라인과는 대비되게 내륙에는 균형을 맞추려는 듯 휴양을 위한 산안토니오를 인공적으로나마 만들어둔 것 같다.
Convention Center
이제 서서히 업무로 돌아갈 시간, 전체인원을 위한 전야제가 있는 모양이다. 컨벤션센터 중앙 홀에서 벌이는 칵테일파티! 익숙한 사람이라면 이런 형식적인 자리에는 잘 참석하지 않지만 우리는 처음 오는 촌놈들이라 그 분위기 파악을 위해서라도, 또 가입비(USD300)가 아까워서라도 꼭 참석해보자고 했다. 또 다른 이유는 그 많고 많은 유인물 수거를 위해서다. 공식행사인 만큼 주최측에서 준비한 Agenda는 향후 장기전망에 아주 유용한 자료가 될 것이고 출장리포트 쓰는데 꼭 필요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예의규정에 따라 정장차림에 타이까지 매고 참석한다. 요즘 젊은이들에게는 익숙한지 모르겠지만 이런 파티라는 게 내게는 참 어색하다. 모두들 명찰을 달고 있으니 이름 아는 회사라도 발견하면 “Excuse me……”로 시작해서 아는 척이라도 해대기 시작한다. 원래 파티라는 게 그렇겠지만 이놈들도 마찬가지다. 서로 비즈니스를 해왔기에 전화통화는 무척 많이 해 온 사이지만 얼굴은 처음 보게 되는 사람들도 많다. 이렇게 모인 기회에 서로 인사하고 얼굴 익히는 거란다. 그 넓은 땅덩어리에서 얼굴 한 번 보는 게 우리처럼 그리 용이한 일이 아니라는 걸 실감한다.
한두 시간 홀을 맴돌면서 명함을 모은 게 쉰 장은 될 것 같다. 나중에 다시 훑어봐도 누가 누군지 잘 모르겠더라. 다음에 다시 만나게 되면 ‘아~~ 그때 그 친구구나!’ 하면서 기억을 되살리는 데는 도움이 되더라. 차츰 사람들이 빠져나가고 열기가 사라질 즈음, 우리도 밖으로 나온다. 뭔가 허전한 마음에 우리끼리 얘기나 하자며 호텔 바로 올라간다. 어허~ 근데 이런 곳이 2차 모임장소로구나. 좀 전에 봤던 얼굴들이 여기저기 얘기하며 지나치는 내게도 미소로 인사한다. 조그만 맥주병 채로 ‘Cheers~’를 외치며 나름대로의 아쉬움을 이렇게 달래나 보다. 이놈들의 노는 방식이 이런 거구나 싶다. 지긋이 앉아 얘기하는 분위기가 내게는 좀더 편안하다. 서서 왔다 갔다 하는 게 영~~ 어색하기만 하다.
NPRA Meetings
출장의 주목적인 NPRA Meetings은 이렇게 시작되었고, 다음 이틀 동안 진짜로 한 과장이 짜준 스케줄대로 한 시간 단위로 뺑빠꾸를 돈다. 이 호텔에서 저 호텔로, 이 식당에서 저 커피숍으로, 저 로비에서 이쪽 홀까지 온 동네를 휘젓고 돌아다니며, 곧바로 인사말에 이어 살아있는 정보 서로 확인하느라 혈안이다. 다음달 장기계약가격에 대한 전망은 물론이고 나중에 뒤통수 맞지 않으려면 아주 구체적인 정보까지도 시시콜콜 다 챙겨야만 하는 거다. 특히 스팟 거래가 있었다면 누가, 어떤 가격, 언제 어디서 선적하는지 등등 가능한 많은 정보를 갖고 있어야 한다. 참으로 전쟁이다, 전쟁!
이 와중에 강 상무도 참석한 중요한 미팅은 역시 SABIC(Saudi Arabia Basic Industries Corporation)이다. LGI가 지분이 낮긴 했지만 SABIC에 일정지분 투자를 해두고 있었고, 그와 더불어 SABIC에서 생산되는 SM(Styrene Monomer)라는 플라스틱 원료는 장기계약을 통해 연간 4~5만 톤 국내에 들여오고 있었는데, LGI가 SABIC의 빅박(Big Buyer)으로 그들이 초대한 거다. 그들은 제법 큰 회의실 하나를 빌어 찾아오는 손님들을 맞이하고 있었다. 호텔로비에 커다란 입간판도 하나 걸어두고 말이지. 그래도 빅박의 임원이 왔다니까 그들 나름대로 예를 갖춰 대접을 해준 거라고 보면 되겠다. 여기서 난생 처음 먹어보는 양고기? 그들이 돼지 못 먹는 이유와는 다르지만 내게는 역한 냄새가 싫었다. 내가 어릴 때 염소고기는 먹어본 적 있다는데 양고기는 영~ 먹기 어렵더라.
또 강 상무가 참석한 건 아니지만 Yigal과 다시 만났다. 그 자리에서 SM 10만 톤을 사주지는 못했지만 서울로 돌아오자마자 3,000톤짜리 두 개를 사주긴 했다. 확약을 한 건 아니었지만 면은 좀 세운 셈이다. 이날 나는 McDermott의 다른 친구들도 소개받았는데 그 중 AN(Acrylonitrile)에 대해서는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는 Garry Waynwright를 만난다. 이후 나는 이 둘을 통해 SM, AN에 대해서는 국내종합상사로서는 가장 좋은 실적을 거둘 수 있었다. 그들은 내가 제공하는 정보를 믿을 수 있게 됐고, 나 역시 그들의 말을 믿었다. 그때 업무 실적은 차곡차곡 쌓여갔고, 당시 나는 참 행복했다.
이렇게 이틀이 눈 깜박할 사이 지나가 버리고, 산안토니오에서의 마지막 날(수) 오전 강 상무 방에서 전 참석자가 모여 입수한 정보 및 보고사항을 점검하고 난 후, 강 상무가 쫄병인 내게
“촌놈이 처음 미국 왔는데, 첫인상을 한 마디로 얘기해봐라.”
“예~? 예. 영어 때문에 걱정 많이 했는데 생활영어는 아직이지만 업무적인 거는 조금 자신감을 얻었습니다. 그리고 우리도 이제는 부자 행세를 좀 해야 되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부자 행세? 돈 좀 더 쓰자 이 말이가?”
“예, 그렇습니다. 늘 정보 하나 얻으려고 그렇게 쌔빠지게 돌아다니지 말고, 그들이 우리 찾아와서 정보 흘리고 가도록 하면 좋겠다는 생각입니다. 이번 NPRA에 가장 많은 인원이 참석했는데 굉장히 유용했다는 생각이고, 내년에는 돈 조금 더 써서 스위트룸 하나 마련하면 좋겠습니다.”
“돈 쓰는 거? 너그는 너무 쉽게 얘기하네. ㅎㅎㅎ 그래, 돌아가서 검토해보자. 그만큼 돈 더 벌 수 있으면 사장님도 좋아하시겠지?”
귀국행
오후가 되자 각자 자기의 비행 스케줄대로 뿔뿔이 흩어진다. 강 상무는 금 부장과 LA를 통해 서울로, 강 과장은 SF를 거쳐 프랑크푸르트로, 조 과장은 뉴욕 구경 못 했다며 뉴욕으로 가는데 나와 비행기 스케줄이 다르다. 나와 한 과장의 비행기가 늦게 도착하니까 뉴왁 공항에서 우리를 좀 기다리기로 했다. 뉴왁에서 한 과장 차로 모텔에 도착하니, 어럽쇼? 정밀화학과 부 씨가 출장을 나와있네. 사흘 째인데 오늘은 하루 종일 브라이언과 함께 다녔단다. 늦은 밤 모텔 방에 셋이 모여 맥주 한잔에 피로를 달랜다. 간간히 읽고 있던 <동의보감> 5권은 리야드 조 과장이 갖고 간다. 나도 아직 다 읽지 못했는데……
다음날(목) 조 과장은 한 과장 안내로 뉴욕 투어, 부 씨는 뉴욕 거래처가 모텔로 와서 픽업해가고, 나는 브라이언의 안내로 창고형마트에 들러 서울에서 기다리고 있을 여러 사람들을 위한 몇 가지 선물을 준비한다. 모든 게 새롭기는 한데 뭘 사야 할지 모르겠고, 휴스턴에서 마신 술로 출장비가 바닥난 상태라 망설이기만 하다가 비행시간에 쫓겨 공항으로 향한다. 결국 선물 형편없이 사 왔다고 집사람한테 기합 받았다. 다음 출장에서는 절대로 그런 일 없을 거라면서…… ㅋㅋㅋ
어렵쇼? 귀국하는 비행기는 중간급유를 위해서 앵커리지에 기착하네. 아마도 앵커리지 면세점과 무슨 약속이라도 있는 건가? 갈 때는 그런 거 없이 그냥 갔는데, 왜 올 때 그러는지 이해가 잘 안 된다. 두어 시간을 한산한 공항에서 보내고 다시 탑승해보니 지금까지 근무했던 승무원 아가씨들이 뒷좌석에 나란히 앉아 담요를 덮고 눈을 감고 있다. 잠을 청하고 있는 모습인데 지금 근무조와 교대한 모양이다. 하기야 14시간을 서서 근무해야 하는데 그게 가능하겠나 여겨진다. 모르긴 몰라도 가는 비행기에서도 교대근무는 했을 거라 생각해보지만 그때는 그런 승무원을 보지 못한 것 같다.
가방에서 달아난 소설책 <동의보감>을 대신하려 앵커리지에서 풍경 그림 좋은 책을 하나 샀는데 글자가 읽히질 않는다. 정신 차리고 들여다 보니 불어였더라.ㅋㅋㅋ 몸이 피곤하니 듣는 음악도 짜증이 난다. 스크린에 펼쳐지는 영화도 보는 둥 마는 둥,,, 갈 때는 그렇게 좋던 비행기도 내 몸 피곤하니 만사가 귀찮다. 주는 밥 꼬박꼬박 챙겨먹고 김포에 도착하니 서울은 어느덧 금요일 오후가 돼 있더라. 가면서 벌었던 14시간 다시 고스란히 되돌려주고 비행시간 15~16시간을 더 보탰나 보다.
이렇게 광용이의 11박13일 생애 첫 해외출장은 끝이 났다. 이후,,,, 국내에서는 LGI가 임원을 포함해서 6명이나 NPRA 참석했다는 소문이 퍼지기 시작했고, 이듬해부터는 다른 종합상사들도 팀을 만들어 대규모로 참석하는 계기가 된다. 더러는 스위트룸을 준비해서 나름대로 자기 조직을 과시하기도 했다. 다음해(1988) NPRA에는 석유화학 냄새 맡는다는 과장이 나가고, 나는 EPCA에 참가하러 모나코로 향하게 된다. 그레이스 켈리가 왕비로 있던 모나코는 지중해 연안 도시국가로 자체공항이 없기로 프랑스 남부 니스 공항을 이용했는데,,, 니스의 누드해변과 치즈 뿌린 홍합탕이 가장 기억에 남네. ㅋㅋㅋ
그 후,,, 내가 LGI를 나오고 나서도 NPRA든 EPCA든 매년 한 군데는 다녔다. 한번은 좀 가난한 회사에 있을 땐데 미국출장업무 다 마치고 나니 Austin에서 공부하고 있던 김창근이 San Antonio까지 날 데리러 온 적 있다. 4시간을 다시 운전하여 찾아간 창근이 집,,,,,, 그날 밤을 라면과 위스키로 달랜 적이 있다. 마나님 앵금씨,,,, 나를 보며 울먹이는데 그리움이 눈물 되어 흘러 내리더라. 그때 창근이 좋아하는 곶감을 갖고 갔는데 S.F.공항에서 걸렸다. 당시 ‘persimmon’이란 단어를 몰라 설명하는데 한참 걸렸다. 설명 못했으면 다 뺏길 뻔했다. 다음날 귀국길에는 Austin에서 L.A.로 넘어오는데 그날따라 날씨가 끝내주더라. 로키산맥의 그 꿈틀거림이 한눈에 다 보이더라구. 내가 탄 비행기의 그림자가 구름 위에 투영되고, 구름을 벗어나면 산맥능선에 내가 서있다. 땅덩거리로는 분명히 복 받은 나라, 미국!!!
첫 출장에서 기억에 남는 것들을 훑어보면
1) 미국 비자 신청
2) 청천벽력 같았던 예비군 동원소집.
3) 세계의 중심 뉴욕, 다 보지 못한 것은 무얼까?
4) Yigal & Palm
5) Atlanta & Augusta, Georgia : San Antonio & Houston, Texas
6) Houston에서 NASA엘 가보지 못한 아쉬움
이 기억에 남네.
내가 다시 미국을 가볼 기회가 있다면 지금 이맘때 출발하여 NPRA가 열리는 San Antonio에서 남들 일할 때 보트, 데낄라, 기타소리 즐기고 싶고, 마치고 나면 Augusta로 넘어가서 Masters Golf를 구경하고 싶다. 특히 올해는 임호(타이거 우즈)가 재기하는 첫 메이저대회라서 인기가 상승하고 있다는데, 그 입장권 구할 수 있을까? 페트론이 아니라도 USD2,000이면 구할 수 있을까? 목련은 피었을까??
근데 띵나발이 된 내 조디는 우째야 되노??
재미 없고 긴 글 읽어준 산우님들,,,,
복 많이 받을겨…..
고맙습니다.
(The End)
(To be continued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