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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사기 강해(42)
나실인 삼손
본문 : 13:1-7
인류 역사상 가장 힘센 사람이 누구일까?
제가 아는 한 삼손입니다.
삼손이 만약 우리 시대에 살아있다면
힘과 주먹으로 하는 모든 올림픽 게임에서
금메달을 휩쓸었을 것입니다.
역도, 레슬링, 권투뿐만 아니라
프로권투와 격투기에서
적수가 없었을 것입니다.
오늘 본문 13장부터
무려 4장에 걸쳐 삼손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그만큼 삼손을 통하여
전하시고자 하는 말씀이 많다는 뜻입니다.
한 마디로 기대는 컸으나
기대에 못 미친 인물의 대명사입니다.
오늘부터 차근차근 삼손을 통하여
우리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메시지를 살펴보고자 합니다
(12명의 이스라엘 사사 중에서 가장 마지막 사사).
오늘은 그 첫 시간으로
삼손의 출생에 관한 이야기를 살펴보겠습니다.
<출생 배경>....
오늘 본문 사사기 13:1 말씀은
사사가 등장할 때마다 나타나는
익숙한 말씀으로 시작합니다.
1절 “이스라엘 자손이
다시 여호와의 목전에 악을 행하였으므로
여호와께서 그들을 사십 년 동안
블레셋 사람의 손에 넘겨 주시니라.”
여기 “다시”라는 말은
“계속 또 다시”라는 뜻을 담고 있습니다.
역사를 통해 배우지 못하면
같은 실수를 반복할 수밖에
없습니다(역사 공부의 필연성).
신앙도 마찬가지입니다.
과거 신앙 선배들의 잘잘못을 통해
자신을 돌아보지 않으면
같은 실패를 또 반복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실제로 사사기의 한 본문은
한 세대의 교훈을 그 다음 세대로
잘 이어지지 못했음을 보도하고 있습니다.
<삿2:8-10>
8절 “여호와의 종
눈의 아들 여호수아가 백십 세에 죽으매
9절 무리가 그의 기업의 경내
에브라임 산지 가아스 산 북쪽
딤낫 헤레스에 장사하였고
10절 그 세대의 사람도
다 그 조상들에게로 돌아갔고
그 후에 일어난 다른 세대는 여호와를
알지 못하며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을 위하여
행하신 일도 알지 못하였더라.”
여호수아가 110세의 일기로
그의 생애를 마쳤습니다.
그리고 그 세대의 사람,
즉 ‘광야세대’도 다 그 조상들에게로 돌아갔습니다.
그러면 자연스럽게
다음 세대가 출현해야 합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은
‘다른 세대’가 일어났다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믿음을 잇는 ‘다음 세대’(next generation)가 아니라 ..
전혀 ‘다른 세대’(different generation)가
일어났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광야세대가 알던
여호와 하나님을 알지 못했다고 합니다.
그들은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위해서 행하신 그 위대한 일들도
알지 못했다고 합니다.
신앙이 전수되지 못하고
있음을 보게 됩니다.
자녀교육에 실패한 것입니다.
오늘 우리 시대는
더 빠르게 시대가 변하고 있습니다.
IT 시대에서는 세대 차가
더욱 극명하게 나타나고 있습니다.
전혀 다른 세대,
곧 ‘신인류’가 나타난 것입니다.
어른들은 그 시대적 흐름을
제대로 따라갈 수 없습니다.
그러다 보니 젊은 사람들은
어른들(부모 세대)로부터 배우려고 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무시하기 일쑤입니다.
이러한 현상은
영적으로도 큰 위기입니다.
영적으로도 ‘다음 세대’가 아니라
전혀 ‘다른 세대’가 일어날
확률이 더 커졌기 때문입니다.
부모 세대의 신앙적 교훈이
다음 세대로 이어지기
매우 어려운 환경입니다.
그럼에도 우리가 다음 세대로 이어지는
신앙교육을 포기할 수 없는 이유는 분명합니다.
기술은 발달해도 인간 본성은
변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인간의 타락은 기술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인간 본성에서 오는 것입니다.
이는 영적인 문제입니다.
오늘 본문 1절에서
“악을 행했다”고 했을 때
우리말 번역엔 생략이 되어있지만,..
히브리어 원문엔 정관사가 붙어
"그 악을 행했다"라고 되어있습니다.
이전에 그랬듯이 하나님을 버리고
탐욕에 빠져 우상 바알을 섬긴
바로 그 악을 말합니다.
부모(이전) 세대가 하나님의 심판을
불러온 바로 그 잘못을
똑같이 저지르고 있는 것입니다.
그 결과는 무엇입니까?
1절 “이스라엘 자손이
다시 여호와의 목전에 악을 행하였으므로
여호와께서 그들을 사십 년 동안
블레셋 사람의 손에 넘겨 주시니라.”
하나님은 그들을 40년 동안
블레셋의 손에 넘겨 주셨습니다.
여기 40년은 지금까지 있었던
압제와 고통의 기간 중 가장 긴 기간,
가장 불어난 수입니다.
사사 시대 내내 반복되는
‘악순환의 기본 패턴’이 있습니다.
‘범죄’(배교)와 ‘징계’와 ‘부르짖음’과 ‘구원’,
그리고 ‘다시 타락’이 계속 반복되고 있는 것이
바로 사사 시대 이스라엘의 역사였습니다.
사사기 사이클에서
① 범죄
② 고통, 그 다음 세 번째 단계가 무엇입니까?
③ 회개와 부르짖음이 나타나야지요.
그러나 삼손 시대에는
“백성이 하나님께 부르짖었다”라는 표현이
어디에도 보이질 않습니다.
이제 아무리 고통이 찾아와도
하나님을 찾지 않을 만큼
이스라엘의 영적 상태가 심각해졌다는 겁니다.
전쟁터 한 기지에 포탄이 떨어졌습니다.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되었습니다.
군의관들과 간호사들이 도착해 보니
팔이 달아난 사람, 다리가 떨어져 나간 사람,
눈을 잃은 사람, 얼굴이 깨진 사람...
저마다 나를 살려달라고 아우성입니다.
그런데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성한 곳이 하나 없이
아예 피범벅이 되어 부르짖지도 못하고..
겨우 코끝에 가녀린 숨만
할딱이는 사람이 있습니다.
바로 이 모습이 지금 이스라엘의 영적인 모습입니다.
맥박이 멈추어져 가고 있고
체온이 떨어지고 호흡이 멈추어져
가는 상태입니다.
기도 소리조차 멈춰버린 것입니다.
그런데도 자신에게 무슨 문제가 있는지
깨닫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화인 맞은 양심).
언제나 그렇습니다.
기도할 힘이 남아 있는 사람은
소망이 있는 사람입니다.
그래도 조금의 믿음을 남아 있는 사람입니다.
그 사람은 아직 희망이 있습니다.
그러나 삼손이 태어날 당시의 이스라엘은
그 마지막 구원의 희망마저
기대할 수 없는 절망의 상태에 있었습니다.
바로 이런 절망적인 상황에서
하나님께서 특단의 조치를 준비하셨습니다.
바로 삼손입니다.
<천사의 수태고지>..........
절망의 시대, 절망의 땅에서
이스라엘의 부르짖음도 들리지 아니할 때에
하나님은 한 구원자를 준비하십니다.
은혜는 항상 하나님에게서 시작됩니다.
사람이 하나님을 찾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먼저 인간에게
구원의 손길을 뻗으십니다.
우리에게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주심도
마찬가지입니다.
요3:16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하나님의 구원의 손길은
마노아라는 가정에서 시작됩니다.
2절 “소라 땅에 단 지파의 가족 중에
마노아라 이름하는 자가 있더라
그의 아내가 임신하지 못하므로 출산하지 못하더니.”
단 지파는 이스라엘 열두 지파 가운데
(세상 표현으로) 가장 운이 없는 지파입니다.
제비뽑아 땅을 분배받고 보니
당시 가장 강력한 원수 블레셋과 이웃하고
있는 땅을 분배받은 것입니다.
너무 강한 상대를 상대하다
보니 좋은 땅 평지엔 내려와 보지도
못하고 험한 땅에 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단지파의 소라 땅에
“마노아”라 이름하는 자가 있었습니다.
나이가 몇인지, 직업이 무엇인지,
형제가 몇이나 되는지
사사기 저자는 아무런 관심이 없습니다.
다만 “마노아가 있는데”라고 하지 않고
“마노아라 이름하는 자가 있더라”고 표현하면서...
마노아의 이름에 깊은 관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본문 13장에서 마노아란 이름이
원문상 17번 정도 등장합니다.
대명사를 쓸 만도 하고,
생략해도 좋은 문맥에서도 고집스럽게
“마노아”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그 이름 자체가 주는 의미가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마노아는 "노아"라는 이름과 관련이 있습니다.
그래서 "휴식, 안식"이라는 뜻입니다.
사사기 저자는 노아를 닮은 몇 안 되는
믿음의 사람임을 보여주고자 했던 것입니다.
그것을 어떻게 알 수 있습니까?
그의 가정에 자식이 없었습니다.
그가 문제였는지 그의 아내가
문제였는지 알 수 없지만...
그의 아내는 “임신하지 못했고
그래서 출산하지 못했다”고
본문은 말하고 있습니다.
당시 이스라엘에서 불임은
하나님의 저주로 이해되었습니다.
그래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자식을 얻으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마노아는 그의 아내와의
결혼생활에 충실합니다.
아이를 갖기 위해 인간적인 방법을
동원하지 않고 하나님의 긍휼을 기다렸습니다.
그것이 그가 믿음의 사람인 것을
암시하여 주는 것입니다.
그때 하나님이 말씀하십니다.
3절 “여호와의 사자가 그 여인에게 나타나서
그에게 이르시되 ....
보라 네가 본래 임신하지 못하므로
출산하지 못하였으나
이제 임신하여 아들을 낳으리니.”
대부분 사사들의 이야기는
그들의 이름을 떨치기 시작할 때부터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삼손의 이야기는
하나님의 사자가 삼손의 잉태를 알리는
수태고지부터 시작되고 있습니다.
성경에서 수태고지 -
수태고지는 하나님의 강권적인 간섭을
나타내는 사건입니다.
수태고지는 불임의 여성에게 나타나는
하나님의 위로와 축복이자,...
100% 하나님의 능력으로
행하시는 구원의 시작입니다.
구약성경 – 아브라함과 사라에게
아들(이삭)이 있으리라고 예언.
한나에게 아들(사무엘)이 있을 것을 예언.
신약성경 - 엘리사벳이 늙어 임신할 수 없을 때에
천사가 나타나 아들(세례 요한)이 있을 것을 예언.
동정녀 마리아에게 성령으로 잉태(예수님)될 것을 예언.
그리고 오늘 본문에서 마노아 아내 -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무명의 여인에게....
여호와의 사자가 이제 임신하여
아들을 갖게 되리라고 알려줍니다.
이처럼 삼손은 성경 상 몇 안 되는
수태고지와 함께 이 땅에 태어납니다.
<구별된 사람 – 나실인>
이렇게 태어난 아이가 하나님께 바쳐진
나실인이 되리라고 말씀합니다.
<4-5절>
4절 “그러므로 너는 삼가 포도주와 독주를
마시지 말며 어떤 부정한 것도 먹지 말지니라
5절 보라 네가 임신하여 아들을 낳으리니
그의 머리 위에 삭도를 대지 말라
이 아이는 태에서 나옴으로부터
하나님께 바쳐진 나실인이 됨이라
그가 블레셋 사람의 손에서
이스라엘을 구원하기 시작하리라 하시니.”
나실인은 히브리어로 ‘나지르’인데
“구별된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오직 하나님께 헌신된 사람입니다.
성경에서 대표적인 나실인으로는
사사기의 삼손, 사무엘, 세례요한 등입니다.
물론 예수님도 해당이 됩니다만
앞선 사람들은 어디까지나 예수님에 대한 예표고.....
예수님을 표현하고 설명하는 사람들이므로
예수님은 이를테면 <완성형 나실인>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나실인에게는 반드시 지켜야 할 규정이 있었습니다.
<민6:1-8>
1절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2절 이스라엘 자손에게 전하여
그들에게 이르라 남자나 여자가 특별한 서원
곧 나실인의 서원을 하고 자기 몸을 구별하여
여호와께 드리려고 하면
3절 포도주와 독주를 멀리하며
포도주로 된 초나 독주로 된 초를 마시지 말며
포도즙도 마시지 말며 생포도나 건포도도 먹지 말지니
4절 자기 몸을 구별하는
모든 날 동안에는 포도나무 소산은
씨나 껍질이라도 먹지 말지며
5절 그 서원을 하고 구별하는 모든 날 동안은
삭도를 절대로 그의 머리에 대지 말 것이라
자기 몸을 구별하여 여호와께 드리는 날이
차기까지 그는 거룩한즉 그의 머리털을
길게 자라게 할 것이며
6절 자기의 몸을 구별하여
여호와께 드리는 모든 날 동안은
시체를 가까이 하지 말 것이요
7절 그의 부모 형제 자매가 죽은 때에라도
그로 말미암아 몸을 더럽히지 말 것이니
이는 자기의 몸을 구별하여
하나님께 드리는 표가 그의 머리에 있음이라
8절 자기의 몸을 구별하는 모든 날 동안
그는 여호와께 거룩한 자니라.”
예, 세 가지를 반드시 지켜야 합니다.
첫째, 포도주나 독주 심지어는
포도 열매나 건포도도 먹어서는
안되었습니다(3-4절).
나실인은 온전히 하나님께 붙들려,
하나님의 다스림을 받도록
태어난 존재이기 때문에
너를 장악할 수 있는 그 무엇에게도
가까이 가지 말라는 뜻으로
술을 가까이하지 않게 되어있었습니다.
엡 5:18에 보면 "술 취하지 말라
성령의 충만을 받으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술과 성령은 모두 충만과 관계가 있습니다.
충만이란 장악한다.
통치한다는 의미입니다.
너는 술에 장악되지 말고
성령에 의해 장악되어 살라는 뜻입니다.
안타깝게도 우리나라는
술에 장악되어 가고 있습니다.
이런 우스갯소리도 있습니다.
월요일은 원래 마시는 날이고,
화요일은 화끈하게 마시는 날이고,
수요일은 수 없이 마시는 날이고,
목요일은 목이 터져라 마시는 날이고,
금요일은 금방 마시고 또 마시는 날이고,
토요일은 토하고 마시는 날이고,
일요일은 일일이 술집 찾아다니면서 마시는 날이랍니다.
그리고 취중에 범한 일에 대하여 관대합니다.
시비가 붙으면 “취해서 그렇잖아. 네가 이해해”
그럽니다. 심지어는 범죄를 해도
그 죄를 경감시켜 줍니다.
안 될 일입니다.
“술 취한 것도 민폐인데 범죄까지 저질러”
그러고선 가중처벌해야 합니다.
대개 음주 문화가 발달하면
그 시대는 망하기 시작함을 알아야 합니다.
쾌락과 사치와 방종의 시대라는
뜻이기 때문입니다.
한국에서 제일 많이 새로 생기는 것이
술집과 교회라고 합니다.
술집과 교회는 비례하여 증가한다고 합니다.
보통 비극이 아닙니다.
교회가 많아지면 술집이 줄어야 하는데
왜 술집이 같이 늘어납니까?
역사를 뒤돌아보면 교회에 진정한
영적 각성과 부흥이 일어날 때
술집이 다 문을 닫았습니다.
오늘날의 교회가 세속화되었기
때문에 술집이 줄지 않고 있습니다.
사회를 일깨우지 못하고 있는
교회의 슬픈 자화상이 아닐 수 없습니다.
둘째, 나실인은 머리를
깎지 못하게 되어 있습니다(5절).
머리카락이 나를 덮고 있듯이
내 생각, 내 삶을 온전히 덮고 계신
나의 주인이 있다는 것을
온 세상에 선포하고 다니는 것입니다.
“나는 성령의 수하에 있다.
나는 하나님께 붙잡혀 살아가는 존재다.
하나님 외에 그 누구, 그 무엇도
나의 주인이 될 수 없다.” 이 말입니다.
셋째, 나실인은 죽은 시체나
부정한 것을 가까이 할 수 없었습니다(6-7절).
나실인은 오직 하나님께 드려진
거룩한 존재입니다.
100% 구별된 존재입니다.
심지어 아버지가 죽어도
장례를 치를 수가 없었습니다.
본래 나실인은 일정 기간만
서원할 수도 있고 평생을 서원할 수도 있는데...
하나님은 삼손에게 평생 헌신할 것을
요구하셨습니다.
삼손 뿐만 아니라 ..
삼손의 어머니도 삼손을 잉태하는 순간부터
포도주와 독주를 마시지 말아야 했고...
어떤 부정한 것도 먹지 말아야 했습니다.
<6-7절>
6절 “이에 그 여인이 가서
그의 남편에게 말하여 이르되
하나님의 사람이 내게 오셨는데
그의 모습이 하나님의 사자의 용모 같아서
심히 두려우므로 어디서부터 왔는지를
내가 묻지 못하였고
그도 자기 이름을 내게 이르지 아니하였으며
7절 그가 내게 이르기를 보라
네가 임신하여 아들을 낳으리니
이제 포도주와 독주를 마시지 말며
어떤 부정한 것도 먹지 말라
이 아이는 태에서부터 그가 죽는 날까지
하나님께 바쳐진 나실인이 됨이라
하더이다 하니라.”
그러면 하나님은 왜 삼손을
평생 나실인으로 구별하셨을까요?
예, 그를 아주 특별한 존재로 세우시려고
그렇게 명하신 것입니다.
그에게 다른 사람에게는 없는
특별한 힘을 부여하시기 위함입니다.
나실인으로서의 규제를 가하지 않는다면
엉뚱한 일이 벌어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내가 너에게 특별한 은혜와
능력을 주겠다. 그러나 너는 그것으로
방종하지 말고 거룩한 나실인의 삶을
살아야 한다”고 명령하신 것입니다.
그에게 거룩한 삶을 요구하시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위대한 일을 감당하기 위해서는
육체적 욕망의 절제가 필요함을 말씀해 주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도 “내가 내 몸을 쳐
복종하게 한다”(고전9:27)고 했습니다.
성도는 이 시대의 영적 나실인입니다.
구약의 나실인 규례(민 6장)를
그대로 지킬 수는 없지만,
영적으로 그 정신을 이어받은 사람들입니다.
저와 성도님들은 이 시대에
하나님의 나라와 그의 의를 위하여,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기 위하여
부름받은 영적 나실인으로서
생활에서 절제가 있어야 할 것입니다.
육신의 일을 도모하지 말고
영의 일을 도모하며,
성령의 9가지 열매를 맺는 삶을 살아야 할 것입니다.
<맺는 말씀 - 구원의 작은 불씨>
오늘 본문 5절 "하나님께 바쳐진
나실인이 됨이라"는 말씀 다음에
퍽 재미있는 말씀이 붙어 나옵니다.
5절 “보라 네가 임신하여 아들을 낳으리니
그의 머리 위에 삭도를 대지 말라
이 아이는 태에서 나옴으로부터 하나님께
바쳐진 나실인이 됨이라
그가 블레셋 사람의 손에서
이스라엘을 구원하기 시작하리라 하시니.”
“그가 블레셋 사람의 손에서
이스라엘을 구원하기 시작하리라.”
능력의 사사 삼손조차도
이스라엘을 블레셋으로부터
완전히 구할 수는 없을 것이라는 겁니다.
다만 구원하기 시작하리라.
구원의 작은 역사를 시작하기 위해
부름받은 사사가 삼손입니다.
이 구원의 완성은 사무엘과
다윗 왕을 통해 이루어지게 될 것입니다.
이스라엘이 블레셋을 완전히 물리친 것은
다윗 왕이 블레셋의 본거지를 완전히 멸하는 ..
사무엘하 8장에 가서 이루어질 것입니다.
삼손의 등장은 블레셋으로부터의
완전한 구원이 아니라
구원의 서막에 불과합니다.
나 한 사람의 헌신이 세상을
완전히 바꿀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작은 불씨로서
하나님의 나라 시작이 될 수 있습니다.
영적 나실인으로 썩어져 가는 세상에서
빛과 소금의 역할을 감당하여
하나님의 나라가 이 땅에 속히 이루어지게 하는 ...
작은 불꽃이 되는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금산교회 김화준목사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