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1 수행 중에 번뇌가 자주 끼어들어와 수행의욕이 떨어집니다. 어떻게 해야 합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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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행의 진전
질문 81 수행 중에 번뇌가 자주 끼어들어와 수행의욕이 떨어집니다. 어떻게 해야 합니까?
마하시 사야도 법문, 비구 일창 담마간다 편역, 이솔, 『위빳사나 백문백답』, pp.192~193
지혜의 힘이 아직 여릴 때는 볼 때마다 계속해서 ‘봄, 봄’하며 끊임없이 관찰하고 새겨도 번뇌의 속행(煩惱速行)들이 자주 끼어들어와 생겨나기도 합니다. 그렇게 생겨난다고 해서 실망하면 안 됩니다. 새김을 줄여서도 안 됩니다. 그 번뇌의 마음도 새겨서 제거해야 합니다.
비유하자면 옷을 세탁하는 이가 한두 번 밟고 치고 문지르는 정도로 옷이 깨끗해지지 않더라도 손을 놓지 말고 거듭거듭 치고 문지르고 밟아서 옷을 깨끗하게 해야 하는 것과 같습니다.
옷 세탁과 위빳사나 수행이 서로 다른 점은 옷을 세탁할 때는 한 번에 어느 정도 깨끗해졌고 어느 정도 더러움이 남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하지만 위빳사나 수행에서는 번뇌가 오늘 어느 정도 사라졌고 어느 정도 아직 남아 있다는 것을 알 수가 없습니다. 차례대로 관찰하여 도와 과에 이르고 나서야 어느 정도 사라졌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렇게 알 수 없는 모습, 알 수 있는 모습이 도낏자루와 같다고 『상윳따 니까야』 (S22:101) 「까뀌(자귀) 자루 경」155)에서 비유하고 있습니다.
도끼를 잡는 부분인 도낏자루가 매일매일 마찰로 인해 조금씩 닳아 없어져도 나무꾼은 자루 부분이 오늘 어느 정도 파였는지 알 수 없습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새길 때마다 계속해서 번뇌들이 사라지고 있어도 위빳사나 수행자들은 번뇌들이 어느 정도 사라졌는지 알 수가 없습니다.
며칠, 몇 달, 몇 년 동안 도끼를 사용하여 그 자루에 손자국이 확실하게 드러났을 때라야 ‘도낏자루가 얼마 정도 닳았구나’라고 알 수 있듯이 위빳사나 수행자도 도와 과에 이르고 났을 때라야 번뇌들이 어느 정도 사라졌는지 알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위빳사나 지혜가 성숙되었을 때는 번뇌의 속행이 가끔씩만 생겨납니다. 생겨난다 하더라도 새김과 동시에 사라져 버립니다. 그리고 다시 생겨나지 않습니다. 대부분의 경우는 새김만 계속해서 생겨납니다.
지혜가 매우 성숙되었을 때는 좋아할 만한 형상을 보아 눈 감각문에 인식과정이 생겨날 때도 번뇌의 속행이 생겨나지 않고 선업의 속행만, 혹은 결정까지만 생겨납니다.156) 보는 인식과정의 마음들도 바로 다음에 관찰을 하게 되어 중간에 방해받지 않고 위빳사나 관찰만 계속해서 생겨납니다. 그러한 수행자들에게는 아직 위빳사나 관찰을 하고 있는 단계라고 하더라도 번뇌와 떨어진 모습, 번뇌가 사라진 모습이 분명합니다. (『위빳사나 수행방법론』)
155) 『상윳따 니까야』 제3권, p.413 참조
156) 눈 감각문에서 인식과정이 생겨나는 순서는 부록에 설명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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