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주차
풍유, 동식물을 등장시키자
1. 신경림의 풍유
풍유는 주로 역사적 · 시대적 삶의 의미를 효과적으로 표현하는 데 사용되며, 미적 가치보다 당대 삶의 문제에 더 무거운 가치를 둡니다. 풍유의 가치는 삶의 가치와 교훈적인 성격을 띠는 것에 있습니다. 풍유는 작품 밖의 비문학적 의미구성을 명백히 요구하며, 그래서 한 개의 보조관념이 한 개의 원관념을 환기하는 단순성의 문학입니다.
이를테면 신동엽의 시 「껍데기는 가라」에서 “껍데기는 가라/ 껍데기는 가라/ 동학년 곰나루의 그 아우성만 살고/ 껍데기는 가라”고 했을 때, 껍데기는 역사의 부조리와 허구성의 풍유입니다. 시인은 ‘껍데기는 가고’와 ‘아우성은 살고’라는 대응을 통해 민족 주체성을 절규하고 있습니다.
모두들 큰 소리로만 말하고
큰 소리만 듣는다
큰 것만 보고 큰 것만이 보인다
모두들 큰 것만 바라고
큰 소리만 좇는다
그리하여 큰 것들이 하늘을 가리고
큰 소리가 땅을 뒤덮었다
작은 소리는 하나도 들리지 않고
아무도 듣지를 않는
작은 것은 하나도 보이지 않고
아무도 보지를 않는
그래서 작은 것 작은 소리는
싹 쓸어 없어져버린 아아
우리들의 나라 거인의 나라
- 신경림, 「거인의 나라」 전문
사람들의 살림살이와 밀접한 작고 보잘 것 없는 것에는 관심을 기울이지 않고, 삶에서 동떨어진 공소한 거대담론만 주장하는 세태를 알레고리화한 것입니다. 시의 전반부는 모두 큰소리로만 말하고, 듣고, 보고, 바라고, 좇다 보니 오히려 큰 것들이 하늘을 가리고 땅을 뒤덮는다는 것입니다.
후반부는 전반부의 결과로 작은 소리 하나 들리지 않고, 아무도 듣지 않는다고 합니다. 결국 작은 것, 작은 소리는 모두 없어진 거인의 나라라는 것입니다. 강자와 다수의 폭력적 행위가 소수의 목소리를 무시하고 있는 세태에 대한 풍유입니다.
소백산 자락의 목장에서 양떼를 모는 개는
이상하게도 영어만 알아듣는다
뒤로 가 하면 우두커니 섰다가도
고백 하면 재빨리 천여 마리 양떼 뒤로 가 서고
몰아라 하면 딴전을 피우지만 캄온 소리엔 들입다 몬다
미국서 훈련받은 개들이라 날쌔고 영악하기 사람 뺨쳐
양치기들은 종일 시시덕거리고 장난질이나 치며
몇 마디 영어로 명령만 하면 된다
모르고 있었을까 정말 우리가 모르고 있었을까
영어만 알아듣는 개한테 쫓기는 것이
양떼만이 아니라는 걸
우리들 울부짖음에는 눈만 멀뚱거리다가도
캄온 하는 명령에는 기겁을 해서 양떼를 몰고
스톱 하고 호령하면 목숨을 걸고 세우는 것이
개만이 아니라는 걸
또 개를 영어로 부리며 시시덕거리기만
하면 되는 것이 양치기만이 아니라는 걸
마침내 영어를 알아듣는 개라야
두려워하게 된 것이 양떼만이 아니라는 걸
-신경림, 「소백산의 양떼」 전문
풍유는 역사적, 시대적 삶의 의미를 효과적으로 표현하는데 사용합니다. 이 시는 민중으로 비유되는 양떼와 미제국주의의 앞잡이를 상칭하는 개. 미국을 상징하는 양치기의 행위들이 연결되어 한 연을 이룹니다. 양떼인 민중들은 영어만 알아듣는 개의 관리를 받으며 삽니다. 개는 미국에서 훈련받은 친미주의자나 영어사대주의자들을 풍유합니다. 개의 뒤에는 개를 명령하는 양치기가 있는데 바로 미국을 풍유합니다. 보조관념과 원관념의 사이에 1:1 의 관계가 성립하는 것입니다.
나는 늘 사진기를 들고 다닌다
보이는 것은 모두 찍어
내가 보기를 바라는 것도 찍히고 바라지 않는 것도 찍힌다
현상해보면 늘 바라던 것만이 나와 있어 나는 안심한다
바라지 않던 것이 보인 것은 환시였다고
나는 너무 오랫동안 알지 못했다 내 사진기는
내가 바라는 것만을 찍어주는 고장난 사진기였음을
한동안 당황하고 주저하지만
그래도 그 사진기를 나는 버리지 못하고 들고 다닌다
고장난 사진기여서 오히려 안심하면서
- 신경림, 「고장난 사진기」 전문
사람은 고정된 인식의 틀을 가지고 사물을 바라본다는 것을 사진기라는 사물을 통해서 풍유하고 있습니다. 곧 화자의 고정된 인식이 사진기가 됨에 따라 화자에게 보이는 것과 보기를 바라는 것, 바라지 않는 것도 찍히지만 현상을 해보면 늘 바라던 것만이 나와 있어서 안심한다는 내용입니다. 그리고 바라지 않던 것이 보인 것은 환시였다고 치부해 버립니다.
그러나 화자는 내가 바라는 것만을 찍어주는 사진기는 고장난 사진기라는 것을 깨닫습니다. 화자는 한동안 당황하고 주저하지만 그럼에도 고장난 사진기를 버리지 못합니다. 사물을 바라보는 인식의 틀을 바꾸기가 어렵고 불편하기 때문입니다. 결국 시대가 바뀌어도 고정된 인식의 틀을 고집하며 안심하고 갇혀 사는 사람들을 고장난 사진기라는 사물을 통해 연민으로 바라보고 있습니다.
낯익은 사람들이 한둘씩 내린다
어떤 사람은 일어나지 않겠다 버둥대다가
우악스런 손에 끌려 내려가고
어떤 사람은 웃음을 머금어
제법 여유가 만만하다
반쯤 몸을 밖으로 내놓고 있는 사람도 있다
바깥은 새까맣게 얼어붙은 어둠
열차는 그 속을 붕붕 떠서 달리고
나도 반쯤은 몸을 밖으로 내놓고 있는 것이 아닐까
땀내 비린내로 숨막히는 열차 속
새 얼굴들과 낯을 익히며 시시덕거리지만
내가 내릴 정거장이 멀지 않음을 잊고서
- 신경림, 「숨막히는 열차 속」 전문
인생을 열차와 열차 속에서 일어나는 사건으로 풍유하고 있습니다. 화자는 자신이 살고 있는 세상을 숨막히는 열차 속이라고 합니다. 열차 안에서 낯익은 사람들이 하나둘씩 내린다는 것은 아는 사람이 죽어가고 있음을 의미합니다. 어떤 사람은 죽지 않으려고 발버둥치지만 죽음이라는 우악스런 손에 끌려서 삶의 궤도에서 내려갑니다. 결국 화자로 보이는 시인도 자신이 내릴 정거장이 멀지 않았다고 합니다.
2024. 3. 8
맹태영 옮겨 적음